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한양의대 학생들을 위한 15가지 학습조언(2023년 3월 24일의 기록)

Meded. 2023. 5. 22. 07:14

의과대학생들 중 일부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유급을 합니다. 어떤 학생은 학업 외적인 이유(건강, 가정, 심리 등)로 유급을 하지만, 일부 학생은 정말로 학업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이 고등학교때 공부로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학생들이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신기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학생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면, 적절한 학습 조언을 준다면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간간히, 그리고 꾸준히 학생들에게 학업 조언을 주면서 해줬던 이야기를 조금 모아보았습니다. 정리하다보니 한편으로는 괜한 아쉬움과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가진 근본적인 특성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핑계일 수도 있지만, 어떤 내용은 ‘생존(=진급)’만을 위한 일종의 요령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 이런 조언에 얼마나 유효한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조언은 명백한 한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학생들은 조언 없이도 잘 하고 있습니다. 학습법 개선을 위한 개입이 필요한 학생들은 의과대학생들 중에서도 소수입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정작 이런 조언이 필요한 학생들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학습법에 대한 피드백을 잘 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병원으로 비유하면 '병은 있는데 병식이 없어 병원에 잘 오지 않는 환자'쯤 될까요? 오히려 역설적으로 잘 하고 있는 학생들이 이런 것 까지 궁금해합니다.

 

또 다른 한계는 조언은 조언일 뿐, 결국 학생 본인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일회성 조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 같지만, 이 한계점이 갖는 함의는 ‘그렇기에 지도교수나 학년담임이나 상담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점입니다. 한 차례의 잔소리로 끝나지 않아야 하고, 몇 번을 꾸준히 만나면서 잘 해나가고 있는지 봐줘야 합니다. 다시 병원으로 비유하면 초진으로 끝나지 않고 재진, 재재진 등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조언 자체의 한계입니다. 온갖 기사와 SNS를 보면 세상이 엄청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하면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큰 틀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기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학습의 유형이나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이란 근본적인 틀을 개선하지 않은 채로, 어쨌거나 그 안에서 몇 년을 잘 버티게끔 학생들을 도와주는게 정말 잘 하는 것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이런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 한양의대 본1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양의대 학생들을 위한 15가지 학습조언”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2월에 짧은 강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축약해서 영상으로 업로드했습니다. 한양의대 뿐만 아니라 다른 의대, 좀 넓게는 다른 보건의료계 전공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학생들을 상담하시는 한 명의 교수님에게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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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대 학생들을 위한 15가지 학습조언>

1. ‘양’은 필요조건(but, not 충분조건) 

안타깝게도 의대 공부는 공부의 “양”이 담보가 안되면, 공부의 “질”을 아무리 높여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평소에도 일정량 이상의 꾸준한 시간 투자가 필요합니다.

2. 나에게 맞는 학습 장소 찾기

집에서 스스로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시면, 도서관과 같은 다른 장소를 찾아가세요. 당장은 시간 손실 같지만, 많은 경우 득실을 따지면 결국은 (+)입니다.

3. 너무 많은 정독은 공부가 아니었음을…

강의록을 한 번 정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강의록/강의영상을 여러 번(예: 세 번 이상) 정독/시청하는 것 비효율적인 학습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해당합니다. 

4. 중요도(≃ 출제 가능성) 판별하기

기출문제, 수업 중 강조, 학습목표를 중심으로, 각 슬라이드별로 이 내용이 얼마나 반복해서 나오는지를 체크합니다. 이는 내용의 중요도, 달리 말하면 출제 가능성을 가늠하는 작업입니다. 기출문제는 적어도 최근 3개년도까지는 체크해보시기를 권합니다. 

5. 기출문제를 학습자료로 사용하기

한 개의 문제에 옳고 그름을 판별해야 하는 다섯 개의 보기가 있다면,다섯 개 보기가 각각 강의록 어디에 해당되는지 확인합니다. 한 문제에서 다섯 배의 효율을 낼 수 있습니다.

6. 암기해야 할 것을 추리기(우선순위!)

각 수업에 대해서 “꼭 외워야 할 것”을 적어도 3~4가지씩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단, ‘정리’에만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7. 출제가능성과 중요도가 높은 것부터 암기하기

정리한 것들 중 출제가능성이 높은 것들을 먼저 암기하세요. ‘출제가능성이 높은 것’을 먼저 암기한 후에야 비로소 덜 중요한 것을 외울 “자격”이 생긴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8. 짧고 구체적인 시간계획 세우기

시간계획은 실현가능하게, 짧게, 구체적으로 세우세요. ‘오늘 밤까지 월요일 수업을 복습하겠다’ (X)  ‘30분 뒤까지 AAA강의에서 A1, A2, A3를 암기하겠다’(O)

9. 계획대로 하고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기

계획을 세웠으면, ‘실제로 내가 그 계획대로 했는지’를 반복적으로, 의식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앞의 예시처럼 ‘30분 뒤까지 AAA강의에서 A1, A2, A3를 암기하겠다’라고 계획했다면, 30분 뒤에 A1, A2, A3를 외웠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봅니다.

10. 일찍부터 암기하기

본과에서 “나중에 몰아서 외워야지”라고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하루에 몇 개씩이라도 좋고, 했다가 잊어도 괜찮으니, 일찍부터 암기를 시작하세요. 절대로 외울 것을 나중으로 미루지 마세요! 

11. 일단 외우기

합리적인 이유와 무관하게 우선 외우는게 더 중요합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생리적/의학적으로 합당한 설명을 이해해야겠지만, 초기에는 그조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못 외운 것보다 뭐라도 외워둔 상태가 훨씬 낫습니다.

12. 다양한 사진으로 연습하기

구글 이미지에서 “구조물+cadaver” 또는 “구조물+histology”와 같이 검색하면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의학 영상은 radiopedia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강의록 이미지만 보면 지나치게 익숙해지기 때문에(익숙함의 함정), 다양한 각도/조합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13. ‘익숙한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요약/정리한 자료는 쉽게 자신에게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절대로 ‘익숙함의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암기할 내용을 자료가 없이도 혼자 읊어볼 수 있는지, 써볼 수 있는지 확실하게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14. 친구에게 물어보기

친구/조원에게 최대한 많이 물어보세요. 이것은 여러분 뿐만 아니라, 알려준 친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가장 기억에 잘 남고, 역설적으로 가장 많이 배웁니다. 따라서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5.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본과 생활 자체를 친구들과 함께 해나가길 바랍니다. 혼자서만 감당하기에는 의대 공부는 너무나도 길고 고됩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세요. 필기 공유 뿐만 아니라, 기출된 핵심 내용 정리 등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한결 수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