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Gen Intern Med. 2022 Jul;37(9):2224-2229. doi: 10.1007/s11606-022-07513-5. Epub 2022 Jun 16.

REACT: Rapid Evaluation Assessment of Clinical Reasoning Tool 

 

 

🚨 응급 상황에서 임상추론을 어떻게 평가할까? — REACT 도구 이야기

오늘은 좀 색다른 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 평가 도구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버지니아 대학교(UVA) 연구진이 만든 REACT(Rapid Evaluation Assessment of Clinical Reasoning Tool)라는 건데요, 이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응급 상황(urgent clinical situations)'에 특화된 평가 도구입니다.

🤔 왜 하필 '응급 상황'일까?

임상추론이라고 하면 보통 '감별진단을 어떻게 좁혀가느냐' 하는 진단추론(diagnostic reasoning)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연구진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습니다. 바로 관리추론(management reasoning)이에요. 환자의 선호도, 사회적 가치, 가용 자원 같은 것들을 고려해서 검사와 치료를 결정하는 과정 말이죠.

문제는 환자가 급격히 나빠지는 응급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그것도 아주 빠르게 해내야 한다는 겁니다. 시간 압박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니까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임상추론 결함이 의외로 흔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콜로라도 대학교 사례를 인용하는데요 — 6년간 리메디에이션(remediation) 프로그램에 의뢰된 학습자 중 임상추론이 주된 결함이었던 비율이 레지던트의 25~30%, 의대생의 40~45%에 달했다고 합니다. UVA에서도 4년간 GME 리메디에이션 의뢰자의 34%가 임상추론에 어려움을 겪었고요. 생각보다 큰 숫자죠.

그런데 정작 응급 상황에서의 임상추론을 제대로 평가할 도구는 마땅치 않았다는 게 이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 어떤 이론에 기대고 있나?

REACT는 두 가지 이론적 배경 위에 서 있습니다.

 

  • 첫째는 상황인지이론(Situated Cognition Theory, SCT)입니다. 지식이 맥락적 요인(contextual factors)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동한다는 관점이죠. 응급 상황의 임상추론은 '시간에 쫓기는 결과 중대한 의사결정'이라는 압박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Rencic 등이 제안한 틀에 따르면, 임상추론 수행 평가에는 여섯 가지 요소 — 평가받는 임상의(assessee), 환자(patient), 평가자(rater), 평가 방법(assessment method), 과업(task), 환경(environment) — 가 얽혀 있다고 봅니다.
  • 둘째는 이중처리이론(dual-process theory)이에요. 우리가 익히 아는 그것, 시스템 1(휴리스틱)과 시스템 2(분석적 사고)의 조합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모델입니다. 응급 상황은 빠른 휴리스틱과 효율적인 분석적 추론을 둘 다 요구하니 이 이론과 궁합이 잘 맞죠.

 

🛠️ REACT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흥미로운 건 이 도구가 '맨땅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연구진은 이미 검증된 두 개의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삼았어요.

  1. ART (Assessment of Reasoning Tool) — SIDM(Society to Improve Diagnosis in Medicine)이 개발·검증한 도구로, 구두 발표(oral presentation) 상황에서 자료수집·해석·종합·메타인지를 평가합니다.
  2. EPA 10 — AAMC의 위탁가능 전문직무활동(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y) 중 열 번째로, "긴급/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인식하고 평가·관리를 시작하는" 역량을 다룹니다.

COACH라는 UVA의 동료 지원 프로그램에서 출발한 다학제 임상교육자 그룹이 네 차례 모여 이 도구를 설계했다고 하네요.

📋 REACT의 다섯 가지 영역(domains)

REACT는 응급 환자 진료에서 핵심이 되는 다섯 가지 학습자 기능(learner functions)으로 구성됩니다. 각각 3점 척도로 평가하니까 총점은 최소 5점에서 최대 15점이 됩니다.

영역 (Function)  핵심 과업
수집하기 (Collecting) 가설 지향적으로 병력·진찰 자료 수집, 악화 징후 인식, 임상 문제의 중증도 파악
해석하기 (Interpreting) 진단추론 — 가능성 높은 진단과 "놓치면 안 되는(can't miss)" 진단을 포함한 감별진단 생성
관리하기 (Managing) 관리추론 — 초기 관리 옵션 선택, 동적 정보에 대한 대응, 환자 이송(escalation) 필요성 인식
소통하기 (Communicating) 환자 중심 진료 — 의료팀과의 협업, 환자·대리인과의 공유된 정신모형(shared mental model) 형성
성찰하기 (Reflecting) 메타인지(metacognition) — 자신의 사고에 대한 성찰,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 인지적·정서적 요인 완화

다섯 번째 '성찰하기'가 따로 강조되는 게 인상적인데요, 효과적인 임상추론에서 메타인지가 차지하는 중심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 그래서, 실제로 잘 작동했나?

UVA의 2021년 인턴 준비 과정(Intern Readiness Course)에서 4학년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파일럿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마네킹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시나리오(천식 악화, 패혈성 쇼크, 심근경색, 아나필락시스 등 총 12가지 케이스)를 녹화한 뒤, 추가 훈련을 받지 않은 7명의 다학제 임상의가 41개 케이스를 채점했어요.

결과는 이렇습니다 👇

  • 내적 일관성(internal consistency): Cronbach's alpha = 0.86 → 고부담(high-stakes) 평가에도 충분한 수준
  • 평가자 간 신뢰도(inter-rater reliability): 가중 카파(weighted kappa) = 0.56 → '중간 정도(moderate)'의 일치도

여기서 주목할 점! 평가자들이 별도의 평가자 훈련이나 기준 설정(standard setting) 없이 이 정도 신뢰도를 냈다는 겁니다. 직접관찰(direct observation) 평가에서는 보통 평가자 훈련과 준거 틀 훈련을 권고하는데, 그게 없었는데도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는 거죠. 연구진도 이 부분을 "흥미로운 관찰"이라고 표현합니다.

💬 연구진의 핵심 메시지

이 도구의 의의에 대해 연구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아는 한, REACT는 시뮬레이션 응급 임상 상황에서 학습자의 임상추론 수행을 형성평가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최초의 도구입니다."

"To our knowledge, REACT is the first tool specifically designed for formative assessment of a learner's clinical reasoning performance during simulated urgent clinical situations."

 

다만 연구진은 한계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특히 '시뮬레이션'과 '실제 현장'의 차이에 대해서요.

"따라서 빠른 상호작용이 때때로 교육적 목표와 경쟁하게 되어 교육 목표 달성을 위협하는, 진짜 실제 응급 임상 상황에서는 REACT가 그만큼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저희의 가설입니다."

"It is therefore our hypothesis that REACT may not perform as well in authentic, real-life urgent clinical situations where the rapid interactions may at times compete with the educational goals, threatening the ability to achieve educational goals and objectives."

 

그리고 이 도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이렇습니다.

"고위험 응급 임상 시나리오에서 학습자에게 피드백을 안내함으로써, 진단 및 관리 오류를 줄여 환자 피해를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this tool guides feedback to learners during high-risk urgent clinical scenarios, with the goal of reducing diagnostic and management errors to limit patient harm."

🔭 앞으로의 방향

연구진이 제시하는 후속 연구 방향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 리메디에이션 예측 도구로서의 가능성 — 다양한 수준의 학습자에게서 리메디에이션이 필요한 사람을 미리 가려낼 수 있을까?
  • 총괄평가(summative assessment) 도구로의 확장 — 임상추론 코칭 전후를 비교하는 용도로
  • 정량적 점수 체계와 수행 기준선(performance thresholds) 마련

특히 Friedman 등의 연구를 인용하며, 레지던트는 과신(over-confidence) 경향이, 의대생은 진단 오류는 많지만 자신감은 가장 낮은 경향이 있다고 짚는데요 — 결국 임상추론 향상의 기회는 UME에서 GME, 그 너머까지 연속선 전체에 걸쳐 존재한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 이 논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두 가지입니다.

 

  • 하나는 진단추론과 관리추론을 한 도구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예요. 보통 진단에만 무게가 실리는데, 응급 상황이라는 맥락이 자연스럽게 관리추론까지 끌어들이도록 만든 설계가 영리합니다.
  • 다른 하나는 연구진 스스로가 시뮬레이션의 한계를 가설로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만든 도구가 통제 불가능한 실제 현장에서도 통할까?"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정직함이 좋네요. 사실 이건 우리 교육자들이 만드는 거의 모든 평가 도구가 안고 있는 본질적 긴장이기도 하니까요.

 

응급 상황 시뮬레이션 교육을 운영하시거나, 임상추론 리메디에이션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원문을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도구(Figure 1)의 행동 기준점(behavioral anchors)이 꽤 구체적이라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도 좋아 보입니다. 😊


※ 이 글은 위 논문의 핵심 내용을 정리·요약한 것이며, 자세한 내용과 전체 평가 도구는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론 

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실행 가능한 진단(working diagnosis)을 생성하고, 이를 통해 관리 의사결정(management decisions)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자료 수집(data collection), 종합(synthesis), 해석(interpretation)을 수행하는 과정을 포괄한다. 교수(teaching)와 평가(assessment)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은 진단(diagnosis), 즉 자료 수집(data gathering)을 통해 감별진단(differential diagnosis)을 생성하고 좁혀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1–5 최근 Cook 등6은 환자를 위한 검사와 치료 의사결정을 내릴 때 환자 선호(patient preferences), 사회적 가치(societal values), 물류적 제약(logistical constraints), 자원 가용성(resource availability)을 고려하는 관리추론(management reasoning)을 진단추론(diagnostic reasoning)의 필수적 동반 요소로 설명하였다.

 

환자의 임상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는 상황인 긴급 임상상황(urgent clinical situations)은 진단과 관리 모두에 대해 가속화된 의사결정(accelerated decision-making)을 요구한다.7,8 실제 임상의(practicing clinicians) 사이에서 임상추론 오류(errors in clinical reasoning)는 흔하며, 입원 환자 진료(hospitalized patient encounters)의 최대 10–15%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9 긴급 임상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들은 “아픈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sick vs not sick)”를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의사소통 기술(communication skills) 또는 임상 지식(clinical knowledge)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임상추론 결함(clinical reasoning deficits)은 단일 기관 교정 프로그램(single-center remediation programs)에서 어려움을 겪는 의학 수련생(medical trainees)에게 흔히 확인되어 왔다.10,11

  • University of Colorado는 6년 동안 교정 프로그램(remediation program)에 의뢰된 전공의(residents)의 25–30%, 의과대학생(medical students)의 40–45%에서 임상추론이 주된 결함(primary deficit)이었다고 보고하였다.12
  • 4년 동안 University of Virginia는 졸업후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GME) 교정 프로그램에 의뢰된 학습자의 34%가 임상추론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확인하였다.13
  • 검증된 임상추론 평가도구(validated clinical reasoning assessment tools)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제 유병률(prevalence data)을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다.14

이중과정이론(dual-process theory)은 임상추론에 대해 널리 이해되고 있는 인지모형(cognitive model)으로, 의사결정이 시스템 1(system 1, 휴리스틱 과정[heuristic processes])과 시스템 2(system 2, 분석적 과정[analytical processes])의 조합을 통해 일어난다고 본다.15 긴급 임상상황은 이중과정이론과 잘 부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간 민감적 진단(time-sensitive diagnosis)을 위한 휴리스틱과 효율적인 분석적 추론(efficient analytic reasoning)이 필요할 뿐 아니라, 진단이 확정되기 전에 빠른 평가(rapid assessment), 안정화(stabilization), 관리(management)가 요구된다.

 

긴급 상황에서 임상추론을 향상시키기 위해, 특정 임상 시나리오에 대한 알고리즘들이 개발되어 관리추론을 촉진하고 환자 결과(patient outcomes)를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전문 심혈관소생술(Advanced Cardiovascular Life Support, ACLS) 알고리즘은 “코드(code)” 상황에서 관리를 안내하고, 환자를 소생(resuscitation)시키는 동안 분석적 진단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예컨대 H’s and T’s가 이에 해당한다.16 그러나 대부분의 긴급 임상상황은 이러한 최종 공통 경로(final common pathway)에 도달하지 않으며, 따라서 관리와 진단을 위한 확립된 알고리즘의 도움 없이 섬세한 임상추론(nuanced clinical reasoning)을 요구한다.

 

상황인지이론(situated cognition theory, SCT)은 긴급 임상상황에서 형성평가(formative evaluation)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상호작용 요인들과 관련하여 임상추론 수행(clinical reasoning performance)을 평가하는 데 매력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Rencic 등17은 여섯 가지 임상추론 수행 평가 요소를 고려하는 개념적 프레임워크(conceptual framework)를 제안하였다. 이 요소들은 임상의 또는 피평가자(clinician or assessee), 환자(patient), 평가자(rater), 평가 방법(assessment method), 과제(task), 환경(environment)이다.

 

이러한 개념적 렌즈(conceptual lens)를 통해 볼 때, 임상추론 수행에 대한 직접관찰(direct observation)은 가장 실제적인 평가(authentic assessment)를 제공한다. 그러나 임상추론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상호작용 요인을 확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밀성(rigor)이 필요하다. 높은 중증도(high acuity)나 환자 임상 상태의 악화(decompensation)로 특징지어지는 긴급 임상상황에서 임상추론을 평가하는 것은 특히 어렵다. 그 이유는 이러한 상황이 계획되지 않은 특성을 가지며, 교육적 목표가 긴급 진료 제공을 위해 종속되는 경우를 포함하여,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 통제 불가능한 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충실도 시뮬레이션 환경(high-fidelity simulation environment)에서 긴급 환자진료 상황을 제공하는 모의 환자 진료(simulated patient encounter)는 이상적인 대체 모델(surrogate model)을 제공한다. 이는 여섯 가지 평가 요소 각각에 걸친 많은 요인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본 논문에서 우리는 빠르고 시간 민감적인 진단추론(diagnostic reasoning)과 관리추론(management reasoning)을 요구하는 긴급 임상상황에서 학습자 수행을 형성적으로 평가하고 피드백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설명한다. REACT(Rapid Evaluation Assessment of Clinical Reasoning Tool)로 알려진 이 행동기준 도구(behaviorally anchored tool)는 고위험 긴급 임상 시나리오에서 학습자에게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안내하기 위해, 영역 특이적 프레임워크(domain-specific frameworks)를 바탕으로 내용 전문가(content experts)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진단 오류와 관리 오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방법

2016년에 도움 요청을 통한 역량 추구 위원회(Committee on Seeking Competence through Help, COACH)가 구성되었다. COACH는 University of Virginia(UVA)의 독특한 동료 지원 프로그램(peer support program)으로, 임상 수행(clinical performance)에 대한 도움을 의뢰받거나 스스로 요청한 의학 학습자(medical learners)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COACH는 창설 이후 14개 부서(departments)의 100명 이상의 수련생과 함께 일해 왔으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이후 UVA School of Medicine은 동일한 프레임워크와 상당 부분 동일한 인력을 활용하여 임상 교정 프로그램(clinical remediation program)을 시행하였다. 2018년에는 임상추론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를 식별하고 코칭하기 위한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소위원회(subcommittee)가 구성되었다. 이 그룹은 내과 및 병원내과(internal and hospital medicine), 응급의학(emergency medicine), 소아과(pediatrics), 마취과(anesthesiology), 가정의학(family medicine), 중환자의학(critical care), 산부인과(obstetrics and gynecology)의 일차진료 및 전문 임상교육자(primary care and specialist clinician educators)로 구성되었으며, 매월 회의를 열어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를 검토하고, 임상추론 평가와 교정의 모범 사례(best practices)를 논의하며, 임상추론 문헌을 검토하였다.18,19

 

이 소위원회는 필요할 때 어려움을 겪는 수련생과 학생에게 일대일 코칭(one-on-one coaching)을 제공할 수 있는 임상추론 코치(clinical reasoning coaches) 풀(pool)로 기능한다. 확인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이 그룹은 2020년 말 긴급 환자진료 상황에서 학습자를 평가하고 형성적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한 근거 기반 도구(evidence-based tool)를 설계하는 공동 작업을 시작하였다.

 

REACT 도구(Fig. 1)는 COACH 소위원회 소속의 다학제 임상교육자 그룹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들은 학부의학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UME)과 졸업후의학교육(GME) 전반에서 임상추론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REACT라는 명칭은 긴급 임상 시나리오에서 요구되는 신속한 환자 평가(rapid patient evaluation)를 나타내기 위해 붙여졌다. 이 그룹은 도구를 설계하기 위해 네 차례 회의를 열었으며, 먼저 긴급 환자진료 상황에 특이적인 진단추론(diagnosis reasoning)과 관리추론(management reasoning)의 근거 기반 영역(evidence-based domains)을 확인한 후, 각 영역에 다양한 행동기준(behavioral anchors)을 연결하였다. 이 그룹의 우선순위는 여러 전문과(multiple specialties)가 제공하는 환자진료와 일관되게, 다양한 임상 환경(clinical settings)의 학습자에게 적용 가능한 도구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이 그룹은 두 개의 검증된 프레임워크(validated frameworks)에서 출발하였다.

  • 첫째는 구두 발표(oral presentations) 중 임상추론을 평가하기 위한 Society to Improve Diagnosis in Medicine(SIDM)의 추론 평가 도구(Assessment of Reasoning Tool, ART)였고,
  • 둘째는 긴급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학습자의 인식을 형성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설계된 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AAMC)의 위임가능 전문직무 10(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y 10, EPA 10)이었다.

Thammasitboon 등20과 SIDM은 구두 발표와 임상추론에 대한 임상교육(clinical teaching)을 촉진하기 위해 ART를 개발하고 검증하였다. 이 도구는 특히 학습자의 자료 수집(data gathering), 해석(interpretation), 종합(synthesis), 메타인지(metacognition) 영역의 숙련도(proficiency)를 평가한다. 이 행동기준 도구는 임상추론 오류를 평가하고 교정하기 위한 일반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임상 시나리오의 맥락에서 학습자를 관찰하면, 상황적 스트레스 요인(situational stressors)에 따라 달라지는 비언어적 단서(nonverbal cues)와 음성적 단서(tonal cues)를 평가할 수 있다.21

 

반면, AAMC는 실제 환경(real-world settings)에서 학습자의 다양한 임상 역량(clinical competencies)을 평가하기 위한 툴킷(toolkit)을 설계하였다. EPA라고 불리는 이러한 핵심 역량(core competencies)은 의과대학생이 전공의 수련(residency)을 시작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검증된 숙련도(validated proficiencies)를 포함한다.22 EPA 10은 “긴급 또는 응급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인식하고 평가와 관리를 시작하는 것(recognizing a patient requiring urgent or emergent care and initiating evaluation and management)”에 초점을 둔다. 이 툴킷은 긴급 임상 시나리오 관리에서 기대되는 표준 행동 세트(standard set of behaviors)를 제시한다.

 

파일럿 연구는 UVA에서 2021년 인턴 준비 과정(Intern Readiness Course, IRC)에 참여한 의과대학 4학년 학생 87명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다. 이 학생들은 내과(internal medicine), 정신건강의학과(psychiatry), 가정의학(family medicine), 응급의학(emergency medicine), 마취과(anesthesia) 전공의 과정으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IRC의 핵심 목표는 의과대학 4학년 학생들에게 저혈압(hypotension), 흉통(chest pain), 저산소혈증(hypoxemia), 의식변화(altered mental status)와 같은 흔한 긴급 임상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교육의 상당 부분은 마네킹(manikins)을 활용한 모의 시나리오(simulated scenarios)를 통해 이루어진다. 각 학생은 최소 두 개의 고유한 사례 시나리오에서 인턴(intern)의 역할을 수행하며, 해당 시나리오는 관련 임상 경험을 가진 간호사에 의해 구성된다. 시뮬레이션 종료 후, 학생들은 시뮬레이션을 직접 관찰한 임상의와 함께 즉각적인 디브리핑(debriefing) 활동을 수행한다. 2021년 IRC의 시뮬레이션은 녹화되었다. Table 1은 각 사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임상추론 과정에 대한 추가 훈련을 받지 않은 독립적인 다학제 임상의 그룹이 이 녹화물을 관찰하고, REACT를 사용하여 각 의과대학생의 수행을 채점하였다. 평가자와 관찰 전반에서 도구의 내적 일관성을 분석하기 위해 행동기준에 점수 체계(scoring system)가 추가되었다. REACT 점수는 각 행동 영역(behavioral domain)에 대해 3점 척도(3-point scale)를 사용하여 산출되었으며, 총점의 최대값은 15점, 최소값은 5점이었다.

 

연구의 최적 표본 크기(optimal sample size) 결정은 관찰 수(number of observations)와 평가자 수(number of raters) 모두에서 측정오차(measurement error)를 최소화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추정치를 사용하였다.23 Cronbach’s alpha를 사용하여 평가자 그룹 전반의 내적 일관성(internal consistency)을 평가하였다. 평가자 그룹 전체의 종합 평정 점수(overall rating score)에 대한 평가자 간 신뢰도(inter-rater reliability)는 가중 카파 통계량(weighted kappa statistic)을 사용하여 평가하였다. 모든 분석은 SPSS v28을 사용하여 수행하였다.24

 

UVA Institutional Review Board는 이 프로젝트를 검토하였고, 면제 심의(exempt review)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하였다(ref # 4234).


결과 

REACT는 긴급 환자진료 중 임상추론 과정에 필수적인 네 가지 학습자 기능(learner functions)으로 구성된다. 이는 자료 수집(collecting), 해석(interpreting), 관리(managing), 의사소통(communicating)이다. 다섯 번째 학습자 기능인 성찰(reflecting)은 효과적인 임상추론에서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중심성을 강조한다.25 각 기능에 대해 구체적 과제(specified tasks)가 설명된다. 형성적 피드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각 기능마다 예시 행동기준(exemplar behavioral anchors)의 범위가 제시된다.

 

내과 및 병원내과, 산부인과, 소아중환자의학(pediatric critical care), 응급의학, 마취과 출신 임상의로 구성된 7명의 평가자가 41명의 개별 학생을 대표하는 41개의 녹화 사례 시나리오를 채점하였다. 각 평가자는 동일한 41개 사례 시나리오 전체를 채점하였다. Cronbach’s alpha로 평가한 내적 일관성은 41개 비디오 클립에 대한 합산 종합 평정 점수(summed overall rating score)에서 .86으로 측정되었으며, 이는 고부담 평가(high-stakes assessment)에 충분한 값으로 간주된다.26

 

평정이 서열적 특성(ordinal nature)을 가지기 때문에, 평가자 간 신뢰도(inter-rater reliability)를 측정하기 위해 가중 카파 통계량(weighted kappa statistic)을 사용하였다. 종합 평정의 가중 카파 값은 .56이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중등도의 일치도(moderate degree of agreement)로 해석된다.27 Supplementary Table 1은 영역별 가중 카파 자료(domain-specific weighted kappa data)를 제공하며, Supplementary Table 2는 개별 평가자의 영역별 점수에 대한 기술통계(descriptive statistics)를 제공한다.


Figure 1. 임상추론 신속 평가 도구(REACT) (Rapid Evaluation Assessment of Clinical Reasoning Tool) 

지시문(Instructions): 학습자에게 관찰된 행동에 해당하는 상자에 동그라미 표시하시오.

필수 과제(Essential Tasks)

행동 평가(Assessment of Behaviors)

학습자 기능(Learner Function) 구체적 과제(Specified Task) 행동기준 1 행동기준 2 행동기준 3
수집(Collecting) 자료 수집(data gathering) 긴급 또는 응급 임상 시나리오의 인식(recognition of urgent or emergent clinical scenario) • 가설 지향적 방식(hypothesis-directed manner)으로 병력(history)과 신체진찰(exam) 자료를 수집/보고한다.
• 환자 및 질환 특이적 요인(patient and disease specific factors)을 악화(decompensation)의 잠재적 원인(potential etiologies)으로 인식한다.
• 임상 문제의 중증도(severity)와 긴급성 또는 응급성을 나타내는 맥락적 징후(contextual signs)를 인식한다.
• 초점이 없는 병력청취와 신체진찰(non-focused history and exam)
• 불필요한 정보(extraneous information)를 포함함
• 핵심 소견(key findings)을 놓침
• 긴급성의 맥락적 단서(contextual clues of urgency)를 인식하지 못함
• 병력과 신체진찰이 잠재적 진단(potential diagnoses)을 반영함
• 긴급성의 맥락적 단서를 제한적으로 인식함
• 관련 양성 및 음성 소견(pertinent positive and negative findings)을 제한적으로 포함함
• 잠재적 진단에 대해 논리적인 병력청취와 신체진찰(logical history and exam)을 수행함
• 질문을 통해 특정 진단의 가능성(likelihood)을 평가함
• 긴급성의 맥락적 단서를 충분히 인식함
• 관련 양성 및 음성 소견을 우선순위화함
해석(Interpreting) 진단추론(diagnostic reasoning) 감별진단(differential diagnosis) • 긴급 임상상황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most likely), 가능성이 낮은 진단(less likely), 가능성이 희박한 진단(unlikely)으로 우선순위화된 감별진단을 생성한다. • 긴급 상황에서 가능성 높은 진단 또는 반드시 놓치면 안 되는 진단(“can’t miss” diagnoses)이 감별진단에서 누락됨
• 부적절한 진단(inappropriate diagnoses)을 포함함
• 긴급 상황에서 가능성 높은 진단과 “놓치면 안 되는” 진단을 포함하였으나 핵심 진단(key diagnoses)을 놓침
• 진단의 순위화(rank-order)가 부적절함
• 긴급 상황에서 핵심 진단, 가능성 높은 진단, “놓치면 안 되는” 진단을 포함하여 감별진단을 정확하게 순위화함
• 긴급 진단(urgent diagnoses)을 적절하게 우선순위화함
관리(Managing) 관리추론(management reasoning) 초기 관리 선택(initial management option selection) 역동적 정보에 대한 반응(response to dynamic information) • 평가와 치료를 높은 우선순위의 진단(high priority diagnoses)에 맞춘다.
• 악화 중인 환자(patient with decompensation)에 대한 관리를 시작한다.
• 환자 진료 수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성(need to escalate patient care)을 인식한다.
• 평가와 치료를 가능성이 낮거나 중요하지 않은 진단(unlikely/unimportant diagnoses)에 맞춤
• 가장 가능성 높은 긴급 진단(most likely urgent diagnoses)에 대해 평가하거나 치료하지 않음
• 초기 관리 계획(initial management plan)에 대한 반응을 평가하지 않음
• 가능성 높고 긴급한 진단(likely and urgent diagnoses)에 대해 평가와 치료의 주요 초점을 둠
• 필수적이지 않은 검사(non-essential testing)를 포함함
• 초기 관리 계획에 대한 반응을 평가함
• 가장 가능성 높고 긴급한 진단을 향해 효율적으로 관리(efficiently directed management)를 수행함
• 가능성이 낮거나 덜 중요한 진단에 대한 검사는 연기함(deferred tests)
• 초기 중재(initial interventions)에 대한 반응을 평가함
의사소통(Communicating) 환자중심진료(patient-centered care) 진료 계획과 치료 목표의 의사소통(communicate care plan and goals of care) 공유된 정신모형(shared mental model)의 달성 • 업무 효율성(task efficiency)을 향상시키기 위해 역할과 책임(role and responsibility)에 따라 보건의료팀 구성원(health care team members)과 의사소통한다.
• 긴급 임상상황에서 환자 또는 대리 의사결정자(surrogate decision-maker)와 초점을 유지하고 양방향 의사소통(two-way communication)을 한다.
• 보건의료팀 구성원과 관여하지 않음
• 환자/가족(patient/family)과 진료 계획(care plan)을 의사소통하지 않음
• 환자의 치료 목표(goals of care)를 명확히 하지 않음
• 업무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보건의료팀 구성원과 제한적으로 관여함
• 환자/가족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 제한적이며, 의학 전문용어(medical jargon)를 사용하거나 이해를 확인하지 못함
• 환자의 치료 목표를 제한적으로 명확히 함
• 긴급 상황에서 업무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역할과 책임에 따라 보건의료팀 구성원을 충분히 참여시킴
• 환자/가족과 진료 계획을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이해를 확인함
• 환자의 치료 목표를 효과적으로 명확히 함
성찰(Reflecting) 메타인지(metacognition) 긴급 또는 응급 임상 시나리오에 대한 성찰(reflection) • 긴급 임상상황에서 자신의 사고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 즉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보여준다.
• 임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경향(cognitive tendencies) 또는 정서적/상황적 요인(emotional/situational factors)을 완화한다.
•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인지적 경향 또는 정서적/상황적 요인을 인식하지 못함
• 인지적 경향 또는 정서적/상황적 요인을 완화하지 못함
•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인지적 경향 또는 정서적/상황적 요인에 대한 인식이 제한적임
• 인지적 경향 또는 정서적/상황적 요인의 완화가 제한적임
•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지적 경향 또는 정서적/상황적 요인을 충분히 인식함
• 긴급 임상상황에 대한 반응을 효과적으로 완화함


논의 

저자들이 아는 한, REACT는 모의 긴급 임상상황에서 학습자의 임상추론 수행을 형성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최초의 도구이다. REACT는 임상추론과 임상적 긴급성(clinical urgency)에 특이적인 검증된 도구(validated instruments)의 강점을 바탕으로 구축되었으며, UME와 GME 교육 전반에서 임상추론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전문성을 가진 다학제 임상교육자 그룹에 의해 신중하게 설계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내용타당도(content validity)의 근거를 제공하며, 본 분석은 모의 긴급 임상상황에서 임상추론 수행을 평가하기 위한 REACT가 중등도의 평가자 간 신뢰도(moderate inter-rater reliability)와 높은 수준의 내적 일관성(high degree of internal consistency)을 보인다는 점을 입증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추가적인 평가자 훈련(rater training)이나 기준 설정(standard setting) 없이, 여러 의학 전문과 출신의 임상교육자 집단에서 이러한 결과가 달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의학교육에서 임상술기(clinical skills)의 직접관찰(direct observation)에 대한 모범 실천 지침(best practice guidelines)이 평가자 훈련(rater training)과 참조틀 훈련(frame of reference training) 모두를 권고한다는 점과 대비되어 특히 흥미로운 관찰이다.28

 

SCT는 긴급 임상상황에서 임상추론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잠재 변수(variables)가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변수에는 임상의에게 내재된 요인, 예컨대 경험 연수(years of experience)나 훈련 수준(training), 그리고 환자, 평가자, 임상추론 과제, 환경에 내재된 변수들이 포함된다.17 예를 들어, 긴급 임상진료(urgent clinical encounters)는 부분적으로 조기 관리(early management)의 필요성과 역동적 정보(dynamic information)에 대한 가속화된 반응(accelerated response)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변수들은 실제 긴급 임상상황(authentic urgent clinical situations)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지만, 모의 긴급 임상상황에서 REACT를 시행하면 이들 변수 중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며, 관심 있는 변수를 분리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사실 REACT는 긴급 임상 시나리오에서 임상추론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변수 간 관계와 상호작용(myriad relationships and interactions)을 직접 평가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REACT는 긴급 임상상황에서 임상추론 수행을 형성적으로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경험적 과제(empiric tasks)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저자들은 REACT가 실제 삶의 긴급 임상상황(authentic, real-life urgent clinical situations)에서는 그만큼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실제 상황에서는 빠른 상호작용이 때때로 교육적 목표(educational goals)와 경쟁하며, 교육적 목표와 목적(educational goals and objectives)을 달성하는 능력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교육적 목표가 우선성을 유지하는 모의 긴급 임상상황에서는 임상의, 환자, 평가자, 평가 방법, 과제, 환경을 둘러싼 수많은 요인이 모두 통제 가능하고 수정 가능하다. 제한적인 방식이지만, REACT는 개별 요인에 기인하는 변량(variance attributable to individual factors)을 분리하고 연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며, 각 요인이 임상추론 수행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형성한다. 이러한 분석은 비긴급 임상환경(non-urgent clinical environments)에서의 다른 잠재적 관계와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향후 연구 방향(future directions)에는 다양한 학습자 수준(different levels of learners)에서 교정(remediation)의 필요성을 예측하는 도구로서 REACT를 연구하는 것, 그리고 임상추론 코칭(clinical reasoning coaching) 전후의 총괄평가 도구(summative assessment tool)로서 연구하는 것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현재의 행동기준(behavioral anchors)에 더해 점수를 위한 수행 기준(performance thresholds)을 가진 정량적 시스템(quantitative system)을 만드는 작업이 포함된다.

 

Friedman 등29은 전공의(residents)가 자신의 진단에 대해 더 자주 과잉확신(over-confident)을 보이며, 진단추론 오류(errors in diagnostic reasoning)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반대로 의과대학생(medical students)은 진단 오류를 더 많이 범했지만 확신도(confidence)는 가장 낮았다. 전문의(attending physicians)도 오류를 범했지만, 가장 높은 확신도와 정확도(accuracy)를 보였다. 이러한 발견은 UME와 GME 연속선(continuum) 전반, 그리고 그 이후에도 임상추론 개선의 기회가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평가자를 대상으로 진단추론과 관리추론의 기본에 관한 교수개발(faculty development)을 시행할 수도 있다.


Table 1. 신속 평가가 필요한 임상 사례 설명(Description of Clinical Cases Requiring Rapid Evaluation) 

사례(Case) 환자 설명(Patient description) 목표(Objectives)
천식 악화(Asthma exacerbation) 갑작스러운 호흡곤란(sudden onset shortness of breath)이 발생한 67세 여성 • 빈맥(tachycardia), 빈호흡(tachypnea), 저산소증(hypoxia)을 인식한다.
• 천식 악화(asthma exacerbation)를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most likely diagnosis)으로 확인한다.
• 천식 악화에 대한 관리를 시작한다.
파열성 자궁외임신(Ruptured ectopic pregnancy) 오심(nausea), 구토(vomiting), 하복부 통증(lower abdominal pain)이 있는 28세 여성 • 저혈압 환자(patient with hypotension)에 대해 조직화된 접근(organized approach)을 보인다.
• 자궁외임신(ectopic pregnancy)을 복통과 저혈압의 가능한 원인(possible cause)으로 인식한다.
• 산과 협진(obstetric consultation)을 요청하고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 관리를 시작한다.
심근경색(Myocardial infarction) 명치 부위(epigastrium)에 약간의 압박감(slight pressure)이 있는 72세 여성 • 여성 환자에서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ute coronary syndrome)이 비전형적으로(atypically) 나타날 수 있음을 인식한다.
• 심전도(EKG)를 시행하고 “STEMI” 알림(alert)을 호출한다.
• 급성관상동맥증후군 관리를 시작한다.
수혈 반응(Transfusion reaction) 어지럼(dizziness), 오심, 복통(abdominal pain), 호흡곤란이 있는 45세 남성 • 저산소증, 저혈압, 빈맥, 발열(fever)을 수혈에 대한 가능한 반응(possible reactions to transfusion)으로 인식한다.
• 혈액 수혈(blood transfusion)을 중단하고 가능한 수혈 반응에 대한 관리를 시작한다.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어지럼, 호흡곤란, 가려움(pruritis)이 있는 70세 여성 • 저혈압과 빈맥을 인식한다.
• 최근 항생제 투여(recent antibiotic administration)와 관련하여 아나필락시스를 잠재적 원인(potential etiology)으로 확인한다.
• 악화 중인 환자(decompensating patient)를 위한 진료 계획(care plan)을 시작한다.
패혈성 쇼크(Septic shock) 의식변화(altered mental status)가 있는 76세 남성 • 발열, 저혈압, 빈맥, 의식변화를 인식한다.
• 패혈성 쇼크를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으로 우선순위화한다.
• 패혈성 쇼크에 대한 안정화 관리(stabilization management)를 시작한다.
심정지(Cardiac arrest) 호흡곤란과 흉통이 있는 57세 남성 • 급성 흉통과 호흡곤란에 대한 감별진단을 만든다.
• 무맥성 전기활동(pulseless electrical activity, PEA) 심정지를 인식하고 원인에 대한 감별진단을 만든다.
• 심정지 관리를 시작한다.
COVID-19 폐렴(COVID-19 pneumonia) 기침(cough)과 발열이 있는 65세 여성 • 저산소증과 발열 증상을 잠재적 바이러스성 폐렴(potential viral pneumonia)으로 인식한다.
• 악화되는 저산소증(worsening hypoxia)에 대한 관리를 시작한다.
심부전 악화(Heart failure exacerbation) 저혈압과 흉통이 있는 58세 남성 • 저혈압 환자에 대해 조직화된 접근을 보인다.
• 잠재적 원인을 판단하기 위해 조직화된 병력청취(organized history)를 수행한다.
• 저혈압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시작한다.
고혈압 응급(Hypertensive emergency) 혼돈(confusion)이 있는 52세 남성 • 의식변화 환자에 대해 조직화된 접근을 보인다.
• 고혈압 응급(hypertensive emergency)과 고혈압성 뇌병증(hypertensive encephalopathy)을 인식한다.
• 고혈압 관리를 시작하고 빠른 혈압 감소(rapid blood pressure reduction)의 위험을 인식한다.
급성 알코올 금단 증후군(Acute alcohol withdrawal syndrome) 초조(agitation)가 있는 52세 남성 • 알코올 금단 증후군(alcohol withdrawal syndrome)을 인식하고 환자와 직원의 안전(patient and staff safety)을 보장한다.
• 행동응급 약물(behavioral emergency medications)에 대한 이해를 보인다.
• 알코올 금단 증후군 관리를 시작한다.
저혈당성 발작(Hypoglycemic seizure) 의식변화가 있는 46세 여성 • 의식변화 환자에 대해 조직화된 접근을 보인다.
• 감별진단에 저혈당(hypoglycemia)을 고려한다.
• 포도당 보충 치료(glucose replacement therapy)를 시작한다.

EKG: electrocardiogram, 심전도
STEMI: ST elevation myocardial infarction, ST분절 상승 심근경색
PEA: pulseless electrical activity, 무맥성 전기활동


결론

REACT는 긴급 임상상황에서 학습자의 임상추론 수행을 형성적으로 평가하고 피드백하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도구이다. 이 도구는 임상교육자(clinician educators)가 학습자를 평가할 때 신뢰롭게 안내 도구로 기능할 수 있으며, 고위험 긴급 임상 시나리오에서 임상추론 기술(clinical reasoning skills)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를 식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목표는 진단 오류(diagnostic errors)와 관리 오류(management errors)를 줄이는 것이다. 이 형성평가 도구(formative assessment instrument)의 가장 넓은 적용 가능성(broadest application)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습자 집단(other learner populations)에서의 타당도 연구(study of validity)가 필요하다.

 

Adv Health Sci Educ Theory Pract. 2026 Apr;31(2):653-681. doi: 10.1007/s10459-025-10468-x. Epub 2025 Aug 14.

Medical student perceptions of establishing effective clinical communication: a qualitative study 

 

🩺 "좋은 의사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과정'이다" — 의대생이 직접 말하는 임상 의사소통의 본질

Veazey, K., Notebaert, A., & Robertson, E. M. (2025). Medical student perceptions of establishing effective clinical communication: a qualitative study. Advances in Health Sciences Education. https://doi.org/10.1007/s10459-025-10468-x


임상 의사소통(clinical communication)이 중요하다는 말, 우리 모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그런데 막상 "그럼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의대생 본인의 시각에서 깊이 파고든 질적 연구는 의외로 드물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바로 그 빈틈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미국 미시시피 의대(University of Mississippi Medical Center, UMMC)에서 1~4학년 의대생 22명을 인터뷰해서, "의대생들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믿는가?", 그리고 "그 인식이 의과대학 4년을 거치며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들여다본 연구예요. 🎧

 

저는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 중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라면 이걸 꼽고 싶어요. 의사소통은 체크리스트로 환원할 수 있는 기술의 묶음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에서 출발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자, 천천히 풀어볼게요.


📌 어떤 연구였나요?

연구진은 해석학적 현상학(interpretive phenomenology) 을 채택했습니다. 상대주의 존재론(relativist ontology)주관주의 인식론(subjectivist epistemology)에 기반을 둔 거죠. 쉽게 말하면 "정답이 하나 있는 게 아니라, 학생 각자가 자기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만들어내는 여러 현실이 있다"는 전제로 출발한 겁니다.

 

이론적 닻으로는 상호교류 의사소통 모델(Transactional Model of Communication, TMC) 을 가져왔어요. TMC는 의사소통을 "소통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현실을 만들어내고 의미를 함께 창조하는 과정"으로 봅니다. 양방향적이고(bidirectional), 역동적이며(dynamic), 반복 불가능하고(unrepeatable), 맥락에 적응하는(adapted to contexts) 것이라는 거죠.

 

진행 방식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 8개월간(2021.8~2022.5) 22명 인터뷰 (M4 6명, M3 4명, M2 6명, M1 6명)
  • 인터뷰 평균 76분 (41~155분)
  • 연역(deductive) → 귀납(inductive) → 범주화(categorical) 를 오가는 4단계 코딩
  • 초기 연역 코드북 100개 → 귀납 단계에서 1,038개 추가 → 총 1,138개 코드 → 67개 범주 → 최종 7개 주제(theme)

참여자들은 대부분 백인·이성애자·여성이었지만, 시스젠더 남성/여성, 흑인·아시아계·케냐계 미국인·북아프리카 중동계, 그리고 게이·바이섹슈얼·팬섹슈얼·퀴어 등 꽤 다양한 정체성을 포괄하려 노력했고, 상당수가 1세대 의대생(first-generation medical student) 이자 종교를 가진 학생이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 의대생이 꼽은 '영향 요인' 6가지 + 변화 1가지

연구진이 구성한 7개 주제는 크게 의사소통에 영향을 주는 요인 6개의과대학 경험이 만들어내는 변화 1개로 나뉩니다.

1️⃣ 개인 정체성 (Personal Identity) 

이 연구의 토대가 되는 주제예요. 세 갈래로 나뉩니다.

  • 외재적 정체성(Extrinsic Identity): 성별, 나이, 인종, 민족, 성적 지향처럼 '내가 세상에 어떻게 보이는가(Who I look like to the world)'에 관한 것. 흥미로운 건, 이게 타인의 반응이 아니라 자기 인식에 관한 거라는 점입니다.
  • 이전의 살아온 경험(Previous Lived Experiences): 부모가 되는 것, 결혼, 이민자/이민자 자녀, 개인적 투병이나 상실 경험 등.
  • 내재적 정체성(Intrinsic Identity): 공감, 겸손, 성격, 사교성, 의학을 택한 이유처럼 추상적이고 수치화하기 어려운 개념들.

특히 한 학생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게이로서, 저는 제 의사소통의 모든 면이 현미경 아래 놓여 면밀히 검토당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소통할 때 그렇게 느끼지 않길 바라요. 무시당하는 게 어떤 건지 알기에, 다른 사람은 무시당했다고 느끼지 않게 하고 싶어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어떤 건지 알기에, 다른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가 들린다고 느끼게 하고 싶어요."
("Being gay, I feel like I know what it's like to have every aspect of your communication scrutinized and put under a microscope. So I want others to feel not that when they communicate. I know what it's like to be dismissed, so I want to make sure others don't feel dismissed. I know what it's like to not be heard, so I want other people to feel heard." – M1-3)

2️⃣ 가정과 편견 (Assumptions and Biases)

1번이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였다면, 이건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는가(How the world thinks I look)'에 관한 주제입니다. 가정(assumption)은 근거 없이 참이라고 여겨버리는 내적 과정이고, 편견(bias)은 그 가정이 실제 의사소통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때를 말해요. 이 변화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의식적일 수도, 무의식적일 수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런 가정과 편견이 양방향으로 일어나고, 종종 피할 수 없으며, 늘 완화할 가치가 있다고 정리합니다.

3️⃣ 기대와 규범 (Expectations and Norms)

개인 바깥의 더 넓은 사회·문화적 층위입니다. 특정 진료과나 기관, 임상 현장의 지배적 문화가 만들어내는 기대와 규범이죠. 역할이 명확히 정의될 때 소통이 쉬워진다는 학생들의 경험담이 여기에 담깁니다.

4️⃣ 언어 (Language)

영어/비영어뿐 아니라 신체 언어(body language), 전문 용어 대 일상 언어(professional vs layperson's language), 그리고 대면·전화·영상 등 전달 매체까지 포괄합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면서 비언어적 소통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들어 있어요. 😷

5️⃣ 일화적 맥락 (Episodic Contexts)

매 만남마다 달라지는 일시적 요인들입니다. 시간 압박, 기존 관계 유무, 그리고 아픔·스트레스·피로·배고픔·갈증 같은 생리적 상태(physiological state). 누가 겪든 효과적 소통을 제약한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또한 많은 학생이 OSCE나 표준화 환자(standardized patient) 시나리오를 "진짜 같지 않다(inauthentic)"고 느꼈고, 이게 소통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말합니다.

6️⃣ 편안함과 신뢰 (Comfort and Trust)

그리고 이 모든 게 수렴하는 지점, 편안함과 신뢰입니다. 학생들은 라포(rapport) 형성이 편안함과 신뢰의 환경 없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어요. 한 학생의 공감(empathy)에 대한 정의가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공감이요. 환자를 위해 느끼지 못한다면, 환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결코 이해하지 못하죠. … 그러니 환자가 있는 그 자리에서—절반쯤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그들을 만나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저 어떤 사람들과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셈이에요. 그들은 결코 나아지지 않고,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당신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죠. 그래서 공감은 정말로,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해요. 그리고 그건 어려운 일이에요."
("Empathy. If you can't feel for your patients, you'll never understand what they're feeling. … if you can't meet them there, not halfway, but where they are, then you're just gonna be running on a treadmill with some people. They're never gonna get better, and they're never gonna understand - you never understand them and they can't understand you. So empathy is really, is necessary to be a good doctor. And that's hard." – M3-1)

7️⃣ (변화) 개인 정체성의 진화 (Evolution of Personal Identity)

마지막 주제는 '요인'이 아니라 의과대학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네 갈래로 나뉘어요. 내재적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Influence on Intrinsic Identity),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Impact on Mental Health), 인식의 확장(Building Awareness), 그리고 임상 준비도의 발달(Developing Clinical Preparedness). 특히 정신건강 부분은 솔직하고 무겁습니다. 동시에 일부 학생은 이 과정의 끝에서 '미래의 의사(future doctor)' 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 핵심 메시지 1: 정체성이 '편안함과 신뢰'의 토대다 

연구진이 그려낸 모델(Fig. 1)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두 명의 소통자(communicator)가 각자 내재적·외재적·경험적 정체성을 들고 만나고, 그 정체성가정과 편견 → 언어 → 규범과 기대 → 일화적 맥락을 거쳐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으로 수렴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결국 '편안함과 신뢰'를 만들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릅니다.

 

연구진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이 연구는 정체성이 편안함과 신뢰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환경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의 수행에 필수적인 것으로 기술되었다."
("This study suggests that identity may serve a central role in establishing environments of comfort and trust, which was described as being essential to the performance of effective clinical communication.")

 

여기서 정체성 일치(identity concordance) 개념이 등장합니다. 소통하는 두 사람이 하나 이상의 특성을 공유할 때 '비슷하다'는 느낌이 생기고, 라포가 효율적으로 형성된다는 거죠. 학생들은 성별·인종·LGBTQIA+ 정체성뿐 아니라 양육자(주로 부모) 경험이나 환자였던 경험 같은 경험적 정체성까지도 일치/불일치의 축으로 언급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경험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이 임상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 연구가 거의 다루지 않은 지점이라고 짚습니다.


🔑 핵심 메시지 2: 의사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과정'이다 

저는 이 부분이 의학교육자에게 가장 도전적인 대목이라고 봐요. 그동안 임상 의사소통은 관찰 가능한 개별 '기술(discrete skills)'로 쪼개어 가르치고, 비슷한 체크리스트로 평가돼 왔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학생들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확립하는 것이 기술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Students argued that establishing effective clinical communication is a process, not a skill.")

 

왜 이게 문제냐면, 체크리스트식 교육·평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진정성 있는 돌봄을 그저 '흉내(mimic)' 내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에요(Clever et al., 2011). 평가자에게 잘 보이려고 필요한 행동만 수행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연구진이 무조건 총괄평가척도(global rating scale) 가 답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줘요. 총괄평가척도는 초심 학습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좋은 의사소통의 구체적 예시"를 원하니까요), 다양한 임상 현장의 수많은 평가자를 고려하면 큰 규모의 의대에서는 시간·훈련·자원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거죠. 결국 기술 기반(skills-based) 접근과 태도 기반(attitude-based) 접근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게 결론에 가깝습니다.


🔑 핵심 메시지 3: 교차성은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통찰입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 이론은 전통적으로 다중의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왔는데요, 이 연구는 그 적용 범위를 넓힙니다.

"교차하는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모든 미래 의료인에게 필수적이며, 특히 다수의 문화적 주류 정체성(cultural majority identities)을 가진 이들에게 그러하다."
("...critical reflection on intersecting identities is vital for all future healthcare practitioners, especially those with many cultural majority identities.")

 

실제로 백인 학생들도 "의학사 속 소수자 의료 과오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그 집단의 환자를 대할 때 더 조심하게 됐다"고 말했고, 이성애자·백인·시스젠더 학생들조차 '환자였던 경험'이 자신에게 큰 흔적을 남겼다고 했습니다. 평소 익숙지 않던 무력감·취약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또 하나 주목할 발견은 1세대 의대생도 일종의 소수자 스트레스(minority stress)를 경험한다는 점입니다. 이들 다수가 이민자 자녀이기도 했고, 사회적 자본의 부족,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의대 규범 적응의 어려움 같은 추가적 장벽을 떠안고 있었어요. 그리고 젠더 측면에서는, 여성 학생들이 "간호사로 오해받는" 경험을 거의 공통적으로 언급한 반면, 남성 학생들 역시 키·체격·수염 때문에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적일 거라 넘겨짚어진다는, 기존 연구에서 잘 다루지 않던 새로운 통찰도 나왔습니다.


🎓 의학교육에 주는 시사점

연구진이 제안하는 권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A. 언어 장벽 훈련을 조기에, 명시적으로 (영어↔비영어, 전문어↔일상어)
  • B. 시뮬레이션을 환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동료 의료진까지 확장
  • C. 문화적 다양성을 염두에 둔 총괄평가척도 활용
  • D. 다양한 문화적 소수자 환자·의료인 집단에 조기 노출
  • E.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전문직 간 정체성(interprofessional identity)·협업을 강조하는 전문직 간 교육(interprofessional education) 기회 확대 

여기에 더해 흥미로운 구체적 아이디어들도 있어요. 예컨대 해부 실습실에서 조 간 인계(handoff)에 SBAR 프레임워크(Situation-Background-Assessment-Recommendation)를 적용해 저위험 환경에서 의료진 간 소통을 연습시킨 사례(Lazarus et al., 2016)나, 학생을 말기 환자·빈곤 환자의 입장에 놓는 시뮬레이션이 낙인을 줄이고 공감을 키운다는 연구(Elzie & Shaia, 2021; Murray et al., 2022)가 그렇습니다.

 

평가도구 설계와 관련해 연구진이 던지는 경고는 한 번 더 곱씹을 만합니다. 어떤 척도를 쓰든, 시선 회피나 과묵함처럼 문화적 소수자 특유의 행동을 무심코 '감점'하지 않도록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학생 집단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에요(Fernandez et al., 2007; Lee et al., 2009). 우리 맥락에서도 충분히 새겨들을 대목이죠.


⚠️ 한계도 짚고 가기 

저자들 스스로 한계를 솔직하게 밝힙니다. 단일 기관·1년·미국이라는 한정된 맥락, 표본의 다수가 이성애자 백인 여성이라는 점, 최종 주제에 대한 참여자 피드백(member checking on final themes)을 받지 못한 점, 그리고 TMC를 연역적 틀로 쓴 탓에 다른 의사소통 모델을 배제했을 가능성이 대표적입니다. 또 일회성 인터뷰라 시간에 따른 정체성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기보다 '회상'에 의존했다는 점, 자발적 참여로 인한 선택 편향 가능성도 인정하고 있어요.


✍️ 맺으며

이 논문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결국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법'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자각하고, 타인의 정체성을 헤아리며, 편안함과 신뢰를 빚어내는 과정'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한 학생의 말로 마무리하는 게 가장 좋겠네요.

"의사소통은 정말 중요해요 … 좋은 의사소통자가 아니라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어요." ("Communication is really important … If you're not a good communicator, you cannot be a good doctor." – M1-2)


서론 (Introduction) 

효과적인 의사-환자 의사소통(doctor-patient communication)은 양질의 환자 진료(quality patient care)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 역량이다(Graf et al., 2017; Lim et al., 2013; Simpson et al., 1991; Zangeneh et al., 2021).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보건의료팀과 공유하도록 촉진하며, 그 결과 건강결과(health outcomes)가 향상되고, 환자 만족도(patient satisfaction)가 증가하며, 격차(disparities)가 감소한다(Lee et al., 2009; McKenzie, 2016). 임상진료에서 의사소통이 수행하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상가와 학생은 자신이나 지도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임상 의사소통 결핍(clinical communication deficiencies)을 보인다(Boulet et al., 2002; Loureiro et al., 2015; Simpson et al., 1991). 이러한 불일치는 임상실습(clerkships) 중

  • 공식적 훈련 경험의 부족,
  • 과정(process)보다 내용(content)을 강조하는 경향,
  • 모형(models)과 현실(reality) 사이의 실제 수행 간극(practice gaps),
  • 비전문적 교사(inexpert teachers) 등
  • ...보건의료 의사소통 교육의 여러 장벽에 의해 촉진된다(Kurtz et al., 2005; Rosenbaum, 2017).

임상 의사소통 기술(clinical communication skills)의 교수와 평가

  • 1991년 Toronto Consensus Statement2004년 Kalamazoo II Report의 출간으로 크게 형성되었다(Duffy et al., 2004; Simpson et al., 1991; Skelton, 2005). 이 보고서들은 필수 의사소통 기술(essential communication skills)을 확인하고, 평가 체크리스트(evaluation checklists)를 제공하며, 직접관찰(direct observation), 시뮬레이션 진료상황 평정(simulated encounter rating), 환자 설문(patient questionnaires)과 같은 추가 평가 전략을 제시하였다(Duffy et al., 2004; Skelton, 2005).
  • 더 최근에는 2024년 Glasgow Consensus Statement가 Kalamazoo Report가 놓은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환자와 임상적 만남(clinical encounters)을 갖는 모든 보건의료제공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그 모형을 조정하였다(Makoul et al., 2024). 또한 이 선언은 환자를 단순히 ‘부품을 고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온전한 사람(whole people)으로 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한다(Makoul et al., 2024). 이 모형은 Makoul 등(2007)이 발표한 Communication Assessment Tool의 사용을 권장한다(Makoul et al., 2007). 이 체크리스트 기반 도구는 환자와 의사가 자기평가(self-assessment)를 위해 작성할 수 있으며, 여러 국가와 다양한 임상 제공자 집단에서 사용되어 왔다(Makoul et al., 2024).

미국 의학교육에서 Step 2 Clinical Skills Exam의 등장은 평가 체크리스트가 빠르게 지배적 평가 방법이 되도록 촉진했고, 많은 이들이 임상 의사소통을 분리된 기술(discrete skills)로 가르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일부는 이 접근이 지나치게 환원주의적(reductionist)이고, 중요한 의사소통 행동(vital communication behaviors)을 누락하며, 비진정성 있는 의사소통(inauthentic communication)과 돌봄 태도(caring attitudes)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Mendick et al., 2015; Perron et al., 2015). 최근 Clinical Skills Exam이 중단됨에 따라, 일부는 이제 체크리스트에서 벗어나 학부 의학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에서 임상 의사소통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적기라고 제안하였다(Howley & Engle, 2021).

 

여러 연구는 학부 의학교육에서 임상 의사소통 기술의 습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별 요인(discrete factors)을 탐구해 왔다.

  • 일부 연구는 의과대학 프로그램 내 연령 또는 학년의 영향을 조사했지만, 결과가 종종 상충된다(Lim et al., 2013; Lumma-Sellenthin, 2012; Perron et al., 2015; Rees & Sheard, 2002; Taveira-Gomes et al., 2016).
  • 인종 및 민족 정체성(racial and ethnic identities)은 풍부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Lee et al., 2009; Leyerzapf et al., 2015; Osborne, 2001; Rees & Sheard, 2002, 2003; Teherani et al., 2018).
  • 젠더 차이(gender differences)의 연구는 수십 년 동안 의사소통 측정의 핵심 특징이었으며, 많은 연구가 여성이 남성보다 더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한다고 제안해 왔다(Graf et al., 2017; Lumma-Sellenthin, 2012; Rees & Sheard, 2002; Taveira-Gomes et al., 2016).
  • 지난 10년 동안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의사소통 연구의 초점이 되었고, 여러 연구자는 LGBTQIA+ 사람이 의학 분야의 과소대표 집단(underrepresented in medicine categories)에 포함되어야 하며 소수자 스트레스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하였다(Eliason et al., 2011; Sánchez et al., 2015; Sitkin & Pachankis, 2016).
  • 추가 요인에는 질병 또는 장애 경험(experiences with illness or disability)(Stergiopoulos et al., 2018), 종교성(religiosity)(Curlin et al., 2006; Woods & Hensel, 2018), 이민자 또는 이민자의 자녀라는 위치(Lee et al., 2009; Leyerzapf et al., 2015), 부모가 의사인 경우(Rees & Sheard, 2002), 1세대 의과대학생(first-generation medical student) 여부(Brosnan et al., 2016), 성격(personality)(Lievens et al., 2002)이 포함될 수 있다.

임상 의사소통에 관한 기존 연구에는 몇 가지 주요 이론도 포함되어 있다.

  • 소수자 스트레스 이론(minority stress theory)은 젠더, 인종 또는 민족, 성적 지향을 포함해 주변화된 정체성(marginalized identities)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가해진다고 제안한다(Cyrus, 2017; Sitkin & Pachankis, 2016).
  • 정체성 일치성(identity concordance)은 환자와 의료제공자가 하나 이상의 특성을 공유함으로써 유사성(similarity)의 느낌이 생기는 상황을 설명한다(Moore et al., 2023; Street et al., 2008). 이 이론 안에는 인종 일치성(racial concordance), 젠더 일치성(gender concordance), 언어 일치성(language concordance), 사회적 일치성(social concordance)과 같은 여러 하위 영역이 있으며, 각각은 의사-환자 의사소통의 맥락에서 탐구되어 왔다. 사회적 일치성은 인종, 젠더, 연령, 교육과 같이 여러 공유 정체성(shared identities)의 유사성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Thornton et al., 2011).
  • 여러 공유 정체성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를 가능하게 하는 영향은 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 theory)으로 설명될 수 있다(Leyerzapf et al., 2015). 이 이론은 유색인종 LGBTQIA+ 여성과 같이 복수의 주변화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경험하는 독특한 억압(oppression)과 차별(discrimination)의 유형에 초점을 둔다(Cyrus, 2017).
  • 이러한 각각의 이론은 정체성(identity)과 살아온 경험(lived experience)에 관련되어 있으며, 의과대학생이 임상 의사소통을 정의하고 수행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과대학생이 임상 환경(clinical settings)에서 어떻게 의사소통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저자들은 연구 과정을 안내할 일반 의사소통(general communication) 프레임워크를 확인하기로 하였다.

  • 의사소통의 거래 모형(Transaction Model of Communication, TMC)은 1970년에 개발되었고, 현대 의사소통 모형(modern model of communication)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Barnlund, 1970; Lapum et al., 2020). TMC는 의사소통이 의사소통자(communicators)가 사회적 현실(social realities)을 생성하고 의미(meaning)를 공동으로 구성(co-create)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Barnlund, 1970). 의사소통은 양방향적(bidirectional), 역동적(dynamic), 연속적(continuous),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 반복 불가능(unrepeatable), 되돌릴 수 없음(irreversible), 그리고 맥락(contexts)에 적응적이다(Barnlund, 1970). 이러한 맥락에는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s; 예: 규칙과 규범), 관계적 맥락(relational contexts; 즉 의사소통자 사이의 대인관계 역사),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s; 예: 젠더, 인종, 계층)이 포함된다.

본 연구는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의과대학생의 인식과, 그러한 요인이 의과대학 경험(medical school experience)의 과정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다음의 연구질문(research questions)을 개발하였다.

  • 1. 의과대학생이 임상 맥락(clinical contexts)에서 의사소통하는 방식에는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가?
  • 2. 의과대학 경험은 그러한 요인이 진화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재료 방법 (Materials and methods) 

자료 수집 (Data collection) 

본 연구의 방법론은 현상학(phenomenology)을 사용한 순수 질적 연구(purely qualitative study)였다. 이 접근은 해석주의 패러다임(interpretivist paradigm)에 근거했으며, 상대주의 존재론(relativist ontology)주관주의 인식론(subjective epistemology)을 활용하였다(Alharahsheh, 2020). 연구자들은 연구 구상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 이 연구를 해석적 현상학(interpretive phenomenology)에 기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이 접근이 임상 의사소통 훈련(clinical communication training)을 받고 임상 의사소통자로 성장하는 의과대학생의 주관적 경험(subjective medical student experience)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을 얻도록 해 줄 것이라고 보았다.

 

  • 저자들은 단일한 진리(singular truth)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무형의 정신적 구성물(intangible mental constructions)에 의해 현실(realities)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상대주의 존재론에 관여하였다(Moon & Blackman, 2014).
  • 또한 그들은 의미란 주체(subject)가 대상 또는 경험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주관주의 인식론을 활용하였다(Moon & Blackman, 2014).

 

KV는 상대주의와 주관주의를 자신의 입장으로 밝힌다. EMR은 구성주의 패러다임(constructivist paradigm), 비판적 실재론 존재론(critical realism ontology), 주관주의 인식론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AJN은 상대주의와 주관주의를 자신의 입장으로 밝힌다. 저자들은 분석과 원고 작성 과정에서 개인적 이론적 입장(personal theoretical stances)과 선택한 연구방법론(selected research methodology)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협의하였다.

 

해석적 현상학은 사람들이 마주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주관적 경험(subjective experiences)을 기술하고자 한다(Nayar et al., 2014). 본 연구의 관심 현상(phenomenon of interest)은 의과대학생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과 의과대학생으로서 자신의 주관적 경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식별하는 것이었다. 제1저자(KV)는 2021년 8월부터 2022년 5월까지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반구조화 면담(semi-structured interviews)을 수행하였다. 면담은 KV와 두 명의 선임 교육연구자(senior educational researchers)가 만든 스크립트(Supplement 1)에 의해 안내되었다. 이 스크립트는 의사소통의 거래 모형(TMC)과 국제 보건의료 학생의 임상 의사소통 기술에 관한 문헌고찰(literature review)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 자료들은 의사소통이 물리적(physical), 생리적(physiological), 심리적(psychological), 사회적(social), 관계적(relational), 문화적(cultural)이라는 여섯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고 제안하였다(Barnlund, 1970; Cargill, 2019; Lapum et al., 2020). 이 요인들의 설명은 평가, 해체, 재구성되어 면담 스크립트 프레임워크로 전달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스크립트는 1학년 의과대학생 2명과 보건의료 전문가 1명에게 파일럿되었고, 이후 명료성과 흐름을 위해 수정되었다(Veazey, 2023).

 

학생들은 University of Mississippi Medical Center(UMMC)에서 편의표집(convenience sampling)과 눈덩이표집(snowball sampling) 방법을 통해 모집되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모든 학생에게 연구 설명, 동의 문서, 선택적 인구통계 설문(optional demographic questionnaire)이 이메일로 전달되었다. 설문 작성은 참여 동의를 의미하였다. 동의서를 작성한 참여자는 면담 일정을 잡기 위해 KV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면담 후 참여자들은 연구 모집 안내문을 다른 학생 두 명에게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면담은 KV의 개인 사무실에서 대면으로, Microsoft Teams를 통해, 또는 Google Voice를 통해 수행되었다. 한 번의 면담을 제외하고 모든 면담에는 다른 사람이 참석하지 않았다.¹ 각 면담은 연구 인력 소개와 연구 개요 제공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면담은 한 번의 자리에서 완료되었다. 참여자는 연구자와 연구 자체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받았다. 본 연구는 UMMC Institutional Review Board(IRB_2021V0546)의 승인을 받았다.

¹ 한 학생은 자신의 룸메이트가 참석하기를 요청하였다.

자료 분석 (Data analysis) 

자료는 연구자들이 자료포화(data saturation)에 도달했다고 판단할 때까지 수집되었다. 자료포화란 자료 수집과 분석 과정에서 더 이상 새로운 유의미한 발견이 나타나지 않는 시점을 의미한다(Fusch & Ness, 2015). 모든 면담은 KV가 수행, 녹음, 전사하였다. KV는 면담 중 현장노트(field notes)를 작성했고, 이는 전사 과정에서 참조되었다. 전사본은 면담 완료 후 3개월 이내에 참여자에게 되돌려 보내져 구성원 확인(member checking)을 받았다. 참여자는 전사본의 정확성을 검토할 기회를 제공받았고, 검토하지 않을 경우 전사본이 그대로 분석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참여자의 사생활은 여러 방법으로 보호되었다. 동의 문서와 인구통계 정보는 REDCap을 통해 요청 및 보관되었고, EMR과 KV만 접근할 수 있었다. 일정 조율과 구성원 확인에 관한 의사소통은 보안이 유지되는 기관 이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식별 가능한 정보는 전사 직후 전사본에서 제거되었다. 마지막 면담 이후 3개월 뒤 남은 자료에서 모든 이름과 이메일 주소가 제거되었다. 출판된 모든 정보는 비식별화(de-identified)되었다(Veazey, 2023).

 

전사본은 Kiger와 Varpio(2020)가 제시한 단계에 따라 주제분석(thematic analysis)을 거쳤다. 본 연구는 네 단계의 코딩을 사용하였다.

  • 첫 번째 단계에서는 제1저자와 제3저자(KV와 EMR)가 3학년 및 4학년 전사본 중 처음 10개를 시간순으로 연역적으로 코딩(deductive coding)한 뒤, 일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해석을 비교하였다. 연역적 코드북(deductive codebook)은 TMC에 기반하여 구축되었으며, TMC는 이전에 보건의료 분야 의사소통을 탐구하는 데 사용된 바 있다(Cargill, 2019; Paige et al., 2018).
  • 그 다음, 모든 3학년 및 4학년 전사본의 깨끗한 사본(clean copies)을 In Vivo Coding과 Concept Coding을 사용하여 귀납적으로 코딩(inductive coding)하였다(Saldaña, 2016).
  • 세 번째 코딩 단계는 기존의 모든 코드를 범주(categories)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본 연구에서 코드(codes)는 관심 현상에 대해 배우기 위해 의미 있게 평가될 수 있는 원자료(raw data)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정의되었다. 범주는 일정한 공유 의미(shared meaning) 또는 경험을 함축하는 관련 코드들의 묶음이었다. 이러한 범주는 이어서 주제(themes)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었고, 주제는 자료의 본질을 포착하는 범주 간 관계를 명시적으로 정의하였다. KV는 코딩 과정의 두 번째부터 네 번째 라운드까지 수행하였고, EMR은 코드북의 일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 전사본을 코딩하였다(Veazey, 2023).

1학년 및 2학년 학생의 전사본은 범주를 사용하여 코딩되었으며, 자료가 요구하는 경우 새로운 범주가 도입되고 기존 범주가 재정의되거나 제거되었다. 최종 코딩 라운드는 세 번째 라운드에서 확장된 범주를 사용하여 3학년 및 4학년 전사본을 다시 코딩하는 것이었다. 이 최종 단계는 코드 적용의 일관성을 보장하고, 연구자들에게 결과에 대한 더 탄탄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코딩 과정은 질적 및 혼합방법 연구자료의 관리, 분석, 제시를 위한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인 Dedoose version 9.0.62를 통해 관리되었다(SocioCultural Research Consultants, 2022). 모든 저자가 주제 구성에 참여하였다. 참여자는 최종화된 주제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요청받지 않았다(Veazey, 2023). 본 연구는 보고의 철저성(thoroughness)을 초기 평가하기 위해 COREQ checklist를 사용하였다(Tong et al., 2007). 이 체크리스트는 Supplement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질적 연구의 신뢰성(trustworthiness)을 보장하기 위한 추가 전략으로 다음을 제시한다(Ahmed, 2024)(Table 1).

1. 신뢰성 확보 방법 (Methods to Ensure Trustworthiness) 

신뢰성 구성요소 연구자가 사용한 전략 상세 정보
신빙성(Credibility) 장기적 관여(Prolonged engagement) 저자들은 연구참여자 모두와 이전 관계를 통해 신뢰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관계에는 동료(KV), 조교(KV, EMR), 교수자(EMR, AJN)가 포함되었다. 면담자(KV)는 면담 기간 동안 추가로 라포를 형성했으며, 많은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 준 것에 대해 면담 종료 시 감사를 표했다.
신빙성(Credibility) 성찰성(Reflexivity) 전문가 권고에 따라, 저자들은 자신의 주관적 해석이 연구 질문과 분석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고려하기 위해 연구와 관련한 자신의 위치(position)를 성찰하였다(Olmos-Vega et al., 2023). 전체 성찰성 진술(reflexivity statement)은 Supplement 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빙성(Credibility) 삼각검증(Triangulation) 저자들은 면담, 현장노트, 메모, 빈번한 성찰적 논의 등 다양한 자료수집 수단을 활용하였다. 모든 노트와 파일은 주제분석 과정 전반에서 분석되었다.
전이가능성(Transferability)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s) 저자들은 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본 연구의 적용 가능성과 관련성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연구 맥락, 참여자, 방법, 주제에 대한 풍부한 설명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였다.
전이가능성(Transferability) 표집 전략(Sampling strategies) 본 연구에는 표집 절차에 대한 상세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추가 세부사항은 이 원고의 학위논문 형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Veazey, 2023).
의존가능성(Dependability) 방법론적 문서화(Methodological documentation) 연구팀은 각 연구 단계와 그 단계의 근거를 철저히 문서화하였다. 이러한 문서는 주제분석 과정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참조되었다.
의존가능성(Dependability) 감사추적(Audit trails) 방법론 변화, 코드북 변화, 주제 변화에 대한 기록이 전 과정에서 유지되어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연구자의 위치성 편향(positional biases)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의존가능성을 보장하였다.
확증가능성(Confirmability) 동료 검토/논의(Peer debriefing) KV는 연구 해석을 검증하기 위해 추가 저자뿐 아니라 자신의 대학원 프로그램 동료와 다른 의과대학 교수진과 자주 상의하였다. 본 연구 결과는 2023년 봄 공개 형식으로 발표되었고, 다양한 동료와 전문가가 결과에 대한 추가 피드백을 제공하였다.
확증가능성(Confirmability) 구성원 확인(Member checking) 참여자들은 면담 전사 후 연락을 받아 자신의 경험이 적절히 표현되었는지 확인하였다. 또한 자신의 전사본을 수정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변경할 기회도 제공받았다.
확증가능성(Confirmability) 성찰적 저널링(Reflexive journaling) KV는 연구 과정 전반에서 광범위한 메모를 유지하여 연구자의 초기 인식, 자료 해석, 연구 프로젝트와 관련한 이론적 위치성을 지속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메모들은 코드와 주제의 구성 및 수정 과정 전반에서 검토되었다.

결과 (Results) 

참여자는 UMMC에서 모집되었다. UMMC는 해당 주의 유일한 학술의료센터(academic medical center)이자 미국식 의과대학(allopathic medical school)이다. 지리적 위치와 만성적으로 건강이 취약한 인구집단(chronically health-impaired population) 때문에 UMMC는 종종 미시시피 주민에게 고급 보건의료(advanced healthcare)를 제공하는 유일한 기관이 된다. UMMC는 매년 약 165명의 학생을 1학년 의학 코호트로 입학시킨다.

 

본 연구 당시 UMMC의 의학교육과정은 2년의 전임상 단계(preclinical phase)에 이어 2년의 임상 단계(clinical phase)로 나뉘어 있었다.

  • 첫 번째 단계에는 기초과학(foundational sciences)과 임상기술(clinical skills) 교과가 포함되었다. 이 단계는 gross anatomy, pathology, disease prevention 등 분리된 교과목(isolated courses)의 연속을 통해 이루어지는 강의 기반 교육(lecture-based teaching)이 지배적이었다. 임상기술 학습을 시작하기 위해 학생들은 Introduction to the Medical Profession(IMP)과 Medical Neuroscience and Behavior(MNB)를 수강하였다. MNB 과목은 사례기반학습(case-based learning)을 포함했고, IMP 과목은 병력청취(history-taking), 의학면담 기술(medical interview skills), 라포 형성(rapport-building), 의무기록 작성(note-taking), 전문직 정체성 개발(professional identity development)을 소개하였다(Veazey, 2023). 학생들은 일련의 표준화 환자 진료상황(standardized patient encounters)과, 2학년 말 환자 방문 중 감독하의 지도를 제공한 교수 프리셉터(faculty preceptors)에 의해 평가되었다. MNB와 IMP 과목은 빈곤(poverty), 물질남용(substance abuse), 전문직간 의사소통(interprofessional communication) 등 학생 경험을 넓히기 위한 일련의 시뮬레이션 경험(simulation experiences)도 포함하였다. 전임상 단계가 끝날 때 학생들은 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USMLE) Step 1에 합격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 임상 단계 동안 학생들은 직접 환자진료(direct patient care)를 통해 배우기 위해 대학 부속 병원과 클리닉의 여러 부서를 순환하였다(UMMC, 2022). 3학년에는 여섯 개 핵심 임상실습(core clerkships)을 순환했으며, 각 실습에는 두 개의 객관구조화진료시험(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s, OSCEs)이 포함되었다. OSCE는 제한시간이 있는 표준화 환자 진료상황(timed standardized patient encounters)과 그 후의 환자 기록(patient note) 작성으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체크리스트 루브릭(checklist rubric)을 사용하는 평가자에 의해 평가되었고, 일부 임상 현장은 전반적 평정척도(global rating scale)도 통합하였다. 전반적 평정척도는 체크리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학생 수행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학년에는 여덟 개 전문과 실습(specialty clerkships)을 순환했으며, 그중 네 개는 필수였다. 임상 단계가 끝날 때 학생들은 USMLE Step 2 Clinical Knowledge Exam에 합격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2021년 이전에는 추가적인 면허시험인 USMLE Step 2 Clinical Skills(CS)가 있었다. Step 2 CS 시험은 과거 8시간 동안 12개의 OSCE로 구성되었다. 이 시험은 Covid-19 팬데믹의 결과로 중단되었지만, 미국 의과대학에서 임상기술이 가르쳐지고 평가되어 온 방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표본의 기술 (Description of the sample) 

총 22건의 면담이 수행되었다. 여기에는 M4 6명, M3 4명, M2 6명, M1 6명이 포함되었다. 면담 시간은 41분에서 155분 사이였고, 평균은 76분이었다. 7명의 참여자가 전사본의 정확성을 확인했으며, 2명은 사소한 수정을 하였다. 면담 이후 연구에서 탈락한 참여자는 없었다. 참여자 연령은 23세에서 39세까지였으며, 평균은 26세였다. 참여자들은 다양한 사회인구학적 배경(sociodemographic backgrounds)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수는 자신을 White 또는 Caucasian, heterosexual, female로 확인하였다. 전체적으로 참여자들은 자신을 cisgender male, female, male; African American, Asian, Black, Caucasian, Kenyan American, North African Middle Eastern, White; bisexual, gay, heterosexual, pansexual, queer, straight로 확인하였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자신을 1세대 의과대학생(first-generation medical students)이자 종교적(religious)이라고도 확인하였다.

주제분석 결과 (Results of thematic analysis) 

초기 연역적 코드북에는 3학년 및 4학년 전사본에 적용될 100개의 코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귀납적 코딩 단계에서는 추가로 1038개의 코드가 생성되어 총 1138개의 코드가 되었다. 이 코드들은 67개의 범주로 통합되었다. 이 범주들은 의과대학생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요인을 확인한 여섯 개의 주제와, 의과대학 경험의 영향을 설명하는 하나의 주제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 영향 요인을 확인한 주제는 다음과 같이 명명되었다.
  • (1) 개인 정체성(Personal Identity), (2) 가정과 편견(Assumptions and Biases), (3) 기대와 규범(Expectations and Norms), (4) 언어(Language), (5) 일화적 맥락(Episodic Contexts), (6) 편안함과 신뢰(Comfort and Trust).
    • 주제 1은 세 개의 하위주제로 나뉘었다.
      • 1a) 외재적 정체성(Extrinsic Identity),
      • 1b) 이전의 살아온 경험(Previous Lived Experiences),
      • 1c) 내재적 정체성(Intrinsic Identity).
  • 의과대학 경험의 영향에 대해 하나의 주제, 즉 (7) 개인 정체성의 진화(Evolution of Personal Identity)가 구성되었다.
    • 이 주제에는 네 개의 하위주제가 있었다.
      • 7a) 내재적 정체성에 대한 영향(Influence on Intrinsic Identity),
      • 7b) 정신건강에 대한 영향(Impact on Mental Health),
      • 7c) 인식 형성(Building Awareness),
      • 7d) 임상 준비성 개발(Developing Clinical Preparedness).
    • 주제는 기술(description)과 이를 뒷받침하는 참여자 인용문(supportive quotes)의 순서로 제시되었다.

주제 1: 개인 정체성 (Theme 1: Personal identity) 

이 주제는 한 개인의 외적·내적 특성이 그 사람의 살아온 경험의 무게와 결합하여,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형성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일반적으로 세 개의 하위주제로 묶였다.

 

외재적 정체성(Extrinsic Identity)은 전통적으로 외적 특성 및 행동과 관련되어 온 정체성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정체성에는 젠더(gender), 연령(age), 인종(race), 민족성(ethnicity),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포함된다. 이러한 정체성 중 다수는 타인에게 즉시 드러나지 않거나, 한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과 다르게 외부자에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주제는 한 사람이 자신의 외재적 정체성, 즉 세상이 보기에 나는 누구처럼 보이는가(Who I look like to the world)”에 대한 지식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접근하는 방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정의한다. 이는 타인이 한 사람의 외적 정체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제가 게이라는 점에서, 저는 의사소통의 모든 측면이 면밀히 조사되고 현미경 아래 놓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이 의사소통할 때 그런 느낌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무시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무시당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저는 듣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들리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 M1-3.

 

일치하는 외재적 정체성(concordant extrinsic identities)은 학생들이 라포를 구축하고 더 쉽게 공감(empathize)하도록 하는 것으로 자주 언급되었다. 불일치하는 외재적 정체성(discordant extrinsic identities)을 경험할 때, 참여자들은 이것이 가정에 기대거나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려 하는 것과 같은 다른 요인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고 자주 언급했다.

“저는 때때로 다른 사람들보다 사람들의 정체성을 조금 더 의식하는 편입니다. 특히 인종과 관련해서요. … 만약 유색인종인 사람이 있고, 우리와 닮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찬 방에서 저를 바라보면서 ‘아, 저 여자애는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요.” – M4-2(자신을 Asian으로 확인함).

 

이전의 살아온 경험(Previous Lived Experiences)은 개인이 내린 선택과, 그 선택이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포괄하였다. 자주 언급된 경험에는 부모가 되는 것, 결혼, 1세대 의과대학생, 이민자 또는 이민자의 자녀, 개인적 질병 또는 비극 경험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참여자가 자신, 자신의 공동체, 주변의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질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만성통증 또는 급성질환을 직접 겪은 참여자는 그러한 경험이 자신만의 상실을 경험하는 환자와 더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했다고 공유하였다.

“저는 한때 패혈증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음, 그래서 퇴원할 때 제가 어떤 느낌이었으면 했는지 알아요. 병원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거든요. … 그래서 저는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무엇을 알고 싶을까? 이 만남을 떠날 때 어떤 느낌이길 원할까? 내가 저들이라면 어떤 질문을 갖고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환자와 이야기하러 들어가기 전에 그런 답들을 어느 정도 모읍니다.” – M3-2.

 

경험 자체는 분리되어 있었지만(discrete), 그 영향은 더 미묘했다. 예컨대 특권(privilege)에 대한 인식 증가, 지지 공동체(communities of support) 형성, 자신의 강점과 한계 인정 등이 있었다.

“저는 … 아버지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 저와 제 형제는 … 늘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어요. … 저는 이민자와 많이 동일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버지가 이민자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 그래서 [영어를 하지 않는 환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낍니다.” – M2-3.

“아들을 갖기 전에는, 소아과 로테이션 동안 제가 의사소통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아이에게서 병력을 수집하는 것뿐 아니라, 특히 아이에 대해 부모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엄마가 되었고,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 M4-6.

 

내재적 정체성(Intrinsic Identity)은 한 사람이 관여해 온 경험과 상호작용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추상적이고 수량화할 수 없는 개념을 가리켰다. 이러한 개념에는 공감(empathy), 겸손(humility), 성격(personality), 사회성(sociability), 학습과 의사소통에 대한 태도(attitudes toward learning and communication), 의학 경력을 추구하는 이유(reasons for pursuing careers in medicine)가 포함되었다.

“제가 [의학을 추구하는] 주된 이유는 사람들을 돕고 섬길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제 주된 이유라면, 그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제가 실제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M1-2.

“누군가 들어와서 질문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조금 더 쉽습니다. 반대로 누군가 들어왔는데 약간 입을 다물고 있다면 … 완전히 다른 성격이죠, 아시잖아요? 그래서요.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정말 차이를 만듭니다.” – M3-4.

“제가 임상기술이나 임상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는 것에 대해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환자와 이야기할 때 배운 것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 그것을 기술(skill)로 생각하면 개선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됩니다. 바라건대요.” – M4-1.

 

이러한 요인들은 참여자가 자기 자신, 자신의 경험, 자신의 가치, 자신의 목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였다. 예를 들어 많은 참여자는 형성적 대화(formative conversations)를 하기 위해 겸손과 적응성(adaptability)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즉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생각을 교환할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이전 인식의 부정확성을 인정해야 하며, 새로운 입장을 수용하도록 자신의 틀(framework)을 조정해야 한다. 고집(stubbornness)과 자만(pride)은 종종 좋지 않은 의사소통 유형의 예로 언급되었다.

“저는 겸손을 많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겸손하다면 언제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언제든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만약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배웠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정체된 것입니다. 더 이상 성장은 없고, 아무것도 더 배우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지 않습니다.” – M2-1.

주제 2: 가정과 편견 (Theme 2: Assumptions and biases) 

앞선 주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이 주제는 타인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즉 “세상이 내가 어떻게 보인다고 생각하는가(How the world thinks I look)”를 설명하였다.

 

  • 가정(assumptions)은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참이라고 여겨지는 내적 과정(internal processes)을 가리켰다.
  • 편견(biases)은 그러한 가정이 의사소통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를 가리켰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일 수 있고,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일 수 있다.

“저는 흑인이고, 때때로 … 만약 그 사람이 제 환자라면 … 그들의 반응이 반드시 저에게 향하지 않거나, 제가 예비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갈 때, 제가 그들의 의료팀의 일부라는 사실에 분명히 놀라거나 흥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 M3-3.

 

가정과 편견은 양방향적으로 발생하고(bidirectionally), 종종 피할 수 없으며(unavoidable), 항상 완화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한 참여자가 말했듯이, 가정은 의료제공자와 환자 사이의 연결(connection)을 손상시킨다.

“예를 들어 환자의 성적 지향이나 약물 사용 이력 같은 것을 가정하는 것, 사람들에 대해 가정하는 것 말입니다. 어떤 가정이든 … 의료제공자와 환자 사이의 단절(disconnect)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 M1-6.

 

사람들이 가정과 편견을 만드는 요인의 예에는 젠더, 인종 또는 민족, 종교적 소속(religious affiliation), 키(height), 나이(age), 사회경제적 계층(socioeconomic class)이 포함되었다. 후자의 예들은 많은 학생이 마주하지만 자주 간과되는 경험으로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키가 크고 수염이 있는 남성에 대한 가정과 그들이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일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가정이 있었다. 종교성(religiosity)과 계층(class)이 지니는 무게는 참여자들에게 강하게 느껴졌고, 종종 미국 남부(Southern United States)에 있다는 특정 사회적 맥락 안에 위치하였다.

“저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고, 최근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도 조금 있어서, 기독교에 대해 매우 강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에 대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니까요.” – M1-4.

“우리 반의 많은 사람들은 더 돈이 많은 가정 출신입니다. … 당신과 환자가 같은 계층에 있다면, 그들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이, 의사소통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에게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M2-4.

주제 3: 기대와 규범 (Theme 3: Expectations and norms) 

개별 의사소통자 바깥에는 더 넓은 사회적·문화적 기대(expectations)규범(norms)이 있었다.

 

  • 기대는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느낌을 설명했으며, 일반적으로 과거 행동 또는 사건의 역사에 기반한다.
  • 규범은 특정 집단이나 문화의 일부로 존재함에 따라 한 개인 또는 집단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s)을 포함하였다. 예를 들어 응급의학 클리닉에서 의학 수련생으로 참여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처음 환자와 상호작용할 때, 음, 기대를 설정하세요. 그러면 환자의 정서 상태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 특히 그들이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고 응급실에서 아주 오래 기다렸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경우에는요. … 기대 설정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정보 교환을 효과적으로 완전히 촉진합니다.” – M4-4.

 

기대와 규범은 지배적 문화 가치(dominant cultural values)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흔히 진료과(department), 기관(institution), 임상 현장(clinical location)의 가치였다. 이러한 요인들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맡을 것으로 기대되는 역할(roles)과, 임상 및 교육 환경에서 따라야 할 프로토콜(protocols)과 스크립트(scripts)의 유병성(prevalence)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로테이션 부분에서 어떤 기대도 전혀 말하지 않은 것이 의사소통 오류의 일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할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을 때 의사소통하기가 더 쉽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레지던트가 많이 바뀌기 때문에,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접근하기를 원하는지 정확히 알게 됩니다.” – M3-2.

 

예의는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 환자와 충분하지만 과도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것, 존칭(honorifics)을 사용할 때와 대명사(pronouns)를 물어볼 때를 결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명시적·암묵적 규범(explicit and implicit norms)을 따르는 것은 라포를 촉진하고, 적대적 상황(antagonistic situations)을 완화하며, 특히 대규모 진료팀 환경(large care team settings)에서 효율적인 진료 제공을 가능하게 했다.

“저는 대화에서 예의를 지키는 법을 항상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네, 부인. 네, 선생님. 아니요, 부인. 아니요, 선생님.’ 같은 표현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네, 부인’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정말 기억해야 합니다. … 그래서 저는 … 분위기를 읽고 누가 그것을 저에게 기대할지 아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조금 더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말하는 방식을 분명히 바꿉니다.” – M2-6.

주제 4: 언어 (Theme 4: Language) 

언어(Language)라는 주제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확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적(verbal), 비언어적(nonverbal), 문서화된(written) 행동을 포괄한다. 이 주제에는 영어와 비영어 언어, 몸짓언어(body language), 전문직 언어(professional language)와 일반인 언어(layperson’s language)가 포함되었다. 또한 의사소통자 사이에서 언어를 전달하는 수단, 즉 대면(face-to-face), 전화(telephone), 영상통화(video calls)도 포함되었다.

“아프고 의료를 받고 싶은데 같은 언어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정말 무섭고 좌절스러울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은 번역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았고 … 실제로 스페인어에 유창한 사람을 불러야 했습니다. … 스페인어로는 제가 제 소개를 할 수 있고 간단한 문장도 만들 수 있지만, 실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닙니다. … ASL도 마찬가지입니다.” – M1-1.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에 특화된 전문용어(jargon)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저는 그것이 나쁜 의사소통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 M2-5.

 

여러 참여자는 적절한 수준의 눈맞춤(eye contact), 사지 위치(limb positioning), 제스처 사용(use of gestures),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을 전달하기 위해 얼굴과 몸통을 어떻게 향하게 할 것인지 등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nonverbal communication skills)을 명시적으로 배우는 것의 이점과 어려움을 설명하였다.

“저는 환자가 일반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느끼도록 몸짓언어를 제시하는 데 일률적인 것은 아니지만 매우 표준화된 방식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 저는 항상 몸짓언어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다리를 꼬지 않는 것, 팔짱을 끼지 않는 것, 얼굴과 환자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것 … 환자의 공간에 너무 들어가지 않지만, 동시에 너무 뒤로 기대고 편안하게 있지도 않는 것. 그런 작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 M1-5.

 

참여자들은 또한 Covid-19 팬데믹이 자신의 언어에 미친 영향도 언급하였다. 특히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비언어적 행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원격의료 의사소통(telehealth communication)에 숙달될 필요가 증가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그때가 2020년 여름쯤이어서, 매우 독특하게 전환되는 시기였습니다. … 우리가 막 항상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을 때 마스크를 쓰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 … 상부 얼굴(upper face)의 표정 반응이 더 중요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음. 그리고 기술적으로 청각장애가 없더라도 우리는 얼굴 전체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바꾸었습니다. 아마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제스처를 사용할 것입니다.” – M3-3.

주제 5: 일화적 맥락 (Theme 5: Episodic contexts) 

관여한 사람들, 그들의 위치, 의사소통 주제, 참여자의 기분은 모두 의사소통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어나는지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요인들은 일화적 맥락(Episodic Contexts)으로 묶였으며, 이는 각 의사소통 만남(communication encounter)마다 달라지는 일시적 요인(transient factors)을 가리켰다.

“환자와 들어가서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 친근해야 합니다. 임상 진료팀과 있을 때 친근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환자와 있을 때는, 특히 라포를 형성하는 데 그것이 꽤 핵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어느 정도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반면 임상팀에서는 우리 모두가 긴급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짧고 요점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 M2-3.

 

추가적인 일화적 맥락에는 명시적 시간 제약(explicit time constraints)의 존재 여부, 의사소통자 사이에 이전 관계(prior existing relationship)가 있었는지 여부, 의사소통자의 생리적 상태(physiological state)가 포함되었다. 질병(sickness), 스트레스(stress), 피로(fatigue), 배고픔(hunger), 목마름(thirst)은 어떤 의사소통자가 그것을 경험하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확립하는 데 제한 요인(limiting factors)으로 언급되었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아픕니다. 그들이 평소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매우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은 괜찮습니다. 당신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파서가 아니라 그냥 그날 친절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당신은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그것도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 M2-5.

 

임상 의사소통 교육의 영역에서 학생들은 또한 만남의 진정성(authenticity)이 자신의 의사소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많은 학생은 특히 OSCE와 표준화 환자 만남(standardized patient encounters)이 비진정적(inauthentic)이라고 말했고, 이것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사소통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했다.

“표준화 환자 면담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 때로는 약간 성가실 수 있습니다. … 저는 여전히 3학년의 실제 임상경험(actual clinical experience)이 … 정말로 모든 것이 맞물리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실제 환자, 실제 사람과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 그것은 시뮬레이션할 수 없습니다.” – M4-3.

주제 6: 편안함과 신뢰 (Theme 6: Comfort and trust) 

학생들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환자, 환자 가족(patient’s family), 다른 보건의료제공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능력의 관점에서 정의했으며, 이는 환자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상호 의사결정(mutual decision-making)을 가능하게 했다. 참여자들은 효과적인 라포 형성은 편안함과 신뢰의 환경(environment of comfort and trust)을 확립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편안함(comfort)은 안도감과 이완감, 또는 고통(distress)의 완화를 의미하였다. 신뢰(trust)는 고통의 순간에 누군가가 자신을 돕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하였다.

“저는 병원에서 더 편안해지는 법을 분명히 배웠습니다. … 모두가 환자를 위해 편안한 환경을 만들고, 그것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 제가 환자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 환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M4-2.

 

참여자들은 좋은 의사(good doctors)는 타인이 자신과 이어서 자신의 판단(judgement)을 신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편안함이나 신뢰가 없을 때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무너졌고, 이는 의료제공자가 환자중심진료(patient-centered care)를 제공하는 능력을 저해했다.

“성생활력(sexual histories)과 약물사용력(drug use histories)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보았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이 불편했고, 환자도 불편했으며, 그 만남에서는 불편함의 정도 때문에 정보가 효과적으로 공유되고 수집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 M4-5.

