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생들 중 일부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유급을 합니다. 어떤 학생은 학업 외적인 이유(건강, 가정, 심리 등)로 유급을 하지만, 일부 학생은 정말로 학업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이 고등학교때 공부로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학생들이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신기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학생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면, 적절한 학습 조언을 준다면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간간히, 그리고 꾸준히 학생들에게 학업 조언을 주면서 해줬던 이야기를 조금 모아보았습니다. 정리하다보니 한편으로는 괜한 아쉬움과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가진 근본적인 특성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핑계일 수도 있지만, 어떤 내용은 ‘생존(=진급)’만을 위한 일종의 요령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 이런 조언에 얼마나 유효한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조언은 명백한 한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학생들은 조언 없이도 잘 하고 있습니다. 학습법 개선을 위한 개입이 필요한 학생들은 의과대학생들 중에서도 소수입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작 이런 조언이 필요한 학생들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학습법에 대한 피드백을 잘 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병원으로 비유하면 '병은 있는데 병식이 없어 병원에 잘 오지 않는 환자'쯤 될까요? 오히려 역설적으로 잘 하고 있는 학생들이 이런 것 까지 궁금해합니다.

 

또 다른 한계는 조언은 조언일 뿐, 결국 학생 본인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일회성 조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 같지만, 이 한계점이 갖는 함의는 ‘그렇기에 지도교수나 학년담임이나 상담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점입니다. 한 차례의 잔소리로 끝나지 않아야 하고, 몇 번을 꾸준히 만나면서 잘 해나가고 있는지 봐줘야 합니다. 다시 병원으로 비유하면 초진으로 끝나지 않고 재진, 재재진 등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조언 자체의 한계입니다. 온갖 기사와 SNS를 보면 세상이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하면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큰 틀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기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학습의 유형이나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이란 근본적인 틀을 개선하지 않은 채로, 어쨌거나 그 안에서 몇 년을 잘 버티게끔 학생들을 도와주는게 정말 잘 하는 것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이런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 한양의대 본1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양의대 학생들을 위한 15가지 학습조언”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2월에 짧은 강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축약해서 영상으로 업로드했습니다. 한양의대 뿐만 아니라 다른 의대, 좀 넓게는 다른 보건의료계 전공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학생들을 상담하시는 한 명의 교수님에게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양의대 학생들을 위한 15가지 학습조언>

1. ‘양’은 필요조건(but, not 충분조건) 

안타깝게도 의대 공부는 공부의 “양”이 담보가 안되면, 공부의 “질”을 아무리 높여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평소에도 일정량 이상의 꾸준한 시간 투자가 필요합니다.

2. 나에게 맞는 학습 장소 찾기

집에서 스스로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시면, 도서관과 같은 다른 장소를 찾아가세요. 당장은 시간 손실 같지만, 많은 경우 득실을 따지면 결국은 (+)입니다.

3. 너무 많은 정독은 공부가 아니었음을…

강의록을 한 번 정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강의록/강의영상을 여러 번(예: 세 번 이상) 정독/시청하는 것 비효율적인 학습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해당합니다. 

4. 중요도(≃ 출제 가능성) 판별하기

기출문제, 수업 중 강조, 학습목표를 중심으로, 각 슬라이드별로 이 내용이 얼마나 반복해서 나오는지를 체크합니다. 이는 내용의 중요도, 달리 말하면 출제 가능성을 가늠하는 작업입니다. 기출문제는 적어도 최근 3개년도까지는 체크해보시기를 권합니다. 

5. 기출문제를 학습자료로 사용하기

한 개의 문제에 옳고 그름을 판별해야 하는 다섯 개의 보기가 있다면,다섯 개 보기가 각각 강의록 어디에 해당되는지 확인합니다. 한 문제에서 다섯 배의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6. 암기해야 할 것을 추리기(우선순위!)

각 수업에 대해서 “꼭 외워야 할 것”을 적어도 3~4가지씩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단, ‘정리’에만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7. 출제가능성과 중요도가 높은 것부터 암기하기

정리한 것들 중 출제가능성이 높은 것들을 먼저 암기하세요. ‘출제가능성이 높은 것’을 먼저 암기한 후에야 비로소 덜 중요한 것을 외울 “자격”이 생긴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8. 짧고 구체적인 시간계획 세우기

시간계획은 실현가능하게, 짧게, 구체적으로 세우세요. ‘오늘 밤까지 월요일 수업을 복습하겠다’ (X)  ‘30분 뒤까지 AAA강의에서 A1, A2, A3를 암기하겠다’(O)

9. 계획대로 하고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기

계획을 세웠으면, ‘실제로 내가 그 계획대로 했는지’를 반복적으로, 의식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앞의 예시처럼 ‘30분 뒤까지 AAA강의에서 A1, A2, A3를 암기하겠다’라고 계획했다면, 30분 뒤에 A1, A2, A3를 외웠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봅니다.

10. 일찍부터 암기하기

본과에서 “나중에 몰아서 외워야지”라고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하루에 몇 개씩이라도 좋고, 했다가 잊어도 괜찮으니, 일찍부터 암기를 시작하세요. 절대로 외울 것을 나중으로 미루지 마세요! 

11. 일단 외우기

합리적인 이유와 무관하게 우선 외우는게 더 중요합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생리적/의학적으로 합당한 설명을 이해해야겠지만, 초기에는 그조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못 외운 것보다 뭐라도 외워둔 상태가 훨씬 낫습니다.

12. 다양한 사진으로 연습하기

구글 이미지에서 “구조물+cadaver” 또는 “구조물+histology”와 같이 검색하면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의학 영상은 radiopedia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록 이미지만 보면 지나치게 익숙해지기 때문에(익숙함의 함정), 다양한 각도/조합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13. ‘익숙한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요약/정리한 자료는 쉽게 자신에게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절대로 ‘익숙함의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암기할 내용을 자료가 없이도 혼자 읊어볼 수 있는지, 써볼 수 있는지 확실하게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14. 친구에게 물어보기

친구/조원에게 최대한 많이 물어보세요. 이것은 여러분 뿐만 아니라, 알려준 친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가장 기억에 잘 남고, 역설적으로 가장 많이 배웁니다. 따라서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5.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본과 생활 자체를 친구들과 함께 해나가길 바랍니다. 혼자서만 감당하기에는 의대 공부는 너무나도 길고 고됩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세요. 필기 공유 뿐만 아니라, 기출된 핵심 내용 정리 등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한결 수월할 것입니다.

1. 의예과 신입생은 어떤 커리어를 그리고 있을까?

 

2021년부터 이 과목 첫 수업에 '우리들'이라는 제목의 설문을 하고 있다. 일단은 내가 궁금한 것도 있지만, 못지 않게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이 집단(의예과 1학년 신입생)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싶어서이다. 매년 일부 문항을 바꾸거나 추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올해는 "지금 가장 끌리는 진로는 다음 중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넣어보았다. 

▷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는 의사(예: 대학병원 교수) : 50%

▷ 개원가에서 진료하는 의사(예: 개원의, 봉직의): 33%

▷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의사(예: 기초의학자): 8.5%

▷ 기타 진로(스타트업, 제약회사, 의학전문기자 등): 8.5%

 

교육으로 사람을 바꿔놓겠다는 생각은 과할지 몰라도, 입학시에 가지고 들어왔던 마음을 유지시켜주는 것 정도는 교육(과정)이 해야하지/할 수 있지 않을까? 

 

2. ChatGPT

학생들에게 ChatGPT으로 대변되는 생성형AI 활용 관련해서 아래와 같이 안내했다. Ethan Mollick이라는 Wharton Schoo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내용이 합리적이고 동의가 되어서, 그 내용을 상당부분 번역해서 사용했다. 

 

■ 저는 여러분들이 이 수업에서 AI(ChatGPT를 포함한 각종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하리라 생각합니다. 꼭 쉬운 길을 택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조별과제 중에 실제로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 AI 사용을 금지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다, 이 수업을 통해 AI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모두가 함께 배워나가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다만, 다음의 사항을 유의하여 주십시오.

