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53

출석 체크 강화라는 양날의 검(2019년 12월 10일의 기록)

1. 출석에 관한 교수(또는 대학)와 학생의 갈등은 마치 군비경쟁을 보는 것 같다. 한 쪽에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 다른 쪽에서는 그 무기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양쪽이 모두 소모되고, 잔머리와 꼼수와 편법과 비윤리도 등장한다. 2. 그런데 사실 이건 양측(물론, 정확하게는 양 측의 "일부"교수와 "일부"학생)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애먼 출석을 가지고 벌이는 싸움일 뿐이다. 즉, 배움이 있고 놓치기 아까운 수업을 만들어야 하는 교수의 책임과, 자신의 잘못(=결석)에 따른 결과를 기꺼이 감당해야 할 학생의 책임을 말한다. 3. 을지대에 있는 동안 나는 출석을 널널하게 하기보다는 빠듯하게 하는 편이었는데, 2의 이유로 이는 나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선택이었..

강의라는 삼선슬리퍼(2018년 12월 8일의 기록)

1. 나는 신발을 잘 사지 않는다. 그래서 신발을 사는 것에 능숙하지 않아 살 때마다 자주 어려움을 겪는다. 보기에 맘에 들어서 샀는데 막상 신어보면 발가락, 뒷꿈치, 발볼, 발등 어디 한두 군데는 꼭 불편한 곳이 눈에 띈다. 문제는 구매 후 직접 생활속에서 신어보기 전 까지는 매장에서 잠깐 신어본 것으로는 그런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2. 그런데 불편했던 신발도 한 번 두 번 신다보면 어느새 발이 신발에 적응을 한다. 신발도 내 발에 맞춰 늘어나고나 조금씩 헐게 된다. 물론 어떻게 해도 계속 물집이 생길때면 뒷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기도 하지만. 3. 어쩌면 학생 입장에서 새로운 방식의 과목은 새로운 기성품 신발과 같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참신함에 기대를 갖고 마주하지만 막상 진행되면 ..

의사학 과목을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 (2018년 11월 9일의 기록)

과목을 마무리하며 간단한 코멘트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우선 낯선 교수의 낯선 방식의 과목에 한 학기동안 성실히 참여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의사학 담당교수가 하기에는 적절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의사학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첫 시간에도 밝혔듯이 저 스스로 의사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이 목표는 실제로도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 내용에 대한 전문성이 교수자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분명 교수자의 필요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던 경험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경험입니다. 의사는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이 결국 누군가의 사고와 행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

수업의 점진적 개선(2020년 10월 24일의 기록)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매 학기 조금씩이나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의학교육을 '과학'적으로 하는 것에 신경쓰고 있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논문을 읽고, 나에게 적용가능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내 수업에 적용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실수하고, 실패와 실수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서,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나 혼자 고칠 수 없는 것은 시스템 개선을 모색한다. 그렇게 ver.1.00에서 ver.1.01로, ver.1.02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는 매 학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올해의 수업과 평가 방법은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선이지만, 앞으로 개선될 것을 고려하면 가..

녹화강의에서 몇 가지 시도들 (2021년 10월 22일의 기록)

이번 학기 녹화강의로 진행하게된 두 개 과목(학부, 대학원)에 대하여 각각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작은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 1. [의학과 1학년] 환자.의사.사회1 과목 (1-1) 어쩌다가 과목의 후반부 7주(기말고사 포함)의 수업을 나 혼자 진행하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녹화강의의 장점을 살리고자 미리 준비한 7회분(오리엔테이션 영상, 1주부터 6주까지의 강의영상)의 동영상을 후반부 시작과 함께 모두 한 번에 업로드하였다. 이와 함께 강의영상 시청 후 조별(한 조 당 여섯 명)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도 같이 설명하였다. 과제 제출기한은 학기 말로 설정하였다. 이제 남아있는 약 한 달 반 동안의 기간 동안, 각 조(학생들)는 각자의 속도와 스타일에 따라 정해진 분량의 과제만 수행하면 된다. 다만..