 

편안하고 신뢰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참여자들은 연민(compassion),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tivity), 공감(empathy), 겸손과 적응성(humility and adaptability), 용서(forgiveness), 정직(honesty), 인내(patience),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보여줄 것을 권고하였다. 참여자들은 이러한 특성을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될 수 있는 기술(skills to be trained)로 말했다. 이러한 행동을 숙달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은 많은 참여자가 표현했듯이 “좋은” 의사와 “위대한” 의사(great doctor)를 가르는 핵심 차이였다.

“공감입니다. 환자를 위해 느낄 수 없다면, 환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환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있는 곳에서, 중간 지점이 아니라 그들이 있는 곳에서 만나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들과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도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감은 정말로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렵습니다.” – M3-1.

 

편안함과 신뢰의 존재는 환자결과(patient outcomes)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다. 환자는 자신이 연결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서 가장 잘 듣고 배운다는 것이다. 환자와 연결되는 능력은 여러 전문과와 진료환경(care settings)에 걸쳐 있었지만, 수련의 어느 시점에서든 모든 참여자에게 동등하게 영향력이 있었다.

“그 대부분은 제가 어떤 진료서비스(service)에 있는지에 따른 것 같습니다. … [일부 서비스]에서는 house medicine 같은 서비스에서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당신이 주치료팀(primary team)이고, 매일 아침 환자를 보러 갈 것이고,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환자가 병원에 머물도록 충분한 신뢰를 기본적으로 형성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 그들이 퇴원했을 때 나아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계속 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M4-1.

주제 7: 개인 정체성의 진화 (Theme 7: Evolution of personal identity) 

이 주제는 UMMC의 의학훈련을 거쳐 가는 과정과 의과대학생 자신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였다. 의과대학 경험은 참여자의 정체성을 변화시켰으며, 특히 네 가지 구체적 구성요소, 즉 내재적 정체성(intrinsic identity), 정신건강(mental health), 인식(awareness), 임상 준비성에 대한 느낌(feelings of clinical preparedness)을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앞서 내재적 정체성을 공감, 겸손, 성격을 포함하는 추상적 개념으로 정의한 것을 고려하면, 하위주제인 내재적 정체성에 대한 영향(Influence on Intrinsic Identity)은 이러한 요인 중 다수, 어쩌면 전부가 의학 분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변화하는 방식을 다루었다. 많은 학생은 임상 노출(clinical exposure), 특히 역사적으로 주변화되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공동체(historically marginalized and disadvantaged communities)와 일할 때 자신의 공감과 겸손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많은 학생은 지속적으로 자기옹호(self-advocate)를 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는 필요성의 결과로 자신의 성격이 더 외향성(extraversion) 쪽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또한 성찰적 검토(introspection) 기술의 습득을 설명했으며, 이는 자신의 의사소통 만남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접근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려 노력하게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올 때 저는 훨씬 더 소심했던 것 같습니다. … 지금은 제가 어느 정도 나서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 훈련을 통해 저 자신과 제 능력에 대해 훨씬 더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 그것이 확실히 저를 더 외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 특히 4학년 때와 레지던트 면접,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을 때, 그것은 사람을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고 목소리를 내도록 밀어붙여지는 것 같습니다.” – M4-6.

 

정신건강에 대한 영향(Impact on Mental Health)은 의과대학의 많은 엄격함과 스트레스, 그리고 ADHD, 불안(anxiety), 우울(depression)과 같은 정신건강 진단(mental health diagnosis) 등 개인적 상황에 대응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정신적 안녕(mental well-being)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종종 자신의 정신건강 변화를 부정적으로 설명했지만, 정신건강 자원(mental health resources)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사용하려는 의지의 향상, 정신건강 낙인(mental health stigma)에 맞서는 것, 타인의 정신건강 장애를 인식하고 적절히 돌보는 것을 옹호(advocate)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M1 시절은 … 정신건강 장애가 생기기에 완벽한 환경과 같았습니다. … 시험날에는 …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또는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노력할 마음도 들지 않았고, 모든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 M2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제 학습이 증가했고, 배우는 능력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제 정신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잘할지 못할지 걱정하거나, 완전히 번아웃되는 데 모든 시간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M2-3.

 

인식 형성(Building Awareness)은 사회적 건강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의학 내 대안적 진로(alternative career paths in medicine), 의학의 역사(history of medicine), 인구통계 변수(demographic variables)와 보건의료 차별(healthcare discrimination)의 관계 등 다양한 현상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빈번한 언급을 포함하였다.

“정말 영향력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미시시피에서 의학과 인종의 역사(history of race in medicine)에 대해 배웠을 때였습니다. … 제가 아마도 대부분 흑인일 인구집단을 치료하게 될 것임을 아는 것, 그들의 의학 경험과 그것이 얼마나 부정적일 수 있고 얼마나 두려울 수 있는지 아는 것이 … 실제로 그들의 걱정과 두려움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요. 그것은 분명히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 M1-2.

 

마지막으로 하위주제인 임상 준비성 개발(Developing Clinical Preparedness)은 자신의 보건의료 역량(healthcare competency)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많은 학생은 자신의 준비성에 대해 긍정적·부정적 표현 모두로 말했다. 그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학습 경험으로 Jackson Free Clinic, 즉 주로 불리한 위치의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학생운영 비영리 의료클리닉(student-run non-profit healthcare clinic), 프리셉터십 경험(preceptorship experience), 임상 로테이션(clinical rotations)을 확인하였다. 학생들은 OSCE 또는 표준화 환자 시나리오 훈련에 대해 혼재된 의견을 보였으며, 많은 학생이 낮은 진정성(poor authenticity)과 시간 제약(time constraints)이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고 연습하는 능력을 제한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임상 준비성에 대한 느낌은 여러 학생에게서 새로운 정체성, 즉 “미래의 의사(future doctor)”라는 정체성의 형성으로 이어졌다(M2-2).

“3학년과 4학년 동안 우리는 병리(pathology)뿐 아니라 민족성과 배경, 교육 배경 등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환자집단을 봅니다. 그래서 의사소통 시나리오 같은 면에서 거의 모든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레지던시에 들어가는 데 매우 준비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 M4-5.

논의 (Discussion) 

유능한 보건의료전문가(competent healthcare professionals)는 환자, 환자 가족, 다른 보건의료제공자와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본 연구는 정체성(identity)이 편안함과 신뢰의 환경을 확립하는 데 중심적 역할(central role)을 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이는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묘사되었다. 유사성의 느낌(concordance), 차별과 주변화를 영속화하는 권력체계(power systems)에 대한 경험(minority stress), 복수 정체성 사이의 관계(intersectionality)가 결합하여, 의사소통이 거래적으로(transactionally) 진행되는지, 라포가 형성되는지, 상호 이해(mutual understandings)와 개선된 건강결과(improved health outcomes)가 발생하는지를 결정한다. 다음 절에서 저자들은 정체성,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그리고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배우고 수행하는 데 정체성이 미치는 후속 영향을 중심에 두기 위한 몇 가지 구체적 권고를 제시한다.

  • A. 영어-비영어 간 언어, 전문직 언어-일반인 언어를 포함한 명시적 언어장벽 훈련(explicit language barrier training)에 조기 노출.
  • B. 환자, 환자 가족, 다른 보건의료제공자를 포함하도록 시뮬레이션(simulation) 확장.
  • C.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을 염두에 두고 전반적 평정척도(global rating scales)를 사용하여 임상 의사소통 평가.
  • D. 다양한 문화적 소수자 환자 및 제공자 집단(cultural minority patient and provider populations)에 조기 노출.
  • E. 전문직 정체성 개발(professional identity development), 전문직간 정체성 개발(interprofessional identity development), 전문직간 협력(interprofessional collaboration)을 강조하기 위한 전문직간 교육 경험(interprofessional education experiences)의 기회 확대.

임상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친 요인
(Factors that influenced clinical communication)
 

학생들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한 많은 요인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은 개인에서 시작하여 대인관계적(interpersonal), 환경적(environmental), 사회문화적(sociocultural) 요인을 포괄하도록 확장되었다. 각각의 개별 요인은 편안함과 신뢰의 환경 형성에 기여했으며, 그 위에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장기적 라포(long-term rapport)를 위한 강한 기반이 구축될 수 있었다. 이러한 요인을 확인함으로써 연구자들은 개인 정체성(personal identity)과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의 발달에서 의과대학 경험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통찰에 기반하여 연구자들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확립하기 위한 예비 이론 모형(preliminary theoretical model)을 생성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임상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인한 요인은 의사소통의 거래 모형(Transaction Model of Communication, TMC)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일화적 맥락이라는 주제는 주변 소음(ambient noise, 물리적 맥락), 의사소통자 사이에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관계적 맥락), 의사소통자의 기분(심리적 맥락)과 같은 요인을 포함하였다(Cargill, 2019; Lapum et al., 2020). TMC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은 편견, 가정, 기대, 규범 사이의 관계에 반영되었다. 편안함과 신뢰라는 주제는 라포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TMC가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공동체와 관계의 생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TMC는 정체성의 많은 요인을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s)으로 위치시키며, 본 연구는 이것이 정체성의 복잡한 본성과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일 수 있음을 제안한다.

 

학생들은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확립하는 것이 기술(skill)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라고 주장하였다.

  • 의학교육에서 임상 의사소통은 종종 분리되고 관찰 가능한 기술(discrete, observable skills)로 묘사되어 왔다. 학생들은 수행해야 할 행동의 체크리스트(checklists of behaviors)를 통해 자주 교육받았고, 유사한 체크리스트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수 및 평가 형식은 학생들이 평가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기술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돌봄 행동(authentic caring behaviors)을 흉내내는 데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Clever et al., 2011).
  •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는 임상 의사소통을 전반적 평정척도(global rating scales)를 사용해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직관(intuition)이나 프로토콜에서 벗어날 필요성(need to deviate from protocol)과 같은 더 주관적인 요인도 고려할 것을 권고했다(Mendick et al., 2015; Salmon & Young, 2011; Skelton, 2005). 이러한 척도는 서로 다른 환자가 제기하는 의사소통 양식과 도전에 따라 의사소통을 변화시킬 필요를 수용할 수 있다(Bußenius et al., 2022). 이러한 평가모형을 가르치기 위해 실제 또는 시뮬레이션 경험(real or simulated experiences), 역할모델링(role modeling), 성찰적 실천(reflective practice)의 기회 등 여러 방법이 제안되었다(Mendick et al., 2015; Skelton, 2005).
  • 그러나 전반적 평정척도의 사용은 특히 좋은 의사소통의 더 구체적인 예를 원하는 초보 학습자(novice learners)에게 추가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여러 임상 현장에 걸친 다양한 프리셉터 평가자(preceptor evaluators)를 고려하면, 이 접근은 큰 의과대학에서 시간, 훈련, 자원 요구 측면에서 추가적인 어려움을 제기할 수 있다.

의사소통자의 정체성은 의사소통 만남의 이후 각 단계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학생들은 거래(transaction) 중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 중 하나가 각 개인이 관여한 타인의 외재적, 내재적, 경험적 정체성(experiential identities)에 기반하여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자주 언급했다. 학생들은 인종 및 민족 정체성, LGBTQIA+ 정체성, 젠더 정체성 등 여러 구체적 정체성에 근거한 변화된 가정과 편견을 마주했다. LGBTQIA+ 학생과 유색인종 학생 모두, 의학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역사적으로 주변화된 많은 환자가 왜 의료 이용을 꺼릴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White 또는 Caucasian으로 확인한 학생들도 주변화된 집단에 대한 의학적 과오(medical malpractice)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 집단의 환자를 대할 때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복수 정체성의 복잡한 상호작용서로 다른 정체성 사이의 공유 경험은 거래 전반에서 각 의사소통자의 마음 전면에 있어야 한다.

 

정체성과 가정 및 편견의 상호작용에 관한 학생들의 공유 경험에 따르면, 젠더는 중심적 관심사로 나타났다. 자신을 여성 또는 female로 확인한 거의 모든 학생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의학이 아니라 간호 분야에서 일한다고 자주 가정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많은 환자와 지도자가 자신의 외모와 성별 또는 젠더에 기반해 인식된 역량(perceived competency)에 대해 폄하적 발언(derogatory comments)을 했다고 보고했다. 자신을 남성 또는 male로 확인한 학생들은 자신의 키, 체격(build), 수염(facial hair)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가부장적(paternalistic), 지배적(domineering), 또는 배려가 없는(uncaring)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공유했다. 후자의 집단은 젠더 차별(gender discrimination)의 관점에서 자주 연구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젠더 편견(gender bias) 경험은 제공자-환자 만남(provider-patient encounter)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였다.

 

소수자 집단에 속한다는 느낌은 참여자들에 의해 소수자 스트레스(minority stress)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소수자 스트레스는 불리한 위치의 집단(disadvantaged groups)이 유리한 위치의 동료(advantaged peers)에 비해 마주하는 추가적인 구조적·대인관계적 장벽(structural and interpersonal barriers)을 설명한다(Teherani et al., 2018; Wyatt et al., 2020). 전통적으로 이 용어는 인종, 민족, 젠더 소수자 집단에 적용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LGBTQIA+ 집단을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Eliason et al., 2011; Sánchez et al., 2015; Sitkin & Pachankis, 2016). 그러나 본 연구의 1세대 의과대학생들도 이러한 경험의 일부를 공유했다. 자신을 1세대 의과대학생으로 확인한 많은 학생은 이민자의 자녀(children of immigrants)라고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정체성의 중첩(overlap)은 기존 사회자본(preexisting social capital)의 부족,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 또는 소속감 없음(not belonging)의 느낌, 의과대학의 여러 규범에 적응하는 어려움(예: 개인의 안녕보다 학업성공을 우선시하기) 등 추가 장벽을 만들었다.

 

경험적 정체성(experiential identities)의 영향은 환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학생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환자로서의 경험(experience as patient)은 본 연구의 모든 인구통계 집단, 즉 젠더, 인종 또는 민족, LGBTQIA+를 가로질러 나타났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이 환자와 더 깊은 공감(deeper sense of empathy)을 형성할 수 있게 하고, 나쁜 의사소통이 환자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결과(long-term consequences)에 대한 이해를 얻게 하는 것으로 자주 이야기되었다. 흥미롭게도 유리한 위치의 집단(예: heterosexual White cisgender students)도 환자 경험이 자신에게 남긴 지속적 영향을 논의하였다. 이는 이 학생들의 환자 경험이 그들이 익숙하지 않았던 급성의 무력감(powerlessness)이나 취약성(vulnerability)을 느끼게 했기 때문일 수 있으며, 특히 보건의료 환경에서 빈번한 취약성을 경험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주변화된 집단과 비교하면 그렇다. 환자로서의 경험은 보건의료 수련생에게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배우는 효과적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 일부 기관은 학생을 말기 환자(terminally-ill patients) 또는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의 역할에 놓는 시뮬레이션을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낙인(stigma)을 줄이고, 연민과 공감을 생성하며, 생애말기 이슈(end-of-life issues)와 같은 도전적 주제를 논의할 때 편안함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Elzie & Shaia, 2021; Murray et al., 2022). 이러한 경험은 비록 시뮬레이션 환경일지라도 학생이 환자로서의 새로운 경험적 정체성을 획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특히 영향력 있을 수 있다.

 

학생의 소수자 스트레스 경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참여자는 정체성이 편안함과 신뢰의 형성에 관련된다고 설명하였다. 개인들이 정체성을 공유할 때, 라포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이 현상은 정체성 일치성(identity concordance)이라고 불려 왔다. 학생들이 제시한 정체성 일치성의 흔한 예는 젠더, 인종 또는 민족, LGBTQIA+ 정체성뿐 아니라, 돌봄제공자(caregiver, 대개 부모)로서의 경험 또는 환자로서의 경험이었다. 언어 일치성(language concordance)은 그 부재(absence)의 관점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많은 참여자는 비영어 환자(non-English speaking patients), 예를 들어 스페인어 또는 American Sign Language 사용 환자에게 존재하는 추가적 의사소통 장벽을 설명했다. 종교적 일치성(religious concordance)도, 특히 그것이 부재한 상황에서 고려할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본 연구의 비종교적 참여자 한 명은 종교적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계속 다루어야 할 필요성과, 미국 남부에서 미래의 보건의료제공자로서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설명하였다. 미국 남부라는 위치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의 한 형태로서 종교가 지배적인 상황은 본 연구 자료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여러 연구가 보건의료 제공의 맥락에서 정체성 일치성의 역할을 탐구했지만, 연구자들이 아는 한 경험적 정체성 또는 종교적 정체성이 임상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연구는 없다(Lor & Martinez, 2020; Moore et al., 2023; Thornton et al., 2011).

 

일치성(concordance)의 존재 또는 부재는 의사소통 거래(transaction)의 이후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였다. 유사성 또는 차이의 느낌에 기반하여 학생들은 상대방에 대해 가정을 만들었고, 상대방도 학생에 대해 자기 자신의 가정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종종 이러한 가정과 편견은 외재적 정체성에 기반했고, 이는 다시 계층(class), 교육수준(educational level), 역량(competency)과 같은 문화적 특성에 대한 더 큰 가정으로 이어졌다. 각 사람의 가정과 편견은 서로에 대한 기대, 즉 지키고자 하는 명시되지 않은 규범(unstated norms)과 의사소통에 사용한 언어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규범과 기대는 또한 만남의 일화적 맥락과 관여한 각 의사소통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강하게 안내되었다. 이러한 요인의 누적은 편안함과 신뢰의 환경이 확립될 수 있는지를 정의하였다. 편안함과 신뢰가 있을 때, 효과적인 거래적 의사소통(effective transactional communication)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것이 없을 때는 비효과적 의사소통(ineffective communication)이 일어났고, 종종 전달 모형(transmission models) 또는 상호작용 모형(interaction models)을 모방하였다. 이러한 서로 다른 요인 사이의 관계는 그림 1에서 시각화될 수 있다.

그림 1.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 확립 모형 (Model for establishing effective clinical communication) 

그림의 주요 구성요소 번역: 의사소통자(Communicator) · 정체성(Identity) · 내재적(Intrinsic) · 외재적(Extrinsic) · 경험적(Experiential) · 언어(Language) · 비언어/언어(Non/Verbal) · 비영어/영어(Non/English) · 비전문직/전문직(Non/Professional) · 규범과 기대(Norms and Expectations) · 일화적 맥락(Episodic Contexts) · 물리적(Physical) · 심리적(Psychological) · 편견과 가정(Biases and Assumptions) ·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Effective clinical communication).

의과대학 경험의 영향 (Impact of the medical school experience) 

개인 정체성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의 토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과대학 경험이 주로 학생들의 정체성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변화의 상당수는 학생들의 내재적 정체성, 특히 공감과 성격에서 나타났다. 의학훈련을 거치며 변화한 내재적 정체성의 대부분은 의과대학생 집단에 특이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의 의사(future doctor)로서의 정체성과 같이 특이적인 정체성도 있었다. 이러한 정체성 변화는 학생들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설명하고, 다양한 요인이 그것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히 말하며, 거래적 의사소통자(transactional communicators)로서 개인적 성장과 발달의 영역을 확인하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학생들은 훈련의 임상 단계(clinical phase)가 자신의 임상 의사소통에 특히 영향력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러 학생은 프리셉터십 경험(preceptorship experience) 중 역할모델(role models)을 통해 배웠다고 언급했고, 다른 학생들은 시뮬레이션 환자 만남(simulated patient encounters)의 유용성에 대해 혼재된 의견을 공유했다. 많은 학생은 보험이 없는 환자를 돌보는 학생운영 비영리 클리닉인 Jackson Free Clinic(JFC)에서의 자원봉사 경험을 말했다. JFC와 다른 자원봉사 경험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 및 보건의료 인구집단에 조기에, 자주 노출될 기회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인식과 총체적 진료(holistic care)에 대한 접근을 확장할 수 있었다. 프리셉터십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 학생들은 역할모델과 관여하면서 긍정적·부정적 행동을 배웠다고 자주 언급했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이 적절한 행동과 부적절한 행동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내적 기준(internal gauge)을 결정하도록 자주 장려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역할모델링은 학생의 내재적 정체성과, 이어서 규범 및 기대와의 관여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지배적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시뮬레이션 환자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학생들은 즉각적인 개인화 피드백(immediate personalized feedback)의 기회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에 필수적이라고 말했지만, 만남의 비진정성(inauthenticity)과 시간 제약의 부정적 영향도 언급했다. 시뮬레이션 환자 만남은 적시 피드백(timely feedback), 의학 언어(language of medicine)에 대한 소개, 환자면담 및 신체진찰 관련 기술 연습 기회, 죽음에 관한 대화, 의료접근 장벽, 보험 제한 등 보건의료의 복잡성에 대한 사려 깊은 논의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훈련의 초석(cornerstone)으로 계속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 변화를 프로그램 내 학년에 기반하여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보건의료팀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진화하는 방식은 자주 설명했다. 일부는 RIME 모형(Reporter, Interpreter, Manager, Educator)의 명시적 예를 제공했고, 다른 이들은 증가한 임상 책임(clinical responsibilities), 리더십 기대(expectations of leadership), 다른 보건의료전문직의 역할과 다학제 진료팀(multidisciplinary care team) 내에서 자신이 그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향상된 이해를 더 넓은 방식으로 말했다. 마지막 지점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미래 의사로서 자신의 전문직 정체성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복잡한 보건의료 상황에서 타인의 전문직 정체성과 전문성(expertise)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한 고찰은 임상가의 전문직 정체성이 가치와 신념 같은 개인적 요인, 교육 및 전문직 경험, 전문직간 사회화(interprofessional socialization)의 차이 때문에 전문직간 팀(interprofessional teams)에서 협력적으로 진료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제안했다(Wood et al., 2022). 본 연구는 명시적으로 의과대학생에 초점을 두었지만, 이러한 집단에서 확인된 일부 요인의 복잡한 관계를 다른 보건의료 수련생 및 실무자와 비교하여 탐구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개인 정체성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에 대한 의과대학생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문직간 정체성(interprofessional identities) 또한 핵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의학교육에 대한 함의 (Implications for medical education) 

본 연구는 의과대학생의 정체성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에 대한 인식과 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였다. 연구자들은 소수자 스트레스(minority stress), 정체성 일치성(identity concordance), 교차성(intersectionality) 이론에 관한 새로운 고려사항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지식의 깊이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교차성 이론은 전통적으로 복수의 소수자 정체성(multiple minority identities)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자료에서 발견된 복잡한 관계는 교차하는 정체성(intersecting identities)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모든 미래 보건의료전문가, 특히 많은 문화적 다수자 정체성(cultural majority identities)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본 연구에서 과소대표 집단과 동일시한 많은 참여자는 자신의 경험이 동료들의 경험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들은 의학의 문화적 다수자(cultural majority of medicine)에게 “외부자(outsiders)”였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이 그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 및 환자와 강한 연결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자주 언급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 안팎의 다른 보건의료 수련생 집단에서 연구될 수 있으며, 이들은 주변화(marginalization),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 구조적 불평등(structural inequities)이 자신과 동료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할 명시적 교육과정 기회(explicit curricular opportunities)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Khazanchi et al., 2021). 이러한 대화에 문화적 다수자와 소수자 이해관계자(stakeholders)를 모두 참여시킴으로써, 공동체 분리(community separation)를 영속화하는 일부 체계를 다루고 해체하기 시작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집단 내와 집단 간 연결(connection) 및 열린 의사소통(open communication)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보건의료 교육자에게 몇 가지 권고를 제시했으며, 환자 조기 노출(early patient exposure)과 해당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들로부터 문화적 인식(cultural awareness) 및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훈련을 늘릴 것을 강조했다. 의사소통 훈련을 더 명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전 연구에서 강하게 지지되어 왔다. 이를 암묵적 가정(implicit assumption)으로 남겨두는 것은 이론과 실제(practice)의 단절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Rosenbaum, 2017). 참여자들은 또한 명시적 원격의료 훈련(explicit telehealth training), 언어장벽 훈련(language barrier training)의 증가, 나쁜 소식 전하기(delivering bad news)를 연습할 기회의 증가를 요청했다. 언어장벽 훈련과 관련하여, 선행연구는 언어 일치성 훈련(language concordance training)을 받은 제공자가 환자의 불신(mistrust)을 더 잘 확인하고, 전문용어 사용을 줄이며, 전반적 의사소통 질(communication quality)을 향상시켰다고 느꼈다고 권고한다(Lor & Martinez, 2020). 전문직 언어(professional language)를 연습하기 위해 의학교육자는 기존 의사소통 프레임워크를 해부학 실습실(cadaveric anatomy labs)에 통합할 수 있다. 최근 한 연구는 SBAR 프레임워크(Situation, Background, Assessment, Recommendation의 약어)를 서로 다른 해부팀 사이의 인계(handoffs) 연습에 적용함으로써 바로 이를 수행하였다(Lazarus et al., 2016). 이러한 방식으로 학생들은 여전히 낮은 위험 환경(low-stakes environments)에서 필요한 제공자-제공자 의사소통 시나리오를 연습할 수 있다(Lazarus et al., 2016). 나쁜 소식 전하기 연습에는 성찰 활동(reflective activities)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명시적 연습 기회(explicit practice opportunities for navigating uncertainty) 등 여러 선택지가 있다(Ledford et al., 2015; Meitar et al., 2009).

 

여러 연구는 의사소통 기술을 분리된 행동 구성요소(discrete behavioral components)로 환원하는 의학교육과 평가가 임상 의사소통의 장기 학습(long-term learning)과 수행에 해로울 수 있음을 발견했다(Mendick et al., 2015; Salmon & Young, 2011; van den Eertwegh et al., 2014). 일부는 의사소통 만남을 전반적 평정척도(global rating scales)를 사용해 평가해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이는 분절된 측면(disjointed aspects)을 평가하는 대신 총체적 평정(holistic appraisal)을 제공하기 때문이다(Salmon & Young, 2011). 다른 이들은 기술기반 교육(skill-based education)의 사용을 지지했는데, 그러한 기술이 제공자와 환자의 공유 목표(shared goals)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히 선택되고 사용될 “도구상자의 구성요소(components of a toolkit)”가 되기 때문이다(Silverman et al., 2017). 어떤 평정척도가 사용되든, 눈맞춤을 피하거나 말수가 적은 것(reticence)과 같은 문화적 소수자 행동(cultural minority behaviors)을 의도치 않게 처벌하지 않도록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학생(culturally heterogenous students)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Fernandez et al., 2007; Lee et al., 2009). 전반적 평정척도의 대안은 Communication Assessment Tool이며, Glasgow Consensus Statement에 제시된 원칙과 함께 사용될 때, 제공자가 인본적이고 사람중심적인 진료(humanistic, person-centered care)를 제공하는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Makoul et al., 2007, 2024). 이전 연구들은 체크리스트 사용이 ‘상자에 체크하기(check the box)’ 사고방식을 만들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사용과 목적에 대한 안내는 이야기를 지지적이고 권한부여적인 제공자-환자 파트너십(provider-patient partnerships) 형성에 초점을 맞추도록 재구성할 수 있다(Makoul et al., 2024).

 

의사소통 기술 교육과정(communication skills curricula)을 설계할 때, 교과목 자체는 훈련 초기 학년에 문화적·언어적 문제(cultural and language issues)를 도입함으로써 다양한 학생 집단(diverse student population)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Rees & Sheard, 2003). 또한 의사소통의 의미는 주관적 경험(subjective experience)에 있기 때문에, 환자와 제공자 양측 모두로부터의 성찰적 실천(reflective practice)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환자와 전문가는 특정 의사소통 만남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공유할 수 있다(Salmon & Young, 2011). 의사소통 기술 교육자는 교육과정을 더 잘 조정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맥락에 맞추어 자신의 기술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임상가가 마주하는 임상 및 의사소통 시나리오의 복잡성(complexity)을 인식해야 한다(Silverman et al., 2017). 학생들은 실제 또는 시뮬레이션 학습환경(real or simulated learning environments)에서 훈련의 모든 수준에 걸쳐 도전적인 의사소통 만남(challenging communication encounters)에 직면해야 하며, 그래야 자신의 행동에 지속적 변화(lasting changes)를 자극할 수 있다(van den Eertwegh et al., 2014). 이러한 직면(confrontations)은 성찰, 시청각 녹화 검토와 나쁜 행동 기록, 또는 좋지 않은 수행에 대한 구두 피드백을 포함할 수 있다(van den Eertwegh et al., 2014). 이러한 의사소통 만남은 환자와 제공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과 보건의료팀의 다른 구성원을 포함하도록 확장될 수도 있다. 전자의 예는 Shibli-Rahhal과 Kreiter(2021)가 제시한 성인 삼자면담(adult triadic interviews)이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은 의사소통에 기술 기반 접근(skills-based approach)과 태도 기반 접근(attitude-based approach)을 모두 적용할 필요를 강조해야 한다. 기술 기반 접근은 학생들이 어떤 행동이 적절하고 그 행동을 어떻게 연습할 수 있는지 배우는 데 도움을 준다. 태도 기반 접근은 의사의 생각, 느낌, 감정이 환자와의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색하기 위해 자기인식(self-awareness)과 성찰(reflection)이 필요하다는 데 초점을 둔다(Kurtz et al., 2005).

 

문화적 소수자 집단(cultural minority populations)에 대한 노출은 임상 의사소통 교육과정을 향상시키는 핵심 단계일 수 있다. 이러한 집단에는 인종 및 민족 소수자 집단, 성적 및 젠더 소수자 집단(sexual and gender minority groups), 비영어 사용자 집단(non-English speaking groups)이 포함된다. 개입(interventions)에는 패널 토론(panel discussions), 사례기반학습(case-based learning) 중 문화적 다양성 증가, 문화적 소수자 학생을 위한 모집 및 유지 프로그램(recruitment and retention programs),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es)을 확인하고 완화하는 훈련의 증가가 포함될 수 있다(Burke et al., 2015). 또한 정체성을 긍정하는 환경(identity-affirming environments)의 조성은 1학년 의과대학생, 특히 문화적 소수자 집단과 1세대 의과대학생의 부적합감(feelings of poor fit)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집단 간 노출(intergroup exposure)을 통해 포용적 환경(inclusive environments)을 만드는 것은 과소대표 학생들이 학습환경과 동료에게 더 편안해지도록 도와 지지적 동료 네트워크(supportive peer networks)의 형성을 돕는다. 본 연구의 결과는 1세대 의과대학생도 일종의 소수자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의과대학 경험을 탐색하는 구조화된 안내(structured guidance), 잠재적 멘토의 조기 확인(early identification of potential mentors) 지원, 동료 및 실무자와의 공식·비공식 네트워킹 기회(formal and informal networking opportunities)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과소대표 집단 학생들이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형성하고, 정신적·정서적 지지체계(mental and emotional support system)를 만들며, 진로와 봉사 기회(career and service opportunities)에 관한 관련 조언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계와 향후 방향 (Limitations and future directions) 

본 연구는 연구자들의 최선의 능력으로 수행되었지만, 몇 가지 한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미국 내 한 단일 학술의료센터(single academic medical center)에서 1년 동안 수행되었다. 이는 연구자들에게 해당 기관의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의과대학생의 경험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했지만, 이러한 통찰이 다른 의학 또는 보건의료 학생 집단으로 전이가능(transferable)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가 기존 미국 기반 및 국제 연구와 일치한다는 점은 의도적 연구(intentional research)를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이 발견이 다양한 의과대학생 집단에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대상의 다수는 heterosexual White women이었고, 이는 전이가능성을 추가로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연구가 수행된 기관의 인구통계 구성(demographic makeup)을 어느 정도 반영하며, 다양한 목소리가 연구대상에 포함되도록 추가적 노력이 이루어졌다.

 

전사본 확인(transcript checks)은 사용되었지만, 추가적 물류적 제약(logistical constraints)으로 인해 참여자들이 최종 주제(final themes)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연락받지는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연구는 여러 기관에서 여러 보건의료 수련생 코호트를 대상으로 여러 해에 걸쳐 연구 현상을 탐구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TMC의 적합성, 국제적·전문직간 맥락으로의 전이가능성, 임상 의사소통의 습득과 숙달(mastery)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더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의 자발적 참여(voluntary participation)는 선택편향(selection bias)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임상 의사소통에 대해 면담에 응하고자 하는 학생은 그것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모든 참여자는 의사소통과 의사소통 기술을 논의할 기회에 흥미를 표현했으므로, 이러한 주제에 낮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이 면담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더 넓은 범위의 참여자에 접근하기 위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 개인 정체성, 그리고 이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의에 대한 학생 동의 정도를 측정하는 설문 방법(questionnaire methods)을 사용해 추가 탐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이 접근은 의사소통을 필수 기술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두면서 더 넓은 범위의 의견과 경험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된 주제들은 연역적 프레임워크로 사용된 의사소통의 거래 모형(TMC)을 반영하였다. 이는 다른 의사소통 모형을 배제하거나 순수하게 귀납적 방법론(purely inductive methodology)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석 과정을 잠재적으로 제한했을 수 있다. 본 연구는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둘러싼 개인의 경험과 인식을 탐구하기 위해 일회성 면담(one-time interviews)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면담은 참여자에게 지난 1년에서 4년 동안의 경험을 되돌아보도록 요청했으며, 이는 학생의 인식과 정체성이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하는 연구자의 능력을 제한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최대 4년 전 발생한 특정 형성적 경험(formative experiences)을 참여자가 회상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정보의 깊이가 추가로 손실되었을 수 있다. 이러한 한계 중 일부를 해결하기 위한 다음 논리적 단계는 포커스그룹(focus groups)을 사용하여 여러 보건의료 전문직 코호트의 공유 경험과 인식을 탐구하도록 연구질문을 확장하는 것이다. 다양한 보건의료 분야에서 훈련 또는 실무의 서로 다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개인 정체성(personal identities),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ies), 전문직간 정체성(interprofessional identities)의 차이를 기술하는 데 초점을 둘 수 있다. 후자와 관련하여 전문직간 교육과 협력 기회(interprofessional education and collaboration opportunities)는 최근 상당한 주목을 받아 왔고, 많은 학교가 전문직간 훈련의 질과 빈도 증가를 옹호하고 있다. 전문직간 정체성(interprofessional identity)이라는 개념은 많은 논쟁의 주제이며, 최근 여러 고찰은 불일치하는 정의(incongruent definitions)를 확인하고 교육과 학문에서 일관된 개념화(consistent conceptualization)의 필요를 지지하였다(Cantaert et al., 2022; Tong et al., 2020). 본 연구는 전문직간 정체성이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에 미치는 역할을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추가 탐구가 정당화되고 필요하기도 한 영역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여러 보건의료 수련생 집단에 걸쳐 자료의 전이가능성, 시의성(timeliness), 풍부함(richness)을 더 확장할 수 있다.

 

본 연구는 Covid-19 팬데믹에 의해 제한되었다. 팬데믹은 학생들의 훈련, 환자·동료·지도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 원격의료 숙련도(telehealth proficiency)에 영향을 미쳤다. 의학훈련과 보건의료 제공 및 접근에 대한 Covid-19 팬데믹의 장기 효과에 대해 추가 조사가 필요할 수 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이러한 영향에 관한 많은 연구가 발표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참여자 모집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고, 3학년 집단이 다른 코호트에 비해 다소 과소대표되었다. 그럼에도 각 코호트의 자료는 포화(saturation)에 도달했으므로, 연구자들은 결과에 공백이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결론 (Conclusions)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의과대학생과의 면담에 기반하여, 연구자들은 의사소통의 거래 모형(Transaction Model of Communication)에 기초한 의학 수련생 집단에서 효과적인 임상 의사소통을 확립하기 위한 예비 모형(preliminary model)을 구성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미국의 한 단일 allopathic medical school에서 학생 교육경험(student educational experience)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으며, 이는 보건의료 의사소통에서 정체성 일치성(identity concordance)과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관한 더 넓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효과적인 임상가(effective clinician)가 되는 것은 의학지식 전문성(medical knowledge expertise)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의사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ability to communicate and collaborate)에도 달려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의학교육과정(medical curricula)에 통합하는 것은 사실적 지식의 단순 암기(simple recitation of factual knowledge)보다 환자중심진료(patient-centered care)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중심에 두는 지속적인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기여할 수 있다(Veazey, 2023). 한 학생이 간결하게 말했듯이, “의사소통은 정말 중요합니다. … 좋은 의사소통자가 아니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M1-2).

 

Acad Med. 2016 Feb;91(2):247-55. doi: 10.1097/ACM.0000000000000988.

Developing 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for Entry Into Clerkship 

 

 

임상실습 진입 단계에도 EPA가 필요할까? 🩺

— UCSF·Utrecht 연구진이 만든 'Entry into Clerkship' EPA 5개 이야기

Chen HC, McNamara M, Teherani A, ten Cate O, O'Sullivan P. Developing 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for Entry Into Clerkship. Academic Medicine. 2016;91(2):247–255.


🤔 들어가며 — "참관(shadowing)만 하다 끝나는" 임상 경험

의대 교육개혁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가 있죠. 바로 조기 임상 경험(early clinical experience) 입니다. 본과 임상실습(clerkship)에 들어가기 전부터 학생들을 병원이나 외래에 보내서, 환자와 직접 부딪히며 임상·추론 능력을 길러주자는 거예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생각만큼 잘 안 됩니다. 가르치는 임상 지도의(preceptor) 들은 대개 자원봉사 성격의 외래 교수님들이라, "이 학생한테 도대체 뭘 시켜야 하지?"를 잘 모르고요. 학생들도 자기가 진료실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헷갈려 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 그냥 어깨너머로 구경만 하다(shadowing) 끝나는 임상 경험이죠. 😅

 

연구진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그럼 본과 진입 전 학생(preclerkship student)이 실제로 할 수 있고, 시켜도 되는 일이 뭔지를 명확히 정의해 주면 되지 않을까?" 그 도구로 꺼내든 게 바로 EPA(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y, 위임 가능한 전문 활동) 입니다.


💡 핵심 발상: clerkship 진입도 하나의 '전환점'이다 

EPA는 원래 전공의 수련 같은 졸업후 의학교육(GME, Graduate Medical Education) 에서 주로 쓰여 왔어요. 보통 레지던시 진입, 펠로우십 진입, 독립 진료 시작처럼 수련의 전환점(transition point) 에서 "이제 이 정도는 믿고 맡겨도 된다"를 정의하는 데 쓰이죠.

 

연구진의 논리는 단순하고도 깔끔합니다. "임상실습 진입(entry into clerkship)도 그냥 더 이른 시점의 전환점일 뿐이다(Entry into clerkship is just an earlier transition point)." 그러니 EPA를 본과 진입 단계에도 못 쓸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설계 결정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위임 수준(entrustment/supervision level) 을 어디에 둘 것인가입니다. EPA의 위임 척도는 보통 5단계인데, 독립 진료(레지던시 졸업) 수준은 보통 Level 4(감독 없이 수행) 로 잡아요. 하지만 본과 진입 전 학생에게 그건 무리겠죠. 그래서 연구진은 모든 EPA를 Level 3(반응적 감독 하의 수행, practice under reactive supervision) 에 맞췄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그림이에요. 👇

학생이 진료실 안에서 환자와 혼자 일을 진행하되, 지도의는 바로 옆방에서 즉시 호출 가능한 상태로 대기하다가 나중에 결과를 다시 확인해 주는 수준.


⭐ 이 논문의 진짜 기여 — "제목 리스트"가 아니라 "완전한 기술서"

사실 EPA를 만드는 연구는 이미 많았습니다. 대부분 델파이(Delphi)명목집단법(nominal group technique) 으로 전문가들을 모아 "EPA 제목 목록"을 뽑아냈죠. 그런데 연구진은 여기에 일침을 놓습니다.

💬 "EPA의 진짜 본질은 충분히 상세하게 기술된 설명에 있다."
"the real essence of an EPA is in its fully elaborated description"

 

제목만 봐서는, 이미 독립 진료로 넘어가는 숙련된 학습자에게는 자명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임상 현장이 처음인 초심자(novice)와 그들을 지도하는 사람에게는, 그 활동의 구체적인 범위와 한계(specifications and limitations) 가 명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이 논문은 ten Cate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7개 구성요소(seven-part description) 로 된 완전한 EPA 기술서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 EPA 7-part 기술서 구성

  1. EPA 제목 (title)
  2. 세부 규정과 한계 (specifications and limitations)
  3. 필요한 지식·기술·태도 (required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4. 기존 역량 체계와의 연결 (link to a competency framework)
  5. 진척도 평가를 위한 정보원 (information sources to assess progress)
  6. 위임 결정에 이르는 방법 (methods to arrive at the entrustment decision)
  7. 위임의 조건과 함의 (conditions and implications for entrustment)

🔧 어떻게 만들었나 — 약 2년간의 5단계 여정

이 논문의 백미는 방법론입니다. 무려 약 2년에 걸친 5단계 개발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거든요.

 

  • Phase I. 내용 영역(content domain) 도출 🔍 "전문가가 책상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실제로 할 수 있다고 입증된 것에서 출발한 게 핵심입니다. UCSF의 학생 주도 클리닉(SRC, student-run clinic) 연구 데이터 + 지도의 인터뷰(19명) + 학생 포커스 그룹을 삼각검증(triangulation)해서 초기 5개 영역을 뽑았어요.
  • Phase II. 매핑(mapping) & 확인 🗺️ 도출한 영역을 교내 실습 목표, 졸업 역량, 그리고 의학·소아과 GME EPA, AAMC의 CEPAER(전공의 진입 핵심 EPA) 에 연결했습니다. 학생 수준의 EPA가 더 작은 단위라, 상위 GME EPA 여러 개에 걸쳐 매핑되더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 Phase III. 상세 기술 & 전문가 자문 ✍️ EPA 전문가(ten Cate 본인)의 반복 피드백을 받으며 7-part 기술서를 완성. 이 과정에서 "감별진단·계획 세우기"를 정보 공유에서 분리해 별도 EPA로 만드는 등 영역이 재편됩니다.
  • Phase IV. 내용 타당도 확보 — 워크숍 🌍 여기가 이 연구의 독창적인 부분이에요. 델파이 대신 워크숍 토론을 택했습니다. 교내(2회) → 미국 전국 학회 → 국제 학회(Ottawa Conference) 순으로 4번. 7개국 의학교육자들이 소그룹으로 나눠 각 EPA의 제목과 한계를 다듬었죠. 참가자들은 누락된 EPA가 없다는 데 합의했고, "Level 3가 적절하다"는 데도 동의했습니다.
  • Phase V. 최종 검토 ✅ 전문가와 교내 이해관계자의 최종 검토. 이때 재미있는 지적이 나옵니다. EPA가 "학습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역량 언어(competency language) 처럼 쓰여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특정 맥락 속의 활동/업무 단위(activity/unit of work)" 중심으로 다시 틀을 잡았습니다.

🎯 결과: 임상실습 진입 EPA 5가지

최종적으로 다듬어진 5개 핵심 EPA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보 수집 — 흔한 주증상을 가진 의학적으로 안정된 환자에게서 정보 수집하기 (Gather information from a medically stable patient with a common chief complaint)
  2. 정보 통합 — 수집한 정보를 통합해 근거 있고 우선순위화된 감별진단과 예비 계획 세우기 (Integrate information gathered about a patient to construct a reasoned and prioritized differential diagnosis as well as a preliminary plan for common chief complaints)
  3. 팀 내 소통 — 의료팀 구성원에게 환자 진료 관련 정보 전달하기 (Communicate information relevant to a patient's care with other members of the health care team)
  4. 환자와의 정보 공유 — 큰 신체적·정서적 고통이 없는 환자에게 진단·관리 계획 등 진료 정보 공유하기 (Share information about the patient's care, including diagnosis and management plan, with a patient in no significant physical or emotional distress)
  5. 자원 제공 — 개별 또는 전체 환자 진료 향상을 위해 의료팀에 자원 제공하기 (Provide the health care team with resources to improve an individual patient's care or collective patient care)

제목이 좀 길죠? 연구진도 이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EPA 제목은 짧게 쓰라는 게 정설인데도, 일부러 한계 조건을 제목에 넣었어요. "본과 진입 전 학생에게 적절한 활동임"을 분명히 드러내서, 교수·학생이 처음 이 EPA를 접할 때 생길 오해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 토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들

① 학생을 '부담'이 아니라 '기여자'로

개인적으로 이 논문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문장입니다. EPA를 함께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교수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거예요.

💬 "이런 논의는 교수들의 기대를 바꾸고, 본과 진입 전 학생을 잠재적 부담이 아니라 임상 현장의 기여자로 바라보도록 도울 수 있다."
"Such discussions may help alter faculty expectations and encourage them to see preclerkship students as contributors in the clinical workplace, rather than as potential burdens."

 

② CEPAER에서 '거꾸로' 내려오지 않았다

연구진은 AAMC CEPAER가 본과 진입 전 학생에게는 범위가 너무 넓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상위 틀을 쪼개 내려오는 방식 대신, 학생이 실제로 해낸 일에서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죠.

💬 "우리는 CEPAER에서 거꾸로 작업하지 않고, 본과 진입 전 학생이 입증한 역량의 근거로부터 앞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we elected not to work backward from the CEPAER but to work forward on the basis of evidence of demonstrated preclerkship student capabilities."

다만 매핑을 통해 이 EPA들을 CEPAER에 연결(nest)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두 체계를 함께 쓸 수 있게 한 영리한 설계입니다.

 

③ 한계도 솔직하게

연구진은 한계를 숨기지 않습니다. △ 2년이라는 긴 개발 기간 △ 학회 워크숍 방식이라 참여 전문가 통제가 어려웠던 점 △ 수집한 타당도가 내용 타당도(content validity) 에 한정된 점(평가 활용에 대한 타당도 근거는 후속 과제)을 분명히 밝힙니다. 동시에 "긴 시간이 들었지만, 입증된 학생 역량에 기반했기에 오히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수용을 끌어냈다"고 균형 있게 짚어요.


📝 마무리 — 우리 교육과정에 시사하는 것

연구진은 마지막에 이렇게 권합니다.

💬 "우리는 이 EPA들을 다른 기관에서도 사용하기를 권한다. 이 EPA가 환자 안전에 유의하면서, 본과 진입 전 학생이 임상 현장 활동에 참여하도록 명확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We endorse their use by other institutions because we anticipate that the EPAs can provide explicit guidance for the engagement of preclerkship students in clinical workplace activities with attention to patient safety."

이 논문이 주는 메시지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 EPA는 졸업후 교육의 전유물이 아니다. 임상실습 진입 단계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 ✅ 중요한 건 멋진 제목 목록이 아니라, 범위·한계까지 명시한 완전한 기술서(fully elaborated description) 다.
  • ✅ "전문가 합의"가 아니라 "학생이 실제로 할 수 있다는 증거" 에서 출발할 때 현장의 수용성이 높아진다.
  • ✅ EPA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교수들이 학생을 보는 시선을 바꾸는 교육적 대화의 장이 된다.

여섯 해 통합 교육과정 개편이나 조기 임상 노출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우리 학생들이 본과 진입 전에 무엇을, 어느 정도의 감독 하에 할 수 있는가"를 명문화하는 출발점으로 삼기에 참 좋은 모델 논문입니다. 🙂

 


 

의학교육 개혁(medical education reform)에 대한 요구는 강의식 지식(didactic knowledge)의 교육과 경험학습(experiential learning)을 통합하는 교육과정 설계(curricular designs)의 사용을 주장한다.1 의과대학들은 병원 또는 외래 클리닉 환경에서의 프리셉터십 배치(preceptorship placements)와 같은 다양한 초기 임상경험을 프리클럭십 교육과정에 포함함으로써 이러한 통합적 접근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2,3 이상적으로 이러한 프리셉터십은 학생들이 임상 현장(clinical workplace)에서 환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임상 술기(clinical skills)와 추론 술기(reasoning skills)를 학습할 수 있게 한다.4–6

 

그러나 현장학습(workplace learning)의 풍부함은 학생이 현장 활동(workplace activities)에 얼마나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다.7 그럼에도 흔히 자원 교수진(volunteer faculty)인 프리셉터들은 자신의 임상진료에서 학생에게 적절한 활동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 결과 프리셉터십은 원하는 직접 수행형 임상경험(hands-on clinical experiences)보다는 주로 관찰(shadowing) 경험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8–11

 

위임가능 전문직무(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EPAs)는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수행할 것으로 기대될 수 있는 업무 활동(work activities)을 확인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잠재적 해결책을 제공한다. EPA는 현장학습과 정렬되어 있으며, 역량을 실제 진료(practice)의 맥락 안에 위치시킨다.12 여기에서는 의사가 수행하는 특정 활동이라는 렌즈를 통해 여러 역량이 평가될 수 있다.13 초기 임상경험의 교육 목표와 세부 목표를 EPA의 언어로 정의함으로써, 우리는 학생과 프리셉터에게 학생의 역할에 관한 명시적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모델을 사용하면, 학생들이 발달 단계상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활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활동을 프리셉터의 임상 현장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

 

EPA는 주로 졸업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GME)에 적용되어 왔지만, 우리는 이전에 EPA가 학부 의학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UME)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14 또한 EPA는 레지던트 과정, 펠로우십, 그리고/또는 독립 진료로의 진입과 같은 의학 훈련의 전환 시점(transition points)에서 기대 수준을 구체적으로 정의한다.13,15–19 임상실습 진입(entry into clerkship)은 그보다 이른 전환 시점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임상실습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역량 기대 수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EPA를 개발하였다.

접근 

이 EPA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EPA를 고정(anchor)할 감독 또는 위임 수준(level of supervision or entrustment)을 결정하여 일관성을 확보하였다. 출판된 EPA 감독 척도(supervision scale)는 감독/위임(supervision/entrustment)의 다섯 수준을 포함한다.12

 

  • 독립 진료 진입(entry into practice)을 위한 EPA는 4수준, 즉 학습자가 감독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의된다.
  • 학생들은 감독 없이 임상 활동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EPA를 위임 3수준(entrustment level 3), 즉 반응적 감독하 수행(practice under reactive supervision)으로 설계하였다. 일부 활동에서 이는 학생이 환자와 함께 방 안에서 혼자 활동을 완료할 수 있고, 감독자는 방 밖에 있지만 즉시 이용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EPA 개발 접근법은 흔히 델파이(Delphi) 또는 명목집단기법(nominal group process)을 포함해 왔다.15,16,20–25 두 방법 모두 전문가를 활용하여 EPA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정의하고, EPA 제목 목록을 도출한다. 그러나 EPA의 진정한 본질은 활동의 제한점(limitations), 기대되는 지식·술기·태도, 관련 역량, 평가 정보 등을 포함하는 자세한 설명으로 구성된 충분히 정교화된 기술문(fully elaborated description)에 있다.26,27 EPA 제목에 기술된 과제는 독립 진료로 전환하는 학습자에게는 자명해 보일 수 있고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임상 현장 초보자(novices to the workplace)와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수행을 요구받는 활동의 세부사항(specifications)과 제한점(limitations)을 이해하기 위해 명시적 세부 정보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한 정보는 수행평가(performance assessment)를 위해 EPA를 실행하는 데 필요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EPA의 충분히 정교화된 기술문을 개발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한 새로운 방법론(novel methodology)을 보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문은 다음의 일곱 부분을 포함한다.

 

  • (1) EPA 제목(EPA title),
  • (2) 세부사항과 제한점(specifications and limitations),
  • (3) 요구되는 지식·술기·태도(required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 (4) 기존 역량 프레임워크(existing competency framework)와의 연결,
  • (5) 진척도 평가를 위한 정보 출처(information sources to assess progress),
  • (6) 위임 결정(entrustment decision)에 도달하는 방법,
  • (7) 위임의 조건과 함의(conditions and implications for entrustment)이다.26,27
  • 우리는 또한 개발 과정에서 내용타당도(content validity)를 확보하기 위해 취한 단계들을 강조한다.

 

이하의 절에서는 다단계 과정의 방법과 결과를 설명하며, 각 단계의 근거(rationale), 자료 출처(data sources), 자료 분석(data analysis)을 제시한다. 전체 과정은 약 2년이 소요되었으며, 모든 단계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SF) 기관생명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승인을 받았다.

1단계: EPA 내용 영역의 확인
Phase I: Identification of EPA Content Domains
 

근거

EPA 내용 영역(content domains)의 확인은 입증된 학생 수행능력(demonstrated student capabilities)에 기반해야 한다. 따라서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어떤 전문직 활동(professional activities)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활동이 교육과정에 현실적으로 포함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는 UCSF의 학생운영 클리닉(student-run clinics, SRCs)에서 프리클럭십 학생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였다. 우리는 학생들이 병력 청취(history taking), 신체진찰(physical examinations), 환자교육(patient education), 진료기록 작성(encounter documentation), 그리고 채혈(phlebotomy), 예방접종(vaccinations)과 같은 간단한 처치(minor procedures)를 포함한 직접 환자진료 활동(direct patient care activities)을 수행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28 학생들은 또한 환자가 지역 보건 프로그램(local health programs)에 접근하도록 돕고 질 향상 활동(quality improvement activities)을 수행하였다.28 우리는 프리셉터 면담과 학생 포커스 그룹을 통해 이 정보를 확인하였다.

방법

2012년 1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우리는 UCSF 프리클럭십 임상술기 과정(preclerkship clinical skills course)의 프리셉터를 대상으로 20분에서 45분 길이의 구조화된 전화 면담(structured telephone interviews)을 실시하였다. 우리는 학생을 현장 활동에 통합하는 능력이 입증된 프리셉터를 선정하였다. 363명의 프리셉터 중 71명이 학생에게 병력 청취 및 신체진찰 기회를 제공하는 능력과 교수효과성(teaching effectiveness)에 대해 3개 학년도(2009–2012)에 걸쳐 일관되게 높은 학생 평가를 받아 이 기준을 충족하였다. 다양한 임상 현장에서 학생 활동을 포착하기 위해, 우리는 목적표집(purposive sampling)을 사용하여 이 71명 중 외래 클리닉(outpatient clinics), 응급실(emergency departments), 입원 병동(inpatient wards), 일반 또는 세부전문 진료(general or subspecialty practices)에서 근무하고 성인 또는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40명을 모집하였다. 우리는 프리셉터에게 학생들이 수행하도록 하는 환자진료 활동(patient care activities)과 학생에게 임상술기 연습 기회(clinical skills practice opportunities)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질문하였다.

 

우리는 UCSF 2학년(MS2) 및 3학년(MS3) 학생 모두에게 포커스 그룹 참여를 요청하였고, 각 학년에서 먼저 응답한 학생들을 포함하였다. 우리는 60분짜리 포커스 그룹 2개를 진행하였다. 하나는 첫 프리클럭십 학년을 최근 마친 MS2 학생들과, 다른 하나는 현재 임상실습을 수행 중인 MS3 학생들과 진행하였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프리셉터십 경험에서 가장 가치 있었다고 생각한 것, 다양한 임상술기를 연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추가적인 학습 또는 환자진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성찰하도록 요청하였다.

모든 면담과 포커스 그룹은 음성녹음, 전사, 비식별화되었다. 한 저자(H.C.C.)가 전사본에서 임상 현장 활동의 유형을 분석하기 위해 개방코딩(open coding)을 활용한 지속적 비교방법(constant comparative method)을 사용하였다.29,30 두 저자(H.C.C., M.M.)는 이 활동들을 SRC 연구에서 기술된 활동들과 삼각검증(triangulated)하였다.28

결과

40명의 프리셉터 중 22명이 응답하였고, 19명이 면담에 참여하였다. MS2 포커스 그룹에는 8명의 학생이, MS3 포커스 그룹에는 3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SRC 연구, 프리셉터 면담, 학생 포커스 그룹에서 기술된 임상 현장 활동을 활용하여 우리는 다섯 가지 초기 EPA 내용 영역을 확인하였다.

 

  • (A) 정보 수집(information gathering),
  • (B) 의료제공자와의 정보 공유(information sharing with providers),
  • (C) 환자와의 정보 공유(information sharing with patients),
  • (D) 환자 옹호 및 질 향상(patient advocacy and quality improvement),
  • (E) 평생학습을 위한 정보 관리(information management for lifelong learning)이다.

 

2단계: EPA 내용 영역 매핑 및 확인
Phase II: EPA Content Domain Mapping and Confirmation
 

근거

각 EPA 내용 영역의 관련성(relevance)과 충분성(adequacy)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ten Cate와 Young31이 이해관계자와의 신뢰성(credibility)을 확립하고 관찰 및 평가의 틀(framework for observation and assessment)을 제공하기 위해 권고한 것처럼, 이를 기존 역량 프레임워크(existing competency frameworks)에 매핑하였다.

방법

우리는 2013년 5월부터 11월까지 이 매핑을 수행하였다. 먼저 EPA 내용 영역을 UCSF의 프리셉터십 목표(preceptorship objectives) 및 프리클럭십 임상술기 과정 역량(preclerkship clinical skills course competencies)에 매핑하였다. 그다음 이 영역들을 우리 기관의 졸업역량(graduation competencies) 및 마일스톤(milestones)에 매핑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영역들을 내과18 및 소아과17의 GME EPA와, 2013년 11월 이용 가능해진 미국의과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AAMC)의 레지던트 진입을 위한 핵심 위임가능 전문직무(Core 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for Entering Residency, CEPAER)15에 매핑하였다. 두 저자(H.C.C., M.M.)가 각각 이 매핑의 각 단계를 독립적으로 수행한 뒤, 만나서 차이를 논의하고 조정하였다.

결과

우리는 “피드백을 주고, 받고, 적용함으로써 학습을 촉진한다(facilitate learning by giving, receiving, and applying feedback)”를 제외한 모든 기존 교육과정 목표와 역량을 다섯 가지 EPA 내용 영역 각각에 연결하였다. 이 역량은 중요하지만 특정 EPA 내용 영역에 특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영역에도 연결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는 다섯 가지 EPA 내용 영역을 내과 EPA 16개 중 11개,18 소아과 초안 EPA 16개 중 8개,17 AAMC CEPAER 13개 중 10개15에 매핑할 수 있었다. 우리의 영역은 GME EPA보다 범위가 좁고, 활동의 기초적이고 더 작은 단위를 나타냈기 때문에, 일부 영역은 여러 GME EPA에 매핑되었다. 매핑 결과는 우리의 EPA 내용 영역이 프리클럭십 학생에 대한 현재 및 미래 기대와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3단계: EPA 내용 기술 및 전문가 자문
Phase III: EPA Content Description and Expert Consultation
 

근거

실제 현장에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각 EPA의 내용이 단순한 내용 영역을 넘어, 기대되는 관찰 가능한 행동(observable behaviors)과 그 행동의 맥락(context)을 자세히 구분해 포함해야 한다. 이 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ten Cate가 출판한 지침27과 EPA 전문가(O.t.C.)의 도움을 활용하여 각 EPA에 대한 포괄적인 7개 구성요소 기술문(comprehensive seven-part descriptions)을 개발하였다.

방법

2013년 7월부터 12월까지, 우리는 3수준 감독(level 3 supervision), 즉 반응적 감독하 수행(practice under reactive supervision)을 지침으로 삼고, 교육과정 매핑 결과를 활용하여 각 EPA 내용 영역의 제목을 개발하고, 각 활동을 제한하는 매개변수(parameters) 또는 조건(conditions)을 명시함으로써 각 EPA의 범위를 구분하였다. 예를 들어 환자의 병력과 신체진찰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의 경우, 우리는 이 활동을 프리클럭십 학생에게 적절한 환자 유형, 예를 들어 의학적으로 안정적인 환자(medically stable patients)로 제한하였다. 또한 각 EPA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데 필요한 지식, 술기, 태도(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를 확인하였다. 이후 프리클럭십 과정 목표를 활용하여, 예를 들어 이러한 임상 활동을 뒷받침하는 필수 기초의학 지식(foundational science knowledge)을 학생들이 교육과정의 어디에서 배우는지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진척도(progress)를 결정하기 위한 정보 출처, 3수준 위임(level 3 entrustment)을 부여하기 위한 조건과 방법, 그리고 학생이 3수준 위임을 부여받은 뒤의 함의(implications)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7개 구성요소 EPA 기술문27을 개발하는 동안, 우리는 EPA 전문가(O.t.C.)로부터 기술문의 구조(structure), 명확성(clarity), 충분성(adequacy)에 대한 지침과 반복적 피드백(iterative feedback)을 받았다. 또한 University Medical Center Utrecht에서 EPA 전문가와 함께 일하는 보건전문직 교육자(health professions educators)들로부터 EPA 기술문의 명확성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고 받았다.

결과

우리는 각 EPA에 대해 충분히 정교화된 기술문을 개발하였다. 예시는 부록 1을 참조하라. 검토 후, 프리클럭십 학생에게 더 적합하도록 EPA 영역을 수정하였다. 표 1을 참조하라. 예를 들어, 우리는 감별진단과 계획을 생성하는 활동을 정보 공유와 분리하여 별도의 EPA로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험이 부족한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인식하지 못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을 명시하고, 그것을 더 발전된 환자진료 활동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는 환자진료에 대한 위임가능한 기여(entrustable contribution to patient care)로 강조할 수 있었다. 또한 마지막 두 EPA, 즉 D와 E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프리클럭십 학생에게 정보관리(information management)의 실천은 환자 또는 의료팀을 위한 자원을 조사하는 데 적용될 때 가장 자주 관찰 가능하며, 이는 환자 옹호(patient advocacy) 및 질 향상(quality improvement) 행동이기도 하다.

4단계: EPA 내용의 적절성 보장
Phase IV: Assurance of Appropriate EPA Content
 

근거

『교육 및 심리검사 기준(Standards for Educational and Psychological Testing)』에 제시된 내용 관련 타당도(content-related validity) 기준은 평가 내용(assessment content)을 명시하는 과정이 의도된 대상 집단(intended population)과 평가가 측정하고자 하는 구성개념(construct)에 따라 기술되고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32 각 EPA의 적절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내외부 주제전문가(subject matter experts)를 참여시켜 각 활동의 세부사항/제한점이 적절한 복잡성 수준(level of complexity)을 갖추고 기대되는 학생 역량(expected student competencies)과 정렬되어 있는지 평가하도록 하였다. 우리는 의학교육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심층 피드백(in-depth feedback)을 얻기 위해 초점화된 워크숍 토의(focused workshop discussions)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워크숍은 EPA의 의도된 사용(intended use)과 기대되는 감독/위임 수준(expected supervision/entrustment level)을 설명하고, 관점을 탐색하며, 우려를 이해하고, 워크숍 참여자들과 협력하여 내용을 정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방법

2014년 1월부터 4월까지, 우리는 네 차례의 내용타당화 워크숍(content validation workshops)을 개최하였다. 두 차례는 지역 워크숍, 한 차례는 국가 워크숍, 한 차례는 국제 워크숍이었다. 첫 두 워크숍은 UCSF에서 개최되었다. 하나는 프리클럭십 임상술기 과정 책임자(preclerkship clinical skills course directors)와 함께, 다른 하나는 임상실습 교육과정 위원회(clerkship curriculum committee)와 함께 진행되었다. 세 번째 워크숍은 2014년 AAMC Western Group on Educational Affairs 연례회의에서 개최되었다. 마지막 워크숍은 평가(assessment)에 초점을 둔 격년제 국제 의학교육 학술대회인 2014년 Ottawa Conference에서 개최되었다. 워크숍 참여자, 절차, 결과에 대한 세부사항은 표 1을 참조하라.

모든 워크숍은 두 저자(H.C.C., M.M.)가 진행하였으며 같은 형식을 따랐다. 최대 두 명의 추가 저자(A.T., O.t.C., P.O.)가 소그룹 촉진자(small-group facilitators)로 참여하였다. EPA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와 기대되는 감독/위임 수준을 설명하는 간단한 소개 후, 참여자들은 각 소그룹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배경, 즉 임상의/비임상의(clinician/nonclinician), UME/GME, 기관(institution)에 따라 스스로 소규모 작업그룹으로 나뉘었다. 표 1을 참조하라. 각 소그룹은 특정 EPA에 초점을 맞추고, 그 제목과 세부사항/제한점을 논의하며, 서면 의견을 제공하였다. 이후 각 EPA에 대한 전체 그룹 토의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은 누락된 EPA가 있는지 논의하였다. 참여자와 소그룹의 기록을 수집하였다. 모든 워크숍은 음성녹음되었고, 워크숍 촉진자들은 추가 기록을 작성하였다. 두 저자(H.C.C., M.M.)가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검토하였다.

결과

지역 워크숍에서의 토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EPA 제목과 자세한 세부사항/제한점을 정련하였고, 여기에는 EPA 5의 표현에 대한 실질적 변경(substantive change in language)이 포함되었다. 이후 각 후속 워크숍 뒤에는 더 작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표 1은 이 정련 과정을 자세히 제시한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공통 임상 술기(common clinical procedures)를 위한 EPA를 추가하자는 의견이 일부 있었지만, 누락된 EPA는 없다는 데 합의하였다.

5단계: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검토를 통한 EPA 내용 최종화
Phase V: Finalizing EPA Content With Expert and Stakeholder Review
 

근거

우리의 EPA 기술문은 여러 차례 정련되었기 때문에, EPA 원칙(EPA principles)의 준수, EPA 내용의 적절성, 그리고 교육과정 목표와의 정렬(alignment)을 보장하기 위해 EPA 전문가 및 지역 이해관계자와 함께 최종 검토를 수행하였다.

방법

2014년 5월, EPA 전문가(O.t.C.)가 정련된 EPA 기술문의 개념화(conceptualization), 문구(wording), 의미론(semantics)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로 도출된 EPA 기술문의 최종 버전은 2014년 6월 UCSF 프리클럭십 임상술기 과정 책임자와 임상실습 교육과정 위원회에 검토 및 승인을 위해 발송되었다.

결과

EPA 전문가는 우리의 EPA가 전형적인 역량 언어(typical competency language), 즉 학습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 방식과 유사하게 학습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쓰였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의 지침에 따라 우리는 EPA를 특정 맥락 안의 활동/업무 단위(activity/unit of work)에 초점을 맞추도록 재구성하였다. 다른 변경은 하지 않았다. 지역 이해관계자들은 2014년 가을 실행을 위해 EPA 최종본을 승인하였다. EPA의 최종 제목은 표 1을, 세부사항/제한점은 부록 1과 부록 2를 참조하라.

표 1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위임가능 전문직무(EPA)의 내용 영역/제목의 진화, 2012–2014 

초기 EPA 내용 영역 수정된 EPA 제목 최종 EPA 제목
A. 정보 수집 1. 흔한 주호소(common chief complaint)가 있고 복잡한 기저질환(complicated underlying medical problems)이 없으며, 고통이 없는 협조적인 환자(cooperative patient in no distress)로부터 정보 수집 1. 흔한 주호소가 있는 의학적으로 안정적인 환자(medically stable patient)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
B. 의료제공자와의 정보 공유 2. 흔한 주호소에 대해 초기 평가(initial assessment)와 계획(plan)을 구성하기 위해 환자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통합한다 2. 흔한 주호소에 대해 근거 있는(reasoned) 우선순위화된 감별진단(prioritized differential diagnosis)과 예비 계획(preliminary plan)을 구성하기 위해 환자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통합한다
B. 의료제공자와의 정보 공유 3. 환자 진료와 관련된 정보를 의료팀의 다른 구성원과 의사소통한다 3. 환자 진료와 관련된 정보를 의료팀의 다른 구성원과 의사소통한다
C. 환자와의 정보 공유 4. 고통이 없는 환자에게 환자의 진단 및/또는 관리 계획(management plan)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 4.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서적 고통(significant physical or emotional distress)이 없는 환자에게 진단 및 관리 계획을 포함한 환자 진료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D. 환자 옹호 및 질 향상 5. 환자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련 자원을 확인하고 공유한다 5. 개별 환자 진료 또는 집단 환자 진료(collective patient care)를 향상시키기 위해 의료팀에 자원을 제공한다
E. 평생학습을 위한 정보 관리 5. 환자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련 자원을 확인하고 공유한다 5. 개별 환자 진료 또는 집단 환자 진료를 향상시키기 위해 의료팀에 자원을 제공한다

표 2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위임가능 전문직무(EPA)에 대한 내용타당도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개최된 네 차례 워크숍의 특성, 2014 

특성 워크숍 1: 프리클럭십 임상술기 과정 책임자 워크숍 2: 임상실습 교육과정 위원회 워크숍 3: 국가 의학교육 학술대회 워크숍 4: 국제 의학교육 학술대회a
워크숍 60분7명 참여자4개 부서 45분18명 참여자, 학생 2명 포함7개 부서 90분26명 참여자미국 12개 의과대학 및 국제 1개 의과대학 90분23명 참여자7개국의 최소 15개 의과대학: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위스, 뉴질랜드, 태국
소그룹 2개 소그룹각 그룹에 임상의 최소 1명과 비임상의 최소 1명 포함그룹당 2–3개 EPA 5개 소그룹각 그룹에 임상실습 책임자 최소 1명 포함그룹당 1개 EPA 5개 소그룹각 그룹에 최소 3개 의과대학 대표 포함그룹당 1개 EPA 5개 소그룹4개 그룹에 최소 3개 의과대학 및 3개 국가 대표 포함그룹당 1개 EPA
참여자에게 제공된 EPA 수정 목록 수정 목록 정련본 1 정련본 2
일반 피드백 활동 매개변수 확대, 즉 기대 수준 증가EPA 5 명확화 통역사 사용 추가EPA 5 명확화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 및 기초과학 적용(basic science application)에 대한 강조 증가체계기반 진료(systems-based practice) 및 술기(procedures)를 위한 EPA 추가 고려 언어와 매개변수 정련민감한 신체진찰 부위, 예: 비뇨생식기 진찰(genitourinary exam) 제외체계기반 진료와 술기를 위한 EPA 추가 고려 언어와 매개변수 정련
이루어진 수정 EPA 언어 갱신, EPA 5의 주요 재작성매개변수 명확화, 많은 경우 매개변수 확대 언어 정련매개변수 조정 언어 정련매개변수 조정, 민감한 신체진찰 부위 제외 언어 정련매개변수 조정
결과 EPA 정련본 1 정련본 1 정련본 2 정련본 3

a 참여자 인구통계 정보가 담긴 한 테이블의 워크시트가 분실되어, 의과대학 및 국가 집계에는 해당 테이블의 참여자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림 1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위임가능 전문직무(EPA)의 개발 및 내용타당도 근거 수집 단계, 2012–2014 

 

  • 1단계: 학생운영 클리닉 연구, 학생 포커스 그룹, 프리셉터 면담을 통해 EPA 영역의 초기 목록을 도출하였다.
  • 2단계: EPA의 교육과정 매핑(curricular mapping of EPAs)을 수행하고 전문가 자문(expert consultations)을 받았다.
  • 3단계: 수정된 전체 EPA 기술문(revised list of full EPA descriptions)을 만들고, 프리클럭십 임상술기 과정 책임자와 임상실습 교육과정 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EPA 정련 1을 수행하였다.
  • 4단계: 미국 지역 의학교육자(U.S. regional medical educators)와 국제 의학교육자(international medical educators)의 검토를 통해 EPA 정련 2와 EPA 정련 3을 수행하였다.
  • 5단계: 전문가 자문을 거쳐 최종 전체 EPA 기술문(final full EPA descriptions)을 완성하였다.

 

 

논의 Discussion 

이 논문에서 우리는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다섯 가지 핵심 EPA(core EPAs)를 확인하고 상세 기술문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론을 설명하였다. 이 EPA들은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임상 현장 참여(clinical workplace engagement)의 일부로 수행할 수 있는 발달적으로 적절한 활동(developmentally appropriate activities)을 명확히 한다. 우리는 이 EPA들을 우리 기관의 교육과정 목표에 매핑하였고, 다른 집단들이 개발한 EPA와 정렬하였다. 또한 우리의 EPA는 내외부 주제전문가로부터 얻은 내용타당도 근거(content validity evidence)에 의해 뒷받침된다. 우리의 상세 기술문과 타당도 근거는 다른 기관들이 초기 임상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이 EPA들을 실제로 운영(operationalize)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우리가 확인한 다섯 가지 EPA의 구성개념(constructs)과 내용 영역(content domains)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기대되는 감독 수준, 즉 반응적 감독하 수행(practice under reactive supervision)에 동의하였고, 이 감독 수준에 맞도록 EPA의 내용, 즉 상세한 세부사항과 제한점의 폭과 복잡성(breadth/complexity)을 확대하거나 제한하면서 조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기관마다 프리클럭십 임상 준비(preclerkship clinical preparation)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숍 참여자들은 프리클럭십 학생에게 기대되는 바에 대해 합의할 수 있었다.

 

일부 참여자들은 술기 중심 EPA(procedures-oriented EPA)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는데, 이는 우리의 EPA가 핵심 EPA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별 기관은 기관 고유의 목표와 학생 요구에 맞추기 위해 술기 관련 EPA와 같은 추가적이고 선택적인 EPA(elective EPAs)를 포함할 수 있다. 또한 위임 결정에 도달하는 데 사용되는 정보 출처는 지역 자원(local resources)과 상황(circumstances)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부록 1의 전체 EPA 기술문에 UCSF에서의 실행에 특이적인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핵심 프리클럭십 EPA를 실행하고자 하는 기관들이 EPA 기술문의 3, 4a, 4b, 5, 6번 항목을 자신의 지역 교육과정에 맞게 완성하기를 권장한다. 평가를 위한 정보 출처에 대한 논의는 기존 평가(existing assessments)를 넘어, 위임 결정을 내리기 위한 평가의 타당도(validity of the assessments)를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진척도를 판단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능하면 서로 다른 유형의 정보 출처, 예를 들어 교수 평가(faculty evaluation), 다면 피드백(multisource feedback), 표준화 환자 시험(standardized patient exams)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며, 위임 결정은 한 명 또는 한 시점 이상의 입력, 예를 들어 세 명의 교수진이 위임을 권고하는 방식에 기반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우리의 EPA 개발 과정에서 가치 있는 결과 중 하나는 학생의 임상술기에 대해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질 수 있는 프리클럭십 교수진과 임상실습 교수진 사이의 논의를 촉진한 것이었다.33 우리 기관에서 이 논의는 임상실습에 진입하는 학생에 대한 기대 수준에 관한 교수진의 합의를 형성하였다. 이제 이러한 기대는 학생들에게 명시적이고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다. 임상 현장에서 학생의 역할과 책임을 구성하는 방식은 참여를 통한 학습(learning through participation)의 중요성과 프리클럭십 학생이 환자 진료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가치 있는 대화도 만들어냈다. 각 EPA에 대한 감독 수준, 위임의 의미, 상세한 세부사항/제한점을 신중하게 고려함으로써, 교수진은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어떤 과제에, 어떤 상황에서 안전하게 실제 환자진료 활동(authentic patient care activities)에 참여할 수 있는지 합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논의는 교수진의 기대를 변화시키고, 프리클럭십 학생을 임상 현장의 잠재적 부담(potential burdens)이 아니라 기여자(contributors)로 보도록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AAMC CEPAER가 공개되기 1년 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15 이후 우리는 CEPAER가 프리클럭십 학생의 능력에 비해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너무 넓은 EPA는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현장에서 정당한 참여(legitimate participation)를 위해 필요한 책임 수준(degree of responsibility)을 맡는 것을 방해할 수 있으며, 이 연구의 주된 목표는 학생 참여(student participation)를 촉진할 수 있는 EPA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또한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13개의 CEPAER 각각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중 일부만 수행하고 임상실습 동안 기술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CEPAER에서 거꾸로 역산하는 방식(work backward)을 선택하지 않고, 입증된 프리클럭십 학생 수행능력의 근거에 기반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work forward)을 선택하였다. 우리의 매핑 과정에서 보인 것처럼, 프리클럭십 EPA를 CEPAER에 연결하거나 포개 넣을 수 있는 능력은 그 내용타당도를 강화하며, CEPAER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EPA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34 그러나 프리클럭십 학생은 겉보기에는 작은 과제(seemingly small tasks)를 주요 책임(major responsibilities)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제는 나중에야 더 넓은 과제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EPA 2, “흔한 주호소에 대해 근거 있는 우선순위화된 감별진단과 예비 계획을 구성하기 위해 환자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통합한다”는 전공의의 더 넓은 과제인 “급성 흔한 질환을 가진 환자의 진료를 관리한다(manage care of patients with acute common diseases)”18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EPA 2의 타당성에 대해 숙고하였다. 왜냐하면 이 활동은 감독 없이는 반드시 금지되는 활동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초기 단계의 학습자에게 이 활동은 환자진료에 기여하는 책임으로 개념화되고 제시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이를 EPA의 일부로 유지하였다. 작은 과제가 더 넓은 책임으로 발전하는 이러한 진화는 의학교육의 목표인 임상 수행(clinical performance)의 총체적 성장감(holistic sense of growth)에 기여한다.

 

우리의 EPA가 문헌의 권고에서 벗어난 부분을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표 1에서 분명히 보이듯, EPA 제목은 제목을 짧게 유지하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34,35 개발 과정에서 길어졌다. 우리는 제한점을 정교화된 EPA 기술문에서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에 추가하는 것이 프리클럭십 학생에게 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교수진과 학생이 이 EPA를 처음 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우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EPA 5, “개별 환자 진료 또는 집단 환자 진료를 향상시키기 위해 의료팀에 자원을 제공한다”는 AAMC CEPAER 두 가지, 즉 “임상 질문을 형성하고 환자 진료를 향상시키기 위해 고품질 근거를 검색한다(Form clinical questions and retrieve high-quality evidence to advance patient care)”와 “시스템 실패를 확인하고 안전 및 개선 문화에 기여한다(Identify systems failures and contribute to a culture of safety and improvement)”와 유사하며 그 요소를 포함한다. ten Cate는 이 두 AAMC CEPAER가 진정한 EPA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35 그러나 이 두 AAMC CEPAER와 달리, EPA 5는 두 가지 측면에서 EPA의 정의를 충족한다. (1) 지속적인 습관(ongoing habit)이 아니라 환자 진료로 다시 연결되는 구별 가능한 과제(discrete task)이며, (2) 학생들이 이 과제에서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autonomy)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34

 

우리 방법론에는 몇 가지 제한점(limitations)이 있다.

  • 첫째, 거의 2년이 걸린 긴 과정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EPA를 입증된 프리클럭십 학생 수행능력의 근거에 기반한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수용을 촉진하였다. 이러한 수용은 특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환자진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요하였다.33,36
  • 둘째, 지역 및 학술대회 워크숍을 사용한 것은 우리가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는 내용 전문가(content experts)의 수를 제한하였다. 또한 국가 및 국제 수준에서 누가 참여하는지를 통제하는 능력도 제한하였다. 참여가 학술대회 참석 여부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학교육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고 있던 회의에서 의도적으로 워크숍을 개최하였고, 두 워크숍 모두 참여가 많았다. 또한 우리는 참여자의 교육적 역할(educational roles), 임상 배경(clinical background), 기관(institutions)을 추적하였고, 다양한 그룹에서 작업하도록 하였으며, 워크숍 피드백을 평가할 때 기관 및 지역의 폭넓은 대표성을 확인하였다. 실제로 우리는 내용타당도 근거를 수집하는 워크숍 접근이 풍부한 토의(rich discussions)를 가능하게 하고 EPA의 상세한 세부사항과 제한점을 미세 조정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델파이나 명목집단기법 같은 전략을 사용할 경우 더 어려웠을 것이다.
  • 셋째, 우리가 수집한 타당도 근거는 전적으로 내용타당도(content validity)에 초점을 두었다. 학생 평가(student assessment)에 사용하기 위한 추가 타당도 근거가 필요하다. 이 EPA들은 현재 지역적으로 실행되고 있으며, 향후 연구는 이러한 타당도 근거를 수집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EPA 개발을 위한 출판된 지침을 따르고 교육평가(educational testing)의 타당도 기준(validity standards)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다섯 가지 핵심 EPA의 전체 기술문을 개발하였다. 우리는 환자안전(patient safety)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프리클럭십 학생들이 임상 현장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명시적 지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다른 기관들이 이를 사용할 것을 지지한다.

부록 1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위임가능 전문직무(EPA)의 예: EPA 1a
Example of an 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y (EPA) for Entry Into Clerkship: EPA 1a 

 

정보 유형 세부 내용
1. EPA 제목 흔한 주호소가 있는 의학적으로 안정적인 환자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
2. 세부사항과 제한점 다음 상황에서, 주호소(chief complaint)를 활용하여 합리적인 시간 안에, 즉 환경과 복잡성을 고려하여, 맥락에 적절한 병력 청취(history)와 완전 또는 초점화된 신체진찰(complete or focused physical exam)을 수행한다.
  • • 환자는 흔한 주호소를 가지고 있다. 예: 귀 통증(earache), 두통(headache), 기침(cough), 숨참(shortness of breath), 복통(abdominal pain), 구토/설사(vomiting/diarrhea), 허리 통증(back pain), 배뇨통(dysuria), 발열(fever), 발진(rash).
  • • 환자는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예: 고혈압(hypertension), COPD/천식(COPD/asthma), 당뇨병(diabetes)과 같은 만성질환.
  • • 신체진찰에는 비뇨생식기 진찰(genitourinary exam), 직장 진찰(rectal exam), 여성 유방 진찰(female breast exam)이 포함되지 않는다.
  • • 감독 임상의(supervising clinician)가 판단하기에 환자는 의학적으로 안정적이고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서적 고통이 없다.
  • • 진료 환경은 외래 클리닉, 응급실, 입원 병동일 수 있다. 단,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s)은 제외한다.
  • • 환자는 대체로 협조적이다. 예: 공격적이지 않음(noncombative), 성인 또는 7세 이상의 아동. 비교적 인지기능이 보존되어 있다. 예: 진정 상태가 아니며, 섬망(delirious), 치매(demented), 정신병적(psychotic) 상태가 아님.
    • • 병력은 협조적인 가족 구성원, 예를 들어 아동의 부모로부터 얻을 수 있다.
    • • 신체진찰은 환자가 스스로 보행/이동(ambulate/transfer)할 수 있는 경우에 시행한다.
  • • 상호작용은 양측 모두 유창한 언어로 이루어지거나, 자격을 갖춘 통역사(qualified interpreter)를 통해 이루어진다.
3. EPA를 잘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지식, 술기, 태도 지식, 술기, 태도 목록과, 학생이 지역 교육과정(local curriculum)의 어디에서 이를 배우는지에 대한 연결
4a. 프리셉터십 목표 및 임상술기 역량과의 연결 관련 지역 프리셉터십 목표(local preceptorship objectives)와 임상술기 역량(clinical skills competencies) 목록
4b. 이 EPA에 가장 적용 가능한 졸업역량 및 마일스톤과의 연결 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역량 영역(competency domain)에 따라 정렬된 지역 졸업역량 및 마일스톤 목록
4c. 전문직 단체의 EPA와의 연결 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Core EPAs for Entering Residency
  • • 병력을 청취하고 신체진찰을 수행한다
Graduate Medical Education
  • • 여러 진료 환경에서 급성 흔한 질환을 가진 환자의 진료를 관리한다, 내과
  • • 외래, 응급, 또는 입원 환경에서 급성, 흔한, 단일계통 진단(single-system diagnoses)을 가진 환자를 관리한다, 소아과
5. 진척도를 판단하기 위한 정보 출처 지역 학습자 평가 출처(local learner assessment sources) 목록
6. 공식 위임 결정 방법 지역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능력이 몇 번 입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7. 학생에 대한 위임의 조건과 함의
  • • 학생은 외래 클리닉, 응급실, 또는 입원 병동에서 일차 진료 제공자(primary care provider)로서의 역할을 지원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안정적이고 흔한 주호소를 가진 환자의 병력 및 신체진찰로부터 정보를, 방 안 감독 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 • 감독 임상의는 학생과 함께 있지는 않지만 근처에 있고 이용 가능하며, 학생의 소견을 다시 확인한다.

a 지면 제한으로 인해 제목, 상세 세부사항과 제한점, 외부 기관의 EPA와의 정렬에 관한 정보만 제시하였다.

부록 2 임상실습 진입을 위한 위임가능 전문직무(EPA) 2–5의 제목과 세부사항/제한점 Titles and Specifications/Limitations of Entrustable Professional Activities (EPAs) for Entry Into Clerkship: EPAs 2–5 

EPA 2

정보 유형 세부 내용
제목 흔한 주호소에 대해 근거 있는 우선순위화된 감별진단(reasoned and prioritized differential diagnosis)과 예비 계획(preliminary plan)을 구성하기 위해 환자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통합한다
세부사항과 제한점 다음 상황과 특성을 갖춘 경우, 병력과 신체진찰에서 얻은 정보를 통합한다.
  • • 환자는 흔한 주호소를 가지고 있다. 예: 귀 통증, 두통, 기침, 숨참, 복통, 구토/설사, 허리 통증, 배뇨통, 발열, 발진.
  • • 환자는 조절되는 고혈압(controlled hypertension), 천식(asthma), 당뇨병(diabetes)과 같은 안정적인 중요한 의학적 문제(significant, stable medical problems)를 최대 세 가지까지 가지고 있다.
  • • 감별진단과 계획은 다음을 충족한다.
    • • 환자의 현병력(history of present illness)에 기반한다.
    • • 환자의 과거력(past medical history), 사회력(social history), 가족력(family history), 의무기록(medical record)의 요소를 통합한다. 예: 발열 감별진단에서 환자의 여행력을 고려한다.
    • • 기초과학 지식(foundational science knowledge)을 통합한다. 예: 질병의 병태생리(pathophysiology) 또는 분자기전(molecular mechanisms).
  • • 감별진단은 하나 이상의 가능한 진단을 포함하고, 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에 의해 우선순위화되고 지지된다.
  • • 계획은 적절한 다음 단계에 대한 제안을 포함한다. 예: 흔히 의뢰되는 진단검사/영상검사(diagnostic tests/imaging), 초기 치료(initial treatment), 약물(medications), 또는 중재(interventions).

EPA 3

정보 유형 세부 내용
제목 환자 진료와 관련된 정보를 의료팀의 다른 구성원과 의사소통한다
세부사항과 제한점 다음 조건과 제한점이 적용된다.
  • • 환자 만남(patient encounter) 이후의 소견, 예를 들어 환자 면담, 신체진찰, 차트 검토(chart review), 검사 결과(test results)를 조직화하고 우선순위화한 후 다음을 통해 의사소통한다.
    • • 수용된 표준 형식(accepted standard format)을 사용한 구두 증례 발표(oral case presentation).
    • • 수용된 표준 형식, 예를 들어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health record) 또는 기타 형식을 사용한 서면 기록(written documentation).
  • • 진료 환경은 외래 클리닉, 응급실, 또는 입원 병동일 수 있다. 단, 중환자실은 제외한다.
  • • 만남은 임상 환경 밖의 상호작용도 포함할 수 있다. 예: 가정 방문(home visit), 전화 통화(telephone call), 이메일 연락(e-mail correspondence).
  • • 소견은 의료팀의 다른 구성원, 예: 간호 인력(nursing staff), 자문 진료과(consulting service)와 공유하기 전에 감독 임상의와 먼저 제시하고 논의한다.

EPA 4

정보 유형 세부 내용
제목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서적 고통이 없는 환자에게 진단 및 관리 계획을 포함한 환자 진료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세부사항과 제한점 다음 조건과 제한점이 적용된다.
  • • 공유할 정보는 간단명료하며(straightforward), 감독 임상의의 검토를 거쳤다(vetted by the supervising clinician).
    • • 정보에는 진단(diagnosis), 관리 계획(management plan), 다음 단계(next steps), 환자교육(patient education), 예측적 안내(anticipatory guidance), 또는 건강 코칭(health coaching)이 포함될 수 있다.
    • • 논의는 환자를 놀라게 하거나 과도한 불안을 유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 식습관, 약물, HbA1c에 관해 상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암 진단을 전달하는 것은 제외한다.
  • • 환자는 의학적으로 안정적이며, 즉각적으로 생명을 위협하거나(life threatening), 위중하거나(critical), 응급(emergent)이 아닌 흔한 급성 또는 만성 진단(common acute or chronic diagnosis)을 가지고 있다.
  • • 환자는 일반적으로 협조적이다. 즉 공격적이지 않고, 나이가 많은 아동 또는 성인이다. 비교적 인지기능이 보존되어 있다. 즉 진정 상태가 아니며, 섬망, 치매, 정신병적 상태가 아니다.
    • • 의사소통은 환자의 가족 구성원, 예를 들어 아동의 부모와 이루어질 수 있다.
  • • 의사소통은 의료제공자와 환자 모두 유창한 언어로 이루어지거나, 자격을 갖춘 통역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 • 정보 공유에는 전달된 정보에 대한 환자의 이해를 확인하는 것(checking the patient’s understanding)과, 환자가 눈에 띄게 놀라거나 불안해하는 경우 감독 임상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포함된다.

EPA 5

정보 유형 세부 내용
제목 개별 환자 진료 또는 집단 환자 진료를 향상시키기 위해 의료팀에 자원을 제공한다
세부사항과 제한점 조사되고 평가된 정보(researched and appraised information)는 감독 임상의의 허가(permission of the supervising clinician)가 있을 때에만 공유될 수 있다. 자원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 • 임상진료지침(practice guidelines), 임상 리뷰(clinical reviews)와 연구(studies)에서 제시된 가능한 치료 선택지(possible treatment options) 등 의학 문헌(medical literature)의 정보. 이때 근거의 질과 관련성(quality and relevance of evidence)에 따라 가중하여 판단한다.
  • •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또는 기타 검토된 근거기반 출처(vetted, evidence-based sources)에서 얻은 환자교육 자료(patient education materials). 예: UpToDate 환자용 자료(patient handouts), 클리닉 특이 정보(clinic-specific information), 약물 복용 방법에 대한 지침.
  • • 환자 및/또는 환자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사회 기반 자원(local, community-based resources). 예: 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s), 지지집단(support groups), 푸드뱅크(food bank), 핫라인 번호(hotline numbers).
  • • 환자 및/또는 환자 가족을 위한 정보, 지원, 옹호(advocacy)를 제공하는 전국 단위 조직(national organizations). 예: American Heart Association, American Cancer Society, Cystic Fibrosis Foundation.
  • • 해당 문제와 관련하여 의료팀의 다른 구성원에게서 얻은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 예: 의사 또는 간호 전문인력(medical or nurse specialist), 약사(pharmacist), 영양사(nutritionist), 사회복지사(social worker).

J Eval Clin Pract. 2006 Jun;12(3):248-56. doi: 10.1111/j.1365-2753.2004.00551.x.

Integrating evidence into clinical practice: an alternative to evidence-based approaches 

 

 

"근거(evidence)"만으로는 부족하다 — 임상 의사결정의 또 다른 길

Tonelli MR. (2006). Integrating evidence into clinical practice: an alternative to evidence-based approaches. Journal of Evaluation in Clinical Practice, 12(3), 248–256.


안녕하세요. 오늘은 EBM(evidence-based medicine, 근거중심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고전적인 비판 논문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워싱턴 대학의 호흡기·중환자의학 전문의이자 의료윤리학자인 Mark Tonelli가 2006년에 쓴 글인데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

 

특히 요즘처럼 "그래서 근거가 뭐예요?"라는 질문이 임상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는 시대에,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근거(evidence)는 정말 항상 최우선일까요? 


🤔 EBM의 불편한 진실: "통합"이라는 말의 빈틈

EBM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분명한 선언으로 시작했습니다. 임상 연구에서 나온 경험적 근거(empirical evidence)가 임상 경험(clinical experience),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 병태생리학적 추론(pathophysiologic rationale)보다 우월하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개별 환자한테 인구집단 연구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EBM 진영은 슬그머니 표현을 바꿉니다. '비근거적(non-evidentiary)' 지식을 '경시(de-emphasize)'한다고 하던 것을, 이제는 다양한 지식을 '통합(integration)'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거죠.

 

여기서 Tonelli가 짚는 핵심 문제가 나옵니다. 만약 임상 경험이나 병태생리학적 추론을 경험적 근거와 동등하게 인정한다면, "임상 연구 근거가 최선의 근거"라는 EBM의 제1공리가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비판을 피할 수 없고요.

 

그래서 EBM이 택한 묘수가 바로 — 예전엔 '비근거적'이라고 불렀던 임상 경험과 생리학적 이해를, 이제 와서 '근거(evidence)'라는 우산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단, 종류(kind)가 아니라 정도(degree)의 차이일 뿐이라고요. 그래서 근거 위계(hierarchy of evidence)의 맨 아래 칸에 슬쩍 끼워 넣습니다.