☞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은 프롬프트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프롬프트가 필요하고, 이는 절대 쉽거나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 AI가 생성하는 것(특히 글)을 그냥 믿지 마십시오. AI가 만들어내는 모든 팩트와 수치를 의심하고, 별도 출처에서 확인하십시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그림과 동영상 포함) 사용에 따른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있습니다. 

☞ AI는 도구일 뿐이지만, AI를 사용했음을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모든 과제물에 어떤 AI를 사용했으며, 어떤 프롬프트를 사용했는지 명시하십시오. AI사용에 대해 밝히지 않는 것은 학술적으로 부정직한 행위입니다.

☞ AI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십시오. AI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과연 이번학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또 한번 기대와 걱정이 섞인 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굿 럭!

 

 

이번 학기 한결 워크숍도 무사히 마무리. 2020년 여름부터 매 학기 해왔으니 어느덧 여섯 번째.

 

"여러분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어달리기의 주자로서 여러분들이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바톤은 교육과정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여러분들이 지난 학기 들고 뛰었던, 앞 주자에게 넘겨받은 바톤은 선배들의 의견이 반영된 바톤입니다. 진급한 여러분은 그 무거운 바톤을 다시 들고 뛸 일이 없겠지만, 이어서 뛸 후배들이 조금은 더 수월하고, 더 빠르고,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예2부터 본4까지, 방금 레이스를 마친 주자와 이제 이어받아 달릴 주자, 그리고 일년 뒤의 예비 주자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느끼며 즐겁게 진행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파트1

스타트업에 관한 영상이나 글을 읽으면서 Pain point 라는 표현을 접하게 되었다. 스타트업들은 시장과 사용자의 pain point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개발한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어느 시점에서부터 전국 의대로 퍼져나간 e-portfolio도 임상실습에서 더 나은 교육이 이뤄지는데 장애요인이 되는 어떤 pain point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개발 초에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정의되었던 "의과대학 임상실습 교육의 pain point"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나름의 의견은 있지만, 섣불리 여기에 대해 답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입장과 관점에 따라 무수히 많고, 무수히 다양할 것이다. 결국 궁금한건 "포트폴리오 시스템이 어떤 pain point를 해결하였는지"이기 때문이다. '그런거 없을거다'라는 시니컬한 관점에서 궁금해하는게 아니라, 다소 후발주자로 도입하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알고싶다. 어떤 pain point가 해결되었는지. 잘 된 부분만 따라하기도 벅차다. 아직 나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어느 대학에서는 적어도 몇 개의 주된 pain point는 해결해주지 않을까라는 희망섞인 기대를 가지고 싶다. 

 

설마 그저 또 하나의 Pain point만 더해진건 아니었을 것 아닌가...

파트2
이왕 투덜대기 시작한거. 그럼 너는 무슨 아이디어가 있냐, 임상실습 교육에 뭐가 필요할거 같냐고 물으면, 일단 필요하다고 느끼는건 "임상실습교육용 speech-to-text(작업이 이뤄지고 나서 자동으로 서버에 해당 교수-학생을 식별하여 업로드 되는)" 솔루션이다.

 

우리나라의 그 바쁜 임상교수님들에게 "학생이 제출한 과제를 살펴보시고, 체크리스트 따라 점수를 매기시고, 기록으로 남기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외래에서든 병동에서든 수술방에서든, 하다못해 복도에서든, 단 한 마디라도, 30초라도도 좋으니, 학생에게 잘한 점, 부족한 점, 개선해야 할 점 같은거 몇 개라도 이야기해주세요. 이 프로그램만 켜두면 음성 인식해서, 기록은 자동 문서로 변환되어, 해당 교수-학생 사이의 기록으로 저장될 것이니, 문서작업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한다면 교수도 부담이 (조금은) 덜하고 학생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당연히 아닐 수도 있다). 

 

이후에 교수님이 남겨준 피드백 가지고 돌아가 공부하고 환자 만나는 것은 학생의 몫이다. 모르면 교수님 찾아가서 기회봐서 질문하는 것도 학생의 몫이다 (물론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를 만드는건 교수의 몫이다).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한국어 음성인식 기술도 불완전하니까...

 

 

작년 말, 한 의예과 1학년 학생에게 F를 주었다. 당황한 학생은 나와 다른 교수님들께 성적을 문의하고, 어떻게 F를 면할 방법이 없는지 제법 여러 차례 연락해왔다. 의예과 1학년의 F가 흔하지 않기에, 의예과장님, 학생의 지도교수님, 학생을 안타깝게 여긴 다른 수업참여교수님 등등 여러 분으로부터의 연락도 받았다. (물론 그대로 F가 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학생은 "특시"라는 한양대에 있는 시스템을 통해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특시는 평균평점이 2.0 이상이면서, 한 과목에서만 F인 경우에 부여되는 재시 기회이다. 학생에게 특시 과제로 이번 1학년을 돌아보는 글을 써오라고 하고, 이 내용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 상담을 했다. 

 

상담 말미에 학생은 "이렇게 시간을 많이 뺏고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죄송하다고 말하기에 너무 이른 때인 것 같아요. 성적이의신청이나 문의에 대한 답변은 대표교강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OO학생에게 F를 부여한 결과로 OO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교수님들과 여러 통의 이메일과 전화, 문자를 주고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저는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거에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그렇게 죄송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정말 죄송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그건 아마 내년 이맘때일 겁니다. 제가 드린 과제를 하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남은 의예과 1년에 대한 계획과 다짐을 세웠음에도, 1년이 지나고 보니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때 저에게 죄송해해도 돼요. 그 전까지는 전혀, 괜찮습니다.

 

제 전공의 특성상, 아무리 사람이 타고난게 있다고 해도, 저는 학습을 통한 변화와 개선, 발전과 향상의 가능성을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F를 부여한 뒤의 일련의 과정과 오늘의 상담이 저에게는 단순히 '학생 한 명에게 F를 주느냐 마느냐의 판단과정'이 아니라, OO학생과 거쳐가는 "교육적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모든 시간에도 불구하고 1년 뒤에 OO학생이 지금과 달라진게 없다면, 그게 저에게는 가장 아쉬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죄송하다는 말은 그때까지 미뤄두셔도 됩니다. 남은 의예과 1년을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

1.

어제 의예과 성적검토회의가 있었다. 저조한 출석이나 좋지 못한 수업 태도, 부정 출결에 부정행위까지 태도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이에 더하여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성취도 저하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무엇보다 최근 추이를 비교한 일부 과목에 따르면 오히려 작년, 제작년보다도 성적이 낮아졌다. 

 

2.

의예과라는 본질적 특성이나 교육과정이 크게 변한게 없는데 성적이 이렇다는 것은 몇 가지 다른 원인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코로나를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탓일까? 억눌렸던 기간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전공의 선발에 영향이 없다는 사실을 좀 더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분위기가 강해졌을까? 비가시적인 장기간의 인내와 성실보다 가시적인 단기적인 이득과 보상이 중요시되어가는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일까?

 

3.

아무튼, 시험 성적 저하에 대한 한 교수님의 해석이 흥미로웠다. 학생들이 "자료를 해석하고 추론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비슷한데, "지식을 암기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에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상당한 암기가 필요한 '의학용어학' 과목에서 전례없는 낮은 성적이 나온 상황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4.

구글로 대표되는 검색시스템에 우리는 "정보의 기억"을 외주할 수 있었고 암기의 필요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암기는 필요했다. 왜냐면 정보라는 구슬이 있어도 "정보의 활용"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직접 선택하고 배치하고 구성하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떠오르는 ChatGPT를 써보면, 이제 그 작업조차 웬만한 수준까지는 인공지능이 외주받을 수 있어보인다. 이는 학생에게 내주는 보고서 과제 중 어떤 것은 학생이 "정보의 암기"는 커녕 "정보의 선택/활용/구성"조차 전혀 하지 않고도 그럴듯하게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5.