의예과 학생들의 '자체휴강'(2017년 9월 29일의 기록)

2. 오늘 조교선생님들에게 들은 의예과생들의 이야기가 머리속을 복잡하게 한다. 사연인즉슨, 일군의 학생들이 일주일정도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이번주라는 데 있다. 당연히 이번주는 학기중이며, 모든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자 했으나, 어디 그게 숨겨지나...여튼 여행을 마치기 전에 들통나고 말았다. 3. 대학생이 수업을 임의로 빠지는 것, 일명 '자체휴강'은 드문 일이 아니다. 놀고 싶은 마음에 고의적으로든, 늦잠을 자서 고의는 아니었든 대학생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자체휴강'을 한다. 그렇다면, 반나절, 한나절, 하루치 수업을 빠지는 것보다 이 사건이 더 '부적절하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떠오른 이 '부적절함'의 이유는 단숨에 파악..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2020년 9월 26일의 기록)

1.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얘는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느냐고 할 것이다. 2.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의사는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아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종이에서만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아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롭게도 심지어 그 환자를 진단도 하고 오더도 낸 적이 있다. 그 환자는 누구일까? 3.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사도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역시나 조건이 있다. 환자가 물리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너무 당연한가? 4. 어제 내 눈 앞에는 70명의 분신술을 한 환자가 있었다. 한 명은 배가 아파서 온 40대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가슴이 아파서 온 60대 남성이었고, ..

온라인 독서토론 진행 (2020년 9월 23일의 기록)

이번 학기 소규모 독서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는, 의예과 1학년 과목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학기 선택한 책은 . 이 과목은 작년에 참여해서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비록 온라인이지만 올해도 대동소이하게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Zoom 회의실을 열었다. 학생들에게 미리 회의실 링크를 주었고, 11시 시작시간에 맞추어 속속 접속하기 시작했다. 1. 처음엔 오프라인 토론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될거라 생각했다. Ground rule을 정하고, 사회자와 서기를 정하고, 주제를 정해서, 10명이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토론하면 될 것 같았다. 화면을 공유하거나 화이트보드 기능을 쓰면 잘 될 것 같았다. 2. 첫 시간에는, 새로 모인 그룹이니까,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했다. 그 다음 1주차 사회..

의과대학교육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것들(2020년 9월 19일의 기록)

1. 의과대학 교육은 "외부의" "객관적" 지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해부학을 비롯한 기초의학이나 질병을 중심으로 한 수업구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즉, 의과대학생은 교육과정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를 향한 칼날을 날카롭게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그 능력은 보통 비판, 분석, 추론 등의 사고방식으로 일컬어진다. 2.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교육은 불가피하게 "주관적"이거나 "내면적"인 세계를 향한 칼날을 다듬는 시간과 노력을 희생시켰다. 그 결과는 적어도 이 시기에 다음의 세 가지를 충분히 경험하지도, 다듬지도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첫째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객관적 칼날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개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때 이를 "비판적 (자기)성찰(critical sel..

강의평가의 의미(2020년 7월 17일의 기록)

1. “For every complex problem there is an answer that is clear, simple, and wrong.” H. L. Mencken 2. 학기가 끝나면 학생은 성적을 받아든다. 그리고 교수도 성적을 받아든다. 그 성적표의 이름은 "강의평가"이다. 학교는 강의평가를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한다. 강의평가 결과를 업적평가에도 반영하고, 강의평가 결과로 Best Teacher도 선정한다. 강의평가 결과가 현저히 저조하면 '보충수업'과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 강의를 하는 것이 제한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도구는 "그 도구가 사용 목적에 적합할 때에만" 좋다. 과도는 과일을 깎을 때 좋고, 망치는 못을 박을 때 좋다. 과도로 못을 박으려 한다거나 망치로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