⚖️ 정도(degree)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kind)의 차이다

Tonelli의 반박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는 이 "근거로 묶어버리기" 시도가 철학적으로 틀렸다고 봅니다.

 

EBM 진영조차 임상 경험과 전문가 의견을, 생리학적 이해와 직관(intuition)을 구분하면서 후자들을 '근거'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잖아요? 그렇다면 임상 경험·생리학적 이해·경험적 근거에는 다른 것들에는 없는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 셋은 본질적으로 꽤 다릅니다.

"임상 경험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이지만, 경험적 근거는 간접적이고 일반적이다."

"The former is direct and personal, the latter indirect and general."

 

즉 이들은 종류가 다른(different in kind) 지식인데, EBM은 이를 마치 같은 종류 안에서 질만 다른(different in degree) 것처럼 다룬다는 거죠. 이게 이 논문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논점입니다.

 

논문 초록에 나오는 핵심 주장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모든 EBM 접근법에서 임상 연구로부터 도출된 경험적 근거에 일반적인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

"The general priority given to empirical evidence derived from clinical research in all EBM approaches is not epistemically tenable."


🧩 그렇다면 대안은? — 사례 기반(casuistic) 접근

Tonelli가 제시하는 대안은 의료윤리에서 빌려온 결의론적(casuistic), 즉 사례 기반 접근입니다. Jonsen과 Toulmin이 The Abuse of Casuistry에서 임상의학을 '실천적(practical) 활동'의 대표 사례로 든 것에서 출발하죠. 임상 의사결정에는 이론적 지식이나 술기뿐 아니라 프로네시스(phronesis), 즉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모델에서 임상 의사결정에 관련된 주제(topic)는 다섯 가지입니다. 👇

주제 (Topic) 내용
경험적 근거 (Empirical evidence) 임상 연구에서 도출
경험적(체험적) 근거 (Experiential evidence) 본인 또는 타인(전문가 의견 포함)의 임상 경험
병태생리학적 추론 (Pathophysiologic rationale) 생리·질병·치유에 대한 이론
환자의 가치와 선호 (Patient values and preferences) 개별 환자와의 상호작용
시스템 요인 (System features) 자원 가용성, 사회·전문직 가치, 법적·문화적 고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어떤 주제도 다른 주제에 대해 일반적인 우선권을 갖지 않습니다.

"어떤 단일 주제도 다른 주제에 대해 일반적인 우선권을 갖지 않으며, 한 주제의 상대적 중요성은 개별 사례의 정황에 달려 있다."

"No single topic has a general priority over any other and the relative importance of a topic will depend upon the circumstances of the particular case."

 

각 주제 안에서는 위계를 만들 수 있어요(예: 경험적 근거 내부의 RCT > 관찰연구). 하지만 주제와 주제 사이에서는 고정된 순위가 없다는 게 핵심입니다. 어떤 사례에서는 환자의 가치가, 어떤 사례에서는 병태생리가 결정적일 수 있는 거죠.


💉 임상 현장의 예시들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니, 논문이 든 예시를 볼까요.

  • 저일회호흡량 환기(low tidal volume ventilation): ARDS에서 사망률을 줄인다는 강력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눈앞의 환자가 그에 따른 산증(acidosis)으로 심부정맥(cardiac arrhythmia) 같은 부작용을 보인다면? 근거를 따르되 개별 환자에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 됩니다.
  • 심근경색 후 베타차단제(beta-blocker): 생존율을 높인다는 걸 환자도 압니다. 그런데 발기부전(impotence) 부작용 때문에 거부한다면? 여기선 환자의 가치가 근거를 압도합니다.
  • 응급 혈관성형술(angioplasty): 아무리 근거가 좋아도, 시술실과 중재시술 심장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선 실현 불가능합니다. 시스템 요인이 결정적인 경우죠.

이 모든 상황에서 숙련된 임상의가 하는 일은 결국,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여러 근거를 저울질(weigh)하는 것입니다.


📊 "근거 그 자체"를 쓰는 방식도 사실은 결의론적이다

이 논문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인데요. Tonelli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다른 지식과의 관계뿐 아니라, 경험적 근거를 그 자체로 적용하는 과정마저도 실은 사례 기반 추론이라는 겁니다.

 

RCT는 보편적이고 일반화 가능한 진리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특정 조건에서 특정 인구집단의 치료 효과를 보고할 뿐이죠. 그래서 임상 연구는 우리에게 일종의 합성된 '평균 환자(average patient)'라는 패러다임 사례(paradigmatic case)를 제공합니다.

 

임상의의 일은 눈앞의 환자(patient-at-hand)가 이 '평균 환자'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유추(analogy)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닮았으면 연구 결론을 적용하고, 중요한 차이가 있으면 그 결론이 이 환자에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EBM 진영도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이 작업이, Tonelli가 보기엔 본질적으로 결의론적이라는 겁니다.


🎓 의학교육에 주는 함의

저처럼 의학교육에 몸담은 사람에게 이 논문이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Tonelli는 두 가지 함의를 짚습니다.

  • 첫째, 임상 연구를 개발·습득·비판적으로 평가(critical appraisal)하는 능력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칫하면 통계와 논문 해석에는 능하지만, 근거적·비근거적 warrant(논거) 사이를 협상하는 복잡한 판단 능력은 키우지 못한 세대를 길러낼 위험이 있다는 거죠.
  • 둘째, 임상 의사결정은 개인적이고 실천적인(personal and prudential) 활동이기 때문에, 같은 사례에서도 임상의마다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건 EBM이 내세운 "진료 변이(practice variability) 줄이기"라는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에요.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경고. EBM이 모든 종류의 의학 지식을 고려하도록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려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근거'에 기반한 새로운 독단적 의학 권위를 만들어낼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To do less is to risk creating a new dogmatic kind of medical authority, one based on 'the evidence'."


✍️ 마치며 — EBM을 버리자는 게 아닙니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Tonelli는 결코 EBM을 폐기하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결의론적 접근이 EBM의 핵심 가치 — 엄밀하고 명시적인(rigorous and explicit) 추론 — 을 그대로 끌어안는다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이 모델의 장점은, 임상의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그냥 스타일이나 취향 차이"로 뭉뚱그리지 않고, 어떤 warrant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두었는지의 차이로 명확히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진료 변이의 근본 원인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교육적으로도 훨씬 정직한 접근입니다.

 

논문의 결론을 옮기며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한 지식(임상 연구)을 개별 임상 의사결정에서 처방적인 것으로 보려는 시도는 오류이다."

"...attempts to view such knowledge as prescriptive in individual clinical decision making is in error."

 

결국 좋은 임상의란, 근거를 무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근거에 맹종하는 사람도 아니라, 경험적 근거·체험적 근거·병태생리·환자의 가치·시스템이라는 다섯 개의 저울추눈앞의 이 환자를 위해 신중하게 다는 사람이라는 것. 20년 전 글이지만, AI가 "근거"를 실시간으로 들이미는 오늘날 오히려 더 곱씹어볼 만한 통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

 


서론(Introduction)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은 의학교육과 임상실무의 “새로운 패러다임(new paradigm)”으로 옹호되어 왔다(The Evidence-Based Medicine Working Group 1992). EBM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은 학문적 의료기관(academic medical centre)이다. EBM 옹호자들은 전공의 수련(residency training)의 형성기 동안 EBM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Rosenberg & Sackett 1996). EBM 교육이 의학교육의 질이나 이후 환자진료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좋은 근거는 부족하지만(Parkes et al. 2001; Hatala & Guyatt 2002), 현재 미국 내 대다수 내과 수련 프로그램은 전공의 수련 과정에 EBM의 일부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3분의 1은 독립적인 EBM 교육과정(free standing curriculum in EBM)을 가지고 있다(Green 2000). 다른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들도 EBM을 교육과정에 받아들였다(Green 1999). 졸업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에 EBM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도입되면 다음 세대 의사들이 임상의학(clinical medicine)을 실천하는 방식을 바꾸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러한 변화가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이익이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EBM 문헌의 대부분은 임상연구 결과를 개발하고, 획득하고, 해석하며, 임상실무에 통합하는 실제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EBM은 의학지식의 본성에 관한 특정한 철학적 가정(philosophical assumptions)과 논증 위에 서 있으며, 이러한 가정과 논증은 충분히 명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Miles et al. 2004). EBM 지지자들은 이제 다양한 종류의 의학적·비의학적 지식을 통합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한 통합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근거를 임상적 의사결정에 적용하는 이 부분은 EBM 교육과정에서 가장 다루어질 가능성이 낮은 요소이기도 하다(Green 2000). 임상의가 출판된 임상연구뿐 아니라 개인적 경험, 질병에 대한 병태생리학적 이해, 개별 환자의 선호 또는 다른 “비근거적(non-evidentiary)” 출처에서 나오는, 서로 충돌할 수 있는 행위의 정당화 근거들을 어떤 과정으로 균형 잡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EBM 지지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의학지식과 추론을 임상적 의사결정에 통합하는 방법을 설명하려고 했던 몇 안 되는 시도들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EBM 접근법의 실패는 의학적 의사결정의 서로 다른 잠재적 정당화 근거들, 예컨대 실증적 근거(empiric evidence), 임상경험(clinical experience), 병태생리학적 논거(pathophysiologic rationale)를 종류의 차이(different in kind)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different in degree)로 다루려 한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해 아래에서는 하나의 의학지식 형태, 구체적으로는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지식이 다른 지식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러한 접근이 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의학적 의사결정의 여러 잠재적 정당화 근거들은 서로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의학지식의 본성을 이렇게 이해하면, 다양한 정당화 근거를 특정 의학적 결정 안으로 통합하는 대안적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Jonsen과 동료들이 제시한 의학윤리의 사례주의적, 또는 사례기반 접근(casuistic, or case-based, approach)과 매우 유사하다(Jonsen et al. 1992). 궁극적으로, 의학적 인식론(medical epistemology)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많은 임상의들이 바라는 보다 “상식적인(common-sense)” 의학 실천을 명시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해준다(Porta 2004).


근거의 통합: EBM 접근법 Integrating the evidence: EBM approaches 

EBM은 처음부터 임상적 의사결정의 근거로서 다른 종류의 의학지식, 구체적으로 개인적 임상경험(individual clinical experience),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 병태생리학적 논거(pathophysiologic rationale)보다 실증적 근거(empirical evidence), 즉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임상연구(formal and systematic clinical research)에서 도출된 근거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선호한다고 밝혔다(The Evidence-Based Medicine Working Group 1992). “비근거적(non-evidentiary)” 종류의 지식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충분한 근거의 부족(the dearth of adequate evidence)”이 있을 때에만 유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The Evidence-Based Medicine Working Group 1992).

 

실증적 근거에 일반적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생각은 의사들과 여러 논평자들에 의해 도전받았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집단 연구(population studies)에서 얻은 지식을 개별 환자 진료에 적용하려 할 때 내재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Tanenbaum 1993; Tanenbaum 1994; Horwitz 1996; Feinstein & Horwitz 1997).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응으로 EBM 지지자들은 이후 의미론적 전환(semantic switch)을 보였다. EBM은 “비근거적” 종류의 의학지식을 “덜 강조(de-emphasizing)”하기보다는, 일부 대안적 의학지식과 환자의 목표 및 가치를 임상적 의사결정에 “통합(integration)”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Sackett et al. 1996). EBM이 도입된 이후 10년 동안 이 접근법은 진화해 왔다. 대안적 종류의 의학지식을 통합하자는 초기의 요청은 개인적 임상경험(personal clinical experience)에 초점을 두었는데(Sackett 1997), 우연이 아니게도 임상가들이 EBM에 대해 제기한 주된 반대는 바로 임상경험의 가치가 낮게 평가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근거와 임상경험을 실제로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것이 “양심적이고 명시적이며 신중한(conscientious, explicit and judicious)”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 외에는 거의 제시되지 않았다(Sackett 1997). 이후 일부 학자들은 병태생리학적 논거(pathophysiologic rationale)를 근거와 통합해야 할 비근거적 종류의 의학지식 목록에 추가했다(Ellrodt et al. 1997). 주목할 점은, 임상적 의사결정의 근거로서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은 이와 같은 방식의 회복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Tonelli 1999). 이러한 초기 관점 확대의 전 과정에서 EBM은 임상경험과 병태생리학적 논거를 실증적 근거와 종류가 다른 것으로 인식했다(Canadian Task Force on the Periodic Health Examination 1979; Hadorn et al. 1996).

 

그러나 대안적 종류의 의학지식이 갖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EBM에 문제를 제기한다. 비근거적 형태의 의학지식에 실증적 근거와 동등한 지위가 부여된다면, 임상적 의사결정을 안내하는 “최선의 근거(best evidence)”로 연구에서 도출된 근거를 식별하는 EBM의 핵심 공리(primary axiom)가 약화된다. 다시 말해, 비근거적 지식이 실증적 근거를 압도할 수 있다면, 특정 질환과 관련된 임상연구를 알고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 실증적 근거가 지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질환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기로 선택한 임상의도 여전히 자신이 “EBM”을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임상경험을 양심적이고 명시적이며 신중한 방식으로 통합하고 있고, 우연히 그 경험에 우선권을 부여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BM이 임상실무에 대한 매우 다른 접근법을 취하면서도 누구나 충성을 주장할 수 있는 의미 없는 명칭이 되는 것을 피하려면, 적어도 특정한 비근거적 형태의 의학지식이 임상실무에 어느 정도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실증적 근거 사용에 대한 일반적 선호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가장 최근의 시도는 이전에는 비근거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의학지식의 종류를 “근거(evidence)”라는 우산 아래로 포섭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개인적 임상경험(personal clinical experience)과 생리학적 이해(physiologic understanding)는 현재 일부 EBM 지지자들에 의해,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실증적 근거와 종류가 아니라 정도에서만 다른 의학적 “근거”의 형태로 정의되고 있다(Guyatt & Rennie 2002).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epistemic shift)은 EBM의 공식적 도입 이후 제시되어 온 근거 위계(hierarchies of evidence)의 변화에서 분명히 드러난다(Table 1). 임상경험과 생리학적 이해를 “근거”의 형태로 분류함으로써 EBM은 두 가지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 첫째,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실증적 근거가 없을 때 임상경험이나 생리학적 추론에 의존해 임상적 결정을 내리는 의사도 여전히 EBM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더 중요하게는, 임상경험과 생리학적 이해를 근거의 형태로 분류함으로써, EBM 지지자들은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근거를 경험적 또는 생리학적 “근거”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는 근거 위계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EBM은 이전에는 비근거적 종류의 지식으로 보았던 것들의 일정한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최선의 근거”로서 실증적 근거에 대한 일반적 우선권을 유지한다. 이 위계는 특히 질 높은 실증적 근거가 있을 경우, 그것이 임상경험이나 생리학적 이해를 임상적 결정에서 고려할 필요를 없앨 만큼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함을 함축한다.


Table 1. 근거중심의학에서 근거 위계 또는 근거 수준의 변화 
Evolution of hierarchies or levels of evidence in evidence-based medicine 

초기 위계(Early hierarchy) 현재 위계(Current hierarchy)
1. 잘 수행된 무작위대조시험(well-conducted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1. N-of-1 무작위대조시험(N-of-1 randomized controlled trial)
2. 잘 수행된 코호트 연구 또는 환자-대조군 연구, 즉 관찰연구(well-conducted cohort studies or case-control study; observational studies) 2. 무작위시험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 of randomized trials)
3. 통제가 부실하거나 통제되지 않은 연구(poorly controlled or uncontrolled studies) 3. 단일 무작위시험(single randomized trial)
4.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 4. 관찰연구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 of observational studies)
  5. 단일 관찰연구(single observational study)
  6. 생리학 연구(physiologic studies)
  7. 비체계적 임상관찰(unsystematic clinical observation)

초기 위계는 Canadian Task Force (1979)와 Hadorn et al. (1996)을 각색한 것이다.
현재 위계는 Guyatt & Rennie (2002)를 각색한 것이다.

초기 위계에서는 개인적 임상경험(personal clinical experience)병태생리학적 추론(pathophysiologic reasoning)이 “근거(evidence)”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위계에서는 생리학(physiology)과 임상경험(clinical experience)이 “근거(evidence)” 범주에 추가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은 더 이상 “근거”로 간주되지 않는다.


물론 임상경험과 생리학적 이해를 “근거”라는 우산 아래에 포함하기로 한 결정과, 이어서 이러한 종류의 지식을 근거 위계의 낮은 단계에 배치한 결정은 그 자체로 근거중심적(evidence-based)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철학적, 더 정확히는 인식론적 주장(epistemological assertions)이다. 나는 두 주장 모두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 첫째, 임상경험과 생리학적 이해를 “근거”로 분류하려는 최근의 시도는, 이러한 종류의 지식이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근거와 충분히 유사하여 하나의 인식론적 범주(epistemic heading) 아래에 포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한다. 다양한 종류의 지식이 공유하는 것은 임상적 결정의 정당화 근거로 작용할 잠재력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각각을 “근거”의 한 종류라고 주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모든 의학적 결정의 정당화 근거가 근거를 구성한다는 순환논증(circular argument)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EBM 지지자들은 그러한 주장을 방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임상경험과 전문가 의견, 그리고 생리학적 이해와 직관(intuition)을 명확히 구분하며, 전문가 의견과 직관이 특정 의학적 결정의 정당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근거”의 영역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EBM 지지자들은 임상경험, 생리학적 이해, 실증적 근거가 전문가 의견 같은 배제된 잠재적 정당화 근거에는 없는 어떤 중요한 특징을 공유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 그러나 임상경험임상연구에서 도출된 근거와 상당히 달라 보인다. 전자는 직접적이고 개인적(direct and personal)인 반면, 후자는 간접적이고 일반적(indirect and general)이다. 실제로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경험(first-hand, primary experience)체계적 관찰 및 실험에서 도출된 실증적 근거, 즉 Reed가 “가공된 정보(processed information)”라고 부른 것 사이에는 고전적인 철학적 구분이 존재한다(Reed 1996). 사실 이 구분은 EBM의 우월성을 주장했던 초기 주장들의 핵심이었다(The Evidence-Based Medicine Working Group 1992). “근거” 개념이 이렇게 포괄적으로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마찬가지로 생리학적 이해를 “근거”의 한 종류로 포함하는 것도 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EBM 지지자들이 생리학적 이해의 포함을 인간이나 동물에서 수행된 특정 생리학 실험, 즉 임상적 결과지표(clinical outcome measures)를 제공하지 않는 실험에서 도출된 근거로 제한한다면, 그 주장은 일관되고 설득력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특정 임상적 결정을 방어할 때, 특정 임상시험을 인용하듯 특정 생리학 연구를 일반적으로 인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생리학적 원리(physiologic principles)로부터 논증한다. 즉 특정 실험 자체가 아니라, 실험에서 도출된 이론(theories)으로부터 논증한다. 생리학적 원리로부터 추론하는 것은 의학에서의 합리주의(rationalism)의 한 형태를 나타내며, 바로 이 개념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점점 더 강하게 거부되어 왔다. EBM이라는 새로운 경험주의(new empiricism)는 다시 말해, 이러한 추론 방식에서 비롯된 오류들을 인식하면서 합리주의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데 기반을 두었다. 그럼에도 이론에 대한 의존은 임상의학에서 여전히 중요하며, 우리가 실증적 근거를 해석하고 가치평가하는 방식에 정당하게 영향을 미친다(Vandenbroucke & de Craen 2001).

 

임상경험, 생리학적 이해, 실증적 근거가 모두 “근거”의 한 종류로 간주될 만큼 충분히 유사하다고 인정하더라도,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실증적 근거가 존재할 때 그것이 항상 임상적 의사결정을 안내하는 “더 나은 근거(better evidence)”를 제공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각각의 잠재적 의학지식 출처는 서로 다른 강점과 약점의 조합을 지닌다.

 

  • EBM 지지자들은 임상경험생리학적 추론에 의존하여 의학적 의사결정을 내릴 때의 한계를 명확히 제시해 왔고(The Evidence-Based Medicine Working Group 1992; Sackett & Rosenberg 1995),
  • 비판자들은 실증적 근거를 특정 환자 진료에 적용할 때의 내재적 한계를 지적해 왔다(Feinstein & Horwitz 1997; Tonelli 1998; Tanenbaum 1999).
  • 임상경험 및 병태생리학적 논거는 때때로 출판된 실증적 근거로부터 도출된 최적 진료(optimal care)에 관한 결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낮은 일회호흡량 환기(low tidal volume ventilation)는 급성호흡곤란증후군(acute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 ARDS)으로 인한 호흡부전에서 안전하며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입증되었다(ARDS Network 2000). 그러나 개별 환자는 이 치료와 관련된 산증(acidosis)에 대해, 해당 연구에서는 기술되지 않은 심장부정맥(cardiac arrhythmia) 같은 부정적 생리학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임상의는 이러한 개별적 이상 반응을 무시하고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입증된 치료를 계속 제공하기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 경우 그는 개별 환자에게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임상경험병태생리학적 논거 외에도, 특정 사례의 다른 특징들이 실증적 근거만을 따랐다면 내려졌을 결정과 다른 결정을 지지하도록 작용할 수 있다.

 

  • 가장 명백한 예는 의학적으로 적응증이 있고 우수한 임상근거에 의해 지지되는 중재를 환자가 거부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심근경색 후의 한 남성이 베타차단제(beta-blocker) 치료가 통계적으로 생존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발기부전(impotence)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그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 최근 EBM은 개별 환자의 목표와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그것들을 알고리즘과 의사결정분석(decision analysis)에 더 잘 맞는 “환자 효용(patient utilities)”의 형태로 계량화하고 처리하려고 해 왔다(Naglie et al. 1997; Man-Son-Hing et al. 2000).
  • 질 높은 근거가 진료를 결정할 수 없는 또 다른 단순한 예들은 실증적 근거가 지지하는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자원의 가용성(availability of resources)을 중심으로 한다. 예를 들어, 심근경색에서 응급 혈관성형술(emergent angioplasty)의 이점은 첨단 시술실(advanced procedure lab)과 중재심장전문의(interventional cardiologist)에 접근할 수 없는 기관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임상의는 실증적 근거뿐 아니라 자신의 임상경험 지식(experiential knowledge), 병태생리에 대한 이해, 환자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의료시스템 내에서 진료의 장애요인과 촉진요인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잠재적 행위 정당화 근거 각각에 부여되는 상대적 무게는 당면한 사례의 구체적 특징에 달려 있다. 이러한 개별 사례 의존성(case-dependence)을 인정하면, 임상적 의사결정에 대한 사례주의적 이해(casuistic understanding of clinical decision making)가 지금까지 EBM이 제공한 설명보다 최적의 의학 실천(optimal medical practice)에 대해 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근거의 통합: 사례주의적 접근 Integrating the evidence: a casuistic approach 

Jonsen과 Toulmin이 실천적 도덕추론(practical moral reasoning)의 역사를 검토한 『The Abuse of Casuistry』에서, 저자들은 임상의학을 “실천적(practical)” 활동의 주된 예로 사용한다(Jonsen & Toulmin 1988). 그들은 임상적 의사결정이 개별 질병의 특수성(particularities of individual illness)을 다루기 위해 의학에 대한 이론적 이해와 특정 기술적 능력뿐 아니라 신중함(prudence) 또는 프로네시스(phronesis)를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들은 임상의학이 사례주의적 활동(casuistic undertaking)이라고 주장한다. Hunter도 “근거중심의학”이라는 용어가 의학문헌에 처음 등장하기 3년 전에, 임상의학을 사례주의(casuistry)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했다(Hunter 1989). 이후 Jonsen과 동료들은 임상 상황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과 각각을 고려하는 방법을 구체화함으로써 의학윤리에 대한 사례주의적 접근을 주장하고 체계화했다(Jonsen et al. 1992). 그러나 임상적 의사결정 자체에 관련된 주제를 구체화하는 데에는 훨씬 적은 관심이 기울여졌다. 임상의학에 대한 사례주의적 이해에 필요한 주제들은 특정 임상적 결정에 관련된 윤리적 쟁점을 평가하는 데 핵심적인 주제들과 분명히 겹칠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의학적 의사결정의 여러 잠재적 정당화 근거를 “근거”라는 우산 아래에 두려는 현재의 EBM 시도는 주로 실증적 근거(empirical evidence), 임상경험 근거(experiential evidence),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가 정도에서가 아니라 종류에서 서로 다르다(differ in kind, not in degree)는 사실 때문에 실패한다. 따라서 이 세 종류의 의학지식은 임상적 의사결정에 대한 사례주의 모델의 첫 세 주제가 된다. 각 주제 안에서는 가치의 위계(hierarchy of value)가 발전될 수 있지만, 한 주제가 다른 주제에 비해 갖는 중요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임상경험이 실증적 근거보다 반드시 덜 중요하거나, 병태생리학적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각 주제에 부여되는 상대적 무게는 당면한 사례에 따라 달라진다. 다음은 이 초기 세 주제 각각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 실증적 근거(empirical evidence)는 임상연구에서 비롯되며, 실제 진료를 하는 의사에게는 출판된 보고서(published reports)를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 연구설계(study design)와 통계적 견고성(statistical robustness)에 따라 그러한 근거의 사례들을 순위화하는 실증적 근거의 위계는 대체로 합의되어 있다. 다만 특정 연구설계의 상대적 강점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있다(Concato et al. 2000). 실증적 근거에 관한 출판 보고서에 접근하고,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서구 의학교육(Western medical education)의 주요 초점이 되었다(Green 2000). 이러한 종류의 의학지식에 의존하는 것의 가치는 EBM 지지자들에 의해 잘 목록화되어 있다. 실증적 근거의 주요 한계는 그것이 어떤 특정 환자에게도 직접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과 관련된다(Feinstein & Horwitz 1997; Tonelli 1998).
  • 임상경험 근거(experiential evidence)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면서 얻은 지식을 포괄한다. 실제 진료를 하는 의사는 개인적 경험에 의존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배우려 할 수도 있다. 임상경험 지식에서는 일반적으로 더 많은 경험이 더 적은 경험보다 낫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특정 질병을 가진 많은 수의 환자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에 기반한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은 임상경험 근거의 가장 높은 형태로 볼 수 있다(Tonelli 1999). 임상경험 지식의 주요 문제는 그것이 여러 종류의 인지편향(cognitive bias)에 취약하다는 점이며(Elstein & Schwarz 2002), 그 결과 인과성(causality)이나 치료효과(treatment effect)에 대해 잘못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는 질병을 신체적 자기(physical self)의 교란(perturbation)으로 이해하는 일반적인 서구적 질병관에서 나온다. 기본적인 생물학적·생리학적 원리를 이해하면 의사들은 제시되는 특징(presenting features)을 진단과 연결할 수 있고, 치료 반응을 예측하고 측정할 수 있다. 병태생리학적 추론의 강점은 주로 그 바탕이 되는 생물학적 또는 생리학적 이론의 강도에 달려 있다. 과학적 원리로부터 추론하는 것의 주요 한계는 생리학적 지표(physiologic measures)와 사망률(mortality), 삶의 질(quality of life) 같은 의미 있는 결과(meaningful outcomes) 사이의 관계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인식론적 주제(epistemic topics)에 더해, 어떤 의학적 결정에도 관련되는 두 가지 다른 주제가 있다.

 

  • 아마도 가장 명백한 것은 개별 환자의 목표, 가치, 선호(goals, values and preferences)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학지식만으로는 “A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고 싶다면 B를 하라”는 형식의 가언명령(hypothetical imperatives)만을 만들어낼 수 있다. “A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것”이 적절하고 의미 있는 목표인지를 결정하려면 환자의 가치(patient values)를 통합해야 한다(Tonelli 1998).
  • 어떤 임상적 결정에도 관련되는 마지막 주제는 “시스템 특성(System Features)”이라는 넓은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는 진료의 경제적, 물류적, 법적, 문화적 장애요인 또는 촉진요인이 포함된다. 특정 중재의 비용, 가용성 또는 합법성은, 그 중재를 지지하는 강한 실증적·임상경험 근거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 사용을 배제할 수 있다. 더 미묘하게는, 의료전달체계(health care delivery system) 자체뿐 아니라 전문직적·사회적 가치(professional and societal values)도 개인의 진료와 관련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고려가 항상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어떤 의학적 결정에도 관련되는 다섯 가지 주제는 Table 2에 제시되어 있다. 다시 강조해야 할 중요한 점은 어떤 주제도 다른 주제보다 일반적 우선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주제든 특정 임상적 결정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사례주의적 임상의학 모델에서 임상판단(clinical judgment)은 각 주제 영역에서 나오는 특정한 행위 정당화 근거들을 처리하고 저울질하여 최선의 행동방침(best course of action)에 관한 잠정적 결론(presumptive conclusion)에 도달하는 능력으로 볼 수 있다. 많은 경우 임상적 결정은 비교적 명확하다. 예컨대 실증적 근거, 임상경험 근거, 병태생리학적 이해가 모두 특정 치료계획을 시사하고, 그 치료가 이용 가능하며, 환자도 그것을 원할 때가 그렇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실증적 근거와 임상경험 근거 또는 병태생리학적 이해가 서로 다른 접근을 시사할 수 있다. EBM 접근법은 그러한 상황에서 실증적 근거에 일반적 우선권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은 철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실증적 근거를 “양심적이고 신중하게(conscientious and judicious)” 사용한다는 것은 개별 상황이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 임상의가 그 근거를 제쳐둘 필요가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Table 2. 임상적 의사결정의 다섯 가지 주제 
The five topics of clinical decision making 

주제 설명
실증적 근거(Empirical evidence)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에서 도출된다.
임상경험 근거(Experiential evidence) 개인적 임상경험 또는 다른 사람의 임상경험, 즉 전문가 의견(expert opinion)에서 도출된다.
병태생리학적 논거(Pathophysiologic rationale) 생리학, 질병, 치유에 관한 기저 이론(underlying theories of physiology, disease and healing)에 기반한다.
환자의 가치와 선호(Patient values and preferences) 개별 환자와의 개인적 상호작용(personal interaction)에서 도출된다.
시스템 특성(System features) 자원 가용성(resource availability), 사회적·전문직적 가치(societal and professional values), 법적·문화적 관심사(legal and cultural concerns)를 포함한다.

고립된 실증적 근거 Empirical evidence in isolation 

지금까지 나는 실증적 근거가 다른 종류의 의학지식보다 일반적 우선권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 외에는, 실증적 근거가 임상적 의사결정에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EBM에서 중요하지만 대체로 간과되어 온 또 다른 측면은, 의학지식의 이 종류가 다른 잠재적 의학적 의사결정 정당화 근거와 어떻게 관련되는가가 아니라, 의사들이 실증적 근거 그 자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와 관련된다. 나는 실증적 근거로부터 추론하는 것(reasoning from empirical evidence) 역시 구체적으로는 실천적 또는 사례주의적 추론(practical or casuistic reasoning)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임상연구, 특히 무작위대조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은 보편적이고 일반화 가능한 지식(universal and generalizable knowledge)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 아래에서 어떤 특성은 공유하지만 다른 특성은 공유하지 않는 개인들의 집단(populations of individuals)에서 관찰된 치료효과(treatment effects)를 보고한다. 따라서 임상연구에서 도출된 실증적 근거는 현재 눈앞의 환자(patient-at-hand)에 대해 연역적 결론(deductive conclusions)을 끌어낼 수 있는 보편적 진리(universal truths)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환자와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합성된 “평균 환자(average patient)”의 사례를 제공한다(Feinstein & Horwitz 1997).

 

Jonsen과 Toulmin의 사례주의 설명을 사용하면, 잘 수행된 임상연구는 임상의에게 “전형적(paradigmatic)” 사례를 제공한다. 임상의는 현재 환자가 임상연구에서 제공된 “평균” 환자충분히 유사하여 그 연구의 결론을 해당 환자의 진료에 통합할 만한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현재 환자가 “평균” 연구대상자와 다르다면, 임상의는 그 차이가 연구에서 도출된 결론이 현재 결정에 관련되지 않는다고 볼 만큼 중요한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환자가 연구 속 “평균” 환자와 얼마나 유사한지는 연구 결과에 얼마나 많은 무게를 둘지를 결정한다. 때때로 임상의는 현재 환자가 한 연구에 등록된 환자들과 더 유사한지, 아니면 다른 결과를 산출한 또 다른 연구에 등록된 환자들과 더 유사한지를 물어야 한다. EBM 지지자들도 필수적이라고 인정하는 이 과제는 본질적으로 사례주의적이다. 이 과정이 올바르게 수행된다면,

 

  • 그것은 의학문헌 속 다른 잠재적 “전형적” 사례들과의 비교뿐 아니라,
  • 임상의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실제 사례(real cases),
  • 그리고 아마도 전문가 동료들의 경험에서 나온 개별 또는 집합적 환자들과의 비교도 포함한다.

 

추론은 유비(analogy)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실제 사례이든 “평균” 사례이든 현재 사례와 가장 유사한 사례를 찾는 과정이 된다. 차이점들은 현재 사례에 대한 잠정적 결론을 거부할 만큼 중요한 구분을 나타내는지 보기 위해 고려되어야 한다. 결국 최선의 행동방침에 관한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려면, 생리학적 고려와 시스템 관련 고려, 그리고 환자의 목표와 가치도 고려되어야 한다.


 

사례주의적 접근이 EBM에 갖는 함의
Implications of the casuistic approach for EBM 

임상의학에 대한 사례주의적 이해는 현재의 EBM 이해에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 첫째, EBM이 학생과 의사에게 임상연구를 개발하고, 획득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현재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최적의 의료(optimal medical care) 제공을 장려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근거적 정당화 요소와 비근거적 정당화 요소 사이의 협상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EBM은 연구 해석(study interpretation)과 통계적 방법(statistical methods)에는 능숙하지만, 탄탄한 임상판단(sound clinical judgment)에 필요한 복잡한 추론 능력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는 데 실패하는 한 세대의 의사를 양성할 위험이 있다. 임상연구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기술은 의사교육에서 계속 필수적이겠지만, 의학교육은 임상적 의사결정에서 주로 실증적 근거에 의존하는 것의 한계를 직접 다루어야 한다.
  • 둘째, 임상의학에 대한 사례주의적 이해는 임상적 의사결정이 개인적이고 신중함을 요구하는 활동(personal and prudential undertaking)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임상의들은 유사한 사례에서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변이(variability)의 수용은 EBM이 명시한 이점 중 하나, 즉 진료 변이(practice variability)를 제한한다는 주장과 상충한다. 실증적 연구가 처방적(prescriptive)이지 않으며, 실증적 근거로부터의 추론이 연역적(deductive)이지 않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EBM은 특정 사례에 올바른 행동방침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것은 “근거에 의해 지지되는(supported by the evidence)” 행동방침이다. 실증적 근거의 축적이 불충분하다고 보일 때에만, EBM은 다른 종류의 의학지식이 신뢰할 수 없다고 간주된다는 이유로 진료에서 상당한 변이를 허용한다.
  • 그러나 임상적 결정은 임상연구가 부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연구에서 도출된 어떤 규칙에도 예외가 항상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잠정적(presumptive)인 상태로 남는다. 훌륭하고 풍부한 임상연구는 많은 수의 단순한 사례에서 진료를 안내할 만큼 설득력 있을 수 있지만, 의사는 현재 환자가 예외일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EBM은 각 사례에서 잠재적으로 관련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의학지식을 의사들이 고려하도록 허용할 뿐 아니라 장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거(the evidence)”에 기반한 새로운 독단적 의학 권위(dogmatic kind of medical authority)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Feinstein & Horwitz 1997).

그러나 사례주의적 접근은 EBM의 핵심 가치 중 일부를 받아들인다. 특히 이 접근은 의학적 추론(medical reasoning)이 엄밀하고 명시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의사들은 서로 다른 잠재적 정당화 근거에 부여하는 무게에 따라 최종 평가가 달라질 수 있지만, 결론에 도달할 때 이용 가능한 실증적 근거를 인식하고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위에서 개괄한 사례주의적 방법은 임상적 의사결정에 대한 쉽게 가르칠 수 있고 형식화된 접근을 제공하며, 이는 수련 중인 의사들의 교육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임상의들 사이의 단순한 스타일이나 의견 차이로 보일 수 있는 것들도, 명시화되어 서로 충돌하는 정당화 근거들에 부여된 무게의 차이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결과 진료 변이의 근본 원인(root causes of practice variability)이 명확해지고 공개적으로 논의될 수 있으며, 교육과정이 개선될 수 있다.


결론(Conclusion)

EBM의 철학적 토대(philosophical underpinnings)는 결코 잘 설명된 적이 없으며,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변화해 왔다. 임상연구가 생성하는 지식의 종류를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그러한 지식을 개별 임상적 의사결정에서 처방적인 것으로 보려는 시도는 오류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임상의는 실증적 연구를 사례주의적 방식(casuistic fashion)으로 사용하며, 현재 환자(patient-at-hand)를 의학문헌에서 제공되는 전형적 사례(paradigmatic cases)와 비교한다. 그 다음 임상의는 해당 사례에 대한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잠재적 행위 정당화 근거들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특정 임상적 결정에도 관련되는 다섯 가지 주제는 1) 실증적 근거(empirical evidence), 2) 임상경험 근거(experiential evidence), 3)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 4) 환자의 목표와 가치(patient goals and values), 5) 시스템 특성(system features)이다. 따라서 숙련된 임상의는 현재 환자를 다룰 때, 문헌과 경험 모두에서 나온 전형적 사례들과 환자를 비교하면서, 실천적 추론과 이론적 추론을 모두 사용하여,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이러한 행위 정당화 근거들을 저울질한 뒤 적절한 행동방침에 관한 잠정적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임상의학에 대한 이러한 사례주의적 이해는 의학교육뿐 아니라 의료 제공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임상적 의사결정의 개인적이고 신중한 성격은, 임상의들이 개별 환자 진료에 관한 평가, 결론, 권고에서 합리적으로 차이를 보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적의 임상의학 실천(optimal practice of clinical medicine)은 임상연구 결과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특정 개인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는 각각의 시도에서 의사들이 근거적 행위 정당화 요소(evidentiary warrants for action)와 비근거적 행위 정당화 요소(non-evidentiary warrants for action)를 모두 사려 깊게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Med Educ. 2023 Apr;57(4):303-304. doi: 10.1111/medu.15027. Epub 2023 Feb 16.

When I say … Identity 

 

우리의 정체성(identities)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정체성은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과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¹,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도록 도와준다. 정체성이라는 구성개념(construct of identities)은 보건의료전문직 교육(health care professions education)에서 핵심적이다.

  • Carnegie Foundation 보고서는 의학 교육의 네 가지 목표 중 하나로 “전문직 정체성에 대한 초점(focus on professional identity)”(p. 6)²을 제시했으며,
  • National League for Nursing은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을 “간호의 예술과 과학에 필수적인 것”(p. 35)³이라고 강조했다.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의 렌즈를 통해 보건의료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정의하는 것은, 교육의 초점을 단순히 실천을 위한 지식(knowledge), 술기(skills), 행동(behaviours)을 포함시키는 데서 벗어나, 보건의료의 가치(values)와 덕목(virtues)“전문직 자아(professional self)”로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킨다.⁴ 그 결과, 보건의료 전문직 전반에서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정체성은 철학(philosophy), 사회학(sociology), 심리학(psychology)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오랜 이론적 작업의 역사를 지닌 복잡한 개념(complex concept)이다.¹ 하지만 보건의료교육 연구의 상당수는 강한 이론적 토대가 부족하며, 정체성 이론을 명시적으로 밝히는 연구는 소수에 그친다.⁵ 전문직 정체성은 보건의료전문가에게 핵심적이므로, 우리는 교육자와 연구자들이 정체성 연구의 풍부한 이론적 전통을 바탕으로 더 큰 개념적 명료성(conceptual clarity)을 추구할 것을 촉구한다.

 

정체성 이론(identity theories)들은 정체성의 내용(content)정체성이 출현하는 과정(processes)에 대한 이해에서 서로 다르다.⁶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론은 정체성이 우리가 사회적 세계(social world) 안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발달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¹ 그러나 이론들은 정체성이 

  • 단일한가(singular) 또는 복수적인가(multiple),
  • 개인적인가(personal) 또는 관계적인가(relational),
  • 상대적으로 안정적인가(relatively stable) 또는 유동적이고 변화 가능한가(fluid and changeable), 그리고
  • 발견될 수 있는가(discovered) 아니면 개인적/사회적으로 구성되는가(personally/socially constructed)에 대해 서로 다르다.⁶

이러한 차이는 각 이론의 존재론적(ontological: 지식과 앎의 본질), 인식론적(epistemological: 우리가 어떤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치론적(axiological: 가치) 토대와 관련된다. 정체성 이론들은 정체성의 존재 위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즉 내적 심리/인지적 영역(internal psychological/cognitive)에서 외적 사회/상호작용적 영역(external social/interactional)에 이르는 연속선 위에서 서로 구별되지만 상호 관련된 세계관을 가진다.¹˒⁷

 

심리학적 또는 사회인지적 정체성 이론(psychological or socio-cognitive identity theories)

  • 흔히 과학적 실재론(scientific realism, 존재론)객관주의(objectivism, 인식론)에 기반한다.
  • 이 관점에서 정체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지만, 인지적으로 표상(cognitively represented)된다.⁸
  • 정체성은 외부 현실을 표상하는 내적이고 정신적인 상징(internal, mental symbols)이며, 단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대체로 identity라는 단수형 용어를 사용한다.
  • 개인은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누구인지를 정의하기 위해 특정 범주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다른 범주와의 비교(comparison) 과정을 사용한다.
  • 우리는 이러한 표상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실험 설계(experimental design), 인터뷰(interviews), 설문지(questionnaires)를 통해 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⁵
  • 따라서 심리학적/인지적 관점은 정체성을 자기 관련 정보(self-relevant information)를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개인적 참조 틀(personal frame of reference)로 본다.
  •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궁극적으로 일관된 정체성(coherent identity)을 발달시키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⁶
  • 이렇게 인지적으로 표상된 정체성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도, 시간에 따라 발달한다. 즉 연속성(continuity)이 강조된다.
    • 예를 들어, Erikson의 여덟 단계 정신분석적 심리사회적 발달 모형(psychoanalytic model of psychosocial development)은 정체성을 개인의 삶의 발달이라는 심리적 과정 안에 위치한 것으로 특징짓는다.⁶
    • Marcia의 정체성 지위 모형(identity status model)은 Erikson의 이론을 경험적으로 조작화하려는 시도로, 다양한 신념과 역할에 대한 우리의 탐색(exploration)과 그에 대한 헌신(commitment)을 함께 구분한다. 이 모형은 개인을 네 가지 지위 중 하나로 분류하는데, 높은 탐색과 높은 헌신을 보이는 정체성 성취(identity achievement)부터 낮은 탐색과 낮은 헌신을 보이는 정체성 혼미(identity diffusion)까지 포함된다.⁶

연속선에서 사회적/관계적 끝으로 이동할수록, 이론들은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ies)집단 구성원성(group membership)의 영향을 강조하면서도, 정체성이 자기 범주(self-categories)로서 인지적으로 표상된다는 관점은 유지한다. 예를 들어 사회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이 이에 해당한다.⁹˒¹⁰

  • 이러한 관점은 전문직(professions), 조직(organisations), 기관(institutions)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과 우리가 얼마나 잘 맞는지를 고려한다.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적합감(sense of fit)은 우리 자신을 집단에 대한 정신적 표상과 비교함으로써 파악된다. 이 비교는 두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하나는 규범적 비교(normative comparison)로, “나는 나의 범주 관련 기대(category-related expectations)에 비추어 볼 때 잘 맞는가?”를 묻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비교적 비교(comparative comparison)로, “나는 다른 집단 구성원들과 유사한가?”를 묻는 것이다.
  • 그러나 이 관점은 집단 지위(group status), 집단 안정성(group stability), 집단 정당성(group legitimacy), 집단 침투 가능성(group permeability), 대안적 집단과의 적합성(fit with alternative groups)을 둘러싼 복잡성도 함께 고려한다.
  • 더 나아가 사회정체성 이론은 개인을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고,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표상이 매우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이 표상에는 여러 내집단(in-groups)이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내집단 표상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사회적 정체성을 인정하기 위해 네 가지 교차 범주화 전략(cross-categorisation strategies) 중 하나를 사용한다. 즉,
    • (1) 여러 집단 구성원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집단을 분류하거나,
    • (2) 여러 정체성 중 하나를 더 우세한 것으로 순위화하거나,
    • (3) 정체성을 구획화하여 맥락적으로 드러나게 하거나,
    • (4) 여러 내집단 동일시의 합으로 병합하는 것이다.¹¹
  • 이러한 전략은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s), 개인적 가치(personal values), 상황적 요인(situational factors)의 영향을 받는다.

연속선의 사회적/관계적 끝에 위치한 이론들은 우리가 말하기(talk)와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을 통해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¹² 이러한 이론들은 상대주의적(relativist)이고 주관주의적(subjectivist)인 앎의 방식에 기반하며, 우리가 내적 인지 구조(internal cognitive structures)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우리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누구와 정렬하거나 정렬하지 않는지(align/misalign), 어떤 사회적 범주를 사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더 넓은 사회적 담론(societal discourses)에 의존하는지는 모두 우리가 주장하는 정체성(claimed identities)을 가리킨다.¹² 정체성은 우리 마음속의 범주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정체성 구성에서 개인의 행위주체성(individual agency)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담론이 언어(language)와 같은 공유된 상징(shared symbols)을 포함한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s)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떻게 그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지를 강조한다.⁶˒¹²

  • 이 단락은 정체성(Identity)을 바라보는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사회문화적(Sociocultural) 이론의 핵심을 아주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 본질적으로 이 이론들은 정체성을 "내 머릿속에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수행하고 만들어가는 과정(Doing identity)"으로 바라봅니다.
  • 이 단락의 핵심 주장을 세 가지 주요 개념으로 풀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인지적 렌즈의 거부: 정체성은 '내면'이 아니라 '사이'에 있다

  • 과거의 전통적인 심리학이나 인지주의적 관점은 정체성을 개인의 뇌나 내면에 존재하는 '인지 구조(cognitive structures)'로 보았습니다. (예: "나는 본래 내향적인 성격이다", "나는 확고한 직업관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식의 고정된 상태).
  • 하지만 이 단락에서 말하는 상대주의적/주관주의적 접근은 이를 전면 거부합니다. 정체성은 개인이 혼자서 마음속으로 깨닫는 진리가 아니라, 특정 상황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드러나고 형성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2. 언어와 상호작용의 정치학: 정렬(Alignment)과 범주화

  • 우리가 일상적으로 던지는 말(talk)이나 대화 패턴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주장(claiming identity)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 정렬과 어긋남(Align/Misalign): 특정 집단이나 가치관에 자신을 동조시키거나, 반대로 거리를 두는 방식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병원 현장에서 누군가가 다른 직역의 전문가와 대화할 때 특정 전문 용어를 강하게 사용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이는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우위'라는 정체성을 상호작용 속에서 주장하고 정렬하는 행위입니다.
    •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ies): 대화 속에서 "우리(의사/연구자)"와 "그들(환자/대중)"이라는 범주를 어떻게 나누어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정체화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구조와 행위주체성의 춤 (Structure vs. Agency)

  • 정체성 형성은 개인이 마음대로 100% 창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의해 100% 억압되는 것도 아닙니다.
    • 더 넓은 사회적 담론(Societal discourses): 의료계의 전문직업성 담론, 사회적 갈등 속에서의 의사 역할에 대한 기대 등 이미 사회에 깔려 있는 거대한 언어와 상징의 규칙(Shared symbols)이 존재합니다.
    • 개인의 행위주체성(Individual agency): 동시에 개인은 그 담론 안에서 수동적으로 머물지 않고, 언어와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s)을 통해 기존의 담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하거나 활용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정체성 이론의 몇 가지 예를 공유했지만, 탐색할 수 있는 이론은 훨씬 더 많다.¹˒⁶ 각각의 이론적 관점은 정체성 형성(identity formation) 또는 정체성 구성(identity construction)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형성한다. 즉, 그것이 심리학적 정체성 처리 지향성(psychological identity-processing orientations)에 부합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인지에 대한 관점을 결정한다.⁶

 

그렇다면 왜 우리가 정체성을 어떻게 개념화하는지가 중요한가?

  • 첫째, 자신의 이론적 지향(theoretical orientation)을 명확히 하는 것은 연구의 엄밀성(rigour)과 신뢰가능성(trustworthiness)을 높인다. 이는 자신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방법론적 틀(methodological framework)과 연구 질문(research questions)을 정렬시키기 때문이다.
  • 둘째, 이론적 정렬(theoretical alignment)은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연구의 축적된 흐름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 문헌과 분리된 연구가 아니라, 해당 분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구에 기여하도록 만든다.
  • 마지막으로,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은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을 지원하는 교육 실제(education practices)를 정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 정체성을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학생 중심 개입(student-focused interventions)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시스템 안에 내재된 문화적 문제(cultural problems embedded within systems)를 개인이 홀로 씨름해야 하는 문제로 남겨두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¹³
    • 반대로, 사회화 과정(socialisation processes)을 강조하면 교육자들에게 학습환경(learning environment)을 정체성을 형성하는 힘(shaping force)으로 검토해야 할 책임이 부여된다.
  • 궁극적으로 우리는 여러분이 “정체성(identit[ies])”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검토할 것을 권한다. 이는 연구의 엄밀성을 위해서이며, 궁극적으로는 고품질의 실천 권고(high quality practice recommendations)를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Anat Sci Educ. 2019 Mar;12(2):210-221. doi: 10.1002/ase.1836. Epub 2018 Oct 30.

Building Professionalism in Human Dissection Room as a Component of Hidden Curriculum Delivery: A Systematic Review of Good Practices 

 

 

🩺 해부학 실습실, 의사의 '사람됨'이 시작되는 곳

— 시신을 '첫 환자'로 만나게 하는 잠재 교육과정 이야기

📄 원문: Ghosh SK, Kumar A. (2019). Building Professionalism in Human Dissection Room as a Component of Hidden Curriculum Delivery: A Systematic Review of Good Practices. Anatomical Sciences Education, 12(2): 210–221. (체계적 문헌고찰, systematic review)


들어가며: 의대생이 처음 카데바를 만나는 순간

  • 의대생이 본과 1학년 해부학 실습실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카데바(cadaver)를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려 볼까요. 긴장되고, 두렵고, 솔직히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막막하죠.
  • 전통적인 해부학 교육은 이 막막함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분리된 관심(detached concern)" 입니다. 학생들에게 시신으로부터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라고, 그래야 '환자 전체'가 아니라 '질병'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가르친 거예요.
  • 그런데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짚습니다. 👇

🗣️ "이 접근법의 두드러진 단점은, 이 교육과정을 거친 의사들이 정밀한 과학적 안목은 갖추었지만 환자를 의료가 필요한 인간이 아니라 사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a notable drawback of this approach is that although physicians within this curriculum went on to develop a precise scientific acumen, they perceived patients as objects rather than human beings in need of medical care" (Ghosh & Kumar, 2019)

 

질병은 잘 보는데 사람은 못 보는 의사. 이걸 깨달은 의학교육자들 사이에서 "이건 아니다" 하는 흐름이 퍼졌고, 그 결과 해부학 실습실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예요.


🔍 그런데 '잠재 교육과정'이 뭐죠?

  • 본격적인 사례로 들어가기 전에 핵심 개념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바로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입니다.
  • 쉽게 말하면 이래요. 강의계획서에 적힌 내용, 시험에 나오는 지식—이건 공식 교육과정(formal curriculum) 이죠. 반면 잠재 교육과정은 강의실의 분위기, 교수님의 태도, 실습실의 문화 같은 것을 통해 은연중에, 의도치 않게 전달되는 가치와 태도를 말합니다. 가르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학습자가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읽어내는' 거죠.
  • 흥미로운 건 그 영향력입니다. 저자들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

🗣️ "'잠재 교육과정'은 의대생의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이런 맥락에서는 '공식 교육과정'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The 'hidden curriculum' has a strong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professional identity among medical students and in this context it is considered as more powerful than the 'formal curriculum'" (Ghosh & Kumar, 2019)

 

  • 그리고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존중, 정직, 연민 같은 의사의 핵심 덕목—은 바로 이 잠재 교육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대표적인 인간 기술(human skills), 즉 분과 독립적 역량(discipline-independent skills) 입니다.
  • 그렇다면 의대생이 가장 일찍, 가장 강렬하게 잠재 교육과정을 경험하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해부학 실습실이죠. 그래서 몇몇 의과대학이 이 공간을 '전문직업성을 길러내는 무대'로 재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 시신에게 '이름' 대신 '정체성'을 — 네 가지 우수 사례

저자들은 전 세계 의과대학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검토해, 해부 실습을 인간적으로 만든 네 가지 대표 실천을 소개합니다. 하나씩 살펴볼게요.

1️⃣ 해부 전에 기증자가 누구인지 알기 (Identifying the Donor) 

  • 대부분의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시신에 번호나 별명을 붙여 익명으로 다룹니다. 이른바 시신에 별명 붙이기(cadaver naming) 죠.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대처(coping) 방식인데요, 문제는 이 습관이 나중에 임상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환자를 '몸의 특징'이나 '아픈 장기'로 부르게 되는, 사람과 인간적 정체성 사이에 거리를 두는 습관 말이죠.
  • 그래서 인디애나 대학교 의과대학 노스웨스트(Indiana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Northwest, IUSM-NW) 는 정반대를 택했습니다. 해부를 시작하기 전에 기증자가 누구인지 학생들에게 공개한 거예요. 기증자가 생전에 직접 "왜 내 몸을 기증하기로 했는지" 이야기하는 영상(video clip)을 보여줍니다. 학생들은 직접 시신을 캠퍼스로 모셔오고, 가족과 편지·전화·이메일로 소통하며, 마지막엔 추모식에서 만납니다.
  •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UMMS) 와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교(University of Otago) 의 'Donated to Science' 프로젝트도 비슷한 영상 인터뷰 방식을 썼는데, 그 효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증자와 마치 의사–환자, 혹은 학생–스승 같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고, 임상 훈련을 받으며 점점 '임상적으로 초연해진' 후에도 공감적 태도를 오래 유지했다고 해요.
  • 여기엔 윤리적 안전장치도 단단히 들어갑니다. 기증자 본인의 정보 공개 동의는 시신 기증 서류 작성 단계에서 받고, 가족 연락은 교수진의 충분한 지도와 검토를 거친 뒤에 이뤄집니다.

2️⃣ 기증자 가족과 함께 밥 먹기 — '기증자 오찬' (Donor Luncheon)

  • 오클라호마 대학교 의과대학(University of Oklahoma College of Medicine, OU) 의 사례는 좀 더 따뜻합니다. 첫 해부 실습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이 기증자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이게 OU 의대생이 받는 '첫 수업'이라고 합니다. 🍽️
  •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어요. 이 '기증자 오찬'을 처음 구상한 Jerry B. Vannatta 교수는 대만의 한 워크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대만이 이 분야의 선구자라는 점, 다음 사례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 오찬에서 가족들은 사진첩이나 준비한 글을 들고 와 고인의 삶을 들려주고, 교수진은 학생들이 다가올 해부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놓도록 도와줍니다. 핵심 목적은 명확합니다. 👇

🗣️ "기증자의 삶에 대한 세부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은 학생들에게 전문가적 거리와 공감 사이의 균형을 가르치며, 그 결과 환자를 단지 질병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 대하도록 더 잘 준비시킨다."

"Learning about the details of the life of the donor teaches the students to balance the professional distance with empathy thereby preparing them in a better manner to serve their patients as living beings and not just maladies" (Ghosh & Kumar, 2019)

  • 여기서 핵심 표현이 등장하죠. 해부가 시작되면 기증자는 학생들에게 '첫 스승(first teacher)' 이자 '첫 환자(first patient)' 가 됩니다. 실제로 오찬에 참여한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도 기증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계속 기억했다고 해요.

3️⃣ 멘토의 집을 찾아가기 — '무언의 멘토 프로그램' (Silent Mentor Program)

  • 가장 깊고 독특한 사례는 대만 츠치 의과대학(Tzu Chi Medical School)'무언의 멘토 프로그램(Silent Mentor Program)' 입니다. 약 16년 전, 츠치를 설립한 청위(Cheng Yen) 법사가 시작했죠. 사실 "시신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중화권의 전통 관념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이었지만, 불교의 자비와 자기희생 윤리에 호소하며 시신 기증 문화를 일궈냈습니다. 🙏
  • 이 프로그램에서 기증자는 '무언의 멘토(Silent Mentor)' 로 불리며 존경받습니다. 학생들은 해부 전에 직접 멘토의 가족을 방문해 고인의 사진을 보고 삶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짧은 전기(biography)를 써서 학교 웹사이트와 해부대 위에 게시하죠. 해부가 끝나면 장기를 제자리에 정성껏 되돌려놓고 절개 부위를 봉합한 뒤, 공개 장례식을 치르고 유골을 교내 사당에 모십니다.
  • 저자들이 정리한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이렇습니다. 👇

🗣️ "츠치 의과대학 당국은 차세대 의사들이 인체를 최고의 존중과 부드러움으로 대하고, 환자를 돌볼 때 인간적이며, 가족과 공감으로 소통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the authorities of Tzu Chi Medical School aim to teach the next generation of doctors to treat the human body with utmost respect and gentleness, to be humane when giving care to patients, and to communicate with their relatives with empathy" (Ghosh & Kumar, 2019)

 

  • 2012년에는 말레이시아 말라야 대학교가 이 모델을 외과 수기 워크숍 버전으로 도입했는데, 학생 대부분이 이를 '변혁적(transformative) 경험' 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교과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요.

4️⃣ 첫 스승을 기리는 감사 행사 (Act of Gratitude)

  • 마지막은 해부 실습이 끝난 후 열리는 추모식(memorial ceremony)입니다. 최근 수십 년간 전 세계 의과대학으로 확산된 흐름이죠.
  • 예일 대학교(Yale) 는 매년 '감사의 예배(Service of Gratitude)'를, 메이요 클리닉 의과대학(Mayo Clinic College of Medicine) 은 '감사 기념식(Convocation of Thanks)'을 엽니다. 메이요의 기념식에는 뭉클한 디테일이 있어요. 학생들이 직접 찍은 꽃 사진을 슬라이드로 상영하고, 참석한 유가족에게 꽃씨 봉투를 선물합니다. 심은 씨앗에서 꽃이 피어나듯, 오늘의 의대생이 내일의 공감적 의사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거죠. 🌸
  • 저자들은 이런 추모식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

🗣️ "이러한 경건한 모임은 해부 실습실 경험에 인간적인 손길을 더함으로써 과학과 인간성을 잇는 데 기여한다."

"these revered gatherings help to bind science and humanity by giving a humanistic touch to the dissection room experience." (Ghosh & Kumar, 2019)


💡 핵심 메시지: '시신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네 가지 사례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보이시나요? 바로 시신 중심 접근(cadaver-based approach)에서 환자 중심 접근(patient-oriented approach)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의학교육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합니다. 👇

🗣️ "이들 의과대학은 '공식 교육과정'과 더불어 '잠재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단지 치료할 뿐 아니라 사회를 돌보는 미래의 의사를 길러내는 길임을 보여주었다."

"these medical schools have illustrated that emphasis on the 'hidden curriculum' alongside the 'formal curriculum' is the way forward in preparing tomorrows physicians who would not only treat but also care for the society." (Ghosh & Kumar, 2019)

 

그리고 결론부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

🗣️ "이렇게 진화한 육안해부학 교육 모델은 학생들의 핵심 전문직 역량 발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며, 따라서 환자를 돌봄과 따뜻함, 연민으로 대하는 미래의 공감적 의사를 길러내는 과정을 시작한다."

"this evolved gross anatomy education model substantially contributes to the development of key professional skills among the students thus commencing the process of building empathetic physicians of tomorrow who would treat their patients with care, warmth, and compassion." (Ghosh & Kumar, 2019)


✍️ 맺으며: 우리 교육과정에 던지는 질문

  • 이 논문을 읽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우리 상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에는 많은 공을 들이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분위기 속에서' 배우게 하느냐—즉 잠재 교육과정의 설계—에는 얼마나 의도를 담고 있을까요?
  • 해부학 실습실은 의대생이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 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가장 이른 무대입니다. 시신에 번호를 붙일 것인가, 이름을 되찾아 줄 것인가. 그 작은 선택이 "질병만 보는 의사"와 "사람을 보는 의사"를 가르는 출발점일 수 있다는 것.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물론 문화적·종교적 맥락에 따라 그대로 옮길 수는 없겠죠. 저자들도 지역·문화·종교적 변형(regional/cultural/religious modifications) 을 전제로 도입할 것을 권합니다. 우리 교육 현장에 맞는 '한국형 잠재 교육과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

서론 INTRODUCTION 

전통적으로 의학교육과정(medical education curriculum) 안에서 육안해부학 프로그램(gross anatomy program)의 초점은 해부 기반 교육(dissection-based teaching)을 통해 인간 해부학(human anatomy)에 관한 필수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이후 임상훈련(clinical training)에 적용하는 데 있었다 (Rizzolo, 2002; Drake et al., 2009; Ghosh, 2015). 이러한 인식에 따라 육안해부학 프로그램 안에서는 “분리된 관심(detached concern)”이라는 개념이 실천되었다. 여기서 학생들은 인간 시신(human cadaver)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자신을 분리하도록 훈련받았고, 이를 통해 임상 실천(clinical practice)에서 환자 전체가 아니라 질병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Lief and Fox, 1963; Dickinson et al., 1997; Jones et al., 2014; Tseng and Lin, 2016). 그러나 연구자들이 관찰한 바와 같이, 이 접근의 두드러진 약점은 이러한 교육과정 안에서 훈련받은 의사들이 정밀한 과학적 통찰(scientific acumen)은 발달시켰지만, 환자를 의료적 돌봄이 필요한 인간 존재가 아니라 대상(object)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Dickinson et al., 1997). 기존 교육과정의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교육자들 사이에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상당수는 “분리된 관심”의 개념을 무효화하려는 목적에서 미래 의사들에게 연민(compassion), 돌봄(care), 공감(empathy)과 같은 인문주의적 속성(humanistic attributes)을 함양하는 데 강조점을 다시 두었다 (Halpern, 2001; Böckers et al., 2010). 그 결과 의과대학들 사이에서 큰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관찰되었고, 기존 인체해부 프로그램의 틀 안에 중요한 변화들이 도입되었다 (Jones et al., 2014). 이 맥락에서 관련 문헌을 색인 데이터베이스인 Medline 및 PubMed, Scopus, Embase®, CINAHL Plus, Web of Science, Google Scholar에서 광범위하게 검색한 결과, 정책결정자와 교육자들이 해부 실습에 인간적 관점(humane outlook)을 부여하기 위해 독특한 개념들을 채택하고 이를 해부 교육과정에 통합해왔음이 확인되었다 (Pawlina et al., 2011; Crow et al., 2012; Talarico, 2013; Santibañez et al., 2016).

  • 이러한 좋은 실천의 등장은 학생들이 인간 시신을 “첫 번째 교사(first teacher)”이자 “첫 번째 환자(first patient)”로 바라보도록 이끌었고, 또한 학생들이 해부학적 구조와 그 세부사항을 탐구하는 매혹적인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개인의 이타적 희생과 이타주의(altruism)를 존중하도록 촉진하였다 (Ferguson et al., 2006; Gregory et al., 2009).
  • 진화하는 의학교육과정 안에서 이러한 좋은 실천은 학생들에게 학문분야 독립적 역량으로서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발달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궁극적으로 존중과 연민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하려는 인간적인 의사(humane physicians)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Bryan et al., 2005; Ghosh, 2017a).

의과대학생 시기에 전문직업성의 필수 구성요소를 내면화하는 것은 미래 임상의사에게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의학교육 프로그램의 이해관계자들은 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즉 ACGME가 제안한 여섯 가지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 중 하나로 전문직업성을 채택하는 것을 지지해왔다 (Gregory et al., 2009). 의과대학생들이 온기와 돌봄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하는 데 필요한 필수 전문직업적 역량(professional skills)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의학 경력의 시작 단계부터 연민, 존중, 사회와 전문직에 대한 책무성(accountability)의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Escobar-Poni and Poni, 2006; Ghosh, 2017b). 이러한 인문주의적 속성은 1학년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인체해부의 영역 안에서 독립적으로 설계된 실천(standalone practices)을 통해 발달한다 (Pawlina et al., 2011; Crow et al., 2012; Talarico, 2013; Santibañez et al., 2016). 이용 가능한 문헌에는 인체해부의 실천이 다른 학문분야 독립적 역량과 함께 전문직업성을 촉진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Shapiro et al., 2009; Ghosh, 2017a). 더 나아가 전문직업성의 본질을 내면화하는 것은 의학훈련(medical training)의 사회화 과정(socialization process)의 핵심 구성요소이며, 이는 의학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잠재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으로 실천되고 있다. “잠재교육과정”은 교육기관의 교육적 틀, 실천, 문화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종종 암묵적이고 묵시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태도와 가치라고 대략 정의할 수 있다 (Hafferty et al., 2015). “잠재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은 의과대학에서 훈련받는 미래 임상의사의 정서적, 행동적 관점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새롭게 부상하는 연구영역이다 (Bandini et al., 2017). 연구자들은 성공적인 의학교육 프로그램이 미래의 공감적 의사(empathic physicians)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잘 설계된 “잠재교육과정”의 틀이 시대적 요구라고 보았다 (Byszewski et al., 2012; Balboni et al., 2015). 의과대학생들은 의학훈련의 상당 기간을 인체해부실에서 보내며, 조기 개입(early intervention)은 “잠재교육과정”의 핵심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의학교육자들은 이 기회를 받아들여 의과대학에서 실천되고 있는 독특한 개념들을 설계하였다 (Pawlina et al., 2011; Crow et al., 2012; Talarico, 2013; Santibañez et al., 2016). 학업적 발전과 더불어 의과대학생의 전문직업성 핵심 구성요소를 강화하는 데 이러한 좋은 실천들이 거둔 커다란 성공은 해부과학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독특한 개념들은 실제로 해부학의 개혁된 교육모델(reformed education model)의 토대를 놓았고, 다른 의과대학들에도 눈을 뜨게 하는 사례이자 그들의 발자취를 따를 충분한 동기를 제공한다.

 

인체해부 과정 안에서 의과대학생의 전문직업성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인 조치는 해부과학교육의 영역에서 활발한 연구주제이다 (Macpherson, 2012; Morihara et al., 2013). 저자들은 이와 관련된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해부학교육자들이 “잠재교육과정” 전달의 최근 경향을 채택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이에 따라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의과대학들이 채택한 몇 가지 독특한 실천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천은 그 자체로 비할 데 없을 뿐 아니라, American Board of Internal Medicine이 정의한 바와 같은 성실성(integrity), 존중(respect), 연민(compassion) 등 전문직업성의 핵심 구성요소를 의과대학생에게 함양하는 데 성공적이었다 (Blank, 1994). 이 종설 논문에서는 PRISMA, 즉 Preferred Reporting Items for Systematic Reviews and Meta-Analyses 진술문에 따라 문헌 보고가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PRISMA 체크리스트와 PRISMA 흐름도 준수가 포함된다 (Liberati et al., 2009; Moher et al., 2009; Hammick et al., 2010; Bearman and Dawson, 2013). 이 논문은 기증자 인터뷰 영상 클립을 학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해부에 앞서 기증자를 식별하도록 하는 개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해부 수업의 시작 단계에서 학생들이 식사 자리에서 기증자 가족을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실천을 상세히 다룬다. 이 논문은 학생들이 시신기증자(body donor)를 멘토로 존중하고, 기증자의 삶을 익히기 위해 그 가족을 방문하는 개념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해부가 끝난 뒤 기증자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자를 기리는 추모식(memorial ceremonies)을 열고, 그 자리에서 학생들이 해부실 경험을 회상하는 실천을 성찰한다.

해부에 앞서 기증자 식별하기
IDENTIFYING THE DONOR PRIOR TO DISSECTION
 

전 세계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인간 시신의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일반적 실천은 번호를 부여하거나 별명으로 지칭함으로써 익명성(anonymity)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Williams et al., 2014; Jones and King, 2017). 연구자들은 아마도 해부실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대처기제(coping mechanism)가 “시신 이름 붙이기(cadaver naming)”, 즉 시신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별명은 대개 시신의 특정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다. 이러한 상상적 이름 붙이기(imaginative naming)는 학생들이 시신의 인격성(personhood)을 인정하게 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게 해주며, 따라서 해부에 더 편안해지도록 한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Druce and Johnson, 1994). 그러나 “시신 이름 붙이기”의 주요 단점은 이후 임상 실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의사가 환자를 신체 상태나 병든 장기와 관련하여 명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부실에서의 “시신 이름 붙이기”는 임상 환경에서 의사들이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편안함을 얻기 위해 신체와 환자의 인간적 정체성 사이에 거리를 두는 잘못된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 (Lempp, 2005). 주목할 점은 최근 문헌에서 학생들이 시신기증자와의 호의적 관계(benevolent relationship)를 통해 결국 이익을 얻는다는 점이 확립되었고, 의과대학생들이 기증자의 개인적 세부사항을 알고 싶어 한다는 보고도 있다는 점이다 (Kostas et al., 2007; Talarico and Prather, 2007). 연구자들은 기증자의 정체성에 친숙해지는 것이 의과대학생에게 존중과 연민을 심어준다고 기록하였다 (Coulehan et al., 1995; Weeks et al., 1995; Talarico, 2010). 현재 해부실 경험은 확장된 의학교육과정(extended medical curriculum)의 일부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인문주의적 속성을 기르기 위한 다면적 교육경험에 노출된다.

 

Indiana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Northwest, 즉 IUSM-NW는 육안해부학 과정 안에서 독특한 접근을 채택하였다. 해부가 시작되기 전에 해부될 시신의 주인인 사람의 정체성을 학생들에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조치는 해부 기반 교육에서 인간 시신의 익명성을 유지해온 전통적 실천으로부터의 놀라운 전환이다. IUSM-NW의 교육자들에 따르면, 이 접근의 주된 목적은 학생들이 기증자를 단순한 시신이 아니라 교사, 환자,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존재로 만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 프로토콜의 실행에는 기증자가 왜 자신의 유해(mortal remains)를 해부학교육을 위해 기증하기로 선택했는지 설명하는 영상 클립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이 포함된다 (Talarico, 2010, 2013). 기증자의 정체성을 알게 된 뒤, 학생들은 기증자의 시신을 캠퍼스에서 맞이하고 이후 운송, 보관, 유지 관리를 성실히 준비한다. 기증자 가족 구성원의 참여 역시 이 새로운 접근의 필수 구성요소이지만, 해부 과정 동안 가족과 학생 간 접촉은 서면 편지, 전화 대화, 이메일 교환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지속적 서신 교환은 가족이 기증자에 대한 개인적 세부사항을 전달하면서 깊어지고, 해부 과정이 끝난 뒤 기증자를 기리기 위해 조직되는 연례 감사예배(annual thanksgiving service)에서 학생들과 가족이 만나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수행하는 활동의 중요성과 실제 가치를 인식하고, 그들이 매혹적인 학습경험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해준 사람을 존중해야 할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Talarico, 2010,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증자의 정체성과 개인 정보를 학생들과 공유하는 것은 윤리적 우려의 문제이다. 따라서 적절한 문서화를 통한 사전 승인 획득은 이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를 이룬다. 기증자의 사적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한 예비 기증자의 동의는 자발적 시신 유증(willful body bequeathal)에 관한 필수 문서화 과정에서 확보되며, 관련 가족 구성원의 승인은 학생들이 서면 편지, 전화 대화, 이메일을 통해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수진으로부터 광범위한 상담을 받으며, 가족 구성원과 접촉하기 전에 모든 의사소통은 검토되고 논의된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응답이 있는 경우, 가족은 의무기록, 서사(narratives), 사진, 심지어 영상을 보내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기증자의 개인적 순간들을 공유하게 된다 (Talarico, 2013).

 

비슷한 프로젝트는 University of Michigan Medical School, 즉 UMMS의 Anatomical Donations Program 산하에서도 수행되었다. 여기서는 잠재적 기증자가 살아 있을 때 인터뷰를 영상으로 녹화하고, 이후 해부학 해부 과정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이를 보여준다. 영상 클립은 기증자의 개인적 삶의 여러 측면, 시신기증 결정의 이유, 기증자를 회상하는 가족 구성원의 기억을 조명한다. 프로젝트 평가 과정에서 학생 반응을 분석한 결과, 기증자의 정체성과 개인적 세부사항과의 만남은 의사-환자 관계(physician-patient relationship) 또는 학생-교사 관계(student-teacher relationship)에 가까운 친밀한 관계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러한 유대는 정서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전문직업성(emotional and humanistic professionalism)의 발달을 촉진하였고, 학생들이 인간다움을 느끼도록 하여 돌보는 인간(caring human beings)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존중과 친절을 가지고 기증자를 식별하는 실천에 노출된 것은 학생들이 임상적으로 거리두기를 하게 되더라도 전문훈련 깊숙한 단계까지 공감적 관점(empathetic outlook)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Bohl et al., 2013).

 

뉴질랜드 University of Otago에서는 Donated To Science라는 제목의 영상 프로젝트가 수행되었는데, 해부 수업 시작 전에 잠재적 기증자의 영상 인터뷰를 의과대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활동은 학생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학생들을 돌보는 의사로 형성하는 데 장기적인 효과를 보인 것으로 관찰되었다 (Trotman, 2009). 기증자의 정체성을 의과대학생에게 공개하는 핵심 논리는 기증자의 인간성을 인정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최적의 존중을 보장하는 것이다 (Štrkalj and Pather, 2017). 이용 가능한 문헌을 통해 볼 때, 시신에 대한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학생들이 그 사람들이 실제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돕는다는 점이 분명하다 (Arráez-Aybar et al., 2008). 의학교육자들은 점차 기증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최근 University of Pennsylvania 연구자들은 시신에 대한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학생들이 인체해부의 형성적 경험(formative experience)을 존중하고, 기증자에 대한 존중을 미래 환자에 대한 연민으로 변환(transmute)하는 데 실제로 유용할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Williams et al., 2014).

 

이 독특한 개념을 의학교육과정 안에서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두 가지 필수 매개변수에 달려 있다. 하나는 전문직업성기본 해부학 지식 학습의 통합이다. IUSM-NW의 교육자들은 육안해부학 과정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서 전문직업성 표현을 평가하기 위한 평가체계(evaluation system)를 설계하였다. 이 체계 안에서 전문직업성은 각 학생과 관련하여 네 가지 핵심 기술, 즉 시연(demonstration), 헌신(commitment), 행동(behavior), 핵심 속성(core attributes)을 통해 설명된다. 각 학생은 공식 역량평가(formal competency evaluation)를 통해 이러한 기술 각각에 대해 개별적으로 평가되고 그에 따라 등급을 받는다. 어떤 학생이 불만족 등급을 받은 경우, 그 학생은 결핍된 기술에 초점을 둔 활동에 참여하여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향상할 기회를 받는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 정보와 관련 책임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학업 수행이 뒷전으로 밀릴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형성평가(formative evaluation) 점수와 학생들이 기록한 의견은 학생들이 프로그램 기간 동안 대처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근거를 제공한다 (Talarico, 2013).

시신 정체성 공개와 관련된 전문직업성의 속성
Attributes of Professionalism Associated with Revealing of Cadaver Identity
 

의학교육과정의 초기 단계부터 이처럼 부드럽지만 이타적인 실천을 함양하는 것은 미래 의사를 준비시키는 데 다양한 이점을 갖는다. 잘 설계되고 구조화된 기증자 인터뷰가 일반 병력(general history), 말기질환 병력(history of terminal illness), 관련 내과 및 외과 병력(medical and surgical history),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족력과 사회력(family and social histories)으로 순차적으로 상세화된다면, 이는 임상 환경에서 환자 병력청취(patient history taking)의 실제와 매우 밀접하게 유사할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Bohl et al., 2013). 이는 의과대학생에게 매우 적절한 수준의 전문직업적 세부사항을 제공하는 데 중요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매우 초기 단계부터 의사-환자 관계의 복잡성, 특히 환자와 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전문직업적 의무(professional obligations)에 익숙해진다 (Lamdin et al., 2012). 기증자 시신의 보관자(custodians)가 되는 학생들은 이후 환자의 안녕(well-being)에 대한 책임을 떠맡을 준비를 하게 된다 (Bohl et al., 2011). 더 나아가 해부대 위의 익숙한 사람과 정기적으로 마주치는 것은 성찰적 기술(reflective skills)을 연마하는 데 이어지며, 이는 전문직업적 발달(professional development)의 필수 구성요소이다 (Hopkins, 2012). 학생들은 기증자가 고귀한 행위를 통해 인체해부라는 활동을 수행할 특권, 즉 자신의 의학 경력을 향상시키는 경험을 자신들에게 부여했음을 깨닫고, 또한 “첫 번째 환자”를 정기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해부실에서의 일상적 작업과정을 성찰하고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일상 경험으로부터 배우도록 자신을 적응시키며, 이는 전문직업적 실천에 필수적인 정의적 특성(defining characteristic)의 발달로 이어진다 (Lazarus et al., 2017). 학생들이 기증자에 대한 개인 정보를 알게 될 때, 그들은 획득한 정보를 비밀로 유지하는 데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이 독특한 실천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전문직업성의 또 다른 필수 측면이다. 기증자의 정체성을 공개하고 학생들이 기증자의 가족 구성원과 친숙해지게 하는 것은 인간 시신 해부 경험을 새내기 의사(budding physician)에게 개인적이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해부를 수행하는 동안의 경험과 자신을 밀접하게 연결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따라서 해부실에서 내면화된 실천은 마음에 새겨지고 결국 평생의 교훈으로 유지된다.

기증자 가족과 식사 나누기
SHARING A MEAL WITH THE DONOR FAMILY
 

University of Oklahoma, 즉 OU College of Medicine의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첫 해부 경험을 위해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기증자 가족 구성원을 만나고, 기증자에 관한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이야기(chronicles)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독특한 개념을 설계하였다. 이 해부학 프로그램에 특별한 성격을 부여하는 구성요소는 “기증자 오찬(Donor Luncheon)”이다. 여기서 학생들은 식사 자리에서 기증자의 가족 구성원과 상호작용하며, 이는 OU College of Medicine에서 학생들이 받는 첫 번째 수업이 된다 (Crow et al., 2012). “기증자 오찬”이라는 특별한 발상은 Department of Medicine의 Jerry B. Vannatta 교수가 고안한 것으로, 그는 대만의 한 워크숍에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해부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과 기증자 가족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함으로써 의학의 인간적 얼굴(humane face of medicine)을 강조한다. 처음에 “기증자 오찬”의 개념은 학생들이 해부 활동에 더 잘 대처하도록 준비시킬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하였다. 해부는 그렇지 않으면 외상적 경험(traumatic experience)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Vannatta and Crow, 2007). 교육자들은 이러한 활동이 학생들에게 가족 구성원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기증자의 정체성과 가까이 마주칠 수 있는 창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기증자의 정체성을 사전에 알게 되면 해부실에서 흔히 실천되는 “시신 이름 붙이기”와 같은 일반적 대처기제의 필요가 분명히 중화될 것이다. 기증자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종종 이러한 활동에 의존하는데, 이는 해부실에서 심리적 관점에서 편안한 영역을 제공하지만, 이후 임상 실천에서는 환자의 인간적 정체성으로부터 학생들을 멀어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Druce and Johnson, 1994; Lempp, 2005). “기증자 오찬”의 도입은 이 간극을 좁히고, 학생들의 마음속에 자신들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한때 온전하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 사람의 존재가 친족들에게 소중했으며, 그 사람이 학생들이 현재 속해 있는 바로 그 사회의 필수적인 일부였다는 사실 말이다. 이러한 열정적인 깨달음은 해부실 전체의 환경을 현실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육안해부학 학습경험을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학생들이 해부실에서 극복해야 하는 주요 도전 중 하나는 죽음과 죽어감(death and dying)에 대한 생각과 관련된 불안이다. 인간 시신과 처음 마주하기 전 학생들은 수많은 정서적 반응을 경험하며, 그들 중 상당수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적응하는 데 실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O’Çarroll et al., 2002). 자연스러운 반응은 해부를 수행하는 동안 전문직업적 거리(professional distance)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학생들이 인간 신체를 죽은 인간 존재가 아니라 표본(specimen)으로 간주하면서 행위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Houwink et al., 2004). 기증자의 삶의 세부사항을 배우는 것은 학생들에게 전문직업적 거리를 공감과 균형 있게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며, 그들이 환자를 단지 질병(maladies)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섬기도록 더 잘 준비시킨다 (Pearson and Hoagland, 2010). 이것이 “기증자 오찬”의 일차적 목적이다. 즉 해부실 활동을 인간화하고, 학생들 사이에 공감, 연민, 존중을 함양하기 위해 잠재 의학교육과정(hidden medical curriculum)을 강화하는 것이다 (Pawlina, 2006). 이 프로그램은 2000년에 시작되었고, 이후 OU College of Medicine에서 매년 이어지는 전통이 되었다. 해부 과정이 시작되기 전, 학교 관계자들은 기증자의 가족에게 알리고 새 의과대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도록 초대한다. 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에게는 그들이 결국 기증자의 시신을 해부하게 될 학생 집단을 만나게 될 것이며, 전체 활동의 인문주의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기증자에 대한 개인 정보를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때때로 기증자 가족은 오찬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기증자 오찬에서 기증자 가족을 만났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예정된 행사 당일, 즉 인체해부가 시작되는 날에 모든 학생은 기증자의 이름, 나이, 사망 원인을 포함하여 정체성을 공개하는 정보책자를 받는다. 육안해부학 교수진 팀은 전체 활동 전반에 걸쳐 학생들을 멘토링한다. 오찬식 동안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개별적인 방식으로 준비해 온다. 사진 앨범, 준비된 원고, 혹은 기증자에 대한 기억과 관련되고 그 삶의 특정 측면을 묘사하는 자료를 가져오는 식이다. 학생들은 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기증자의 삶에 익숙해지고, 마지막으로 교수 촉진자(faculty facilitator)는 다가오는 해부 경험에 대한 우려나 두려움을 학생들이 드러내도록 이끈다 (Crow et al., 2012).

 

“기증자 오찬” 과정에 참여한 뒤 학생들이 해부를 시작할 때, 해부학 기증자(anatomical donor)는 “첫 번째 교사”이자 “첫 번째 환자”가 된다. 이 독특한 프로그램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어두운 유머(dark humor)의 관행과 비교할 때, 해부실 안에 공감의 감정을 창출하려 한다 (Rizzolo, 2002). 문헌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해부 경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낮고, 해부학 기증자에 대해 더 공감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학생들이 기증자를 인간 존재로 계속 생각하는 경향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Crow et al., 2012). 이는 기증자의 정체성을 알고 가족을 만난 학생들이 기증자를 인간 존재로 더 깊이 인정하게 된다는 이론과 일치한다 (Weeks et al., 1995). 의심할 여지 없이 “기증자 오찬”은 학생들이 기증자를 살과 피를 가진 인물로 연결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후 그 유해를 존중과 연민의 태도로 다룰 수 있도록 기증자의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Vannatta and Crow, 2007). “기증자 오찬”과 같은 실제 상황에서 이러한 감정을 내면화하는 것은 임상훈련과 이후 전문직업적 실천으로 인문주의적 속성을 이어가는 데 중추적일 수 있다. 이 독특한 프로그램은 OU College of Medicine의 학사 일정에서 학생들의 정서적 애착을 강화하고 인본주의(humanism)의 정신을 지지하는 대표 행사(signature event)이다.

 

University of Oklahoma, 즉 OU College of Medicine의 교수진은 “기증자 오찬” 동안 기증자 가족을 만나고 기증자의 삶에 대한 개인적 세부사항을 접한 학생들이 기증자를 단순한 인간 시신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고 관찰하였다. 또한 이러한 학생들은 해부 과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가능성이 더 낮았다. 기증자를 실제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보는 학생들의 인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했지만, 그들은 기증자를 인간 존재로 생각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이 기증자를 인간 존재로 계속 생각하는 경향을 보고했다는 관찰은 중요한 것이며, “기증자 오찬 프로그램”이 해부실 경험을 인간화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Crow et al., 2012).

멘토의 가족 방문하기 PAYING A VISIT TO THE FAMILY OF THE MENTOR 

새천년이 시작될 무렵, 약 16년 전 대만 Tzu Chi Medical School의 설립자인 Dharma Master Cheng Yen은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Silent Mentor Program)”이라는 개념을 시작하였다. 시신기증(body donation)이라는 개념은 장례 전에 인간 신체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중국과 대만의 전통적 신념에 반하지만, Cheng Yen은 의과대학생들이 그들로부터 배우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신체를 기증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Eichman, 2011). 그의 호소는 연민과 자기희생(self-sacrifice)이라는 불교 윤리(Buddhist ethics)에 부합했으며, 사후에 의학의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하는 실천을 대만에서 이타적 행위로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Lecso, 1991; Smith and Novak, 2004). 그 이후 Tzu Chi Medical College에서는 시신기증자를 “침묵의 멘토(Silent Mentors)”로 간주하였으며, 그들이 해부학 해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고 인간 해부학의 세부사항을 의과대학생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그 희생을 존경받는다.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의 핵심 아이디어는 질병을 신체적으로 치료할 역량만 갖춘 의사가 아니라, 정서적 측면도 고려하고 환자를 인간 존재로 다루는 데 능숙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López and Dyck, 2009). 이에 따라 이 프로그램에서는 의과대학생들이 기술적 세부사항뿐 아니라 의학의 정서적, 영적, 심리적 측면도 내면화할 수 있도록 교수진, 기증자, 가족 구성원의 노력이 함께 모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공감적이고 연민 있는 의사로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Her, 2013). Tzu Chi Medical School 관계자들은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세대 의사들에게 인간 신체를 최고의 존중과 부드러움으로 대하는 법, 환자를 돌볼 때 인간적으로 대하는 법, 그리고 그 가족과 공감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Santibañez et al., 2016).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기증자들이 아무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자신들이 더 나은 의사가 되도록 돕기 위해 이타적으로 기꺼이 나섰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 안에서는 기증자의 유해가 Tzu Chi Medical School에 도착한 직후, 기증자의 가족 구성원이 의과대학생 훈련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해부가 시작되기 전에 “침묵의 멘토”에게 배정된 학생들은 기증자의 삶을 배우기 위해 가족을 방문한다. 학생들은 기증자의 사진을 보고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를 통해 그 사람을 식별하기 시작하고, 성격, 좋아하던 것, 사회에 대한 기여 등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마음속에 기증자의 이미지가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다. “침묵의 멘토” 가족과의 만남 이후 학생들은 기증자의 간략한 전기(biography)를 작성하며, 이는 이후 의과대학 프로그램 웹사이트와 각 해부대에 게시된다. 해부 첫날에는 “침묵의 멘토”의 가족 구성원을 초대하여, 고인에게 마지막 존경을 표하고, 해부학을 배우려는 의과대학생들의 노력에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줄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은 행사 중 가족 구성원과 추가로 상호작용하도록 격려받는다. 이를 통해 “침묵의 멘토”에 대한 더 많은 세부사항을 수집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최종적으로 Tzu Chi Medical School의 기증자 가족, 교수진,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PowerPoint 슬라이드를 통해 발표한다 (Santibañez et al., 2016). 전체 활동은 학생들이 인체해부를 수행하면서 인간 신체의 구조적 세부사항을 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 자신의 유해를 기증하기로 관대하게 선택한 이타적 개인으로부터 베풂의 행위(act of giving)의 가치를 배우며 멘토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다 (Pembroke, 2007; Chen et al., 2011). 프로그램 동안 의과대학생들은 “침묵의 멘토”의 가족 구성원을 위로하도록 장려되며, 이는 연민과 공감이라는 인문주의적 속성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해부 과정이 끝나면 학생들은 기증자의 장기를 원래 위치에 세심하게 되돌려 놓고, 만들어진 모든 절개부위를 신중하게 봉합한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은 공개 장례식을 조직하고, 화장 후 유골은 가족과 학생들이 참석한 의식 속에서 대학 캠퍼스 안의 성소(shrine)에 매장된다.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자신의 “첫 번째 교사”에게 존중을 보이도록 보장하고, 가족 구성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유해가 존중과 존엄으로 다루어졌다는 확신을 준다 (Santibañez et al., 2016). 수년에 걸쳐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은 역량 있고 돌보는 의사를 배출하는 데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럼으로써 사회의 안녕에 크게 기여해왔기 때문에 해부과학교육 영역 안에서 독특한 실천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에 말레이시아 University of Malaya MILES, 즉 Minimally Invasive Laparo-Endoscopic Surgery Skill Center와 대만 Tzu Chi University는 말레이시아에서 새로운 형태의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협력하였다. 이 형태의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대만의 원래 프로그램을 모델로 하였다. 차이점은 해부 과정 대신 “침묵의 멘토”가 수술기법 기반 워크숍(surgical technique-based workshop)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사이자 환자(teacher and patient)”의 역할을 맡는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는 말레이시아 학생들에게 이 형태의 “침묵의 멘토 프로젝트”가 미친 영향을 평가하였다. 그 결과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를 변혁적 과정(transformative process)으로 보았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은 프로그램 참여가 환자를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인간 존재로 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눈을 뜨게 하는 경험(eye-opener)이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삶과 의료 전문직(medical profession)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언급하였다 (Santibañez et al., 2016). 학생들은 의학의 인간적 측면(human side of medicine)을 배우는 것이 필수 지식과 임상술기(clinical skills)를 습득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교과서 중심 학습만으로는 의사에게 충분하지 않으며,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이 임상 현장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속성인 연민과 공감을 발달시키는 경험에 노출시켜주었다고 인식하였다 (Palmer, 2007). 학생들은 “침묵의 멘토”들이 자신들이 해부학을 배우고 의학 경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이타적 자기희생에 특히 감동하였다. 프로그램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공개된 기증자의 서면 메시지는 의료 실천과 삶에 대한 학생들의 관점을 변혁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메모 중 하나에서 기증자는 “침묵의 멘토”로서 미래 의사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지식과 임상술기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인도하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Santibañez et al., 2016). 또 다른 메모에서 기증자는 학생들이 의사로서 사랑과 돌봄으로 환자를 돕고, 그들을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표현하였다. 학생들이 강조한 프로그램의 또 다른 측면은 의학에 대한 전인적 관점(holistic view of medicine)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었다 (Kornfeld, 2000). 이 관찰에 부합하게, 학생들은 “침묵의 멘토”가 환자를 살, 피, 감정을 가진 온전한 개인이자 인간으로 생각하도록, 질병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언급하였다. 한 학생은 연민이 실제로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지만,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이 그 감정을 표면으로 끌어올릴 적절한 노출을 제공했다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했다 (Santibañez et al., 2016). 학생들은 모든 죽은 사람 뒤에는 필연적으로 알 가치가 있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고 인식하였으며, 아마도 이러한 인식이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의 성공을 뒷받침한다.

 

“침묵의 멘토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 평가는 현재까지 수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인체해부 과정이 끝난 직후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한 의견을 요약하여 프로그램의 전반적 개관을 문서화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삶을 다른 빛에서 바라보게 자극한 기억에 남는 여정으로 보았다. 그들은 “침묵의 멘토”의 희생과 가족 구성원의 관대한 태도에 압도되었다. 학생의 절반 이상은 이 프로그램이 의학의 인간적 측면에 초점을 둠으로써 공감의 느낌을 강화한다고 보았다. 상당수 학생은 자신의 “침묵의 멘토”를 “첫 번째 교사”이자 “첫 번째 환자”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첫 번째 환자”로부터 배우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고 인정했고, 실제 환자를 존중과 예의로 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침묵의 멘토” 가족 구성원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학생들에게 사회가 의사에게 갖는 높은 기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Santibañez et al., 2016).