조금 혼란스럽다. 이 상황에서 (의예과) 학생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기대하거나 요구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학생은 무엇을 어디까지 굳이 직접 하려고 할까? 무엇을 어디까지 요구할지 정했다고 치자. 그것을 잘 했다는건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다음학기 수업과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번 학기 초에 한 의예과 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친구들과 함께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학습동아리 프로그램에 신청하려고 하는데, 지도교수를 맡아줄 수 있으신지'였다. 사실 '학습동아리'라는 프로그램이 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뭐가 되었든간에 "예과생"들이 "학교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 기특해서 기꺼이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엊그제 한 학기가 거의 마무리되어갈 즈음, 이 학생들이 프로그램에서 선정하는 "우수동아리"에 포함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교수학습센터에 문의해서 알아보니, '학생들이 굉장히 열심히했다'며, 총 30개 참가팀(학습동아리) 중에서 5개 동아리를 선정해서 우수동아리로 시상한다고 했다.

 

사실 거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거라 숟가락만 얹는 것 같은 느낌도 없지않아 있지만, 1학기 담당했던 "좋은의사되기" 과목을 통해서 peer-teaching의 효과를 깨닫고, 직접 실제로 활용해보고자 학습동아리를 하게 되었다는 학생의 말에 큰 보람을 느낀다. 참 고맙네.

 

<어떤 의사>
1. 어떤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매달 X라는 질병을 가진 환자 100명을 본다. 그런데 이 의사의 고용계약에는 진료 성과에 대한 특이한 조건이 하나 붙어있다. 바로 "모든 100명의 환자가 다 나으면 안 된다"이다. 

 

심지어는 구체적으로 몇 명만 낫게 해야하는지의 비율도 정해져 있다. 다 잘 나은 환자는 반드시 100명중에 40명 이내여야 하고, 30명은 적당히 나아야 하며, 30명은 좀 계속 아파야 한다. 오히려 몇 명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건 (적어도 이 의사에게는) 괜찮다. 

 

그래서 이 의사는 의도적으로 30명쯤 아픈 환자가 유지되도록 한다. 또한 다 나은 사람이 40명이 넘지 않도록 매우 신경을 쓴다. 40명이 넘으면 가끔은 검사 수치를 조금 손대기도 한다. 당연히 나쁜쪽으로. 만약 최선의 진료를 하다가 자칫 100명이 다 낫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교수>

2. 여기서 의사를 교수로, X라는 질병은 X라는 과목으로, 환자는 학생으로, 다 나은 것을 A학점으로, 적당히 나은 것을 B학점으로, 계속 아픈 상태를 C학점, 검사 수치를 원점수(성적)로 바꾸면, 상대평가에서 학점을 부여해야 하는 교수가 처한 입장이 된다. 

 

어제 본1 수업에서 한 시간 동안 자율적으로 오픈북 과제를 하는데(심지어 교수에게 답안을 작성하여 이게 맞게 한거냐고 물어봐도 됨), 그 시간동안 "질문하지(즉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음"에 내심 안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이 이상한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주 의예과 1학년 수업시간에 "사회재 적응 평정척도"라는 일종의 스트레스 척도에 대해서 언급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 표에 있는 대부분의 항목은 의예과 학생으로서는 공감도 안 되고, 도저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학생들로부터 일단 의예과 학생이 겪을 만한 항목을 수합하고, 즉석에서 그 항목으로 설문을 만들어 그에 대한 응답을 모았다. 그렇게 조사한 의예과 학생의 스트레스 요인과 각 요인의 스트레스 정도에 관한 결과를 수업 중에 공유해보았다.

 

학생들이 꼽은 항목에는 "1교시 등교의 피곤함"이라든가 "너무 많은 일정" 같이 꼰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것도 많았지만 어떤 것은 살짝 인상적이었다. 특히 "무의미한 하루" "삶의 방향성" "가치관 확립" "목표의 부재"와 같은 것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언급했다는 것과, 동시에 이것을 "유의미한 스트레스"로 꼽은 학생이 50%라는 숫자가 그랬다.  

 

항목도 항목이지만, 왠지 50%나 이런 고민을 갖고 있다는건 꽤나 높은 비율 같았는데, 어쩌면 이건 의예과 수업 분위기에서는 이런 고민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괴리는 어디서 오는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수업이 문제였나..)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의예과 학생에 대해서 "동기부여가 되어있지 않다"거나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이건 의예과 학생들의 고민과 진지함에 대한 부당한 과소평가일지도 모른다. 하긴, 그러고 보니 어떤 학생들은 분명히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주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렇지 않은(자거나 게임하는) 학생에 신경쓰느라 정작 열심히 할 준비가 된 학생에게 신경쓰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설문으로 편견은 조금 내려놓게 되었고, 학생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학생들은 이런 고민을 실제로는 어떻게 다루고 있었을까를 알아보는 것은 아직 남은 과제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분위기는 아닐까, 진지하게 털어놓거나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었을까. 만약 기회를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와 같은 고민도 남는다.

 

2022년 이종욱펠로우십 보건인력교육전문가과정

 

영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어로 수업을 하거나 듣는건 실로 괴로운 일이다. 이럴 때는 적절한 시점에, 편하게 모국어로 진행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게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우는 사람에게도 좋다.

 

한쪽은 라오어 한쪽은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나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지만, 모두가 참여하고 있음이 확실한 이런 순간에야말로 실제로 배움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다.

 

1. 출석에 관한 교수(또는 대학)와 학생의 갈등은 마치 군비경쟁을 보는 것 같다. 한 쪽에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 다른 쪽에서는 그 무기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양쪽이 모두 소모되고, 잔머리와 꼼수와 편법과 비윤리도 등장한다. 

 

2. 그런데 사실 이건 양측(물론, 정확하게는 양 측의 "일부"교수와 "일부"학생)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애먼 출석을 가지고 벌이는 싸움일 뿐이다. 즉, 배움이 있고 놓치기 아까운 수업을 만들어야 하는 교수의 책임과, 자신의 잘못(=결석)에 따른 결과를 기꺼이 감당해야 할 학생의 책임을 말한다.

 

3. 을지대에 있는 동안 나는 출석을 널널하게 하기보다는 빠듯하게 하는 편이었는데, 2의 이유로 이는 나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모든 학생에게 출석을 강요(?)한 이상, 역설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일단 출석만 하면 무언가는 배워가고 얻어갈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할 의무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출석체크 강화'이지만, 사실은 '출석은 되게 빡빡한데, 정작 수업은 별로다'고 평가받을 위험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안는 것이다. 

 

4. 다른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로 출석에 따른 처벌(=학생의 책임)만 강화하면 따라올 결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몸만 출석한 상태로 마음은 딴 곳에, 머리는 딴 과목에, 손은 핸드폰에 있는 학생을 감수하거나(이미 "출석"해 있으니 뭐라 할 명분이 없다), 다른 하나는 "교수님들께서도 (양질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다하시지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5. 사실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출석은 "물리적으로 몸이 그 장소에 있으면 되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떤 과목에서나 기준이 명확하고, 무엇보다 상한선이 존재하는 평가이다. 그런데 양질의 교육은 학생마다 다르고, 과목마다 다르고, 학생과 과목이 같아도 해마다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그 상한선도 불분명하다. 얼마나 잘 해야 양질의 교육인건데?

 

출석을 강화하는 것은, 어쩌면 학생보다 교수가 훨씬 큰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1. 나는 신발을 잘 사지 않는다. 그래서 신발을 사는 것에 능숙하지 않아 살 때마다 자주 어려움을 겪는다. 보기에 맘에 들어서 샀는데 막상 신어보면 발가락, 뒷꿈치, 발볼, 발등 어디 한두 군데는 꼭 불편한 곳이 눈에 띈다. 문제는 구매 후 직접 생활속에서 신어보기 전 까지는 매장에서 잠깐 신어본 것으로는 그런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2. 그런데 불편했던 신발도 한 번 두 번 신다보면 어느새 발이 신발에 적응을 한다. 신발도 내 발에 맞춰 늘어나고나 조금씩 헐게 된다. 물론 어떻게 해도 계속 물집이 생길때면 뒷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기도 하지만.

 

3. 어쩌면 학생 입장에서 새로운 방식의 과목은 새로운 기성품 신발과 같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참신함에 기대를 갖고 마주하지만 막상 진행되면 귀찮은 것도 많다. 결국 과목(신발)과 학생(발)은 서로 불편하다. 물론, 기성품 신발이 그렇듯, 어떤 학생에게는 처음부터 잘 맞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학생에게는 끝까지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과목을 설계한 교수로서 나는 그 접촉과 마찰, 적당히 늘어나서 편안해진 부분과 여전히 뻣뻣해서 발을 아프게 하는 부분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구매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끔은 내가 직접 신어보며 A/S를 해줘야 한다.