첫 번째 교사를 기억하는 감사의 행위 ACT OF GRATITUDE IN MEMORY OF FIRST TEACHER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의과대학에서는 육안해부학 해부 과정이 끝날 때 추모식(memorial ceremonies)을 거행하는 데 점점 더 큰 강조가 두어져 왔다. 이러한 지배적 경향은 의학교육자들이 학생, 즉 미래 임상의사의 태도를 함양하는 접근에서 보이는 패러다임 전환을 반영한다. 특히 해부실에서 존중, 연민, 인간성(humanity)과 같은 전문직업적 특성(professional traits)을 구축하는 데 더 큰 초점을 둔다 (Jones et al., 2014). 이용 가능한 문헌은 시신 유증(body bequeathal)이라는 이타적 행위를 기리는 추모식의 실천이 학생, 기증자, 가족 구성원이 고인을 기억하면서 상호작용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Dixon, 1999; Warner and Rizzolo, 2006; Bolt et al., 2010).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기증자의 이타적 행위에 대해 감사를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 그리고 가족 구성원에게 따뜻함을 전달하는 것이 전문직업적 책임감(professional responsibility)의 싹트는 감각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Weeks et al., 1995; Wilkinson, 2014). 이러한 추모식은 학생의 정서적, 심리적 발달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인간 지향적 의사(humanely oriented physicians)로 변모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다 (Ousager and Johannessen, 2010). 추모식의 실천은 미국과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최근에는 유럽, 동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에서도 그러한 행사가 보고되고 있다 (Tschernig and Pabst, 2001; Winkelmann and Güldner, 2004; Warner and Rizzolo, 2006; Sakai, 2008; Lin et al., 2009; Park et al., 2011; da Rocha et al., 2013). 대륙을 가로질러 이러한 행사는 본질적으로 다양하다. 해부 실험실에서 조직되는 비공식적 사적 모임부터 학생, 교수진, 기증자 가족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convocations)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행사는 교수진과 학생이 설계하고 조직하며, 일부 경우에는 보건의료 관련 전공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Hull and Shea, 1998). 이러한 의식의 틀은 관례적으로 해부실 경험에 대한 학생들의 성찰, 기증자의 이타적 행위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존중, 그리고 회화, 시, 음악 및 다양한 예술 형식으로 표현되는 감사의 예술적 표현을 포함한다 (Kim and Sandoval, 2005; Elansary et al., 2009; Eze et al., 2009; Pawlina et al., 2011).

 

미국에서는 상당수 의과대학이 육안해부학 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추모식을 학사 일정의 연례 행사로 통합해왔다. Yale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에서는 오랜 전통에 따라 의과대학생과 Physician Associate 학생들이 육안해부학 과정이 끝난 뒤 매년 시신기증자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감사의 예배(Service of Gratitude)”를 조직한다. 이 행사는 학생들이 인체해부 과정에서의 경험을 성찰하고, 의학과 교육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유해를 기증한 개인들의 친절한 행위를 감사하게 여길 기회를 제공한다. 행사 당일에는 기증자의 가족 구성원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들이 시 낭송, 음악 공연, 예술 창작물 전시와 같은 활동을 수행한다. 또한 이 경건한 행사는 학생과 교수진이 육안해부학 교육과정 동안 떠올린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기억할 만한 의식 중 표현된 성찰과 생각은 매년 편집되어 출판된다 (Eze et al., 2009). Minnesota주 Rochester의 Mayo Clinic College of Medicine은 1985년에 시신기증자 가족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기억과 감사의 예배(Service of Memory and Thanks)”를 시작하였고, 이 집회는 그 이후 매년 열렸다. 1986년부터는 명칭이 “감사의 집회(Convocation of Thanks)”로 바뀌었다. 이 연례 모임은 Mayo Medical School 학생들과 Physical Therapy Program 학생들이 인체해부가 끝난 뒤 조직하며, 기증자 가족 구성원, 해부학 교수진 및 기관 내 다른 학생들이 대규모로 참석한다. 모임 준비는 가족 구성원을 초대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존경을 표하고 기증자의 삶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집회는 기증자의 이름이 한 명씩 읽히며 그들을 기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년 독특한 주제가 채택되며, 행사 중 학생들은 육안해부학 교육 프로그램에서의 기억과 활동을 성찰하고, 이를 시, 음악, 무용 공연, 혁신적 멀티미디어 발표를 통해 창의적으로 표현한다. “감사의 집회”에 독특한 성격을 더하는 고유한 측면은 자연, 특히 꽃을 강조한 사진 모음이다. 사진은 학생들이 촬영하고 세심하게 배열하여 슬라이드쇼로 발표한다. 이러한 꽃 사진의 전시는 의학 발전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시신기증이라는 귀중한 선물이, 인류에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인 꽃의 영속적 존재와 같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적인 세부사항은 학생들이 감사와 존중의 표시로 의식에 참석한 기증자 가족 구성원에게 꽃씨가 담긴 선물 꾸러미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 개념의 핵심 아이디어는 심어진 씨앗에서 피어나는 꽃이 오늘의 의과대학생이 내일의 연민 있고 공감적인 의사로 변모하는 것과 같으며, 그 변모 과정에서 시신기증자의 이타적 행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감사의 집회”는 육안해부학 교육과정의 의미 있는 마무리로 절정에 이르는 소중한 의과대학 활동으로 발전하였다 (Pawlina et al., 2011).

 

2010년 “감사의 집회”에서 전달된 연설의 요약은 학생들이 어떻게 자신의 “첫 번째 교사”의 기억을 기념하고, 인간 해부학의 세부사항을 배우는 동안 기증자와 나눈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감사로 기억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기증자가 이타적 행위를 통해 학생들의 삶을 어루만졌다는 사실은 학생들이 그를 인간 해부학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베풀어준 교사로 항상 인식했다는 고백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의식에서 공유된 성찰적 생각들은 기증자들이 가르친 침묵의 교훈을 보여주었다. 이 교훈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인류에게 가장 바람직한 덕목, 즉 돌봄 제공의 예술과 존중이 결합된 연민의 기술을 심어주었다 (Pawlina et al., 2011). 의심할 여지 없이 추모식은 미래 임상의사가 돌봄, 온기, 존중, 연민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인문주의적 속성의 씨앗을 퍼뜨리는 특권적 플랫폼이다.

인문주의적 감정을 지속시키는 추모식의 역할
Role of Memorial Ceremonies in Perpetuating Humanistic Feelings
 

추모식의 실천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기증자의 인간성(humanity)에 대한 감사(appreciation)를 각인시키고, 학생들이 기증자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동시에 기증자 가족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플랫폼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Tschernig and Pabst, 2001). 추모식의 이러한 차원은 의과대학생의 전문직업적 발달에 중요하다. 의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유해를 기증한 사람의 삶에 대한 세부사항은 의과대학생들이 전문직업 경력 깊숙한 단계까지 가져갈 수 있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awlina et al., 2011). 추모식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인문주의적 속성의 씨앗을 길러내는 해부과학교육 영역의 새로운 지평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기억의 길을 되짚어보는 창을 제공하며, 죽은 뒤에도 인류에게 귀중한 봉사를 한 떠난 영혼의 삶을 강조한다 (Hull and Shea, 1998; Hildebrandt, 2016). 이러한 모임에서 기증자의 삶을 기념하는 것은 베풂의 행위와 관련된 행복의 문턱으로 향하는 빛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연구자들은 추모식이 의학교육에서 갖는 가치를, 미래 세대 임상의사의 마음속에 자애(benevolence), 돌봄(care), 연민(compassion)의 감정을 지속시키는 독특한 몸짓으로 확인하였다 (Kahn and Gardin, 2016). 어떤 면에서 이러한 경건한 모임은 해부실 경험에 인간적 감각(humanistic touch)을 부여함으로써 과학과 인간성을 결합하도록 돕는다.

인체해부 실천을 통한 잠재교육과정 전달
HIDDEN CURRICULUM DELIVERY THROUGH PRACTICE OF HUMAN DISSECTION
 

현재 진화한 해부학 교육과정(evolved anatomy curriculum)은 성공적인 임상 실천에 중요한 의학교육의 두 가지 필수 구성요소를 전달한다. 하나는 해부학적 세부사항(anatomical details)에 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비전통적 학문분야 독립적 역량(nontraditional discipline-independent skills), 즉 비기술적 역량(nontechnical skills)이다 (Pawlina et al., 2006). 해부과학과 관련된 지식 구성요소의 전달은 기술 발전에 따라 이용 가능한 교수학습 도구가 일부 수정되었을 뿐, 수세기 동안 실천되어 왔다 (Ghosh, 2015).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 해부학의 세부사항에 관한 필수 지식의 내면화는 핵심 교육과정(core curriculum) 또는 문서화된 의학교육과정(documented medical education curriculum)의 필수 구성요소이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되면서 해부학자들은 의과대학생의 비전통적 학문분야 독립적 역량 습득과 관련된, 이전에는 탐구되지 않았던 해부과학교육의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O’Connel and Pascoe, 2004; Pawlina et al., 2006). 주목할 점은 이러한 학문분야 독립적 역량이 전문직업성, 공감적 태도(empathetic attitude), 성실성(integrity), 상황인식(situation awareness),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y) 및 관련 역량으로 식별되었다는 점이다 (Pearson and McLafferty, 2011; Evans and Pawlina, 2015; Jones et al., 2018). 최근 연구자들은 이러한 무형의 역량(intangible skills)을 모두 인간적 역량(human skills)으로 묶었다 (Evans et al., 2018).

 

연구자들은 인체해부의 실천이 의학 경력의 시작부터 이러한 필수 속성을 함양할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고 관찰하였다. 해부실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평가하고, 이러한 요소를 발달시키고 실천해나가는 동료의 진전을 성찰할 수 있는 성찰적 실천(reflective practice)을 촉진하는 학습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Böckers et al., 2010; Camp et al., 2010; Pearson and Hoagland, 2010; Spampinato et al., 2014). 또한 해부실의 소집단 학습 패턴(small group learning pattern)은 의미 있는 상호작용의 통로를 제공하며, 이는 성찰적 학습(reflective learning)을 더욱 촉진한다 (Wittich et al., 2013; Lazarus et al., 2017). 육안해부학 프로그램은 실제로 의학교육과정의 매우 초기 단계부터 인간적 역량을 전달하는 가장 두드러진 플랫폼이다. 기증자가 “첫 번째 교사”의 역할 속에서 의학의 인간적 측면(human side of medicine)의 필수 덕목을 침묵으로 전파하기 때문이다 (Chiu et al., 2012; Cocks, 2014). 또한 “첫 번째 환자”로서 기증자는 학생들이 미래 환자에게 존중, 돌봄, 연민을 가지고 접근하도록 준비시킨다 (Evans and Fossey, 2011; Jones et al., 2014; Williams et al., 2014). 그럼에도 이러한 강력하고 필수적인 학문분야 독립적 역량, 즉 인간적 역량의 전달은 전통적 의학교육과정에 문서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지식 구성요소가 명시적으로 전달되는 것과 비교해 암묵적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전 세계 의과대학에서 “잠재교육과정”의 구성요소로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Finn et al., 2010; Hafferty and Finn, 2015; Aka et al., 2018).

 

“잠재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초 의학교육 영역 안에 도입되었다 (Hafferty and Franks, 1994). 그 이전까지 의학교육의 개념은 전적으로 가르쳐지는 내용과 제공되는 임상훈련에 기반하였다. 다시 말해 의학교육은 “공식교육과정(formal curriculum)”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바라보았다. “잠재교육과정”의 필수 구성요소는 학습의 맥락(context of learning)을 식별하는 것이며, 이는 종종 학습과 관련된 특정 상황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environmental factors)의 영향을 받는다 (O’Donnell, 2014; Hafferty and Martimianakis, 2018). “공식교육과정”과 달리 “잠재교육과정”은 문서화되어 있지 않으며, 교수진에 의해 전달되기보다는 학습자에 의해 추론된다 (Gardeshi et al., 2018). 의학교육계에서 “잠재교육과정”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은 형식적 교수(formal teaching)가 없는 상황에서도 학습이 독립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이로 인해 학습은 교수와 분리되었다(dehyphenated learning from teaching) (Jarvis-Selinger et al., 2012; Mulder et al., 2019). 이는 지난 세기의 의학교육 틀을 오늘날의 역동적이고 진화한 의학교육과정으로 변화시키는 데 촉매 역할을 한 주요 돌파구였다. “잠재교육과정”은 의과대학생의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 발달에 강한 영향을 미치며, 이 맥락에서 “공식교육과정”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간주된다 (Wilson et al., 2013; Cruess et al., 2014). “잠재교육과정”의 본질은 기관의 문화(culture of the institution), 즉 환경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O’Donnell, 2014). 따라서 의학기관 안의 잘 설계된 학습환경은 학생들의 전문직업적 관점(professional outlook)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잠재교육과정”의 적용은 해부과학교육의 맥락, 특히 인체해부실과 관련하여 잘 문서화되어 있다 (Finn et al., 2010; Hafferty and Finn, 2015; Mullikin et al., 2019). “잠재교육과정”은 인체해부 과정 중 예비 의사에게 기대되는 모든 형태의 인간적 역량을 내면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이용 가능한 문헌은 전문직업성 발달과의 정확한 관련성을 문서화하고 있다. 그러나 육안해부학 프로그램 중 잠재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려면 관련 기관, 조직적 틀(organization framework), 문화적 상황(cultural scenario)과 같은 여러 측면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인들이 학습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Hafferty et al., 2015; Mulder et al., 2019). 이 종설 논문에서 저자들은 의과대학들이 인체해부실의 학습환경을 향상시키기 위해 독립적이고 독특한 개념들을 실행함으로써, 학생들 사이에 성실성, 존중, 연민과 같은 전문직업성의 핵심 구성요소를 성공적으로 함양한 몇 가지 사례를 강조하고자 하였다 (Pawlina et al., 2011; Crow et al., 2012; Talarico, 2013; Santibañez et al., 2016). 이러한 의과대학들은 21세기의 진화하는 해부학 교육과정에 부합하여 인체해부 맥락에서 “잠재교육과정”의 잠재력을 확인하였고, 이후 인체해부 영역 안에서 독특한 실천을 채택함으로써 “잠재교육과정”의 실행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개념들은 기관의 지리적 위치와 사회의 문화적 관점을 포함한 기관의 조직적 직물(fabric of the institution)을 염두에 두고 구상되었다. 이 둘은 “잠재교육과정”의 핵심 요소이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독립적 실천이 원활하게 채택되는 길을 열었다 (Hafferty et al., 2015). 이 종설에서 설명한 개념들은 해부 활동 전반을 인간화함으로써 해부실의 학습환경을 상당히 향상시켰고, 이러한 독특한 실천의 결과 분석을 통해 드러나듯 학생들의 핵심 전문직업적 역량 발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Table 1). 인체해부 실천 안에서 독립적 개념을 채택하여 전문직업적 속성을 기르는 데 “잠재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이러한 의과대학들이 따르는 진화한 해부학 교육과정의 기본 모델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잠재교육과정” 전달에서 해부실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의미 있는 실행은 많은 곳에서 보고되지 않았다 (O’Donnell, 2014; Karunakaran et al., 2017). 이러한 상황에서 이 소수 의과대학의 경험은 칭찬받을 만한 성취로 떠오르며, 그 성공 이야기의 핵심 요인은 학생들이 기증자를 시신이 아니라 “첫 번째 환자”로 인식하도록 해부 활동에 인간적 관점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Jones et al., 2014; Williams et al., 2014). 이러한 의과대학들이 실천한 것처럼, 미래의 실제 환자에게 봉사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의학 경력의 시작부터 전통적 “시신 기반 접근(cadaver based approach)”에서 벗어나 “환자 지향 접근(patient oriented approach)”을 촉진하는 것은 육안해부학 교육에서 “잠재교육과정”의 적용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패러다임 전환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기관들의 교육자들은 “잠재교육과정”의 깊이를 항해하고, 의과대학생들이 미래 임상 실천에 바람직한 역량을 내면화할 수 있게 하는 교육모델을 표면으로 끌어올렸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의과대학들은 “공식교육과정”과 함께 “잠재교육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단지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를 돌볼 내일의 의사를 준비시키는 앞으로의 길임을 보여주었다.

해부학 교육모델을 개혁할 적절한 시점
OPPORTUNE MOMENT TO REFORM THE ANATOMY EDUCATION MODEL
 

의사의 인간적 관점에 필수적인 의료 실천의 핵심 가치는 의료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의 영역 안에 포함된다 (Jha et al., 2006, 2007). 의학교육 분야의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전문직업성의 가치를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의 근본적 중요성을 입증해왔다. 그들은 의과대학생을 효과적인 전문가(effectual professionals)로 변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핵심 요소로서 기관 리더십(institutional leadership)을 강조하였다 (Cooke et al., 2006; Cruess and Cruess, 2006; Jones, 2013). 인체해부실은 1학년 의과대학생들이 의학 경력을 시작하면서 해부학을 배우고자 열망하지만 동시에 인체해부 활동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시점에, 그들의 마음속에 전문직업성의 특성을 배양하기 위한 이상적인 상황을 제공한다 (Hafferty, 1988; Swartz, 2006; Canby and Bush, 2010). 또한 해부 기반 교육은 소집단 학생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적 수준에서 성찰적 학습과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촉진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 둘은 모두 전문직업성의 특성을 내면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Lazarus et al., 2017). 의과대학에서는 해부학 교수진이 해부 과정 중 일어난 사건을 학생들이 성찰하도록 자주 안내하며, 이를 통해 미래 의사의 전문직업성 형성을 촉진하는 것이 일반적 실천이다 (Lachman and Pawlina, 2006; Hammer et al., 2010). 일부 의과대학은 시신기증자에 대한 학생들의 존중과 정서적 애착을 강화하여 학생들의 마음속에 전문직업성의 씨앗을 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독특한 독립적 실천을 채택함으로써 해부실 경험 전체를 혁신하였다. 본 논문에서 우리는 인체해부의 실천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문직업성의 덕목을 내면화시키기 위해 의과대학들이 따르는 몇 가지 독특한 개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Table 1). 이러한 기관들은 모범을 보였고, 인체해부 과정이 학문적 추구와 더불어 의학훈련 프로그램의 사회화에 기여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근거와 함께 보여주었다. 이러한 독특한 개념의 성공적 실행은 세계 다른 지역의 의학교육과정 안에서도 지역적, 문화적, 종교적 수정이 필요한 경우 이를 반영하여 공식적으로 채택할 충분한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제안할 수 있다. 선택된 소수 의학교육자들의 비전과 진실한 노력은 해부과학교육 자체의 중대한 갈림길(momentous crossroad)로 이어졌다. 이러한 빛나는 발자취로부터 단서를 얻고, 통합적이고 실용적이며 혁신적인 교육모델을 갖춘 상태에서 해부학 교육의 미래에 담대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표 1. 인체해부 실천 안에서 의과대학생의 전문직업성을 구축하기 위한 독특한 개념의 비교분석
Table 1. A Comparative Analysis of Unique Concepts to Build Professionalism Among Medical Students within the Practice of Human Dissection
 

 

기관명(Name of institution) 전문직업성 구축을 위한 독특한 실천(Exclusive practices to build professionalism) 개입 시점(Timing of intervention) 결과 분석(Outcome analysis)
1. The Indiana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 Northwest, Gary, IN, USA 기증자 인터뷰 영상 클립을 학생들에게 보여줌 인체해부 시작 전 학생들은 사전에 설계된 체계를 통해 평가된 전문직업성과 관련된 핵심 역량을 발달시켰다.
  학생들이 편지, 전화, 이메일을 통해 기증자 가족 구성원과 의사소통함 해부 과정 중 해부과학과 관련된 학업 수행은 형성평가 점수로 평가했을 때 만족스러웠다.
  기증자 가족 구성원이 연례 감사식에서 학생들을 만남 해부 종료 후  
2. The University of Oklahoma College of Medicine, Oklahoma City, OK, USA 신입 의과대학생이 기증자 가족 구성원과 오찬에 참석함(Donor Luncheon) 해부 시작 전 기증자 가족 구성원과 상호작용한 학생들은 해부 중 기증자를 한 사람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해부실 경험에 인간적 감각을 부여하였다.
3. Tzu Chi Medical School, Hualien City, Taiwan 학생들이 기증자, 즉 침묵의 멘토(Silent Mentor)의 가족 구성원을 방문하고 상호작용함(Silent Mentor Program) 해부 시작 전 해부 과정 종료 후 학생들이 기록한 의견을 요약한 결과, 학생들은 기증자의 이타적 행위에 감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존중과 예의를 가지고 환자에게 접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였다.
  침묵의 멘토의 가족 구성원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주기 위해 초대됨 해부 첫날  
4. Mayo Clinic College of Medicine, Rochester, MN, USA 학생들이 기증자를 기리기 위해 조직하고 기증자 가족 구성원이 참석하는 연례 추모식(Convocation of Thanks) 해부 종료 후 의식 중 학생들이 전달한 연설 모음은 기증자의 유해로부터 해부학적 세부사항을 배우는 동안 학생들의 마음속에 심어진 연민, 온기, 돌봄, 존중의 감정을 반영하였다. 이 의식은 미래 의사들 사이에 인류의 바람직한 덕목을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결론 CONCLUSIONS 

인체해부 실천 안에서 “잠재교육과정”을 실행하는 것은 의학교육에서 흥미로운 연구주제이다. 이 맥락에서 육안해부학 프로그램은 의학교육과정의 시작부터 인간적 역량(human skills)을 함양하기 위한 이상적 플랫폼으로 발전하였다. 이곳에서 학생에서 의사로의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잠재교육과정”은 해부실에서 모든 형태의 인간적 역량을 전달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전문직업성 구축과의 강력한 관련성은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문헌에 대한 체계적 검토가 수행되었고, 이후 의과대학들이 의과대학생에게 전문직업성의 핵심 구성요소를 내면화시키기 위해 채택한 몇 가지 독특한 실천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개념의 특징은 기증자의 정체성과 개인적 세부사항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학생들이 기증자의 가족 구성원과 상호작용하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활동은 학생들이 기증자를 시신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해부학적 해부 과정을 인간화하고, 해부실의 학습환경을 향상시킨다. 저자들은 이처럼 진화한 육안해부학 교육모델이 학생들의 핵심 전문직업적 역량 발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며, 이를 통해 환자를 돌봄, 온기, 연민으로 대할 내일의 공감적 의사(empathic physicians)를 구축하는 과정이 시작된다고 관찰하였다. 이 종설 논문에서 보고한 독립적 개념의 실행을 통해, 해부실에서 전통적 “시신 기반 접근”에서 벗어나 “환자 지향 접근”을 채택하는 것은 육안해부학 교육에서 “잠재교육과정” 적용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 종설 논문에 상세히 제시된 소수 의과대학의 실천에 관한 관찰은, 전 세계 다른 의학교육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는 육안해부학 교육 안에서의 “잠재교육과정” 전달의 최근 경향에 초점을 맞추려는 겸손한 시도이다. 소수 해부학교육자들의 특별한 노력을 인정하고, 그 방법을 받아들이되 각자의 의견을 통해 다듬어가는 것은 육안해부학 교육과정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전 세계 해부학자들이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해부학 교육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Anat Sci Educ. 2024 Apr-May;17(3):483-498. doi: 10.1002/ase.2378. Epub 2024 Jan 10.

Honoring human body donors: Five core themes to consider regarding ethical treatment and memorialization 

 

 

🔬 "카데바"가 아니라 "기증자"입니다 — 해부 실습실에서 시신 기증자를 예우하는 다섯 가지 핵심 가치

 

  • 의대에 들어가서 처음 마주하는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가 바로 해부 실습이죠. 3차원 구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직접 만지며 배우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해부 실습실은 단순히 해부학 지식만 쌓는 공간이 아니에요. 학생들이 공감(empathy), 존중(respect), 책무성(accountability),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처음으로 체득하고, 나아가 자신의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 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 오늘 소개할 논문이 바로 이 지점을 다룹니다. Leeper와 동료들이 2024년 Anatomical Sciences Education에 발표한 「Honoring human body donors: Five core themes to consider regarding ethical treatment and memorialization」인데요. 시신 기증자(body donor)를 윤리적으로 예우하고 추모하기 위해, 해부학 교육 현장에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는 다섯 가지 핵심 가치(five core themes) 를 제안합니다.

 


💭 '거리두기적 관심'을 넘어서

전통적으로 해부 실습에서는 "거리두기적 관심(detached concern)"이 강조되어 왔어요. 시신을 해부하면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감정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일종의 대처 기제죠. 물론 효과적인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만 매달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연구진은 거리두기적 관심에만 집중하는 실습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합니다.

💬 "따뜻한 의사가 아니라 임상 기술자를 길러내고, 환자를 사물처럼 바라보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has been shown to develop clinical technicians rather than caring physicians and to promote viewing patients as objects." (Leeper et al., 2024)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잠재적 교육과정, 혹은 숨은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입니다. 명시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지만, 실습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감·존중·연민 같은 인간적 자질을 말하죠.

 

연구진은 기증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곧 미래의 환자를 대하는 태도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논문이 인용한 Morar 등의 표현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 "죽은 이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살아 있는 이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how you treat the dead influences the way you treat the living" (Morar et al., as cited in Leeper et al., 2024)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다섯 가지 가치를 하나씩 살펴볼게요.


1️⃣ 인간 존엄성 (Human Dignity)

정의: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과 동일한 존엄과 존중을 기증자에게 제공하기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이자, 연구진이 검토한 기존 15개 지침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핵심입니다.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해요. 바로 용어거든요.

우리가 흔히 쓰는 "카데바(cadaver)", "해부 표본(anatomical specimen)", 심지어 "그것(it)" 같은 표현은 무심코 쓰지만, 기증자를 인간성 없는 무생물처럼 취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반면 "기증자(donor)"는 '기증하다(to donate)'라는 능동적 동사에서 나온 말이라, 쓸 때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기로 한 결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논문이 인용한 Rizzolo의 설명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 "[기증자라는 용어는] 기증자가 베푼 선물과, 기증자가 학생들에게 보낸 신뢰를 강조한다."

the term "donor" "emphasizes the gift that the donor made and the trust that the donor placed in the students" (Rizzolo, as cited in Leeper et al., 2024)

 

흥미로운 건 나라마다 더 존경 어린 호칭을 쓴다는 점이에요. 태국에서는 "아잔 야이(ajarn yai, 위대한 스승)", 대만·중국·말레이시아에서는 "침묵의 스승(silent mentor)" 또는 "침묵의 덕망 높은 스승(silent virtuous teacher)"이라고 부릅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 존중하는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기 (실습실 밖 대화에서도!)
  • 적절한 시신 덮기(draping) — 특히 얼굴·생식기처럼 문화적으로 민감한 부위
  • 시신 조직을 촉촉하게 보존하고 깨끗하게 관리하기
  • 실습실 내 사진·동영상 촬영 금지 (뼈도 포함 — 플라스틱 모형이 아니니까요)
  • 실습실 출입 제한
  • 기증자 서약(donor oath) — 인도에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기증자 앞에 서서 존중과 전문직업성을 다짐합니다
  • 과정 마무리 시 시신을 최대한 원래대로 재조립(reassemble)하기 — 대만에서는 학생들이 절개한 피부를 다시 꿰매기도 합니다

이 마지막 부분이 특히 와닿습니다. 해부가 끝나 인간의 형체를 거의 잃은 시신을 정성껏 복원하는 과정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 시간—즉 '나의' 기증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정서적으로 마무리(closure)할 수 있는 시간을 학생에게 준다고 하네요.


2️⃣ 첫 환자 / 침묵의 스승 (First Patient / Silent Teacher)

정의: 살아 있는 사람이 수행할 법한 역할을 기증자에게 부여하기 

 

기증자를 단순한 '해부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로 바라보자는 거예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 첫 환자(first patient) 관점은 기증자를 학생의 첫 번째 환자로 여기는 겁니다. 미래의 환자에게 가질 책임감을 미리 길러주죠. 다만 비판도 있어요. Rizzolo는 학생들이 이 '환자'를 결코 치료하거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고, 몸을 다시 온전하게 되돌리지도 못한 채 해체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관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 침묵의 스승(silent teacher) 관점은 기증자를 가르침을 주는 스승으로 보는 거예요. 연구진은 이 관점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는데, 다음 문장이 핵심입니다.

 

💬 "기증자는 사실 그 어떤 살아 있는 교육자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강의나 교과서보다도 해부학과 인간적 가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학생에게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the donor can actually be a better teacher than any living educator since they can teach the students more about anatomy and humanistic values than any lecture or textbook." (Leeper et al., 2024)

 

실천 방법은 이렇습니다.

  • 실습실에 스승의 역할을 알리는 문구 게시하기. 예를 들어 Seton Hill 대학은 라틴어 문구 Hic locus est ubi mortui viventes docent("이곳은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치는 곳이다")를 실습실에 걸어둔다고 해요.
  • 매 실습 후 "오늘 당신의 기증자에게서 무엇을 배웠나요?" 같은 성찰 질문 던지기
  • 첫 환자 관점에서는 발견된 질환이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했을지 함께 토론하기 

참고로 두 관점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건 아니에요. 기초 지식을 배우는 초반에는 '스승'으로, 임상 지식이 쌓인 후반에는 '첫 환자'로 전환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3️⃣ 선물에 대한 예우 (Honoring the Gift)

정의: 시신 기증을 하나의 '선물'로 여기기 

 

기증은 어떤 보상도 받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순수하게 이타적인(altruistic) 선물입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대학이나 기관이 이 기증으로 이익을 취하는 것, 즉 시신이나 시신 이미지의 상업화(commercialization)는 비윤리적이라고 분명히 합니다. 신뢰를 저버리고 기증자를 상품처럼 취급하는 일이니까요.

 

선물에는 보답(reciprocate)하려는 마음이 따르기 마련인데, 학생이 기증자를 추모하고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그 보답이자 감사의 표현이 됩니다.

💬 "한 사람의 시신 기증에 대한 감사의 결여는 그 선물을 폄하하는 것이다."

the lack of gratitude for the bequeathal of one's body demeans the gift (as cited in Leeper et al., 2024)

 

실천 방법은 다양합니다.

  • 해부 시작 전 추모 의식이나 묵념
  • 매일 기증자에게 인사·작별하기 (태국은 정중한 절, 대만·한국은 기도나 묵념 후 깊은 절)
  • 선물을 최대한 활용하기 — 가능한 한 많이 배우고, 다른 과정·학교 학생에게도 학습 기회 제공
  • 연구에 활용할 경우 사전 동의를 받고, 논문에 공식적으로 감사 표기
  • 성찰(reflection) — 개인 묵상, 그룹 토론, 글쓰기, 예술 활동 등
  • 과정 종료 시 기증자를 위한 추모식(memorial ceremony)

특히 한국이 직접 언급된 부분이 반갑네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부를 시작할 때 기도나 묵념을 하고, 끝날 때 깊이 절하며 감사를 표하는 사례가 소개됩니다.


4️⃣ 가족에 대한 인정 (Recognizing the Family)

정의: 기증자의 가족을 예우 절차에 포함시켜, 그들의 애도 과정을 돕기 

 

기증자 가족은 전통적인 장례·매장 절차에서 오는 '마무리'를 누리지 못한 채, 복잡하고 독특한 형태의 애도를 견딘다고 해요. 가족을 인정하고 그들이 사랑한 이의 기증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전하는 것은, 가족에게 위로와 마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것이 학생 교육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의료인은 환자만 돌보는 게 아니라 그 가족과 대화하고 위로해야 하니까요.

💬 "시신 기증자의 가족을 인정하는 것은, 학생들이 환자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을 헤아리도록 준비시키는 첫걸음이다."

"Recognizing human body donor families is a first step in preparing students for considering the emotions of family members and loved ones." (Leeper et al., 2024)

 

실천 방법은 이렇습니다.

  • 추모식에 가족 초청하기 (어려우면 감사 카드나 선물을 기증 기관을 통해 전달)
  • 좌석이 부족하면 추모식을 생중계하거나 녹화 영상으로 공유
  • 가족이 찾아와 추모할 수 있는 영구적 공간 마련하기 (납골당, 기념비, 추모 정원, 추모 웹사이트 등)

미국은 전통적으로 기증자 익명성을 중시해 왔지만, 최근에는 일부 대학이 가족을 더 일찍 참여시키는 추세라고 하네요.


5️⃣ 포용성 (Inclusivity)

정의: 모든 예우 절차에서, 기증자와 학생 모두의 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기 

 

이 다섯 번째 가치가 이 논문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발표된 15개 지침 어디에도 포용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연구진은 이 가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핵심은 추모식이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기증자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톨릭 재단 대학이라 해도 추모식은 가능한 한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interfaith) 형태여야 한다는 거죠. 동시에 종교색을 완전히 뺀 세속적 추모식은 신앙에서 위안을 얻는 학생에게 오히려 소외감을 줄 수 있어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세심한 배려의 예시도 인상적이에요. 유대교의 추도 기도인 '카디시(Mourner's Kaddish)'는 유대인 10명(minyan)이 모여야만 낭송할 수 있어서,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 읊으면 오히려 정통파 유대인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능한 한 여러 신앙을 포용하는 추모식 열기
  • 추모식 장소 고려하기 (대학 채플은 특정 신앙으로 비칠 수 있음)
  • 기념비·추모 공간을 설계할 때 종교·문화적 차이 반영하기
  • 기증 서류에 기증자의 종교·문화적 선호 항목을 추가하기

📌 그래서, 어떤 가치가 실제로 쓰이고 있을까?

연구진이 기존 15개 지침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핵심 가치  기존 지침 반영 비율
인간 존엄성 (Human Dignity) 15개 전부 (100%)
선물에 대한 예우 (Honoring the Gift) 9개 (60%)
가족에 대한 인정 (Recognizing the Family) 5개 (33.3%)
첫 환자 (First Patient) 2개 (13.3%)
침묵의 스승 (Silent Teacher) 0개
포용성 (Inclusivity) 0개

인간 존엄성이 압도적이죠. 반면 침묵의 스승과 포용성은 기존 지침에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이 두 가치가 기증자의 인간성을 지키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풍부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포용성은 기증자의 자율성(autonomy)과 학생의 편안함, 그리고 다양성 교육의 기회를 위해 앞으로 더 깊이 탐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요.


✍️ 마치며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해부 실습실에서 기증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단지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의료인으로 성장하느냐의 문제라는 거죠.

💬 "이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기증자와 그 가족, 그리고 기증자의 선물 덕분에 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학생 모두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

"Working to incorporate these five core themes can provide benefits to the donors, their families, and the students who are able to further their education due to the donor's gift." (Leeper et al., 2024)

 

우리나라에서도 시신 기증자를 향한 추모 문화가 자리 잡고 있죠. 이 논문이 제안하는 다섯 가지 가치는, 단발성 추모식을 넘어 실습 전 과정에 걸쳐 윤리적 가치를 일상의 실천으로 녹여낼 수 있는 구체적인 지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과 잠재적 교육과정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깊이 들여다볼 만한 연구라고 생각해요. 😊

 


서론 Introduction 

인체 기증자, 즉 시신(cadavers)의 해부는 해부학 교육과정(anatomy curricula)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며, 해부학적 내용(anatomical content)을 가르치는 데 있어 가치 있는 교육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인체 해부(human dissection)는 3차원 구조(3-dimensional structures), 해부학적 변이(anatomical variations), 임상 상태(clinical conditions)를 시각적·촉각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해부 실습실(dissection laboratory)은 또한 학생들이 연민 있는 의료인(compassionate healthcare provider)을 구성하는 인간적 속성(humanistic attributes), 즉 공감(empathy), 존중(respect), 책무성(accountability),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기르기 시작하고,1 자신의 전문직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을 형성하기 시작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2–4

 

해부 과정에서 학습되는 이러한 전문직업적·인간적 자질은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라고 불려 왔다. 최근 이 잠재 교육과정은 해부학 기증자(anatomical donors)에 관한 윤리적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학생의 공감과 이전에 선호되었던 “분리된 관심(detached concern)” 사이의 균형을 촉진해 왔다.1,5–7 분리된 관심은 학생들이 심리적 스트레스(psychological stress)를 제한함으로써 인체를 해부할 수 있게 해 주는 효과적인 대처 기제(coping mechanism)가 될 수 있다.7 그러나 잠재 교육과정의 요소 없이 해부 과정에서 오직 분리된 관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돌보는 의사(caring physicians)가 아니라 임상 기술자(clinical technicians)를 길러내고 환자를 사물(objects)로 보도록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6 따라서 분리된 관심은 해부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을 다루는 데 효과적이고 가치 있는 접근일 수 있지만, 그것만 단독으로 취해질 경우 미래의 환자와 공감적 연결(empathetic connections)을 형성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해부를 통해 해부학을 가르치는 명백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인체 해부는 학생들로 하여금 죽음(death)과 필멸성(mortality)에 관한 생각을 직면하거나 내면화하도록 강제하는 경험이므로 일부 학생들에게 불안(anxiety)과 고통(distress)을 유발할 수 있다.8–11 많은 학생들이 두려움과 망설임을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감정은 해부 과정 이전에 더 강하고,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2 이러한 감정은 일부 학생들에게 과정 내내, 심지어 과정 이후에도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지원(support)이 제공되어야 한다.2,12

 

또한 해부는 인간 신체를 본질적으로 절단(dismemberment)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윤리적·영적 딜레마(ethical and spiritual dilemmas)를 포함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종교와 사회에서 “금기(taboo)”로 여겨진다.13 학생들은 부검용 톱(autopsy saw)을 사용하는 해부를 공포 영화의 한 장면에 비유하며, 이를 “잔혹한(brutal),” “불안하게 하는(disturbing),” 또는 “외상적(traumatic)” 경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14

 

영적 딜레마는 영혼(soul)과 사후세계(afterlife)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왔다.14–16 따라서 영적 딜레마에는 해부가 인간 신체의 훼손(desecration)에 해당한다는 두려움이 포함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인간 신체가 신성하며(sacred),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해부가 고인의 사후세계에 곤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부 종교는 죽은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허용되는 관행과 금지되는 관행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유대교(Judaism)에서는 신체가 즉시 매장되어야 하고 매장 시 온전한 상태여야 한다.17 나바호(Navajo)의 경우, 죽은 사람의 악이 사망 후에도 신체에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시신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18 결과적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해부는 영적 “회색지대(gray area)”에 놓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해부학적 해부(anatomical dissection)가 종교법(religious laws)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해부가 자신 또는 기증자의 사후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우려로 실습실에서 추가적인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종교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 학생들 역시 영혼에 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이는 해부에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15 특히 심장이나 뇌처럼 “영혼의 자리(seat of the soul)”로 여겨지는 부위를 해부할 때 그러하다.14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반드시 종교와 연결되지는 않지만 실습실에서 유사한 불편감이나 반대를 유발할 수 있는 문화적 믿음(cultural beliefs)을 가질 수 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Māori)가 그 예이다. 마오리 문화에서는 산 자가 사망자의 신체를 다루기 전에 화카와테아/정화 의식(whakawātea, “clearing of the way”)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타고 대학교(University of Otago)는 해부 과정 전에 whakawātea를 제공하여 마오리 학생들이 해부에 보다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19,20

 

또한 영혼, 사후세계, 죽은 이의 처리에 관한 엄격한 전통에 대한 문화적·종교적 믿음이 있든 없든, 학생들은 기증자의 가족이 적시에 추모(memorialization)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거나, 자신의 기증자를 절단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외상적이라고 느끼면서 크게 불편해할 수 있다.21 인체 기증자의 오용(misuse)이나 학대(abuse)는 학생들에게 더 큰 고통을 유발할 뿐 아니라, 기증자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역사회 전체를 크게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다.22

 

해부 과정이 윤리적이고 마음챙김에 기반한 방식(ethical and mindful manner)으로 접근된다면, 학생의 고통은 완화될 수 있으며, 과정 초기에 충분히 다루어진다면 완전히 피할 수도 있다. Hildebrandt23는 해부 중 학생의 고통을 제한하기 위해 해부학 교육의 “실천적 핵심 요소(practical core elements)”를 제안했으며, 이러한 요소를 해부학 과정 전, 중, 종료 시점에 통합하는 다양한 실천적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러한 핵심 요소는 한 학생이 자신의 인체 기증자에게 보낸 “Dear Joseph”이라는 편지를 게시한 데 대한 반응으로 제안되었다. 이 편지는 해부 중 그 학생에게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컸던 시간을 기록한 것이었다.24 Hildebrandt의 핵심 요소는 과정 전반에 통합될 때 Terry가 묘사한 것과 같은 학생 경험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23

 

더 나아가 1995년 이후, 해부 과정 중, 인체 기증 과정(body donation process) 중, 그리고 인체 기증자를 활용한 연구에서 인체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위한 지침 또는 정책에 관한 여러 제안이 있었다(Table 1 참조). 이들 지침 제안 모두가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기증자의 인간성(humanity)을 유지하는 윤리적 처우 지침이나 정책은 해부 중 마주치는 윤리적 딜레마를 제한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30 인체 기증과 해부의 윤리를 고려하기 위한 성문화된 틀(codified framework)이 있을 때, 학생들은 해부 과정에 더 편안함을 느끼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제한될 수 있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윤리 지침이 필요하다는 점은 두 명의 의대생이 제안한 윤리 지침의 요청에서도 더욱 강조된다.28 이들은 그러한 지침이 “Dear Joseph” 편지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불안한 학생 경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24

 

Champney30는 해부 실습실에서 윤리 지침을 매일 실천하고 인체 기증자의 인간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바이오에토스(bioethos),”존중의 문화(culture of respect)가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바이오에토스는 해부학 교육에 필수적인 인체 기증이라는 선물을 기리고, 인체 기증자의 오용이나 학대를 강하게 억제하는 데 중요하다.

 

윤리 지침에 관한 여러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침을 해부학 과정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출판된 제안은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문들은 기증자를 기리는 최종 추모식(final memorial service)에 초점을 맞추지만, 윤리적 가치를 과정에 통합하는 방법은 이외에도 많다. 이 글의 목적은 다른 지침 제안들로부터 도출되었고 인체 해부 과정에 쉽고 효과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다섯 가지 핵심 주제(core themes)를 제안하는 것이다. 제안되는 핵심 주제는

 

  • (1)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
  • (2) “첫 번째 환자(First Patient)” 또는 “침묵의 스승(Silent Teacher),”
  • (3) 선물을 기리기(Honoring the Gift),
  • (4) 가족을 인식하기(Recognizing the Family),
  • (5) 포용성(Inclusivity)이다.

 

이 글은 또한 Hildebrandt23가 학생의 심리적 고통을 돕기 위해 제안한 핵심 요소를 통합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과 유사하게, 이러한 핵심 주제를 해부학 과정에 통합하는 여러 실천적 방법을 제공한다.


핵심 주제를 식별하기 위한 접근 Approach to Identifying Core Themes

이 논문의 저자들은 학부, 대학원, 보건과학, 치의학 및 의학 분야 교육과정에서 인체 기증자를 활용해 가르쳐 온 해부학 교육자(anatomy educators)들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인체 기증자를 활용하는 총 12개 고등교육기관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 중 5개 기관은 종교적 배경을 가진 기관(religious-affiliated institutions)이고, 7개 기관은 특정 종교와 관련이 없는 기관, 즉 세속 기관(secular institutions)이다. 이 기관들은 5개 주에 위치해 있으며, 자체 유언 인체 기증 프로그램(willed body donor program)을 운영하는 기관과 주정부 또는 기관별 기증 프로그램으로부터 기증자를 받는 기관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저자들의 경험은 기증자를 처우하고, 유지하며, 기리는 다양한 방식을 대표한다.

 

다섯 가지 핵심 주제를 수립하기 위해, 이 글의 다섯 저자는 현재 및 이전 기관에서 인체 기증자를 활용한 자신의 경험을 성찰했다. 또한 저자들은 다른 해부학 교육자들과의 비공식 대화, 그리고 그들이 인체 기증자를 활용한 경험과 실천을 성찰했다. 이러한 대화는 실습실 정책, 기증자의 처우와 유지 방식처럼 일부 실천이 기관 간에 더 일반적이거나 표준화되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게 해 주었고, 동시에 인체 기증자를 어떻게, 또는 실제로 추모하고 기리는지와 같은 측면에서는 기관 간 불일치가 있을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전에 출판된 윤리 지침 역시 해부학 과정에서 인체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지원할 수 있는 공통 주제를 확인하기 위해 검토되었다(Table 1).

 

인체 기증자에 관한 개인적 경험과 다른 이들의 경험을 성찰하고, 출판된 윤리 지침을 검토한 결과, 해부학 과정에 통합될 수 있는 여러 실천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핵심 주제가 드러났다. 이러한 실천들은 과정 전반에 걸쳐 기증자의 인간성을 유지함으로써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촉진하고, 동시에 학생들의 인간적 속성(humanistic attributes)을 함양하며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을 돕는다. Table 1은 검토된 출판 지침과, 각 제안 지침이 본 논문의 다섯 핵심 주제 중 어느 것과 정렬되는지를 제시한다. 모든 핵심 주제가 이전에 출판된 지침에 명확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들은 제안된 다섯 주제가 모두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장려하고 학생들의 공감을 기르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포용성(Inclusivity)이라는 주제는 이전 지침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주제가 기증자와 학생 모두의 자율성(autonomy), 본질적으로는 인간성(humanity)을 유지하는 데 근본적인 구성 요소라고 본다.

 

이 글에 제시된 예시와 실천 촉구(calls to action)는 저자들이 자신들의 실습실을 해부학 교육의 탁월성(excellence in anatomy education)을 장려할 뿐 아니라 학생, 교수, 기증자 모두를 위한 존중(respect)과 경외(reverence)의 포용적 환경(inclusive environment)을 촉진하는 공간으로 설계해 온 방식에 기반한다. 이러한 주제를 구현하는 추가 사례는 전 세계의 출판된 실습실 관행과 인체 기증자 기림 방식에 기반하여 제공된다. 이러한 사례에는 수업 실천(classroom practices)뿐 아니라, 인체 기증자와 함께 일한 경험을 추모하고 성찰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사용되는 실천도 포함된다. 각 기관은 인체 기증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 교수, 직원, 학생, 더 넓은 대학 공동체, 때로는 기증자의 가족이 포함된다. 실천 방식과 그 관련 가치가 무엇이든, 기증자는 교육팀(educational team)의 필수적인 일부로 신중하고 총체적으로 고려되어 왔다.

 

이러한 핵심 주제가 인체 기증자의 처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주제를 교육과정에 통합하는 방법은 추가적으로 실습실에서 바이오에토스를 형성하고 해부 중 학생의 불편감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30 이러한 방법은 성찰(reflection)과 종결감(closure)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감의 감정을 길러내는 존중적 환경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래에 제시된 권장 방법은 포괄적 목록(exhaustive list)이 아니라, 저자들의 집단적 경험과 출판된 실천에서 도출된 아이디어의 예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체 해부 과정 전반에 걸쳐 이 다섯 주제를 통합하기 위한 권장 실천의 요약은 Table 2를 참조하라.


표 1 Table 1 이전에 제안된 윤리 지침과 다섯 핵심 주제와의 관련성 요약 Summary of previously proposed ethical guidelines and their relation to the five core themes 

 

참고문헌 Reference 요약/설명 Summary/Description 다섯 핵심 주제와의 관련성 Relation to five core themes
해부학 실습실에서 기증자의 윤리적 돌봄에 관한 지침 Guidelines for the ethical care of donors in anatomy laboratories
Human gross anatomy: a crucial time to encourage respect and compassion in students11 실습실에서 존중과 연민을 개발하기 위한 4가지 지침을 제안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
1) 언어: “cadaver” 대신 “donor” 사용.
2) 식별: 학생들에게 기증자 정보를 제공하여 그들이 인간을 해부하고 있음을 상기시킴.
선물을 기리기(Honoring the gift):
3) 토론 활용: 해부 경험에 관한 토론을 장려하고 촉진.
4) 추모식 개최.
A proposal for a policy on the ethical care and use of cadavers and their tissues22 윤리 지침 개발 시 고려해야 할 5가지 쟁점을 강조 인간 존엄성:
2) 시신에 대한 존중을 가질 것.
Ethics in dissection of cadaver in teaching of learning of anatomy25 기증자 해부에서 윤리를 유지하기 위한 5가지 규칙과 규정을 제안 인간 존엄성:
1) 인체 해부학적 선물(human anatomical gifts): 기증자를 존중하며 대하고, 전문직업성을 보이며, 사진 촬영 금지.
2) 시신의 적절한 관리.
3) 실습실 접근 제한.
5) 조직과 장기의 적절한 보존.
A change in paradigm: giving back identity to donors in the anatomy laboratory26 해부학에서 “학제 간 학습환경(interdisciplinary learning environment)”을 만들기 위한 5가지 “지도 원칙(guiding principles)” 제안 인간 존엄성:
5) 전문직업성 실천.

첫 번째 환자/침묵의 스승(First patient/silent teacher):
1) 첫 번째 환자: 기증자를 첫 번째 환자이자 인간으로 생각하기.
4) 전체 환자 치료(treating the total patient): 환자중심 돌봄(patient-centered care) 교육.

선물을 기리기:
2) 지식: 기증자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배우기.
3) 성찰과 성찰 실천.
Cadaver dissection in anatomy: the ethical aspect27 해부에서 윤리적 실천을 위한 7가지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1) 윤리와 시신 해부: 기증자에게 자율성과 존중을 제공.
2) 해부실 예절(dissection hall etiquettes) 수립.
4) 시신의 적절한 관리.
5) 해부실 접근 제한.
7) 조직과 장기 보존.

선물을 기리기:
3) 인체 해부학적 선물: 신체를 선물로 보기.
A student proposal for ethical guidelines in anatomical education: ethical and policy considerations28 두 명의 의대생이 “Dear Joseph” 편지24에 대한 응답으로 해부 실습실을 위한 4가지 윤리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3) 기증자 존중.
Paying respect to human cadavers: we owe this to the first teacher in anatomy29 인체 기증자에게 존중을 보이기 위한 4가지 윤리적 실천 제안 인간 존엄성:
1) 선서(oath taking).
2) 기증자를 존중하며 다루기.

선물을 기리기:
4) 추모 의식(remembrance ceremonies) 개최.
A bioethos for bodies: respecting a priceless resource30 해부학 실습실에서 바이오에토스(bioethos)를 개발하기 위한 8단계 제안 인간 존엄성:
1) 모든 기증자와 그 가족을 존중하며 대하기.
2) 신체를 cadavers가 아니라 donors라고 부르기.
3) 사용 중인 부위를 제외하고 신체를 덮기.
4) 해부가 끝나면 장기와 피부를 되돌려 놓아 신체를 가능한 온전하게 유지하기.

선물을 기리기:
6) 기증자와 가족을 위한 추모식 개최.
7) 기증자를 기리는 영구 전시 마련.

가족을 인식하기(Recognizing the family):
1) 모든 기증자와 가족을 존중하며 대하기.
6) 기증자와 가족을 위한 추모식 개최.
The practice of ethics in the context of human dissection: setting standards for future physicians31 인체 해부와 기증 실천을 위한 4가지 윤리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1) 해부학적 해부를 위한 기증 인체 수령의 윤리적 측면: 사전동의(informed consent), 금전적 이익 없음 등.
3) 해부실에서 기대되는 이상적 윤리 행동: 기증자를 존중하며 다루고 인간 존엄성 유지.
해부 중 학생 스트레스 제한을 돕기 위한 지침 Guidelines to assist in limiting student stress during dissection
Thoughts on practical core elements of an ethical anatomical education23 “Dear Joseph” 편지24에 대한 응답으로, 실습실에서 학생 스트레스를 제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윤리적 해부학 교육의 “실천적 핵심 요소” 제안 인간 존엄성: 교수와 선배 학생들이 실습실에서 존중적 행동을 역할모델링(role modeling).

첫 번째 환자/침묵의 스승: 해부 기록부(dissection-log book)와 해부 중 발견 사항에 관한 병리학자 상담.

선물을 기리기: 기증자에 대한 감사의 묵념, 기증자의 신체를 가능한 “온전하게(intact)” 남겨두기. 학생들이 교수, 학생, 기증자 가족을 위해 조직하는 추모식. 선택적 예술 활동 제공: 그림, 회화, 연극, 글쓰기, 독서, 음악. 과정 전·중·후 성찰 실천과 토론 제공.

가족을 인식하기: 학생들이 교수, 학생, 기증자 가족을 위해 조직하는 추모식 개최.
연구에서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에 관한 지침 Guidelines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donors in research
Ethics guidelines for research with the recently dead32 인체 기증자를 활용한 연구를 위한 10가지 윤리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5) 죽은 이에 대한 존중을 담은 절차 사용.
8) 기증자의 비밀보호(confidentiality).
10 tips on working with human body donors in medical training and research33 의학 훈련과 연구에서 인체 기증자와 함께 일하기 위한 10가지 팁 제안 인간 존엄성:
7) 인간 존엄성을 포용하는 기증자와의 윤리적 실천.

선물을 기리기:
6) 기증자를 기리고 인정하기.

가족을 인식하기:
6) 기증자를 기리고 인정하기: 추모식 제공을 통해 가족에게 기여를 전달하기.
인체 기증/조달 정책 Policies on body donation/procurement
Recommendations of good practice for the donation and study of human bodies and tissues for anatomical examination34 인체 기증 과정에서 투명성과 윤리를 촉진하기 위한 11가지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4) 표본(specimens)을 존중하며 대하기.

선물을 기리기:

2) 인간 유해(human remains)의 상업화가 없어야 함.
11) 감사 또는 기념 예배/의식 개최.

가족을 인식하기:
11) 고인의 친족을 의식에 초대하기.
Anatomy, respect for the body and body donation—a guide for good practice35 인체 기증 과정에 관한 17가지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17) 공적 영역(public domain)에 놓이는 이미지 제한.
선물을 기리기:
12) 기증자를 기리는 기념 의식(commemoration services) 개최.
13) 가능할 때 기증자를 기리는 기념물 또는 명판 세우기.
15) 신체 또는 신체 부위의 상업화 금지.
가족을 인식하기:
12) 가족을 위한 의식 제공.
인체 기증자 이미지에 관한 정책 Policies on images of human body donors
Recommendations for good practice around human tissue image acquisition and use in anatomy education and research36 2012년 지침의 보완으로 인체 기증자 이미지에 관한 14가지 지침 제안 인간 존엄성: 14개 지침 모두 기증자 이미지 제한과 기증자로부터의 사전동의 확보를 논의.

주 Note: 지침은 출판 연대순으로 제시되었으며, 제안된 지침의 목적에 따라 세분화되었다. 마지막 열의 숫자는 각 출판물에서 제안된 지침/원칙/단계 등의 번호와 관련된다.

 


표 2 Table 2 다섯 가지 주제의 정의와 통합을 위한 권고 목록
Definitions of 5 themes and list of recommendations for incorporation
 


 

주제 Theme 시점 Timing 권고 Recommendations
(1) 인간 존엄성 Human dignity — 기증자에게 살아 있는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과 동일한 존엄(dignity)과 존중(respect)을 제공하기 해부 전 Prior to dissection • 존중하는 용어(respectful terminology)에 관한 논의
• 공식화된 정책(formalized policies)과 불이행(noncompliance) 시 가능한 결과에 관한 논의
• 기증자 선서(donor oath)
과정 전반 Throughout course • 존중하는 용어를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사용
• 정책과 불이행 시 결과의 집행(enforcement)
 ◦ 기증자를 적절히 덮기(proper draping of donors)
 ◦ 기증자 신체의 관리(care of the donor body)
 ◦ 기증자 신체와 인골(human bones)의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 금지
 ◦ 실습실 접근 제한(limitation of laboratory access)
과정 종료 Conclusion of course • 기증자가 화장(cremation) 또는 매장/안치(internment)를 위해 반환되기 전에 신체를 존중을 담아 재조립(respectfully reassemble)하기
• “선물을 기리기(Honoring the Gift)”와 “가족을 인식하기(Recognizing the Family)” 절에 제시된 권고를 통해 이 주제를 강화하기
(2) 첫 번째 환자/침묵의 스승 First patient/silent teacher — 기증자에게 살아 있는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기 해부 전 Prior to dissection • 용어 소개: “첫 번째 환자(First Patient)” 또는 “침묵의 스승(Silent Teacher)”
과정 전반 Throughout course 첫 번째 환자 First patient:
 ◦ 기증자의 임상적 문제(clinical issues)를 환자의 문제로 논의하기. 예: “이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면 기증자는 어떻게 느꼈을까?”, “어떤 치료를 받았을까?” 등

침묵의 스승 Silent teacher:
 ◦ 실습실 표지(lab signage) 활용. 예: Hic locus est ubi mortui viventes docent, 즉 “이곳은 죽은 이들이 산 자들을 가르치는 곳이다(this is where the dead teach the living)”
 ◦ 토론 질문 활용. 예: “오늘 당신의 기증자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3) 선물을 기리기 Honoring the gift — 인체 기증(body donation)을 선물(gift)로 간주하기 해부 전 Prior to dissection • 해부 전 의식(ceremony) 개최
• 묵념(moment of silence) 또는 성찰 시간(time for reflection) 제공
과정 전반 Throughout course • 매일 기증자에게 인사하거나 작별하기. 예: 존중을 담은 절(respectful bow)
• 해부 실습 후 기도(prayer) 또는 묵념
• 선물의 사용을 극대화(maximize the use of the gift)
 ◦ 학생들이 기증자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배우도록 제안
 ◦ 다른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위한 교육 투어 제공
 ◦ 상급 고등학생을 위한 교육적 봉사 프로그램(educational outreach programs) 제공
 ◦ 연구에서 기증자를 존중하고 윤리적으로 활용
• 출판된 연구에서 기증자를 인정(acknowledgement of donors)
• 침묵의 개인 성찰(silent personal reflection), 집단 토론(group discussion), 글쓰기 과제(writing assignments), 예술작품(artwork)을 통한 성찰 실천(reflective practices)
과정 종료 Conclusion of course • 기증자를 기리는 의식(ceremony to honor the donors) 개최
(4) 가족을 인식하기 Recognizing the family — 기증자의 가족을 고려하고 인정하여 그들의 애도 과정(grief process)을 돕기 해부 전 Prior to dissection • 기증자 가족과 만나기
• 기증자 가족을 포함하는 시작 의식(initiation ceremony) 개최
과정 종료 Conclusion of course • 학생들이 작성한 감사 카드(thank you cards) 또는 선물을 기증자 가족에게 보내기
• 최종 추모식(final memorial ceremony)에 초대하기
• 최종 추모식에 가상 참석 옵션(virtual attendance option) 제공
• 가족이 방문할 수 있는 영구 추모 공간(permanent memorial) 제공: 매장지(burial plot), 납골당/묘소(mausoleum), 기념물(monument), 명판(plaque), 정원(garden), 웹사이트(website) 등
(5) 포용성 Inclusivity — 모든 기증자 기림 실천에서 기증자와 학생 모두의 종교적·문화적 포용성(religious and cultural inclusiveness)을 고려하기 해부 전 Prior to dissection • 해부실이 포용적 환경(inclusive environment)이 될 수 있도록 정책 마련
• 포용성에 대한 고려를 학습 과정(learning process)의 일부로 삼아 학생들을 참여시키기
과정 종료 Conclusion of course • 여러 종교를 통합하고 기념하는 다종교 추모식(interfaith memorial ceremony) 개최
 ◦ 종교를 어떻게 존중하며 통합할지 고려하기. 예: 유대교 실천자 10명, 즉 미니얀(minyan)이 참석하지 않는 한 Jewish Mourner’s Kaddish를 낭독하지 않기
 ◦ 의식 장소(location of the ceremony) 고려하기
• 기증자를 기리는 추모 기념물(memorial monument), 명판(plaque), 또는 공간(space)을 설계할 때 종교적·문화적 차이 고려하기
기타 Other • 가능하다면 인체 기증 양식(body donation forms)에 기증자의 종교와 문화(donor religion and culture)를 포함하기

 

인간 존엄성 Human Dignity 

용어/배경 Terminology/Background 

 

  • 죽은 사람의 윤리적 가치(ethical value)는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하나의 답을 갖지 않는 철학적 질문이다. 그러나 고인(decedent)에게 살아 있는 인간이 갖는 것과 동일한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여러 이점을 가진다. 인체 기증자를 존엄(dignity)과 존중(respect)으로 대하는 것은 고인과 고인의 가족의 뜻을 직접적으로 기리는 것이며, 아래의 “선물을 기리기”와 “가족을 인식하기” 참조, 해부 과정에서 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불편감과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 해부학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정서적 지원(emotional support)을 제공하고, 윤리와 기증자의 인간성(humanity)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학생들의 부적절하고 무례한 대처 기제, 예컨대 기증자에게 무례한 별명을 붙이거나 다른 어두운 유머(dark humor) 행동을 하는 것, 그리고 기증자의 대상화(objectification)를 제한할 수 있다.37 Morar et al.38은 죽은 이를 대하는 방식이 산 자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인체 기증자를 존엄과 존중으로 대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이러한 가치를 학생들에게 심어 주어, 그들이 미래의 환자를 동일한 존엄과 존중으로 대하도록 할 것이다. 이 주제의 중요성은 인간 존엄성 및/또는 존중이 이전에 제안된 모든 윤리 지침의 구성 요소라는 사실에 반영되어 있다(Table 1 참조).

 

권고 Recommendations 

실습실에서 인간성(humanity)에 대한 감각을 확립하는 일은 인체 기증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를 바꾸는 것처럼 단순한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Cadaver”라는 용어는 전 세계 해부학 실습실과 일반 언어에서 널리 사용된다. “Cadaver,” “anatomical specimen,” 심지어 “it”과 같은 용어는 해롭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그것들은 기증자가 인간성이 없는 무생물(inanimate object)임을 암시하고, 결과적으로 인체 기증자의 대상화를 촉진한다.11,39

 

반대로 “donor”는 “기증하다(to donate)”라는 능동 동사(active verb)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donor”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마다, 학생들은 그 개인이 의학교육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기로 의도적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Rizzolo는 더 나아가 “donor”라는 용어가 “기증자가 한 선물과 기증자가 학생들에게 부여한 신뢰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p. 244).40 이러한 신뢰는 환자가 의료인(healthcare providers)에게 부여하는 신뢰를 대표하며, 따라서 학생들이 해부 중 느낄 수 있는 “침범과 위반(invasion and violation)”의 감정을 완화할 수 있다.41 그러므로 “donor”라는 용어의 사용은 학생들에게 기증자가 자신을 “치료,” 즉 해부해도 된다고 허락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일부 국가들은 용어를 바꾸어 실습실에서 존중과 공감을 증진하는 데 성공했다.

 

  • 태국에서는 인체 기증자를 존중의 표시로 “ajarn yai,” 즉 “위대한 스승(great teacher)”이라고 부른다.25,29,42
  • 대만, 중국, 말레이시아에서는 인체 기증자를 “침묵의 멘토(silent mentors)” 또는 “침묵의 덕 있는 스승(silent virtuous teachers)”이라고 부른다.43–49
  • “Teacher” 또는 “mentor”라는 용어는 동사 “가르치다(to teach)”에서 비롯된 명사이며, 능동적 과정을 함축한다. 이 용어는 기증자들이 학생들이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자신의 신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특정 용어가 통용어(vernacular)로 남아 있는 한, 인체 기증자를 위해 선택된 선호 용어(preferred term)의 도입에는 그것을 “cadaver”보다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공식적 설명이 동반되어야 한다. 모든 교수자는 과정 전체와 실습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도 선호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해야 한다. 학생들이 “cadaver”라는 용어에 더 익숙하더라도, 그들은 교수자들이 그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을 들으면 용어 변화(terminology change)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학생들은 교수자를 역할모델(role models)로 보기 때문이다.41 이러한 실천은 또한 학생들에게 “존중하는 언어의 습관(habits of respectful language)”을 가르칠 것이며, 학생들이 미래의 환자에게도 그러한 습관을 실천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p. 70).11 학생들이 “cadaver”보다 “donor”를 선호하여 사용하게 하는 것은, 의사가 “case”보다 “patient”를 선호하여 사용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는 단어가 사람을 대상화할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예가 된다.50

 

기증자에게 점점 더 경건한 호칭(reverent titles)이 부여되더라도, 학생들이 문으로 들어설 때 보게 되는 상기물(reminder)도 중요하다. 예컨대 볼로냐 대학교(University of Bologna) 인체해부학 연구소(Institute of Human Anatomy)의 해부학 실습실 위에는 라틴어 문구 “Hic mors gaudet succurrere vitae,” 즉 영어로 “In this place death is pleased to help life”가 걸려 있다.51 이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울 수 있도록 허락받은 이들에게 존중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도록 무대를 설정한다.

 

기증자에 대한 존중과 존엄을 길러내는 다른 방법은 과정 중 신체를 물리적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환자에게 그러하듯 기증자의 사생활(privacy)과 정숙성(modesty)은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환자의 사생활과 비밀보장(confidentiality)에 대한 권리는 사망 이후에도 연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38 해부학 해부 과정에 대한 윤리 지침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고, 세계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실습실에서 윤리적 실천의 변형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존엄성을 다루는 보편적 또는 표준화된 지침은 없다.22,29,31 또한 지침이 출판되었더라도 반드시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Table 1에서 “donor”보다 “cadaver”가 사용된 데서도 드러난다. 출판된 지침 중 첫 번째인 Weeks et al.11은 네 가지 지침 중 하나로 “donor” 사용을 권고했지만, 이후 출판된 여러 윤리 지침은 계속해서 “cadaver”를 사용했다.

 

표준화된 윤리 지침이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기증자에 대한 존중은 해부학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비전통적이고 학문분야 독립적인 기술(non-traditional, discipline-independent skill)로 보편적으로 언급되어 왔다.52 따라서 실습실에서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과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이고 상세한 정책(formal and detailed policy)이 학생들에게 제공되고 학생들이 서명해야 한다. 이 정책은 학생들에게 기증자의 권리(rights)와 보호(protections)를 사전에 상기시키며, 위반 시 가능한 결과, 예컨대 낙제(failing grade), 전문직업성 유예(professional probation), 학생의 경우 실습실 또는 프로그램에서의 퇴출, 교수나 직원의 경우 징계 조사(disciplinary investigation)를 명시해야 한다. 또한 행동이 시체 훼손(abuse of a corpse)과 같은 공식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해당 정책 위반이 지역 당국(local authorities)에 연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포함해야 한다.

 

인체 기증자를 사용하는 실습실은 각자의 기증자 프로그램(donor programs)에 지침을 문의할 것이 권장되지만, 정책은 실습실에서의 최선의 윤리적·전문직업적 행동(best-practice ethical and professional behavior)에 관한 일반 진술을 포함해야 하며, 기증자의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특히 다음 사항을 다루어야 한다.

  • 신체의 적절한 덮기(proper draping of the bodies) 
    • 기증자의 신체, 특히 얼굴, 생식기, 둔부처럼 문화적으로 민감한 부위(culturally sensitive places)를 덮는 것은 존중의 표시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각을 촉진한다. 기증자가 단지 “cadaver”이거나 해부할 대상(object)이라면 이러한 부위를 덮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기증자의 인간성을 상기하게 되며, 기증자를 덮지 않는 것을 살아 있는 환자에게 덮개를 제공하지 않고 진찰실에 알몸으로 남겨두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다.
  • 기증자 신체의 관리(care of the donor body) 
    • 각 해부 실습 동안 신체 조직(body tissues)은 적절히 보존되고 촉촉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조직은 보관되어야 하며, 기증자의 신체는 정돈된 상태로 만들어져야 하고, 매 실습 종료 시 신체 주변 영역, 신체백(body bag)과 해부대(dissection table)를 포함하여, 깨끗하게 청소되어야 한다. 조직을 유지하고 신체를 가능한 깨끗하고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존중의 표시이며, 학생들에게 기증자의 인간성을 상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실습실에서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 금지(prohibition of photography or videos in the laboratory) 
    • 의료인은 살아 있는 환자의 동의 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윤리적 근거에 의해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실습실에서 기증자와 골격 유해(skeletal remains)의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기증자의 인간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 정책에 골격 유해를 포함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뼈가 살아 있었던 인간에게서 온 것이며, 플라스틱 모형이 아니므로 그것 역시 돌봄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 실습실 접근 제한(limitation of laboratory access) 
    • 해부학 실습실 접근은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업무상 실습실 접근이 필요한 대학 직원으로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대학의 청소, 유지보수, IT 직원은 실습실 접근이 필요하며, 종종 실습실 책임자가 감독할 수 없는 시간 외에 접근하게 되므로, 실습실 접근 권한을 가진 모든 직원에게도 공식 실습실 정책이 제공되어야 하고 서명이 요구되어야 한다. 이는 직원의 비윤리적 행동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윤리가 의학 교육과정의 국가적 의무 구성요소인 인도에서는,53 해부학자들이 해부가 시작되기 전에 기증자의 인간성을 확립하기 위한 추가 방법을 시행해 왔다. 이들은 학생들이 살아 있는 환자에게 실습하기 전에 낭독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와 유사한 선서를, 기증자 앞에 서서 낭독하게 한다.29,54,55 이 선서에서 학생들은 기증자를 존중과 전문직업성으로 대할 것을 맹세한다. 기증자의 존재 앞에서 맹세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기증자에 대한 추가적인 책임감(responsibility)을 부여받는다. 이는 그들이 환자의 건강에 대해 책임질 때에도 느끼게 될 감각이다. 공식적 선서 실천 대신, 학생들에게 기증자에 대한 학생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정책 동의서(policy agreement form)에 서명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다.

 

과정이 끝날 때, 기증자의 신체가 거의 해체(disassembled)되어 모든 인간성이 벗겨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을 때, 학생들은 화장(cremation) 또는 매장(internment)을 위해 기증자가 반환되기 전에 가능한 한 신체를 적절히 재조립(reassembling)함으로써 기증자에게 존중을 보이고 존엄을 되돌려 줄 수 있다.19 대만에서는 반환 전 신체를 재조립하는 실천이 더욱 공식화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절개된 피부 조각을 다시 꿰매어 기증자를 온전하게 만든다.48 장기와 피부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고, 신체백에 추가 잔해가 없도록 확인하는 이 행위는 학생들에게 시험에 나오는 과정 내용이 아닌 방식으로 기증자와 함께할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성찰하고 “자신들의” 기증자에게 작별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여, 물리적·정서적 종결감을 준다.

요약 Summary 

“Cadaver”와 같은 대상화하는 용어보다 “donor”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 윤리 지침과 위반 시 명확한 결과를 포함한 실습실 정책의 설명, 그리고 “기증자 선서(donor oath)” 또는 윤리 정책 동의서로 과정을 시작하는 것은, 실습실에서 기증자에 대한 인간 존엄성과 존중이라는 주제를 길러내는 윤리적 실천의 분위기를 설정할 수 있다. 또한 인체 기증자가 살아 있는 사람과 동일한 윤리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심리적 분리(psychological detachment)와 신체의 오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부 과정이 신체를 해체해 감에 따라 학생들에게 기증자의 인간성은 약해질 수 있지만, 과정 종료 시 신체를 재조립하게 하는 것은 기증자의 존엄을 되돌리고 학생들에게 성찰과 종결의 추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첫 번째 환자/침묵의 스승 First Patient/Silent Teacher 

용어/배경 Terminology/Background 

기증자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학생들이 기증자를 단지 해부할 표본(specimen)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role)을 가진 존재로 보게 하는 것이다. 제안된 역할은 주로 기증자를 “첫 번째 환자(first patient)”9,26,39,55–57 또는 어떤 형태의 스승(teacher)으로 보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Talarico26는 기증자에게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부여하고 학생들이 환자를 돌보도록 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다섯 가지 “지도 원칙(guiding principles)” 중 하나로 기증자를 “첫 번째 환자”로 보는 관점을 포함했다. 이 관점은 학생들이 미래의 환자에게 갖게 될 책임감과 유사한 전문직업적 책임감(professional responsibility)을 기증자에게 갖도록 촉진한다. 이러한 책임감의 결과로, 학생들은 과정 전반에 걸쳐 자신의 기증자를 최선의 실천(best-practice)으로 돌보고 존중과 존엄을 제공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26

 

“첫 번째 환자” 관점의 제안된 이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연구자들은 이 인식의 몇 가지 단점을 제시했다.

 

  • Rizzolo는 학생들이 이 “환자”의 고통을 “치유하거나 완화할 수 없고,” 학생들이 “신체를 다시 온전하게 만들지 않은 채 해체할 것”이므로, 일부 학생들은 “첫 번째 환자”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p. 244).40
  • Winkelman and Güldner42는 더 나아가 학생들이 자신의 기증자를 환자로 대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환자를 “cadavers”처럼, 즉 임상적으로 분리된 관심(clinical detached concern)을 가지고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 따라서 기증자를 스승으로 보는 관점이 더 적절할 수 있으며, 학생과 기증자 사이의 더 가까운 관계를 길러낼 수 있다.58

 

이러한 인식을 위한 용어로는 “첫 번째 스승(first teacher),”53,55 “침묵의 스승(silent teacher),”59 “침묵의 멘토(silent mentor),”29,43,45–47,49 “침묵의 덕 있는 스승(silent virtuous teacher),”48 그리고 태국의 “ajarn yai” 또는 “위대한 스승(great teacher)”42 등이 제안되어 왔다. 이러한 용어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지만, 그 개념은 모두 동일하다. 즉 기증자는 단순히 해부할 무생물(inanimate object)이 아니라, 학생의 교육에서 능동적 역할(active role)을 수행하며, 이 역할은 경외(reverence)를 요구한다. 기증자를 스승으로 보는 역할은 해부학 실습실에서뿐 아니라,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이타성(altruism), 그리고 죽음과 죽어감(death and dying)에 대한 직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된 고려에도 적용된다.

 

해부학 기증자는 해부 과정(dissection course)을 통해 학생들의 전문직 정체성 발달에도 도움을 주는 스승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학생들이 해부를 완료하기 위해 팀으로 일하는 방식이다. 이는 팀워크(teamwork)와 자기조절(self-regulation)에 관련된 전문직업적 특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고,4 인간적 가치(humanistic values)를 촉진할 수 있다.52 이러한 방식으로 기증자는 실제로 살아 있는 어떤 교육자보다 더 나은 스승이 될 수 있다. 기증자는 어떤 강의나 교과서보다 더 많은 해부학과 인간적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증자를 환자 또는 스승 중 하나의 인식만으로 선택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자는 두 관점을 모두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58 이를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학생들이 해부학과 의학의 기초 지식만을 습득하는 과정 초반에는 기증자를 스승으로 보고, 학생들이 더 많은 임상 지식을 획득한 후에는 기증자를 첫 번째 환자로 보는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권고 Recommendations 

“첫 번째 환자” 관점은 해부 중 발견된 임상 상태(clinical conditions)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해당 상태가 기증자의 삶에 미쳤을 영향, 예컨대 통증 수준(pain levels), 신체적 제한(physical limitations), 비용(expense) 등, 환자로서 그들이 견뎌야 했을 치료(treatments), 그리고 그 시기에 가족이 무엇을 느꼈을지에 대한 논의를 포함함으로써 과정 전반에서 강화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기증자의 인간성과 공동체 안에서의 위치(place in their community)를 상기시키며, 질병 과정(disease processes)과 수술 치료(surgical treatments)의 인간적 측면을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순간이다. 이는 공감과 연민을 기르는 데 이어질 수 있다.

 

“침묵의 스승” 관점은 학생들에게 소개될 수 있으며, 해부 실습실 내부 또는 실습실 문에 기증자의 스승 역할을 나타내는 표지(signage)를 걸어 학생들이 기증자와 상호작용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매일 강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Seton Hill University(SHU)는 해부학 실습실 내부에 라틴어 문구 “Hic locus est ubi mortui viventes docent,” 즉 “this is where the dead teach the living”를 눈에 띄게 게시하여, 학생들에게 기증자가 그들의 스승임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SHU 학생들은 기증자를 스승으로 보는 이러한 인식을 환영하고 높이 평가한다. 이는 기증자를 위한 최종 추모식에서 학생들이 만든 예술작품에 이 문구가 자주 재현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기증자를 스승으로 보는 인식을 강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매 해부 세션이 끝날 때 학생들에게 “오늘 당신의 기증자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와 같은 성찰 질문(reflection question)을 던지는 것이다.

요약 Summary 

첫 번째 환자 관점은 Talarico의26 지도 원칙에 직접적으로, Hildebrandt의23 실천적 핵심 요소에는 간접적으로만 포함되었고, 침묵의 스승 관점은 제안된 윤리 지침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기증자에 대한 두 관점 중 어느 하나를 사용하는 것은 해부 과정에서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부여하고, 공감과 존중을 길러내며, 기증자의 대상화를 줄이는 추가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증자를 “첫 번째 환자” 또는 “침묵의 스승” 중 무엇으로 보든, 기증자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언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통합하는 것은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촉진할 것이다.


선물을 기리기 Honoring the Gift 

용어/배경 Terminology/Background 

인체 해부가 해부학적 관계(anatomical relationships)와 변이(variation), 그리고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의 일부로 여겨지는 기술과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의학교육에서 필수적이라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져 있다.3,60,61 따라서 해부학 과정의 효과성은 기증자로부터의 해부학적 선물(anatomical gifts)의 유증(bequeathment)에 크게 의존한다. 개인의 신체 기증은 학생들이 해부학과 다른 전문직업적 기술을 더 잘 배워, 습득한 지식을 미래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물(gift)”이 된다.

 

이 기증은 순수하게 이타적인 선물(altruistic gift)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는 주된 이유가 의학과학(medical science) 또는 교육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62–64 더 나아가 기증자와 기증자의 가족은 보상을 받지 않으며, 기증은 기증자가 알지 못하는 수혜자(recipients unknown to the donor)에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증자의 관대함(generosity)은 의학교육에 대한 기여로 인정되고 기려질 가치가 있다. 기증된 신체는 재산(property)이 아니라 선물로 보아야 한다.65

 

개인의 신체 기증은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이타적 선물이므로, 대학이나 기관이 신체 또는 신체 부위의 상업화(commercialization)를 통해 그 기증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기증된 신체의 상업화는 IFAA34와 Riederer and Bueno-López35가 제시한 윤리 지침에서 다루어진다. IFAA36는 이 지침을 확장하여 기증된 신체 이미지(images of donated bodies)의 상업화도 포함했다. 기증 당시 사전에 합의된 경우가 아니라면, 기증된 신체나 그 이미지의 상업화는 기증에 내재한 신뢰(trust)를 깨뜨리고 인체 기증자를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상품(commodity)으로 취급하여 그들의 인간성을 박탈한다.30

 

선물 주고받기(gift-giving)와 관련된 문화적 가치는 종종 “보답해야 할 내재적 의무(inherent obligation to reciprocate)”(p. 704)66, 또는 최소한 감사의 표현(expression of gratitude)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신의 신체 유증(bequeathal)에 대한 감사의 부재는 그 선물을 깎아내리는 것이다.67 학생들에게 인체 기증자의 선물을 추모하거나 기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기증자에게 감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학생이 보답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2,12 또한 이는 학생들이 해부 과정에서 발생했을 수 있는 어려운 감정과 마주하고, 기증자에게 “감사합니다(thank you)”“안녕히 계세요(good bye)”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종결감을 느낄 기회를 제공한다.

 

Talarico,26 Shaikh,27 Champney,30 그리고 Balta et al.33은 모두 인체 기증이라는 선물을 기리거나 인정하는 것을 윤리 지침 제안에 구체적으로 포함했다. 그러나 여러 다른 지침도 기증자를 기리는 것을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Table 1 참조).11,23,29,34,35 죽은 이를 기리는 의례, 예컨대 장례식(funeral)에 참여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보편적인 실천이므로, 출판된 거의 모든 윤리 지침 제안이 인체 기증자를 기리기 위한 공식 추모식(formal memorial service) 개최를 권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11,23,29,30,33–35

 

최종 추모식이 인체 기증자를 기리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기증자를 기리는 일은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기증자를 기릴 수 있는 여러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공식 추모식 또는 다른 다양한 기림 실천(honoring practices)의 시행은 반드시 종교적 방향성(religious direction)이나 종교적 요소의 통합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학생들이 포용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기증자를 기릴 수 있는 이상적인 수단을 제공한다. 아래 “포용성” 참조.

권고 Recommendations 

과정 시작 시, 해부가 시작되기 전에 기증자를 기리는 방법을 통합하는 것은 학생들이 인간을 해부하는 것에 대해 갖는 우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기증자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43,46 여러 국가의 의과대학은 학생들의 공감과 전문직업성을 기르기 위해 해부 전에 기증자를 기리는 공식 의식(formal ceremony)을 제공한다. 예로는 중국,46 대만,43,44 태국,42 뉴질랜드19,20가 있다. 다른 대학들은 해부 전에 실습실에서의 윤리적 실천에 관한 강의 이후 학생들에게 “침묵의 헌사(silent tribute)”53 또는 성찰68의 시간을 제공한다.

 

해부가 시작된 후, 기증자는 과정 전반의 여러 시점에서, 심지어 매일 기려질 수 있다. 태국에서는 학생들이 매일 존중을 담아 절하며 기증자에게 인사한다.42 대만44과 한국8에서는 학생들이 각 해부를 기도(prayer) 또는 침묵의 헌사(silent tribute)로 시작하고, 매일 마지막에는 기증자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깊이 절한다.

 

Balta et al.33은 선물의 사용을 윤리적으로 극대화(ethically maximizing the use of the gift)하는 것이 의학교육에 기여하고자 한 기증자의 바람을 기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학생들에게 기증자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배워야 한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이 실천은 기증자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 주고, 학생들이 지식 있는 의료인(knowledgeable medical provider)이 되려 노력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보답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이다. 또한 교수자는 다른 적절한 수업, 프로그램, 학교의 학생들이 기증자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초대함으로써 선물의 사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기증자가 단일 프로그램을 위해 지정되어 있더라도, 다른 전문직 프로그램의 학생들이나 학부 해부생리학(anatomy and physiology) 수업의 학생들은 적절한 교수자가 인도하는 해부학 실습실 방문을 통해 기증자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기증자는 의학 분야에 관심 있는 상급 고등학생을 위한 교육적 봉사 프로그램(outreach programs)에도 훌륭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69 기증자로부터 배움으로써 혜택을 얻는 학생이 많을수록, 기증자가 의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커진다.

 

다른 경우, 기증자는 다른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에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는 기증자의 사전 동의(advance consent)를 받아 수행되어야 하며, 해당 연구의 모든 출판물에서 기증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33,70,71

 

성찰 실천(reflective practices)은 전문직 발달(professional development), 특히 의학에서 중요하며,26,57,72 기증자를 기리는 수단으로 과정 중 언제든, 또는 여러 차례 이루어질 수 있다. 성찰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인체 기증이라는 선물이 자신의 교육에 미친 영향과 자신의 교육에서의 진전을 생각할 시간을 제공한다. 성찰은 개인적 생각을 위한 침묵의 시간,23,73 안내된 집단 토론(guided group discussions),23,74 글쓰기48,53,68 또는 예술작품53의 채점 또는 비채점 과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해부 과정에 본질적으로 포함된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은 전문직 역량(professional competencies)과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의 발달에 가치가 있을 수 있다.2–4 어떤 형태로든 성찰을 포함하는 것은 학생들이 이 과정이 자신의 전문직 발달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논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Shiozawa et al.4은 공감, 존중, 연민과 같은 전문직업성 관련 다양한 특성이 해부 과정 학생 성찰에서 공통 주제로 나타난다는 점을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토론이나 글쓰기 과제를 위한 성찰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될 수 있다.

  • 학생들이 인체 기증자 없이도 동일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느끼는지,
  • 해부학 이외에 인체 기증자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 모형이나 가상 시연으로는 재현될 수 없었던 해부학에 관해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 자신이 미래에 신체 기증을 고려할 것인지

마지막 질문은 학생들로 하여금 기증자와 동일한 고려를 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다른 질문들은 학생들에게 기증자의 선물의 가치와 그것이 자신의 교육에 미친 영향을 성찰하도록 요청한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신체 기증이 항상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며, 이는 그것이 참으로 기려질 가치가 있는 이타적 선물임을 강화한다.

 

예술작품(artwork)은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이며, 과정 중 언제든 수행될 수 있다. 학생들은 인도의 “Cadaver as First Teacher Module”의 일부인 포스터 만들기 대회처럼,53 제시문(prompt)을 받고 스스로 의미 있는 예술 형태를 만들도록 요청받을 수 있다. 또는 대학의 미술치료 프로그램(Art Therapy Program)이 인도하는 공식 워크숍의 일부로,75 혹은 해부 팀 프로젝트로 수행될 수도 있다.12 학기 동안 제작된 예술작품은 과정 마지막에 기증자를 기리는 최종 의식(final ceremony)에 통합되어, 의식에 의미 있는 개인적 요소(personal touches)를 제공할 수 있다.

 

과정 종료 시 기증자를 기리는 의식은 학생과 교수자만 포함하는 단순하고 비공식적 예식부터, 기증자의 가족과 친구를 포함하는 정교하고 공식적인 예식까지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모든 대학이 기증자를 위한 공식 의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의미 있게 기증자를 기릴 수 있는 다른 방법도 많다. Pawlina73는 학생들이 해부대 위에 장미를 놓고 마지막으로 실습실을 떠나기 전 침묵의 성찰 시간을 갖는 단순한 예식을 설명한다. 학생들은 기증자에게 감사 카드를 쓰거나, 추모 벽(tribute wall)에 감사의 글을 남길 수도 있다.53

 

마지막으로, 해부학 실습실의 학생, 직원, 교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추모에 관한 기증자와 그 가족의 바람은 기증 시점 이전에 확인되어야 하며, 가능한 한 그리고 실천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시행되어야 한다. 어떤 과정 실천에도 그들의 바람을 포함하는 것이 그들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약 Summary 

인체 기증이라는 선물을 기리는 주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교육에서 기증자가 제공하는 필수적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또한 학생들이 감사를 표하고 기증자를 인정함으로써 그 선물에 보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기증자를 기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선택되든, 기증자에 대한 최종적 찬사(final accolade)가 있어야 한다. 학기 동안 학생들이 제안된 성찰, 예술작품, 감사 카드와 같은 다른 방식으로 기증자를 기리고 감사할 기회를 가졌더라도, 최종 예식 또는 제스처는 학생들이 해부 경험에 대한 종결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의미 있는 행위이다.39,76,77


가족을 인식하기 Recognizing the Family 

용어/배경 Terminology/Background 

가족은 인체 기증 과정(body donation process)의 중요한 일부이다. 따라서 가족 자신의 슬픔(grief)과, 전통적인 신속한 장례 및 매장 관행(prompt funeral and interment practices)에 수반되는 공식적 종결감(formal closure)의 부재로 인해 지연될 수 있는 종결감(delayed sense of closure)을 직접적으로 인식하여, 그들의 편안함 수준(comfort level)에 따라 어떤 기림 실천에도 고려되고 포함되어야 한다. 인체 기증자의 가족은 전통적이고 즉각적인 장례 및 매장 관행에서 오는 공식적 종결감의 결여와 함께 독특하고 복잡한 형태의 슬픔을 견딘다.76 가족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이의 기증이 기여한 바를 전달하는 것은 그들에게 종결감을 제공하고 슬픔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33,76

 

제안된 윤리 지침 중 오직 다섯 개만23,30,33–35 추모식에서 기증자의 가족을 고려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Table 1 참조), 이 고려를 최종 추모식의 일부로 또는 아래에서 논의하는 다른 방법을 통해 해부 과정에 추가하는 것은 학생뿐 아니라 기증자의 가족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Hildebrandt23는 추모식에 기증자 가족을 포함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인체 기증의 영향을 성찰할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이는 학생들이 복합적 감정을 직면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인식하는 것은 기증자의 인간성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기증자의 가족과 그들의 감정을 고려하는 것은 언젠가 의학을 실천하게 될 학생들에게 필수적이다. 의학은 환자 자신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대화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가족 구성원을 대할 때, 학생들은 존중, 공감, 전문직업성을 배울 수 있다.23,78 또한 의료인의 역할은 종종 가족 구성원을 환자의 지원팀(support team), 통역자(translator), 주 돌봄제공자(primary caretaker), 또는 부양가족(dependent) 등으로 환자 진료에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일을 포함한다. 인체 기증자 가족을 인식하는 것은 학생들이 가족 구성원과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을 고려하도록 준비시키는 첫걸음이다.

권고 Recommendations 

일부 국가에서는 기증자 가족이 해부 과정에 깊이 관여하며, 심지어 해부 전에 학생들과 만나기도 한다.43–45,47,49 그러나 미국에서는 기증자의 익명성(donor anonymity)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므로, 기증자 가족과의 상호작용은 일반적으로 추모식이 열리는 과정 종료 시점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39,76 하지만 최근 일부 미국 대학은 해부 전에 기증자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학생들이 슬픔을 겪는 가족과 함께 일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증자 가족을 과정 초기에 통합하기 시작했다.26,57

 

기증자 가족과의 의사소통은 가능하다면 단순히 그들에게 추모식 초대장을 보내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유언 인체 기증 프로그램(willed body programs)이 항상 특정 대학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에도 학생들이 기증 기관을 통해 가족에게 감사 카드나 선물을 보냄으로써 기증자 가족과의 의사소통을 유지할 수 있다. 학생들의 카드나 선물은 학생들의 정서적 처리(emotional processing)를 돕는 동시에 가족 구성원의 슬픔 과정과 기증 수용을 돕는 이중 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기증자 가족을 초대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좌석이 제한되어 있다면, 더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참석하고 그 예식으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최종 추모식을 실시간 스트리밍(livestreamed)하거나 녹화하여 YouTube와 같은 쉽게 접근 가능한 플랫폼에 게시할 수 있다.79

 

기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식에 기증자 가족을 초대하는 것에 더하여, 기관은 화장된 유해(cremated remains)를 위한 매장지(burial plot) 또는 납골당(mausoleum), 혹은 기증자 가족이 방문하고 사랑하는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monument)이나 명판(plaque)과 같은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Radboud University Nijmegen Medical Centre의 해부학과(Department of Anatomy)는 기증자를 기념하고 가족 구성원이 방문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이전의 대리석 해부대(former marble dissection table)로 만든 기념물을 세웠다.80 유사하게, 오타고 대학교 해부학과는 기증자 가족이 방문할 수 있도록 지역 묘지에 전용 장미 정원(dedicated rose garden)을 조성했다.19 기증 프로그램 또는 대학은 기증자의 친구와 가족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기 위해 방문할 수 있는 가상 공간(virtual place)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설계할 수도 있다.81

요약 Summary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선물이 학생의 교육에서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 단지 해부학 교육뿐 아니라 슬픔을 헤쳐 나가는 데에도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부 과정에서 기증자의 가족을 고려하는 것은 기증자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추가적인 이점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고려는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안에서 휴머니즘(humanism)을 강조할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포용성 Inclusivity 

용어/배경 Terminology/Background 

해부학 과정에서 제공되는 어떤 기림 또는 추모 실천(honoring or memorialization practices)도 학생 집단(student population) 안에 대표되는 다양한 경험뿐 아니라 인체 기증자들 사이에 대표되는 다양한 경험의 문화적·종교적 포용성(cultural and religious inclusiveness)을 고려해야 한다. 다원주의 사회(pluralist societies)에서 특정 요소가 모든 기증자나 학생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교적·문화적 요소가 간과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67 교수자는 교육과정 개발과 수업 운영(classroom management)의 모든 측면에서 학생과 교수진을 위해 가장 수용적이고 편안한 학습환경(accepting and comfortable learning environment)을 만들기 위해 항상 포용성을 고려해야 하며, 실제로 그렇게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기증자를 이러한 포용성 고려에 포함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증자의 인간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뿐 아니라, 환자와 환자의 가족과 함께 일할 때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종교적 가치와 실천을 고려하기 시작하도록 격려한다. 이는 잠재 교육과정의 또 다른 핵심 구성 요소이다. 살아 있는 수업 참여자(living participants)를 위한 수업 개발에서 포용성의 가치를 말하는 문헌은 풍부하지만, 이 포용성을 사망자(deceased)에게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동료심사 문헌(peer-reviewed literature)은 찾을 수 없었다.