 

4. 물론 삼선슬리퍼(e.g. 강의)처럼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익숙하고 편안한 신발도 있다. 문제는 삼선 슬리퍼만 신고 살 수는 없단 점이다. 구두도, 러닝화도, 로퍼도 필요하다. 사실 삼선슬리퍼도 비싼게 있고 싼게 있고, 문구점에서 산 것보다 오리지널 아XX스 삼선슬리퍼가 더 튼튼하고 편하다. 

 

5. 비유를 이어가자면, 신발도 수명을 다 해서 버릴 때가 있다. 또는 유행이 너무 지나서 버리기도 한다. 물론 오래 신은 신발일수록 익숙하고 내 발에 잘 맞는다. 하지만 오래된 신발은 낡아서든 혹은 낡지 않았어도, 내가 변하고, 유행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신발장 속 자신의 자리를 새 신발에게 내어주게 된다. 

 

6. 자,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또 어떤 신발을 신어볼까?

과목을 마무리하며 간단한 코멘트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우선 낯선 교수의 낯선 방식의 과목에 한 학기동안 성실히 참여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의사학 담당교수가 하기에는 적절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의사학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첫 시간에도 밝혔듯이 저 스스로 의사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이 목표는 실제로도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 내용에 대한 전문성이 교수자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분명 교수자의 필요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던 경험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경험입니다. 의사는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이 결국 누군가의 사고와 행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어떤 학생들은 이미 후배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쳐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여러분들이 치를 의사국가시험의 실기시험에는 채점기준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교육을 수행했는지를 평가하게 되어있습니다. 또 몇 년 뒤  레지턴트 과정을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학생 교육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번 기회가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가르쳐보고, 스스로의 가르치는 방식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하나는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험입니다. ‘피드백’이란 단어는 너무나도 흔하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 과목에서도 ‘피드백’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동료평가를 읽어가며 좋은 피드백과 좋지 않은 피드백을 구분해봤던 것이라든가, 제가 여러분들에게 받은 의견에 따라 책상에 놓인 팻말을 바꾸고, 평가 방식을 바꾸고, 평가 일정을 조정하고, 그룹인터뷰을 제안한 모든 행동들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저부터 실천해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과목에서 얻은 의사학적 지식이 오래 가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몇 명이라도 의사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며, 그것이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거나 의학교육학에 관심이나 궁금함이 생긴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습니다. 그럼 남은 학기 잘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매 학기 조금씩이나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의학교육을 '과학'적으로 하는 것에 신경쓰고 있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논문을 읽고, 나에게 적용가능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내 수업에 적용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실수하고, 실패와 실수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서,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나 혼자 고칠 수 없는 것은 시스템 개선을 모색한다. 그렇게 ver.1.00에서 ver.1.01로, ver.1.02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는 매 학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올해의 수업과 평가 방법은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선이지만, 앞으로 개선될 것을 고려하면 가장 덜 개선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베타버전의 물건을 파는 것 같은 기분을 늘 가지게 된다. 이거 돈(=등록금) 받고 팔아도 되는 물건일까? 완성품이라는게 있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덜 미안해지려나.

 

그나마 교육의 좋은(?) 점은 나의 결정에 생사가 오가거나, 어떤 판단에 어마어마한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학교육은 대체로 돈이 안 된다🤣). 반면, 교육의 어려운 점은 "실험 연구"가 어렵고, 인과관계 추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아무리 내가 수업을 개선해봐야, 올 해 가르친 학생들에게 개선된 버전의 수업을 다시 하고, 그 방법이 더 나은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There's no second chance.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재현"시도"불가능성]이 나에게는 교육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이지만, 공유한 것처럼 그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오는 실패, 부정적 피드백,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번 학기 녹화강의로 진행하게된 두 개 과목(학부, 대학원)에 대하여 각각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작은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 

1. [의학과 1학년] 환자.의사.사회1 과목

 

(1-1) 어쩌다가 과목의 후반부 7주(기말고사 포함)의 수업을 나 혼자 진행하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녹화강의의 장점을 살리고자 미리 준비한 7회분(오리엔테이션 영상, 1주부터 6주까지의 강의영상)의 동영상을 후반부 시작과 함께 모두 한 번에 업로드하였다. 이와 함께 강의영상 시청 후 조별(한 조 당 여섯 명)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도 같이 설명하였다. 과제 제출기한은 학기 말로 설정하였다.  

 

이제 남아있는 약 한 달 반 동안의 기간 동안, 각 조(학생들)는 각자의 속도와 스타일에 따라 정해진 분량의 과제만 수행하면 된다. 다만 이렇게 하면, 너무 과제만 시켜놓고 방치(?)하는 것 같아서, '실시간' 또는 '상호작용' 요소를 넣고자, 각 조별로 1회(20분)에 한하여 조별활동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면담/미팅의 기회가 있음을 알렸다.  

 

역량바탕의학교육의 취지에 맞게, 기존의 Time-Fixed, Outcome-Variable 형태의 교육을, Time-Variable, Outcome-Fixed 형태로 바꾸고자 한 시도인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1-2) 서울특별시북부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의 도움을 받아 환자.의사.사회1에 장애인 건강권과 관련한 2회의 외부연자 특강을 포함시켰다. 사실 외부연자 특강을 포함시키는 것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지만, 적어도 이 환자.의사.사회1 과목에서 시도된 적은 없었으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본과 1학년 2학기의 빡빡한 일정 한 가운데 '외부연자 특강'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어떻게 유도하느냐였다. 학생들에게 듣고자 하는 주제와 희망 일시를 사전조사해서, 가급적 '주제'와 '일시' 모두 학생들의 선택을 고려해서 결정했다. 평가는 출석으로만. 학생들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2. [대학원] 의학교육학개론 과목
온라인 수업에 관한 본교 방침은 '실시간 화상강의' 였으나, 의학과 대학원생이 대부분 전공의 혹은 전임의라는 특수성을 인정받아 녹화강의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목의 경우 매주 One-minute paper (①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② 이번 수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③ 지난주 또는 이번주 수업에서 다뤄진 내용 개념 이론 등을 하나 선택하여, 자신이 경험한 교육과 관련한 실제 상황 에서 어떻게 적용 하였는지 간단히 적어 주십시오)를 매주 제출받고, 이 중 "② 이번 수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은 무엇인가요?"에서 나온 질문들은 별도 구글시트에 대답하여 공유하고 있다. 
우선 아직까진 나는 매주 열심히 질문에 답을 달아 올리고 있는데, 수강생분들은 어려웠다고 적어서 내셨던 내용에 대해서 내가 달아놓은 답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 

 

이 과목 평가는, 오리엔테이션 때 별도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없이 매 주 제출받는 One-minute paper만 가지고 성적을 주겠다고 공지했다. One-minute paper의 특성상, 긴 보고서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제출만 하면 웬만하면 만점을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공지하면서도 "모든 수강생이 모두 다 잘 내서 전부 A+을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는데...
.
.
.
.
.
.
웬걸, 정반대로 현재 몇 주 째 단 한번도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수강생이 있어서 모두 A+을 주기는 커녕, 그 수강생에게는 "대학원 과목인데 F를 줘도 되나"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2. 
오늘 조교선생님들에게 들은 의예과생들의 이야기가 머리속을 복잡하게 한다. 사연인즉슨, 일군의 학생들이 일주일정도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이번주라는 데 있다. 당연히 이번주는 학기중이며, 모든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자 했으나, 어디 그게 숨겨지나...여튼 여행을 마치기 전에 들통나고 말았다.

 

3. 
대학생이 수업을 임의로 빠지는 것, 일명 '자체휴강'은 드문 일이 아니다. 놀고 싶은 마음에 고의적으로든, 늦잠을 자서 고의는 아니었든 대학생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자체휴강'을 한다. 그렇다면, 반나절, 한나절, 하루치 수업을 빠지는 것보다 이 사건이 더 '부적절하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떠오른 이 '부적절함'의 이유는 단숨에 파악되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을 결석을 하든 그건 학생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알고 갔고(세번 결석시 F), 숨겼으나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고, 자체휴강은 빈번한 일이며, 해외여행이 무슨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일도 아니다. 

 

4. 
조너던 하이트는 <바른 마음>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무언가의 옳고 그름' 또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기준으로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a. 배려(e.g.아이에게 해를 입히는 것), 
b. 공평성(e.g.누군가 손실을 입은 데에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
c. 충성심(e.g.외부인을 대상으로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것), 
d. 권위(e.g.아버지에게 결례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 
e. 고귀함(e.g.천박한 행동이나 혐오감 드는 행동을 하는 것)

 

이것을 근거로 할 때, 아마 나의 불편한 마음은 
b. 공평성(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댓가(?)로 부당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
d. 권위(교수님에게 결례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
....의 두 가지가 주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고.

 

5.
아직은 학생들을 직접 만날 기회나 여건이나 신분이 아니라서 내가 어떻게 개입할 여지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우선, 학기중에 일주일간 수업을 결석하고 일본여행을 다녀온 것 자체로 비난하고싶지는 않다. 사실 내가 나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지나치게 성실하게 다녔다는 것이기도 하다 (성실하다고 해서 성적이 좋았던건 또 아니고...)

 

하지만, 
 - 애초에 떳떳하게 떠난 여행이 아니라면,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개인적인 또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가고싶은데 함께 가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해보고,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 갑작스런 다수 학생의 결석으로 당황하셨을 교수님들에게 최소한의 죄송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숨겼다가 나중에 들키지 말고, 가기 전에 솔직하게,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가기 전엔 늦었으니, 적어도 다녀온 다음이라도.
- 이왕 간거 많은 것을 배우고 오면 좋겠다. 그리고 일본 여행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면 좋겠다. 
- 내년에 후배들이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개인적으로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조금 더 나은 문화를 물려줬으면 좋겠다. 

 

요약하자면,
이 경험을 중요한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얘는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느냐고 할 것이다.

 

2.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의사는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아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종이에서만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아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롭게도 심지어 그 환자를 진단도 하고 오더도 낸 적이 있다. 그 환자는 누구일까?

 

3.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사도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역시나 조건이 있다. 환자가 물리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너무 당연한가?

 

4.
어제 내 눈 앞에는 70명의 분신술을 한 환자가 있었다. 한 명은 배가 아파서 온 40대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가슴이 아파서 온 60대 남성이었고, 또 자꾸 보채서 온 8세 어린이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많아서 다 기억은 못하겠다. 비유가 과했나. 그렇다, 객관식 시험 이야기이다.

 

5. 
어제 나는 본과4학년 임상의학종합평가(aka 임종평) 감독을 하고 있었다. 40여명의 학생은 각자 외로운 70대1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이는 흡사 바둑에서 다면기를 연상케 했다. 한 명의 대가(여기서는 70명의 환자, 아니 70개의 문항)가 여러 하수를 상대로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싸움.

 

6.
다면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승패에 관한 부분이다. 학생들이 벌이는 대결은 대가와 도전자의 싸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도전자와 도전자 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여기서 승패는 "얼마나 잘 했느냐"보다는 얼마나 "덜 처참하게 패했는지"에 달려 있다. 어떤 학생은 거의 모든 70번의 전투에서 정답을 고르기도 하지만, 어떤 학생은 고작 10~20번만 승리를 가져간다. 

 

7.
이 광경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매우 묘해진다. 왜냐하면 지금 이 학생들은 나중에 현실에서 "절대 경험하지 않을 형태의 대결"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환자가 분신술을 할 수 없다면, 학생들은 절대 미래에 분신술을 한 환자를 진료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8.
객관식 시험이 무용지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고 AI고 하더라도 의사는 머리 속에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객관식 문제는 지식을 쌓고 확인하는데 분명 매우 유용하다. 의학교육에 객관식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한치의 의문이 없다.

 

9.
다만 내가 던지려는 의문은 이렇다.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서로 절대 대화하지 않고, 완전히 동일한 환자를, 동시에, 한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진료"하는 방법을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력을 들여서 연습하고 확인하는걸까?
도대체 왜? 

 

10.
객관식 문제을 하나 내보려 한다. 가장 옳은 답은 뭘까? 
문제) 왜 의과대학에서는 무수한 평가를, 심지어 의사가 되기 직전에 보는 평가까지 객관식 시험으로 하고 있을까?
(1) 그것이 공정한 방법이기 때문에
(2)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3) 우리 나라에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4) 현실적으로 그것이 현재의 최선이기 때문에
(5) 의사가 실제로 진료하는 방식이 그것이기 때문에
혹시 5번을 고르신 분이 있을까요?

 

11.
어제 의사국시에 대한 글도 그렇고, 지금 이 객관식 시험에 대한 것도 그렇다. 코로나와 각종 의료계 이슈가 터지는 지금이야말로 여태껏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Take-for-granted assumption)'에 의문을 던져보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다. 무조건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의심"만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런 의심이 없다면 문제도 없고, 문제가 없으니 시도도 없고, 시도가 없으니 변화도 없을 것이다. (아, 만약 변화가 있다면 외부(정부 등)의 강요에 의한 원하지 않은 변화일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포스트-코로나는 비포-코로나와 같을 것이다. 

이번 학기 소규모 독서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는, 의예과 1학년 과목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학기 선택한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 과목은 작년에 참여해서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비록 온라인이지만 올해도 대동소이하게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Zoom 회의실을 열었다. 학생들에게 미리 회의실 링크를 주었고, 11시 시작시간에 맞추어 속속 접속하기 시작했다. 

 

1. 
처음엔 오프라인 토론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될거라 생각했다. Ground rule을 정하고, 사회자와 서기를 정하고, 주제를 정해서, 10명이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토론하면 될 것 같았다. 화면을 공유하거나 화이트보드 기능을 쓰면 잘 될 것 같았다.  

 

2. 
첫 시간에는, 새로 모인 그룹이니까,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했다. 그 다음 1주차 사회자를 중심으로 Ground rule을 정하기 위한 토론을 하였다. 이어서 각자 책에서 인상깊었던 문장을 공유하고, 혹시라도 아직 읽지 않은 학생을 위해서 책의 주요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한 뒤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내 아무래도 뭔가 편안하지 않은 느낌.  

 

3. 
첫 주 수업이 끝나고 고민했다.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토론의 형식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내가 이 수업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어떻게 다른가? Zoom이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  

 

4.
나는 진심으로, 1학기를(그리고 지금까지도) 온전히 온라인으로만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서로 친해졌으면 했다. 토론에서 다룰 책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는 것도 좋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도 해보면 좋겠지만, 그래봐야 그게 얼마나 갈까. 무엇보다 지금 이 학생들에게 오래 남을 것은,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것은 서로의 이름을, 얼굴을, 목소리를 익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5. 
고정관념처럼 뿌리박힌 '수업에서 학생은 토론을 해야한다', '교수는 모든 토론상황을 지켜보고, 평가하겠다' 생각을 내려놓았다. 대신 '서로 친해지기'라는 목표를 새롭게 정했다. '친해지세요'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친해지기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 얼굴과 이름은 익히자고 했다.  

 

6. 
화면에 다른 친구들의 얼굴이 더 크게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편안한 대화를 위해서 11명을 더 작게 나누었다. 소회의실 기능으로 무작위로 3~4명씩 나누고 모이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3개의 소회의실로 나누어지니, 내가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학생은 3~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7~8명이 그 순간에 다른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잘 할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오히려 교수가 없기 때문에 더 편하게 대화했을 것이다.  

 

7. 
이 수업의 '공식적' 목표 -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고 - 는 작년만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두 번째 주를 끝내고 확실히 느껴진 분위기는 학생들이 이제는 서로를 조금 덜 어색해한다는 것이었다. 수업 말미에 '질문 있어요?'라고 물으니 한 학생이 '서로 친해지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다음 수업때는 한 세션 쯤은 같이 놀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 다른 학생들이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짓기에,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대신 방법만 미리 스스로 정해보라고. 다음 수업에서, 과연 우리는 무얼 하고 놀게 될까? 