권고 Recommendations 

추모식 또는 과정 전반에서 기증자를 기리는 다른 실천이 기증자에게 포용적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잠재적 종교적·문화적 믿음(religious and cultural beliefs)이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 기관(Catholic institution)에 보내진 기증자가 전통적 가톨릭 신앙 실천으로 자신이 기려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수 있으며, 생전에 이를 모욕적이거나 무례한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따라서 추모식은 단일 신앙 기반 기관(single-faith-based institution)에서 열리더라도, 기증자의 신앙을 알 수 없으므로 가능한 한 많은 신앙을 포괄하는 다종교적(interfaith)이고 포용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에서 포용성은

  • 기증자의 신앙이나 문화가 알려져 있을 때 이를 명시적으로 다루고 통합하는 형태, 예컨대 성경 낭독 포함,
  • 다양한 신앙 실천 사이에서 공유되는 실천을 통합하는 형태, 예컨대 노래나 예술작품의 통합, 또는
  • 특정 신앙에 대한 논의나 가정을 명시적으로 피하는 실천을 통합하는 형태, 예컨대 장미 의식(rose ceremony)의 포함을 취할 수 있다.

추모식 또는 다른 기림 실천을 계획할 때 학생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종교적·문화적 믿음이 고려되어야 한다. 학생이 단일 신앙 기반 기관에 재학하더라도, 그 학생이 동일한 종교를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기관의 신앙 안에서만 기증자를 기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서로 다른 신앙과 문화는 죽음과 그것을 둘러싼 실천을 다르게 생각하므로, 한 신앙에서 수용 가능한 것이 다른 신앙에서는 양립 불가능할 수 있다. 의식을 주관하는 이들은 종파를 초월한(nondenominational) 예식 또는 완전히 세속적인(completely secular) 예식을 제공함으로써 신앙 간 충돌 문제를 피하려 시도해 왔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예식은 자신의 신앙과 영성(spirituality)에서 위안을 찾는 학생들에게 억압적(stifling)이거나 모욕적(insulting)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떤 학생들은 해부에서 발생하는 감정에 대처하고 종결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앙이 필요하다.82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신앙을 포용하고 기념하는 다종교 의식(interfaith ceremony)이 학생 포용성(student inclusivity)에 최적이다. 그러나 이를 가장 적절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실행하는 방법은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대교의 애도 기도인 Mourner’s Kaddish는 미니얀(minyan), 즉 유대인 10명으로 구성된 정족수(quorum)가 참석하지 않는 한 낭독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예식에 참석한 정통 유대교 실천자(practicing Orthodox Jews)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83 의식의 장소(location)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대학 예배당(chapel)과 같은 종교적 공간에서 의식을 여는 것은 대학과 동일한 신앙을 따르지 않는 학생에게 배제적(exclusionary)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증자를 기리는 추모 기념물(memorial monument), 명판(plaque), 또는 공간(space)을 설계할 때도 포용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Trinity College Dublin의 인체 기증자 추모 묘비는 원래 십자가와 기독교 문구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한 기증자의 바람이 세속적 장례(secular burial)였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변경되었다.84 포용성을 고려하는 과정을 더 쉽게 만들고, 기증자를 가장 적절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기리기 위해, 인체 기증 양식(body donation forms)에 기증자의 종교와, 사후 신체 처리 또는 해부 후 기림 방식에 대해 선호하는 종교적·문화적 실천이 있는지 여부를 포함하도록 변경할 수 있다. 기증 양식에 이러한 정보를 포함하는 것은 인체 기증자의 자율성과 인간성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다종교 예식을 계획하도록 돕는 것은 유익하다. 이는 학생들이 다양한 환자 집단과 함께 일할 때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문화적·종교적 믿음의 중요한 표현들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고려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40 따라서 다종교 의식을 계획하고 포용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학생들에게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y)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 준다.

요약 Summary 

소수 신앙이나 문화를 배제하는 것은 학생 또는 기증자 가족 구성원에게 배제감(exclusion), 불편감(discomfort), 또는 고통(distress)을 유발할 수 있다. 이전에 제안된 윤리 지침 중 포용성을 다룬 것은 없지만(Table 1 참조), 포용성은 여러 이점을 가질 수 있고 신앙이나 문화의 배제로 인해 촉발되는 감정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해부학 과정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또한 과정 전반에 걸친 기림 실천을 통합할 때, 기증자가 생전에 가졌던 종교와 문화를 고려하는 것은 기증자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며, 학생들에게 다양성(diversity)을 고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기회를 제공한다.


논의 Discussion 

여기에서 제안한 다섯 가지 핵심 주제는 인체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를 촉진하고 학생들의 인간적·전문직업적 자질(humanistic and professional qualities)을 길러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실천을 포괄한다. 이 주제들은 기증자를 다루고 기리는 저자들과 다른 해부학자들의 실천을 범주화하고,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에 관한 출판된 지침을 검토한 것에 기반하여 개발되었다. Table 1은 검토된 15개의 출판 지침과, 그중 본 논문의 핵심 주제와 정렬되는 구체적 제안 지침을 제시한다.

 

이 지침들은 서로 다른 목적, 예컨대 해부학 실습 과정에서 기증자의 윤리적 돌봄을 촉진하기 위해, 기증 과정에서, 연구에서, 해부 중 학생 스트레스 제한을 돕기 위해, 그리고 기증자 이미지에 특화된 정책을 제공하기 위해 출판되었지만, 모든 출판된 윤리 지침 제안에는 적어도 일부 핵심 주제가 존재했다.

  •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은 15개의 모든 출판 지침에 나타났으며, 이는 이 주제의 명백한 중요성을 보여준다.
  • 그다음으로 많이 나타난 주제는 선물을 기리기(Honoring the Gift)로, 제안 지침 9개, 즉 60%에 나타났고,
  • 가족을 인식하기(Recognizing the Family)는 5개, 즉 33.33%에 나타났다.
  • 첫 번째 환자(First Patient) 주제는 오직 2개 지침, 즉 13.33%의 구성 요소였으며,
  • 침묵의 스승(Silent Teacher) 주제를 포함한 출판 지침은 없었다.
  • 또한 포용성(Inclusivity)은 검토된 출판 지침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안된 다섯 핵심 주제가 모두 이전에 출판된 지침에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저자들은 첫 번째 환자/침묵의 스승(First Patient/Silent Teacher)포용성(Inclusivity) 주제가 인체 해부 과정에서 기증자의 인간성을 유지하는 다른 수단을 제공하고, 잠재 교육과정에 더 기여하기 위한 가치 있는 구성 요소라고 믿는다. 포용성 주제는 기증자의 자율성과 학생의 편안함, 그리고 다양성(diversity)에 대해 가르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 주제는 여기와 Table 2에 제시된 권장 실천을 강화하기 위해 더 탐구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부 기관에서 기증자 신체의 오용과 학대라는 명백한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홍보(negative publicity)를 상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압도적 다수의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기증자의 윤리적 처우, 예컨대 추모식(memorial ceremonies)을 더 잘 알림으로써 이를 상쇄할 수 있다. 인체 기증에 대한 더 긍정적 관점이 뒤따를 것이며, 이는 개인들이 미래의 인체 기증자가 되는 데 위안을 주고 격려할 것이다.22 이 글에서 제시한 핵심 주제는 교수자들이 자신의 실습실에 통합할 수 있는 권고와 함께, 기증자의 선물에 대한 윤리적 처우와 감사를 촉진한다.


결론 Conclusion 

이 글은 인체 기증자를 활용하는 실습실에 구현될 수 있는 다섯 가지 핵심 주제를 개괄했다.

  • (1) 기증자가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을 지닌 존재임을 반영하기,
  • (2) 기증자의 역할을 “첫 번째 환자(First Patient)” 또는 “침묵의 스승(Silent Teacher)”으로 인식하기,
  • (3) 인체 기증이라는 선물(gift)을 기리기,
  • (4) 고인의 가족(decedent’s family)을 인식하기,
  • (5) 추모 실천(memorialization practices)에서 포용성(inclusivity)을 고려하기.

이 다섯 가지 핵심 주제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기증자, 그 가족, 그리고 기증자의 선물 덕분에 자신의 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학생들에게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주제들은 함께 신체의 오용이나 학대를 예방하고, 적절한 일상적 돌봄(day-to-day care)을 촉진하며, 인체 해부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윤리적·영적 딜레마와 기타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학생들이 균형 잡힌 보건의료 전문직(well-rounded health professionals)이 되도록 더 잘 준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Teach Learn Med. 2025 Apr-May;37(2):273-282. doi: 10.1080/10401334.2025.2453809. Epub 2025 Jan 23.

Exploring Untested Feasibilities: Critical Pedagogy's Approach to Addressing Abuse and Oppression in Medical Education 

 

 

🩺 의료교육의 억압,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요?

— 파울로 프레이리의 '비판적 교육학'이 던지는 질문


"수련은 원래 힘든 거야." "이 바닥이 다 그래."

의료 현장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말들이죠. 환자나 동료를 향한 비웃음, 소수자에 대한 차별,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 이런 것들이 어느새 '의료 수련의 당연한 현실'로 여겨지곤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으로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오늘 소개할 논문은 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브라질 출신의 두 내과 의사이자 의학교육 연구자인 저자들은, 1950~60년대 브라질에서 태어난 교육 운동인 비판적 교육학(Critical Pedagogy) 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요. 함께 들여다볼까요?


🌱 비판적 교육학(Critical Pedagogy)이란?

 

  • 비판적 교육학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군사독재로 치닫던 격변기의 브라질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성인의 약 40%가 문맹이었고, 교육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어요. 브라질의 엘리트층은 이 '교육 접근성의 부재'를 지배의 도구로 삼아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는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성인 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런데 그 방식이 좀 특별했습니다. 단순히 글자를 가르친 게 아니라, 학습자들이 자기 삶의 '구경꾼(spectator)'이 아니라 '주체(protagonist)'가 되도록 도왔거든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의 학습자가 짧은 기간에 글을 깨쳤고, 이 경험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죠. 프레이리의 대표작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는 이렇게 탄생했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교육학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 비판적 교육학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중립적인 교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프레이리는 지식만 전달하고 그 맥락에는 침묵하는 교육을 "은행 저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 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학생을 빈 계좌처럼 여기고 지식을 '입금'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가난한 성인에게 글을 가르치는 목적이 그저 '그 현실에 더 잘 적응시키기' 위해서라면, 그건 현실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억압의 도구가 됩니다.

 

저자들은 이 통찰을 의료교육에 그대로 가져옵니다.

"마찬가지로, '중립적인' 의료교육은 학생과 전공의들이 억압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저 억압을 헤쳐 나가도록 훈련시킬 뿐이다."

"Likewise, a 'neutral' medical education would train students and residents to navigate oppression without challenging it."

 

그래서 '중립'이라는 선택에는 사실 (비)윤리적 결정이 담겨 있다는 거예요. 이어지는 문장이 특히 묵직합니다.

"예를 들어, 임상 교수가 학습자가 억압받는 것을 목격하고도 그 억압에 대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 교수는 이 억압적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For instance, if a clinical teacher witnesses the oppression of learners and does not act on that oppression, this clinical teacher becomes part of this oppressive system."


🔑 핵심 개념: '검증되지 않은 실현 가능성(Untested Feasibility)'

 

  • 억압의 가장 무서운 점은 '희망의 부재' 라고 저자들은 말해요. 억압적인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슬프고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고정되어 있고, 내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믿게 되는 거죠. 프레이리는 이 무력감(hopelessness) 속에서는 "순응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이라는 순진한 사고가 지배한다고 봤어요. 그리고 그 순응은 결국 억압받는 자가 되거나, 억압하는 자가 되는 길로 이어집니다.
  • 여기서 프레이리에게 희망(hope) 은 이 체념을 깨는 열쇠였습니다. 단, 여기서 희망은 "가만히 있어도 좋아지겠지" 하는 수동적 낙관이 아니에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개입(critical engagement) 이자 행동입니다.
  • 그리고 이 희망이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된 개념이 바로 '검증되지 않은 실현 가능성' 이에요.

"검증되지 않은 실현 가능성이란, 자신의 정치적·정서적·인지적·윤리적 역량이 닿는 범위 안에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이전에는 시도된 적 없는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다."

"Untested feasibility is the possibility of doing something that has not being tested before to improve reality within one's political, emotional, cognitive and ethical reach."

 

  • 쉽게 말하면,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새로운 작은 가능성" 인 거예요. 그래서 변화에 따르는 개인적 위험도 줄일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빠지면 안 되는 게 '프락시스(praxis)' 개념입니다. 성찰(reflection)과 행동(action)이 끊임없이 순환해야 한다는 거죠. 그럼 성찰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비판적 교육학의 관점에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찰은 프락시스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말잔치(verbalism)'일 뿐이다."

"From the perspective of CP, reflection that is not followed by action does not qualify as praxis; it is merely 'verbalism.'"

 

 

  •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을 기르기 위해 프레이리가 제안한 방법은 '문제제기/문제화(problematization)' 입니다. 현대 의료교육도 문제 중심 학습을 도입했지만, 프레이리의 문제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요. 단순히 임상 문제를 자율적으로 푸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학습자가 자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주체성(agency) 을 기르는 것이거든요. 즉, 의료교육 시스템 자체가 '풀어야 할 문제'의 일부가 됩니다.

📖 세 가지 원칙, 세 가지 장면

저자들은 자신들이 학습자/교육자로서 실제 경험한 상황을 바탕으로 세 개의 장면(vignette)을 제시해요. 하나씩 따라가 봅시다.

1️⃣ 프락시스로서의 비판적 의식 (Critical consciousness as praxis)

  • 🎬 장면
    • 환자가 외래에서 2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화가 난 상태로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진료 첫 주인 학생이 지연에 대해 사과하며 면담을 시작하죠. 그런데 지도 교수가 끼어들어 말합니다. "나는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환자와 학생을 돌보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교수는 지연의 책임이 의료 시스템에 있다고 봐요. 학생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운 채로 면담을 마치지만, 이후 두 사람은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나누지 않습니다.
  • 🔍 저자들의 해석
    • 환자를 향한 명백한 억압이, 학습자를 향한 더 미묘한 억압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학생은 '환자가 약자'라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공감적 실천(empathetic praxis) 이 억압당하는 경험을 합니다. 전문직의 행동은 대부분 롤모델링으로 학습되기 때문에, 이 학생은 훗날 비슷한 상황에서 그 교수처럼 반응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 흥미로운 건 교수도 피해자라는 점이에요. 감당 못 할 업무량에 짓눌린 교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의 공감적 태도를, 그리고 환자의 정당한 분노를 억압하고 있는 거죠.
  • 💡 검증되지 않은 실현 가능성
    • 비판적 의식을 기른 학습자는 이 억압의 사슬을 끊을 수 있어요. 저자들은 임상 실습이 '성찰의 공간(reflective spaces)' 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학습자가 잠시 속도를 늦추고,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마주할 시간 말이죠. 이 사례에서도 교수와 학생이 함께 "어떤 억압적 힘이 작용했는지, 환자의 편안함을 위해 진료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면, 변화의 불씨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2️⃣ 학습자 '위에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교육 (Pedagogy with learners)

  • 🎬 장면
    • 학생들, 전공의, 지도교수가 흡연으로 인한 좌측 발 동맥 폐색 환자를 보고 왔습니다. 절단(amputation) 가능성을 논의하던 중, 지도교수가 말해요. "한 발로 뛰어다니면서 담배 사기는 더 어려울 테니, 장기적으로는 절단이 최선일 수도 있겠네." 몇몇이 웃습니다. 함께 웃은 한 학생은 이후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껴요. 전공의는 그녀를 위로하며 "이런 농담은 환자 진료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해롭지 않고, 오히려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 🔍 저자들의 해석
    • 학습자들은 소속감(sense of belonging) 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게 됩니다. 동료와의 결속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과 충돌할 때 고통이 생기죠. 실제로 Wear 등의 연구 『Making Fun of Patients』에는 의대생들이 보고한 충격적인 농담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 정신과 병동을 비하적인 별명으로 부르거나, 환자를 모욕적으로 칭하는 식의. (차마 그대로 옮기기 어려운 표현들이라 자세히 적지는 않을게요.)
    • 문제는 이런 게 "스트레스 대처 전략"이나 "의료 현장의 당연한 현실"로 정당화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이 바로 억압을 지속시키는 무력감을 만들어내요.
    • 여기서 저자들은 중요한 구분을 합니다. 올바른 전문직 태도를 '가르치는 것'과,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기르는 것'은 다르다는 거죠. 성찰의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학습자에게 거기에 맞춰 반영하라고 한다면, 그건 학습자 '위에 부과된' 교육입니다. 학습자의 관점을 무시하고 교사의 시각만 주입하는 거예요.

"프로페셔널리즘은 세상 속에서 일어나며, 가장 적절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정해둘 수 없다."

"Professionalism happens in the world and the most appropriate behavior cannot be predefined because it depends on context."

 

  • 그래서 저자들은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pedagogy with learners)' 을 제안해요. 의도된 결과는 인정하되 어떤 결과도 보장되지 않음을 이해하는 교육, 의견 불일치(disagreement)를 변화의 기회로 보는 교육이죠.
  • 💡 검증되지 않은 실현 가능성
    • 이 장면에서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은 전공의의 "환자를 놀리는 건 해롭지 않다"는 말을 단순히 '옳다/그르다'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전제에 도전하는 대화를 엽니다. 목소리를 지우거나 변화에 필요한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으면서요. 프레이리의 말을 빌리면:

"그 누구도,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이 존재하는 것을 금지할 수는 없다."

"No one can be, authentically, forbidding the other to be." (Freire)

3️⃣ 민주적 관계로서의 교육 (Education as a democratic relationship)

  • 🎬 장면
    • 가난한 지역의 응급실 대기실에서 한 여성이 아기를 빨리 봐달라며 소리치고 있습니다. 진정하라는 경고도 소용없어요. 지도교수는 이 '소동'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 의대생이 다가가 그 여성과 대화를 나누자, 여성이 차분해집니다. 학생은 이렇게 보고해요. "저는 동네에서 그분을 알아요. 우리는 떼를 쓰지 않으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데 익숙하다고, 그게 미안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아기가 곧 필요한 진료를 받을 거라고 안심시켜 드렸고요." 평생 주목받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었던 중상류층 출신의 교수는, 수년간의 응급실 경력 동안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관점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 🔍 저자들의 해석
    • 앞의 두 장면과 달리, 여기서는 환자(어머니)를 향한 억압이 학생에게로 전이되지 않았어요. 학생의 공감적이고 능동적인 중재 덕분이었죠. 프레이리는 말합니다.

"학습자 없이는 가르침도 없다."

"there is no teaching without the learner." (Freire)

 

  • 신뢰(trust)를 바탕으로 한 관계라면, 교사도 배우고 학습자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사제 간 위계의 균열이 모두에게 분명해질 때, 그것은 의사-환자 위계의 균열을 위한 강력한 롤모델이 됩니다. 결국 환자 중심 진료(patient-centered care) 로 이어지는 거죠. 저자들은 교사/학습자 사이의 권력 거리와 의사/환자 사이의 권력 거리가 닮았다고 봅니다. 이 불균형은 권력을 가진 쪽(의사·교사)이 능동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 💡 검증된 실현 가능성 (the tested feasibility)
    • 학생의 개입은 교수에게 '인식론적 호기심(epistemological curiosity)' 의 순간을 일깨웠습니다. 단순한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태도와 맥락 이면의 복잡한 요인을 탐구하는 호기심이죠. 교수는 열린 마음과 자기비판으로 그 순간을 받아들였고, 학생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자들은 개인 차원과 시스템 차원의 구체적인 실천을 제안합니다.

 

🙋 개인으로서

  • 무력감에 저항하기 (resist hopelessness) — 의학은 이미 큰 변화를 겪어왔어요. 여성의 의료계 진출, 근거 기반 의학(evidence-based practice)의 도입 모두 처음엔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당연한 현실이 되었죠. 이런 변화들이 추가적인 변화에 대한 희망을 줍니다.
  • 내 안의 억압자를 인정하기 (acknowledge the oppressor in ourselves) — 의료교육에 관여하는 모두는 누군가에 대해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어요. 의료진이 '환자가 되어 본 경험' 덕분에 권력관계를 더 잘 인식하게 되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 불편한 감정을 성찰할 시간 갖기 — 분노나 수치심 같은 감정을, 순진한 호기심이 아닌 인식론적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기. 신뢰하는 멘토와의 대화가 큰 도움이 됩니다.
  • 나의 안녕과 커리어를 지키면서 저항하기 — 취약한 위치일수록 저항은 더 신중해야 합니다. 내가 감당할 위험은 오직 나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 교육 환경 차원에서

  • 학습자와 함께 교육 설계하기 (co-design) — 심지어 학습자가 권력의 자리에서 '교사를 가르치게' 한다면 더욱 강력합니다.
  •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을 '문제화'할 안전한 공간 만들기 — 학습자가 현 상태에 도전하고 저항 전략을 연습해 볼 수 있는 공간.
  • 자기 성찰과 자기비판의 문화 채택하기 — 교수자가 먼저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 학습자의 원칙 있는 저항(principled resistance)을 묵살하지 말고 끌어안기 — 학습자가 저항할 때 그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
  • 의료 전문직 내·외의 연대(solidarity) 촉진하기 — 다른 보건의료직과 함께 도전 과제를 나누고 배우기.
  • 다양성을 축하하기 (celebrating diversity) —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일 때 인식론적 호기심이 살아납니다. 문화적 겸손(cultural humility) 이 비판적 교육학의 실천을 뒷받침해요.

✍️ 마치며

저자들은 비판적 교육학이 규정(regulation)에 반대하는 게 결코 아니라고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환자 진료에 대한 윤리적 헌신을 우리 자신의 관점보다 위에 두는 규정에는 동의해요. 비판적 교육학이 반대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비판적 교육학이 반대하는 것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다."

"What CP opposes is authoritarianism."

 

논문은 한 가지 한계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억압이 학습자마다 다르게 작용한다는 점 — 인종이나 젠더에 따른 차이 — 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거죠. 이건 교육자와 학교가 전략을 세울 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으로 글을 맺을게요.

"이전보다 나아진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 새로운 현실에 안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Conforming with new realities, however better than previous ones, is not enough."

 

"이 바닥이 다 그래"라는 체념 대신, "그래도 한번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찾는 것. 어쩌면 그게 의료교육의 문화를 바꾸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서론 Introduction 

의학 훈련 전반에 걸쳐 연민(compassion)과 사회적 책무성(social accountability)의 태도를 길러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1–3 의학교육은 여전히 학습자와 환자를 향한 학대의 문화를 품고 있다.4–15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저항은 흔히 의학의 잠재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을 통해 실행되며, 이는 억압의 문화를 영속화한다.6,16 이러한 모순을 다루기 위해, 기관 및 임상 환경에서의 행동을 규제하는 여러 정책이 개발되고 시행되었다. 이는 학습자와 사회에 진실성(integrity), 다양성에 대한 존중(respect for diversity), 환자중심진료(patient centered care), 사회정의(social justice)가 의학 전문직 정체성(medical professional identity)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을 보여준다.3,17–21 이러한 패러다임의 일부로, 특히 성찰적 실천(reflective practice)을 통해 메타인지 기술(metacognitive skills)을 기르려는 노력이 의학 훈련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했으며, 이는 학습자와 교육자 사이의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강화하기 위한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왔다.22–24 이 토대 위에서, 우리는 Paulo Freire의 비판적 교육학(Critical Pedagogy)25,26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는 억압을 극복하기 위한 의식화(conscientization)와 프락시스(praxis)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Freire의 비판적 교육학의 핵심 개념을 제시하고, 맥락화하며, 논의하는 동시에, 이러한 개념이 교육적 태도와 실천으로 어떻게 운영화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비판적 교육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critical pedagogy? 

비판적 교육학(Critical Pedagogy)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브라질에 뿌리를 둔 교육운동이다. 이 시기는 산업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 그리고 군사독재로 귀결된 정치적 혼란으로 특징지어지는 수십 년이었다.27 교육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은 제한적이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초등교육(primary education) 등록률이 낮았고, 중등교육(secondary education)은 더욱 접근하기 어려웠다.27,28 전반적으로 브라질 성인의 40%가 문맹이었으며, 당시 교육정책은 기술교육(technical education)을 선호했다.28,29 또한 이 시기는 교육 접근성 확대를 요구하는 사회적 주장이 새롭게 부상하던 시기이기도 했다.30 브라질 엘리트들은 교육 접근의 부족과 그 결과로 나타난 높은 문맹률을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여,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의 현상 유지(status quo)를 지속시키고자 했다. 그와 동시에 Paulo Freire를 포함한 브라질 철학자와 교육자들의 운동은 교육을 사회정의를 향한 사회 변화의 수단으로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개념화하고 있었다.30–32

 

이러한 맥락에서 Paulo Freire는 빈곤한 농촌 공동체의 성인 문해력(literacy)을 증진하기 위한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교육 개입을 실행했다. Freire의 개입은 학생들의 문화와 맥락에 기반하여 구성되었고, 읽기를 배우는 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부정의한 현실의 체념한 관찰자(resigned spectators)가 아니라 자기 역사의 주체(protagonists of their own history)가 되는 학습과 통합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짧은 기간 안에 읽기를 배웠고, Freire의 개입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경험은 교육에 대한 추가적인 성찰로 이어졌고, Freire는 이후 1980년대 영미권 학계에서 가시성을 얻게 된 운동, 즉 비판적 교육학(CP)의 주역이 되었다. Freire의 방대한 저작, 특히 『피억압자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은 비판적 교육학의 주요 토대 중 하나이며, 그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교육학자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32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 인정이, 교육자들이 교육이 사회적 규범과 가치의 재생산이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사회정의를 성취하고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그러한 규범과 가치를 성찰하고 그에 대해 행동하는 장이어야 한다는 희망을 어떻게 길러왔는지를 보여준다고 믿는다.

 

비판적 교육학은 교육을 문화적으로 위치 지어지고 매개되는 활동(culturally situated and mediated endeavor)으로 개념화한다. 그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현실을 인식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헌신하는 온전한 시민(full citizens)으로 역량강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비판적 교육학에서 교육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정치적 과정(socio-political process)이다. 이러한 관점은 Freire가 “은행식 교육(banking education)”26이라고 부른 것에 반대한다. 은행식 교육은 교육의 목적이 지식을 전달하고, 개인이 특정한, 그리고 반복적인, 전문직 과업을 수행하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으며, 그 일이 일어나는 맥락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이해를 가리킨다. 반면 비판적 교육학은 중립적인 교육 실천이나 교육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해한다. 복잡한 사회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과학의 주장된 중립성이 한계라고 보았던 탈실증주의(post-positivist) 비판과 궤를 같이하여, Freire는 은행식 교육을 선택하는 것을 현상 유지의 지속을 위한 숨겨진 정치적 결정으로 이해했다. Freire의 작업에 영감을 준 공동체에서, 현상 유지는 사회적 불평등과 비인간화(de-humanization)의 상태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중립적” 교육은 학생들의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억압의 도구가 된다.26 “중립적” 교육에서, 빈곤으로 주변화된 성인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목적은 그 성인이 그러한 현실에 더 잘 맞도록 만드는 것이지, 그것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립적” 의학교육은 학생과 전공의가 억압에 도전하지 않고 그 안에서 길을 찾아가도록 훈련할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서의 “중립성”은 비윤리적 선택, 혹은 윤리적이지 않은 선택((un)ethical choice)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임상교사가 학습자에 대한 억압을 목격하고도 그 억압에 대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임상교사는 이 억압적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비판적 교육학은 의학교육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How does critical pedagogy relate to medical education?
 

억압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개인과 공동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권력의 역학(dynamics of power)은 복잡하며, 한 사람은 순간과 맥락에 따라 피억압자(oppressed)이자 억압자(oppressor)가 될 수 있다.

 

  • 의과대학생들은 대체로 부유하고 특권적인 환경 출신이지만, 의과대학에 들어오면 교수, 지도자, 선배에 비해 취약한 위치를 맡게 된다.5,11
  • 지속적인 배제(sustained exclusion), 핌핑 교육(pimping education), 모욕(insults), 과도한 업무량(excessive workload),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 원치 않는 성적 관심(unwanted sexual attention)은 의학 수련생들 사이에서, 그리고 여러 전문과목에 걸쳐 광범위하게 보고되어 온 억압 문화의 예이다.5–13,33–35
  • 이러한 학대는 자주 축소되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전략이나 통과의례(rites of passage)로 인식된다.5,6,8 그것들은 의학 전문직의 바꿀 수 없는 문화로 내재화되고 정상화되어 있으며, 도전해야 할 것이 아니라 대처하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 여기에 더해, 부정의에 맞서는 학생과 전공의는 흔히 불평하는 사람(complainers)으로 낙인찍힌다. 이는 억압에 대한 그들의 정당한 반응을 약화시키는 무시적 태도이다.36 이는 Freire의 작업에 영감을 준 가난한 공동체가 빈곤과 사회적 배제 속에서 경험했던 것과 닮아 있다.

 

억압의 맥락에서 많은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슬프고 부정의하다고 인식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날 길을 보지 못한다. 변화를 믿고 그에 맞서 행동하려는 사람들은 억압받는다. 억압은 현실이 고정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행동으로 바뀔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든다. 변화에 대한 이러한 절망감(hopelessness)은 비판적 교육학을 자신의 실천에 통합하고자 하는 교육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표적이다. Freire에 따르면, 절망 속에서는 순응(conformity)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지라는 순진한 사고(naïve thinking)가 지배한다. 억압에 순응하려면, 사람은 피억압자의 역할을 받아들이거나 억압자가 되어야 한다.25,26 이는 권력관계의 복잡성과 왜 일부 젊은 세대의 의과대학생과 의사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억압을 계속 재생산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순진한 관점에 대응하기 위해, Freire는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을 통해 변화에 대한 희망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비판적 의식은 서로 다른 현실을 형성하는 맥락을 이해하고, 그 맥락에 대해 행동하는 것이다. Freire는 희망을 인간 행위성(human agency)과 창의성의 촉매로 이해했다.25,26,37

희망을 회복하기 Reinstating hope 

변화에 대한 희망은 개인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차원을 지닌 맥락적 현실(contextual reality) 안에 위치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는 비판적 교육학의 핵심적 입장이다.

 

  • 그것은 현실을 지탱하는 권력관계의 패러다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stepping outside)” 움직임을 요구한다. 억압, 부정의, 불평등의 원인을 하나의 현실 안에 이해하고 위치시키는 것은 대안적이고 더 나은 현실을 열망할 수 있게 한다.
  • 더 나은 현실을 믿는다는 것은 그 현실의 미완성성(unfinishedness)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완성된 문화, 환경, 사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할 때, 변화에 대한 희망은 회복될 수 있다.
  • 그러나 Freire의 관점에서 희망은 현실이 자발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수동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참여(critical engagement)이다. 비판적 교육학에서 희망은 행위성(agency)이다. 그것은 주로 급진적 행동이나 심대한 개입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실현 가능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 Freire는 이를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untested feasibility)이라고 불렀다.26,37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은 개인의 정치적, 정서적, 인지적, 윤리적 도달 범위 안에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이전에 시험된 적이 없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26,37 이는 변화를 일으키는 개인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변화에 대한 희망에 의해 지지되는 성찰과 행동의 결합이다.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프락시스(praxis)로 개념화하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락시스는 성찰과 행동의 변혁적 순환(transformative cycles)을 요구한다. 이 과정은 경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서로 다른 관점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교화한 다음, 배운 것을 실천 개선에 적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비판적 교육학의 관점에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찰은 프락시스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말뿐인 언어주의(verbalism)”일 뿐이다.25,26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비판적 교육학은 문제제기화(problematization)를 제안한다.26 학습자에게 관련 있는 구체적 과업이나 문제를 중심으로 교육 실천을 구성하면, 학문적 기술(academic skills)과 비판적 의식이 병행하여 발달할 수 있다. 비판적 의식은 개인이 존재하거나 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억압적 힘을 식별하고 그에 대해 행동하는 능력이다.26 우리는 현대 의학교육이 의학 실천과 명확히 연결된 관련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 실천을 채택하려는 노력, 학습자를 학습 과정에 참여시키려는 노력, 그리고 자기조절(self-regulation)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해왔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Freire에게 문제제기화는 단지 전문직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습자의 현실을 변화시킬 행위성(agency)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러한 문제제기화에 기반한 교육활동은 학습자가 자신들이 인식하는 의학 문화의 억압적 요소를 교육 실천의 중심으로 가져오도록 초대할 것이다. 그 목적은 이러한 문화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차원과 제약을 고려하면서 이 문화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리허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면적 문제는 학습자가 자신의 현실에 참여하고 그 현실을 변혁할 준비를 하게 해야 한다.25,26,37 이런 방식에서, 교육 시스템과 의료 시스템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의 일부이자, 변화되어야 할 문화의 일부이다. 의학교육을 “문제제기화”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습자가 자신의 의제를 제기하고, 의학 문화의 억압적 요소에 대해 성찰하고 행동하도록 요청받는 교육과정 공간(curricular spaces)이 필요하다.

 

의학교육을 “문제제기화”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임상진료 안에서 의학 지식의 학습과 평가를 맥락화하려는 시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우리 의학교육자 공동체는 그러한 시도들이 문화 변화를 촉진하는 데 미친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33 사실 이러한 시도들은 효과적인 첫걸음이었다. 우리 공동체는 가부장주의(paternalism)를 뒤로하고 학생중심 실천(student-centered practices)을 채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해왔다. 그러나 완성된 의학교육(finished medical education)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비판적 교육학의 틀 안에서 문화 변화의 이러한 장벽을 해석하는 한 가지 가능한 방식은, 한때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이었던 것이 맥락화와 성찰의 순환을 거친 뒤 새로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워진 현실이지만 반드시 억압에서 자유로운 현실은 아니다. 이 새로운 현실은 이전 현실보다 개선된 것이기는 하지만, 다시 새롭고 신선한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요구한다. 변화에 대한 이러한 지속적인 필요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의학 훈련 전반에서 계속 학대와 부정의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일 것이다.

 

이 에세이의 저자인 우리는 비판적 교육학의 관련 개념들을 의학교육에 통합함으로써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의 지속적 순환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개념들은

 

  • (a) 프락시스로서의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 as praxis),
  • (b)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pedagogy with learners),
  • (c) 개인들 사이의 민주적 관계로서의 교육(education as a democratic relationship between individuals)이다.

 

다음 절들에서, 이러한 비판적 교육학 개념과 그것들이 억압에 저항하는 의학교육 문화로 우리를 어떻게 이끌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학습자 및 교육자로서 경험한 상황에 기반한 세 가지 비네트를 제시한다. 우리의 의도는 Freire의 비판적 교육학을 의학교육 안에 맥락화하는 동시에, 의학교육자들이 그러한 실천을 실험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다. 각 비네트 뒤에는 우리가 보기에 권력관계가 어떻게 억압으로 이어지는지, 그것이 문제제기화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보는 검증된 또는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러나 비네트를 제시하기 전에, 우리는 저자로서 우리의 입장성(standpoints)을 인정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환자들을 돌보면서 의과대학생과 전공의를 지도한 풍부한 경험을 지닌 브라질 내과의사들이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의학교육 연구자로 진로를 전환했으며, 현재 교육자로서 우리의 주요 역할은 미래 세대 연구자의 훈련을 지원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 안에도 억압자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자기비판(self-criticism)을 통해, 그리고 교육자와 시민으로서의 일상적 실천에 비판적 교육학을 의도적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통해 그 억압자에 대응하고자 한다.

프락시스로서의 비판적 의식 Critical consciousness as praxis 

그 환자는 외래 진료실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린 뒤에야 진료실로 불렸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환자 진료를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학생은 지연에 대해 사과하며 면담을 시작한다. 지도전문의(attending physician)는 개입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환자와 학생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일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연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 져야 한다고 믿는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진 학생은 어떻게든 진료를 마치지만, 이후 그 학생도 지도전문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날 늦게, 그는 이전 수업과 시뮬레이션 실습에서 배운 것과 현실 세계 사이의 차이,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억압 Oppression as we see it 

환자에게 가해지는 명확한 억압 행위는 종종 학습자에게 더 미묘한 억압을 가한다. 예를 들어 임상실천(clinical practice)의 현실은 때때로 학습자가 지닌 환자 진료에 대한 초기 이상, 그리고 임상 전 단계(pre-clinical years)에서 배웠던 것과 대비된다. 우리의 비네트에 등장하는 학생은 이전 의학 훈련 기간 동안, 의료전문직과 의료 시스템과의 관계에서 환자가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아마도 묘사된 상황과 같은 가상 상황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 배웠을 것이다. 즉, 환자에게 공감하고, 환자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며, 긍정적인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임상 상황에서 이 학생은 자신의 공감적 프락시스(empathetic praxis)에서 억압받았고, 그 결과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의학 전문직 행동(medical professional behavior)은 대체로 역할모델링(role-modeling)을 통해 학습되기 때문에,38,39 그가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서 지도전문의를 모방하여 반응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문제제기화 Problematization 

이상화(idealizations), 개인적 가치(personal values), 담론(discourse), 프락시스 사이의 불협화음은 의학 훈련에서 흔하다.11,34,35,40–42 더 나은 정렬(alignment)을 달성하기 위해 교수개발(faculty development)을 지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의학 훈련에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모든 모순이 제거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의료 및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개발하는 것은 학습자가 불협화음을 헤쳐 나가도록 지원할 수 있다.39 이 비네트는 학생과 지도전문의가 자신의 가치와 필요, 환자의 필요, 교육 시스템 및 의료 시스템의 요구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방식을 보여준다.40–42 지도전문의가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과중한 업무량 역시 억압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중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리고 과도한 업무량에 의해 억압받은 채, 학생의 공감적 태도를 억압하고 환자의 정당한 분노를 억압한다.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 The untested feasibility 

비판적 의식을 발달시킨 학습자는 이러한 억압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반억압적 프락시스(anti-oppressive praxis)에서 가치와 행동의 정렬은 행동 후 비판적 성찰이 이어지는 지속적인 순환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이러한 성찰은 호기심 있고, 타자에게 열려 있으며, 자기비판으로 스며 있고, 변화를 지향하는 성찰이다. 이 접근은 실천적 호소력을 지니며, 개선에 대한 희망 속에서 대안적 행동을 탐색한다. 그것은 행동에 대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교환되고 심지어 리허설될 수 있는 비위계적이고 대화적인 공간(nonhierarchical, dialogical space)에서 일어난다.25,26 우리는 임상실습(clinical rotations)이 성찰적 공간으로 스며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곳에서 학습자는 속도를 늦추고, 이상화와 현실 사이의 충돌을 다룰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성찰은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서 실행될 수 있는 행동을 식별해야 하며, 현상 유지에 대한 희망적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이 특정 사례에서,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억압적 힘을 식별하고 환자의 편안함과 만족을 높이기 위해 업무흐름(workflow)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찾으려는 지도전문의와 학생 사이의 논의가 변화를 촉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습자에게 행하는 교육학이 아니라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
Pedagogy with learners as opposed to pedagogy on learners
 

학생들, 전공의 한 명, 그리고 지도교수(supervisor) 한 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흡연으로 인해 왼발에 중증 동맥 폐색(critical arterial obstruction)이 생긴 환자를 방금 방문했다. 절단(amputation) 가능성을 논의하던 중, 지도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이것이 최선의 치료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한쪽 발로 뛰어다니며 담배를 계속 사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룹의 일부가 웃었고, 한 학생도 웃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이후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전공의는 그런 농담은 환자 진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의학 실천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해롭지 않다고 설명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우리가 보는 억압 Oppression as we see it 

의학 훈련 전반에서 학습자들은 자신의 역할모델 중 일부가 동료 학생, 의료전문직, 환자를 부당하게 대하고 농담거리로 삼으며, 소수자를 차별하고, 부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을 부과하는 모습을 목격한다.5,6,12,41,42 Wear 등5의 「환자를 조롱하기(Making Fun of Patients)」에서 의과대학생들은 “누군가 항문에 물체가 낀 채로 오면, 그건 재미있는 일이다”와 같은 농담을 보고하고, 의식이 없는 여성 환자에 대해 “끝내주는 가슴(fabulous knockers)”을 가졌다고 말하며, 정신과 병동을 “지체 복도(retard hallway)”라고 부른다. Fuks의41 「클럽에 가입하기(Joining the Club)」에서 한 학생은 환자가 지도전문의에게 “미친 년(crazy bitch)”이라고 불렸던 상황을 성찰한다. 학습자가 소속감(sense of belonging)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은 보통 순응하라는 암묵적 압력을 동반한다. 환자의 최선의 이익과 정렬되는 대신 동료와 정렬되는 이러한 움직임은 고통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1,40–42

이 비네트에서 학생의 죄책감과 수치심은 순응이 그녀의 환자 진료 가치(values of patient care)를 억압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전문직적 태도(unprofessional attitudes)는 흔히 스트레스 대처 전략으로 정당화되고, 안타깝게도 변화의 가능성을 넘어선 의학 전문직의 현실로 인식된다.5,6,8 이러한 학대의 현실은 바뀔 수 없다는 믿음은 절망감을 만들어낸다. 앞서 논의했듯이, 절망감은 억압을 영속화하기에 이상적인 맥락이다. 이처럼 강력한, 그렇게 숨겨져 있지도 않은 잠재 교육과정 경험의 영향을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환자와 동료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 헌신하는 좋은 전문직 행동을 기르는 일은, 학습자가 부적절한 행동을 식별하고 저항할 수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의학교육이 학습자의 이러한 전문직적 저항(professional resistance)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교육학(pedagogy)을 채택해왔는지를 성찰해볼 가치가 있다.43

문제제기화 Problematization 

학습자에게 올바른 전문직 태도(correct professional attitudes)를 가르치는 것은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존중을 기르는 것과 다르다. 비판적 교육학에서, 학습자가 전문직업성에 대해 성찰하도록 요청받지만 그 성찰의 결과가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면, 그것은 학습자에게 부과된 교육학(pedagogy imposed on learners)이 된다. 이러한 접근은 학습자 자신의 관점을 무시하고, 교사의 관점을 주입한다. 현실 바깥으로 한 걸음 물러난 뒤, 희망과 변화에 대한 태도로 역량강화된 상태에서 현실로 다르게 돌아오는 움직임은, 대안적 현실을 상상하고 실행할 자유가 동반될 때에만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대안적 현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 함께 억압을 논의하고 도전하도록 초대하는 것이어야 한다.26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pedagogy with learners)은 의도된 성과(intended outcomes)를 인정하면서도, 어떤 성과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것은 학습자가 교사와 의미 있는 대화에 참여하도록 허용한다. 이 대화적 과정(dialogical process)에서 의견 불일치(disagreeing)는 학습자와 교사 모두에게 변혁적 학습(transformative learning)을 촉진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복잡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은 학습자가 전문직업성이 추구해야 할 고정된 목표나 따라야 할 일련의 규칙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한다. 전문직업성은 세계 속에서 일어나며, 가장 적절한 행동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정의될 수 없다. 좋은 전문직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종종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환자를 존중하기 위해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을 요구한다.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은 처방적이지 않다. 그것은 학습자를 논의에 참여시키고, 그들의 의견, 비판, 관점에 열려 있다.25,26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 The untested feasibility 

우리 비네트의 맥락에서,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은 “환자를 조롱하는 것은 해롭지 않다”는 전공의의 진술을 단순히 전문직 행동의 “옳음” 또는 “그름” 범주에 배치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현실의 복잡성을 포용하는 대화적 과정 속에서 이 가정을 도전적으로 검토하는 논의를 열 것이다. 이 과정은 목소리를 지우거나 변화에 필요한 불편함(discomfort)을 회피하지 않는다. Freire의 말처럼, “누구도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금지하면서 진정으로 존재할 수 없다.”26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가치와 행동을 능동적으로 정렬하는 방식을 탐색함으로써, 학습자는 집단적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collective untested feasibilities)에 동의하고 자신의 전문직 발달(professional development)에서 주체적 역할(protagonist role)을 맡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수치심과 죄책감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그 학생이 환자 진료에 대한 자신의 가치에 충실하게 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44

민주적 관계로서의 교육 Education as a democratic relationship 

빈곤한 공동체의 응급실 대기실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기에게 즉각적인 진료를 요구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진정하지 않으면 나가야 한다는 경고는 별 효과가 없었다. 지도교수는 그 “소동(scene)”에 대한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멀리서 한 의과대학생이 다가가 그 여성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자 여성은 진정된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하는 것을 흥미롭게 듣는다. “저는 그분을 우리 동네에서 알아요. 저는 우리가 관심을 요구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데 익숙하다는 걸 안다고 말씀드렸고, 그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기가 곧 필요한 진료를 받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관심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전혀 없었던 상중산층 여성인 지도교수는, 응급진료를 해온 자신의 모든 세월 동안 환자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그러한 관점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우리가 보는 억압 Oppression as we see it 

이 비네트는 Freire가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을 때 존재했던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화(dehumanization)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더 낮으며,45 그럼에도 그들의 행동은 자주 열악한 의료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간주된다. 대부분의 의료전문직은 “문제적(troublemaker)” 환자가 자신의 “나쁜” 행동에 대한 명시적 또는 암묵적 처벌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비네트들과 달리, 어머니를 향한 억압 상황은 학생을 향한 억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의 공감적이고 적극적인 중재에 의해 완화되었고, 지도교수는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제기화 Problematization 

비판적 교육학은 교육이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한다고 이해한다. Freire에게 “학습자 없는 교수(teaching without the learner)는 없다.”25,26 결국 완전한, 즉 완성된 개인이나 전문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새롭게 배울 것이 있다. 학습자와의 관계가 신뢰 위에 구축된다면, 교사는 배우고 학습자는 가르친다. 이러한 교수자-학습자 위계(trainer-trainee hierarchy)의 균열이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명시적일 때, 그것은 의사-환자 위계(medical-patient hierarchy)의 균열을 향한 강력한 역할모델이 되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환자중심진료(patient-centered care)를 기른다. 의사/환자와 교사/학습자 사이의 권력 거리(power distance)에는 평행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 다 권력 비대칭(power asymmetry)을 갖기 때문이다.46,47 환자중심진료와 학습자중심교육(learner-centered education)을 달성하려면, 이 권력 불균형은 권력을 가진 사람, 즉 의사와 교사가 능동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들은 권력이 적은 사람, 즉 환자와 학습자의 역량강화(empowerment)를 지원해야 한다.46 물론 이러한 역량강화는 환자와 학습자가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의제를 제시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변혁적 힘은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때에야 완전히 실현된다.

검증된 가능성 The tested feasibility 

묘사된 상황에서 학생은 지도교수에게 무례하고 부적절하다고 인식되는 행동에 대해 다른, 그리고 관련성 있는 관점을 제공했다. 소리 지르는 여성에 대한 하나의 순진한 관점은, 그녀가 의료시설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불편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개입은 지도교수에게 인식론적 호기심(epistemological curiosity)의 순간을 촉발했다. 이는 단순한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태도, 맥락, 문제의 기저에 있는 복잡한 요인을 탐색하는 호기심이다.26 학생의 관점과 태도는 지도교수에게 비판적 성찰성(critical reflexivity)의 순간을 제공했고,23 지도교수는 개방성과 자기비판을 통해 이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학생에 의해 변화될 가능성에 자신을 열었고, 응급실에서 소리 지르는 것과 같은 태도와 행동이 권력관계에 의해 매개되며, 서로 다르면서도 정당한 기저 원인을 가질 수 있음을 이해했다.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가능한 경로
Possible paths to exploring untested feasibilities
 

서로 다른 맥락은 의학 훈련에서 학대와 억압과 관련하여 더 나은 현실을 달성하는 데 서로 다른 도전을 제기할 것이다. 새로운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은 개인과 집단, 그리고 특정 시점에 고유하다. 우리는 자신의 구체적 현실과 무관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데 우리를 지원할 수 있는 실천적 영감을 역사와 동료 연구자들의 작업에서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다음을 할 수 있다.

  • 절망감에 저항하기(resist hopelessness). 의학은 중대한 변화를 겪어왔다. 처음에는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변화들이 이제는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수용된 현실이 되었다. 여성의 의학 인력 통합과 근거기반실천(evidence-based practice)의 채택은 추가적 변화에 대한 희망을 고취하는 긍정적 변혁의 예이다.48,49
  • 우리 자신 안의 억압자를 인정하기(acknowledge the oppressor in ourselves). 의학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 즉 더 초심자인 학습자나 교수진, 다른 의료전문직 또는 환자와의 관계에서 권력의 위치에 있다. 개인적 취약성 경험은 자신 안의 억압자를 보고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제공자들은 환자로서의 경험이 환자 진료에서 권력관계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고 보고했다.50 특정 교육적 개입에서 학습자의 자리에 서는 지도자도 같은 변혁을 경험할 수 있다.
  • 타인의 행동이나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촉발된 분노와 수치심 같은 불편한 감정을 성찰할 시간을 갖기(take the time to reflect upon uncomfortable feelings).44 도덕적 딜레마(moral dilemmas)는 강렬하고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0 이러한 감정을 순진한 호기심이 아니라 인식론적 호기심으로 개인적으로 정교화하는 것은 종결감(sense of closure)을 제공하고, 안녕감(well-being)을 회복하며, 미래 실천을 형성할 수 있다.40 의사소통적 학습(communicative learning), 즉 멘토나 신뢰할 수 있고 더 경험 많은 타자와의 대화는 이 과정을 촉진하고 개선할 수 있다.44
  • 개인의 안녕과 경력을 보존하면서 억압에 저항하기(resist oppression while preserving individuals’ well-being and careers). 우리의 위치가 취약할수록, 저항은 더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견디는 억압이 가하는 고통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을 다루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감수할 준비가 된 위험도 오직 우리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43,44

개인적 행동을 넘어, 교육환경 역시 다음을 통해 비판적 교육학에 기반한 프락시스를 기를 수 있다.

  • 학습자와 함께 교육 개입을 공동 설계하기(co-designing educational interventions with learners).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목표와 교육방법론(educational methodologies)을 제안하도록 초대한다. 이러한 개입은 학습자가 다른 수준의 참여와 책임을 채택하도록 초대하는 동시에, 교육자가 학습자의 필요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51,52 이러한 개입은 교육자가 학습자가 권력의 위치를 맡아 “교사를 가르치도록” 허용할 때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 잠재 교육과정을 “문제제기화”할 공간을 공동 창출하기(co-creating spaces to “problematize” the hidden curriculum). 이는 학습자가 현상 유지에 도전하고 억압에 저항하는 전략을 리허설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s)이다.47
  •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의 문화(adopting a culture of self-reflection and self-criticism)를 채택하기. 지도자는 이상화와 현실 사이의 충돌을 성찰하는 과정을 역할모델링하면서,39 변화에 대한 희망과 긴급성을 학습자와 공유한다.
  • 학습자의 원칙적이고 윤리적인 저항 행위를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기(embracing, instead of dismissing, learners’ acts of principled and ethical resistance). 의학교육의 권력 위계 안에서 학습자는 보통 취약한 위치에 있다. 그들이 억압에 저항할 때, 그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43 비판적 교육학과 일관된 교육문화는 이해관계자들이 이러한 행위를 존중하며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또한 학교가 학습자가 전문직적 저항과 비전문직적 저항을 구별하도록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36,43
  • 의학 전문직 내부와 관련 보건의료 전문직 전반에서 연대(solidarity)를 촉진하기. 의료전문직이 직면한 도전은 유사하지만, 우리는 학부 및 대학원 훈련 동안 이러한 도전을 함께 다루는 일이 드물다. 이러한 도전을 함께 논의하고 억압적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서로에게 배우는 기회를 만듦으로써, 우리는 예기치 못한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속감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생성할 수 있다.
  • 다양성 기념하기(celebrating diversity). 다양한 의료인력은 인식론적 호기심을 촉진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유사한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 불균형에 대한 인식, 존중, 유연성의 프락시스인 문화적 겸손(cultural humility)은 비판적 교육학의 프락시스를 지원할 수 있다.53,54

논의 Discussion 

우리는 의학교육 안의 전문직업성 운동(professionalism movement)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학대가 의학 훈련에서 지속적인 현실이 되어 왔음을 논의했다. 우리는 이러한 검증된 가능성(tested feasibilities)이 새롭고 개선된 현실을 만드는 데 기여한 진전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새로운 현실을 추구할 때라고 이해한다. 그것은 억압이 의학 훈련의 피할 수 없는 문화라는 절망적 인식에 도전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비판적 교육학이 의학 훈련을 새로운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이끌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 (a) 프락시스로서의 비판적 의식,
  • (b)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
  • (c) 민주적 관계로서의 교육이다.

 

문화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의식을 프락시스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일터와 우리 자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맥락에 있는지, 그리고 개인이자 전문직으로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하다. 교육적 맥락에서 비판적 의식을 촉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채택하든, 우리는 의학교육 문화를 변혁하려면 그러한 성찰이 진정성 있고 행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성은 문제제기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관점이 포용되고, 의견 불일치가 교육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변화의 기회로 인식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 이것은 비판적 교육학이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pedagogy with learners)으로 개념화하는 생각이다. 비판적 교육학에서 문제제기화는 의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비판적 의식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길러질 수 있을 뿐이다. 학습자의 가치와 신념을 무시하는 반대 방식, 즉 학습자에게 부과된 교육학(pedagogy imposed on learners)이 전문직적 및 개인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의학 훈련 안팎의 강력한 힘에 대응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복잡한 역학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비판적 의식의 발달을 강화할 수 있다.

 

비판적 의식은 다시 변화에 대한 희망을 회복할 수 있다. 그것은 억압을 도전받을 수 있는 시스템과 개인 권력관계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며, 추구될 수 있는 새로운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교육자들 사이에서 길러진 비판적 의식은 긍정적 역할모델(positive role-models)에 대한 학습자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학습자들 사이에서 길러질 때, 그것은 의학 실천의 이상화와 현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개인의 정서적, 정치적, 인지적, 윤리적 도달 범위 안에서, 억압의 사슬을 끊는 옹호(advocacy)와 저항(resistance)의 행위는 비판적 의식을 프락시스로 전환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제시하고 논의한 비판적 교육학의 세 번째 원리는 나머지 원리들을 지탱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뢰에 기반한 민주적 관계로서의 교육(education as a democratic relationship based on trust)이다. 비판적 의식을 향한 학습자와 함께하는 교육학은 교육자-학습자 위계가 도전받고, 교육자가 자신을 학습자와 환자와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미완성의 개인이자 전문직으로 볼 때에만 가능하다. 이것은 비판적 교육학이 환자 진료에 대한 윤리적 책무를 우리의 관점과 신념보다 우선시하는 규정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10,43 오히려 그것은 교육자가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여 억압에 대응할 것을 요청한다.25 비판적 교육학이 반대하는 것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이다.

 

마지막으로, 이 에세이의 한계는 억압이 학습자에게 서로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종과 젠더 차이는 논의되지 않았지만, 교육자와 학교가 억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계획할 때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

결론 Conclusion 

의학교육은 모든 환자, 학습자, 교육자의 존엄성(dignity)을 위한 문화를 향해 새로운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시도하는 데 있어 비판적 교육학의 원리에서 영감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시작된 운동이며,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었고, 학대와 억압의 문화가 지속되는 한 계속적인 갱신을 요구한다. 새로운 현실이 이전 현실보다 더 낫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Teach Learn Med. 2024 Oct-Dec;36(5):684-688. doi: 10.1080/10401334.2024.2414658. Epub 2024 Oct 14.

An Invitation to Probe Reality and Theorize Daringly About Human Experience: Exploring 'Secret Affinities' in Medical Education Inquiry

 

 

🧼 비누 한 장이 건네는 말: 발터 벤야민과 의학교육의 '비밀스러운 친화성' 

Schaepkens, S. P. C., & Cianciolo, A. T. (2024). An Invitation to Probe Reality and Theorize Daringly About Human Experience: Exploring 'Secret Affinities' in Medical Education Inquiry.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 36(5), 684–688.

 

손을 씻을 때, 수술방에 '스크럽 인'할 때, 환자의 몸을 닦아드릴 때… 우리는 매일 비누를 만지지만, 정작 비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죠. 그런데 만약 그 비누가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글은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TLM)에 실린 짧은 에디토리얼이에요.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 "현실을 탐침하고 인간 경험에 대해 대담하게 이론화하라는 초대(An Invitation to Probe Reality and Theorize Daringly About Human Experience)". 저자인 Sven Schaepkens와 Anna Cianciolo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비누 한 장을 가지고, 의학교육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슬쩍 흔들어 놓습니다. 같이 따라가 볼까요?


📖 1. 그런데 '의학교육에서 철학하기'가 대체 뭐죠?

TLM은 2020년부터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의학교육에서의 철학)' 시리즈를 운영해왔어요. 이 시리즈가 시작된 이유가 인상적입니다.

"교육적 성과를 향한 추구가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가로막힐 때, 실천적으로 멈춰 서기—즉 철학하기—를 장려하기 위해서였죠."

"promoting practical pausing—i.e., doing philosophy—when the pursuit of educational outcomes is frustrated by complexity and uncertainty"

 

핵심은, 이미 만들어진 철학 개념을 가져다 '적용'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아무도 찾지 않던 문제(problems no one looked for)" 를 발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그냥 지나쳐온 현상들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거죠.

 

첫 번째 단계가 "강렬한, 아이 같은 호기심(intense, childlike curiosity)"으로 그런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단계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바로 '경험의 본질(the nature of experience)' 그 자체 를 탐구하고, 그것이 의학교육에서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possibility) 살펴보자는 초대예요.

🤔 2. 왜 하필 발터 벤야민일까?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였어요. 그의 글쓰기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합니다. 칸트 철학, 역사철학, 유대 신비주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은 물론이고… 도시의 풍경, 꿈, 장난감, 사진, 영화, 심지어 미키 마우스까지 다뤘어요. 종잡을 수 없죠. 그런데 이 방대한 작업을 하나로 묶어주는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가."

"what the conditions [are] that make experience possible"

 

벤야민은 여기서 "비밀스러운 친화성(secret affinities)" 이라는 개념을 꺼냅니다. 이게 이 논문 전체를 관통하는 열쇳말이에요.

"겉보기엔 동떨어진 관념들과 사소한 현실의 디테일 사이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친화성]."

"secret affinities between seemingly remote ideas and minute reality details"

 

벤야민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아도르노(Adorno)는 이런 식의 사유가 "수수께끼 같은 형식을 통해 충격을 준다(shock through their enigmatic form)" 고 했어요. 개념적 사고를 가로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고를 촉발하는 충격이라는 거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낯설게 만들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게 벤야민의 매력입니다.

🗣️ 3. 언어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자, 이제 본론이에요. 우리는 보통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하죠. 머릿속 생각을 정확하게 담아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그릇 같은 것. 그런데 벤야민은 여기에 제동을 겁니다.

 

그는 두 가지를 부정해요.

 

  • 첫째, 언어는 단지 우리가 독일어·중국어·스와힐리어·라틴어라고 부르는 말이나 글의 관습이 아니다.
  • 둘째, 언어는 우리 의식의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 그럼 언어가 뭐냐고요?

 

"언어는 경험의 질(質)에 관한 것이다."

"language is about the qualities of experience"

 

그리고 여기서부터 좀 더 과감해집니다. 벤야민은 인간만이 아니라 사물도 언어를 가진다 고 봐요. 음악의 언어, 예술의 언어, 새소리 같은 동물의 언어처럼요. 심지어 램프 같은 사물조차도 말이죠.

"램프 같은 사물도, 비록 무언(無言)일지언정, 자기 나름의 언어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objects like lamps express themselves in their language, albeit a mute one"

 

이걸 저자들은 '무언의 언어(mute language)' 라고 불러요. 소리 없는 언어, 침묵의 언어죠. 사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어떤 표현이라는 겁니다.

🧼 4. 비누가 말을 건넨다

추상적으로만 들리죠? 그래서 저자들은 아주 구체적인 예를 가져옵니다. 바로 비누예요. 시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가 비누 한 장에 대해 쓴 시를 인용하는데, 첫 구절이 "비누는 할 말이 참 많다(Soap has so much to say)"예요. 시인은 비누를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합니다 — 손에서 미끄러지고, 물고기처럼 빠져나가고, 푸른 거품의 구름을 내뿜으면서요.

 

여기서 저자들의 분석이 정말 멋집니다. 비누는 그 자체로 미끄러운 게 아니에요. 물과 만나는 바로 그 순간에 미끄러워지죠. 받침대, 손, 대야, 물, 미끄러움이 '씻기'라는 행위 속에서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비누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사물 하나만 똑 떼어내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비누는 늘 그것이 속한 관계망(web of relations) 속에서만 자기를 표현하니까요.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우리 의학교육자에게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병원에서 비누는 사전적 정의("물에 비벼 거품으로 녹는 세제")를 훌쩍 넘어서거든요.

  • 손위생(hand hygiene) 준수율, 그리고 알코올 손소독제(ABHR) 사용량 같은 대리 지표 → 의료의 질을 보여주는 신호가 됩니다.
  • 손 씻기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to save lives)' 따로 떼어둔 시간이에요. "싱크대 앞에 서 있으면 20초가 참 길게 느껴지죠(twenty seconds is a long time when you're standing at a sink)" — 그래서 20초짜리 노래를 부르며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요.
  • 외과 실습생에게 '스크럽 인(scrub in)' 하라는 말은 단순히 멸균 구역의 일원이 되는 것 이상이에요. 임상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clinical practice)로 들어서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brings a surge of adrenaline)" 경험이라는 거죠.
  • 환자의 몸을 닦아드리는 일에서는 돌봄(compassionate care)이 드러나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그 부재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 고인을 닦아드리는 일에서는 애도와 종결(closure) 이 물질적으로 구현되고요.

같은 비누인데, 이렇게나 다른 경험들을 품고 있어요. 비누의 '무언의 언어'에 귀 기울이면, 의학교육과 임상의 풍경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5. 인간은 '번역하는 존재'다

벤야민의 언어론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그의 '번역(translation)' 개념을 봐야 해요. 이 대목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습니다.

 

번역은 결코 원본과 똑같을 수 없어요. 똑같다면 번역이 필요 없겠죠. 번역은 원본을 건드리면서도, 동시에 원본을 '배반'해야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를 원본과의 "불일치의 관계(relation of discrepancy)" 라고 표현해요. 그리고 여기서 핵심 통찰이 나옵니다.

"인간은 경험 한가운데에서 [번역의 자리에 서 있다]."

"humans hold a position of translation in the midst of experience"

 

우리는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옮기는 것 같은 언어 간 번역만 하는 게 아니에요. 비누의 '무언의 언어'를 '비누'라는 우리의 말로 옮기는 번역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언어의 언어는 번역이다."

"the language of language is translation"

 

무슨 뜻이냐면 — 우리가 세계를 일방적으로 언어로 '붙잡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번역 속의 세계가 거꾸로 우리의 언어와 경험과 사고를 빚어낸다 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이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규정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고 기꺼이 귀 기울이려는 태도—'비밀스러운 친화성'을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This requires an attentiveness and a willingness to listen—a readiness to hear 'secret affinities'—rather than an urge to determine."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귀를 여는 것. 어쩐지 좋은 임상가, 좋은 교육자의 태도와도 닮아 있죠?

💡 6. 그래서 우리가 배울 세 가지

저자들은 벤야민과 퐁주에게서 세 가지 교훈을 길어 올립니다.

  1. 인간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계에 깊이 얽혀 있고, 세계 속에 둥지를 튼(nested) 존재예요.
  2. 사물은 자기만의 관계망 속에서 무언의 언어를 표현한다. 비누, 대야, 물, 손… 그리고 그 관계가 우리의 경험을 빚어냅니다.
  3. 사물의 무언의 표현과 이론적 개념화는 서로를 보완한다. 둘은 다르지만 떼려야 뗄 수 없어요.

"[무언의 표현과 더 거리를 둔 이론적 개념은]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고 분리될 수 없다."

"while different, are interconnected and inseparable"

 

그리고 여기서 저자들은 중요한 현상학적(phenomenological) 경고 를 덧붙입니다. 많은 과학이 세계가 의미를 빚어내는 방식을 그만 '망각'해버린다는 거예요. 사물이 그것이 속한 세계로부터 경계가 지워진 채, 무관심한 세계(indifferent world) 속에 던져진다는 거죠. 그래서:

"인간은—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의학교육자들은—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거리를 두고 있지도, 일방적으로 의미를 확정할 만큼 상황을 통제하고 있지도 않을지 모른다."

"Humans—and, by extension, we medical educators—might be less detached and less in control of one-sidedly establishing meaning than we presume."

"사물의 두께와 밀도는, 세계의 복잡성을 길들이려 드는 정확하고 거리를 둔 개념적 지식보다 인간 조건에 훨씬 더 깊이 뿌리내려 있다."

"The thickness and density of things remain more deeply foundational to the human condition than wielding correct, detached, conceptual knowledge that attempts to tame the world's complexity."

 

깔끔한 개념과 정량 지표로 세계를 '길들였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정작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의학교육 연구자로서 뜨끔해지는 대목이에요.

🤖 7. 이게 의학교육이랑 무슨 상관일까?

자, 그래서 이 시리즈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요? 저자들이 제안하는 질문들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 문화적 현실의 사소한 디테일에 대담한 이론화를 더하면, 우리의 의학교육·의료 경험을 빚어내는 조건에 대해 무엇이 보일까?
  • 어떤 말, 어떤 '무언의 언어'가 (시·문학·예술·역사를 통해서라도) 번역되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 수술 기구나 인공호흡기 같은 사물의 무언의 언어는 우리의 (학습) 경험을 어떻게 빚어낼까?
  • 더 비판적으로는 — 누구의 언어가 잘못 번역되었고, 누구의 목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을까?

그중에서도 AI를 다루는 분이라면 이 질문이 특히 와닿을 거예요.

"자연의 목소리는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또 AI와 기술의 번역된 목소리는 어떤 소리로 들릴까?"

"how can the voice of nature be translated, or what does the translated voice of AI and technology sound like?"

 

우리가 AI를 그저 '도구'로만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혹시 AI가 '무언으로' 건네는 다른 언어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AI를 의학교육에 통합하는 일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이 질문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꽤나 실천적인 화두로 다가옵니다.

✨ 마치며: 대담하게 이론화하기

저자들은 벤야민의 작업이 '비판적(critical)' 인 동시에 '생산적(productive)' 이라고 정리해요. 기존의 전제를 흔들어 '쇼크'를 주는 동시에, 차이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는 거죠. 철학자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의 말을 빌려서 마무리합니다.

"그것은 사실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사실들을 알 수 있게—아니, 차라리 상상할 수 있게—만드는 이론적 기법을 설계하는 일이다."

"It is not about the production of facts, but designing theoretical techniques that can make a new generation of facts knowable, or rather: imaginable."

 

결국 이 글이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쳐온 의학교육의 사소한 것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것들이 건네는 '무언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대담하게 이론화해보자는 것.

손에 쥔 비누 한 장에서 시작해서 말이죠. 🧼

 


서론 Introduction 

올해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TLM)은 의학교육에서의 철학(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second phase)을 시작한다. 이 철학 시리즈는 2020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목적은 복잡성(complexity)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인해 교육적 성과(educational outcomes)를 추구하는 일이 좌절될 때, 실천적 멈춤(practical pausing), 즉 철학하기(doing philosophy)를 촉진하기 위해 철학자들과 의학교육자들 사이의 대화를 북돋우는 데 있었다.1 전통적으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quiry)는 기존의 현상(existing phenomena)을 명료화함으로써, 무엇을 알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지를 밝혀낸다.2 예를 들어, 철학자들은

  • 교육 평가(assessment in education)의 맥락에서 ‘공정성(fairness)’을 분석하고,3
  • ‘세계-중심 교육(world-centered educatio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구하거나,4
  • 가르침의 사명(mission of teaching)을 위해 ‘지식과 상기(knowledge and recollection)’라는 플라톤적 의미(Platonic meaning)를 면밀히 검토한다.5

철학적 탐구의 정신 속에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국면은 기고자들에게 자신의 “강렬하고 아이 같은 호기심(intense, childlike curiosity)”을 발휘하여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문제들(problems no one looked for)”, 즉 더 깊이 이해된다면 우리 모두가 더 잘 교육하고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울 현상들을 찾아내도록 초대하였다.1(p337)

 

이 첫 번째 국면의 논문들은 ‘돌봄(care),’6 ‘인식론과 근거기반의학(epistemology and evidence-based medicine),’7 의학교육의 ‘인종적 과거(racial past),’8 그리고 의학과 보건전문직교육(health professions education)에서 ‘말로 무엇을 한다는 것(do things with words)’이 무엇을 의미하는지9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교육자들이 철학하기(doing philosophy)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면서, 이 시리즈는 의학교육에서 철학을 다루는 다른 접근들10, 즉 기존 철학 개념(existing philosophical concepts)의 적용(application)과 명료화(articulation)를 강조하는 접근들과는 상보적(complementary)이지만 구별되는(distinct) 위치에 놓였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은 이전 작업을 바탕으로 하되, 동시에 시리즈의 범위를 확장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교육자들이 자신의 “강렬하고 아이 같은 호기심”을 발휘하여 경험의 본성(nature of experience)을 탐문하고, 의학교육과 의료 실천(medical education and work)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것이 가능성(possibility)에 대해 갖는 함의를 탐색하도록 초대한다. 우리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서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cultural critic)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언어(language)11와 번역(translation)12에 관한 작업을 매우 짧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제시하되, 명시적으로 현상학적 관점(phenomenological perspective)13–15을 취한다. 우리는 철학적 탐구, 보건의료(healthcare), 의학교육 사이에서 진행 중인 대화를 더욱 자극하고, 고무하며, 어쩌면 불편하게 만들기까지 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대화가 교육자와 학습자의 경험(experiences)에 더 잘 뿌리내리고, 그 경험에 더 잘 응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인문학(humanities)16을 구성하는 다른 학문 분야들, 즉 의학 학습자와 그 교육자들이 온전함(wholeness)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이 관여하고 있는 학문 분야들로부터의 통찰이 이 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또는 “학술적 장르와 체제(academic genres and regimes)의 경계를 시험하고 밀어붙임”으로써17(p124) 그 대화를 어떻게 변형시킬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의 “비밀스러운 친연성” Walter Benjamin’s “secret affinities” 

벤야민 작업의 스펙트럼은 방대하며, 그것을 성격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글쓰기는 언어와 번역에 관한 성찰,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 정치이론(political theory), 칸트 철학(Kantian philosophy), 유대 신비주의(Jewish mysticism), 마르크스주의 유물론(Marxist materialism),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동시대 지식인들과의 교류, 라디오 방송, 특히 어린이를 위한 방송, 도시 생활에 관한 관찰, 꿈, 일상적 사물(commonplace objects), 여행, 예술, 사진, 영화, 기술, 연극, 심지어 미키 마우스(Mickey Mouse)와 같은 문화 현상까지 포함한다.18,19 벤야민의 저작 전체(oeuvre)를 하나로 묶는 것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가(what the conditions [are] that make experience possible)”19(p6)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 벤야민의 “겉보기에 멀리 떨어진 관념들과 미세한 현실의 세부사항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 between seemingly remote ideas and minute reality details)”18(p4)은 ‘근대성(modernity)’과 경험을 형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14

 

예를 들어, 벤야민은 One-Way Street20에서 노트와 같은 단상들을 모아 근대적 경험(modern experience)을 포착하는데, 그는 ‘주유소(Filling Station),’ ‘아침 식사 방(Breakfast Room),’ ‘장갑(Gloves),’ ‘장난감(Toys),’ ‘멕시코 대사관(Mexican Embassy)’과 같은 제목 아래 “일상 경험의 대상들(objects of everyday experience)”을 묘사한다.21(p76) 벤야민의 동시대인이자 친구였던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이러한 성찰들이 “수수께끼 같은 형식(enigmatic form)을 통해 충격을 주어” 사고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개념적 사고(conceptual thinking)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종류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다.21(p76)

 

벤야민의 작업은 종종 독자들에게 겉보기의 모순(seeming contradictions), 복잡한 용어(complex terminology), 그리고 꿈과 같은 이미지(dreamlike images)를 마주하게 하지만, 그의 분석에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역사로 개념적으로 재번역(conceptual re-translation)될 수 있게 하는”18(p2) 심오하고도 예견적인 비판(profound and anticipatory criticism)이 담겨 있다. 이 서론에서 우리는 그의 철학이 지닌 힘의 일부를 활용하여, 기고자들이 의학교육자로서 자신들의 현실(reality)을 탐구하도록 영감을 주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상들에 관한 경계를 넘나드는 분석적 대화(boundary-crossing, analytical conversations) 속에서, 다른 인문학 분야들이 차지하는 통합적 위치(integral place)를 보여주고자 한다. 요컨대, 벤야민과 함께 우리는 문화적 현실(cultural reality)미세한 세부사항들(minute details)이,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을 상상하는 대담한 이론화(daring theorizing)와 결합될 때,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에 대한 우리의 동시대적 경험(contemporary experiences)을 형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지 묻고자 한다.


언어, 번역, 그리고 경험의 출현
Language, translation, and the emergence of experience
 

여기에서 우리는 “현실의 미세한 세부사항들(minute details of reality)”이 우리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에 관해 이론화하는 것이 경험을 이해하고 함양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 벤야민의 언어(language)와 번역(translation)에 관한 성찰에 초점을 둔다. 그의 작업에서 벤야민은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means for communication)으로 보는 상식적 해석(commonsense interpretation)에 도전한다.19

  • 첫째, 그는 언어가 독일어, 중국어, 스와힐리어, 페르시아어, 라틴어 등으로 알려진 구두 또는 문자 관습(oral or written conventions)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19
  • 둘째, 그는 언어가 단순히 인간이 자기 의식(consciousness)의 내용을 포착하고 전달하는 체계(system)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는 언어가 경험의 질(qualities of experience)14에 관한 것이며, 인간적 존재와 비인간적 존재 모두가 실제적이고 비은유적인 의미(real, non-metaphorical sense)에서 언어를 표현한다고 강조한다.19,22,23

우리가 일상적으로 음악의 언어(language of music), 예술의 언어(language of art)11, 그리고 비인간 동물의 언어, 예를 들어 새소리(birdsong)를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벤야민은 램프와 같은 사물(objects)도 비록 침묵하는 언어(mute language)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그 언어로 표현한다고 제안한다.11 벤야민이 무엇을 의미했을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감지하기 위해,14 시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24가 비누 한 조각의 표현(expression)에 관해 쓴 다음 텍스트를 생각해보자.

비누는 할 말이 매우 많다. 그것이 유창하게, 열정적으로 말하게 하라. 그것이 말하기를 끝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24(p13)

일종의 돌이지만, 자연 속에서 굴러다니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돌이다. 그것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지고, 물에 굴러다니기보다는 당신의 눈앞에서 녹아내린다.24(p14)

비누는 처음에는 완벽한 자기통제(self-control)를 보여준다. 비록 어느 정도 은은한 향을 풍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자마자, 물론 어떤 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얼마나 장엄한 기세(elan)인가! 자신을 내어주는 데 있어 얼마나 완전한 열정인가! 얼마나 큰 관대함인가! 얼마나 풍부한 말솜씨(volubility)인가, 거의 고갈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24(pp21–2)

 

우리는 퐁주의 접근이 “사물이 목소리를 갖도록 허용하는 것(to allow the thing to have a voice)”25(p177)임을 관찰할 수 있다. 퐁주는 비누의 목소리(voice of soap)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위 발췌문들에서 사용(use)은 비누 표현에 대한 시적 묘사(poetic descriptions)를 이끈다. “누군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자마자(as soon as one occupies oneself with it),” 우리는 그것이 스스로를 내어주는 선물(gift of itself) 속에서 그 관대함(generosity)을 본다.24(pp21–2) 비누를 사용하는 렌즈(lens of using soap)를 통해 다양한 성질(qualities)이 시인에게 나타나며, 비누의 “두께와 밀도(thickness and density)”가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25(p177) 일상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비누 같은 사물에 손을 문지를 때 많은 일이 일어나며, 퐁주는 그러한 경험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그렇다. 처음에는 받침 접시 위에 놓여 있을 때는 꽤나 무정형(amorphous)이다. 하지만 물을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쓰고, 남용하도록 우리의 손을 순응하게 만드는 힘은 비누의 손에 있다. 물이 우리에게 달라붙고,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래서 물은 이제부터 그 베일, 그 옷, 그 무도회 장식띠 속에서 영원히 우리와 춤추고 싶어 하도록 변형된다.24(p18)

이 움직이지 않는 돌은 물고기만큼이나 붙잡기 어렵다. 그것이 내게서 미끄러져 나가 개구리처럼 다시 대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라 … 또한 자기 자신을 대가로 하여 덧없음의 푸른 구름, 혼란의 푸른 구름을 내뿜으면서 …24(p. 19)

 

물론 우리는 모두 비누가 물고기도 아니고 개구리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퐁주의 시와 함께라면, 우리는 사용 중인 비누(soap-in-use)라는 렌즈를 통해 보았을 때 그것이 이러한 것들일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왜 그런가? 퐁주는 씻는 행위(act of washing) 속에서 표면화되는 비누와 다른 사물들 사이의 관계적 의미(relational meaning)를 움직이게 한다. 인간과 비누의 만남(encounter) 속에서 비누는 미끄러운 무언가가 되지만, 오직 물과 접촉할 때만 그렇다. 한편 물은 대야 속에 잠자고 있으며, 손을 비누에 문지르는 행위 속에서 물은 비눗물이 되어 인간의 손에 달라붙는다. 받침 접시, 손, 대야, 물, 미끄러움, 개구리, 돌, 청결함,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씻는 행위 속에서 함께 모이며, 그것들은 모두 비누의 경험(experience of soap)을 불러일으킨다.

 

벤야민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사물, 즉 비누의 침묵하는 언어(mute language)가 인간에게 자신을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전에서 “물과 함께 문지르면 거품으로 녹는 세제(a detergent that, by rubbing it with water, dissolves into foam)”26(SS transl.)라고 정의된 ‘비누(soap)’라는 단어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 사전적 정의가 비누의 작용(action)을 특징짓기는 하지만, 공중화장실과 병원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에서 비누는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정립된 의미(established meaning)를 넘어 자신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 비누는 “손 위생 준수(hand hygiene compliance)와 그 대리지표(surrogate measures), 예컨대 ABHR[alcohol-based handrub, 알코올 기반 손소독제] 소비량”27(p.10)의 실행을 통해 보건의료의 질(healthcare quality)을 의미할 수 있다.
  • 손 씻기(handwashing)에서 비누는 또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to save lives)’ 따로 떼어놓은 시간에 관한 특정한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28
  • “싱크대 앞에 서 있을 때 20초는 긴 시간”이지만, 20초짜리 노래를 부르는 것은 서둘러 문지르는 사람들에게 속도를 맞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29
  • 외과 학습자(surgical learners)에게 ‘스크럽 인(scrub in)’하라는 요청을 받는 것은 단지 멸균 영역(sterile field)의 일부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또한 “아드레날린의 급증을 가져오는”30 임상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clinical practice) 안으로 포함되는 문을 여는 순간(gate-opening moment of inclusion)을 나타낸다.
  • 비누는 환자가 씻겨지는 방식에서 연민 어린 돌봄(compassionate care), 또는 그 결여31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32 사망한 사랑하는 이를 씻기는 행위 속에서 종결감(closure)을 물질화(materialize)할 수도 있다.33

요컨대, 퐁주의 시를 벤야민의 렌즈를 통해 보면 우리는 “말에서 의미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slip[ping] from words to meanings …)”24(p19), 다시 말해 의식적 사고(conscious thought)를 전달하는 언어에서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로 이동하는 것에 민감해진다. 벤야민과 퐁주 모두 이러한 구분들을 가지고 논다.9,13

 

젖은 비누 한 조각처럼, 의미(meaning)는 우리 곁을 미끄러져 지나간다. 우리는 정립된 정의(established definitions)를 가지고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우리가 말하면서도 의미하지 않는 것 속의 모호성(ambiguity)과 씨름해야 한다.13 이러한 의사소통의 불일치(communicative discrepancy)는 의미론적으로(semantically) 추적할 수 있는 여러 관습적 함축(conventional connotations)을 가진 인간의 단어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분석은 함축들이 즉각적인 인간 경험(immediate human experience)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비누를 다루는 과정에서, 비누가 속한 세계는 “명시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이해된다(not explicitly grasped, it is implicitly understood).”34(p257) 비누와 같이 하나로 고립된 사물(single, isolated object)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인간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세계의 일부이며, 사물들 사이에는 수많은 역동적 관계(dynamic relations)가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과 퐁주는 그러한 세계 속 경험의 표현(expression of experience)을 자신들의 철학적·시적 탐구의 전면에 놓는다. 우리는 철학 시리즈의 이 새로운 국면에 실릴 탐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의 지속적인 문제들(persistent problems)은 이러한 성격의 탐구에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보는 상식적 이해에 대해 벤야민이 왜 반발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들이 의식적 존재(conscious beings)이며, 우리의 의식, 예를 들어 우리의 지식(knowledge)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도구적으로(instrumentally) 사용한다는 생각에 고착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 이해는 빈약하다(bare).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단순히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다음 그러한 정신적 정보(mental information)를 타인에게 명확히 표현한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14 이 생각은 세계(world)34와 자신의 언어를 우리에게 표현하는 사물들을 망각한다. 그러한 망각(forgetfulness)에 맞서기 위해, 벤야민은 독자들에게 음악, 조각, 심지어 램프조차도 비록 침묵하는 언어이기는 하지만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근본적 직관(fundamental intuition)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11,14 “사고를 위한 더 구성적인 조건(more constitutive condition for thinking)”19(p45), 그리고 어쩌면 의학교육의 지속적 문제들을 재상상하기 위한 조건은 경험의 표현으로서의 언어(language as expression of experience)13이다.

 

언어가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함께 묶는지 더 확고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벤야민의 번역(translating)에 관한 견해12를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의상 번역은 결코 원본(original)과 동일할 수 없다. 만약 동일하다면 그것은 완전히 중복적(redundant)일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은 어떤 원본적인 것(something original)에 닿아 있지만,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원본을 거스른다(defies the original). 따라서 번역은 원본과 친밀한 “불일치의 관계(relation of discrepancy)”를 가진다.23(p77) 사물들의 침묵하는 언어(mute languages of things)에 관한 벤야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경험의 한가운데에서 번역의 위치(position of translation)를 점유한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표현적 언어(expressive language), 예컨대 독일어에서 프랑스어로 의미를 번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침묵하는 언어, 예컨대 비누의 언어를 표현적 언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비누(soap)’와 같은 표현적 단어는 경험의 특정 측면을 포착하고 부각하지만, 결코 모든 것을 포착하지는 못한다. “만약 단어가 (…) 모방이나 정확한 복제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단순한 반복이 될 것이다. 단어는 (…) 순전한 중복일 것이다.”25(p187) 따라서 우리는 인간 경험의 근본 조건(fundamental condition for human experience)은 언어의 언어가 번역(the language of language is translation)35이라는 것이라고 제안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일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 속의 세계(world in translation)가 인간의 언어, 경험, 사고를 형성한다. 이것은 결정하려는 충동(urge to determine)이 아니라, 주의 깊음(attentiveness)듣고자 하는 의지(willingness to listen), 즉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을 들을 준비(readiness)를 요구한다.

 

1. 의미는 '젖은 비누'처럼 미끄럽고 완벽하게 잡히지 않는다

  • 우리는 단어에 '사전적 정의'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통해 정확히 소통하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화를 해보면 내가 의도한 바가 100%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오해가 생기곤 합니다.
  • 글쓴이는 이를 '젖은 비누'에 비유합니다. 손에 쥐려 할수록 미끄러져 나가는 젖은 비누처럼, 단어의 '의미' 역시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하나로 고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사전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사물들과 맺는 복잡하고 생생한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누라는 단어 속에는 비누의 촉감, 향기, 씻을 때의 기분 등 우리가 겪은 세계의 경험이 녹아있어 단어 하나로 무 자르듯 정의할 수 없습니다.

2.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다

  • 우리가 흔히 가지는 언어에 대한 착각과 발터 벤야민의 관점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흔한 착각 (도구적 언어관): 언어는 내 머릿속에 있는 '정보'나 '지식'을 타인에게 배달하는 수단(도구)일 뿐이다.
    • 벤야민의 관점 (표현적 언어관): 이런 생각은 너무 빈약하다. 언어는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라 '경험의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조각상, 음악, 조명 등)은 비록 말은 못 하지만,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경험하게 하므로 나름의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3. 인간은 세상의 '침묵의 언어'를 사람의 말로 '번역'하는 존재다

  • 글의 후반부는 번역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원본의 의미를 100% 똑같이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필연적으로 원래 의미의 일부가 변하거나 빠지게 됩니다.
  •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도 이와 똑같습니다. 우리는 비누를 만지며 느끼는 그 풍부하고 복잡한 '침묵의 경험(원본)'을 인간의 단어인 '비누(번역본)'로 번역해냅니다. 단어는 경험의 일부를 포착할 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 따라서 우리는 오만하게 "내가 내 언어로 세상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세상의 사물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경험(침묵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주의 깊게 들어주려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 요약 및 의학교육과의 연관성

  • 결론적으로 이 글은 "언어란 단순히 팩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그 풍부한 경험을 조심스럽게 번역해 내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 글쓴이는 이러한 철학적 관점이 의학교육이나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의 고통이나 상태를 단순히 차트 위의 '건조한 정보(도구적 언어)'로만 취급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환자의 생생한 '삶의 경험(표현적 언어)'을 주의 깊게 듣고 해석(번역)하려는 태도를 가지면 더 나은 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벤야민과 퐁주로부터 다음을 배웠다.

 

  • 첫째, 인간 존재는 세계에 관한 분리된 정신적 정보(detached mental information)를 의사소통을 통해 타인에게 단순히 방송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근원적으로(primordially) 그리고 친밀하게(intimately) 우리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고, 그 세계에 관여하거나 투자되어 있으며, 또는 그 안에 깃들어 있다(nested).
  • 둘째, 사물들은 자신들의 관계망(web of relations) 속에서 자신의 침묵하는 언어를 제시하거나 표현한다. 비누, 대야, 물, 손, 심지어 물고기, 돌, 개구리, 그리고 20초짜리 노래까지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관계들은 사물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형성한다.
  • 셋째, 사물에서 나오는 침묵하는 표현(mute expressions)은 더 분리되고(detached), 형식적(formal)이며, 이론적인 conceptualizations, 예컨대 ‘비누는 세제이다(soap is a detergent)’라는 개념화를 확장한다. 왜냐하면 “‘사물(thing)’은 관찰자의 분리된 관찰(detached observation)의 단순한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25(p179) 때문이다.

 

우리가 의학교육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즉각적인 인간 경험에 뿌리내린 사물들의 침묵하는 표현과 그러한 사물들에 관한 더 분리된 이론적 개념(theoretical conceptions)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 연결되어 있고 분리될 수 없다(while different, are interconnected and inseparable)”36(p65)는 것이다. 그러한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을 찾는 일은 우리가 현실의 의사소통적 행위(reality’s communicative acts)에 주의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출현하는 관념들을 번역하여 교수와 학습 경험(teaching and learning experience)을 형성하도록 도울 것이다.

 

벤야민에게서 우리는 하나의 현상학적 경고(phenomenological warning)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많은 과학(sciences)이 세계가 의미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망각(forget)’하기 때문이다.14,36 “원래는 세계에 속하고 그 안에서 자리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던 사물들은 이제 그 경계(boundaries)를 벗겨내어지고,” “무차별적인 세계(indifferent world)” 속에 던져진다.34(pp66–7) 인간, 그리고 확장해서 말하면 우리 의학교육자들은 의미를 일방적으로 확립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정하는 것보다 덜 분리되어 있고(less detached), 덜 통제하고 있을 수 있다(less in control). 사물들의 두께와 밀도(thickness and density of things)는 세계의 복잡성(complexity)을 길들이려 시도하는 정확하고 분리된 개념적 지식(correct, detached, conceptual knowledge)을 휘두르는 것보다, 인간 조건(human condition)에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인 토대를 이룬다.37


이 시리즈에 대한 우리의 목표 Our aims for this series 

왜 우리가 TLM의 의학교육에서의 철학(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 시리즈의 최신 진화를 소개하기 위해, 언어와 번역에 관한 벤야민의 포괄적이지만 다소 독특한 사상으로 눈을 돌리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벤야민의 사상을 현상학적 렌즈(phenomenological lens)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현상학적 철학은 세계의 경험을 공식화하고, 너무 자주 간과되거나 지나쳐지거나 잊혀지는 세계와의 우리의 접촉을 불러일으킨다(a phenomenological philosophy formulates an experience of the world, evokes our contact with the world too often overlooked, passed by, or forgotten)”25(p176)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에서 우리는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의 탐색을 의학교육을 조사하는 정당하고 엄밀한 방법(legitimate and rigorous way of investigating medical education)으로 장려함으로써, 간과되어 온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한다.

 

벤야민의 언어와 번역 개념을 통해, 우리는 그의 지적 작업에서 비판적(critical)이면서 동시에 생산적(productive)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14

 

  • 첫째, 벤야민은 특정 현상에 관한 주어진 전제들(presuppositions)의 집합을 흔들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비판적이다.
    • 언어에 대한 ‘충격적(shock)’ 해석, 즉 언어를 표현의 비은유적 수단(non-metaphorical means of expression)으로 제시함으로써, 벤야민은 인간 경험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그리고 간과된 측면들을 전면에 드러낸다.
  • 둘째, 번역 행위(acts of translation)는 또한 생성적(generative)이다. 그것들은 차이(difference)를 위한 공간을 연다.
    • 철학자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이 경험 연구(empirical research)에 영감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는 철학에 대해 썼듯이, “그것은 사실의 생산(production of facts)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사실들이 알 수 있게, 아니 차라리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이론적 기법(theoretical techniques)을 설계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38(p12, tranls. SS)

 

따라서 벤야민과 함께, 우리는 이 철학 시리즈의 새로운 국면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 문화적 현실(cultural reality)의 미세한 세부사항들(minute details)이 대담한 이론화(daring theorizing)와 결합될 때,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에 대한 우리의 동시대적 경험을 형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17
  • 보건의료전문직(healthcare professionals)을 개발하기 위해 어떤 말(words) 또는 침묵하는 언어(muted languages)가 번역을 필요로 하는가? 예를 들어 시(poetry), 문학(literature), 예술(art), 역사(history)를 통해서도 말이다.
  • 예컨대 자연의 목소리(voice of nature)는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가? 또는 AI와 기술(AI and technology)의 번역된 목소리는 어떤 소리를 내는가?
  • 감정(emotion)과 음악(music)의 언어가 보건의료와 보건전문직교육(health professions education) 안으로 들어올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예컨대 수술 기구(operating instruments)와 인공호흡기(respirator machines)의 침묵하는 언어는 학습 경험(learning experiences)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 또는 더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누구의 언어가 오역(mistranslated)되었는가? 또는 번역을 통해 추가적인 공간(additional space)을 필요로 하는가? 누구의 언어 또는 번역은 들리지 않았는가?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을 통해, 우리는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을 진전시킬 그러한 관념적 개방성(ideational openness), 변화(change), 그리고 어쩌면 ‘충격(shock)’까지도 탐색하고자 한다.

 

1. 잊혀지고 소외된 '진짜 경험'에 불을 켜기

  • 병원이나 의대라는 공간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치거나, 잊어버리는 수많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현상학(phenomenology)이라는 철학적 렌즈를 빌려와, 이렇게 간과되었던 '세계와의 접촉(경험)'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합니다.
  • 눈에 띄지 않지만 서로 은밀하게 연결된 관계들(벤야민이 말한 "비밀스러운 친연성")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의학교육의 숨겨진 문제들을 짚어내는 매우 훌륭하고 엄밀한 연구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2. 당연한 것을 뒤흔들고(비판적), 새로운 상상을 돕는(생산적) 철학

  • 벤야민의 철학을 의학교육에 적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 비판적 힘 (당연함 흔들기):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던 전제들에 '충격'을 주어 뒤흔듭니다. 앞서 말했듯 언어가 단순히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라는 낯선 시각을 받아들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인간 경험의 새로운 측면들이 보이게 됩니다.
    • 생산적/생성적 힘 (새로운 공간 만들기): 여기서 '번역'은 원본의 단순한 복사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다름(차이)'을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철학은 단순히 딱딱한 팩트(사실)를 캐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사실'들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역할을 합니다.