1.
의과대학 교육은 "외부의" "객관적" 지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해부학을 비롯한 기초의학이나 질병을 중심으로 한 수업구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즉, 의과대학생은 교육과정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를 향한 칼날을 날카롭게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그 능력은 보통 비판, 분석, 추론 등의 사고방식으로 일컬어진다. 

 

2.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교육은 불가피하게 "주관적"이거나 "내면적"인 세계를 향한 칼날을 다듬는 시간과 노력을 희생시켰다. 그 결과는 적어도 이 시기에 다음의 세 가지를 충분히 경험하지도, 다듬지도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첫째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객관적 칼날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개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때 이를 "비판적 (자기)성찰(critical self-reflection)"이라 부른다.  
둘째는 집단 수준에서 작동하는 내면에 대한 객관적 칼날이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자기규제(self-regulation)"라 부를 수 있다.  
셋째는 타인의 주관적 내면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공감(empathy)"이라는 역량으로 불린다. 

 

3.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것들이 교육과정의 중심에, 적어도 중심은 아니더라도 큰 비중으로 다뤄지는 시기가 그나마 의예과인데, 이 시기의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관심이 낮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의 중요성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깨닫게 될텐데, 그 시기가 의과대학 교육이 모두 지나간, 의사가 된 이후라는 점이다.

 

1. 
“For every complex problem there is an answer that is clear, simple, and wrong.” H. L. Mencken

 

2.
학기가 끝나면 학생은 성적을 받아든다. 그리고 교수도 성적을 받아든다. 그 성적표의 이름은 "강의평가"이다. 학교는 강의평가를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한다. 강의평가 결과를 업적평가에도 반영하고, 강의평가 결과로 Best Teacher도 선정한다. 강의평가 결과가 현저히 저조하면 '보충수업'과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 강의를 하는 것이 제한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도구는 "그 도구가 사용 목적에 적합할 때에만" 좋다. 과도는 과일을 깎을 때 좋고, 망치는 못을 박을 때 좋다. 과도로 못을 박으려 한다거나 망치로 과일을 깎으려는 시도는... (후략)

 

3. 
그렇다면 '강의평가'는 어디에 좋은가? 그렇다, 무엇보다 '기분'에 좋다. 학생은 '기분'에 따라 강의평가가 좋(거나 나쁘)고, 교수는 강의평가 점수에 따라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 한 무작위대조군연구에 따르면, '쿠키'를 받은 학생군은 아무 간식도 받지 못한 학생보다 동일하게 배우고도 더 높은 강의평가 점수를 준다.

 

4.
그렇다면 '강의평가'는 어디에 안 좋은가? 관련하여 너무 많은 연구가 있지만, 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이러하다(Uttl et al., 2016).

"강의평가 점수와 학습 사이에는 유의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학생의 배움(learning)과 직업적 성공(career success)에 초점을 두는 학교라면, 교수자의 '교육 효과성(teaching effectiveness)'을 측정하는 척도로 강의평가를 아마도 버리고(abandon) 싶을 것이다."

#좋은의사되기 과목에서는 최종적으로 3명이 출석으로, 2명이 합계점수 50점 미만이 되어 총 5명 학생에 대해서 재시를 보았다. "#재시"라고 명명하긴 했지만, re-test가 아닌 "#재교육", 즉 remediation의 기능을 하길 바랐기 때문에 재시의 방식은 재시 대상자가 된 각각의 학생과 한 시간씩 "#성찰적_대화"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장점
□ 학생이 더 많이 배우게 된다. 

구두시험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많다. 아마 가까스로 Pass를 받은 학생보다 재시를 본 학생이 더 많이 배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1로 진행하므로 학생이 틀리게 이해하고 있거나 이해에 어려움을 겪은 부분을 내가 즉각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 

 

□ 내가 학생에 더 많이 배우게 된다.

성찰적 대화를 위해서 학생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해야 하고, 그 과정은 내가 학생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본적인 가치관, 의예과 과정에 대한 인식, 의예과 신입생으로서 겪었던 어려움 등을 깨닫게 된다. 아, 그리고 직접 이야기해보지 않았다면 바뀌지 않았을 (특정) 학생에 대한 나 자신의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된다. 

 

□ 과목 개선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앞의 두 가지 장점을 바탕으로 이번 학기에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음 학기에는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단점
□ 시간이 많이 든다.

한 사람당 한 시간씩 배정하려다보니 과목 종료 후 최종 성적 입력 전까지 모든 학생의 재시를(2차 재시까지) 보기에 시간이 빠듯하다. 5명이었기에 망정이지 이것보다 많았으면 정말 쉽지 않았을 뻔 했다. 

 

□ 결국 모두 Pass를 주게 되었다.

이걸 단점이라고 해야할지 망설여지긴 하는데, 여튼 이번 학기는 결과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pass를 주게 되었다. 그 결과 "이 교수님은 F 안주시니까 적당히만 해도 돼" 라는 잘못된 (암묵적) 메시지가 전해질 수도 있겠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1.
CBT시험감독을 하다보면 멍때리는 시간이 많다보니 온갖 상상을 하곤 한다. CBT시험감독이라는게 사실 말이 "시험감독"이지, 딱히 역할이랄게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학생들의 모니터는 중앙에서 모니터링되고 있다. 문항 순서와 보기는 섞여 나와서 인접한 사람과 문항순서와 답도 다르다. 보안필름 때문에 조금만 모니터 정면에서 비켜나면 애당초 아예 화면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이 상황에서 감독관의 존재의미란, 감독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마구마구 컨닝페이퍼를 본다거나, 대담하게 옆 사람과 정답을 주고받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정도. 

 

그러다보니 실제로는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감독관보다는 troubleshooter의 역할이 더 중요한 상황이 더 많다.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로그인이 안된다던가, 문제가 이상하다던가, 인터넷이 끊겼다던가) 학생이 손을 들면 찾아가서 문제상황을 확인하고, 적절하게 대처해주는 것이 그 역할이랄까. 

 

2.

수업은 이미 다 녹화되어 있다.

문제는 이미 다 문제은행에 있다.

시험은 최소한의 감독관으로 족하다.

 

이 상황에서 굳이 "수십시간의 블록강의(기간) 후 일시에 모여서 치르는 시험"이 필요할까? 

 

딱 하나 부족한게 있다면 상상력이 아닐까. 혹은 블록강의에서 등수로 성적(A~F)을 내야 한다는 관습에 너무 익숙해진건 아닐까.

 

3.
그냥 내년부터는 

N개 블록강의를 묶어서,

이미 녹화된 동영상 강의를 스스로 보고,

문제은행에서 1/N씩 무작위 추출된 문항으로,

자율적으로 시험을 보고(몇 번이든),

일정 기준점수를 넘기면 Pass 주면 안될까?

시험 한 번에 못 넘기면 두 번 보는거고, 반대로 일찍 Pass한 학생은 남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겠지. 

성적? 그건 그 남는 시간을 얼마나 잘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4.

물론 실제 구현하려면 훨씬 디테일하고 많은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복원(유출)될테니 새로운 문제가 어느 정도는 계속 보충되어야 할테고,

학생이 아무때나 시험볼 수 있을 수는 없을거고, 어느정도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봐야할 것이다.

Pass기준도 설정해야 할 거고, 일찍 Pass한 학생들에게 어떤 추가적 교육을 제공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수도 학생도 행정도 (적어도 초기엔) 어마어마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방향은 이 방향이 맞지 않을까?
말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Competency-based, (& Time-variable)한 교육을 지향한다면 말이다.

보건의료 전문직업성(Healthcare Professionalism)를 주제로 진행할 다음학기 수업 준비차 만들고 있는 강의영상입니다. 겨우 피피티에 음성만 입히고, 편집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입니다. 당연히 그럴듯한 썸네일 따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작 이런걸 가지고 YouTube에 업로드를 할지말지 무척 많이 망설였는데, (특히나 제 음성이 들어간 뭔가를 공유한다는게 굉장히*굉장히 어색하네요), 누군가한테는 이거라도 도움이 되려나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의과대학에서 이런 종류의 내용을 가르치는데 쓸만한 자료랄게 정말 없어서 저도 고생했던 경험이 있고, 사실 여전히 고생중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각 의과대학에서 유사한 과목을 운영하거나, 해야하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공유해보게 되었습니다. 짐작컨대, 마땅한 수업용 교재가 없는 것은 이 책에서 "Healthcare"라는 단어로 포괄하고 있는 다른 보건의료관련 학과(간호학과, 치의학과, 약학과, 물리치료학과 등)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원서는 "Healthcare Professionalism: Improving Practice through Reflections on Workplace Dilemmas"라는 책입니다. 보건의료계 학생을 위한 적당한 수업용 교재가 있을지 늘 고민하며 찾아보는데, 제 생각에는 현재로서는 이 정도면 나름대로 최선인 듯 합니다. 다만 아직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지 않아서, 그냥 직접 보면서 대략 번역하며 만든 자료다보니,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부실한 부분도 있을 듯 합니다. 게다가 혹시나 문제가 될까 싶어서, 직접 번역하지 않은 부분(주로 Figure나 Table 같은 것)은 모두 제외하다보니, 슬라이드와 슬라이드 사이에 뭔가 연결이 어색한 부분도 있을 것 같네요.  

 

결국 영상의 PPT에는 (일부 표현이나 용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어 원문과 표,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직접 구매 또는 대여하여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처음 네 챕터는 Healthcare Professionalism의 개괄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나머지 챕터는 아직 만드는 중입니다.
(말이 엄청 느려서 두배속으로 재생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1. Introduction
https://youtu.be/lG3MDgId8vI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2. What is Healthcare Professionalism? (Part 1)
https://youtu.be/ugUSSacWdR8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2. What is Healthcare Professionalism? (Part 2)
https://youtu.be/Z04rrrmP_8E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3. Teaching and Learning Healthcare Professionalism (Part 1)
https://youtu.be/0AIkYYMyRY4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3. Teaching and Learning Healthcare Professionalism (Part 2)
https://youtu.be/vg8JezcGPtc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4. Assessing Healthcare Professionalism (Part 1)
https://youtu.be/u7ikO7SYeLo

 

[보건의료계 학생들을 위한 전문직업성] Chapter 4. Assessing Healthcare Professionalism (Part 2)
https://youtu.be/ZY33ZFzKWXI

 

어제 만난 학생에게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

 

"지난 4월에 교수님께 조언을 듣기 전까지 시험본 과목과 그 이후에 본 과목들 사이에 평균평점 차이가 0.9나 나요."

 

평균평점의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원인에는 당연히 이 학생의 개인요인(학업전략, 학업시간) 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료요인(다른 동기들이 얼마나 잘/못 했는가), 교수요인(얼마나 성적을 후/박하게 주었는가), 환경요인(가정환경, 학습환경 등)이 작용한다.  

 

심지어 개인요인일지라도, 내가 준 조언의 기여는 잘 해야 1할, 나머지 9할은 조언을 수용하고 실행해낸 학생의 몫이라고 본다. 그저 운이 좋게도 이 학생이 "잔소리가 먹히는" 학생이었고, 그 중에서도 "내 잔소리"와 fit이 맞았을 뿐이다. 고백하건대, 똑같은 조언을 줬지만 성적이 전혀 움직이지 않거나, 심지어는 내려간 학생들도 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한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특정 학기가 진행되는 한 중간(1/2진행시점)에 들어간 개입이기에, 내가 옳은 조언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꽤나 괜찮은 근거가 되어준다. (다른 조건이 동등하다는 가정하에 - ceteris paribus) 전후 비교가 확실히 되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대학원 과목 '의학교육학개론' 과목에서 만든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습니다. 

 

해당 과목은 『ABC of Learning and Teaching in Medicine (3rd Edition)』이라는 책에서 1챕터부터 16챕터까지를 매주 하나씩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참고로 책 전체는 총 22챕터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의학(medicine)에서 교수(teaching)와 학습(learning)의 기초(ABC)를 다루는데, 책 자체가 꽤나 얇은 편이에서 의학교육에 관한 입문서로 적당한 편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나 챕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비슷한 구성의 다른 교재와 비교하면 구성/저자/서술방식 측면에서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교육이론, 강의하기, 소그룹(PBL/CBL/TBL..), 학습환경, 학습자료, 피드백, 시뮬레이션, 지필평가, 술기평가, 형성평가, 임상직무현장평가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영상을 업로드하게 된 이유를 조금 덧붙이면, 이왕 만들어진 동영상인데, 내 컴퓨터 안에서 용량만 차지하고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인 측면도 꽤(사실 매우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올려둬야 저도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때 찾아보기가 수월하기도 하니까요. 여기에 아주 작은 희망을 굳이 하나 더한다면, 저희 학교 교수님들을 포함해서, 의과대학(혹은 보건의료계 학과)에서 교육을 하시는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영상을 보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애초에 수업 목적으로 만들었던 영상이다보니, 제가 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조도 단조롭고, 슬라이드는 글씨(심지어 Only 영어) 투성입니다. 길이는 75분~90분 정도인데, 최소 1.5배속 혹은 2.0배속 정도로는 봐야 적당한 것 같습니다. 게으른 탓에 동영상 내 챕터 구분도 해놓지 않아서, 동영상 중간에 딱 원하는 내용을 찾아가는 것도 번거롭습니다. 최근에 이 책보다 조금 더 나아보이는 입문서를 찾긴 했는데(An Introduction to Medical Teaching The Foundations of Curriculum), 혹시나 이 책도 비슷하게 동영상으로 만든다면, 한 챕터를 여럿으로 나눠 각 동영상 길이라도 좀 짧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이렇게 불친절하고, 단점투성이인 영상입니다만, 제 생각에는 정작 찾아보면 이런 수준의 자료도 잘 없는 것이 사실인지라(....) 큰 용기를 내어 올린 내용을 공유해봅니다. 

 

=========

재생목록: ABC of Learning and Teaching in Medicine
https://youtube.com/playlist...

 

Ch 01. 더 나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
https://youtu.be/mbFT6YbYJB0

 

Ch 02. 의학교육에서의 이론
https://youtu.be/CHIuqANcqC0

 

Ch 03. 의학교육에서의 탐구중심학습(PBL, TBL, CBL, PjBL)
https://youtu.be/1RThS4-Isho

 

Ch 04. 의학교육에서 과목 설계
https://youtu.be/rCdSnBSTdBQ

 

Ch 05. 의학교육에서 교육 자료 만들기
https://youtu.be/fMZmU-_ZKPo

 

Ch 06.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학교육 학습환경 만들기
https://youtu.be/mX4YdTvHNA4

 

Ch 07. 의학교육에서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피드백
https://youtu.be/o3WpuNUliz0

 

Ch 08. 의학교육에서 소그룹 학습
https://youtu.be/2RhRu0hxN4g

 

Ch 09. 의학교육에서 강의(Lectures)와 강의하기(Lecturing)
https://youtu.be/sh4QEJref6Y

 

Ch 10. 의학교육/보건의료교육에서 시뮬레이션의 활용
https://youtu.be/fByc072txlU

 

Ch 11. 의학교육의 임상직무현장 학습(Workplace Learning)
https://youtu.be/HzVJLjI7N7w

 

Ch 12. 임상현장교육에서 학습자(학생/전공의) 지도(Supervision)
https://youtu.be/e_CqItSn7oI

 

Ch 13. 의학교육에서 형성평가(Formative Assessment)
https://youtu.be/NPLRGIkLoAw

 

Ch 14. 의학교육에서 지식(필기) 평가(Written Assessment)
https://youtu.be/-2srWzjFRDU

 

Ch 15. 의학교육의 술기(Skill‐based) 평가
https://youtu.be/bgmWb__d9jY

 

Ch 16. 의학교육의 직무현장 기반 평가(Work‐based Assessment)
https://youtu.be/fiNFUgcdW2g

 

이번 학기 진행한 #좋은의사되기 수업은 이번 수요일로 #종강 하였다. 혼자 진행하는 학 학기 수업을 어쨌거나 무사히 마무리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토닥토닥.