3. 의학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파격적인 질문들

  •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이 시리즈는 기존 의학교육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새롭고 파격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 사물과 기계의 언어: 메스(수술 기구)나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 기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침묵하는 언어"), 이들이 의대생들의 학습 경험과 진료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 새로운 목소리의 번역: 좋은 의료인을 키우기 위해 시(poetry), 예술, 문학 같은 인문학적 언어나 '자연의 목소리'를 어떻게 의료 현장으로 '번역'해 올 수 있을까?
    • 기술과 감정의 개입: AI나 기술의 목소리, 또는 인간의 감정과 음악이 병원과 교육 현장에 들어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소외된 목소리 찾기 (정치적/비판적 관점): 병원이라는 억압적일 수 있는 공간에서, 과연 '누구의 언어'가 잘못 번역되거나 묵살당하고 있을까? (예: 환자, 간호사, 소수자의 목소리 등)

 

 

Teach Learn Med. 2024 Jan-Mar;36(1):99-106. doi: 10.1080/10401334.2023.2215755. Epub 2023 Jun 2.

Transformative Leadership Training in Medical Education: A Topology 

 

 

 

📚 의학교육, 왜 늘 제자리걸음일까? — 변혁을 이끄는 다섯 층의 '토폴로지'

Meitar D, Marom D, Lusk P, Kalet A. Transformative Leadership Training in Medical Education: A Topology.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 2024;36(1):99–106. (Series: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


새 교수법을 도입하고, 평가 도구를 바꾸고, 최신 술기 시뮬레이터를 들여놓고… 우리는 의학교육을 '개선'하려고 늘 무언가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정작 근본적인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그 답을 꽤 흥미로운 곳에서 찾습니다. 바로 철학(philosophy) 입니다. 저자들은 "기술적인 손질만으로는 의학교육이 진짜로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철학에서 평가까지를 하나로 잇는 다섯 층의 토폴로지(topology) 라는 독특한 틀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틀을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운영했던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 이야기까지 들려주거든요. 같이 따라가 봅시다. 🙂

🔧 "일단 고치고 보자"의 함정

저자들이 가장 먼저 짚는 건, 많은 의학교육 리더들이 빠지기 쉬운 합리적-기술적 문제해결(rational-technical problem-solving) 방식의 한계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의학교육자들은 대부분 임상의예요.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처치하는 데 익숙하죠. 그런데 그 사고방식을 교육 개혁에 그대로 가져오면, 눈앞의 급한 불만 끄게 됩니다. "그래서 이걸 무엇을 위해(what for), 왜(why)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건너뛰게 되고요.

저자들이 든 예시가 정말 뼈아픕니다.

"이런 현상의 흔한 예가 있다. 교육자들이 기존 교육과정 구조가 과연 바람직한지를 먼저 따져보기보다, 새로운 교수법을 그 구조 안에 끼워 맞추느라 엄청난 시간을 쏟는 경우다."

"A common example of this phenomenon is when educators spend a great deal of time struggling to fit new instructional methods into existing curricular structures rather than considering the desirability of those structures in the first place."

 

뜨끔하지 않으세요? 우리는 '이 구조 자체가 옳은가?'를 묻기 전에, 새 방법을 낡은 틀에 욱여넣느라 진을 빼곤 합니다. 그래서 개혁이 늘 점진적(incremental)이고 불충분한 데서 멈추는 거죠.

 

저자들의 핵심 주장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이상적인 의사상(ideal physician), 그리고 그런 의사가 '되어가는(becoming)' 교육 과정에 대한 더 크고 깊은 철학적 비전을 함께 공유하지 않는다면, 의학교육을 바꾸려는 노력은 변혁적이기보다 점진적이고 불충분한 데 그치기 쉽다."

"Without reference to a shared understanding of a larger, more profound philosophical vision of the ideal physician and of the educational process of 'becoming' that physician, efforts to change medical education are likely to be incremental and insufficient rather than transformative."

 

요컨대, "어떤 의사를 길러낼 것인가" 라는 철학적 합의 없이는 어떤 개혁도 진짜 변화(transformation)가 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 '토폴로지'라는 낯선 단어

자, 그럼 제목에도 나오는 토폴로지(topology) 가 뭘까요? 수학에서 빌려온 개념인데, 저자들의 설명이 친절합니다.

"토폴로지(topology)는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고, 비틀리고, 늘어나는데도 그 자체를 유지하는 구조를 설명하는 수학적 개념이다."

"A topology is a mathematical concept describing a structure which maintains itself despite constantly morphing, twisting, or stretching."

 

저자들이 대표 이미지로 가져온 게 바로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 예요.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끊기지 않으면서 계속 이어지는 그 띠 말이죠.

 

왜 하필 뫼비우스의 띠일까요? 다섯 개의 층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통행 계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섯 층은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리더는 이 층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야(move back and forth) 하고,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패러다임(paradigm) 뒤에 숨은 철학적 전제들을 끄집어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 철학에서 평가까지, 다섯 개의 층

이제 본론입니다. 다섯 층이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이게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볼게요. 저자들은 모든 층을 '의사–환자 의사소통(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교육이라는 하나의 사례로 꿰어서 설명하는데, 이게 이해를 정말 쉽게 해줍니다. 1977년 조지 엥겔(George Engel)이 제안한 생물심리사회 모델(biopsychosocial model) 이 그 주인공이에요.

1️⃣ 철학(Philosophy) — 가장 추상적인 질문들

가장 근본적인 층입니다. 인간의 존재, 지식, 활동 전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자리예요.

  • 건강이란 무엇인가?
  • 건강은 누가 정의하는가? 건강을 지킬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전문성(expertise)이란 무엇인가? 배움(learning)이란 어떻게 일어나는가?

저자들의 통찰이 멋진 지점은 여기예요. 건강을 '생물학적 수명 연장' 으로 정의하느냐, 아니면 '사회적으로 번영하고 꽃피우는 것' 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의사의 역할도, 의학교육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진다는 겁니다. 전자라면 의사는 더 좋은 약과 기술을 찾는 사람이 되겠지만, 후자라면 훨씬 더 넓은 역할을 맡게 되겠죠.

💬 의사소통 사례 (1층): 엥겔의 생물심리사회 모델처럼, 인간 소통이 건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근본 이론을 이해하는 단계. 의사소통 교육에 시간과 자원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근거'가 여기서 마련됩니다.

2️⃣ 교육철학(Philosophy of Education) — 철학과 실천을 잇는 연결고리

저자들이 "교육 실천의 핵심 연결고리(linchpin)" 라고 부르는 층입니다. 1층의 추상적 철학을 교육의 언어로 '번역'하는 자리예요.

핵심 질문은 이겁니다. "교육받은 사람이란 누구인가(Who is the educated person)?" 의학교육에 적용하면 이렇게 되겠죠.

  • 우리가 길러내려는 '교육받은 의사상(portrait of the educated physician)' 은 어떤 모습인가?
  • 그 의사는 어떤 덕목과 가치를 지녔는가? 환자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 그런 의사를 길러낼 이상적인 교육자는 누구이며, 그는 또 어떻게 길러져야 하는가?

💬 의사소통 사례 (2층): 1980년 엥겔이 모델의 임상 적용을 제안하면서, '교육받은 의사'란 정교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습니다. 그 결과 의료 면담(medical interview) 교육이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주류 교육'으로 올라섰죠.

 

참고로 저자들은 이 2층에서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 PIF) 을 다룬다고 밝힙니다. '이상적인 의사상'을 그리는 작업 자체가 곧 정체성 형성의 문제라는 거죠. 그러면서 정체성과 지식·술기를 따로 떼어 보는 이원론(duality)을 거부한다고 분명히 합니다. 이 부분은 PIF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특히 곱씹어볼 만합니다.

3️⃣ 실천 이론(Theory of Practice) — 원칙을 설계하는 자리

2층에서 그린 큰 그림을 이제 교육 실천을 안내하는 원칙(principles) 으로 바꾸는 단계입니다. 거창한 목표 선언에서 멈추지 않고, 교육과정·교수법·교육자 양성·학습 환경 설계로 구체화하는 거죠.

 

흥미로운 건, 저자(Fox)가 이 '번역'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눈다는 점입니다.

  1. 이상적 조건에서의 지도 원칙 (guiding principles in ideal conditions)
  2. 현실 조건을 고려해 그 원칙을 의식적으로 타협하기 (consciously compromising those principles)

이상과 현실 사이의 줄타기를 '무의식적 포기'가 아니라 '의식적 타협' 으로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 의사소통 사례 (3층): 엥겔의 모델은 면담 교육법, 교수자 양성 프로그램, 교재, 단계적 감독 하의 실습(graded supervised rehearsals), 그에 맞는 실습 환경으로 직접 번역됩니다. 1950년대 로체스터 의대와 그 도시의 여섯 개 병원이라는 '현실'에서 시작됐죠.

4️⃣ 실행(Implementation) — 매일의 교육 현장 

3층의 원칙을 실제 시간과 장소에서 펼쳐 보이는 층입니다. 교육과정 운영, 교수자 훈련, 강의, 모델링, 스캐폴딩, 감독, 피드백, 과제 부여… 우리가 매일 하는 그 모든 일이 여기 들어갑니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이 모든 활동에서 그 일을 떠받치는 실천 이론이 눈에 보이고 명시적이어야(visible and explicit) 한다는 것. 그냥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요.

💬 의사소통 사례 (4층): 면담 교육자가 개방형 질문과 폐쇄형 질문을 구분하고, 학습자가 '왜 이 기법이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내면화하도록 가르치며, 결국 실제 면담에서 능숙하게 시연하도록 이끄는 복합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일.

5️⃣ 평가(Evaluation) —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마지막은 성공의 정도를 가늠하고 개선점을 찾는 층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바로 뫼비우스의 띠가 빛나는 지점이에요.

학생이 의사소통 시뮬레이션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봅시다.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 실행(4층)의 문제일 수도 (불명확한 학습 내용, 부실한 교육, 형편없는 피드백)
  • 실천 이론(3층)의 문제일 수도 (실제 환자 대신 시뮬레이션을 택한 선택 자체)
  • 교육철학(2층)의 문제일 수도 (의사소통을 임상 전 단계에 가르쳐야 한다는 전제)
  • 더 나아가 철학(1층)의 문제일 수도 (의사의 의사소통 능력이 건강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가정 자체)
  • 물론 평가(5층) 자체의 측정 타당도 문제일 수도 있고요

저자들은 이것을 계층적 분석(layered analysis) 이라고 부릅니다. 평가가 다른 층들과 단절된 채로는 무엇이 진짜 성공인지, 무엇이 문제를 일으켰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는 거죠.

 

이 다섯 층의 관계를 가장 잘 요약한 문장이 결론에 있습니다.

"어느 한 층(level)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 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놓치게 될 뿐이다. 그러면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지고, 따라서 그 일을 잘 해내기도 어려워진다."

"to ignore any one level does not mean it disappears, but rather that its meaning is missed—which makes it harder to know exactly what one is doing, and thus harder to do it well."


🏫 책상 위 이론이 아니다 — 실제 프로그램 이야기

이 토폴로지가 단순한 개념 놀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저자들은 실제 운영 사례를 공유합니다. 2018–2020년 이스라엘 만델 교육리더십 학교(Mandel School for Educational Leadership) 에서 진행한 의학교육 리더 양성 프로그램이에요.

  • 참가자: 이스라엘 5개 의대 전체를 대표하는 선임 의사 25명 + 의학교육자 1명 (학장과 병원장의 추천·지원을 받음)
  • 기간: 두 개 코호트, 각각 9개월에 걸쳐 30일 전일 과정, 마지막에 3일 리트릿
  • 배경: 5개 의대 전반의 교육과정 현대화 필요성, 그리고 2014년 국제검토위원회(International Review Committee) 보고서의 비판

프로그램은 다섯 층의 토폴로지를 기획 틀이자 핵심 교육 렌즈로 삼았습니다. 교육학 자체를 의학과 분리해 따로 공부하고, 플렉스너 보고서(Flexner report)와 2010년 카네기 보고서(Carnegie report) 같은 텍스트를 읽으며 의학교육의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뜯어봤고요. 플라톤·마이모니데스의 이상부터 엥겔의 생물심리사회 의학, 일리치(Illich)의 문화 기반 의학까지 다양한 의학관을 비교했습니다. 자기 의대의 사명선언문이 입학 기준·교육과정·평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직접 들여다보는 현장 연구도 포함됐죠.


🌱 그래서, 어떤 리더십인가?

이 논문이 그리는 리더십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카리스마 있는 한 명의 리더'와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들은 이 토폴로지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합니다.

"이 토폴로지는 하향식(top-down) 리더십, 즉 변혁적 리더십 이론가들이 '거래적(transactional)'이라 부른 형태의 리더십을 뒤엎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대신 다양한 목소리를 끌어들이고, 전제들과 씨름하며, 지금 이 사회의 맥락에서 의학이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공유된 비전을 향해 자라나는 리더십을 지향한다."

"This topology aims to subvert a form of leadership which is top-down, or what Transformational Leadership Theorists have termed 'transactional,' to support an approach to leadership which grows through involving a range of voices, grappling with assumptions, and aiming toward shared visions of what medicine should be in the context of the society at hand."

 

그래서 리더십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육 모델에서 리더십은 한 명의 리더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공동체가 공유된 원칙을 끊임없이 재평가하고 다시 표현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수행되는 것으로 본다."

"In our training model leadership is not perceived as being enacted by a singular leader but is rather performed by the professional community as a continuous reevaluation and re-articulation of shared principles."

 

여기서 실천공동체(communities of practice) 라는 사회적 학습 이론이 바탕에 깔립니다. 리더십이란 결국 공동체가 함께 전제를 따지고, 갈등을 견디고, 공유된 비전을 빚어가는 집단적 과정이라는 거죠. 저자들은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의학교육자들이 처음엔 "실천부터 하자"며 철학적 패러다임을 따지라는 요구에 발끈하기도 한다고요. 하지만 그 긴장(tension)과 충돌이야말로 "맷돌에 갈아 넣을 곡식(grist for the mill)", 즉 토론의 자양분이 된다고 말합니다.


🔑 마무리하며: 공식이 아니라 렌즈

이 논문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겁니다.

"토폴로지는 공식(formula)이 아니다. 그것은 의학에 주어진 규범과 관행을 평가하고, 번역하고, 질문하고, 다시 생각하기 위한 렌즈(lens), 또는 논리다."

"The topology it is not a formula. It is a lens, or logic for evaluating, translating, questioning, and reconsidering given norms and practices in medicine."

 

저자들도 1년짜리 프로그램만으로 참가자들이 다섯 층을 완벽하게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고 솔직히 인정합니다. 다만 "의학교육에서 떠오르는 모든 질문 하나하나에 패러다임적 쟁점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것, 그것을 긴 여정의 첫걸음으로 봅니다.

 

교육과정 개편, 평가 모델 전환, AI 도입… 우리 앞에도 늘 새로운 '문제'들이 쌓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우리에게 잠깐 멈춰 서서 묻게 만듭니다. "지금 나는 새 도구를 낡은 틀에 끼워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길러내려는 의사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기술적 손질에 바쁜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곱씹어볼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서론 Introduction 

의학교육 리더는 미래의 의사들이 강건한 의학 전문직 정체성(medical professional identity)을 함양할 뿐 아니라, 의학 분야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최첨단 지식, 새로운 역량, 기술 혁신을 숙달하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변혁적 목표에도 불구하고, 교육 리더들은 흔히 주로 실용적 수준(pragmatic level)에 초점을 맞추며, 즉각적 필요를 우선시하고 고정된 패러다임 안에서 기능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현상은 부분적으로 많은 의학교육자들이 급성 상황에서 의사결정하는 데 익숙한 임상의사(clinicians)라는 사실에 기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기술적 문제해결 접근(rational-technical problem-solving approach)

 

  • 가까운 문제(proximate issues)에만 주의를 기울이거나 문제를 피상적으로 다루는 데 그치며,
  • “당면한 문제(the problem at hand)”를 정의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기저 가정(underlying assumptions), 그리고 계획과 개입의 바탕에 놓인 “무엇을 위해(what for)”와 “왜(why)”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을 무시할 수 있다.

 

이 현상의 흔한 예는, 교육자들이 기존 교육과정 구조 자체가 바람직한지 먼저 검토하기보다 새로운 교수법을 기존 교육과정 구조에 맞추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애쓰는 경우이다. 이러한 실천은 사회의 보건의료 요구를 폭넓게 다루는 의학교육의 잠재력을 제한한다.

 

우리는 다른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문직 안에서 효과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학교육자는 의학과 의학교육의 철학(philosophies)과 이론(theories)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며, 조직적, 교육과정적, 교수학습적 계획과 개입을 구상할 때 그것들에 의해 안내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2 이러한 의학교육 리더 개발 과정에는,

 

  • 맥락 속에서 현재의 의학 실천과 의학교육을 이끄는 철학적 및 패러다임적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적 탐구가 포함되어야 하며,
  • 동시에 대안적 패러다임(alternative paradigms)
  • 그것이 의학교육 정책 및 실천으로 어떻게 번역되는지에 대한 노출도 포함되어야 한다.

 

개인적 수준에서 이러한 작업은 지적 유연성(intellectual flexibility),3 즉 아이디어의 세계와 실천의 세계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지지적인 교수학습 프레임워크(pedagogical framework)를 제공함으로써 리더가 이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단련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프레임워크, 즉 철학적 아이디어와 교육 실천을 변증법적으로 연결하는 연속선상에 놓인 다섯 개의 구별되는 수준을 은유적으로 “토폴로지(topology)”라고 부른다. 토폴로지는 끊임없이 형태가 변하고, 비틀리고, 늘어나더라도 스스로를 유지하는 구조를 설명하는 수학적 개념이다. 토폴로지는 구조를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정의한다. 뫼비우스 띠(Mobius Strip)는 고전적 토폴로지이다. 그것은 계속 비틀리면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한 면만 가진 비가향성 표면(single-sided non-orientable surface)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제안하는 토폴로지를 가정을 질문하고, 엄밀한 대화에 참여하며, 실천 속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해왔다.

 

5수준 연속체를 토폴로지로 개념화하면, 의학교육의 리더들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으로서 여러 수준 사이를 지속적으로 이동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는 점으로 이 은유를 확장할 수 있다. 리더들은 의학과 의학교육의 지배적 패러다임(reigning paradigms)을 이끄는 철학적 가정을 감지하고 탐구하는 법을 배우며, 더 강건한 대안을 개발해야 한다. 모든 리더십 활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노력은 그 범위에 따라 전문직, 국가, 지역, 또는 기관에 특수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해당 공동체나 문화의 맥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토폴로지의 수준들을 설명하고, 그것이 적용된 역사적 사례를 공유한 뒤, 토폴로지의 원칙에 의해 안내되고 Mandel School for Educational Leadership에서 원래 개발된 실험적 의학교육자 리더십 프로그램에 대해 보고한다.4

의학교육 변혁의 토폴로지 The topology of medical education transformation 

이 개념적 및 방법론적 프레임워크는 교육철학 학자이자 교육 리더 훈련 실천가였던 Seymour Fox, Daniel Marom, Israel Scheffler의 작업에서 직접 도출되었다.5 이 프레임워크의 첫 번째 형태는, 복잡한 실제 조건(messy real-world conditions)에서 교육 실천을 계획, 실행, 평가해야 하는 일반 교육 리더 훈련에서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에 적용되었다.6,7 Marom은 이 적용을 인간 개선(human improvement)을 지향하는 다른 전문직의 교육 리더에게 확장하였다.8,9 이후 저자들, 즉 Marom과 Meitar는 이 다섯 수준을 보건전문직교육(health professions education)에 사용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조정하였다.

 

수준 1, 철학(philosophy)은 철학적 아이디어가 가장 추상적인 수준이다. 이 수준에서는 인간 존재, 지식, 활동의 모든 영역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제시한다. 의학의 맥락에서 여기에는 건강, 사회, 전문직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포함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 인간의 건강(human health)이란 무엇인가?
  • 건강이 어떻게 정의되고, 성취되고, 훼손되고, 회복되는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 건강을 증진하고 유지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사회, 전문가, 개인의 구체적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며,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이들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
  • 전문성(expertise)이란 무엇인가?
  • 전문가들은 건강 증진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 학습(learning)이란 무엇인가?
  • 전문성의 맥락에서 학습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되는 아이디어들은 우리가 그것을 명시적으로 논의하든 그렇지 않든, 교육 실천과 권력 역학(power dynamics)의 토대를 제공한다.

  • 예를 들어 의학에서 건강은 생물학적 장수(biological longevity) 또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이라는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각각의 정의를 가지고 연속선 위에서 이동하면, 의사의 모습(portrait), 실천(practice), 교육(education)에 관해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 집합이 도출된다.
  • 예컨대 건강을 생물학적 장수로 정의한다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생물학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의사의 역할은 새로운 약물이나 더 나은 기술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된다.
  • 반면 인간을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면서 번영하고 충만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로 정의한다면, 이러한 개념화는 의사에게 전혀 다른, 더 확장된 역할을 제안한다.

의사-환자 의사소통의 예: 수준 1
The example of 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level 1
 

현대 의학교육과 매우 관련성이 높은 주제인 탁월한 의사-환자 의사소통(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을 보장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토폴로지가 유용한 리더십 렌즈를 제공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역사적이면서도 현재적인 사례이다. 많은 의과대학은 여전히 임상 의사소통 기술(clinical communication skills)에 교육과정 및 평가의 관심과 시간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정당화할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수준에서는 예를 들어 의학의 생물심리사회 모델(biopsychosocial model of medicine)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질병과 치유, 그리고 건강을 촉진하는 인간 의사소통의 역할에 관한 매우 영향력 있는 일반 이론으로, 1977년 미국 내과의사이자 의학교육 리더였던 George Engel이 제안하였다.10 이러한 이론은 근본적인 철학적 지지와 안내를 제공한다.

 

수준 2, 교육철학(educational philosophy)은 교육 실천의 핵심 연결축(linchpin) 역할을 한다. 이 수준에서는 넓은 철학적 질문들이 교육적 노력의 높은 수준의 목적과 수단이 결정되는 수준으로 “번역(translate)”된다. 여기에서 개인의 철학은 교육의 바람직한 결과와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규범적 개념(normative conception of education)을 안내한다.

  • 교육받은 사람(educated person)은 누구인가?
  • 이러한 되어감(becoming)을 가능하게 하는 성숙과 학습의 과정은 무엇인가? 

의학교육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료전문직 공동체와 다른 핵심 이해관계자들은 수준 1의 아이디어를 교육받은 의사의 초상(portrait of the educated physician)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 이 의사는 누구이며, 그의 또는 그녀의 덕성(virtues)과 가치(values)는 무엇인가?
  • 그러한 의사는 수준 1에서 정의된 건강 증진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이를 위해 누구와 협력해야 하며,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
  • 이 의사와 환자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와 상호작용 방식은 무엇인가?
  • 이들은 진단(diagnoses)과 예후(prognoses)에 어떻게 도달하고 치료(treatments)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 어떤 교과 내용(subject matters)과 학습 경험(learning experiences)을 통해 의학 학습자는 이러한 초상을 체화하게 되는가?
  • 그들의 학습이 내면화되고 성장하는 과정은 무엇인가?
  •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시킬 이상적인 의학교육자(ideal medical educator)는 누구인가?
  • 그 교육자는 어떻게 훈련되어야 하는가? 

의사-환자 의사소통의 예: 수준 2
The example of 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level 2
 

1980년에 Engel은 환자 진료에서 생의학적 관점(biomedical perspectives)심리사회적 관점(psychosocial perspectives)을 통합하고, 치료적(therapeutic)인 것으로서 의사-환자 관계의 중심성을 강조한 생물심리사회 모델의 임상적 적용을 제안하였다.11 이 모델은 의학교육자들이 교육받은 의사를 매우 정교한 의사소통 기술을 갖추어야 하는 사람으로 개념화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Engel의 작업은 의학교육이 실행되는 방식에서 변혁적 변화를 촉발했으며, 여기에는 의학교육자가 생물심리사회적 임상 실천가(biopsychosocial clinical practitioners)가 되도록 보장하는 것, 그리고 의학 면담(medical interview)의 체계적 교육을 비교과 활동(extracurricular activity)이 아니라 주류 활동(mainstream activity)으로 강조하는 것이 포함되었다.12,13

 

수준 3은 Fox와 Scheffler가 “실천 이론(theory of practice)”이라고 설명한 수준이다. “수준 2” 질문에 대한 답은 리더에 의해 교육 실천의 실제 현실로 번역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교육적 노력의 더 큰 목적과 목표에 대한 선언, 그것이 아무리 영감을 주고 명료하며 실행 가능해 보이더라도,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교육 실천을 안내하는 원칙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수준에서 철학적 아이디어는

 

  • 교육과정(curriculum)과 교수학습(pedagogy),
  • 교육자 교육(education of educators),
  • 학습에 도움이 되는 환경 설계(design of settings conducive to learning)로 번역된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러한 토대들이 독립적인 기능-도구적 영역(functional-instrumental domains)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수준 1과 수준 2의 아이디어로부터 일관되게 흘러나와 실제 조건 속의 구체적 교육 실천을 지시하는 적용(applications)으로 정의된다는 점이다.1 Fox는 이 수준의 번역 과정이 두 개의 별도 단계로 나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 a) 이상적 조건에서의 안내 원칙(guiding principles in ideal conditions),
  • b) 특정한 실제 조건을 고려하여 그러한 원칙들을 의식적으로 타협하는 것(consciously compromising those principles).

 

의사-환자 의사소통의 예: 수준 3
The example of 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level 3
 

Engel의 의학의 생물심리사회 모델은 의학 면담 교육 접근으로 직접 번역되었다. 여기에는 이 방식의 면담을 의사들에게 가르칠 교수진을 훈련하는 프로그램, 면담 과목의 교재 역할을 한 교과서, 의학 학습자들이 이러한 면담을 단계적으로 지도받으며 연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수법, 그리고 그러한 연습에 적절한 환경이 포함되었다. 이 작업은 1950년대 University of Rochester School of Medicine and Dentistry와 그 도시의 여섯 병원이라는 실제 조건 속에서 시작되었다.a

 

수준 4, 실행(implementation)은 수준 3에서 공식화된 안내 원칙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수행하는 것에 주로 관심을 둔다. 이는 그 원칙들이 단순히 독립적인 기술적 실천(independent technical practices)이 아니라, 그 원칙의 명시적 구현(enactments)으로 실행된다는 뜻이다. 수준 4는

 

  • 교육과정 계획(curriculum planning)과 교수진 훈련(faculty training), 학습자와의 상호작용, 말하기, 강의하기, 모델링(modeling), 스캐폴딩(scaffolding), 감독(supervising), 보충교육(remediating), 피드백 제공, 소리 내어 읽기, 과제 부여
  • ...등 일상적 작업을 반영한다.

 

이러한 각각의 활동에서 그 작업을 안내하는 실천 이론(theory-of-practice)은 눈에 보이고 명시적이어야 한다.

의사-환자 의사소통의 예: 수준 4
The example of 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level 4
 

교육 체제는 의학 면담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예를 들어

 

  •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s)과 폐쇄형 질문(closed-ended questions)을 구별할 수 있고,
  • 학습자가 이러한 기법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고 내면화하며,
  • 궁극적으로 실제 면담에서 이 기술을 정교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교수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복합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수준 5, 평가(evaluation)는 교육적 노력의 성공 정도를 판단하고 개선 영역을 확인하는 수준이다. 평가는 측정할 가치가 있는 성공 지표(indicators of success)가 무엇인지 설정하고, 그러한 지표의 해석을 안내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실천가들은 기저 가정에 도전하고, 결함을 확인하기 위해 다섯 수준 각각과 그 사이에서 활동을 재평가하게 된다. 다른 수준들을 참조하지 않는다면, 평가는 성공 정도를 판단하고 성공에 기여한 요인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의사-환자 의사소통의 예: 수준 5
The example of 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level 5
 

확인된 결함은 토폴로지의 어느 수준에서든 재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 의사소통 기술 시뮬레이션 연습에서 기대 이하의 수행을 보이는 학생은, 불명확한 교과 내용, 부실한 교수, 또는 시뮬레이션에 참여한 배우들이 제공한 비효과적 피드백과 같은 실행상의 결함을 드러낼 수 있다.
  • 학생의 어려움은 또한 의사소통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실제 환자와의 실연(live rehearsal) 대신 시뮬레이션을 선택한 것과 같은 실천 이론(level 3)의 결함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 또는 의사가 된다는 것은 훈련 초기의 전임상 단계에서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는 것을 요구한다는 개념, 혹은 의학 훈련의 이상적인 지원자는 탁월한 의사소통 기술을 개발할 역량을 지녀야 한다는 개념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데, 이 둘은 모두 수준 2, 즉 교육철학(philosophy of education) 분석에 해당한다.
  • 더 나아가 수준 1 분석은 건강 결과(health outcomes)가 의사의 의사소통 기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가정을 질문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 물론 수준 5 분석에 머물며 학생의 의사소통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측정 방법의 타당도(validity)를 비판할 수도 있다.

이러한 평가 방법은 교육적 노력의 실천과 결과를 탐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층화 분석(layered analysis)”의 원칙을 반영한다.14 생물심리사회 모델과 그것의 임상적 및 교육적 함의는 수십 년 동안 엄밀하게 논쟁되어 왔다. 현재 미국 의학교육에는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에 대한 면허 및 인증 요건을 포함하여, 이러한 층화 분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강건한 활동들이 존재한다.15

 

 

뫼비우스 띠(Mobius Strip)의 은유는 이 연속체 위의 각 수준이 다른 수준들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리더십은 의학교육이라는 형태가 계속 변하는 지형(shapeshifting landscape)을 변혁하기 위한 유연성과 지식을 요구한다.

 

그림 1. 토폴로지의 다섯 수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뫼비우스 띠

 

토폴로지에 기반한 의학교육 리더십 프로그램
A medical educational leadership program based on the topology
 

의학교육 리더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의 Mandel School for Educational Leadership에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시작되었으며, 이 토폴로지를 프로그램 기획의 핵심 프레임워크이자 프로그램의 핵심 교수학습 렌즈(core pedagogical lens)로 사용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동기는 부분적으로 이스라엘의 다섯 의과대학 전체에서 교육과정을 현대화하고 의학교육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필요가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변혁적 의학교육 리더십의 필요성은 2014년 International Review Committee 보고서의 비판에 의해 더욱 부각되었다.16 그 결과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참여자는 25명의 고위 의사와 1명의 의학교육자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다섯 의과대학, 여러 병원을 대표했고, 학장과 병원 행정가의 추천 및 지원을 받았다. 프로그램은 두 개의 연속 코호트로 운영되었으며, 각 코호트는 9개월 동안 총 30일의 전일 학습을 수행하고 3일간의 리트릿(retreat)으로 마무리하였다. 교육과정은 이 논문의 제1저자 두 명이 계획하고 진행했으며, 이들은 각각 의학교육과 교육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Meitar와 Marom).

 

변혁적 의학교육 리더의 초상(portrait of a transformational medical educational leader, 수준 1과 2)은 훈련자들(DM, DM)이 대부분의 이스라엘 의과대학 학장을 포함한 광범위한 대표적 의학교육 리더들과 협의한 결과로 도출되었다. 이 맥락에서 바람직하거나 이상적인 변혁적 의학교육 리더는 다음과 같은 사람으로 개념화되었다. 그는 또는 그녀는 전체 5수준 연속체에 걸쳐 자신의 교육적 개입을 개발하며, 현재 존재하는 의학교육과 이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의학교육을 동시에 접근하는 데 열려 있고, Engel의 생물심리사회 모델을 비롯한 다양한 접근을 학습함으로써 도출된 건강과 의학에 대한 지향적 정의(aspirational definition)에 기반한다(Level 1). 이들은 이 이상을 추구하면서 현재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려 하며, 그것을 이론적 지침(Level 3)과 실제 교육 방식(level 4)으로 명료화하고 번역하며, 이러한 계획을 평가할 지표(Level 5)를 개발한다. 이러한 계획은 교육과정 단위의 계획이나 교수진 훈련과 같은 일선 활동(frontline activities)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의학교육의 이해관계자들이 이러한 이상에 따라 변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도록 설득하는 데도 적용된다.

 

프로그램의 교육과정(Levels 3, 4, 5)을 설계하면서 훈련자들은 다음을 수행하였다.

 

  • a) 수준 2의 초상에서 정의된 자질과 특성을 갖춘 의학교육 리더를 길러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목표를 공식화하였다.
  • b)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설계된 수준 3과 4의 교육과정 구성요소와 교육 경험을 개발하였다.
  • c) 성공을 의미하는 수준 5의 프로그램 성과를 정의하였다.

 

표 1은 이러한 요소들을 상세히 제시하며, 교육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실행되고 지역 맥락에 맞추어 조정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방식을 설명한다. 뫼비우스 띠가 상징하듯, 모든 프로그램 요소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정교화되었다.

표 1. 프로그램의 일반 목표, 각 목표를 다루는 교육과정 구성요소와 교육 경험, 그리고 참여자에게 기대되는 성과
Table 1. The General Aims of the Program, the curricular components and educational experiences that address each of these aims, and the anticipated outcomes for participants.
 

프로그램 일반 목표 Program General Aims 

수준 3에서 정의된 목표

  • 의학교육에서 변혁적 리더(transformational leaders)의 교육 전문직 정체성(educational professional identity)과 실제 역량(practical capabilities)을 함양한다.
  • 의학과 의학교육의 지배적 패러다임(dominant paradigms)과 프로토콜(protocols)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도록 참여자를 참여시킨다. 이는 대안적 이상 패러다임(alternative ideal paradigms)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육과정 구성요소 및 교육 경험 Curricular Components / Educational experiences 

수준 3과 4에서 반복적으로 정의됨

교육과정 구성요소(Curricular Components)

 

  • 교육학 연구(Education studies): 의학 및 의학교육과 분리된 영역으로서, 의학적 맥락 안에서 교육 리더십을 수행하기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
  • 실제와 이상으로서의 의학교육(Medical education, real and ideal): 기존 현실과 그것이 기반한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변화와 개선을 목표로 하는 현장 계획(field initiatives)을 위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고안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교육 경험(Educational experiences)

 

  • 텍스트 연구, 관찰, 숙의(deliberation), 연습을 통해 5수준 연속체 위에서 교육 실천을 보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법을 학습한다. 이는 Fox et al., 2003; Marom, 2021; Schwab et al., 1978의 텍스트에 기반한다.5,9,23
  • 교육철학(educational philosophy), 교육 기획(educational planning)과 평가 방법론(evaluation methodology), 교육자 교육(education of educators), 교수학습(pedagogy)과 교육과정(curriculum), 전문직 교육(professional education)에 대한 구조화된 도입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Buber의 인격 교육(character education) 개념, Dewey의 성장(growth) 개념, Marom et al., 2018에 나타난 유대 및 이스라엘 교육의 다양한 비전, Compton, 2007의 임상 목회 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 Kegan, 1982 및 Lewin et al., 2019의 전문직 발달 인지 이론(cognitive theory of professional development), Lewis, 2000의 일본 수업연구(Japanese Lesson Study) 등이 포함된다.24–30
  • 현재의 의학 및 의학교육 패러다임과 가능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이해하게 하는 텍스트를 읽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Flexner 보고서, Carnegie 2010 보고서가 포함된다.31,32 또한 플라톤적 이상(Platonic ideals), 마이모니데스적 이상(Maimonidean ideals), 연구 중심의 체제 기반 생의학(research-driven system-based biomedicine), 신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생물심리사회 의학(somatically informed biopsychosocial medicine), 문화 기반 의학에 대한 Illich의 개념 등을 포함하여 의학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평가한다.11,33–35
  • 현장 연구(field research)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의과대학 사명문(mission statement)을 분석하고, 그것이 입학 기준, 교육과정, 평가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관찰(observation)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교육적 디브리핑 체제(educational debriefing system)가 실행되는 장소를 방문하고 참여자를 인터뷰한다. 의학교육 행사와 학회를 참여관찰(participant-observation)하고 평가한다.
  • 보충교육(remediation), 성찰적 글쓰기(reflective writing), 피드백(feedback)에 관한 워크숍을 실시한다.
  • 의학교육의 다양한 영역, 즉 연구, 포괄적 교육과정 개발,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등에서 활동하는 국제적 변혁 교육 리더들과 만난다.

 

기대되는 실제 성과 Anticipated Practical Outcomes 

수준 1, 2, 3, 4를 통한 반복을 반영하여 수준 5에서 정교화됨

  • 기관 및 국가 수준에서 의학교육의 전문성 개발(professional development)을 우선순위로 삼는 데 헌신한다.
  • 의과대학, 병원, 지역사회 클리닉에서 기관 리더들과 협력하여 대안적 패러다임에 기반한 의학교육 계획을 시작한다.
  • 의학교육을 기관의 우선순위로 옹호하고 추가 계획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리더 집단을 구축한다.

프로그램 일반 목표 Program General Aims 

  • 의학교육을 기관 및 국가 수준에서 우선순위로 삼도록 헌신한다.
  • 의과대학, 병원, 지역사회 클리닉에서 기관 리더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대안적 패러다임에 기반한 의학교육 계획을 시작한다.
  • 의학교육을 기관의 우선순위로 옹호하고 추가 계획의 기반을 마련할 리더 집단을 수립한다.

교육과정 구성요소 및 교육 경험 Curricular Components / Educational experiences 

교육과정 구성요소

 

  • 인문학 및 리더십 연구(Humanities and leadership studies): 여기에는 철학, 문학, 시, 이스라엘 문화와 맥락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직의 교육 리더들과의 영감 있고 유익한 만남이 포함된다.

 

교육 경험

 

  • 다양한 사회적 및 전문직 배경을 가진 성취한 변혁적 교육 및 사회 리더들과 만난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교육 및 사회 리더 훈련 프로그램을 만든 초정통파 유대교 여성, 당시 이스라엘 의회에서 성노동자 보호를 개선하는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데 기여한 젊은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 시인, 작가, 역사가, 철학자 등 인문학 분야의 영감을 주는 교사, 지식인, 예술가가 이끄는 학습 경험에 참여한다.

 

기대되는 실제 성과 Anticipated Practical Outcomes 

  • 졸업생들이 독립적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적인 학습과 네트워킹을 수행하여, 변혁적 교육 리더십 분야에서 지속적인 발달, 성장, 영향을 지원한다.
  • 의학교육에 대한 기관의 헌신과 실천을 진전시키는 성공적이고 영감을 주는 기관 계획을 수행한다.

프로그램 일반 목표 Program General Aims 

  • 서로를 지지하고, 이스라엘 의료 체제와의 교류에서 의료전문직의 목소리를 집합적으로 강화하는 의학교육 리더의 전문직 공동체를 구축한다.

교육과정 구성요소 및 교육 경험 Curricular Components / Educational experiences 

교육과정 구성요소

 

  • 통합적 처리(Integrative processing): 다양한 교육과정 구성요소와 세션 사이의 지속적인 현장 작업을 더 큰 내면화된 변혁적 교육 리더십 지향성과 역량에 연결하고, 그 결과로 학습 및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learning and practice)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육 경험

 

  • 성찰적 연습(reflective exercises)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저널 쓰기(journal writing), 내러티브 에세이 쓰기(narrative essay writing), 동료 피드백(peer feedback)이 포함된다.
  • 촉진된 동료집단 경험(facilitated peer group experience)에 참여함으로써 집단 토론(group discussion)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 학습한다.
  • 참여자들이 각자의 소속 기관에서 의학교육 현장 계획을 개발하려는 첫 시도에 기반한 계획 세미나(initiatives-seminar)를 수행한다.
  • 매 학습일의 시작과 끝에 통합적 처리 집단 토론(integrative processing group discussion)을 실시한다.

 

기대되는 실제 성과 Anticipated Practical Outcomes 

  • 졸업생, 이해관계자, 그리고 다양한 수준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네트워킹을 수행한다. 여기에는 자문, 파트너십, 계속교육, 그리고 의학교육 리더 및 실천가의 전문직 공동체로 다른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이 포함된다.

프로그램 일반 목표 Program General Aims 

  •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 개선을 가능하게 하고, 프로그램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를 지지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에게 근거를 제공하는 훈련 혁신(training innovations)에 대한 프로그램 평가(program evaluation)와 연구를 수행한다.

교육과정 구성요소 및 교육 경험 Curricular Components / Educational experiences 

교육과정 구성요소

  • 참여자 소속 기관의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지원을 모집하고, 상호작용하며, 학습한다.

교육 경험

  • 소속 기관의 이해관계자를 위한 의학교육 학습 행사를 소집하고 실행하는 집단 연습을 수행한다.

기대되는 실제 성과 Anticipated Practical Outcomes 

  • 이해관계자를 설득하여 의학교육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 및 국제 수준에서 이 분야에 대한 자신의 학습을 지속하도록 한다.
  • 실험에 대한 형성적 및 총괄적 피드백(formative and summative feedback)을 제공하여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의 개선에 기여하고, 이스라엘 전체 의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의 영향에 대한 근거 기반(evidence base)을 제공한다.

논의 Discussion 

우리는 연구 기반의 생의학 패러다임(research-based biomedical paradigm)이 의료 체제에 의해 채택되면서, 의사의 전문직 정체성 개발(professional identity development)과 의학교육자의 경력 발전(career advancement)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의학교육에 기능-도구적 접근(functional-instrumental approach)을 지배적으로 만들었다고 믿게 되었다. 이 체제는 의사와 의학교육자를 훈련하는 과정에 의학과 의학교육의 포괄적 패러다임(overarching paradigms)을 도입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토폴로지는 관련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의 필요와 담론에 기반하고 맥락 특수적인 방식으로, 패러다임적 사고를 리더십의 중심에 놓기 위한 하나의 접근이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교육받은 또는 이상적인 의사의 초상을 구축하는 일부로서 수준 2에서 의학 정체성 형성(medical identity formation)을 탐구한다. 물론 이는 건강과 의학을 정의하는 이전 논의(Level 1)에 기반한다.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의 정의는 이론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며, 대부분의 정체성 이론가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의 이해, 그리고 이러한 자기 이해가 사건에 대한 개인의 해석의 기초가 되고, 동기를 구성하며, 결정과 행동을 안내한다”는 점을 언급한다.17,18(p3),19 지금까지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작업을 통해 등장한 초상은 포괄적이고 통합적이며, 전문직 정체성과 의사의 지식 및 기술 사이에 이원성(duality)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이상적 의사의 본성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추가 질문을 제안한다.

  • 교육받은 의료전문직 공동체(educated community of medical professionals)는 누구인가?
  • 사회에서 의료전문직의 역할은 어떻게 공동체로부터의 체계적 배제(systemic exclusion)를 의식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가?

의학과 교육을 형성하는 철학적 패러다임은 많다. 따라서 의학교육 실천공동체(communities of practice)에 영향을 미치는 예측 가능하고 잠재적으로 생산적인 긴장(tensions)이 존재한다. 우리는 의학교육자들과의 작업에서 이러한 긴장을 본다. 이들은 종종 처음에는 실천으로 곧바로 뛰어들기 전에 기저 가정에 질문하고 철학적 패러다임을 고려하라는 우리의 기대에 반감을 보인다. 토폴로지를 사용하는 것은 상반되는 아이디어들 사이를 오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잠재적으로 패러다임적 대립(paradigmatic opposition)이거나, 토폴로지의 수준에 관여하는 참여자들 사이의 대화적 갈등(dialogic conflict)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토론 세션에서 “제분소에 넣을 곡식(grist for the mill)”이다. 그 결과 이 접근은 집단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관점을 매우 폭넓게 포용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리더십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각자의 소속 기관에서 이러한 대화를 촉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일화적 보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토폴로지의 모든 수준에서 의학교육을 위한 안내 비전을 명료화하는 데 포함되는 이해관계자 집단, 예를 들어 CEO, 정책결정자,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 훈련생을 포함하는 집단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 토폴로지는 하향식(top-down) 리더십, 또는 변혁적 리더십 이론가들(Transformational Leadership Theorists)이 “거래적(transactional)”이라고 부른 형태의 리더십을 전복하려 한다. 대신 다양한 목소리를 참여시키고, 가정과 씨름하며, 해당 사회의 맥락에서 의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공유된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리더십 접근을 지원한다.20–22 우리는 실천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적 학습 이론(social theories of learning)에 우리의 작업을 중심화했으며, 관련이 있을 때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와 같은 개인의 특성과 역량을 강조하는 이론적 및 경험적 프레임워크를 가져왔다. 우리의 훈련 모델에서 리더십은 단일한 리더에 의해 수행되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리더십은 전문직 공동체에 의해 공유 원칙을 지속적으로 재평가하고 재명료화하는 것으로 수행된다.

 

토폴로지는 의사들 사이의 대화를 위한 어휘(lexicon)를 제공하며, 이는 사회적 문제를 성찰하고 다룰 자유와 공간을 제공한다. 이 대화는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5수준 토폴로지는 집단 안의 개인들이 서로 다른 가치, 정체성 변화(identity shifts), 공동체 안에서의 위치, 의학의 역할을 탐색하도록 돕는 다양한 렌즈를 제공한다. 이 과정은 매우 실제적인 과정이며, 변혁적 리더에게 필요한 기술을 구축한다.

 

이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또는 미래의 리더 집단에게 토폴로지를 가르치고 실행하는 것은 전문적 촉진(expert facilitation), 준비와 독서 및 성찰적 글쓰기에 대한 헌신, 시간과 연습을 요구한다. 토폴로지는 공식(formula)이 아니다. 그것은 의학에서 주어진 규범과 실천을 평가하고, 번역하고, 질문하고, 재고하기 위한 렌즈 또는 논리(logic)이다. 우리의 경험상 1년짜리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이 아직 다섯 수준에 체계적이고 유연하게 완전히 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교육을 이끄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모든 단일한 질문마다 패러다임적 쟁점(paradigmatic issues)이 걸려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능력을 긴 여정의 첫걸음으로 본다.

결론 Conclusion 

토폴로지는 변혁적 의학교육 리더의 개발을 안내한다. 이는 그들이 체계적 변화를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참여적 연구, 대화, 논쟁을 위한 프레임워크와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훈련 맥락에서 철학과 실천 사이의 경로를 구축함으로써, 토폴로지는 향후 다른 사람들을 패러다임에 민감하게 훈련(paradigm-sensitive training)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준다.2

 

뫼비우스 띠 은유는 다섯 수준이 본질적으로 서로 얽혀 있음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어느 한 수준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의미를 놓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그것을 잘 수행하기도 더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토폴로지에 기반한 개발 프로그램의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 그리고 성과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곧 제시될 예정이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토폴로지가 의학교육 리더들이 의료전문직을 어떻게 스튜어드(steward)하도록 돕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서 스튜어드십(stewardship)은 의료전문직의 헌신과 가치를 대표하여, 의료인을 훈련하고 고용하는 체제들과, 그리고 주어진 사회 전체와의 대화 속에서 의료전문직의 사회계약(social contract)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Teach Learn Med. 2023 Oct-Dec;35(5):623-629. doi: 10.1080/10401334.2023.2187810. Epub 2023 Mar 20.

A Philosophical Discussion of the Support of Self-Regulated Learning in Medical Education: The Treasure Hunt Approach Versus the (Dutch) "Dropping" Approach 

 

 

🧭 의대생을 한밤의 숲에 '떨어뜨려도' 될까?

자기조절학습을 둘러싼 네 가지 철학적 질문

네덜란드에는 '드로핑(dropping)'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어요. 10대 아이들을 한밤중에 숲속 어딘가에 데려다 놓고 "알아서 집 찾아 돌아와"라고 하는 놀이죠. 데려가는 길에 눈을 가리거나 일부러 방향을 헷갈리게 만들고, 손에 쥐여주는 건 나침반이나 간단한 GPS 정도가 전부예요. 보통은 여름 캠프에서 하지만, 짜릿한 생일 파티 이벤트로 열리기도 한대요.

 

부모 입장에선 밤잠 설칠 만한 일인데, 저자들은 바로 그 '위험'이야말로 드로핑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많은 부모(네덜란드 부모들조차)가 드로핑의 잠재적 위험을 떠올리며 잠을 설치겠지만, 드로핑을 드로핑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위험이다."

"While many parents (also Dutch ones) will lose some sleep thinking about the potential risks of a dropping, it is exactly these risks that characterize the dropping."

 

생각해보면 그래요. "강 근처에서 길 잃으면 안 되니까 어느 쪽으로 갈지 먼저 알려줄까?", "지도도 하나 줄까?" 이렇게 위험을 하나둘 없애다 보면, 드로핑은 더 이상 드로핑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보물찾기(treasure hunt)가 되어버리거든요. 보물찾기는 아이들이 정해진 안내를 따라가며 과제를 수행하고 문제를 풀어 '보물'을 찾는 놀이니까요.

 

van der Gulden, Veen, Thoonen 세 연구자는 이 두 놀이를 메타포로 삼아, 의학교육이 학생의 자기조절학습(self-regulated learning, SRL)을 길러주려는 노력을 들여다봅니다. 이런 노력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요.

🤔 잠깐, SRL이 뭐였더라?

자기조절학습은 1986년쯤 교육심리학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에요. 학습의 인지적, 동기적, 정서적 측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이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모델을 발전시켰고, Panadero는 영향력 있는 여섯 개 모델을 비교한 끝에, SRL이 순환적이며 여러 단계와 하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을 찾아냈어요.

 

이 글에서는 Zimmerman의 고전적 정의를 씁니다.

"학생이 자신의 학습 과정에서 메타인지적으로, 동기적으로, 행동적으로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는 정도."

"the degree to which students are metacognitively, motivationally, and behaviorally active participants in their own learning process."

 

문제는 SRL이 워낙 포괄적인 우산 개념(umbrella term)이라 한마디로 딱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의학교육이 SRL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이게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과 이론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끊임없이 변하는 의료 환경에 잘 대응하려면 평생 배우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보니까요.

🎯 '보물찾기-드로핑 연속선'

저자들이 제안하는 핵심 틀이 바로 이 연속선(continuum)이에요. SRL을 길러주는 방식을 양 끝으로 펼쳐놓고 보는 거죠.

  • 보물찾기 쪽: 학습자가 구체적인 학습 활동을 하도록 명확히 지시받는 방식 (예: "SMART 학습목표 세 개를 세우고 평가하세요")
  • 드로핑 쪽: 과제 자체만 주어지고, 어떤 학습 활동이 가치 있을지는 학습자가 스스로 정하는 방식

물론 그 사이 어딘가(예: 학습자가 고를 수 있는 활동 목록을 주는 것)에 위치한 접근들도 많아요. 저자들은 이 연속선을 가지고 네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답을 딱 정해주려는 게 아니라, 생각거리를 던지려는 의도예요.

1️⃣ SRL을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는 게, 뭐가 문제일까? 

정의가 모호하니 비슷비슷한 말들이 넘쳐납니다. 학생 중심 학습(student-centered learning),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 성찰적 학습(reflective learning)... 다 좋은 말이지만, 사람마다 맥락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두루뭉술한 용어'이기도 하죠.

Conway와 동료들은 이런 용어의 정밀함이 왜 중요한지 짚었어요.

"한 단어나 표현이 사용자 집단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때, 특히 그 차이가 인식되지 못할 때, 현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differences in the interpretation and application of a word or phrase between groups of users, particularly when unrecognized, can have impactful real-world implications."

 

보물찾기인 줄 알고 신나게 나섰는데 갑자기 방향도 없이 숲에 떨궈진 아이들을 상상해보세요. 황당하겠죠? 학습자에게 주는 설명도 실제로 운영하는 방식과 일치해야 한다는 얘기예요.

2️⃣ SRL은 자율성(autonomy)과 어떤 관계일까?

'self(자기)'라는 말이 들어가니 자율성이 떠오르죠. 가장 잘 배우는 건 배움이 내 안에서 우러나올 때라는 생각이요. 그런데 저자들은 이 관계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말해요. SRL의 발달에는 오히려 교사의 안내가 중요하다는 연구가 많거든요.

 

  • 공동조절학습(co-regulated learning, 누군가가 내 학습을 구조화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나
  • 사회적으로 공유된 조절학습(socially shared regulated learning, 동료와 협력해 학습을 조절하는 것) 같은 개념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요.

 

자율성의 정도는 활동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흔한 건강 문제의 해결책을 직접 고안하라"는 프로젝트는 자율성이 크지만, "흉부 압박 하는 법" 수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리고 적절한 자율성의 양은 학습자의 특성(예: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 tolerance of uncertainty)과 경험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섯 살짜리는 드로핑에 적합하지 않고, 10대는 보물찾기가 지루할 거예요. 마찬가지로, SRL을 기르는 접근은 교육 초기엔 구조가 많은 보물찾기 스타일로, 후기엔 드로핑 스타일로 가는 게 효과적이라는 거죠.

3️⃣ SRL을 기르려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학습자가 여유(leeway)를 누리려면, 교육기관이 통제권을 일부 내려놔야 합니다.

"학습자는 의학 교육기관이 일정 부분 통제를 내려놓을 때에야 비로소 여유를 경험할 수 있다."

"Because learners can only experience leeway when medical training institutes hand off some control."

 

그런데 현실의 커리큘럼은 정반대예요. 중도 탈락이나 부적합한 졸업생 배출 같은 위험을 줄이려고 굉장히 촘촘하게 통제되어 있죠. (예: 실습마다 OSCE 횟수까지 정해져 있는 것처럼요.)

 

Watling과 동료들은 의학 학습에서 주도성(agency)을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탐구했는데, 응답자들은 주도성을 발휘하는 일이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느꼈대요. 고도로 표준화된 환경이 정해놓은 기대를 거슬러야 했으니까요. 저자들은 이 표준화를 역량바탕교육(competency-based education, CBE)과 연결합니다.

"CBE는 이론적으로는 유연하고 학습자 중심적이도록 의도되었지만, 그 성과 중심적 속성은 의사가 어떻게 수행하고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정되고 규범적인 상(像)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While CBE is theoretically intended to be flexible and learner-centred, the outcome-based nature of CBE can also be considered as a fixed and prescriptive image of how doctors should perform, think, and act."

 

이렇게 길이 다 깔린 환경에서는, SRL을 기르려는 시도조차 거의 자연스럽게 보물찾기처럼 변해버립니다. 아이들이 숲에서 자기 길을 찾는 대신, 커리큘럼이 깔아놓은 포장도로를 따라가게 되는 거죠. 그러면 학습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을 실험해볼(예: 자기 경험으로 콜라주나 노래를 만들어보는) 기회를 잃고, 어떤 학습이 나에게 맞고 안 맞는지 시행착오로 알아갈 수 없게 됩니다.

4️⃣ SRL을 평가해야 할까?

커리큘럼이 촘촘한 만큼 평가 프로그램도 촘촘해요. 그래서 최근엔 SRL(의 일부)을 평가하는 일도 흔해졌죠. 그런데 학습자가 "메타인지적, 동기적, 행동적으로 능동적인 참여자"인지를 대체 어떻게 평가할까요?

 

Veen과 동료들은 SRL 같은 개념이 전통적으로 표상 모델(model of representation)로 평가된다고 설명해요. 특정 언어나 행동으로 그 개념을 '대표'하게 하는 방식이죠. 성찰을 평가할 때 글쓰기 수준을 등급으로 나누는 루브릭을 쓰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런 루브릭이 학습자가 정말 SRL을 잘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보물찾기는 모두 같은 길을 가니 누가 잘했는지 평가하기 쉬워요. 하지만 드로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인 아이들은요? 지금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애가 실패한 걸까요, 아니면 곧 스스로 방향을 바로잡을까요? 게다가 평가가 들어가는 순간, SRL 접근은 대개 보물찾기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평가가 '무엇이 바람직한 학습 행동인지'를 학습자에게 또렷이 알려주는 신호가 되니까요.

🧩 그래서, 어떻게 '정렬'할 것인가 

저자들의 결론은 이래요.

"SRL을 기르려는 접근들은 학습자의 경험 및 요구와 충분히 정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이러한 접근들은 SRL에 대한 오해나 학습자에게 주어진 여유의 부족 같은 맥락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곤 한다."

"approaches to foster SRL are often insufficiently aligned with the experience and needs of learners. Instead these approaches are commonly defined by contextual factors, such as misconceptions about SRL and lack of leeway for learners."

이상적인 방향은 분명합니다.

"학습자의 SRL 발달은 이상적으로는 보물찾기 접근으로 먼저 길러지고, 학습자가 SRL에 익숙해지면서 드로핑 접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Learners' SRL development is ideally fostered by treasure-hunt approaches first, which transform into dropping-approaches when learners become more experienced with SRL."

 

이걸 구성적 정렬(constructive alignment)의 관점에서 실천하기 위해, 저자들은 보물찾기와 드로핑 모두에 통하는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안합니다.

 

  • ①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라 (Decide which game you will be playing)
    • 생일 파티에서 아이들 나이, 인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는지 등을 보고 보물찾기와 드로핑 중 하나를 고르듯이, SRL 접근도 학습자의 SRL 경험, 커리큘럼이 허용하는 자율성, 평가 여부 등을 따져 정해야 해요. SRL 경험이 적은 학습자에겐 드로핑이 잘 맞지 않고, 반대로 "매일 성찰 양식과 피드백 양식을 포트폴리오에 올려라" 같은 빡빡한 요구가 있으면 드로핑은 애초에 어렵죠.
  • ② 규칙을 미리 의논하라 (Discuss the ground rules)
    • 놀이 시작 전 모두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아야 하듯, SRL 교육도 교수자와 학습자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 합의해야 해요. 그런데 저자들은 이 대화가 한 번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SRL의 기본 규칙에 관한 대화가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we think that the conversation about the ground rules of SRL should be continuous."

 

  • ③ 놀게 두라 (Let them play) 
    • 특히 드로핑에서는, 조건을 다 세팅한 뒤엔 한 발 물러서서 아이들이 알아서 돌아올 거라고 믿어줘야 합니다.

 

"(드로핑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조건을 마련한 뒤에는 기꺼이 한 발 물러서서, 아이들이 알아서 길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 믿어야 한다."

"those organizing should be willing to step back and trust that the kids will find their way back after the conditions have been set."

✍️ 마치며

결국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해요. SRL을 기르겠다면서 사실은 모든 위험을 제거한 '보물찾기'만 시켜놓고, 왜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것. 자율성을 길러주려면 어느 시점엔 통제를 내려놓고, 학생이 잠시 길을 헤매는 것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 맥락(역량바탕교육, 평가 중심 커리큘럼, 인증 준비 등)에 비춰 보면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학생들에게 보물찾기를 시키고 있을까요, 드로핑을 시키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건 의도한 선택일까요, 아니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New York Times는 네덜란드식 비개입 양육 hands-off parenting의 전형적인 예인 “드로핑 dropping”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1 드로핑에서는 청소년들이 밤에 숲속에 “내려져 dropped”,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드로핑 참가자 droppees들은 보통 내려지는 지점 drop-off point으로 가는 동안 눈가리개 blindfold를 하거나 방향감각을 잃도록 disoriented 만들어지며, 제한된 자원 limited resources, 예컨대 나침반 compass이나 간단한 GPS 장치만 사용할 수 있다. 드로핑은 전형적으로 여름 캠프 summer camps에서 이루어지지만, 흥미진진한 생일파티 활동으로 조직될 수도 있다. 많은 부모들, 네덜란드 부모들도 포함하여, 드로핑의 잠재적 위험 potential risks을 생각하면 잠을 설칠 수 있다. 그러나 드로핑을 특징짓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위험이다. 왜냐하면 모든 위험이 제거되면, 예컨대 “강 근처에서 막히지 않도록 먼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자”, “지도도 주는 게 좋지 않을까”와 같이 한다면, 드로핑은 더 이상 드로핑이 아니라 평범한 보물찾기 treasure hunt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물찾기에서 아이들은 지시를 따르고, 과제를 수행하고, 질문에 답함으로써 “보물”을 찾을 수 있다.

 

이 철학적 논문 philosophical paper은 보물찾기와 드로핑의 원리를 은유 metaphor로 사용하여, 의학교육기관 medical training institutes이 자기조절학습 self-regulated learning, SRL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성찰한다. 우리가 이러한 논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SRL을 촉진하려는 노력이 항상 성공적이지 않다는 점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철학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존재하지만, 철학자 Isaiah Berlin은 철학과 다른 과학적 학문 scientific disciplines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기되는 질문의 성격, 더 구체적으로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에 두었다.2 그는 경험적 질문 empirical questions과 달리, 철학적 질문 philosophical questions에서는 답을 찾는 방법이 모호 ambiguous하며, 답을 평가하는 방식도 모호하다고 보았다. 심지어 하나의 답이 있는지, 아니면 여러 가능한 답이 있는지를 아는 것조차 명확하지 않다.2 우리는 SRL에 관한 서로 연결된 네 가지 철학적 질문을 제시하였다. 이 질문들은 명확하고 단정적인 답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제기된 것이 아니라, 의학교육기관이 SRL을 촉진하려고 시도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SRL의 기원과 중요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SRL의 기원과 중요성 The origin and importance of SRL 

SRL의 초기 모델들은 1986년경 교육심리학 educational psychology 분야에서 도입되었다. 그 목적은 학습의 인지적 cognitive, 동기적 motivational, 정서적 emotional 측면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있었다.3 이후 여러 해 동안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저자들이 SRL 모델을 개발하고 수정하였다.4 Panadero는 여섯 가지 영향력 있는 모델을 비교하고, 모든 모델이 SRL을 순환적 cyclical 과정으로 제시하며, 서로 다른 단계 phases와 하위 과정 subprocesses으로 구성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SRL을 학습과 관련된 다양한 구성개념 constructs을 포괄하는 우산 용어 umbrella term로 설명한다. 이 구성개념들은 서로 다른 영역 domains, 즉 메타인지 metacognition를 포함한 인지 cognition, 행동 behavior, 동기 motivation, 정서 emotion를 포괄한다.3 따라서 SRL에 대해 명확히 구별되는 정의 distinct definition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는 SRL 모델을 처음 제안한 학자 중 한 명인 Zimmerman의 정의를 사용하고자 한다. Zimmerman은 SRL을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과정 own learning process에 메타인지적으로, 동기적으로, 행동적으로 능동적인 참여자 active participants가 되는 정도”라고 정의하였다.5(p.167)

 

SRL의 정당화 justification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 첫째, SRL은 교육 과정 중 학습자를 돕는 것으로 여겨진다. SRL 수준이 높은 학습자는 SRL 수준이 낮은 학습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6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흔히 SRL 수준, 보통 자기평가 설문 self-evaluation surveys으로 측정되는 SRL 수준과 학업 성취 academic performance, 예컨대 평점 grade point average 사이에 긍정적 상관관계 positive correlation가 있음을 보여준 연구에서 제시된다.7–9 둘째, SRL 수준이 높은 사람은 교육 이후 평생학습 lifelong learning에 더 쉽게 참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두 구성개념이 이론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10
  • 두 번째 정당화는 특히 의학교육 medical education에서 SRL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의학교육은 평생학습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평생학습을 중시하는 마음가짐 mindset은 의사가 자신의 직업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요구 ever-changing demands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11 그 결과 의학교육기관은 교육 과정 중 학습자에게 SRL을 불러일으키고자 aim to invoke SRL 한다. 이러한 목적은 SRL을 촉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에 의해 뒷받침된다. SRL은 교수진 faculty의 직접적인 지시 direct instructions나 지도 guidance뿐 아니라, 학습환경 learning environment의 다양한 측면, 예컨대 교사의 열정 enthusiasm of teachers이나 사용되는 기술 technology used에 의해서도 촉진될 수 있다.12–15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무엇이 SRL이고 무엇이 SRL이 아닌지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SRL을 촉진하려는 노력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는 연구들이 존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바쁜 임상 맥락 clinical context에서는 학습자가 자신의 개별 학습 요구 individual learning needs를 계속 추적하기 어려울 수 있다.10,16,17 그러므로 의학교육 안에서 이처럼 모호한 개념 ambiguous concept을 촉진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물찾기/드로핑 연속선” The “treasure hunt/dropping-continuum” 

SRL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질문하기에 앞서, 우리는 SRL 촉진 접근법을 설명하기 위한 은유로 “보물찾기/드로핑 연속선 treasure hunt/dropping-continuum”을 제안한다.

 

  • 이 연속선의 한쪽 끝에는 보물찾기가 있다. 이는 학습자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특정 학습활동 learning activities을 수행하도록 명확히 지시받는 접근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학습자가 세 가지 SMART 학습목표 SMART learning objectives를 작성하고 평가하도록 의무화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 반대로 드로핑은 과제 자체만 정의되어 있는 접근과 유사하다. 이 경우 학습자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학습활동이 가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 이 성찰에서는 연속선의 양 끝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자연스럽게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 지점 middle ground을 취하는 접근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학습자에게 여러 학습활동의 선택지를 제공하고 그중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SRL에 관한 네 가지 철학적 질문 Four philosophical questions about SRL 

앞의 논의에서 분명해진 것은 SRL이 포괄적이고 이론적인 개념 comprehensive, theoretical concept이며, 의학교육 프로그램에서 항상 성공적으로 촉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SRL을 촉진하려는 사람은 이 개념에 대해 스스로 철학적 질문 philosophical questions을 던질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찰은 의도적 의사결정 deliberate decision-making, 실행 implementation, 평가 evaluation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SRL에 관한 서로 연결된 네 가지 질문을 제시하였고, 아래에서 이를 논의하고자 한다. “보물찾기/드로핑 연속선”은 이 질문들을 더 구체화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 첫 번째 질문은 SRL과 관련된 정의상의 문제 definitional issues가 가지는 관련성을 검토한다.
  • 이어서 SRL과 자율성 autonomy의 관계를 질문한다.
  • 이후 세 번째 질문은 현재 의학교육과정 medical curricula이 SRL을 촉진할 기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 마지막으로 SRL 평가 assessment of SRL와 관련된 복잡성을 성찰한다.

 

무엇이 SRL이고 무엇이 SRL이 아닌지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데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는가?
What are the consequences of the difficulties to explicate what is (not) SRL?
 

우리는 SRL이 정의하기 어려운 포괄적 개념 comprehensive concept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SRL의 논리 rationale, 즉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학습자 actively engaged learners가 비활동적인 학습자 inactive learners보다 더 효과적으로 학습한다는 논리에서 파생된 것처럼 보이는 용어 lingo가 풍부하게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 예컨대 “학생중심학습 student-centered learning”“능동학습 active learning” 같은 용어가 그러하다.18,19

 

이와 관련하여 의학교육기관들은 “성찰적 학습 reflective learning”을 촉진하려는 노력도 해왔다.20,21 이러한 용어들은 흔히 사용되지만, 동시에 다양한 맥락과 사람들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포괄적 용어 catch-all terms이기도 하다.

Conway와 동료들은 이미 평생학습 lifelong learning 용어에서 정확성 precision이 중요하다는 점을 논의한 바 있다. 여기에는 SRL과 자기주도학습 self-directed learning도 포함된다. 그들은 “사용자 집단 간에 어떤 단어나 구절의 해석과 적용이 서로 다르고, 특히 그 차이가 인식되지 않는 경우, 이는 실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함의 impactful real-world implications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22(p.702) 보물찾기를 하러 간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지시 directions를 기대했던 아이들이, 실제로는 아무 방향 안내 없이 숲속에 내려졌다고 상상해보라. 마찬가지로 SRL을 촉진하기 위해 학습자에게 제공되는 지시는 실제로 수행되는 접근과 일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 stakeholders가 SRL의 정의 definition와 이론적 기반 theoretical underpinnings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그래야 오해 misperception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SRL은 자율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How does SRL relate to autonomy? 

우리는 SRL을 촉진하는 접근에 대해 성찰할 때 SRL과 자율성 autonomy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SRL의 “self”는 자율성에 대한 초점과 존중 appreciation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즉 학습은 자기 자신 내부에서 비롯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Matthew Crawford는 자율성에 대한 서구적 강조 western emphasis on autonomy가 본질적으로 정치적 political이라고 설명한다.23 이를 위해 그는 17세기 사상가 John Locke의 작업을 사용한다. Locke는 정치적 주권자 political sovereigns가 완전한 권력을 가졌던 시대에,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고 추론하였다. 정치적 자유 political freedom에 대한 열망은 지적 독립 intellectual independence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즉 무엇이 참 true인지는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체제는 오래전에 개혁되었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율성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value in itself가 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SRL은 학습자 자율성 learner autonomy 이론과 공통점을 공유하며, 때로는 혼동 conflated되기도 하지만,24,25 자율성과의 관계는 실제로 매우 복잡하다. 이는 SRL의 발달 과정에서 교사의 지도 guidance by teachers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연구들에서도 드러난다.7,12 또한 공동조절학습 co-regulated learning, 즉 다른 사람이 당신의 학습을 구조화하도록 도와주는 것과, 사회적으로 공유된 조절학습 socially shared regulated learning, 즉 학습이 동료 peers와의 협력 속에서 조절되는 것 같은 개념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SRL에서 사회적 상호작용 social interaction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26,27

 

사회적 상호작용의 존재와 가치 외에도, 학습자의 자율성은 제공되는 지시 instruction의 정도와 구체성 specificity에 따라 달라진다.

 

  • 어떤 학습활동은 학습자에게 활동에 접근하는 데 더 많은 자율성을 제공한다. 예컨대 흔한 건강 문제 common health problem에 대한 해결책을 학습자가 고안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그러하다.
  • 반면 다른 학습활동은 자율성이 적다. 예컨대 흉부압박 chest compressions을 수행하는 방법에 관한 수업이 그러하다.

 

이론적으로 학습자는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SRL에 참여할 수 있다. 학습자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목표 수준 goal-level, 예컨대 “이 활동에서 나는 어떻게 수행하고 싶은가?”를 결정하고, 자신의 수행을 평가하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13 그러나 학습자가 개인적 선택 personal choices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재량 leeway을 경험할 때 SRL에 더 기꺼이 참여하게 된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습자의 SRL을 촉진하기 위해 선호되는 재량의 양 preferable amount of leeway은 어느 정도인가? 이는 아마도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 tolerance to uncertainty과 같은 학습자의 개인적 특성 personal characteristics에 달려 있을 것이다.28,29 또한 학습활동에 대한 경험 experience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섯 살 아이가 드로핑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반면, 청소년은 보물찾기 중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SRL을 촉진하는 접근은 교육 초기에 더 많은 구조 structure, 즉 보물찾기식 treasure hunt-style 접근을 포함하고, 교육 후반에는 드로핑식 dropping-style 접근을 선호할 때 가장 효과적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SRL 기술 SRL skills의 습득 acquisition에 관한 이론과도 부합한다.30

SRL을 촉진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고, 또 감수할 수 있는가? How much risk are we willing and able to take when fostering SRL? 

앞선 질문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교육 초기 단계에서 SRL을 촉진할 때 외부적 구조 external structure가 선호될 수 있다고述べ었다. 동시에 우리는 학습자가 개인적 선택을 할 어느 정도의 재량을 가질 때 SRL에 더 기꺼이 참여한다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SRL 촉진의 또 다른 난제 conundrum로 이어진다. 교육 중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위험 risk을 감수할 수 있으며, 또 감수할 의지가 있는가? 왜냐하면 학습자는 의학교육기관이 일정 부분 통제 control를 내려놓을 때에만 재량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네덜란드 교육과정 Dutch curricula은 실제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통제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학습자가 중도 탈락 dropping-out하거나, 전문직에 적합하지 않은 학습자가 졸업하는 것과 같은 잠재적 위험 potential risks을 줄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31 이는 많은 수련계획 training plans에 포함된 세부 수준 level of detail에서 잘 드러난다. 예컨대 각 인턴십 internship마다 요구되는 OSCE 수가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방식이 학습자의 동기 motivation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학습자가 자신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충족하려고 할 때, 과연 어느 정도의 재량을 경험할 수 있을까? 

 

학습자의 재량교육기관의 통제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Watling과 동료들의 인터뷰 연구에서도 드러났다.32 이들은 의학에서 행위주체적 학습자 agentic learner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구하였다. 그들은 행위주체성 agency“학습의 사회적 경험 social experience of learning에 대한 학습자의 참여를 구성하는 의도적 행위 intentional actions”로 정의하였다. 인터뷰 결과, 응답자들은 행위주체성을 보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의학교육의 고도로 표준화된 환경 highly standardized setting이 설정한 기대 expectations에 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높은 수준의 표준화를 역량바탕교육 competency-based education, CBE과 연결하였다. CBE는 이론적으로 유연하고 학습자중심적 flexible and learner-centred이도록 의도되었지만, CBE의 성과기반적 속성 outcome-based nature은 의사가 어떻게 수행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정적이고 처방적인 이미지 fixed and prescriptive image로 간주될 수도 있다.32,33

 

이처럼 명확히 경계 지어진 환경 clearly delineated environment에서는 SRL을 촉진하는 접근이 거의 자연스럽게 보물찾기식 treasure hunt-style과 닮게 된다. 학습자에게 숲을 통과해 자신만의 길을 찾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이 설정해 둔 포장도로 paved roads를 따르도록 강하게 directed, compellingly 이끌린다. 의학교육기관은 이러한 지침 guidelines이 없으면 수많은 학습자가 물웅덩이 puddles에 빠질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학습자가 SRL을 촉진하기 위한 보물찾기식 접근만 접하게 되면, 다양한 학습 방식 different ways of learning을 실험할 기회가 제한된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관련 있다고 여기는 과제만 수행하거나, 자신의 경험에 관한 콜라주 collage나 노래 song를 만드는 방식은 시도하기 어렵다. 그 결과 학습자는 시행착오 trial and error를 통해 어떤 유형의 학습이 자신에게 성공적인지 또는 성공적이지 않은지를 충분히 경험할 수 없다.

SRL은 평가되어야 하는가? Should SRL be assessed? 

우리는 방금 의학교육과정 medical curricula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통제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대부분의 의학교육기관에서 운영하는 포괄적 평가 프로그램 comprehensive assessment programs에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최근 몇 년 동안 의학교육에서 SRL의 여러 측면 aspects of SRL을 평가하는 것이 더 흔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과정에 메타인지적으로, 동기적으로, 행동적으로 능동적인 참여자”인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학습자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think, 느끼고 feel, 행동하는지 act를 알아야 하며, 거기에 가치를 부여 assign value해야 한다.

 

Veen과 동료들은 SRL과 같은 개념이 전통적으로 재현 모델 model of representation에 의해 평가되어 왔다고 설명하였다. 이 모델에서는 특정 언어 particular language행동 actions이 평가되는 개념을 대표 represent하는 데 사용된다.34 예컨대 성찰 reflection과 관련해서는 성찰적 글쓰기 reflective writing의 서로 다른 수준을 구별하는 루브릭 rubrics을 사용하는 것이 흔하다.35,36 이러한 루브릭과 재현 모델에 기반한 다른 평가들이 실제로 학습자가 SRL에 적절히 참여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debatable.

 

더 나아가, 보물찾기 중에는 어떤 아이가 가장 잘 수행하는지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가 같은 경로 route와 과제 assignments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로핑 중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방향 wrong direction으로 향하고 있는 아이들은 실패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적절한 때에 course correct 방향을 수정할 것인가?

 

학습자가 어떤 것에 성공했는지 또는 성공하지 못했는지를 판단하는 것 외에도, 평가는 학습을 지원 support learning하기 위한 목적도 가진다. 평가는 학습자에게 자신의 수행 performance과 무엇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지에 대한 통찰 insight을 제공하기 때문이다.37 이 마지막 측면은 평가를 포함하는 SRL 촉진 접근이 대부분의 경우 보물찾기식 접근을 닮게 된다는 사실을 강화한다. SRL의 여러 측면에 대한 이러한 평가들은 학습자에게 어떤 학습행동 learning behavior과 전략 strategies이 바람직하다고 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지에 대한 엄격한 정보 stringent information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렬된 접근 The aligned approach 

학습자의 SRL 발달 SRL development은 이상적으로는 먼저 보물찾기식 접근 treasure-hunt approaches에 의해 촉진되고, 학습자가 SRL에 더 익숙해질수록 드로핑식 접근 dropping-approaches으로 전환될 때 가장 잘 지원된다. 그러나 우리의 철학적 성찰을 통해, SRL을 촉진하려는 접근들은 종종 학습자의 경험과 필요에 충분히 정렬되어 있지 않다 insufficiently aligned는 점이 분명해졌다. 오히려 이러한 접근들은 SRL에 대한 오해 misconceptions, 평가 프로그램 assessment program 등으로 인해 학습자에게 허용되는 재량 leeway이 부족한 상황과 같은 맥락적 요인 contextual factors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설계 educational design에서 구성적 정렬 constructive alignment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인정되어 왔다.38 그러나 SRL을 촉진하는 접근들은 종종 이러한 구성적 정렬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보물찾기와 드로핑 모두에 적용되는 원리를 사용하여, SRL을 촉진하려는 접근을 교육적 맥락 educational context, 그리고 학습자의 경험과 필요에 맞추어 정렬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어떤 게임을 할 것인지 결정하라 Decide which game you will be playing 

  • 생일파티를 준비할 때 사람들은 여러 요인에 기반하여 보물찾기를 할지 드로핑을 할지 선택한다. 예컨대 아이들의 나이 age, 집단 규모 group size,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children with special needs의 존재 등이 고려된다. 마찬가지로 SRL을 촉진하는 접근을 결정할 때에도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인이 있다. 여기에는
    • 학습자의 SRL 경험 experience of learners with SRL,
    • 교육과정이 제공하는 자율성의 양 amount of autonomy, 그리고
    • 교육이 평가될 것인지 여부 whether the education will be assessed가 포함된다.
  • SRL 경험이 제한적인 학습자는 일반적으로 드로핑 접근 dropping approach에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교육과정이나 평가 프로그램이 학습자에게 엄격한 요구 strict demands를 부과하는 경우에도 드로핑 접근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매일 포트폴리오 portfolio에 하나의 성찰 양식 reflective form과 하나의 피드백 양식 feedback form을 업로드하라”와 같은 요구가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2 기본 규칙을 논의하라 Discuss the ground rules 

  • 보물찾기나 드로핑을 시작하기 전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이 기대되는지 what is expected of them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SRL을 촉진하기 위한 교육은 교수진 faculty과 학습자 learners 사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교육의 무엇 what, 어떻게 how, 왜 why에 대해 모두가 같은 이해 on the same page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보물찾기와 드로핑의 규칙은 한 번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SRL의 기본 규칙 ground rules에 관한 대화는 지속적 continuous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속적 대화는 SRL의 원리 principles of SRL에 관한 강의 lecture나 이러닝 세션 e-learning session, 학습자의 학습 과정 learning process을 논의하기 위한 예정된 시간 scheduled time, 그리고 SRL과 관련하여 교육의 어떤 측면이 잘 작동하고 어떤 측면이 잘 작동하지 않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주기적 평가 periodical evaluations로 구성될 수 있다.

3 그들이 놀게 하라 Let them play 

  • 특히 드로핑에서는, 조건 conditions이 설정된 뒤에는 주최자 those organizing가 한 걸음 물러서서 아이들이 길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고 신뢰 trust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물찾기에서도 보물찾기를 안내하는 사람 those who guide the treasure hunt이 필요한 경우에만 추가 지시 additional instructions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만의 답 answers과 해결책 solutions을 생각해낼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SRL을 촉진하는 것은 교수진이 학습자에게 제공하는 지시 instruction의 양 amount과 유형 type에 대해 지속적으로 숙고하고 판단할 것 constant deliberation을 요구한다.

결론 Conclusion 

SRL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실행할 때에는 SRL의 복잡성 complexity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네 가지 철학적 질문을 사용하여 SRL 촉진과 관련된 다양한 복잡성에 대한 고려와 성찰 consideration and contemplation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관련 용어와 혼동되게 만드는 개념의 포괄성 comprehensiveness of the concept, 자율성과의 어려운 관계 difficult relationship with autonomy, 학습자가 SRL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재량 amount of leeway, 그리고 SRL을 평가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difficulties to assess SRL이 포함된다.

 

우리의 성찰을 통해, SRL을 촉진하려는 접근들이 종종 학습자의 경험과 필요에 충분히 정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오히려 이러한 접근들은 SRL에 대한 오해, 학습자에게 허용되는 재량의 부족과 같은 맥락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보물찾기와 드로핑 모두에 적용되는 원리를 활용하여, SRL을 촉진하려는 접근을 교육적 맥락, 그리고 학습자의 경험과 필요에 맞추어 정렬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Teach Learn Med. 2023 Aug-Sep;35(4):486-495. doi: 10.1080/10401334.2022.2148108. Epub 2022 Dec 14.

Reimagining Preparedness of Health Professional Graduates Through Stewardship 

 

 

졸업생은 정말 '준비'되어 있을까? 

스튜어드십(stewardship)으로 다시 그리는 보건의료 전문직 교육

  • 보건의료 전문직 교육(health professional education)은 겉으로 보면 꽤 잘 굴러가는 것 같아요. 🎓 매년 새로운 교육과정이 인가되고, 수많은 학생이 졸업해 현장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정작 졸업생들에게 물어보면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답하는 경우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 간극을 정면으로 다룬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해요.
  • Sarah Barradell이 2023년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의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의학교육의 철학)' 시리즈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제목 그대로, 졸업생의 '실천 준비도(preparedness for practice)'라는 익숙한 개념을 스튜어드십(stewardship)이라는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자는 제안이에요.
  • 저자가 짚는 출발점은 이렇습니다. 의학교육에서는 같은 문제가 계속 돌고 돌며 반복된다는 거예요. Whitehead와 동료들은 이걸 '교육과정 회전목마(curricular carousel)'라고 불렀죠.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늘 같은 방식으로만 다뤄서는 그 회전목마에서 결코 내릴 수 없다는 게 저자의 문제의식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게요.

🤔 '준비도(preparedness)'라는 말의 세 가지 함정

저자는 '준비도'라는 개념 자체가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말합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요.

 

  • 첫째, 사람마다 떠올리는 게 다릅니다 (conceptual plethora). 학생, 교수, 임상 현장의 실무자는 '준비됨'에 대해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사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호주의 한 종단 질적 연구에서는 졸업을 앞둔 4개 직종(영양학·의학·간호학·약학) 학생들 사이에서만 무려 13가지의 '준비도' 개념이 확인되기도 했어요. 경험, 지식, 자신감, 자기인식, 역량, 책임감... 떠올리는 게 다 제각각이었던 거죠.
  • 둘째, 준비도는 고정된 목표가 아닙니다. '준비됐다'는 말에는 어떤 도달점이 있다는 뉘앙스가 있죠. 그런데 저자는 그 도달점에 다다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환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 초복잡성(supercomplexity)의 시대(Barnett)를 살고 있으니까요.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시대 말이에요. COVID-19가 딱 그런 예였죠. 그래서 역량·지식·기술이라는 렌즈로만 학생을 '준비'시키려 하면 거의 헛수고에 가깝다는 겁니다. 차라리 적응력, 불확실성을 다루는 힘,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 다양한 관점을 기르는 데 무게를 두는 편이 낫다는 거예요. 여기서 저자의 핵심 주장 하나를 원문 그대로 옮겨볼게요.

"준비도를 기술이나 지식의 역량으로 정의해 버리면, 졸업생들은 우리가 지금 마주한 혼란스럽고 모호한 시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됩니다. 역량(competency)이라는 틀은 실천이 요구하는 것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축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 "When preparedness is defined as competence in skills or knowledge, graduates will be ill equipped to operate in the chaotic, ambiguous times we now face as competencies tend to oversimplify and reduce the demands of practice." (Barradell, 2023, p. 486)

 

  • 셋째, 임상 교육자(clinical educator)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지적이에요. 학생을 현장에서 가르치는 임상 교육자 본인도, 졸업생이 실천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도울 역량을 꼭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역할도 나라·직종·기관마다 제각각이고, 전담 직무기술서나 정해진 훈련 요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자가 가진 '교육에 대한 관념'이 낡았거나, 암묵적이거나, 더 넓은 교육학적 흐름과 어긋나 있을 수 있어요. 저자는 임상 교육자가 대학과 의료기관 사이에 끼인 '중간지대(betwixt and between)'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정리하면 '준비도'는 (1)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고, (2) 시간이 흐르면 그 의미가 또 바뀌며, (3) 그걸 도와줄 교육자조차 늘 준비되어 있지는 않은, 꽤 미끄러운 개념이라는 거죠.

🧭 교육에는 사실 세 가지 목적이 있어요 (Biesta)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준비시키고 있는 걸까요? 저자는 Gert Biesta의 틀을 빌려 교육의 목적을 셋으로 나눕니다.

  • 자격화(qualification): 지식과 기술을 갖추게 하는 것
  • 사회화(socialization): 그 직종의 정체성, 그리고 사회·역사·문화적으로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익히게 하는 것
  • 주체화(subjectification): 가장 낯설고, 붙잡기 어렵고, 그래서 붐비는 교육과정 속에서 가장 적게 주목받는 목적 

이 세 가지는 시그니처 페다고지(signature pedagogies)에서 말하는 '손의 습관(habits of the hand)',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 '머리의 습관(habits of the mind)'과도 맞닿아 있어요. 그런데 보건의료 교육은, 특히 근거기반실천(evidence-based practice)이 강하게 자리 잡은 곳에서는, 주로 '손'과 '머리'에 치우쳐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입니다.

 

세 번째 목적인 '주체화'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란, 전문직의 경계 안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책임을 떠맡는 것입니다."

원문: "professional subjectification is about taking up your own responsibility in your own unique way within the boundaries of the profession." (Barradell, 2023, p. 490)

🌱 그래서 저자가 꺼내는 카드, 스튜어드십(stewardship)

사실 이런 방향 전환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10여 년 전 글로벌 독립위원회(Global Independent Commission)가 발표한 보고서(Frenk 등, Lancet)도 비슷한 걸 촉구했거든요. 저자는 그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것은 교육의 초점 또한 바꿀 것을 요구하는 비전입니다. 정보전달적(informative) 학습에서 변혁적(transformative) 학습으로의 전환, 즉 그저 유능한 실무자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change agents)이자 스튜어드(stewards)를 길러내는 학습으로의 전환 말이에요."

원문: "It is a vision demanding a shift in educational focus too; from informative to transformative learning, one that produces change agents and stewards rather than merely competent practitioners." (Barradell, 2023, p. 488)

 

그럼 스튜어드(steward)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말로는 '청지기'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무언가를 자기 소유물이 아니라 맡아서 돌보고 지키며 다음 세대에 잘 물려주는 사람을 뜻해요.

  • 저자가 그리는 스튜어드는 이런 사람입니다.
    • 자기 분야의 핵심 아이디어가 어디서 왔고
    • 지금의 실천이 그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
    • 분야와 연관된 큰 질문들을 던지며,
    • 책임 있는 위험(responsible risk)을 감수하면서
    • 전문직의 미래를 빚어가는 사람.
  • "분야 전체를 조망하고 그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죠(Golde & Walker).

 

Golde와 Walker는 스튜어드십을 세 가지 측면으로 봅니다.

  • 보존(conservation): 전문직의 과거, 강점, 그리고 지속되는 적절성을 지키는 것
  • 생성(generation):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 변혁(transformation): 새로운 방향으로 적응하고, 끌어안고, 확장하는 것

그리고 스튜어드십이란 결국 "아낄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살피고, 보호하고, 보존하는 책임을 떠맡는 것"(Fong)이라고 정의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전환은 바로 이 지점이에요.

"스튜어드십은 보건의료 전문가를 단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care-givers)'으로 보는 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전문직과 그 미래를 아끼고(care about) 또 돌보는(care for) 사람으로 바라보도록 우리의 사고를 전환하게 돕습니다."

원문: "Stewardship helps to shift thinking beyond health professionals as care-givers toward also being people that care about, and for, their profession and its future." (Barradell, 2023, pp. 490–491)

 

즉, '환자를 돌보는 능력'을 넘어 '내 전문직 자체를 돌보고 그 미래를 책임지는 마음'까지 교육의 목적에 넣자는 제안인 거죠.

⏳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요?

스튜어드십을 길러내려면 교육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스튜어드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동시에, 학생의 스튜어드십을 길러주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는,

  • 전문직의 철학적 기원을 이해하고, 전통적인 가정에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패러다임을 살피며, 낯선 분야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배움은 보건의료 바깥, 예컨대 인문학(humanities)에서 와야 한다고 저자는 봅니다.
  • 교육자는 '학습에 대해 학습'해야 하고, 단순한 실무자를 넘어 '교사 정체성(teacher identity)'을 키워야 합니다.
  • 변혁적 접근은 결국 "누가 이 틀에서 이득을 보는가, 누가 해를 입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죠(Baker 등).
  • 그동안 변두리에 밀려 있던 역량들, 즉 평가적 판단력(evaluative judgment), 자원동원력(resourcefulness),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 상상력(imagination), 신뢰(trust), 호기심(curiosity), 행위주체성(agency)에 제대로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저자가 말하는 변화는 콘텐츠를 더 욱여넣거나 수업 연한을 늘리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예요.

"하지만 보건의료 전문직 교육에 정작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존재할(to be) 시간과 공간'입니다."

원문: "What health professional education needs though is more time and space to be." (Barradell, 2023, p. 492)

여기서 'to be'는 '무언가를 하기(to do)'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저 머무르며 '되어가기' 위한 시간을 뜻해요. 개인적·전문직업적 긴장과 함께 앉아 있을 시간, 내 분야와 사회가 마주한 큰 질문과 씨름할 시간, 나와 타인과 미래를 돌보는 법을 배울 시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깊이 읽고 듣고 토론할 시간이죠. 저자는 바로 이런 관계적 순간 속에서 다른 데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알맹이가 배워진다고 말합니다.

💬 마치며: '준비'가 아니라 '형성'으로

결국 저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졸업생을 '무엇에 대해, 무엇을 위해' 준비시키는지 그 목적 자체를 더 넓게 다시 생각하자는 것. 그리고 그 순간,

"초점은 '준비(preparation)'가 아니라 '형성(formation)'으로 옮겨갑니다."

원문: "The focus then shifts toward formation rather than preparation." (Barradell, 2023, p. 492)

 

저자는 또한 우리가 근거기반의료(evidence-based healthcare)를 진지하게 여기는 만큼, '교육' 그 자체도 고유한 학문 분야로 진지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스튜어드를 길러내고 스스로 스튜어드가 되려면 그만한 전문성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글을 이렇게 맺습니다.

"전문직의 미래를 돌보는 일, 그리고 그것을 돌보고 아끼는 법을 배우는 일은, 그 전문직에 속한 모든 사람의 책임이 됩니다."

원문: "Caring for the future of the profession, and learning to care for and about it, becomes a responsibility of everyone within that profession." (Barradell, 2023, p. 492)

 

읽고 나니 이런 질문이 남더라고요. 우리는 학생들에게 '첫 출근날 바로 써먹을 지식과 기술'을 쥐여주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 반대로 '자기 전문직을 아끼고 그 미래를 함께 빚어갈 마음'을 길러주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내어주고 있을까요? 스튜어드십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울림이 꽤 오래 남습니다. 🌿


서론 Introduction 

여러 기준에서 볼 때, 보건전문직 교육(health professional education)은 성공적이다. 증가하는 학생 등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과정들이 인증(accredited)되고 있다. 매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졸업하여 노동시장(workforce)에 합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충분히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징후가 있다. 문헌에는 졸업생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prepared)”거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들이 흩어져 있다.1–8 “결핍(deficits)”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확인되어 왔다.

  • 특정 환자 사례 특성(patient case characteristics), 예를 들어 만성통증(chronic pain), 비만 관리(obesity management), 젠더 다양성(gender diversity)을 다룰 수 있는 능력;
  • 특정 보건의료 환경이나 사건, 예를 들어 농촌 보건(rural health), 팬데믹(pandemics), 재난(disasters) 속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
  • 특정 기술 세트(skill sets), 예를 들어 보고서 작성, 동료에게 정보 발표, 효과성 평가, 학생 교육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 최종 고용 장소의 맥락, 예를 들어 조직의 준거틀(organizational frames of reference) 안에서 일하는 데 자신의 역량(capabilities)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

분명히 정해진 길이의 교육과정(curriculum of defined length)이 수행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전문직 교육(professional education)의 부적절성에 대해, 일반적으로도 그리고 보건 분야에서 구체적으로도 글을 써왔다. 예를 들어 이론과 실천(theory and practice)의 관계,9 지식과 기술, 그것도 특정한 지식과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의 불충분성,10 그리고 더 넓게는 전문직 교육이 숙고하는 전문직(deliberate professionals)11, 즉 “사회 구성원이자 자신의 전문직적, 학문적 또는 직업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기여하는 사람들”12(p. 3)을 준비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논의되어 왔다. Whitehead와 동료들13은 이 현상을 심지어 “교육과정 회전목마(curricular carousel)”13(p. 765)라고 묘사했다. 이는 의학교육(medical education) 안에서 같은 문제들이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한 단계일 뿐이다. 그 반복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보건전문직이 졸업생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확장하는 데 있다. 나는 보건전문직이 교육적 목적(educational purpose)에 대해 더 폭넓게 사고하고, 졸업생의 교육적 형성(educational formation)에 대해 더 확장적이고 변혁적인 접근(expansive and transformative approaches)에 투자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 첫째, 나는 보건전문직 프로그램의 핵심 성과(central outcome)이면서 오랫동안 도전에 시달려온 “실무 준비성(preparedness for practice)”이라는 개념을 탐구한다.
  • 둘째, 교육적 목적에 주목하는 것이 준비성 개념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전문직 자격(professional qualification), 사회화(socializ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를 위한 준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스튜어드십(stewardship)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전문직을 지속시키고 돌보는 것(sustaining and caring for the profession[s])이 포함된다. 스튜어드십은 보건전문직 교육을 재상상하고, 교수와 학습 접근을 준비(preparation)에서 전문직 형성(professional formation)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념이다.
  • 마지막으로 나는 보건전문직 교육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안을 제시한다. 나는 더 넓은 주장을 고등교육(higher education)과 보건전문직 교육 문헌 모두에 근거하여 전개한다.

“실무 준비성” 개념의 도전 Challenges with the concept “preparedness for practice” 

실무 준비성(preparedness for practice)은 까다로운 개념이다. 그 도전은 보건전문직 실무를 위한 교육뿐 아니라 이 현상에 대한 연구(research)와도 관련된다. 이 논문은 교육에 초점을 두지만, 연구와 학문적 탐구(research/scholarship)는 실천(practice)에 영향을 미치므로 두 영역 모두 중요하다.

  • 첫째, 준비성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는 구성개념(construct)이다. 이것 자체가 도전이다. 왜냐하면 실무자(practitioners), 교수자/학자(academics), 학생(students)이 서로 다른 목표나 의미를 가지고 말하고 있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오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무자, 교수자/학자, 학생은 준비성이 무엇을 포함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질 수 있고, 이는 추가적인 오해와 불일치(disjunction)를 만들어낸다.
  • 둘째, 준비성은 고정된 구성개념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보건 요구(health needs)가 변화함에 따라, 미래 인력(future workforce)의 요구와 실무에 준비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변화한다.
  • 셋째, 실습(placements) 중 준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임상교육자(clinical educators)는 졸업생들이 실무의 요구를 충족하도록 돕는 데 반드시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고등교육기관(tertiary educational institutions), 즉 대학, 폴리테크닉, 칼리지와 같은 중등 이후 교육기관과, 이들을 보통 고용하는 보건의료 현장(healthcare settings)의 이중적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절에서는 준비성과 관련된 복잡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도전들을 차례로 탐구한다.

준비성 — 개념적 과잉 Preparedness – a conceptual plethora 

준비성(preparedness)이라는 용어 사용의 첫 번째 도전은 그것이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실무 준비성(preparedness for practice)”은 보건전문직 교육에 관한 대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대학과 전문직 단체(professional bodies) 모두가 전문직 자격(professional qualification)에 부여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직무 준비성(work readiness)은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의 사고와도 맞물리며 매우 유행하고 있다.14 그러나 학생, 대학, 환자, 전문직에게 “준비(preparation)”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둘러싸고 긴장이 있다. 논쟁적으로 말하자면, 학생들은 자격을 얻고 일을 시작하려는 욕구에 의해 움직인다. 여러 측면에서 학생들은 대학이 자신의 전문직 경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도구(tools)와 통찰(acumen)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신뢰한다. 보건전문직은 근본적으로 숙련되고(proficient), 안전하며(safe), 그 일을 할 준비가 된 졸업생을 원한다. 하지만 그 일의 요구사항은 변화하고 있으며, 학문분야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고 있다.15 더 나아가, 환자들이 특정 전문직과 관련된 기술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아는 보건의료 실무자를 원한다는 근거도 증가하고 있다.16–21

 

보건전문직 교육은 대학 부문보건/사회적 돌봄 부문(health/social care sectors)을 모두 포함한다. 졸업생 교육은 양 부문의 이해관계에 속하지만, 각 부문은 서로 다른 목표도 가지고 있다.

  • 대학의 경우 이는 다면적이다. 지배적인 아이디어는 학문성과 학습(scholarship and learning), 연구와 지식(research and knowledge), 취업 가능한 졸업생(employable graduates)의 배출, 대학 자체의 이해를 위한 영향력(impact)의 산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사회가 직면한 도전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 반면 보건의료 현장(health care settings)의 주요 사명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환자 진료(patient care)의 제공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상위 목표들을 고려할 때, 각 부문이 교육과 그 기저 가정(underlying assumptions)에 대해 자연스럽게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가능성은 낮다.22 그러나 이러한 서로 다른, 때로는 상반되는(countervailing) 관점들은 교수자/학자, 교육자, 학생,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준비성(preparedness)”과 관련하여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를 크게 형성한다. 대학과 그 보건전문직 교육과정은 보건의료 실무자가 되어가는 학습의 프로젝트를 새롭게 상상하고, 가능성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n of possibilities)을 여는 촉매(catalyst)로 작용할 수 있다.

 

연구는 준비성 개념의 다형성(pluriformity)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 최근의 종단 질적 연구(longitudinal qualitative study)는 호주의 네 개 학문분야, 즉 영양학(dietetics), 의학(medicine), 간호학(nursing), 약학(pharmacy)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가진 실무 준비성의 개념화(conceptualisations) 13가지를 확인했다.23 이 중 11가지는 준비성의 성격(nature of preparedness)과 관련되었다. 경험(experience), 지식(knowledge), 자신감(confidence), 자기인식(self-awareness), 기술(skills), 역량(competence), 고용가능성(employability), 자기주도성(self-initiative), 독립성(independence), 책임/책무성(responsibility/accountability),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그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시간(time), 즉 단기(short term)와 장기(long term)에 관련되었다.
  • 이 학생들이 가지고 있던 개념화는 의학 맥락에서 단일 시점(single timepoint)을 포함한 영국의 다기관, 다중 이해관계자 연구(multicentre, multi-stakeholder UK study)의 결과와 유사하다.24
  • 임상학습 준비성(preparedness for clinical learning)에 초점을 둘 때는 다른 개념화가 나타난다. Chipchase와 동료들25은 세 학문분야, 즉 물리치료(physiotherapy),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 언어병리학(speech pathology)의 임상교육자들이 실습 시작 시 잘 준비된 학생(well-prepared student)을 나타낸다고 생각한 특성을 연구했다. 여섯 가지 주제, 즉 개인적 속성(personal attributes), 의지(willingness),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의사소통과 상호작용(communication and interaction), 기술과 지식(skills and knowledge), 이해(understanding)가 확인되었다. 이는 “자신의 학습에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25(p. 5) 성인학습자(adult learner)가 되는 것이 가장 높게 평가되었음을 시사한다.
  • 실무 준비성에 관한 전체 문헌은 준비성이 연구, 교육, 실무 중 어느 영역에서든 가치가 있으려면 공유된 이해(shared understandings)를 확립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준비성은 단순한 구성개념이 아니며, 그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한 유용성은 감소한다.26

준비성은 고정된 구성개념이 아니다 Preparedness is not a static construct 

이 용어 사용의 두 번째 도전은 준비성(preparedness)이 정의된 종착점(endpoint)이나 성과(outcome), 즉 어떤 상황에 대응할 준비(readiness to attend to a situation)를 암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를 달성한다는 것은 논쟁적으로 말해 오류(fallacy)이다. 현대에는 완전히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초복잡성(supercomplexity)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상당한 논쟁 가능성(contestability)과 모호성(ambiguity)의 시대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시대를 의미한다.27

 

COVID-19 팬데믹은 그 훌륭한 사례이다. 팬데믹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 특정한 생물학적 상황, 예를 들어 무증상과 유증상 양상(asymptomatic versus symptomatic presentations),
  • 사회적 상황, 예를 들어 세계적 이동성(global mobility)과 인구밀도(population density)로 인한 봉쇄의 어려움(containment challenges),
  • 경제적 상황, 예를 들어 급격한 실직과 봉쇄(lockdowns)의 영향, 문화적 상황,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 및 환경의 관계,
  • 정치적 상황, 예를 들어 백신 접근성(access to vaccine) 등이 결합되면서 이 팬데믹은 초복잡성의 모든 특징을 보여준다.

역량(competence), 기술(skills), 지식(knowledge)의 렌즈를 통해 보면, 오늘날의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일은 거의 무익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보건전문직은 예컨대 적응력(adaptability), 불확실성에 대처하기(dealing with uncertainty), 실패를 포용하기(embracing failure), 그리고 아이디어와 패러다임의 다원성(plurality of ideas and paradigms)을 개발하는 데 더 큰 강조점을 둘 때 더 잘 기능할 수 있다.

 

10여 년 전, 세계가 직면한 초복잡한 문제에 대응하여 한 글로벌 독립위원회(Global Independent Commission)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 “모든 보건전문직은 지식을 동원하고(mobilize knowledge), 비판적 추론(critical reasoning)과 윤리적 행위(ethical conduct)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역적으로 반응적이고(locally responsive)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globally connected) 팀의 구성원으로서 환자 및 인구 중심 보건시스템(patient and population-centred health systems)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28(p. 1924)
    • 이는 과학기반 교육과정(science-based curriculum)에서 사회적 책무성(social accountability)에 대한 더 큰 인식이 있는 교육과정으로,
    • 독립성(independence)에서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으로,
    • 개인 또는 아마도 공동체 수준의 클라이언트 초점에서 전 지구적 인구(global populations)로 나아가는 상당한 전환이다.
  • 이는 교육적 초점의 전환도 요구하는 비전이다. 즉
    • 정보전달적 학습(informative learning)에서 변혁적 학습(transformative learning)으로,
    • 단순히 유능한 실무자(competent practitioners)가 아니라 변화 주체(change agents)스튜어드(stewards)29를 길러내는 학습으로의 전환이다.

위원회의 제안은 준비성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준비성을 생각하는 방식과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도전적으로 재고하게 한다. 또한 위원회의 제안은 보건전문직 교육의 도덕적, 사회정의적 의무(moral and social justice obligations)를 강조한다.30 지난 10년 동안 보건전문직 교육은 발전해 왔지만, 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수업적 개혁(instructional reform)과 제도적 개혁(institutional reform)이 깊이 변혁적인 방식으로 일어났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변화는 느리고, 고립된 성격을 띠며, 규모가 작고, 21세기 도전에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닌 경향이 있다.

현대의 임상교육자 —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 The contemporary clinical educator – betwixt and between 

세 번째 도전은 교육자들이 졸업생들이 실무의 요구를 충족하도록 돕는 데 필요한 역량(capabilities)을 반드시 갖추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임상교육자(clinical educators), 또는 임상의-교육자(clinician-educators), 교육감독자(educational supervisors)는 업무 기반 환경(work-based settings)에서 초급 또는 등록 전 학생(entry-level or pre-registration students)을 감독(supervision)하는 자격을 갖춘 보건의료 실무자(qualified health practitioners)이다.31,32 임상교육자의 정확한 역할은 보건전문직, 국가, 고용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임상교육자는 종종 주된 환자 대면 역할(patient facing role)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이 역할을 맡으며, 따라서 보통 보건서비스(health service)에 고용되어 있다. 과거에는 경험 많은 임상의에게 제한되었던 역할이었지만, 임상교육 역할과 책임이 경력 초기의 실무자에게 더 일찍 맡겨지고 있다는 근거가 있다.33,34 간호 프리셉터(nursing preceptors)와 프래카데믹(pracademics), 즉 실무자이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의 학문적 지위와 학문 및 임상 현장에서의 정당성(academic position and legitimacy)을 가진 사람들35은 임상교육자의 감독 책임 일부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할들 사이에는 핵심적인 차이도 있다. 예를 들어 프리셉터는 신규 졸업생이 직장생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원하고 양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36 프래카데믹은 학문 현장과 임상 현장 모두에서 이중 책임을 가진다.37,38

 

실무자가 어떻게 임상교육자가 되는지는 다양하며, 임상교육자에게 부여되는 역할과 책임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은 역할 실행(enactment of the role)에 도전을 제기한다. 임상교육자에게 배정되는 구체적인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나 책임 목록(set of responsibilities)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임상교육자를 위한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professional development programs)은 존재하며, 1시간 워크숍부터 단기 과정과 세미나 시리즈, 여러 해에 걸친 펠로십(multiple-year fellowships)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프로그램과 활동은 동료들과 연결되고, 교수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며, 자신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39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임상교육자 역할을 맡기 위한 특정한 훈련 요건(specific training requirement)은 없다. 많은 임상의들은 임상교육자가 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며40 일부는 전혀 관심이 없다.41 임상교육과 관련된 졸업 후 전문성 개발(post-graduation professional development)을 이수한 임상교육자조차도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연구들은 교육자들이 여러 종류의 지원을 원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 여러 학생 관리하기(managing multiple students),
  • 자신들이 “도전적(challenging)”이라고 여기는 학생 감독하기,
  • 경쟁하는 교육적 요구와 임상적 요구의 균형 맞추기,
  • 피드백(feedback), 교수전략(teaching strategies),
  • 즉 자신의 경험 외의 전략, 학생 성찰(reflection)과 주체성(agency) 촉진하기,
  • 교수 구조화하기(structuring teaching),
  • 자신의 개발상의 격차(addressing gaps in their own development) 등이 있다.34,42

 

효과적인 임상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무 입문 프로그램(entry to practice programs)의 일부로 학습되지 않는 특정한 역량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교육적 개발(educational development)이 없다면, 임상교육자들이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conceptions)은 시대에 뒤처져 있거나(out of date), 순진하거나(naïve), 숨겨져 있거나(hidden), 더 넓은 교육학적 접근(pedagogical approaches)과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교육자들이 자격화(qualification), 사회화(socializ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의 목적을 위해 가르치지 않거나, 혹은 그것을 현대적 방식으로 수행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교수와 평가의 혁신(innovations in teaching and assessment)이 의도된 목적(intended purpose)이나 이론적 기원(theoretical origins)과의 불일치로 인해 효과성이 의심스럽고 상당한 저항을 받는 방식으로 도입되고 널리 채택될 수 있다.”22(p. 1046) 예를 들어 Delany와 Bragge35는 호주 물리치료 학생과 임상교육자의 학습 및 교수에 대한 인식을 탐구했다. 그들의 결과 중 하나는 교육자들이 구조화된 지식 전달(structured knowledge transmission)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학생들이 원하는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active and self-directed learning)과 맞지 않았으며, 전문직 사회화(professional socialization)와 실천공동체(communities of practice)에 우호적인 접근도 아니었다. 물론 이 연구는 10년 이상 된 것이지만, 당시에도 더 현대적인 교육 이론과 이해는 존재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실무 준비성(preparedness for practice)이라는 아이디어에는 그것의 사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혼탁함(muddiness)이 있다.

  • 준비성이 누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복수적이다.
  • 시간이 흐르면서 준비성이 의미하는 바도 변화한다.
  • 교육자들은 모든 바람직한 성과(desired outcomes)를 달성하도록 돕는 데 반드시 준비되어 있지 않다.
  • 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목적의 영역(domains of purpose)을 가로질러 생각하고, 그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

실무 준비의 목적 The purpose of preparation for practice 

실무 준비성(preparedness for practice)은 흔히 바람직한 성과(desired outcome)를 나타내며, 종종 전문직 자격(professional qualification), 즉 지식과 기술, 그리고 전문직 사회화(professional socialization), 즉 정체성 형성(identity formation)과 사회-역사-문화적으로 형성된 존재 방식과 행위 방식(socio-historico-cultural ways of being and doing)의 측면에 중심을 둔다.43 이러한 전문직 업무의 차원은 시그니처 교육법(signature pedagogies)의 “손의 습관(habits of the hand)”, “마음/가슴의 습관(habits of the heart)”, “정신/사고의 습관(habits of the mind)”44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들은 초급 프로그램(entry-level programs)의 전문직적 및 교육적 목적(professional and educational purpose)이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교육과정에서 불균등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적어도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에서는 근거기반 실무(evidence-based practice)가 강하게 내재된 담론(embedded discourse)이기 때문에, 사고의 습관(habits of mind)손의 습관(habits of hand)이 보건전문직 교육을 지배해 왔다.45

 

그러나 세 번째 교육적 목적이 존재한다. 그것은 교사와 학습자 모두에게 상대적으로 덜 익숙하고, 이해하기 더 어렵고, 빽빽한 보건전문직 교육과정(crowded health professional curriculum)에서 아마도 덜 주목받는 목적이다. 그 목적은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43,46이다.

  • 이는 “사려 깊고, 독립적이며, 책임 있는 전문직이 되어가는 것(becoming a thoughtful, independent, responsible professional)”43(p. 449)을 포함하고,
  •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지식, 기술, 이해가 활용되어야 하는지, 또한 언제 규칙을 따라야 하고 언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굽히거나, 때로는 특정 상황이 이를 요구할 경우 무시해야 하는지”43(p. 451)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포함한다.
  • 본질적으로 전문직 주체화는 전문직의 경계 안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떠맡는 것(taking up your own responsibility in your own unique way)에 관한 것이다.

전문직 주체화는 손, 가슴, 정신의 세 습관을 모두 포함하지만, 주체화는 여전히 타인을 돌보는 법을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준비성 문제 다루기: 균열과 변혁
Dealing with issues of preparedness: disruption and transformation
 

마지막 절에서 나는 보건 및 교육 시스템(health and educational systems)을 가로질러 사고하며, 보건전문직 교육이 전문직 준비(professional preparation)의 새로워지고 되살아난 공간과 장소(renewed and revived space and place)가 되도록 도울 수 있는 행동을 제안한다. 핵심 행동은 보건전문직 교육이 목적(purpose), 그리고 그에 따라 내용(content)과 관계(relationships)를 다시 고려하는 것이다.43 지금까지 나는 보건전문직 졸업생의 준비성을 문제화하면서 종종 임상교육(clinical education)에 초점을 두었지만, 보건전문직의 미래는 보건전문직 교육의 모든 영역과 그 영역을 차지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시스템적 변화(systemic change)를 통해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도전이다.


보건전문직 교육의 목적과 성과에 대한 사고 확장 — 스튜어드십의 추가
Expand thinking about the purpose and outcomes of health professional education – the addition of stewardship
 

  • “당면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 때문에 …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의 더 큰 목적(larger purpose)의 중요성과, 세계화된 사회(globalized societies)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문직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29(p. 665)

앞서 소개한 준비성의 개념화들은 보건전문직 교육의 성과가 초보 전문가(novice experts)를 배출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implicit assumption)에 기반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졸업생의 임상적 책임(clinical responsibilities)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교육은 점점 더 그것이 현재 무엇을 제공하는가가 아니라, 현재 너머의 세계에서 무엇을 산출하는가, 즉 그 성과와 결과(outcomes and consequences)에 의해 판단된다.”47(p. 400) Boud와 Soler는 지속가능한 평가(sustainable assessment)와 장기적 학습(learning for the longer term)의 관계에 대해 쓰고 있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학생들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는지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복잡한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학습자를 형성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지금 어떤 교육적 실천(educational practices)이 필요한가?”47(p. 400)

 

내용 기반(content-based) 역량 기반(competency-based) 교육과정 관점은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크게 두드러지며 중요하다. 보건의료 실무자는 인지적 및 기술적 전문성(cognitive and technical expertise)에 기반한 일을 수행하며,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근거로 보여주는 것은 인증 과정(accreditation processes)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내용과 역량 관점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한 관점은 정의된 직무 역할(defined job roles)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 내용 관점(content perspectives)은 또한 교직원이 무엇을 하는가에 초점을 둔다. 즉 학생의 이해를 구축하기 위해 자료를 어떻게 전달하고 배열하는가, 다시 말해 학생들이 어떻게 “준비시켜지는가(prepared by)”48에 주목한다.
  • 역량 관점(competency perspectives)은 성과(outcomes)에 초점을 두지만, 단순하고 환원적인(simplistic and reductionist) 경향이 있어 실무의 매우 많은 측면을 포착하지 못한다.49–51
  • 더 나아가 역량기반 교육과정(competency-based curriculum)은 정의된 의도한 성과(defined intended outcomes)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비전통적이거나 새롭게 등장하는 역량(nontraditional or emerging competencies)은 종종 주목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21세기 환경 안에서 일하고 기여하기 위해서는 역량(competency)과 숙련도(proficiency) 이상이 필요하다. 특정한 능력과 태도(abilities and attitudes)도 요구된다.

  • “도전은 다중의 틀(multiple frameworks), 경쟁하는 가치체계(contesting value systems), 열린 행위 상황(open-ended action situations)과 효과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인간적 자질(human qualities)의 형성을 장려하는 일련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27(p. 263)

이를 달성하려면 보건전문직 교육이 자신의 목적을 다시 개념화해야 한다. 21세기 보건전문직 교육이 내용과 역량, 심지어 실천(practices)을 넘어, 전문직의 변화 주체(change agents)를 준비시키고 학문/분야의 스튜어드(stewards of the discipline)가 되는 목표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어떨까?29 스튜어드십(stewardship)에 주목함으로써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의 목적은 타인을 돌보는 것에 더해 전문직의 미래를 돌보는 것까지 포함하게 된다.

 

스튜어드(stewards)

 

  • 해당 분야/학문/전문직(field/discipline/profession)의 중요한 아이디어,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그리고 현재 실무가 그러한 아이디어와 어떤 관계 속에 위치하는지를 이해한다.
  • 스튜어드는 해당 분야 안에서, 그리고 그 분야와 연결된 광범위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한다.
  • 그들은 비전(vision)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전문직을 사려 깊게 형성하기 위해 책임 있는 위험(responsible risks)을 감수한다.
  • 그들은 “학문의 전체 범위(the entire span of the discipline)를 파악하고 그 구성 부분들이 어떻게 함께 맞물리는지를 이해한다.”52
  • 그러나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며, 자신의 분야 밖의 사람들과 연결되려는 헌신을 통해 창조하고, 균열을 만들고(disrupt), 변혁한다(transform).29(pp. 665–666)

 

스튜어드십은 보건전문직을 돌봄 제공자(care-givers)로만 보는 사고를 넘어, 자신의 전문직과 그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돌보는 사람들로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튜어드는 Coccia와 Veen53이 설명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돌봄(care)을 구현한다. 즉 돌봄을 보건의료 교육(health care education)의 정신(spirit)으로 보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왜 그것을 하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살아 있게 유지한다. 보건전문직 교육의 스튜어드는 다음 세대의 스튜어드, 즉 신규 졸업생(new graduates)의 전문직적 필요를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것이다.

 

  • 보존(conservation), 즉 전문직의 과거, 강점, 지속적 관련성;
  • 생성(generation), 즉 창조하기;
  • 변혁(transformation), 즉 적응하고, 포용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기가 그것이다.

 

52 Boud와 Soler47는 지속가능한 교육 실천(sustainable educational practices)에 대해 생각하도록 우리를 격려했다. 스튜어드십은 바로 그것을 수행한다. 스튜어드십은 “돌볼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감독하고, 보호하고, 보존하는 책임을 맡는 것(taking responsibility for overseeing, protecting, and preserving something worth caring for)”54(p. 612)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튜어드는 전문직이 계속 진화하고 새롭게 활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 타인을 양육하고, 창조하며, 힘을 부여하는 행동과 행위(actions and behaviors)에 대해 생각한다. 따라서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스튜어드십은 전문직의 지속적 관련성(ongoing relevance)을 돌보는 데 초점을 맞추도록 도울 것이다.17

 

보건전문직 교육자, 즉 교수자/학자(academics), 프리셉터(preceptors), 기타 임상감독자(clinical supervisors)는 스튜어드십을 실현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하며, 보건전문직과 그 교육적 형성에 대한 사고를 흔드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 “각각의 떠오르는 전문직 실무자 세대(rising generation of professional practitioners)에게는 자기 전문직 실천의 개인적 및 집단적 수행(individual and collective conduct of the practices of their profession)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변화하는 시대와 상황을 위해 그것을 새롭게 하고 되살릴 책임이 주어진다…”55(p. 495) 대학의 지배적 이념적 탐구(ideological inquiry) 안에 위치한 등록 전 교육과정(pre-registration courses)은 그러한 균열을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인지적 불균형(cognitive disequilibrium), 낯설게 하기(estrangement),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을 만들어내기에 이상적인 위치에 있다.56,57

 

스튜어드로 행동하기 위해 보건전문직 교육자는 특정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스튜어드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스튜어드십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 전문직의 철학적 기원(philosophical origins)을 이해하고,
  • 전통적 가정(traditional assumptions)에 의문을 제기하며,
  • 다양한 패러다임(diverse paradigms)을 고려하고,
  •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며,
  • 낯선 학문분야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분야(field of education)에 대한 전문성(expertise)과 함께, 보건전문직은 자신이 선택한 전문직에 묶여 있는 것 외의 추가적인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준비성에 관한 문헌은 지식-실천 격차(knowledge-practice gap)를 시사한다. 즉 실무자들은 “현대 보건의료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도전들을 효과적으로 탐색하기 위한 충분한 기초 준비(foundational preparation)가 일반적으로 부족하다.”58(p. 1) 또한 그들은 “맥락적 요인(contextual factors)과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의 중요성을 알지만, 그에 맞게 자신의 실무를 형성할 도구(tools)를 가지고 있지 않다.”58(p. 2) 그러한 학습 요구를 해결하는 것은 보건과학(health sciences) 너머에서, 예컨대 인문학(humanities)을 포함하되 이에 한정되지 않는 학문분야로부터 올 수밖에 없다.

 

보건전문직 교육자는 또한 학습에 대해 배워야 한다(learning about learning). 실무자들이 환자 교육(patient education)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학습에 대해 배우기(learning about learning)”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그리고 기법(techniques)의 측면에서 일부 유사성이 있을 수 있지만, 환자 교육은 “되어가기(become)”를 배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명제이다. 교육(education)은 그 자체의 전문성(expertise)을 가진 분야이다. 보건의료 실무자를 교육하는 것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보건전문직 교육자라는 역할이 가치 있게 여겨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며, 이 역할을 위한 경력 경로(career pathway)를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왜 교육 전문가(educational specialist)가 임상 펠로우(clinical fellow)나 세부 전문분야 전문가(stream specialist)보다 덜 가치 있어야 하는가? 교육자는 자기 학문의 스튜어드로서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교육자 자신이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그런 방식으로 능숙하게 행동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교육자들, 특히 주로 실무자 역할(practitioner role)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교사 정체성(teacher identity)”59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받아야 하며, 자신의 일의 리듬과 루틴(rhythms and routines) 속에서 언제 어디에 학습 기회가 존재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60

 

보건의료 현장의 교육자들은 특히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들은 각 이해관계자, 즉 대학과 보건의료 현장 각각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시에 학생과 환자/클라이언트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관계들은 임상교육자가 헤쳐 나가기에 어려울 수 있다.33 그러나 임상교육자에게 주어진 이 “사이에 끼어 있는(betwixt and between)” 위치는 임상교육, 그리고 임상교육자에게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기회가 있음을 나타낼 수 있다. 그것은 보건전문직이 전통적 위계와 사고방식(traditional hierarchies and mindsets)에 도전하고, 다른 교수학습 접근(teaching and learning approaches)을 채택하며, 보건전문직 교육 성과에 대한 사고를 실무자(practitioner)에서 변화 주체/스튜어드(change agent/steward)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스튜어드십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대학에 만연한 수행주의적 의제(performative agendas)를 고려할 때, 고등/전문직 교육(tertiary/professional education)과 그 목적에 대한 더 넓은 관점, 그리고 변혁적 교육 접근(transformative educational approaches)이 필요하다.61 첫 근무일(first day of work)을 위한 지식과 기술에 초점을 두는 내용 및 역량 기반 교육과정 관점 안에서 스튜어드십을 촉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러한 접근은 건강과 웰빙(health and wellbeing), 사회(societies), 학생 학습(student learning), 실무자 발달(practitioner development)에 대한 동일한 전통적 믿음을 영속화한다. 반면 스튜어드십은 그러한 믿음과 실천을 질문하고, 해당 분야 안팎의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질문하며, 위험을 감수하고, 비판적이고 새로운 파트너십(critical and novel partnerships)을 통해 새로운 전문직적 가능성을 찾는다.29,52

변혁적 접근(transformative approaches)은 본질적으로 지배적 접근(dominant approaches)에 도전한다. 이는 그 접근들의 과학적 주장(scientific claims)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이 특정한 프레이밍(framing)으로부터 누가 이익을 얻는가… 누가 그것으로 인해 해를 입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주장들의 사회정치적 효과(sociopolitical effects)에 도전하는 것이다.”22(p.1054)

 

변혁적 교육 접근은 학습자에게 힘을 부여하여 그들이

 

  • “변화의 주체(agents of change)로서 현상(status quo)에 도전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도록”22(p. 1050) 하며,
  • “개인적 및 사회적 가정과 실천(individual and societal assumptions and practice)에 지속적으로 도전하도록”22(p. 1050) 한다.

 

비전통적인 손, 가슴, 정신의 습관(nontraditional habits of the hand, heart, and mind)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평가적 판단(evaluative judgment), 자원 활용성(resourcefulness),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 상상력(imagination), 신뢰(trust), 호기심(curiosity), 주체성(agency)과 같이 간과되거나 주변화된 역량(capabilities)이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주목받게 된다면,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 해부학(anatomy)과 생체역학(biomechanics) 같은 전통적인 지식 영역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
  • 자신의 학습 요구를 식별할 수 있는 통찰과 판단력(insight and acumen);
  • 적절한 학습 기회를 찾아 나서려는 추진력과 의도(drive and intention)가 그것이다.

 

전문직은, 이것이 대학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래 학습자들이 특정 진로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학생들이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미디어나 과거 경험을 통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학습 경험과 경력을 향해 나아가도록 위치 지어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스튜어드십이 요구하는 종류의 참여(engagement)를 만들어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유용하게 고려될 수 있는 다른 이니셔티브로는

  • 교육 현장과 전문직 현장의 경계 흐리기(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educational and professional settings),62
  • 그리고/또는 전환(transitions)을 다르게 재구성하기,63,64
  • 학생과의 파트너십(partnering with students),65
  • 환자와의 파트너십(partnering with patients)66–68 등이 있다.

여기에서 제안된 아이디어들은 더 많은 내용이나 더 긴 초급 교육(entry-level study)이 아니라 급진적 변화(radical change)를 가리킨다. 과밀한 교육과정(overcrowded curriculum)의 가능성은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항상 도전이 될 것이다. 적용하고 통합해야 할 연구는 언제나 더 많을 것이며, 연습해야 할 새로운 기술, 고려해야 할 새로운 기술(technologies)도 언제나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보건전문직 교육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존재할 시간과 공간(time and space to be)이다.

  • 개인적 및 전문직적 긴장(personal and professional tensions)과 함께 머무를 시간과 공간.
  • 자신이 선택한 전문직과 사회가 직면한 큰 질문들과 씨름할 시간.
  • 자기 자신을 돌보고, 타인을 돌보며, 미래를 돌보는 법을 배울 시간.
  • 타인과 함께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듣고, 읽을 시간.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배움의 알맹이(nuggets)는 바로 이러한 관계적 순간(relational moments) 안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앞서 언급한 역량들, 즉 평가적 판단, 자원 활용성, 비판적 분석, 상상력, 신뢰, 호기심, 주체성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학생들이 무엇을 향해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올바른 메시지를 보낸다면, 존재할 더 많은 시간(more time to be)은 충분히 가치 있게 쓰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결론 Conclusion 

실무 준비성(preparedness for practice)은 잘 알려진 도전들이 있음에도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도전은 졸업생들이 자신의 미래 경력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가, 그리고 실무 준비성이 어떻게 이해되는가와 관련된다. 나는 여기에서 보건전문직 교육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 이러한 도전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나는 스튜어드십(stewardship)을 우리가 졸업생을 무엇을 위해 준비시키는지에 대해 더 넓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제안했다. 즉 보건전문직은 돌봄 제공자(care-givers)가 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전문직과 그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돌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초점은 준비(preparation)에서 형성(formation)으로 이동한다. 교육기관(educational institutions)은 이러한 사고의 변화를 이끌기에 좋은 위치에 있지만, 이를 전문직 단체(professional bodies)와 보건의료 현장(healthcare settings)과의 파트너십 속에서 수행해야 한다. 보건전문직 교육은 현재와 미래의 보건 및 사회적 돌봄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보건전문직을 개발하기 위해 무엇을 배우는 것이 가치 있고 필요한지에 대한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 보건전문직은 근거기반 보건의료(evidence-based healthcare)를 가치 있게 여기는 만큼, 교육(education)을 그 자체의 학문 분야(scholarly field)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스튜어드십을 가르치고 스튜어드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문직의 미래를 돌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리고 그것에 대해 돌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 전문직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 된다.

 

Teach Learn Med. 2021 Jan-Mar;33(1):98-105. doi: 10.1080/10401334.2020.1835666. Epub 2020 Dec 23.

Teaching Medical Epistemology within an Evidence-Based Medicine Curriculum 

 

 

 

EBM을 가르칠 때, '의학 인식론'도 함께 가르쳐야 하는 이유

우리는 학생들에게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을 참 열심히 가르쳐요. 그런데 정작 "근거(evidence)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지식이 임상 결정에 쓰일 수 있고, 그 지식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같은 질문은 거의 다루지 않죠. 바로 이 빈틈을 짚은 논문이 오늘 소개할 Tonelli와 Bluhm(2021)의 글입니다. 저자들의 주장은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EBM을 가르치는 바로 그 시간에, 의학 인식론(medical epistemology)도 함께 가르치자는 거예요.

🩺 먼저, 진료실 풍경 하나부터

논문은 가상의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Lee 선생님의 오후 첫 환자는 Jackson 씨예요. 외래에 자주 오는 분인데, 이유가 좀 슬프죠. 도무지 나아지질 않거든요. 문제 목록이 어마어마합니다. 제2형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관상동맥질환(CAD), 울혈성 심부전(CHF),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게다가 만성 통증 증후군까지. 주된 호소는 늘 피로, 권태, 호흡곤란, 통증이 뒤섞인 상태고요. Jackson 씨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Lee 선생님은 EBM을 충실히 실천하는 의사예요. 최선의 근거를 환자 치료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죠. 그런데 Jackson 씨 앞에서는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적용해 볼 만한 연구와 진료지침이 너무 많고, 게다가 서로 충돌하거든요. COPD 지침은 CAD가 없는 대상자들로 만들어졌고, CAD 지침은 그 반대예요.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치료하면 장기적으로 심혈관 합병증 위험은 줄겠지만, 당장 환자가 편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약 때문에 더 힘들어하죠.

 

Lee 선생님도 EBM이 지침만 따라 하는 '요리책(cookbook) 의학'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EBM은 개인의 임상적 전문성(clinical expertise)과 최선의 근거를 '통합'하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거예요. 대체 어떻게요? 그녀의 전문성은 환자를 돌본 경험에서 나온 건데, 정작 학교에서는 "개인의 임상 경험은 믿을 수 없는 안내자"라고 배웠습니다. 생리학과 병태생리학은 훤히 알지만, 그 지식이 임상 결정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지는 확신이 안 서고요. 연구 방법론과 통계를 비판적으로 뜯어보는 법은 배웠지만, 자신의 임상적 전문성을 진료에 녹여 넣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추론하고 있는지 말로 설명하지 못하면, 옆에서 지켜보는 학생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이 장면 하나에 이 논문이 던지는 문제의식이 다 들어 있어요.

📚 그런데 인식론이 대체 뭐길래

인식론(epistemology)지식의 본질, 가치, 사용을 다루는 철학의 한 갈래예요. 그런데 저자들은 지금 의학교육에서 인식론이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같은 시리즈에 실린 Biesta와 van Braak의 글을 빌려, 의학교육의 한 축이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라고 말해요. 탄탄한 지식 기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임상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지식을 써야 하는지, 언제 규칙을 따르고 언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구부리거나 때로는 무시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지식 자체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의 문제예요.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분류되며, 언제 유용하고 언제 부적절한지를요.

🔍 사실 EBM도 하나의 '인식론'입니다

여기서 저자들의 핵심 통찰이 나와요. EBM은 단순히 "의학은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거죠. EBM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학 인식론, 즉 의학적 지식에 관한 이론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북미의 거의 모든 의대가 EBM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고요.

문제는 EBM의 토대인 근거의 위계(hierarchy of evidence)나 '최선의' 근거(best evidence)라는 개념이 사실은 검증되지 않은 인식론적 주장 위에 서 있다는 점이에요. 어떤 종류의 지식이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입장 표명인 거죠. 그런데 이 가정들을 검토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저자들은 이런 상태를 신랄하게 '쓰레기(rubbish) EBM'이라고 부릅니다.

"잘못 해석된 임상연구를 그릇되고 무분별하게 오용하는 것."
"the misguided and mindless misuse of misinterpreted clinical research." (Tonelli & Bluhm, 2021)

 

그래서 저자들은 EBM의 세 가지 가정을 짚고, 각각을 의학교육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검토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지를 단계별로 제안합니다. 이게 이 논문의 알짜배기예요. 같이 따라가 볼까요?

🎓 [전임상] 근거의 위계를 한번 의심해보기

EBM은 보통 의대 초반에, 역학(epidemiology)이나 연구방법론과 함께 소개됩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왔으니 '근거'라는 말을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있죠. 그래서 의학에서 '근거'가 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치료 연구의 위계는 보통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줄을 세웁니다.

  • 무작위 시험들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 of randomized trials)
  • 단일 무작위 시험(single randomized trial)
  • 관찰 연구들의 체계적 문헌고찰
  • 단일 관찰 연구
  • 생리학적 연구(physiologic studies)
  • 증례 보고/비체계적 임상 관찰(case reports)

그런데 저자들은 이 줄 세우기 자체가 '진리'가 아니라고 못 박아요.

"위계의 단계 배정은 필연적인 순서라기보다 하나의 인식론적 주장이다."
"the assignment of tiers represents an epistemic assertion rather than a necessary ordering." (Tonelli & Bluhm, 2021)

 

그래서 전임상 시기에 인식론 교육이 들어가면, 학생들은 이 위계를 '진리의 피라미드(pyramid of truth)'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대신, 그 안의 가정들을 따져보게 됩니다. 다행히 이런 작업은 이미 과학철학자들이 많이 해놨어요.

  • 무작위 배정(randomization)이 과대평가됐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Worrall은 무작위 배정이 배정 은폐(allocation concealment)나 교란 변수 균형에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지적해요. 또 모든 임상 질문(예: 흡연의 위험)이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으로 가장 잘 답해지는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요. (참고로 저자들은 이런 철학적 논점을 학생들에게 쉽게 전달하려면 'SMACK 연구'처럼 풍자적인 가짜 RCT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권해요. "엄마의 뽀뽀가 아이의 작은 상처에 효과가 없다"는 걸 무작위·맹검 시험으로 검증했다는, 위트 있는 논문이죠.)
  • 그리고 잘 설계된 비무작위 연구가 엉성한 RCT보다 나을 수도 있어요. Jackson 씨처럼 동반질환이 많은 환자에게는, 단일 질환자만 모아 한 RCT보다 비슷한 환자의 증례 보고가 더 좋은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요.
  • 그럼 생리학과 약리학은 왜 배우나요? 위계상 가장 '낮은' 근거라면서요. 여기서 기전적 근거(mechanistic evidence)의 가치가 등장합니다. Russo와 Williamson은 인과를 입증하려면 기전적 근거가 차이생성 근거(difference-making evidence, 예: 임상시험)와 함께 필요하다고 봐요. Howick은 기전이 충분히 잘 이해되면 시험 없이도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고 하고요. 그래서 저자들은, 위계가 아니라 차라리 네트워크(network)로 보는 게 맞다고 제안합니다(Bluhm).
  • 그렇다면 꼭대기의 메타분석은 객관적일까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Stegenga는 메타분석을 할 때 수많은 방법론적 선택(어떤 연구를 포함할지, 어떤 효과를 볼지, 질을 어떻게 평가할지, 어떻게 통합할지)을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선택들의 영향이 너무 커서, 같은 주제로 두 메타분석이 정반대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 학자는 해석과 비판을 담을 수 있는 서사적 문헌고찰(narrative review)의 가치를 다시 보자고 합니다.

이쯤 되면 어떤 학생은 "근거를 위계로 줄 세우는 것 자체를 그만두자"는 (꽤 설득력 있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자들은 그렇다고 위계가 아무 가치도 없는 건 아니라고 균형을 잡습니다. EBM 비판자들조차, 위계가 적어도 연구의 질이 제각각이라는 인식을 높여준 공로는 인정하니까요.

🏥 [임상 입문] 근거를 '평가'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흥미롭게도 EBM이 처음 세상에 나온 무대도 의학교육이었어요. 1992년 JAMA에 실린 EBM 작업그룹의 글은 '과거의 방식(Way of the Past)'과 '미래의 방식(Way of the Future)'을 대비시킵니다.

 

이야기는 이래요. 첫 대발작(grand mal seizure)을 겪은 환자가 재발 위험을 묻습니다. 과거 방식의 전공의는 선배와 교수에게 물어보고 "재발 위험이 높다"고 전하죠. 환자는 "막연한 불안 속에" 진료실을 나섭니다. 반면 미래 방식의 전공의는 도서관에 가서 문헌을 검색하고, 환자 상황에 딱 맞는 연구를 찾아내 "1년 내 43~51%, 3년 내 51~60%" 같은 구체적 수치를 알려줘요. 환자는 "자신의 예후를 명확히 이해하고" 나갑니다.

 

좋은 이야기죠. 그런데 저자들은 살짝 짓궂게 짚어요. 1992년에 이걸 하려면 실제로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뒤지고 논문을 복사해야 했고(그래도 30분밖에 안 걸렸다지만),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는 거예요. 이미 1996년에 Sackett 등은 영국 자문의가 독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주당 1시간 정도인데, 정말로 따라잡으려면 하루에 약 19편을 읽어야 한다고 계산했거든요.

 

그래서 2000년에 Guyatt 등은 현실적인 구분을 합니다. 직접 근거를 찾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기반 실천가(evidence-based practitioners)'와, 어느 정도 훈련은 받았지만 대개 가공된 요약본에 의존하는 '근거 사용자(evidence users)'로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EBM의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원래 개인이 직접 문헌과 씨름하라던 EBM이, 점점 정리된 요약본에 기대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EBM이) 본래 대체하고자 했던, 의문 없이 받아들여지고 종종 실망스러운 바로 그 권위."
"the kind of unquestioned, and frequently disappointing, authority that it aimed to replace." (Tonelli & Bluhm, 2021)

 

UpToDate나 Cochrane 같은 큐레이션 자료에서 명확한 답을 구하려는 학생과 임상의에게, 저자들은 한 가지를 당부해요. 명시적 기준을 따르더라도 큐레이션 과정 자체가 주관적이고 가치가 개입된(subjective and value-laden) 작업이라는 점을요. 연구비 출처나 학문적 출세 같은 편향의 원천도 들여다봐야 하고요(실제로 Cochrane 협력단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공개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죠). 물론 요약본은 단순히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필요한 도구예요. 다만 개별 연구 논문을 대할 때만큼, 큐레이션된 지침에도 똑같은 수준의 건강한 회의를 가지라는 겁니다.

👨‍⚕️ [졸업 후] '통합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기

졸업 후에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늘어납니다. 두렵지만, 그만큼 의대에서 쌓은 인식론적 토대를 발전시킬 기회이기도 하죠. 임상의가 흔히 인용하는 Sackett의 1996년 정의는 EBM을 "개인의 임상적 전문성을 체계적 연구에서 나온 최선의 외부 근거와 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정의 안에는 엄청난 복잡함이 숨어 있어요.

 

저자들은 이걸 EBM의 통합 문제(integration problem)라고 부릅니다.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진료를 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임상연구 결과만으로는 결코 처방을 다 정해줄 수 없다는 인정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죠.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드러나요.

  • 집단의 결과를 특정 개인에게 적용하는 게 단순하지 않다는 깨달음. 인식론에서는 이걸 참조집단 문제(reference-class problem)라고 합니다.
  • 출판된 연구 결과와 상충하기도 하는, 선배 임상의의 경험적 판단에 얼마나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고민.

여기서 핵심 모순이 드러나요. 임상적 전문성의 상당 부분은 직접 환자를 본 경험에서 나오는데, 정작 EBM은 그 경험적 근거를 연구 근거와 어떻게 저울질할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은 EBM 안에서 흔히 '일화적(anecdotal)'이라며 깎아내려지죠. 그리고 앞에서 본 위계는 이 '통합'에 대한 어떤 모델도 제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이 제안하는 실천적 도구가 '에피스테믹 분석(epistemic analysis)', 쉽게 말해 자기가 무슨 지식을 근거로 결정하는지 소리 내어 설명하기예요. 이때 저자 중 한 명(Tonelli)이 정리한 의학 지식의 다섯 범주가 유용한 틀이 됩니다.

  1.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
  2. 기전적 추론(mechanistic reasoning)
  3.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4. 개별 환자의 특성(individual patient characteristics)
  5. 맥락적 요인(contextual features, 예: 법적·문화적·경제적 맥락)

이런 분석은 증례 기반(case-based) 형식으로 가르치는 게 가장 좋다고 해요. 임상의들이 진단이나 치료를 두고 의견이 갈릴 때, 에피스테믹 분석을 해보면 그 불일치가 지식의 부족 때문인지, 정보 해석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같은 지식에 다른 가중치를 둬서인지를 가려낼 수 있거든요. 이렇게 하면 임상적 전문성이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black box)'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동시에, 다양한 지식 원천의 가치를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임상의는 어느 하나의 '최선의 근거'가 아니라 근거의 총체(totality of evidence)를 평가해야 하고, 저자들은 이 상태를 Solomon의 표현을 빌려 '정돈되지 않은 인식론적 다원주의(untidy epistemic pluralism)'라고 부릅니다. 인식론적 분석은 이 어수선함을 조금이나마 정돈해주는 방법인 셈이죠.

🧰 정리하며: 인식론은 평생 곁에 두는 '사용 설명서'

저자들은 의학 인식론을 학생과 수련의, 임상의를 위한 '사용 설명서(operator's manual)'에 비유하며 글을 맺습니다. 임상연구 결과, 병태생리학적 이해, 경험적 지식을 진료 현장에서 어떻게 쓸지 안내해주는 매뉴얼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 설명서를 끼워 넣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가 바로 EBM 교육과정이라고 봅니다. EBM 자체가 하나의 의학 인식론이니까요.

 

이 논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시지는 이거예요. EBM이 그토록 강조하는 회의와 비판적 분석을, EBM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하자는 겁니다.

"EBM이 장려하는 회의주의와 비판적 분석은, EBM 자체의 근본 가정과 핵심 신조에도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 "The skepticism and critical analysis encouraged by EBM can and should be applied to the underlying assumptions and primary tenets of EBM itself." (Tonelli & Bluhm, 2021)

 

그리고 이건 철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요.

"학생, 수련의, 그리고 임상의는 (임상적 통찰로 응축되는) 그 근거와 추론을 세심하고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
"students, trainees, and clinicians need to carefully and constantly examine the reasons and reasoning." (Tonelli & Bluhm, 2021)

 

그렇다면 우리 의학교육자의 역할은 뭘까요. 저자들의 마지막 문장이 답을 줍니다.

"의학교육자인 우리의 역할은 그들에게 도구를 쥐여주는 것이다."
"Our role as medical educators is to give them the tools." (Tonelli & Bluhm, 2021)

 

인식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포함한 그 도구를, 학생들이 평생에 걸쳐 쓸 수 있도록 손에 들려주는 것. Lee 선생님이 Jackson 씨 앞에서 막막했던 이유도, 어쩌면 누구도 그 도구를 제대로 쥐여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오후 첫 진료 환자인 Jackson 씨는 Lee 박사의 일반내과 외래 클리닉(general medicine outpatient clinic)에 자주 방문하는 환자였다. 주된 이유는 그가 좋아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문제 목록(problem list)은 매우 길었다. 제2형 당뇨병(Type II diabetes), 고혈압(hypertension), 고지혈증(hyperlipidemia), 관상동맥질환(coronary artery disease, CAD),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 CHF), 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 그리고 만성 통증 증후군(chronic pain syndrome)이 있었다. Jackson 씨의 주호소(chief complaint)는 대개 피로(fatigue), 권태감(malaise), 호흡곤란(dyspnea), 통증(pain)이 어떤 식으로든 조합된 것이었다. Jackson 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느꼈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지 못했다. Jackson 씨의 의학적 문제들을 적절히 다루려면 언제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오늘 Lee 박사에게는 그녀를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의과대학생(medical student)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임상적 추론(clinical reasoning)도 설명해야 했다.

Lee 박사는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을 실천하는 데 헌신하고 있었다. 이 의무는 그녀가 환자 치료에 관한 결정에서 이용 가능한 최선의 근거(best available evidence), 일반적으로는 엄격한 임상연구(rigorous clinical research)의 결과를 적용해야 함을 의미했다. Jackson 씨의 경우, 이 헌신을 실천하는 것은 특히 어려웠다. Jackson 씨에게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연구논문과 임상진료지침(clinical practice guidelines)의 수는 압도적이었고, 또한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았다. COPD 지침은 CAD가 없는 연구대상자를 사용하여 개발되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치료하면 장기적으로 심혈관 합병증(cardiovascular complications)의 위험은 낮아질 수 있었지만, 단기적으로 그가 더 나아졌다고 느끼게 해 주지는 못했다. 사실 이러한 진단명에 대한 약물들은 대체로 그를 더 나쁘게 느끼게 했다.

Lee 박사는 근거기반 실천가(evidence-based practitioner)가 된다는 것이 임상진료지침을 노예처럼 따르는 것, 즉 “요리책식 의학(cookbook medicine)”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BM은 그녀가 개별 환자(particular patients)를 위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개별적 임상 전문성(individual clinical expertise)을 이용 가능한 최선의 임상연구 결과(best available results of clinical research)와 통합하도록 허용했고, 심지어 장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의 임상 전문성은 상당 부분 환자를 돌본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녀는 일찍부터 일차적 임상 경험(primary clinical experience)은 신뢰할 수 없는 지침(unreliable guide)이라고 배웠다. 그녀는 생리학(physiology)과 병태생리학(pathophysiology)에 대해 훌륭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임상적 의사결정에서 이러한 종류의 지식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그녀는 연구방법론(research methodologies)과 통계분석(statistical analyses)을 세심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웠지만, 자신의 임상 전문성을 진료에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자신이 어떻게 추론하고 있는지, 어떤 지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왜 그런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그녀의 의과대학생 역시 더 현명해지지 못할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모든 의사와 마찬가지로 Lee 박사는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방대한 의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많은 해를 보냈다. 이 지식은 그녀의 전문직 자격(professional qualifications)의 기반일 뿐 아니라, 그녀의 모든 임상적 결정(clinical decisions)을 위한 토대가 되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지식 기반(knowledge base)만으로는 임상 실천(clinical practice)에 충분하지 않다. 임상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지식, 기술, 이해가 활용되어야 하는지, 언제 규칙을 따라야 하고 언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특정 상황이 요구한다면 규칙을 굽히거나 때로는 무시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Biesta와 van Braak이 이 시리즈의 앞선 글에서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라고 부른 의학교육의 이 구성요소는,¹ 지식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 지식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어떻게 범주화되는지, 언제 유용한지, 그리고 언제 신뢰할 수 없거나 부적절한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가변적이고(variable), 불완전하며(incomplete), 종종 서로 충돌하는 지식의 원천과 종류들 사이를 조율할 능력이 없다면, 임상의는 환자에게 유익을 제공할 수 없다.

인식론(epistemology)은 지식의 본성(nature), 가치(value), 사용(use)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나 현재 인식론은 의학교육에서 거의 또는 전혀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의학교육에서 철학의 가치(value of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를 다루는 이 시리즈의 일부로서, 우리는 의학 인식론(medical epistemology)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의학교육과 의료 실천의 핵심적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의학 인식론은

  • 임상적 결정에 어떤 종류의 의학 지식이 관련되는지,
  • 서로 다른 의학 지식의 강점과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초점을 둔다.

학생과 임상의는 임상적 결정에 대한 인식론적 분석(epistemic analysis)을 수행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즉 개별 임상적 결정에서 자신들이 어떤 특정한 종류의 지식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의 가치를 어떻게 가중하고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학생과 의사에게 이러한 기본적 이해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좋은 접근이 학부 의학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과 졸업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전반에 걸쳐 인식론을 종단적으로 도입하고 통합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현대 의학교육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한 측면,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의 기본 원리 교육이 인식론을 의학교육과정에 통합할 수 있는 편리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제안한다.

 

근거기반의학은 이제 꽤 오랫동안 지배적인 의학 인식론(dominant medical epistemology), 즉 의학 지식에 관한 이론(theory of medical knowledge)이 되어 왔다. 사실상 모든 북미 의과대학은 EBM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과정 안에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² EBM은 의학이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EBM이라는 기획은 요구되는 근거의 종류(kind of evidence)임상적 의사결정 과정(process of clinical decision making)에 대해 강한 주장을 제기한다. “근거의 위계(hierarchy of evidence)”“최선의 근거(best evidence)”라는 개념과 같은 EBM의 토대는 인식론적 주장(epistemological assertions), 즉 의학에서 적절한 지식의 종류와 상대적 가치(relative value)에 관한 주장 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주장을 검토하는 일은 의학교육자와 의과대학생에게 중요하다. 이는 단지 임상 실천이 건전한 지식(sound knowledge)에 기반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EBM이 무엇을 잘하고 있으며 어떤 도전에 여전히 직면해 있는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EBM의 인식론적 가정(epistemic assumptions)을 검토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은, 오해된 임상연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무비판적으로 오용하는 “쓰레기 EBM(rubbish EBM)”의 실천을 불러들인다

 

EBM이 의학 인식론의 한 학파(a school of medical epistemology)를 대표하기 때문에, 의학교육의 특정 지점에서 중요한 인식론적 질문들이 발생하고 관련성을 갖게 된다. 의학 인식론을 EBM 교육과정에 통합하면, 학생들은 임상적 결정에 정당하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평가하고, 병상 옆(bedside)에서 지식을 통합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EBM의 세 가지 근본 가정(underlying assumptions)을 개괄하고, 의학교육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이를 검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언급하며, 수련의들이 각각을 검토하도록 돕기 위한 구체적 제안을 제시할 것이다.

전임상 교육: 지식, 근거, 그리고 위계
Pre-clinical studies: knowledge, evidence, and hierarchies
 

근거기반의학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의과대학생에게 매우 이른 시기에 소개되며, 흔히 역학(epidemiology)과 연구방법론(research methodology)에 대한 입문 과정의 일부로 다루어진다. 자연과학(physical sciences), 사회과학(social sciences), 인문학(humanities) 등 다양한 배경에서 온 학생들은 “근거/증거(evidence)”라는 용어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올 것이므로, 특히 의학에서 무엇이 “근거”를 구성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EBM은 의학에서의 근거에 관한 주장 위에 놓여 있지만, 그 주장은 언제나 충분히 해명되거나 방어되어 온 것은 아니다.⁴˒⁵ 구체적으로 말해, EBM은 근거가 다양한 원천에서 나온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의학적 의사결정에 관해서는 어떤 근거가 “최선(best)”이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지지한다. 근거의 상대적 가치에 관한 이 주장은 EBM 이해의 중심에 있는 근거의 위계(evidence hierarchy) 안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⁶˒⁷ EBM이 제시하는 근거의 위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과업에 따라 서로 다른 위계도 있다. 예컨대 치료 연구(treatment studies), 예후 연구(studies of prognosis), 임상 의사결정 규칙(clinical decision rules)이 실제에서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평가하는 연구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위계가 존재한다.⁸ 그러나 치료 연구에 대한 위계가 가장 널리 논의되며, 여기서 우리가 초점을 맞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종류의 연구와 관련된 근거의 위계는 서로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치료 연구의 경우, 그 구조는 아래와 같다.⁷

  • • 무작위시험(randomized trials)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
  • • 단일 무작위시험(single randomized trial)
  • • 환자에게 중요한 결과(patient-important outcomes)를 다루는 관찰연구(observational studies)의 체계적 문헌고찰
  • • 환자에게 중요한 결과를 다루는 단일 관찰연구(single observational study)
  • • 생리학적 연구(physiologic studies)
  • • 사례보고(case reports) / 비체계적 임상 관찰(unsystematic clinical observations)

근거의 위계는 연구방법(study methods)을 순위화함으로써 치료 효과(efficacy of a treatment)에 관한 연구의 강도(strength)에 대해 초기 지침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위계에서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연구들은 일반적으로 더 강한 근거(stronger evidence)를 제공할 것이다. 위의 위계가 보여 주듯, 실험군과 대조군에서 치료 결과를 비교하는 연구는 개별 의사가 어떤 치료에 대해 가지는 자신의 임상 경험이나, 임상 결과가 아니라 생리학적 기전에 초점을 맞춘 연구보다 더 나은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단계(tiers)의 배정은 필연적 질서(necessary ordering)가 아니라 인식론적 주장(epistemic assertion)을 나타낸다.

 

EBM의 위계는 또한 부차적인 인식론적 가정(subsidiary epistemic assumptions)을 포함한다.

  • 하나는 무작위 배정(random allocation)이 치료군과 대조군이 치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자 특성, 예컨대 나이(age), 성별(sex), 동반질환(comorbid conditions)의 존재 등에서 유사할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 또 다른 가정은, 어떤 개인이 치료군에 배정되었는지 대조군에 배정되었는지를 참가자 자신과 임상 결과를 평가하는 연구진 모두에게 숨기는 것, 즉 눈가림(blinding)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치료, 많은 연구에서는 위약(placebo)을 포함하여, 개인이 무엇을 받고 있는지 아는 것이 치료 반응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response to therapy)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의 위계 지지자들은 무작위화되고 눈가림된 연구(randomized and blinded studies)가 비무작위, 비눈가림 연구보다 통계적 의미에서의 편향(bias), 즉 진실에서 체계적으로 벗어난 결과를 제시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다.⁷

 

학습자들이 전임상 수련(pre-clinical training) 중 근거의 위계에 처음 노출될 때, 의학 인식론 프로그램은 그들이 위계를 단순히 진리의 피라미드(pyramid of truth)로 받아들이는 대신, 이러한 근본 가정들을 검토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위계 안에 포함된 가정을 검토하는 학생들은 이 작업의 상당 부분이 이미 과학철학자(philosophers of science)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EBM에 대한 주요 비판 중 하나는 EBM이 일부 연구방법론, 특히 무작위화(randomization)의 가치를 과장한다는 것이다.⁹˒¹⁰ 무작위 배정은 유용한 도구일 수 있고 중요한 인식론적 목표(epistemological goals)를 달성할 수 있지만, EBM 비판자들은 그 중요성이 과도하게 강조되어 다른 중요한 근거 원천들이 손상되었다고 우려해 왔다. 고전적인 논문에서 Worrall은, 무작위화가 배정 은폐(allocation concealment)를 보장하고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의 잠재적 교란변수(confounding variables)를 균형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를 설계할 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있다고 주장한다.⁹ 다른 이들은 모든 임상 질문, 예컨대 흡연의 위험(risk of cigarette smoking) 같은 질문이 무작위시험으로 가장 잘 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¹⁰ 이러한 철학적 논점을 의과대학생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는 허구적이고 풍자적인 RCT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¹¹

 

무작위화에서 연구설계의 다른 측면으로 옮겨 가면, 잘 설계되지 않은 무작위시험이 잘 설계된 비무작위 연구보다 전반적으로 낮은 질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 그런지에 대한 질문이 열린다. 실제로 근거의 위계 중 일부 버전은 이를 허용한다. 학생들에게 사례보고(case report)가 무작위시험보다 더 유용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 논문의 첫머리에 나온 Jackson 씨와 유사한 환자에 관한 보고는, 단일 질환만 있고 동반질환이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시험보다 Lee 박사에게 더 나은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전임상 학생들은 생리학(physiology)과 약리학(pharmacology)의 원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거의 촉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궁금해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것들이 임상적 의사결정을 위한 가장 낮은 형태의 근거만을 나타낸다면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도록 학생들에게 도전하면, 그들은 이러한 원리들이 임상연구의 결과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두 종류의 지식이 임상적 의사결정에서 어떻게 함께 작동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와 치료군 및 대조군의 임상 결과를 비교하는 연구 사이의 관계는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의미(epistemic significance)를 지닌다. 과학철학 내에서 Russo와 Williamson은 의학에서 인과성(causality)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거(difference-making evidence), 예컨대 임상시험(clinical trials)과 함께 기전적 근거(mechanistic evidence)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¹² EBM에 매우 우호적인 철학자인 Howick은 작용 기전(mechanism of action)이 매우 잘 이해되어 있기 때문에, 대조시험(controlled trial)을 수행하지 않고도 치료의 효과(efficacy of a therapy)를 확립하는 것이 때로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치료와 결과를 연결하는 기전에 관한 근거를 사용하는 것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¹³ 보다 최근에 Tonelli와 Williamson은 기전에 관한 지식(knowledge of mechanisms)이 임상적 의사결정의 여러 측면에 필수적임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는 개별 환자의 돌봄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인구 수준 연구(population-level studies)의 결과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인구 수준 보고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포함된다.¹⁴ 앞서 무작위시험과 비무작위 연구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전적 근거를 항상 위계의 맨 아래에 두는 것은 임상의가 도움이 될 때 양질의 근거(good evidence)를 활용하려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역학연구(epidemiological research)와 실험실 연구(laboratory research)에서 유래한 지식 사이의 관계는 위계(hierarchy)라기보다 네트워크(network)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¹⁵

 

마찬가지로, 근거 위계의 정점(pinnacle)을 차지하는 방법론들도 그 나름의 인식론적 한계(epistemic limitations)를 가지고 있다.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과 메타분석(meta-analyses)은 특정 질문과 관련된 모든 양질의 연구 근거를 식별하고, 선택하고, 종합하고, 평가하기 위해 잘 정의되고 명시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메타분석은 또한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결합하여 치료 효과에 대한 전반적 추정치(overall estimate)를 제공한다. 이러한 체계적 연구들은 이전의 “서술적” 문헌고찰(narrative review) 양식을 대체해 왔다. 서술적 문헌고찰에서는 전문 임상의(expert clinician)가 문헌을 훑어보고 근거에 대해 자신만의, 종종 특이한(idiosyncratic) 판단을 제시했다. 그러나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의 겉보기 객관성(apparent objectivity)은 질문되어야 한다. Stegenga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메타분석을 수행할 때 많은 방법론적 결정(methodological decisions)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¹⁶ 여기에는

  • 검토에 포함할 연구를 결정하는 것,
  • 치료의 어떤 효과, 즉 의도한 효과(intended effects)와 부작용(side effects) 모두 중 어떤 것을 포함할지 결정하는 것,
  • 이러한 연구들의 질을 어떻게 판단할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 그것들을 어떻게 통계적으로 결합할지 결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실제로 이러한 선택들은 문헌고찰의 결과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두 개의 메타분석이 동일한 치료의 사용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권고에 도달할 수도 있다. Stegenga는 그러한 사례를 여러 개 제시한다. 일부 철학자들은 Stegenga와 같은 비판에 대해 메타분석을 옹호함으로써 응답했지만,¹⁷ 다른 이들은 이러한 양적 연구의 문제들이 근거에 대한 해석과 비판(interpretation and critique)을 제공한다는 뚜렷한 강점을 가진 서술적 문헌고찰의 가치를 재고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해 왔다.¹⁸

 

의학에서 근거라는 개념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검토를 거치고 나면, 일부 학생들은 근거를 위계로 순위화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매우 방어 가능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결론이 임상적 결정을 위한 근거적 지지(evidentiary support)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거나, 위계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혀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EBM과 근거의 위계에 비판적이었던 저자들조차, 그것이 연구의 질이 다양하다는 인식을 높인 것을 포함하여 긍정적인 인식론적 기여(positive epistemic contributions)를 해 왔음을 인정했다.¹⁹˒²⁰ 더 나아가, 앞서 언급했듯이 위계의 근본 가정을 검토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그 강점과 약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임상연구에서 나온 근거를 보다 사려 깊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도록 할 것이다.

임상의학 입문: 근거를 평가하기, 또는 받아들이기
Introduction to clinical medicine: appraising, or accepting, evidence
 

더 넓은 의학 공동체에 EBM이 처음 소개된 것은 의학교육의 맥락에서였다. EBM Working Group이 1992년 JAMA에 발표한 논문EBM의 “미래의 방식(Way of the Future)”을 불만족스러운 “과거의 방식(Way of the Past)”과 대비시킨다.²¹ 이 논문은 EBM 이전의 한 전공의가 이전에는 건강했던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 환자는 첫 번째 대발작(grand mal seizure)을 막 경험했고, 자신에게 발작이 재발할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전공의에게 묻는다. 전공의는 이 질문을 상급 전공의(senior resident)와 지도전문의(attending physician)에게 가져가고, 그들은 그녀에게 환자의 발작 재발 위험이 높다고 알려주라고 말한다. 이 정보를 들은 환자는 자신의 예후(prognosis)에 대해 “막연한 불안 상태(a state of vague trepidation)”로 떠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래의 방식에서는 전공의가 도서관에 가서 문헌검색(literature search)을 수행하고, 두어 다스의 검색 결과를 걸러 자신의 환자 상황과 직접 관련된 연구를 찾아낸다. 이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1년 시점 재발 위험은 43%에서 51% 사이이며, 3년 시점의 위험은 51%에서 60% 사이이다. 18개월 동안 발작이 없는 기간을 지낸 후라면, 그의 재발 위험은 20% 미만일 가능성이 높다.

 

전공의가 이러한 결과를 환자에게 말하자, 그는 “자신의 가능성 있는 예후에 대해 명확한 생각(a clear idea)을 가지고” 떠난다. 환자가 실제로 자신의 예후에 대한 후자의 설명을 전자의 설명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질문은 제쳐두더라도, 이 시나리오에는 마음에 드는 점이 많다. 우리는 이 전공의가 예후 연구(study of prognosis)의 질을 판단하는 방법을 이미 배웠으며, 문헌검색을 수행하고 결과를 검색해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다. 1992년에는 이것이 실제로 도서관에 가서 관련 저널을 서가에서 찾고, 그 결과를 복사해야 했음을 주목하라. 다만 이 전체 과정이 단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된다.

 

마찬가지로 Upshur는 EBM, 당시에는 임상역학(clinical epidemiology)과 비판적 평가(critical appraisal)라고 불리던 것이 개발되던 시기에 McMaster University에서 받은 자신의 의학 수련에 대해 이야기한다.²² 회진(rounds) 중 특정한 임상적 행동 방침(clinical action)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그 권고에 대한 근거(evidence)와 추론(reasoning)을 제시하라는 도전을 자주 받았다. 즉 그들이 무엇을 하자고 제안하는지 명시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최선의 형태에서 EBM은 임상연구가 진료에 갖는 중요성에 주의를 환기했고, 비판적 평가(critical appraisal)의 기술을 길렀으며, Cochrane Collaboration과 CONSORT Group을 포함한 더 넓은 운동의 일부로서 임상시험의 수행(conduct), 또는 적어도 보고(reporting)를 개선했다. 그러나 실제에서,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EBM은 원래의 JAMA 논문에 묘사된 것처럼 개인이 의학 문헌(medical literature)에 직접 관여하도록 장려하는 데서, 종합되고 선별된 요약(aggregated and curated summaries)에 의존하도록 권장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는 EBM이 대체하고자 했던, 질문되지 않고(unquestioned) 자주 실망스러운 권위(authority)의 한 형태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용 가능한 시간과 출판되는 임상연구의 양은 JAMA 논문의 “미래의 방식”에 묘사된 것과 같은 상황이 기껏해야 드문 일이 되도록 만든다. 이미 1996년에 EBM의 지지자들은 이 문제를 인식했다.

  • Sackett 등은 영국의 의학 컨설턴트(British medical consultants)가 읽기를 따라잡기 위해 일주일에 약 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의학(general medicine) 분야에서 출판되는 논문의 양을 고려하면 실제로 따라잡기 위해 임상의가 하루에 약 19편의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계산했다.²³ 4년 후 Guyatt 등은 문헌에 직접 관여하려는 임상의의 관심 역시 제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²⁴ 그들은 EBM의 기술에 능숙해지는 것이 “집중적인 공부와 빈번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적용(intensive study, and frequent, time consuming, application)”을 요구한다고 인식했다.
  • 따라서 그들은 처음부터 스스로 근거를 찾아내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기반 실천가(evidence-based practitioners)”와, EBM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훈련을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발표된 지침과 이차자료(secondary sources)로 출판된 사전 평가된 근거(pre-appraised evidence)에 의존하는 “근거 사용자(evidence users)”를 구분했다. 그 이후 EBM 개발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자원 사용을 점점 더 촉진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가공된 지식(processed knowledge)에 의존하는 것은 추가적인 인식론적 도전(epistemic challenges)을 제기한다.

 

UpToDate와 Cochrane Collaboration 같은 선별된 자료원(curated sources)에서 확정적 지침(definitive guidance)을 찾는 학생과 임상의는, 선별 과정(curating)이 명시적 기준에 기반할 때조차 주관적(subjective)이고 가치가 개입된(value-laden)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학생들은 흔히 출판된 연구의 객관적 수집 및 종합(objective collation and synthesis)으로 홍보되는 것 안에 들어가는 편향의 원천(sources of bias)을 검토하도록 장려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연구비 출처(funding source)학문적 승진(academic advancement)이 포함된다.²⁵ 예컨대 Cochrane Collaboration은 근거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fair and objective assessment of evidenc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둘러싼 경쟁적 주장(competing claims)을 중심으로 매우 공개적인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철학 출판물에서 주목받았지만,²⁶ 학생들은 일반 언론과 과학 언론에 실린 보도를 읽음으로써 논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²⁷

 

임상연구의 개별 보고를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의료제공자(health care provider)의 기본 기술이다. 그러나 개별 의사가 EBM을 설명한 최초의 논문에 묘사된 것과 같은 환자별 검색(patient-specific searches)을 수행하거나, 자신의 진료와 관련된 모든 연구에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근거 요약(evidence summary)은 단순히 유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필요하다. 임상의학에 처음 입문하는 학생들은 선별된 연구 지침(curated research guidance)에 대해서도, 개별 연구 보고나 지도전문의의 선언(proclamations of attending physicians)에 대해 개발하도록 장려받았던 것과 유사한 수준의 회의주의(skepticism)를 발전시켜야 한다.

졸업후 의학교육: 근거를 임상 실천에 통합하기
Graduate medical education: integrating evidence into clinical practice 

졸업 후 수련의(physicians-in-training)는 점점 더 독립적인 임상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는 불안(trepidation)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의과대학 동안 형성된 의학 인식론의 토대 위에 더 쌓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Lee 박사가 Jackson 씨를 만난 사례에서 보았듯이, 임상 실천의 주요 인식론적 도전(primary epistemic challenge)은 특정한 진단적 또는 치료적 결정(diagnostic or therapeutic decision)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지식이 동원될 수 있고, 또 동원되어야 하는지와 관련된다. EBM은 임상적 의사결정의 이상화된 버전(idealized version)을 제공하지만, 실제 세계의 지침(real-world guidance)은 거의 제공하지 않으며, 이 다루기 힘든 인식론적 도전(intractable epistemic challenge)을 임상의에게 남겨 둔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EBM 정의에서 Sackett과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거기반의학은 개별 환자의 돌봄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현재의 최선의 근거(current best evidence)를 성실하고(conscientious), 명시적이며(explicit), 사려 깊게(judicious) 사용하는 것이다. 근거기반의학의 실천은 개별 임상 전문성(individual clinical expertise)을 체계적 연구(systematic research)에서 나온 이용 가능한 최선의 외부 임상 근거(best available external clinical evidence)와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임상 전문성이란 개별 임상의가 임상 경험(clinical experience)과 임상 실천(clinical practice)을 통해 획득하는 숙련도(proficiency)와 판단(judgment)을 의미한다.”²³

 

간단한 정의를 내리려는 이 시도는, 연구 근거(research evidence)와 의사가 알고 있는 무수한 다른 것들, 즉 임상 전문성의 토대가 되는 지식 사이를 조율하는 복잡성을 가린다. EBM에는 통합의 문제(integration problem)가 있다. 이 문제는 임상의가 진료를 개별화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ethical imperative)과, 임상연구 결과만으로는 결코 처방적(prescriptive)일 수 없다는 인정이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통합의 문제는 수련의에게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 어떤 인구집단(population)에서 특정 개인으로 외삽(extrapolating)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 때로는 출판된 연구 결과와 겉보기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급 임상의의 판단, 특히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에 명시적으로 기반한 판단에 얼마나 많은 무게와 존중을 부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인식론에서 이는 참조계급 문제(reference-class problem)로 알려져 있다. 임상 전문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그 전문성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Sackett과 동료들은 그것이 상당 부분 직접 환자진료(direct patient care)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에서 비롯된다고 명확히 한다. 그러나 EBM은 이 경험적 근거(experiential evidence)를 연구에서 나온 근거와 어떻게 균형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은 EBM 내에서 흔히 일화적(anecdotal)이라고 폄하된다.

 

이 단계에서 인식론 교육과정(epistemology curriculum)의 초점은 다양한 종류의 의학 지식이 갖는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야 한다.²⁸ 전임상 시기에 배운 인식론을 되돌아보면, 수련의는 근거의 위계가 통합을 위한 모델(model for integration)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떠올릴 것이다. Sackett과 동료들이 권고한 바와 같이 임상적 의사결정을 명시적으로 만들면, 수련의는 임상적 평가나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호출되는 지식의 종류를 범주화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 임상연구의 결과병태생리학적 근거(pathophysiologic rationale)임상의 개인 경험(personal experience of the clinician)에 의해 보강되거나, 반대로 도전받을 수 있다.
  • 특정 환자에 관한 지식, 즉 그들의 목표(goals)와 가치(values)에 대한 이해 역시 모든 결정에서 중요할 것이다.
  • 더불어 의료가 제공되는 맥락(context), 예컨대 법적(legal), 문화적(cultural), 재정적(financial) 맥락에 대한 지식도 특정 결정을 가능하게 하거나 제한한다.

저자 중 한 명은 관련된 모든 의학 지식이 다음 다섯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
  • 기전적 추론(mechanistic reasoning),
  •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 개별 환자 특성(individual patient characteristics),
  • 맥락적 특징(contextual features)이다.²⁹

여기서 우리는 오직 의학 인식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틀은 임상적 결정의 윤리적(ethical), 정서적(emotional), 문화적(cultural) 복잡성을 인정한다. 수련의가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기 위해 어떤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지에 관한 인식론적 분석(epistemic analysis)을 수행하면서 소리 내어 추론(reason out loud)하게 하면, 특정 사례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에 부여되는 상대적 무게(relative weight)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우리는 통합의 문제를 해명하고 완화하는 것이 사례 기반 형식(case-based formats)을 통해 가장 잘 가르쳐진다고 제안한다. 사례는 실제 사례일 수도 있고, 실시간으로 분석될 수도 있으며, 표준화된 사례(standardized cases)일 수도 있다. 출판된 문헌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제공하며, 그중 일부는 인식론적 도전(epistemic challenges)을 설명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된 사례이다.³⁰ 사례 기반 추론(case-based reasoning)은 수련의가 특정 결정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지식을 논의 테이블에 가져오도록 장려한다. 임상의들이 한 사례에서 감별진단(differential diagnosis)이나 선호되는 치료 권고(preferred treatment recommendation)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인식론적 분석은 그 불일치가

  • 지식의 부족(lack of knowledge)에서 비롯되는지,
  • 정보 해석의 차이(difference in interpretation of information)에서 비롯되는지, 아니면
  • 해당 사례와 관련된 지식에 대한 가중치 부여의 차이(different weighting)에서 비롯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임상 전문성이 “블랙박스(black box)”라는 생각을 반박하는 데 도움이 되며, 동시에 건전한 임상적 결론(sound clinical conclusions)에 도달하는 데 여러 지식 원천(multiple sources of knowledge)이 갖는 가치를 강화한다. 각 종류의 의학 지식은 환자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나름의 강점과 약점을 지닌다. 특정 사례에 접근할 때 임상의는 자신에게 이용 가능한 모든 관련 지식(relevant knowledge)을 활용하고 통합해야 한다. EBM은 임상의학에서 의존해야 할 어떤 “최선의” 근거(best evidence)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만, 임상 실천에서 의사는 임상적 결정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근거의 총체성(totality of evidence)을 평가해야 한다. 이는 “정돈되지 않은 인식론적 다원주의(untidy epistemic pluralism)”를 조율하는 것을 의미한다.³¹ 인식론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임상적 의사결정을 검토하는 공식적 접근(formal approach)은 이러한 다원주의를 수련의에게 조금 더 정돈된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

결론 Conclusion 

의학 인식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학생, 수련의, 임상의에게 일종의 사용자 설명서(operator’s manual) 역할을 한다. 이는 의학 실천에서 임상연구 결과(clinical research results),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을 사용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의학교육자는 의학철학자(philosophers of medicine)의 도움을 받아 의학 인식론의 언어(language), 원리(principles), 이해(understanding)를 그것이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의학교육과정의 부분들에 통합할 수 있다. 특히 근거기반의학에 초점을 둔 교육과정은 의학 지식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을 탐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EBM 자체가 의학 인식론의 한 학파(a school of medical epistemology)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자들은 EBM이 시작된 이래로 EBM의 인식론적 주장(epistemic assertions)과 가정(assumptions)을 검토해 왔다. 여기서 제공되는 통찰은 추상적 사변(abstract musings)이 아니라, 의학교육과 의료 실천에 매우 관련성이 높다.

EBM이 장려하는 회의주의(skepticism)와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은 EBM 자체의 근본 가정과 주요 신조에도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에 철학자들만 참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 수련의, 임상의는 임상적 통찰(clinical acumen)로 응집되는 이유들(reasons)과 추론(reasoning)을 주의 깊고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의학교육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평생에 걸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식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포함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Teach Learn Med. 2024 Apr-May;36(2):244-252. doi: 10.1080/10401334.2023.2231923. Epub 2023 Jul 11.

Attending to Variable Interpretations of Assessment Science and Practice 

 

 

우리는 정말 '같은 평가'를 말하고 있을까? 🤔

평가 과학과 실천에 숨어 있는 '철학'이라는 변수 

같은 OSCE 영상을 두 명의 평가 전문가가 봤다고 해볼게요. 데이터도 똑같고, 쓰는 용어도 똑같아요. 타당도(validity), 신뢰도(reliability), 좋은 평가(good assessment)… 다 같은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이 정반대예요. 한 명은 "평가자들 점수가 일치할수록 좋은 평가"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오히려 의견이 다양하게 갈릴수록 좋은 평가"라고 합니다.

 

누가 틀린 걸까요? 사실 둘 다 틀리지 않았을 수 있어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philosophical positions) 위에 서 있기 때문이거든요. 더 골치 아픈 건, 정작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에요.

 

이번 글에서 소개할 논문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파고듭니다. 평가가 점점 더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되어 가는데, 정작 우리는 그 '보는 눈(=철학적 입장)'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거죠.

🤔 무슨 문제일까요? 

저자들이 던지는 핵심 문제의식은 이래요. 예전에는 평가 개념과 모델이 측정 패러다임, 행동심리학, 정신측정학(psychometrics)의 영역이라고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성주의/해석주의(constructivism/interpretivism), 사회인지주의(socio-cognitivism), 실재론·반실재론(realist/anti-realist views), 실용주의(pragmatism)다양한 철학적 입장이 '동시에' 평가 안에서 작동하고 있어요.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입장이 다르면 같은 단어도 다르게 해석되거든요.

  • 어떤 사람에게 주관성(subjectivity)은 평가에서 끌어안아야 할 풍부함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방어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예요.
  • 어떤 사람에게 평가자들의 의견 수렴(rater convergence)은 좋은 신호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평가자들의 의견 발산(rater divergence)이야말로 풍부함의 증거예요.

저자들은 이런 차이가 단순한 맥락 차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평가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할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서로 다른 가정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이 여기 있어요. 바로 '안에서(within)' 벌어지던 논쟁이 '가로질러(across)' 벌어지는 논쟁으로 바뀌었다는 진단입니다.

평가에서 어느 정도의 논쟁은 불가피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쟁은 대부분 하나의 철학적 입장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예: 오차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반면 최근의 논쟁은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을 가로질러 벌어지고 있습니다(예: 오차라는 개념이 과연 유용한가).

"While some debate in assessment is inevitable, most have been within philosophical positions (e.g., how best to minimize error), whereas newer debates are happening across philosophical positions (e.g., whether error is a useful concept)."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오차를 어떻게 줄일까"는 같은 운동장 안에서의 논쟁이에요. 그런데 "오차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가 있나"는 아예 다른 운동장끼리 부딪히는 논쟁이죠. 후자는 한쪽을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 쪽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해요.

 

참고로 저자들이 말하는 '철학적 입장'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평가 연구자가 평가의 문제와 해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렌즈를 제공하는, 인정된 가정과 신념의 집합 또는 지적 틀.

"sets of recognized assumptions and commitments or intellectual frameworks that provide assessment scholars with lenses for examining assessment problems and solutions."

🕰️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요?

저자들은 이 변화를 토마스 쿤(Kuhn)의 패러다임(paradigm) 전환에 비유해요.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방식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순간 등장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Hodges는 점수를 이리저리 합산해서 역량을 판정하는 방식에 강한 의구심을 표한 바 있어요.

 

다만 의학교육(HPE, health professions education)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보통 패러다임 전환은 '낡은 것이 새것으로 교체되는' 모습인데, 평가 분야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옛 입장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많고 더 다양한 입장이 한꺼번에 공존하게 됐다는 거죠.

 

그러니까 정신측정학·실증주의 뿌리가 사라진 게 아니에요. 거기에 구성주의, 사회인지주의, 실용주의가 '나란히' 얹힌 상태인 겁니다. 그리고 이 입장들은 저마다 "이게 좋은 평가야"라는 서로 다른 주장을 들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평가에 대한 공통의 철학적 관습이 사라진 상태가 됐습니다. 이게 기회이면서 동시에 혼란인 거죠.

🔬 실전 예시 ① 평가자 데이터를 어떻게 읽을까

말이 추상적이니까 저자들이 든 구체적인 예시를 볼게요. OSCE에서 의사 평가자의 점수에 표준화 환자(SP)의 관점을 더하자는 연구가 하나 있었어요. 서로 다른 경험과 시각을 가진 평가자들의 점수와 서술을 합치자는 제안이었죠. 이 똑같은 연구를 두 독자가 정반대로 읽습니다.

 

독자 1번 (후기실증주의/실재론 관점) 🟦

  • 역량(competence)은 관찰자와 무관하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안정적 특성이다(이른바 잠재특성 모델, latent-trait model).
  • 평가를 잘하면 그 역량을 (약간의 오차는 있어도) 포착할 수 있다.
  • 서로 다른 평가자 집단의 의견이 일치하면, 그건 진실에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 따라서 의견을 모으는(수렴) 활동은 바람직하고, 일치도가 높아질 때 "좋은 평가"라고 말할 수 있다.

독자 2번 (구성주의/반실재론 관점) 🟥

  • 역량은 측정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관찰자와 학습자가 특정 시간·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
  • 역량은 내부에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상황적이고 관계적이다.
  • 의견 일치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면(예: 훈련, 표준화 도구) 오히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약화시킨다.
  • 따라서 더 적은 게 아니라 더 많은 다양성을 추구해야 "좋은 평가"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연구, 같은 데이터인데 "좋은 평가"의 의미가 정반대로 갈리죠?

저자들이 여기서 강조하는 포인트가 세 가지예요.

  1. 평가자 의견을 합친다는 설계 자체가 이미 철학적으로 물든 선택이다.
  2. 이건 방법(method)의 문제가 아니다. 똑같은 방법도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과 연결될 수 있다.
  3. 어느 한쪽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핵심은 양쪽 모두 자신이 어떤 해석 위에 서 있는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 실전 예시 ② '타당도'마저 흔들린다 

두 번째 예시는 평가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타당도(validity)예요. 타당도 근거(validity evidence)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해석이 갈립니다. 여기서 두 진영이 부딪혀요.

  • Markus & Borsboom: Kane의 타당화(validation) 틀이 진리(truth)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해요. 이들은 진리를 주장하지 않는 정당화된 믿음(justified beliefs)과, 진리를 주장하는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s)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진리(실재와의 대응)가 중요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우리는 틀린 주장도 충분히 정당화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 Kane: 입장이 달라요. 과학자가 '지금 여기서' 합리적이고 잠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에 집중합니다. 충분한 근거로 일관되게 뒷받침되면 그것으로 '정당화된 믿음'이 성립하고, 거기에 굳이 '진리'라는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그 정당화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동료 공동체(like-minded community of peers)가 보기에 적절한가입니다.

결국 타당도 이론가들끼리도 '타당도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자들은, 평가에서 그토록 널리 쓰이는 '타당도 근거'마저도 해석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고 정리합니다. 무엇이 타당도의 정당한 근거인지조차 결국 여러 해석적 요인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 실용주의도 정답은 아니에요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복잡한 철학 얘기 말고, 그냥 실용적으로(pragmatic) 가면 되는 거 아냐?" 실제로 평가 현장에서 정말 자주 나오는 말이죠. 한 연구에서 프로그램 책임자들도 "저는 아주 실용적인 관점에서 봤어요"라고 말하면서, 마치 실용성이 모든 문제의 해법인 것처럼 여기곤 했어요.

그런데 저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더 깊은 해석상의 철학적 쟁점에서 실무자를 면제시켜 주기 위해 실용주의를 끌어오는 것은 강력한 수사적 전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석 과정 자체를 우회할 수는 없습니다.

"The reference to pragmatism to absolve practitioners of deeper philosophical issues of interpretation is a powerful rhetorical move, but it cannot circumvent interpretative processes."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나와요. 일상어로서의 '실용적'(= 그냥 현실적으로 편하게)과, 고유한 역사·가정·신념을 가진 철학으로서의 실용주의(pragmatism)는 다르다는 거예요. 그리고 후자, 즉 진짜 실용주의 안으로 들어가 봐도 해석은 또 갈립니다. 저자들은 '진리(truth)'를 실용주의 철학자들이 어떻게 다르게 다루는지 보여줘요.

  • 퍼스(Peirce): 진리란 모든 탐구가 끝난 지점에서 믿게 되는 것. 진리는 발견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유지된다고 봤어요(대응 이론, correspondence theory에 가까움).
  • 제임스(James): 정합 이론(coherence theory)을 택했어요. 진리는 우리를 가치 있게 이끌어 주는, 믿음들 사이의 일관성. 꼭 실재를 반영하는 건 아니라고 봤죠.
  • 듀이(Dewey): 한발 더 나아가요. 어떤 믿음도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며 '진리'를 아예 약화시킵니다. 퍼스의 대응 이론도, 제임스의 정합 이론도 거부하고, 앞으로의 행동을 이끄는 잠정적·실용적 판단을 선호했어요.
  • 로티(Rorty):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는 없다고 봤어요. 진리란 알 수 없는 것이라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거죠. 진리는 그저 모든 반박을 견뎌 낸 것일 뿐이에요.

보세요. '실용주의'라는 하나의 입장 안에서도 진리를 보는 눈이 이렇게나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 실용주의로 갑시다!"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의도치 않은 해석을 막을 수 없어요. 오히려 철학적 입장을 어설프게 갖다 붙이면 명료해지기는커녕 더 흐려질 수도 있다는 게 저자들의 경고입니다.

💡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거, 뭐 새삼스럽냐?" 하실 수도 있어요. 저자들도 이 반응을 예상합니다. 그런데 핵심은, 지금 평가 현장에 서로 다른 '규칙'들이 동시에 굴러가고 있다는 데 있어요. 그래서 무엇이 좋은 평가인지 판단할 때 실질적인 불확실성이 생깁니다.

저자들이 정말 우려하는 건 이거예요.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실제 현장에서 교육자들이 이런 서로 다른 가정과 방법론적·해석적 규범을 자기도 모르게(때로는 은밀하게) 적용한 끝에, 동일한 평가 프로그램이나 평가 상황을 두고도 무엇이 양질의 평가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Our concern is that in practice educators may unknowingly or insidiously apply these different assumptions, methodological and interpretive norms, and therefore, settle on different views on what serves as quality assessment even for the same assessment program or event."

 

즉, '가정이 다른 것' 자체는 어쩌면 당연해요. 문제는 그 다름을 본인도 모른 채 적용한다는 데 있죠. 이게 방치되면 어떻게 될까요? 평가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지고, 심하면 어떤 평가 활동이나 결과든 그 정당성(legitimacy)을 의심받는 빌미가 됩니다. 또 이 문제는 단순히 과학이나 존재론·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해석이 지배적인가, 왜 그러한가 하는 윤리와 가치, 위치성(positionality)의 문제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자들의 결론이자 제안은 명확합니다. 평가를 본질적으로 해석 과정(interpretive process)으로 인정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교육 연구자들이 연구에서 이론적·개념적 틀(theoretical/conceptual framework)을 분명히 밝히듯, 평가를 계획·설계·실행·평가하는 모든 단계에서 철학적 입장을 명시적으로(philosophically explicit) 드러내자는 겁니다.

평가의 해석 과정이 더 투명해지고, 이해와 공정한 비판에 열려 있을 수 있도록, 가정과 신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assumptions and commitments should be made explicit so that the interpretive processes of assessment can be more transparent and open to understanding and fair criticism."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저자들은 평가를 뒤엎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평가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표현하는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뿐입니다. 숨은 가정을 꺼내 놓고 이야기하자는 거죠.

✏️ 마치며

읽으면서 우리 현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같은 임상실습 평가를 두고도 어떤 교수님은 "평가자 간 일치도가 낮아서 문제"라고 하고, 어떤 분은 "다양한 시선이 담겨서 오히려 좋다"고 합니다. 역량위원회(competence committee)에서 점수 합산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이게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이 부딪히는 순간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논문이 주는 실천적 메시지는 의외로 담백합니다. 평가를 설계하거나 그 결과를 해석할 때, "나는 지금 어떤 가정 위에 서 있지?"를 한 번 스스로에게, 그리고 동료에게 물어보는 것. 그 작은 명시화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줄이고, 우리가 진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평가는 결국 숫자나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려 하는가'에 대한 합의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건전문직 교육(health professions education, HPE)에서 평가는 이제 더 넓고 더 다양한 해석 과정(interpretive processes)을 수반한다. 동등하게 자격을 갖춘 교육자나 연구자라 하더라도, 평가 문제에 접근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철학적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평가 과정과 평가의 질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¹ 우리 분야에는 해석 과정이 실제 평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많은 사례가 있다.