 

학생들은 성적 확인을 위해서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강의평가 를 해야한다. 내 수업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강의평가는 모든 수업에 대해서 공통 서식을 사용하기에 실제로 과목 개선에 제한적으로만 도움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의사되기 과목만을 위해 별도로 #평가설문 을 개발하였다. 마지막 수업은 거의 통째로 '과목 평가'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여 이 설문과 과목평가를 위한 조별활동(사진)을 했다. 여기서 나온 결과는 다음 두 가지에서 흥미로우면서 고민을 안겨준다.

 

(1)빡빡한 #출석규칙 을 완화해야 하는가?

과목의 여러 요소 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불만족한 요소는 단연 한 번 지각이 바로 F가 되는 출석규칙(2.53/6)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불만스럽게 출석하면" 듣게 되는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두 번째로 높았다(5.04/6). 그렇다면 나는 학생의 불만을 수용하여, 출석 규칙을 보다 관대하게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수업에 대한 높은 만족도에 근거해서 빡빡한 규칙을 유지해야 할까? 

 

#요구(needs)는 현재 상태와 이상적 상태의 gap을 말하고, 이는 학습자의, 소위 "민원"이라 할 수 있는, #바람(wants)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 다소 혼란스럽다(이래서 질적평가가 필요하다....) 

 

(2) #동료평가 는 어떻게 바꿔야 하나?

출석규칙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낮은 만족도 점수를 받은 요소는 동료평가이다(3.96/6). 그런데 성적을 분석해보니 동료평가 점수는 "#자기성찰_포트폴리오 점수"와 상관관계가 유의하지 않다고 나왔다. 즉, "동료평가" 와 "자기성찰 포트폴리오"는 서로 다른 종류의 역량을 측정(=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목의 목표가 성과(outcome)로서 "성찰 능력"만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동료평가는 없애도 무방하겠으나, 그것이 유일한 과목의 목표가 아니라면 동료평가를 없애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다른 평가요소는 그것(수업참여, process)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의 불만을 어떻게 반영해야 과목의 목표도 달성하면서 불만도 해소할 수 있을까?

 

여튼 이렇든 저렇든, 무엇보다 한 학기동안 초짜교수의 미숙한 수업을 따라와준 학생들에게 정말 고맙다. 마지막 시간에도 말했지만, 의사에게 환자가 최고의 텍스트이듯,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학습자가 최고의 텍스트임을 체험했고, 누구보다 이 수업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 중 하나가 나였던 것 같다. 참고로 수업의 여러 요소 중 가장 높은 만족도를 받은 항목이 교수자임은 안 비밀! (5.32/6)

 

 

공유한 글처럼 #출석 과 #결석 은 늘 핫한 주제이다. 학점이 향후 인턴, 레지던트 선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예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난 주 한 수업에서 다수의 의예과 학생이 동시다발적으로 결석한 사건이 있었고, 나는 이 critical incident를 모두를 위한 중요한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학기 담당하고 있는 #좋은의사되기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성찰 포트폴리오를 제출받고 있는데, 어떤 주제로 써야하는지는 전혀 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만큼은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학생들에게 '왜 출석하는가' 또는 '왜 결석하는가'를 주제로 작성해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주 수업에서 제출받은 결과를 공유해보기 위해 간단한 분석을 진행중인데, 참으로 결과가 놀랍다. '왜 출석하는가'에 대해서 37가지의 서로다른 이유가 나왔으며, '왜 결석하는가'에 대해서 38가지의 서로다른 이유가 나왔다. (물론 조금 더 상위 카테고리로 묶을 여지는 있다)

 

아마 이 리스트를 훑어보면 뻔한 이유라고 쉽게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나 혼자 학생의 출석/결석 이유를 써보면 각각 서른 개 이상 쓸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난 학생을 알고 있다고 얼마나 자만해왔던걸까. 과연 우리는 학생의 출석과 결석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해왔던걸까.

상담이 모두 끝나고 유급학생상담을 진행한 8명에게 간단한 피드백을 받았다. 8명 중 6명의 응답 결과. 가장 의외였던 것은 응답자 6명중 6명이 모두 선택한 마지막 그래프의 "유급상담 기록지에 기반한 상담 진행" 항목. 이게 왜 저정도로 긍정적이었던거지? 🤔 오히려 나는 "학습동기 및 전략 검사지 해석"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완전 틀렸다 ㅎㅎ

 

 

 

 

어제 오늘 의예과, 의학과 유급 학생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하면서 했(+었어야 했)던 질문을 정리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우수하지만, 성적이 저조한 학생은 저마다의 이유로 그러하다.”

 

<유급상담면담용 질문 list (생각나는대로 추가 업데이트 예정)>
■ Icebreaking 

1 학교까지는 어떻게 오셨어요? 오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2 보통 집에서 통학했었나요? 자취를 한다면 언제부터 했나요? 할 예정인가요?

3 요즘(휴학중)에는 어떻게 지내나요?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세요.

 

■ 유급에 대한 예상

4 유급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나요?

아니면 예상을 했지만 특별히 어떤 대처를 하지 않았나요?

5 지지난 학기 또는 그 이전의 학업성적은 어느 정도였나요? 하락하는 경향이 있었나요?

 

■ 직전학기 학업 전반

6 지난 학기 학업목표는 무엇이었나요?

7 지난 학기 동기부여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8 지난 학기 유급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9 지난 학기 하루의 생활(루틴)은 어떠했나요?

10 지난 학기 학습 패턴은 어땠나요? 하루에 몇 시간 정도나 공부하는 편이었나요?

11 지난 학기 특정 과목의 성적이 안 좋았나요, 전반적으로 나빴나요? 그 과목의 성적이 특히 안 좋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12 흥미가 있었거나 잘 했던 과목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왜 잘 했었던거 같나요?

13 지난 학기 출석은 잘 하는 편이었나요? 만약 결석이 많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유급 이후의 반응

14 유급에 대한 첫 느낌은 어땠나요? 이후에 유급을 받은 상황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나요? 

15 유급 이후에 학습에 대해서나 생활에 대해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떻게 변했나요?

16 유급에 대한 주변(특히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 다음학기 목표

17 다음 학기 목표는 무엇인가요?

18 왜 그러한 목표를 세웠나요?

19 그 목표를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0 다음 학기 복학하면 무엇이 가장 걱정되나요?

 

■ 동아리

21 동아리는 무엇을 하나요?

22 동아리는 어느 정도 로딩(부담)이 큰가요? 유급과 관련이 있나요?

 

■ 교우관계

23 주로 친하게 지내는 친구(종종 같이 밥을 먹거나 공부하는), 매우 가까운 친구(허물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는 몇 명인가요?

 

■ 기타

24 (의예과) 

의대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원래부터 의대를 오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나요?

고등학교(입시준비) 기간에는 어떻게 공부했나요?

25 (의학과) 

의예과 때는 어떻게 보냈나요?

기초의학 과목과 임상의학 과목에 차이가 있나요?

특별히 관심이 가는 전공이나 과목이 있나요?

1. 독서토론으로 운영되는 이 과목에서 학생들은 사전에 같이 논의해볼 질문을 제출한다. 문제는 그 질문들이 다소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이번 주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들이다.

 

2. 그 결과 토론은 계속 겉돌게 되고, 논의가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허공을 떠다니고, 말은 많이 하는데 뭐 하나 뚜렷해지는 것이 없다.

 

3. 이런 상황에서 내가 종종 사용하는 방법은, 개인의 구체적 경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성인학습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죽음"과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는지, 있다면 이 자리에서 공유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4. 그리고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죽음에 대한, 다분히 개인적이라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공유해주었다. 그것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모르고있었던,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자기 정체성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말하는 학생과 듣는 학생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조차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준 학생들이 무척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내가 이런 상황을 다룰 만한 전문성이 없는 것이 두려웠고, 다만 최선을 다해 감사와 공감을 표현해주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다.

 

5. 이렇게 보면 오늘 수업은 잘 된 것 같은데, 묘하게 뭔가 분위기가 영 가라앉아 있었다. 꼭 토론 주제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호하다. 다만, 확실히 이런 소그룹 토론을 하기에 11명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제프 베조스는 "피자 두 판의 법칙"을 이야기 한 적이 있고, 굳이 사람 수로 치환해보면 회의의 적정인원은 대략 5~8명이 되는데, 이 숫자는 이런 소그룹 활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 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