 

  • 예를 들어,
    • 역량(competence)은 수련생 내부에 존재하는 인지적 구성개념(cognitive construct), 즉 잠재특성 모형(latent-trait model)으로 이해될 수 있다.
    • ² 또한 역량은 둘 이상의 개인 사이의 상호작용의 산물, 즉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socially constructed)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³
    • 또는 그 중간에 위치하는 것, 즉 사회인지적 과정(socio-cognitive process)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⁴
  • 평가에서 실천적 해석과 질에 관한 해석도 현재 여러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 어떤 사람들에게 평가 과정은 평가자 간 차이(rater divergence)를 활용할 때, 즉 평가자들이 보이는 차이를 풍부함으로 받아들일 때 ‘더 나은’ 것이 된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평가는 평가자 간 수렴(rater convergence)을 갖는 것, 즉 높은 합의도나 일관성을 선호하는 것이다.⁵
    • 마찬가지로 주관성(subjectivity)은 평가 실천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논의되기도 하고, 방어가능성(defensibility)에 대한 위협으로 논의되기도 한다.⁶˒⁷ 우리는 신뢰도(reliability)를 지지하는 주장과, 중요한 타당도 지표로서 질적 엄격성(qualitative rigor) 개념을 지지하는 주장을 모두 찾을 수 있다.⁸˒⁹
    •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정 통계적 접근, 예를 들어 베이지안 기법(Bayesian techniques)이 역량위원회(competence committee) 과정을 지원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¹⁰˒¹¹
  • 이러한 차이는 맥락적 변이(contextual variations)나 단순한 선택 이상의 것이다. 오히려 이는 평가를 어떻게 가장 잘 설계하고 실행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질 높은 평가 과학과 실천인지에 관한 논쟁을 형성하는 근본적이고 지침이 되는 서로 다른 가정(fundamental and guiding assumptions)을 나타낸다. 이러한 해석적 문제가 전면에 제기되지 않는다면, 논쟁은 비생산적인 상태로 남을 수 있다.

 

이러한 평가 관련 질문들과 다른 질문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동일한 맥락에서도 서로 다른 교육자들에 의해 적절하다고 판단될 수도 있고 동시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이는 좋은 평가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까지 포함하여 평가의 특징들이 확장되는 철학적 입장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 지침도 일반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¹²˒¹³ 여기서 우리는 “철학적 입장(philosophical positions)”이라는 용어를 “평가 학자들에게 평가 문제와 해결책을 검토할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는, 인정된 가정과 헌신 또는 지적 틀의 집합”으로 사용한다.¹ 예를 들어, 실증주의(positivism)와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평가의 역할, 선택, 특징, 질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은 평가 과학과 실천의 계획, 수행, 평가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평가 실천에 정보를 제공해온 우리의 연구와 경험, 예를 들어 평가 실천에서 평가자를 어떻게 참여시켜야 하는지, 평가에서 심리측정학(psychometrics)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프로그램적 평가(programmatic assessment)와 평가 전반에서 이러한 문제를 탐구해온 이전 연구는, 철학적 다양성, 진화, 긴장이 유동적인 지금 평가 과학과 실천의 기저에 있는 긴장의 역할을 인식하게 해주었다.¹˒¹⁴–¹⁸ 철학적 관점에 의해 형성되는 해석은 많은 평가 작업 아래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함의는 종종 숨겨져 있으며,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해석과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혼란이 생긴다.¹⁶ 우리는 평가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등장했지만, 그 기저에 있는 철학적 입장의 해석적 성격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전에 이 문제가 평가절하되고 있을 가능성, 철학적 헌신보다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가능성, 경계가 불명확할 가능성, 그리고 아직 모범 실천(best practices)에 이러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을 주장한 바 있다.¹⁶ 기존 지침은 이 주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으며,¹⁹ 최근 연구는 이러한 입장들이 여전히 충분히 보고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¹⁶

 

이 논문에서 우리의 목적은 이 해석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HPE 평가의 현재 상태가 이를 요구한다고 본다. 평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의 발전은 평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문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가에서 철학적 입장이 확장되면서, 교육자들은 유사한 평가 개념에 서로 다른 해석을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유사한 활동과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통해 주장되는 것, 그리고 질로 간주되는 것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낳고 있으며, 더 나쁘게는 어떤 평가 활동이나 평가 결과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평가에서 어느 정도의 논쟁은 불가피하지만,

 

  • 기존의 논쟁 대부분은 철학적 입장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오류를 가장 잘 최소화하는 방법이 그러하다.
  • 반면 새로운 논쟁은 철학적 입장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류가 유용한 개념인지 여부가 그러하다.

 

평가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등장했지만, 그 기저에 있는 철학적 입장의 해석적 성격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의 의도는 이 영역에서 대화와 발전을 촉진하여 교육자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철학적으로 형성된 이러한 해석 과정과 그것이 보건전문직 교육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세 가지 방식으로 드러낼 것이다.

 

  1. 첫째,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HPE의 현재 평가 맥락을 철학적 수준에서 간략히 요약한다. 특히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과 관련된 서로 다른 가정에 근거하여 평가 활동을 보고 주장하는 방식이 더 많아졌다는 점을 탐구한다.
  2. 둘째, 실천에서의 함의를 보여주기 위해 두 가지 예시를 제시한다. 하나는 HPE에서 이제 흔해진 서로 다른 철학적 가정을 적용함으로써 평가 연구물의 독자가 의도하지 않은 해석에 도달할 수 있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유사하게 강한 타당도 주장이 평가 자료의 의미와 자료가 함의하는 바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식이다.
  3. 셋째, 철학적 입장을 그 가정과 헌신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단순히 불러오는 것, 즉 해결책으로 동원하는 것의 잠재적 어려움을 검토한다. 우리는 이 예시로 실용주의(pragmatism)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철학적 영향에 대해 질문받을 때, 교육자들이 평가에서 실천적이거나 실용적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¹ 철학적 입장을 일반적으로 공허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실용주의를 하나의 예시로 검토한다. 이를 통해 특정 철학적 입장 내부에서도 추가적인 다양한 해석과 적용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장들은 본질적으로 존재론(ontology), 인식론(epistemology), 가치론(axiology)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Varpio와 MacLeod를 보라.²⁰
  4.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가에 대한 철학적으로 명시적인 접근(philosophically explicit approach), 즉 메타 접근(meta-approach)을 요청하며 결론을 맺는다. 이 접근은 평가가 근본적으로 해석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맥락 안에서 가정을 세심하게 밝혀내고 정당화하는 작업을 요구한다.

 

동일한 평가 접근에 대한 다양한 해석: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Variable interpretations of the same assessment approaches: How we got here
 

한때 평가 개념과 모형은 측정 패러다임(measurement paradigms), 행동주의 심리학(behavioral psychology), 심리측정학(psychometrics)의 산물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²¹˒²² 지속적인 평가의 도전과제, 그리고 무엇이 평가되고 있는지, 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평가가 실천에서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평가 문제와 해결책을 바라보는 익숙한 방식 일부를 억제하고, 다른 방식을 도입하게 했다.⁶˒⁹˒²³

 

  •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실증주의적 토대(positivist underpinnings)”를 줄일 것을 주장하고,²² 다른 사람들은 심리측정 정보가 정당화될 뿐 아니라 핵심적이라고 주장하며,¹⁵ 대부분은 철학적 입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¹⁶ 평가에서 평가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검토하면서, 연구자들은 교수자를 오류의 원천, 즉 심리측정학적 원리로 보지 말고, 사회적으로 매개된 관찰자(socially mediated observers)로 생각하도록 촉구해왔다. 이들의 기여는 다르게, 예를 들어 질적이고 구성주의적인 접근을 사용하여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²²˒²⁴
  • 다른 연구자들은 철학적 전환이 존재하는 지점이나 필요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적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에 의해 형성되어왔다.²⁵ 이 접근은 처음에는 향상된 신뢰도를 촉진하기 위해 더 많은 표집 시간과 자료 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²³ 이제는 판단(judgment)을 지지하고, 더 질적인 엄격성과 방어가능성 개념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주장하고 있다.²⁶ 이는 프로그램적 평가가 진화함에 따라, 새로운 통찰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었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식이었든, “작동 중인(in play)” 철학적 입장이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 또한 역량위원회 맥락에서, 어떤 연구자들은 철학적 입장, 예를 들어 실증주의적 토대가 “수련생 수행평가의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상황화된 본질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해왔다. 이는 우리가 역량위원회 작업을 이끌고 있다고 가정해온 것이 도전받고 있음을 시사한다.¹⁰(p.732)
  • 종합하면, 이러한 예시들은 평가 문제와 그 해결책이 다양한 철학적 입장의 적용에 의해 어떻게 주장되고 형성되어왔으며, 계속해서 그렇게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철학적 입장의 이러한 진화는 Kuhn이 제시한 생각과 유사하다.²⁷ Kuhn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만족의 순간에 담론으로 들어온다고 주장했다. 다만 HPE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Hodges는 “일련의 숫자 점수를 재조합하여 역량 판정에 도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강한 유보를 가져야 한다”고 쓰면서, 심리측정학적 또는 측정 관점이 만족스럽지 않은 여러 이유를 제시했다.²¹(p.566)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것은 오래된 철학적 입장이 다른 하나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이고 더 다양한 철학적 입장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 예컨대 측정, 심리측정학, 실증주의 또는 후기실증주의(post-positivism)의 뿌리에 더하여, 이제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 예를 들어 구성주의/해석주의(constructivism/interpretivism), 사회인지주의(socio-cognitivism), 실재론과 반실재론(realist and anti-realist views), 실용주의(pragmatism)에 의해 이끌리는 접근들이 존재한다.⁴˒²⁸–³¹
  • 각각은 무엇이 좋은 평가로 간주되는지에 대해 저마다의 주장을 가지고 있다.

 

평가에 의해 계속 도전받고 평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을 찾는 과정에서, 더 많은 철학적 입장들이 존재하거나 앞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 평가의 여러 특징에 따라 후기실증주의/객관주의(post-positivism/objectivism)와 구성주의/해석주의(constructivism/interpretivism)를 나란히 비교한 것은 Tavares et al.¹을 보라.
  • 관찰자가 이 두 입장에서 어떻게 개념화되는지에 관한 관점은 Govaerts et al.²²을 보라.
  • 사회인지적 렌즈에서 평가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은 Mislevy⁴를 보라.
  •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함의는 Borsboom³⁰을 보라.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 즉 평가 실천과 담론에서 해석 과정이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 것은, 평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평가에 정보를 제공하는, 가능하고 이제는 “동등하게 관련성 있는(equally relevant)” 많은 철학적 입장을 낳았다.

실제로 작동하는 해석 과정 Interpretive processes in action 

예시: 평가 근거에 대한 독자의 해석
Example: Reader interpretations of assessment evidence
 

예시로, 최근 발표된 “Augmenting Physician Examiner Scoring in 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s: Including the Standardized Patient Perspective”라는 논문을 생각해보자.⁵ 이 연구는 고부담 OSCE(high-stakes OSCE) 맥락에서 채점 실천을 개선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이 연구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동일한 사건과 동일한 응시자에 대해 서로 다른 경험, 전문성, 관점을 가진 의사와 표준화 환자(standardized patients)의 관찰자 기여, 이 경우 점수와 서술을 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어떻게 적절히 수행할 것인지, 더 나아가 이를 아예 수행해야 하는지 여부조차도, 지식 생산자와 사용자가 모두 수행하는 해석 과정이다. 이 경우 그 해석 과정은 해당 아이디어를 고려할 때 사용되는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에 의해 형성된다.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 연구를 검토하기 전에, 우리의 의도는 이 뛰어나고 시의적절한 연구의 질이나 기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 연구는 오직 시의적절한 주제를 대표하고, 질 높은 연구이며,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과 관련되어온 평가자 역할의 예시를 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선택되었다.²⁴

 

위에서 설명한 연구를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두 명의 가상 독자를 생각해보자.

 

  • 첫 번째 독자가 역량은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모든 사람 안에 존재하는 안정적인 특성(stable trait)이며, 잘 수행된 평가는 일정 정도의 오류를 수반하더라도 한 사람이 가진 역량의 정도를 포착하거나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가정하자.
    • 이는 후기실증주의(post-positivist) 또는 실재론적 관점(realist perspective)과 일치할 것이다. 첫 번째 독자는 더 방어가능한 평가를 산출하는 것은 서로 다른 관찰자 집단이 수행이 역량과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동의할 때 달성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이 동의한다면, 이는 평가받는 개인에 관한 진실에 대한 명확한 표상 또는 더 가까운 근사치(closer approximations of the truth)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 이 관점에서 해당 연구를 고려하면, 첫 번째 독자는 자신의 해석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평가자 관점이 함께 모이는 것이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조치가 정당화되며, 평가자 간 합의가 향상될 때 좋은 평가 질에 대한 주장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두 번째 독자역량은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이라고 믿을 수 있다. 즉, 역량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관찰자와 학습자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 역량은 안정적인 내적 특성이 아니라 상황적이고 대인관계적이다. 이는 구성주의적(constructivist) 또는 반실재론적 관점(anti-realist perspective)과 일치할 것이다. 두 번째 독자는 평가 합의와 이를 촉진하려는 모든 노력, 예를 들어 훈련이나 표준화된 도구를 통한 노력은 우리가 역량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을 강화하기보다는 약화시킬 것이라는 관점을 취할 수 있다.
    • 두 번째 독자에게는 다양한 관점을 촉진하고 수집하며, 맥락의 역할을 중요한 특징으로 허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이 둘을 오류의 원천으로 취급하기보다는 말이다. 여기서 두 번째 독자는 좋은 평가 질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여에서 더 적은 변이가 아니라 더 많은 변이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요점이 있다.

  • 첫째, 평가 모형 설계에서 평가자 기여를 결합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형성된 접근을 대표한다. 이는 평가자가 무엇을 제공하는지, 그들의 기여를 어떻게 가장 잘 사용하고 구조화해야 하는지, 그리고 좋은 또는 방어가능한 평가자 기반 평가 모형(rater-based assessment models)이 어떤 모습인지와 관련된 기저의 믿음, 가치, 가정에 의해 형성된 해석에 의존한다. 이루어진 해석과 선택을 정당화한다는 것은 이러한 관점과 정렬되는 특정 타당도 고려사항과 주장을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둘째, 위의 예시와 우리의 일반적 주장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유사한 평가 방법이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과 관련될 수 있다. 강조점이 방법 자체에 놓이고, 그 방법이 어떻게 또는 왜 적절한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동일한 방법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에 놓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 셋째, 이 예시는 한 관점이 올바른 관점이라거나,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시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맥락에서 어느 접근이든 그 해석적 성격(interpretive nature)에 명확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문제와 해결책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이러한 기회는 혼합방법 연구(mixed methods research)에서 변증법적 입장(dialectical stance) 또는 다원주의(pluralism)로 설명되어 왔으며, 평가에서도 기회이자 도전이 된다.¹˒³²˒³³ 위협과 위험은 서로 다른 독자들이 서로 간에, 또는 저자가 의도한 기여와 다른 해석을 생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

1. 평가자의 역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 쉬운 설명: 평가 과정에서 평가자의 판단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단순한 시스템 설계가 아니라,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철학(가치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평가자를 '오차를 줄여야 하는 불완전한 측정 도구'로 볼 것인지, 아니면 '풍부한 맥락을 해석해 내는 전문가'로 볼 것인지에 따라 평가 모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따라서 특정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면, 기저에 깔린 이 철학적 믿음에 맞춰 타당성을 설명(정당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어떤 평가 도구를 쓰는가'보다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 쉬운 설명: 객관식 시험, 루브릭, 포트폴리오 등 특정 '평가 방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똑같이 '전반적 평가 척도(Global Rating Scale)'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이를 '점수화하기 위한 객관적 지표'로 해석하고, 어떤 사람은 '교수자의 주관적 인상을 담아내는 질적 도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 겉모습에만 집착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나 철학을 놓치면 본질적인 평가 개선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3. 정답은 없지만, '관점의 투명성'이 없으면 오해가 생긴다

  • 쉬운 설명: 앞서 말한 평가에 대한 여러 가지 철학적 관점 중 "무조건 이 방식이 맞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가를 설계하고 결과를 도출할 때 "우리는 이러이러한 관점과 맥락에서 이 결과를 해석했다"는 점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문제를 다양하게 바라보는 것(다원주의)은 연구와 평가를 풍부하게 해주지만, 치명적인 위험도 존재합니다. 평가 설계자는 '평가자의 주관적 해석'을 의도하고 데이터를 모았는데, 결과를 읽는 사람(또는 위원회)이 이를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수치'로 오해해버리면 전혀 엉뚱한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시: 진실의 지표로서의 타당도
Example: Validity as an indicator of truth
 

두 번째 예시는 특정 평가 프로그램에 대한 타당도 근거(validity evidence)가 무엇을 의미하거나 함의하는지에 관한 서로 다른 해석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 한 가지 해석은 그것이 속성(attributes)에 관한 어떤 종류의 “진실(truth)”을 대표한다는 것이다.²
  • 다른 해석은 그것이 특정 맥락, 시간, 공간에서 유용한 주장, 즉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 주장을 제공할 뿐, “진실”에 대해서는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³

 

여기서 우리의 의도는 ‘진실’이 평가나 타당도에서 유용한 구성개념인지 아닌지를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타당도 개념 일반과 그 철학적 토대에 대한 포괄적 분석을 제공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평가에서 매우 근본적인 것인 타당도 안에서도 또 다른 해석 과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타당도에서 진실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상응하는 타당도 주장이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왔다.³³

 

  • 이 문제에 대해 Markus와 Borsboom²은 Kane의 타당도 및 타당화(validity and validation) 틀이 진실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타당도에서 철학적 토대가 부재한 상황은 HPE에서도 재생산되었으며,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여기서는 특정 선택이 왜 또는 어떻게 특정 관점과 대응하는지를 논의하기보다는 방법론적 접근에 더 초점을 두었다.⁸ Markus와 Borsboom²은 ‘진실’에 대한 주장을 하지 않는 정당화된 믿음(justified beliefs)과, 그러한 주장을 하는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s)을 구별한다. 그들은 진실, 즉 현실과의 대응(correspondence to reality)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틀린 타당도 주장을 충분히 정당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용주의에 대한 주장을 예상하면서, 그들은 심지어 이 입장조차 최소한의 진실 개념을 정당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Markus와 Borsboom은 타당도 결과를 해석할 때 진실에 대한 주장(claims to Truth)이 중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Kane은 타당도에 대해 다른 해석을 취한다. Kane에게 강조점은 과학자가 지금 여기에서 합리적이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에 있다.³⁴ 이 관점에서, 그리고 실용주의가 설명되는 몇몇 방식과 일치하게, 해석이 충분한 근거, 어쩌면 사용 가능한 최대한의 근거에 의해 일관되고 정합적인 방식으로 뒷받침될 때 정당화된 믿음이 존재한다. 또한 이는 의도된 해석과 연결되어 있으며, 잘 확립되고 명확히 표현된 이론적 틀, 예를 들어 구성개념의 본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틀을 사용하면서 이루어진다.³⁴ 그렇게 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의 주장이 다른 가능한 주장들에 비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실만을 주장하며, 새로운 근거가 시간과 자료의 표지가 찍힌 타당도 주장에 대한 기존 정당화의 강도나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 틀에서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정당화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 공동체에 의해 적절하다고 판단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평가에서 진실의 역할에 대해 유사한 해석을 가지고 있고, 공동체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Kane은 진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핵심은 Kane이 Markus와 Borsboom과 비교할 때 타당도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학생의 임상 역량이나 전문직 정체성을 평가할 때, 우리가 내린 평가 결과가 '타당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학자들에 따라 이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합니다. 핵심을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Markus & Borsboom의 관점: 타당도는 실제 '진실(Truth)'과 일치해야 한다

이들은 타당도를 주장할 때 '현실과의 대응(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가)'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 정당화된 믿음 vs. 정당화된 참된 믿음: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와 근거로 평가 결과를 '정당화(justified)'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학생의 진짜 능력(진실, true)과 엇갈린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 비판점: 평가 도구나 절차가 방법론적으로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되었어도, 그것이 측정하고자 하는 '진짜 현실(예: 학생의 실제 진료 능력)'과 동떨어져 있다면 우리는 "틀린 결과를 완벽하게 정당화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즉, 타당도는 단순한 논리적 설득을 넘어 실제 현실(Truth)을 담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Kane의 관점: 타당도는 현재 시점에서의 '최선의 합리적 추론과 공동체의 합의'다

보건의료교육 평가에서 널리 쓰이는 Kane의 프레임워크는 절대적인 '진실'을 찾는 데 큰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실용적이고 잠정적인 합의에 초점을 맞춥니다.
  • 진실보다는 '현재의 최선': Kane에게 타당도는 절대적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나 교육자가 "지금 우리가 가진 최선의 근거와 이론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이 평가 결과가 가장 말이 되고 일관성 있다"고 논리적으로 주장(정당화)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나중에 새로운 근거가 나오면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잠정적인' 결론입니다.
  • 전문가 공동체의 역할: 가장 중요한 것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공동체(예: 의학교육 학계, 평가 위원회)가 이 정당화 과정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해 주는가'입니다. 학계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합의에 이른다면, 굳이 그것이 궁극적인 '진실'인지 따지지 않아도 타당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 요약하자면

이 글은 보건의료교육(HPE)의 평가 영역이 철학적 고민 없이 '어떤 평가 도구를 쓸 것인가'하는 방법론에만 치우쳐 있었음을 지적하며, 타당도에 대한 두 거장의 시각 차이를 보여줍니다.
  • Markus & Borsboom: "평가 결과가 실제 현실(진실)을 정확히 반영해야만 타당하다."
  • Kane: "절대적 진실은 알 수 없다. 현재 가진 데이터로 가장 논리적인 주장을 구성하고, 학계 전문가들이 동의한다면 그것이 타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타당도 이론가나 교육자들이 타당도의 행위와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때, 타당도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타당도에서 진실과 관련하여 어떤 주장이 가능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적용할 때, 우리는 타당도 주장이 정당화되는지 여부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평가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활용되는 개념인 타당도 근거조차 해석의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무엇이 타당도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구성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많은 해석적 요인에 달려 있다. 이를 HPE에 적용하면, 이는 해석 과정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무엇이 좋은, 방어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실천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한 함의를 가진다.

실용주의: 일관된 철학적 관점 내부에서도 존재하는 해석 과정
Pragmatism – interpretive processes even in a coherent philosophical perspective
 

이제 우리는 일관된 철학적 입장을 해결책으로 불러올 때에도 생기는 어려움을 검토한다. 평가 실천가들은 일상적으로 ‘실용적이기(being pragmatic)’라는 개념에 호소한다. 예를 들어, 대학원 의학교육에서 성과 틀(outcome frameworks)을 평가 계획(assessment plans)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탐구한 최근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프로그램 디렉터들이 평가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경쟁적 영향들, 예를 들어 인증(accreditation), 기술(technology), 타당도(validity) 사이에서 협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했다.³⁵ 평가 계획 설계를 고려하면서, 프로그램 디렉터들은 “나는 그것을 매우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³⁵ 이는 실천적이라는 것이 평가 도전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며, 심지어 타당도를 핵심 영향요인으로부터 밀어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실천적이라는 문제, 그리고 실천적 의도를 가지고 평가 선택을 협상하는 문제는 평가 전략에 대한 의도적 영향과 정당화로 확인되고 사용된다.³⁵

 

실용주의는 단순한 실천성(practicality)을 넘어서는 것을 포함한다. 어떤 접근이 다른 접근보다 더 적합한 이유를 생각하고, 평가 결과의 의미에 초점을 두며, 방법론을 넘어 탐구(inquiry)와 유용성(utility)을 정의적 특징으로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여주듯이, 실용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암묵적 가정은 여전히 서로 다른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상적 용어로서의 실용주의, 즉 실용적이거나 실제적이라는 의미와, 고유한 역사, 가정, 헌신을 가진 실질적인 철학적 입장으로서의 실용주의를 구별한다. 실용주의를 언급하여 실천가들을 더 깊은 철학적 해석 문제로부터 면제시키는 것은 강력한 수사적 움직임이지만, 그것은 해석 과정을 우회할 수 없다.

 

우리가 강조했듯이, 실증주의/후기실증주의와 객관주의의 영향을 받은 심리측정학적 접근(psychometric approaches)은 역사적으로 HPE 평가를 지배해왔다. 이는 구성주의적 입장해석주의적 입장으로 대체되거나, 강화되거나, 보완되어왔다. 따라서 HPE 평가에는 더 이상 명확한 철학적 관습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도입한다. 현재 HPE 평가와 유사해진 혼합방법 연구는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해왔다. 혼합방법 연구의 일부에서는 실용주의가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한다.³⁶ HPE 평가 맥락에서 실용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논리적인 확장일 수 있다. Kane에게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의 함의가 해석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뉘앙스와 가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평가 맥락에서 실용주의나 다른 어떤 철학적 입장을 사용하는 것은 일부 철학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긴장을 도입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 과정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진실(truth)” 개념으로 돌아가 실용주의에서 “진실”이 다루어지는 다양한 방식을 강조한다. 실용주의자들이 “진실”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유용하다. 이는 HPE에서 구성개념이나 역량의 본질에 관한 관점을 해석하거나, 타당도 주장을 형성하는 데 유비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진실” 개념에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³⁷ 예를 들어

 

  • Peirce는 ‘진실’을 가능한 모든 탐구의 끝에서 믿어지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참된 믿음(true beliefs)이다.³⁸ Peirce에게 진실은 발견될 수 있으며, 더 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다.
  • James는 정합 이론(coherence theory), 즉 믿음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이론을 사용하여 “진실”에 접근했다.³⁹˒⁴⁰ James에게 “진실”은 우리를 가치 있는 방식으로 합리적이고 만족스럽게 이끄는 관념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현실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 Dewey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어떤 믿음이든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진실을 덜 강조했다.³⁷˒⁴¹ Dewey는 Peirce의 대응 이론, 즉 ‘참된 믿음’이 현실을 대표한다는 이론과 James의 정합 이론, 즉 ‘진실’이 믿음들 사이의 일관성 문제라는 이론을 거부했다. 대신 Dewey는 그 자체로 ‘진실’을 함의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을 안내하는 데 유용성을 가진, 지적이고 잠정적이며 임시적인 판단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선호했다. 어떤 “진실”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그 판단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근거하여 출현한다.⁴²
  • 마지막으로 Rorty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는 없다고 주장했다.⁴³˒⁴⁴ 그는 Kane과 마찬가지로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덜 의미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모든 반론에 대해 방어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사고 없이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없다.⁴²

 

실용주의 철학자 4명이 ‘진실(Truth)’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았는지, 이를 “의대생의 임상 역량을 평가하는 상황”에 빗대어 알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1. Peirce (퍼스): "진실은 끝까지 탐구하면 결국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철학적 의미: 진실은 존재하며, 수많은 경험과 과학적 탐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흔들리지 않는 '참된 믿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HPE 비유: 학생의 '진짜 임상 역량'은 어딘가에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완벽한 평가 도구를 만들고 무한히 반복해서 평가한다면, 결국 그 학생의 진짜 능력을 오차 없이 정확히(True)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는 관점입니다.

2. James (제임스): "진실은 현실의 복사판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유용'한 것이다."

  • 철학적 의미: 진실이 굳이 저 밖의 객관적 현실과 완벽히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정합성), 우리를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결과로 이끌어준다면 그것을 진실로 봅니다.
  • HPE 비유: '임상 역량'이라는 절대적 실체가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든 평가 루브릭과 모형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고, 결과적으로 좋은 의사를 길러내는 데 유용하게 작동한다면 그 평가 프레임워크를 '진실된(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관점입니다.

3. Dewey (듀이): "고정된 진실은 없다. 오직 행동을 이끄는 '잠정적 판단'만 있을 뿐이다."

  • 철학적 의미: 영원불변한 진실을 찾는 것을 포기합니다. 대신, 당장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리는 똑똑하지만 '임시적인 판단'을 중시합니다. 진실은 고정된 명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판단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 HPE 비유: "이 학생이 완벽한 역량을 갖추었는가?"라는 절대적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 학생을 다음 단계(실습이나 전공의 과정)로 진급시켜도 좋다는 임시적 판단을 내리자"라고 결정합니다. 그 판단이 맞았는지(진실)는 학생이 실제 현장에서 환자를 보며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면서 나중에야 결정됩니다.

4. Rorty (로티): "객관적 진실은 없다. 공동체의 '방어 가능한 합의'가 진실을 대체한다."

  • 철학적 의미: 인간의 생각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진실) 자체를 부정합니다. 앞서 나온 Kane의 타당도 관점과 가장 유사합니다. 진실이란 그저 '다른 사람들의 반론에 맞서 방어해 낼 수 있는 주장'일 뿐입니다.
  • HPE 비유: 학생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 진실 따위는 애초에 알 수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학생의 역량은 '임상실습 평가위원회 소속 교수들이 모여 논의하고 합의한 결과'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 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교수진이 그 판단을 방어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진실(타당도)이 됩니다.

💡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한가?

  • 우리가 의학교육 논문이나 평가 도구를 설계할 때, 은연중에 이 4가지 관점 중 하나를 취하게 됩니다.
  • 평가 도구의 오차를 줄여 학생의 '진짜 능력'을 정확히 측정하려 한다면 Peirce에 가깝고, 평가 위원회의 합의와 해석 과정을 중시한다면 Rorty(또는 Kane)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평가를 통해 무엇을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 그 철학적 기반부터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적 입장 내부, 이 경우 실용주의 내부에서도 그 핵심 특징에 대한 많은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평가 맥락에서 실용주의를 불러오는 것은 사람마다 많은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 활동이 구성개념의 “참된” 본질에 대한 주장을 허용한다고 제안하는 것, 즉 참된 믿음이 포함될 수 있다.
  • 또한 우리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정당화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반드시 “참”이거나 현실에 대응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는 것, 즉 정당화된 믿음이 포함될 수 있다.
  • 또는 “진실”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우리의 주장과 결정이 앞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검토하는 것과 같은 중간적 입장도 포함될 수 있다.
  • 또는 주장이 가장 강한 논증에 근거하여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러한 주장은 사회적 맥락에 의존한다는 입장도 포함될 수 있다.

 

철학적 입장에 대한 해석 내부에서조차 존재하는 이러한 다양성은, 철학적 입장을 단순히 불러오는 것만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해석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철학적 입장의 적용은 의미와 이해를 명확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가릴 수 있다. 평가 설계자가 평가 사용자가 자신의 평가 작업을 고려할 때 어떤 가정을 인정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더 명시적이고 주의 깊게 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해석을 방지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논의 Discussion  

HPE 평가에서 해석 과정의 개념을 부각시키려는 우리의 목적은 평가 프로그램이 논의되고 사용되는 방식의 명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Veen과 Cianciolo는 철학적 입장이 교육에서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그리고 “상황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잠시 멈추어 주의를 집중하고, 당면한 문제를 재구성하며,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돕는다”는 근본적 이점을 상기시켰다.⁴⁵(p.338) 이는 해방적이면서도 생산적이었다. 평가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속적인 문제를 다르게 보기 위해 평가에 대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고, 새로운 해결책을 밝혀내며 발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평가 과학과 실천이 그 철학적 토대에서 변화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공통 개념과 언어에 대한 공유된 이해를 잃고 있다. 이는 우리가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을 주장해왔다.

 

  • 첫째, 평가에서의 다양한 해석은 보통 서로 다르며 대부분 암묵적인 철학적 입장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해석이 확장되었고, 그 결과 평가 과학과 실천에서 의도하지 않은 해석과 다양한 질 판단의 기회가 생겼다.
  • 둘째, 평가의 핵심 특징, 예를 들어 평가자/관찰자의 활용과 타당도는 기저의 철학적 입장에 의해 부분적으로 형성되는 해석 과정이다.
  • 셋째, 실용주의와 같이 일관된 철학적 입장을 불러오는 것조차도 의미와 이해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더 감출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해석 과정을 포함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석 과정의 역할이 반드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무엇이 좋은 평가를 구성하는지 고려할 때 실천적 불확실성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 하나 이상의 “규칙” 집합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 Cizek은 “가장 포괄적인 타당화 노력조차도 동등하게 자격을 갖춘 평가자들을 서로 다른 결론으로 이끌 수 있는 모호한 근거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러한 결론은 종합될 타당도 근거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믿음, 가정, 가치에 달려 있다”고 썼다.⁴⁶
  • 마찬가지로 이미 1975년에 Messick은 평가 논리와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평가 활동의 기저에 있는 핵심 가정과 주장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⁴⁷

실천에서 서로 다른 기저 가정은 해석을 형성하며, 따라서 평가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실행되며 방어가능하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주장을 형성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들은 교육자들 사이에서 유사한 평가 특징들에 적용되고 있으며, HPE에서 무엇이 좋은 평가를 구성하는지를 주로 보는 사람의 눈에 맡기고 있다. 또한 의도된 것과 해석된 것 사이에 잠재적 불일치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은 학생과 다른 사회적 책무성(social accountabilities)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육자와 HPE 평가 공동체를 위해 여러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 첫째, 우리의 우려는 평가 설계자와 평가 사용자가 서로 다른 가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들이 서로 다른 가정을 가질 것이라는 점은 거의 동어반복적이다. 우리의 우려는 실천에서 교육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또는 은밀하게 이러한 서로 다른 가정, 방법론적 규범, 해석적 규범을 적용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동일한 평가 프로그램이나 평가 사건에 대해서도 무엇이 질 높은 평가로 기능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평가의 여러 특징들 사이의 정합성(coherence),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추론(inferences)을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 둘째, 주목하지 않은 채 방치된다면 이러한 철학적으로 형성된 발전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예를 들어 관찰자 자료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사용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낳고, 더 나쁘게는 어떤 평가 활동이나 결과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셋째, 평가에서 어느 정도의 논쟁은 불가피하며,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은 명시적이지 않았더라도 대체로 철학적 입장 내부에서 이루어져왔다. 예를 들어, 평가자 간 신뢰도(inter-rater reliability)를 어떻게 가장 잘 향상시킬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 그러하다. 평가가 더 이상 하나의 지배적 철학적 입장에서만 바라보이지 않기 때문에,¹ 그리고 실천에서 서로 다른 해석 규범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오늘날의 논쟁은 철학적 입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한 입장에 대한 이해가 다른 입장에 대한 오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선택과 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도입한다. 예를 들어 평가자 간 신뢰도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그러하다.
  • 넷째, 평가 문헌은 방대하지만, 해석 과정이 그 작업에 어떻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에는 거의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았다.⁴⁸ 평가 실천과 결과적 주장을 구조화하고 방어하는 방식을 제공하는 평가 지침은 해석 과정이나 틀을 개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주목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암묵적이거나 가정된 상태로 남아 있다.¹⁶˒¹⁹

우리는 논의를 교육 및 평가 과학자, 평가 설계자, 또는 평가 결과나 자료의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어왔다. 이러한 문제가 최전선 임상의(frontline clinicians)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그들 자신도 평가에 대한 철학적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역량위원회에서 철학적 입장의 함의를 연구한 이들도 있지만,¹⁰ 학습자가 직접 영향을 받을 때 학습자에게 미치는 더 넓은 함의도 탐구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철학적으로 형성된 해석적 문제는 평가 작업 아래에 놓여 있다. 이는 이미 일부 평가 프로그램의 가치 부여와 가치 절하로 이어졌으며,²² 무엇이 좋은 평가로 간주되는지에 대해 연구자와 교육자 사이의 순환적 논의와 논쟁을 낳았다. 그 사이에, HPE 평가가 계속 진화하는 동안 이러한 철학적 발전과 제안을 탐색하는 더 생산적인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결론: HPE 평가를 위한 철학적으로 명시적인 접근을 향하여
Conclusion: toward a philosophically explicit approach for assessment in HPE
 

평가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 각자의 평가 세계에 대한 어떤 형태의 조율이나 이해가 필요해진다. 우리의 의도는 평가에서 확장되고 더 다양해진 해석 과정의 불가피성과 그 함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그렇게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평가가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 혼합방법 연구에서의 논쟁과 발전, 예를 들어 변증법적 다원주의(dialectical pluralism)의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또한 평가는 평가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철학적 주장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는 데 의존한다. 해석 과정에 대한 이러한 초점은 평가에서 윤리, 가치, 사회화의 역할도 도입한다. 이는 단지 과학적 추구나 존재론적 또는 인식론적 고려만의 문제가 아니다.⁴⁹ 이는 누가 해석을 하고 있는지, 누구의 해석이 지배적인지와 그 이유, 그리고 위치성(positionality)의 역할에 주의를 돌리게 한다. 이는 의도된 사용과 의미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 문제는 HPE 평가 틀에서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¹³˒¹⁹˒⁵⁰

 

따라서 우리는 평가 생산과 사용과 관련하여 철학적 전망(philosophical outlooks)을 밝혀내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함으로써, 평가를 해석 과정으로 널리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평가 실천과 과학에서 해석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평가 활동을 계획, 설계, 실행, 평가할 때 철학적으로 명시적(philosophically explicit)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교육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에서 이론(theory) 및/또는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s)을 밝혀내는 방식과 유사하다.⁵¹ 우리는 해석의 개념과 그 중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평가 접근, 또는 평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궁극적으로, 평가에서 공유되고 철학적으로 견고한 이해의 지평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평가 과학과 실천의 해석적 성격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평가는 항상 철학적 입장에 의존하며, 그러한 입장들은 너무나 자주 완전히 암묵적이거나 주목받지 못한다.¹⁶ 그리고 이제 그것들은 다양하다. 이러한 철학적 전망들이 긴장 관계에 있을 때, 서로 통약 불가능한 입장(incommensurate positions)이 출현하고 평가 논쟁이 뒤따른다. 우리는 평가 자체의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평가 과학, 실천, 담론이 개념화되고 표현되는 방식에 대한 주의이다. 암묵적 입장 내부에서 접근의 정당성을 논쟁하기보다는, 가정과 헌신을 명시해야 한다. 그래야 평가의 해석 과정이 더 투명해지고, 이해와 공정한 비판에 열릴 수 있다.

 

Acad Med. 2024 Oct 1;99(10):1078-1082. doi: 10.1097/ACM.0000000000005765. Epub 2024 May 13.

Perspectivism and Health Professions Assessment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사이, '관점주의(perspectivism)'로 평가를 다시 보기 

보건의료 평가(health professions assessment)를 둘러싼 논쟁은 정말 끝이 없죠. 신뢰도와 통계 지표를 중시하는 심리측정학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점수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맥락과 서사를 강조하는 구성주의적 시각도 있고요. "도대체 어떤 평가가 좋은 평가냐"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습니다.

 

Pearce와 Tavares가 Academic Medicine(2024)에 발표한 이 글은, 과학철학에서 오래 다듬어진 관점주의(perspectivism)라는 렌즈가 이 소모적인 논쟁을 꽤 산뜻하게 정리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이 논문의 핵심을 함께 따라가 볼게요.


🔍 관점주의란 무엇일까?

저자들은 관점주의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합니다.

관점주의는 지식이 본질적으로 특정한 관점들로부터 생겨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Perspectivism embraces the notion that knowledge inherently arises from particular perspectives."

 

쉽게 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할 때 그 앎은 늘 '어딘가에서 바라본' 앎이라는 거예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완전히 객관적인 시점, 그러니까 '신의 시점'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거죠.

 

관점주의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라이프니츠(Leibniz)와 칸트(Kant)에서 시작해 니체(Nietzsche),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을 거쳐 발전했고, 최근에는 과학철학자 기어리(Giere)가 형이상학·존재론 논쟁의 돌파구로 다시 꺼내 들었어요. 중요한 건, 관점주의가 "또 하나의 -ism"을 목록에 추가하자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 사이의 중간 지대를 찾으려는 사고방식이라는 점입니다.


⚖️ '진리'를 둘러싼 세 가지 입장

관점주의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진리(truth)'를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저자들은 세 입장을 이렇게 대비시켜요.

구분 절대주의(Absolutism) 상대주의(Relativism) 관점주의(Perspectivism)
진리관 명제는 객관적 사실에 따라 참 또는 거짓으로 정해진다 사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참·거짓이 달라진다 참·거짓의 가능성은 있으나, 그것은 관점에 달려 있다
인식론 지식은 객관적으로 검증·확정될 수 있다 모든 견해가 똑같이 타당하고 정당하다 지식은 늘 특정 시점에서 나오며 맥락에 의존한다
평가에 적용하면 객관적으로 더 좋고 나쁜 평가가 존재한다 (예: 신뢰도가 가장 중요) 모든 평가 견해가 동등하게 타당하다 모든 평가는 철학적 전제 위에 있고 맥락에 자리한다; 타당성은 맥락과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평가적 배경(evaluative background)입니다. 진리에 대한 판단은 결국 우리의 문화적 배경, 개인적 경험, 도덕적 가치 같은 주관적 요소들 위에서 이뤄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못 박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평가적 배경에 의존한다. "
'Truth' always depends on an evaluative background."

 

이쯤에서 흔한 반론이 하나 나옵니다. "관점주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결국 '관점주의는 참이다'라는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는 셈 아니냐"는 거죠. 하지만 저자들은 이 비판 자체가 이미 '진리에는 위계가 있다'는 절대주의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봅니다. 관점주의는 애초에 '모든 관점을 내려다보는 관점' 같은 건 없다고 말하니까요. 그래서 관점주의의 본질은 결국 인식론적 겸손(epistemic humility), 즉 우리의 앎이 역사적·맥락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 평가에 적용해보기: OSCE를 예로

이제 본론입니다. 최종 임상시험인 OSCE를 떠올려볼게요.

  • 심리측정학(psychometrics)에 기반한 절대주의 시각에서 보면, 높은 신뢰도(reliability)는 시험의 방어 가능성을 높여주고, "어떤 시험은 다른 시험보다 분명히 낫다"고 말하는 게 충분히 타당합니다.
  • 반면 구성주의(constructivism) 시각에서 보면, 한 시점의 시험(point-in-time examination)은 역량의 다면적 본질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고, 풍부한 인간 인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고 비판할 수 있죠.

그럼 둘 중 뭐가 맞을까요? 저자들은 "어느 쪽이 더 나은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다시 절대주의로 빠진다고 말합니다. 관점주의는 질문 자체를 바꿉니다.

이 평가 이슈에 대한 접근의 바탕에는 어떤 철학적 입장이 깔려 있는가?
"What underlying philosophical position forms the basis of the approach to the assessment issue?"

 

그리고 이어서 묻습니다.

그 철학적 접근은 이 특정한 맥락에서 정당화되는가?
"Is this philosophical approach justified in this specific context?"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대개 이렇게 나옵니다.

음, 그건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에 달려 있다.
"Well, it depends on what you are trying to do."

 

실제로 OSCE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표준화와 신뢰도가 가장 중요한 설계 기준이 되고, 일터 기반 평가(workplace-based assessment)에서는 피드백과 교육적 효과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맥락이 다르면 최적화해야 할 가치도 달라지는 거죠. 저자들은 반더플뢰튼(van der Vleuten)의 유명한 효용 공식(utility formula)이나 프로그램적 평가(programmatic assessment)에도 이런 관점주의적 정신이 이미 담겨 있다고 봅니다.

🚫 "아무거나 다 괜찮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여기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게, "그럼 관점주의는 결국 세련된 상대주의 아니냐"는 거예요. 저자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합니다.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해부학 문제를 떠올려보세요. 거기엔 여전히 정답이 있습니다.

 

  • 골수 상대주의자라면 "구조와 기능을 다르게 재구성할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 관점주의자는 교과서와 시험의 답이 옳다는 데 동의해요. 다만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단서를 붙일 뿐이죠. (17세기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체가 송과선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별개의 실체라고 봤고, 그 시대의 관점에서는 그게 '참'이었으니까요.)

 

표준설정(standard setting)도 좋은 예입니다. 모든 맥락에 통하는 '최고의' 표준설정 방법은 없습니다(절대주의 기각). 그렇다고 아무 방법이나 써도 된다는 뜻도 아니에요(상대주의 기각). 응시자가 5명뿐인 임상시험에 경계선 회귀(borderline regression)를 쓰는 건 부적절하고, 평가자가 2명뿐인데 수정 Angoff(modified Angoff) 방법을 쓰면 엉성하게 실행되어 타당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죠. 그래서 "어떤 표준설정 방법이 최고냐?"는 질문은, 사실 "우리 맥락에서 실행 가능하면서도 최적인 방법은 무엇이냐?"는 뜻인 셈입니다.

👥 역량위원회(competence committee)라는 현실

마지막 예시는 역량위원회입니다. 위원들이 한 학생의 진급이나 보충교육(remediation)을 논의할 때, 그 판단의 밑바탕에는 평가에 대한 암묵적 가정과 신념이 깔려 있어요. 이 결정들은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고부담(high-stakes) 결정이기 때문에, 저자들은 이 암묵적 시각에 꼭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위원회가 교착 상태(stalemate)에 빠졌을 때, 위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고 제안해요.

  • "데이터에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일관성? 변동성? 효용? 포화(saturation)?"
  • "어떤 형태의 데이터가 당신에게 더 무겁게 다가오나요?"
  • "실증주의·구성주의·실용주의 중 당신의 신념에 가장 가까운 건 무엇인가요?"

각자의 철학적 입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자는 거죠. 이게 교착을 항상 풀어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대화의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틀 수는 있다는 겁니다.

💡 그래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저자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건 결국 하나입니다. 평가를 '해석적 과정(interpretive process)'으로 인정하고, 그 밑에 깔린 철학을 겉으로 드러내자는 거예요.

[평가에서] 해석적 과정을 철학적으로 명시적으로 드러낸다(는 책무).
"...to make the interpretive processes in assessment philosophically explicit."

 

평가 연구에서 저자들이 자신의 철학적 가정을 밝히는 경우는 의외로 드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해석이 제각각 갈리죠. 관점주의적 렌즈는 이 숨은 가정들을 명시적으로 만들어 실무의 명료함을 높이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은 평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관점주의적 사고가 평가를 넘어 의학교육 담론과 실천 전반을 진전시킬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

✏️ 마무리하며

관점주의는 "또 하나의 -ism"을 추가하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매일 하고 있는 일 — 서로 다른 시각이 부딪히고, 그 긴장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일 — 을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틀이에요. 평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 앞에서, "누가 옳은가" 대신 "이 맥락에서 무엇이 타당한가"를 묻게 해주는 거죠.

 

다음에 평가 설계나 위원회 회의에서 의견이 갈릴 때,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철학적 자리는 어디일까?" 🤔


 

관점주의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고방식이며,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긴장(tensions)이 발생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많은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보건의료전문직교육의 연구 접근(research approaches)은 특정한 시점 또는 관점(vantage points)으로부터 출현한다. 새로운, 그리고 잠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입장들이 등장하고, 이러한 시각들이 달라질 때 방법론적 논쟁(methodological debates)이 뒤따른다. 우리는 평가과학(assessment science) 분야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¹ 다른 연구자들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그러한 긴장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² 우리는 이에 동의하며, 관점주의가 우리 분야를 바라보는 유용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관점주의평가에서 주관성의 가치에 관한 최근 논의를 확장한다.³˒⁴ 또한 무엇이 좋은 평가(good assessment)인지와 같은 평가 담론의 지배적인 논쟁을 가로질러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⁵ 우리는 이 저널과 다른 주요 저널에서 진행되는 많은 담론 속에서 관점적 대화(perspectival dialogue)의 양상을 본다. 그 안에서는 특정 렌즈(lenses)가 명시되고, 연구질문(research questions)에 적용되어 새로운 교훈과 탐구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의학교육에서 연구 접근과 철학적 렌즈가 넓어지고, 이를 통해 다양한 연구를 탐색하고 지원하게 되면서, 철학적 관점(philosophical vantage points)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커졌다. 우리의 목적은 과학철학의 확립된 학문적 논의⁶를 바탕으로 관점주의와 관점적 사고를 설명하고, 그것이 의학교육, 특히 평가와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관점주의란 무엇인가? What Is Perspectivism? 

관점주의를 평가와 보건의료전문직교육에 적용하고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기 전에, 먼저 관점주의를 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일관된 철학적 입장(coherent philosophical position)으로서 관점주의는 아마도 라이프니츠(Leibniz)와 칸트(Kant)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고,⁷ 니체(Nietzsche)⁸와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⁹에 의해 여러 형태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다 최근에 Giere는 형이상학(metaphysics), 즉 현실의 본성(the nature of reality)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와, 근본 존재론(fundamental ontology), 즉 존재(existence)와 존재함의 본성(the nature of being)을 다루는 형이상학의 한 분야에 관한 과학철학 논쟁에서 관점주의를 실행 가능한 전진 방향으로 제시하였다.¹⁰ 그러나 대부분의 개념이 그렇듯이, 관점주의에는 하나의 버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⁶

 

관점주의서로 다른 입장들 사이에서 중간지대(middle ground)를 찾으려는 철학적 사고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기존 생각들의 목록에 하나의 아이디어나 또 다른 “-주의(-ism)”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넓고 총체적인 관점(broader, more holistic perspective)을 채택함으로써 철학이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의 전환을 이룬다.

 

  • 인간의 지식(human knowledge), 즉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 인식론적 주장(epistemic claims), 즉 무엇이 참인지,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 인식론(epistemology), 즉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와 관련하여,
  • ...관점주의는 서로 다른 관점들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우리가 알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에 본질적인 한계(inherent limits)를 설정함으로써, 이분법(dichotomies)과 양극성(polarities) 같은 극단적 입장들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¹¹

 

우리 자신의 관점이 우리가 믿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고, 우리의 가정(assumptions)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지식이 본질적으로 특정한 관점들로부터 발생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평가에서 암묵적 철학적 입장(implicit philosophical positions)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전제(presuppositions)를 검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관한 현재의 연구와 실제와도 맞닿아 있다.⁵˒¹²

 

관점주의는 진리(truth)라는 개념을 고려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 절대주의(absolutism)는 어떤 진술(statement)이 객관적으로 참이거나 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 상대주의(relativism)는 특정한 가정(assumptions), 헌신(commitments), 또는 구성된 맥락(constructed contexts)에 따라 어떤 진술이 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생각을 도입한다. 왜냐하면 상대주의자에게는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진리(Truth)”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참으로 간주되는지는 우발적(contingent)이고 가변적(malleable)이다.
  • 물론 두 입장 모두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급진적 상대주의자(radical relativist)나 순수 상대주의자(sheer relativist)는 진리 주장(truth claims)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anything goes)”고 주장할 수 있다.

 

관점주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메타-관점(meta-view)을 취한다. 관점주의는 이러한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가, 우리가 근본적으로 진리의 개념이 “평가적 배경(evaluative backgrounds)”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평가적 배경이란 개인의 관점을 형성하고 그 개인이 진리 주장을 평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주관적 요인(subjective factors)을 말한다. 이러한 평가적 배경에는 문화적 성장 배경(cultural upbringing), 개인적 경험(personal experiences), 도덕적 가치(moral values)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관점주의자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인 관점에서 진리를 보기 위해 이러한 배경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신 개인들은 이러한 배경을 인정하고 그것과 관여하도록 격려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해를 형성하고, 관점들이 이해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인식하며, 보다 정교한 결론(more nuanced conclusions)에 도달하기 위한 건설적 대화(constructive dialogue)에 참여할 수 있다.

 

관점주의에 대한 흔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관점주의가 일관된 메타-입장(coherent meta-position)이라고 주장하려면, 관점주의 자체가 참이라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어떤 절대적 진리(absolute truth)가 존재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관점적 설명(perspectival account)의 미묘함을 오해한 것이다. 관점주의 자체가 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진리의 위계(hierarchy of truth)를 가정하는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점주의순수하게 초월적인 관점(pure transcendent viewpoint), 또는 “모든 관점들의 관점(perspective of all perspectives)”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관점적 설명은

 

  •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곳에서 이론화하려 하지 않으며(does not attempt to theorize from nowhere)”, 또한
  • “이론화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지 않는다(pretend that the theorizer does not exist).”¹³

 

따라서 우리가 관점주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인식적 겸손(epistemic humility)의 한 형태를 받아들이며, 인식론적 주장이 근본적으로 역사적·맥락적으로 위치 지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적 사고를 보건의료전문직 평가에 적용하기
Applying Perspectival Thinking to Health Professions Assessment
 

관점주의는 진리에 대한 주장(claims to truth)이 타당하고 의미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진리는 특정한 관점에 대한 참조를 통해 명확히 설명되어야 한다. 세계는 우리가 그것에 가져가는 범주(categories)와 개념(concepts)을 통해, 또는 가다머(Gadamer)의 용어로 말하면 우리가 세계에 가져가는 선판단(prejudgments)과 “지평(horizons)”을 통해 의미를 얻게 된다.¹⁴ Gamez에 따르면, 이는 세계가 서로 다른 관점들로부터 무수한 의미(countless meanings)를 가질 가능성을 부여한다.¹³ 그러나 이러한 의미들을 조정하기 위해, 관점주의자는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의 대화를 장려하여 당면한 문제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more nuanced understanding)를 촉진한다.

 

전통적인 의과대학 졸업시험(final medical examination), 예컨대 객관구조화진료시험(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 OSCE)을 생각해 보자.

 

  • 절대주의/객관주의(absolutism/objectivism)에 기반한 심리측정학적 관점(psychometric perspective)에서 보면, 고부담 OSCE(high-stakes OSCE)의 견고성(robustness)에 관한 특정 주장들은 가치가 있고 타당하게 이해된다. 심리측정학적 사고방식(psychometric mindset)은 질(quality)을 보장하기 위해 통계적 지표(statistical metrics)에 호소할 것이다. 이 관점에서 높은 신뢰도(reliability)는 도구의 방어가능성(defensibility)을 높이며, 이 지표에 비추어 어떤 시험이 다른 시험보다 분명히 “더 낫다(better)”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다.¹⁵˒¹⁶
  • 그러나 구성주의적 관점(constructivist perspective)에서 보면, 심리측정 모형(psychometric models)에 내재한 실증주의적 가정(positivist assumptions)은 정당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¹⁷ 왜냐하면 구성주의자는 지식의 맥락적 성격(contextual nature of knowledge)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절대주의가 측정의 구체적 기준(concrete standards of measurement)을 확립하려는 반면, 구성주의는 개인들이 지식을 구성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강조한다. 구성주의자는 단일한 “한 시점(point-in-time)”의 시험이 역량(competence)의 다면적 성격(multifaceted nature)을 충분히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심리측정학적 접근이 인간 인지(human cognition)의 풍부한 직조물(rich tapestry)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 구성주의자는 또한 시험이 환원주의적(reductionist)이며, 직장에서 훈련생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의학 훈련생(medical trainee)에 대해 더 정교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을 줄인다고 주장할 수 있다.¹⁸˒¹⁹ 또한 의미 있는 피드백, 예를 들어 서사적 피드백(narrative feedback)을 촉진하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²⁰

 

의학 훈련생 평가에서 이들 관점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를 묻는 것은 다시 절대주의적 시각(absolutist outlook)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관점적 접근(perspectival approach)을 적용하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 “평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적인 철학적 입장은 무엇인가?” 이어서
  • 이 특정 맥락에서 이 철학적 접근은 정당화되는가?”라고 묻게 된다.
  •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글쎄, 그것은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에 달려 있다”가 될 것이다.

 

관점적 접근의 목적은 사안을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어떤 입장이든 옹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평가에서 작동하는 근본 가정(underlying assumptions), 맥락적 특징(contextual features), 의도(intentions)를 명확히 하여 접근이 더 견고하고 더 잘 이해되도록 하는 데 있다. 이는 여러 철학적 입장을 동시에 채택할 가능성을 열어주며, 행위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을 더 너그럽게 이해하도록 격려한다. 두 관점 모두의 장점을 인정하는 것은 평가에 대한 더 총체적이고 정교한 접근(holistic and nuanced approach)에 기여할 수 있다.

 

증거에 기반한 논증(argument based on evidence)으로서의 현대적 타당도(validity) 개념은, 정신적으로는 관점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왜냐하면 타당도에 대한 근거(rationale)는 제공되고, 정당화되고, 맥락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²¹

 

  • 보다 넓은 관점적 접근은 van der Vleuten의 유명한 효용 공식(utility formula)에도 존재했다. 이 공식은 평가 기준들을 목적에 따라 최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²² 그리고 그의 후속 연구인 프로그램화 평가(programmatic assessment)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더욱 명시적으로 드러났다.¹²
  • 직장기반평가(workplace-based assessment)에서 최적화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드백(feedback)과 평가의 학습 또는 교육적 영향(learning or educational impact)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직장기반평가의 가장 중요한 설계 기준(design criteria)이 바로 피드백과 교육적 영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확하다. 그러나 OSCE에서는 훈련생에 대한 공정성(fairness)을 위해 표준화(standardization)와 신뢰도(reliability)가 최적화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설계 기준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평가과학과 평가 실제에서 관점주의를 표면으로 끌어올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정교한 형태의 상대주의(relativism)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주의 역시 단지 가능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관점주의의 일관성을 뒷받침하는 자기반박 문제(self-refuting issue)에 대한 기술적 논증들이 있기는 하지만,¹³˒²³˒²⁴ 의학 평가의 사례를 더 살펴보면, 관점주의가 순수 상대주의적 관점(sheer relativist viewpoints)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유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 의학에서의 정전적 지식(canonical knowledge), 예컨대 기본 해부학(basic anatomy)의 경우,
    •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주장의 진리성을 부정하는 것은 틀린 일일 것이다. 뇌 해부학에 관한 평가 문항에는 여전히 정답이 있다.
    • 순수 상대주의자는 우리가 구조와 기능을 다르게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 반면 관점주의자는 의학교과서의 설명과 시험 정답에 동의하되, 이러한 주장이 현대 과학의 관점(modern scientific vantage point)에서 참이라고 덧붙일 것이다. 절대주의적 관점과 관점주의적 관점의 차이는 이 관점에 관한 작은 한정(qualification)에 있다.

 

실제로 17세기 초 데카르트(Descartes)의 관점에서는 정신과 신체를 분리된 것으로 보고, 정신을 송과선(pineal gland)을 통해 뇌와 상호작용하는 비물질적 실체(nonphysical substance)로 간주하는 것이 관점적으로 참(perspectivally true)이었다. 그리고 먼 미래에 우리의 해부학 교과서가 어떤 모습일지 누가 알겠는가? 다시 말해 여기서 핵심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식론적 주장이 필연적으로 역사적·맥락적으로 위치 지어진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추가 사례로, 많은 평가 설계자(assessment designers)는 특정 시험 맥락에 가장 적합한 기준설정 방법론(standard setting methodology)을 결정해야 한다. 기준설정(standard setting)은 통계적 분석을 사용하고 전문가의 판단(judgments of experts)을 활용하여 시험의 합격점(pass marks)을 결정하는 과정이다.²⁵ 모든 맥락에 대해 “최고의(best)” 기준설정 접근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즉 절대주의적 관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떤 방법이든 어떤 맥락에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이 맞다는 뜻이 아니다. 맥락에 따라 기준설정에는 더 나은 접근과 더 나쁜 접근이 여전히 존재한다.

 

  • 예컨대 응시자가 5명뿐인 임상시험(clinical examination)에 경계선 회귀법(borderline regression)을 적용하는 것은 최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관점적으로 참이다.
  • 또한 전문가 평가자(expert raters)가 2명뿐인 상황에서 수정 Angoff 방법(modified Angoff approach)을 사용하는 것은 제대로 실행되기 어렵고 타당하지 않은 결과(invalid outcomes)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관점적으로 참이다.
  • 두 경우 모두, 응시자 수와 평가자 수라는 맥락에 근거할 때 기준설정 방법 또는 접근이 그 맥락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이다.

 

따라서 교육 설계자가 “어떤 기준설정 방법이 가장 좋은가?”라고 물을 때, 그들이 보통 암묵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우리 맥락에서 최적이면서, 동시에 실행 가능하고 적합한 접근은 무엇인가?”이다. 이는 상당히 정교한 입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답할 때 진리 주장의 참됨(veracity of claims to truth)은 본질적으로 관점적인 성격을 갖는다. 관점주의는 이처럼 복수의 입장(plurality of positions)을 맥락과 필요에 따라 타당하고 정렬된 입장들로 조정한다. 표 1은 관점주의를 추가로 요약하고, 이를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로부터 구분한다.


표 1 절대주의, 상대주의, 관점주의의 차이 명료화
Clarifying the Differences Between Absolutism, Relativism, and Perspectivism
 

요소 절대주의 Absolutism 상대주의 Relativism 관점주의 Perspectivism
진리 주장에 관하여 명제(proposition)는 객관적 사실(objective facts)에 따라 참이거나 거짓이다. 명제는 사실을 그에 맞게 구성함으로써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다. 명제에는 참 또는 거짓의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관점(perspective)에 의존한다.
인식론에 관하여 지식에 대한 인식론적 주장(epistemic claims to knowledge)은 객관적으로 결정되고 검증될 수 있다. 지식에 대한 인식론적 주장에 관해서는 어떤 관점이든 타당하고 정당하다. 지식에 대한 인식론적 주장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특정한 관점(vantage points)에서 발생하며, 맥락에 의존한다.
현실에 관하여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관점, 즉 “모든 곳으로부터의(from everywhere)” 현실에 대한 관점이 존재한다.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어디에서도 오지 않는(from nowhere)” 관점을 상정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곳에서 이론화하려 하지 않는다. 존재론적 겸손(ontological humility)의 한 형태를 받아들이며, 존재론(ontology)을 근본적으로 맥락적인 것으로 본다.
보건의료전문직 평가와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더 나은 평가 실제와 더 나쁜 평가 실제가 있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신뢰도(reliability)가 평가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평가 실제에 관해서는 복수의 입장들이 존재하며, 이들 중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더 낫거나 더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평가 실제에 대한 개인의 관점은 모두 동등하게 타당하다. 모든 평가 실제가 철학적 전제(philosophical presuppositions)에 의해 추동되며 맥락적으로 위치 지어진 것임을 인식한다. 복수의 입장들을 맥락과 필요에 따라 정렬되고, 그에 따라 타당하거나 적절한 입장들로 조정한다.


관점주의는 독자들에게 평가(evaluation)에 대한 실재론적 접근(realist approaches)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특히 “무엇이,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는가(what works, for whom, and under what circumstances?)”라는 질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²⁶

 

  • 평가에 대한 실재론적 접근은 맥락(context)이 관찰된 결과(outcomes)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점주의 역시 진리와 지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두 경우 모두, 어떤 사안에 대한 순수한 객관성(pure objectivity)은 맥락이나 관점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접근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관점주의실재론(realism)모두 세계를 이해하고 개입(interventions)을 평가할 때 맥락 민감적 접근(context-sensitive approach)을 취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결과 당면한 문제에 대한 더 정교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ten Cate와 Regehr는 평가에서 주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의학 훈련생 평가에서 복수의 관점(plurality of perspectives)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설명하였다.³ 얼핏 보면 그들의 작업은 객관성보다 주관성을 옹호하는 설명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연구와 실제에 대해 더 정교한 방향을 제시한다. 평가 맥락에서 주관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료와 평가에 대한 ‘전-심리측정학적(pre-psychometric)’ 사고방식으로의 복귀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³ 오히려 서로 다른 평가 관점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맥락 의존적 정보(context-dependent information)로부터 나오는 가치를 인식하고, 그 중요성에 적절한 무게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Pack과 동료들의 연구는 이를 잘 예시한다. 그들은 역량위원회(competence committees)가 “문제적 증거(problematic evidence)”를 어떻게 다루며, “해석적 틀(interpretive frameworks)평가 자료 및 판단의 피할 수 없는 주관적 성격(inescapably subjective nature of assessment data and judgment)” 사이의 불일치를 어떻게 협상하는지 탐구하였다.²⁷ 이러한 접근들은 정확히 관점주의의 정신과 일치한다.

 

마지막 사례로, 전형적인 역량위원회(competence committee)의 작동을 생각해 보자. 의학 훈련생의 결과(outcome)를 심의할 때, 위원회 구성원들은 평가와 관련된 근본 가정과 헌신에 의해 안내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암묵적 관점(implicit views)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위원회가 이러한 가정에 근거하여 내리는 추론(inferences)이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학습 대화(learning conversations)를 해야 하는지, 학생이 훈련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지, 또는 학생이 보충교육 과정(remediation process)에 들어가야 하는지와 같은 개인에 관한 결정은 고부담 결정(high-stakes decisions)이다. 이러한 결정의 질(quality)과 방어가능성(defensibility)은 실제에서 쉽게 달라질 수 있으며, 연구자들은 그러한 결정이 신뢰 가능하고 견고해야 한다고 올바르게 주장해 왔다.²⁸

 

위원회 전체와 개별 위원들은 자신들이 어떤 철학적 관점(philosophical perspectives)에서 작업하고 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심의를 이끌고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영향(covert influences)을 드러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이론적 접근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역량위원회에서 교착상태(stalemates)가 발생했을 때 추가될 수 있는 가치를 생각해 보라.

 

위원들이 합의(consensus)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교착상태의 기원(origin of the stalemate)을 파악하기 위한 일련의 질문에 답하도록 요청받을 수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 자료에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관성(consistency)인가? 변동성(variability)인가? 유용성(utility)인가? 포화(saturation)인가? 등…”
  • “어떤 형태의 자료가 당신에게 더 큰 무게를 갖는가?”
  • “자료를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 “실증주의(positivism), 구성주의(constructivism), 실용주의(pragmatism) 등과 같은 철학적 입장에 연결된 가정들의 목록을 검토할 때, 어떤 것이 당신의 헌신(commitments)과 가장 잘 맞는가?” 

우리는 이러한 서로 다른 관점들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거나, 위원회 안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관점들이 명시되고, 심의의 일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항상 교착상태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전환하고 합의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열 수는 있다.

철학적으로 명시적인 접근의 함의
Implications of a Philosophically Explicit Approach
 

다른 글에서 우리는 평가를 해석적 과정(interpretive process)으로 널리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를 위해서는 철학적 관점(philosophical outlooks)을 명료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해야 한다.¹˒¹²˒²⁹˒³⁰ 평가 연구에서 저자들은 자신의 철학적 가정(philosophical assumptions)을 거의 보고하지 않는다. 이는 서로 다른 추론(divergent inferences)에 기반한 가변적인 해석(variable interpretations)으로 이어질 수 있다.⁵

 

보건의료전문직 평가에 관점적 렌즈를 적용하는 것은, 평가에서 작동하는 해석적 과정을 철학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제에서 명료성(clarity)을 증진할 수 있다. 이는 모든 평가 실제가 관점적(perspectival)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즉, 평가 실제는 철학적 전제(philosophical presuppositions)에 의해 추동되며, 지역적 맥락(local contexts)과 가정(assumptions) 속에 위치 지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너무나 자주 완전히 암묵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⁵

 

바라건대, 이러한 관점은 평가 공동체가 평가에서 계속 혁신하도록 격려할 것이다. 이는 다양한 평가 관점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해 왔다.³¹˒³²

 

비록 우리는 보건의료전문직의 평가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관점적 사고는 평가를 넘어 의학교육 담론과 실제를 보다 일반적으로 발전시킬 잠재력을 지닌다. 우리의 바람은, 더 비판적인 성찰을 촉진함으로써 이 관점적 사고에 대한 설명이 보건의료전문직교육의 연구자와 실천가 모두가 철학적으로 어떤 일이 더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독자들이 보건의료전문직 평가에서 문제를 다루고 해결책을 제안할 때, 관점주의의 정신에 따라 더 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를 권한다.

 

 

 

 
여러 의과대학에서 #의사과학자 양성 또는 #연구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양의대도 2017년부터 ‘#한양의과학자양성프로그램’이라는 비교과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학생은 한 명의 교수와 1:1로 매칭되고, 3월부터 12월까지 약 10개월간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2017년에 10개 과제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작년과 올해에는 30개 이상의 과제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흔히 “의과대학생이 제1저자로 OOO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와 같은 것을 ‘성과’로 홍보하곤 한다. 실제로 한양의과학자양성프로그램에서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거나, 공저자나 주저자로 논문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물론 연구 역량 함양의 근거로 ‘논문’으로 상징되는 성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의학교육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싶었다.
 
결과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이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모든 학생이 논문을 쓰려고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논문이 필요한 것은 ‘교수’이지 ‘학생’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어떤 경험을 통해서 조금 더 능동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할까?” 라는 질문으로 질적연구를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 연구가 오늘 출판되었다. 연구 결과를 한 문장 요약하면 ‘학생이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과 교수와 프로그램이 각각 갖춰야 할 특징들이 있다’이다. 이렇게만 보면 가끔 질적 연구는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핵심 결과를 아래처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서 그 중에 몇 개쯤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장 나 스스로부터 (심지어 이런 연구를 수행하고서도) 잘 하고 있었는지 반성해보게 된다.
 
1. 의과대학 학생들은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개방적인가?
2. 의과대학 학생들은 과거에 연구활동에 노출되거나 직접 수행한 적이 있는가?
3. 학생과 교수의 관계가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는가?
4. 연구활동 진행 과정에서 학생은 작더라도 유의미한 기여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가?
5. 교수는 연구에 관한 학생의 의견을 수용하고,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는 존중을 보이는가?
6. 교수는 연구 진행과정에서 학생에게 과제의 내용/기한/방법/목적을 명확히 설명하는가?
7. 교수는 학생의 연구 수행에 대해 적절한 칭찬과 교정을 포함한 건설적 피드백을 주는가?
8. 교수는 학생이 연구참여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자와의 교류와 협업 기회를 제공하는가?
9. 프로그램에서 학생에게 요구하는 과제는 무엇이며, 수행 및 제출 시점은 언제인가?
10. 연구 프로그램은 교육과정의 다른 요소나 과목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가?
11. 교육과정은 학생에게 연구를 수행할 충분한/보장된 시간을 제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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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과 불안함 속에서도 몇 번의 리젝, 투고, 수정 과정을 수행해준 석사과정 이효정 선생님과 강예지 교수님, 논문의 강점을 살릴 돌파구를 제안해준 임정준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요즘과 같이 의사과학자 양성이 의학교육의 중요한 화두가 된 시점에, 관련된 교육을 하시는 여러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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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주요결과 요약》
 
1) 학생
  • 1-1) 첫 번째 학생 요인은 ‘새로운 경험을 향한 열망’이다. 단조로운 의과대학 생활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찾거나, 도전적인 과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 1-2) 두 번째 요인은 과거의 연구 경험이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연구와 관련된 경험이 있는 학생일수록 프로그램에 진입하는 것도, 이후에 진행하는 것도 수월했다.
  • 1-3) 세 번째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이다. 학생들은 프로그램에서 매칭된 연구 지도교수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를 의식하고 있었다. 이유는 학교에서든 병원에서든, 심지어는 나중에 전공의를 가서든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 1-4) 네 번째는 연구에 무언가 기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큰 성과가 아니라도, 연구 시간의 단축이나 연구 방법의 작은 개선도 이들에게는 의미있는 성취감을 주었다.
2) 교수
  • 2-1) 첫째는 학생에 대한 존중이다. 지도교수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질문에 답해주고 질문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 것, 학생의견을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학생들은 동기부여되었다.
  • 2-2) 둘째는 명확한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다. ‘명확하다’는 의미는 과제의 내용을, 과제의 기한을, 과제 수행의 방법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제의 목적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 2-3) 셋째는 건설적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단순한 칭찬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칭찬은 학생의 뇌리에 깊이 남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교정적 피드백은 학생이 연구 방향을 재설정하거나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
  • 2-4) 넷째는 더 넓은 연구 공동체로의 초대이다. 지도교수가 다른 연구자와 관계맺는 방식을 배우기도 하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학생은 더 큰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3) 프로그램
  • 3-1) 먼저 프로그램에서 적절한 과제를 지정하여 요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연구노트를 기록하는 것, 보고서를 쓰는 것, 중간 및 최종 발표를 하는 것 등은 스스로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다른 학생과 비교해보는 기회를 준다.
  • 3-2) 연구 프로그램은 다른 교육과정과 상보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연구 프로그램이 전체 교육과정에서 고립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 과정에서 배운 지식과 스킬을 다른 과목에서 적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과목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도 있다.
  • 3-3)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연구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코로나는 어떤 학생들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녹화 수업을 원하는 시간에 시청하고, 오히려 낮 동안 실험실에 나가서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39차 의학교육학술대회>
 
일시 : 2023. 5. 18(목) ~ 5. 19(금)
장소 :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
주제 : “변혁의 시대, 임상실습교육을 재정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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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매년, 훈련소에 있었던 2015년 외에는 늘 참석해오던 학회인데, 학술위원회 간사로 참석하다보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회를 즐길(...?!) 수 있었다. 뭔가 앉아있었던 시간보다 서있었거나 걸어다녔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저런 실수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어쨌거나 큰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어서 후련하고 감사한 마음. 여러 학회 임원 교수님들, 그리고 무엇보다 학술위원회 교수님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도학생이 우수연제 상 받은게 제일 기쁘다. 나도 못 받아봤는데 😂
 



이번 의학교육학술대회 준비와 실행 과정을 돌이켜보다가 문득 나는 2013년부터 시기별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생각해봤다.
 
•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2013~2014년): 의학교육 분야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다소 충동적으로) 진입한 시기. 당연하게도 내가 모르는 것과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였지만, 두려움보다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던 시기.
 
• 연구와 논문에 대한 생소함과 우려(2014~2017년): 시야를 조금씩 넓혀가던 시기. 여하튼 일단 학위과정에서는 논문을 써야했으니, 읽은 논문 중 몇 개를 비슷하게 따라해보며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던 시기.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게 맞나' 싶었던 시기.
 
• 이른 성취가 가져다 준 자신감(2017~2019년): 일과 가정 모두에서 어느 정도 안정과 작은 성취들이 쌓이던 시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척 미숙했으면서도 (물론 지금도 미숙하지만) 이른 성취에 가려져서 였는지 스스로 그걸 잘 몰랐던 시기.
 
• 커리어 패스의 근원적인 한계 인식(2020~2022년): 한 번의 이직 후 소속 기관 안팎에서 맡겨지는 역할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던 시기. 역할이 늘어남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스킬셋도 늘어나며, 어느 정도 성장하기도 한 시기. 하지만 동시에 내가 속한 분야와 내가 밟아온 커리어 패스의 근원적 한계(= 나의 한계)를 깨달아가는 시기.
 
• 조직과 나의 역할에 대한 고민(2022년 하반기~): 내가 가진 장/단점이 조직의 장/단점과 어떻게 조화하여 시너지를 갖거나, 반대로 어떻게 결합되어 한계에 봉착하는지를 겪거나, 고민하거나, 깨닫던 시기. 여러 조직(의대)의 서로 다른 문화와 특성이 조금씩 분별되던 시기.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내 역할은 무엇일지, 나는 무슨 역할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기.
"서로 보기 면담inter/view은 두 주체 사이의 교환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상호적 목격이다. 반대편에서 이쪽을 볼 수 없다면, 내가 타인을 볼 수 없음은 당연하다. 상호작용 하는 두 주체는 상호성을 확립하지 않는 한 함께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현장 연구자는 덜 왜곡된 소통과 덜 편향된 자료수집의 조건을 통해 평등을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구술사에 관한 이 정식은 인문학과 보건의료의 교차점에서 일하는 의료인과 교사에게로 확장될 수 있다. 치료와 교육은 근본적으로 상호주관적인 서로 보기 면담이며, 그렇기에 평등에 관한 실험이다. 여기에서 평등이란 의사, 간호사, 학자가 자신의 지식과 권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생, 고객, 환자를 더 잘 돌보기 위해, 우리 사이 더 만족스러운 전문가적 관계를 위해 상호성과 투명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p. 216)
이번 학기 의예과 1학년 과목을 운영하면서, 과목 진행하며 수 차례 "저는 이 과목에서 F를 줍니다."라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0명(1주차부터 모두 결석한 3명 포함 총 수강생 117명)에게 F를 부여했다.
 
그렇다고 (내 기준으로는) 얼마나 대단히 엄격하게 평가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웬만한 평가는 일단 '기본만 하면' 60%는 받아갈 수 있게 설계 및 채점하였고, 수업 중에 진행하는 설문 등에 '성실히 응답만 하면' 1점씩 가산점을 여러 차례 주었고, 최종적으로 원점수에서 일괄적으로 몇 점씩 상향보정도 했다. 그럼에도 10명(실인원 7명) F라는 결과가 난 것이다. (원점수 합산 후 추가 상향보정 하지 않은 상태에서 60점 이하는 18명이었다.)
 
그래서 결국 F를 받은 학생들의 점수를 살펴보면 아래의 a~d중 보통 세 가지씩은 해당하는 양상을 보인다.
 
(a) 여러 차례 결석을 함
(b) 조 내 동료평가 점수에서 0점을 받음(즉, 다른 모든 조원이 이 학생의 기여도가 없었다고 판단함)
(c) 기말과제보고서 최소분량에 현저히 미달하여 60%의 점수조차 주지 못함
(d) 제출만 하면 되는 동료평가를 제출하지 않아서 감점당함
 
물론 열심히 하는 의예과 학생, 당연히 있다. 그리고 "의과대학 6년제"가 "본과 6년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의예과가 가진 문제점이 과연 이러한 시스템적 개선 없이도 고쳐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1. 내용 전문가, 교육 전문가, 그리고 임상가.
 
의료인문학(으로 통칭되는) 과목의 주요 교수자는 크게 이 세 유형으로 구분될 것 같다. 물론 둘 또는 셋의 교집합도 있다. 문제는 한 분야의 전문성이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의학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내용(의료커뮤니케이션, 의료윤리 등)이나 그것이 임상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
 
다른 예로, 임상 교수님들은 늘상 환자와 의사소통하며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경험과 직관으로 체화된 그 행위를 학문적 근거를 토대로, 학생의 수준에 맞게 세분화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본다.
 
2. 의과대학의 현실
 
일단 의과대학에는 의료인문학(으로 통칭되는) 과목을 담당할(또는 담당하고자 하는) 교수의 수가 적다. "석사 또는 박사 학위"로 대변되는 "전공자"로 제한하면 특히 더 그렇다. 임상에서는 낙수과니 기피과니 비인기과니 하지만, 그보다 더 적은 것이 의과대학 졸업 후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것이며, 그것보다도 더더더 적은 것이 의과대학 졸업 후 의료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다못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인문학 계열 교실에서 파트타임 대학원생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전공자가 있든 없든 의과대학에는 이미 평가인증 기준에도 명시된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으로 개설된 과목들이 있다. 따라서 누군가는 그 과목을 맡아야 하고, 그 수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교육학(또는 의학교육학) 전공자들에게 의료인문학(혹은 인문사회의학으로 불리는) 과목의 수업이나, 책임교수나, 더 크게는 전체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하는 책임이 맡겨진다. 기초의학도 아니고 임상의학도 아닌 과목, 그래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맡으려 하지 않는 역할이 다만 인접한 분야라는 이유로 맡겨지는 것이다.
 
3. 교육 전공자의 입장
 
학교 입장도 이해는 된다. 의료인문학 전공자(내용전문가 or 학위소지자)는 매우 적고, 임상 선생님들은 수업이나 과목을 맡기 부담스러워한다. 그나마 가까운 분야로 보이는 것이 (마침 평가인증 덕분에 학교마다 한 명씩은 있는) 교육학/의학교육학교실 전임교원이다.
 
이러니 교육 전문가도 힘겹긴 마찬가지다. 한/중/일이 동아시아 국가로 퉁쳐져도 서로는 서로를 구분한다. 어쩌면 의료인문학과 의학교육학도 그렇다. 멀리서(예컨대 기초의학/임상의학 전공자가)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의료인문학으로 묶이는 학문들도 서로 다르고(의사학-의철학-의료윤리 등), 의학교육학과 의료인문학도 다르다. 공통점은 어쨌거나 "문과"라는거...?
 
그리하여 교육 전문가는 종종 내용 전문가도 아니고 임상현장의 프랙티스도 모르지만 교육은 해야하는 입장에 놓인다. 이상적으로는 내용전문가 및 임상가와의 삼각협력이 좋겠지만, 내용전문가는 가까이 없고, 임상가는 선뜻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4. 어떻게 해야할까
 
교육 전문가일지라도, 한 분야의 전문성이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최소한의 내용전문성도 갖추고, 최소한의 임상현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못하겠으면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전문가가 교육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러한 노력이 마냥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무작정 거부해서도 안 되지만, 내 역량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도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조직의 문제는 조직이 감당할 책임도 있다.
 
학술적으로는, 두루뭉술하게 설문을 설계한 사람조차 해석하지 못할 설문은 지양했으면 한다 (주최측엔 죄송하지만, 설문을 열었다가 닫아버린 솔직한 심정이다). 그보다는 협소해도 단단한 근거가 필요하다. 만약 내용전문가나 임상가가 아니라 교육 전문가가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또는 충분하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적절한 연구를 설계해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할 필요가 있겠다.
1. 교강사가 강의를 하면서 출석과 관련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출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결석/대리출석에 대해서 문제삼기'이다. 그런데 일부 교수님들은 수업에 가셔서 종종 '이미 성실하게 출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정출결은 패널티를 주겠다며 엄포를 놓거나, 불성실하거나 부정직한 출결을 한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한명한명 이름을 불러가며 출석체크를 하느라 수업시간을 소모하곤 한다. 결과적으로 결석한 학생은 받지 않는 패널티를 출석한 학생이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2. 하지만 교강사의 이러한 행동만 문제삼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리출석이 가능한 이유는 '출석한 학생'이 '결석한 학생'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또한 한 날에 출석한 학생은 다른 날의 결석한 학생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학생들이 서로의 부정직한 행위를 도와주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대리출석이다. 물론 단 한번도 그런 부정직 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교강사의 1과 같은 행위는 문제가 있다.
 
3. 그럼 학생들은 왜 대리출석을 했을까. 하나는 '그럴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되기'때문이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예를 들어 인증번호를 입력하는 방식 또는 일정 반경 내에 스마트폰이 있으면 위치를 인식하는 방식 등) 손쉽게 대리출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시스템에서는 그렇게 대리출석한 학생에 대해 의과대학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삼고 있지 않다(예를 들어 반복된 대리출석에 대해 중징계하지 않는다).
 
4. 이렇게 보면 지금 의료에서 발생하는 큰 문제는 사실 이미 의과대학에서부터 미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아무도 고치고 있지 않은(고치지 못하는?) 문제의 확장판 같다

 

"내러티브 탐구는 그렇지 않았으면 침묵 속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목소리들을 증폭시킨다. 이는 이야기하기(story-telling)를 통해 참여자들의 현실을 더 넓은 청중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데이터의 어원을 찾아보면, 라틴어 ‘주어진 것’에서 유래한다. 데이터의 어원과 의미를 고려할 때, 내러티브 탐구자가 연구를 위해 수집하는 것을 ‘데이터’라고 지칭하기는 어렵다. 내러티브 탐구자들은 이른바 ‘데이터’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을 뿐더러, 주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내러티브 탐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랜디닌과 카늘리는 ‘데이터’라는 용어보다 ‘텍스트(text)’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텍스트란 해석해야 할 그 무엇을 의미한다. 삶의 경험은 마치 텍스트와 같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존재이다."
 
"연구자가 알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연구참여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 이것이 내러티브 면담의 기본 자세이다. 연구자는 연구참여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그러고 나서 그의 이야기에서 궁금한 것들,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 것들, 탐사해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연구참여자에게 질문을 한다. 말하자면, 비구조화된 면담(unstructured interview)으로 시작해서, 여기서 이야기된 내용을 토대로 반구조화된 면담(semi-structured interview)을 하는 것이다."
정부의 일방적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맞선 집단행동 과정에서, 의료 체계 내 최약자에 속하는 의과대학생이 가장 큰 부담을 떠안았다. 그리고 이 부담은 프랙탈 불평등(fractal inequality)의 논리처럼 학생 집단 내부에서도 다시 분화되어, 24·25학번(곧 26학번까지 포함), 즉 더블링/트리플링으로 교육 여건이 가장 열악해질 세대에게 집중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외부(정부)로부터 야기된 구조적 부당함을 해소하려는 투쟁” 이, 아이러니하게도 “내부(학번 간) 구조적 부당함” 을 재생산하는 모순이 발생했다.
 
이러한 프랙탈 불평등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연대·보상 메커니즘으로 교정할 수 있을까?
"시스템은 그저 오래된 대상들의 집합이 아니다. 시스템은 일련의 요소들이 뭔가를 달성하도록 일관되게 조직되고 상호 연결된 것이다. 이 정의를 잠깐만 깊이 살펴보면 시스템은 요소, 상호연관성, 기능 혹은 목적이라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스템의 요소와 상호연관성, 목적을 하나씩 바꿔보면 상대적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스템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는 방법은 요소를 바꾸는 것이다. 축구팀은 선수를 모두 바꿔도 여전히 같은 축구팀이다(팀의 기량이 훨씬 더 좋아지거나 떨어질 수는 있다. 시스템에는 정말 중요한 특정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끊임없이 세포를 바꾸고 해마다 잎을 바꾸지만, 본질적으로 여전히 같은 나무다. 여러분의 몸도 몇 주마다 한 번씩 대부분 세포를 교체하지만 계속해서 여러분의 몸이다. 대학도 새로운 학생들이 계속 들어오고 교수와 관리자도 더디게 꾸준히 들어오고 나가지만 여전히 대학이다. 사실 여전히 같은 대학이다."
 
"일반적으로 시스템은 계속 자신을 유지하며 모든 요소가 바뀌어도 상호연관성과 목적이 변하지 않는 한 아주 느리게 변한다."
 
"상호연관성이 바뀌면 시스템은 크게 달라진다. 선수 교체 없이도 상호연관성이 바뀌면 같은 팀인지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다. 축구 야구 건 규칙을 바꾸면 완전히 새로운 구기 종목으로 변한다. 흔히 말하듯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나무의 상호연관성을 바꿔보자. 예를 들어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대신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동물이지 더 이상 나무가 아닐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학점을 주고 이성 대신 힘으로 논쟁의 승패를 가른다면 대학 대신 다른 명칭이 필요할 것이다. 흥미로운 조직이겠지만 대학은 아닐 것이다. 상호연관성이 바뀌면 시스템이 극적으로 변한다."
 
"기능 혹은 목적의 변화도 극적이다. 예를 들어, 축구팀의 선수와 규칙은 그대로 두고 목적을 승리가 아니라 패배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나무의 기능이 생존과 증식이 아니라 땅속 영양분을 모두 빨아들여 무한히 성장하는 것이라면? 대학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거나 특정 사상을 주입하거나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는 등 지식의 전파 외에도 사람들이 이제껏 상상한 대학의 목적은 아주 많다. 모든 요소와 상호연관성이 그대로 있어도 목적이 변하면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다."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요소인지 상호연관성인지 기능인지 묻는 것은 시스템 사고에 걸맞은 질문이 아니다. 세 가지 모두 필수적이고 상호작용하며 각각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시스템에서 가장 불분명한 부분인 기능 혹은 목적이 흔히 시스템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상호연관성도 매우 중요하다. 관계가 바뀌면 대체로 시스템의 동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흔히 시스템의 독특한 특징을 규정할 때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은 시스템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요소다. 다만, 요소의 변경이 관계나 목적의 변경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만 그렇다."
 
- ESG와 세상을 읽는 시스템 법칙 중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면담(interview)을 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야기는 앎의 방식인 것이다. '이야기(story)'라는 단어의 근원은 그리스어로 'histor'라고 하는데, 이는 '현명하고(wise)' '박식한(learned)' 사람을 의미한다(Watkins, 1985, p. 74).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Aristotle는 세상 모든 이야기에는 도입과 전개와 결말이 있다고 했다(Butcher, 1902). 자신이 경험한 세부적인 내용에 도입, 전개, 결말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을 곰곰이 되짚어 보아야 한다. 경험을 구성하고 있는 세부적인 내용을 선택하고, 이를 되짚어 보고, 순서대로 나열하고, 그럼으로써 의미가 통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경험을 제공한다(Schutz, 1967, p. 12, p. 50 참조).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용하는 모든 단어는 그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축도다(Vygotsky, 1987, pp. 236-237). 사회적·교육적 쟁점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경험에 기초한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가장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사회적·교육적 쟁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개인의 의식이다. W. E. B. Du Bois는 이를 체험하고,"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의 인생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삶에 대한 영적인 의미와 인종 문제의 중요성을 천명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라고 했다(Wideman, 1990, p. xiv)."
타협점은 어디인가?
 
1. N학년을 시작하기 전에 N-1학년까지의 학습은 어느 정도 유지되어 있어야 하는가? 달리 표현하면, N-1학년까지의 내용을 얼마나 ‘몰라도(혹은 까먹었어도)’ N학년 학습의 시작을 허용할 수 있는가?
 
2. ‘가르친 시간’은 ‘교육의 질’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가?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혼자 공부하는 시간’, ‘함께 공부하는 시간’, ‘직접 실습하는 시간’, 그리고 ‘쉬는 시간’ 등의 최소한은 얼마인가?
 
3. N+1학년으로 진급하기 위해 N학년에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최소 성과는 무엇인가? 달리 표현하면, N학년 학생이 어느 정도 ‘부족한 상태로’ N+1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4. N학년의 학습 시간 확보를 위해 N+1학년에서 양보할 수 있는 시간의 최대한은 얼마인가?
 
5. 학생에게 요구할 수 있는 학습량의 최대한은 어느 정도인가? 학생에게 부과할 수 있는 학습 강도(스트레스)의 허용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6. 교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교육량의 최대한은 얼마인가? 추가적인 교육을 위한 교수의 시간과 노력 투자를 어느 정도까지 요청할 수 있는가?
 
7. 행정직원에게 요구할 수 있는 행정지원의 최대한은 얼마인가? 행정직원이 학사 운영을 위해 추가적으로 수용 가능한 업무는 어느 정도인가?
 
8. 본교에 요구할 수 있는 학사 일정 조정의 최대한은 얼마인가? 의과대학의 학사 운영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가?
 
9. 이미 복귀한 학생과 앞으로 복귀할 학생들 간의 잠재적 갈등을 고려할 때, 두 그룹이 함께 접촉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최대한은 얼마인가? 혹은 두 그룹을 서로 분리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의 최소한은 얼마인가?
 
10. 의과대학 교육을 재개하기 위해 (학생, 교수, 정부 간)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신뢰는 무엇인가?
캐나다에서 배운 것은 내가 절박함을 호소하며 나서서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기는 커녕 절박함을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머문 기간 중, 처음 절반 정도의 기간은 이 사실을 배우는데 쓴 것 같다. 한국이라는 고맥락 사회에서 해오던 습성대로 지냈다. 내가 주변에 어떠한 기운이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으면 그것을 눈치채주리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갔다. 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드물게 반대로 누군가가 먼저 내 상황을 짐작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제안해주었을 때, 그런 분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 1년의 경험이 ‘절박함’에 대한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줬다.
하나. 캐나다에서 1년을 지내고 돌아와보니, 가기 전에 받아 두었던 연구비의 연구기간 종료가 임박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푼돈에 가까운 금액일 만한 작은 교내 연구과제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리 작더라도 꼭 필요한 연구비였다. 과제기간이 종료되면 8월에 가려고 했던 국외 학회에 이 연구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올해만큼은, 8월에, 그 학회에, 꼭 가고 싶었다. 문제는 과제기간 연장이 불투명하다는 점이었다. 내 연구과제를 담당하는 산학협력단 직원은 내가 이미 작년에 한 차례 연구기간을 연장을 했기 때문에 올해 더 이상의 추가 연장은 불가하다고 했다. 재차 물어봐도 대답은 같았다. 포기할까 하다가 밑져야 본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산학협력단 홈페이지에서 그 직원이 속한 팀의 팀장님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드렸다. 이미 규정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직원에게 답을 듣고도 문의드려서 정말 죄송하지만, 작년 1년간 휴직하고 해외에 머물고 있어서 연구비 사용이 불가능했었다고, 혹시 한 번만 더 연장할 방법이 없겠냐고 여쭈었다. 감사하게도 팀장님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번 알아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일정 서류를 내면 몇 달의 추가 기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셨고, 8월 학회 등록비 및 여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둘. 며칠 전에는 첫째가 캐나다에서 다녔던 학교로부터 졸업앨범을 국제우편으로 받았다. 6학년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앨범에 한 페이지를 넣어서 만들어주고 심지어 학교가 배송료를 부담하여 앨범을 한국에 택배로 보내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학교 측에는 ‘어떠한 비용이든 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은 하겠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졸업앨범을 받는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귀국 직전에 학교의 직원에게 문의를 했고, 직원은 교장선생님에게 확인해보겠다 하였다. 며칠간 답장을 기다리다가,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아 직접 교장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다(3월 말). 이후 캐나다 학기가 끝날 6월 중순 즈음에 다시 한 번 리마인더 메일을 드리고, 일주일정도 회신을 기다리다가 회신이 오지 않기에, 졸업앨범 작업을 맡으셨던 (첫째와 같은 반 학부모라는 것 외에는 친분이 전혀 없는) 학부모 대표께도 연락을 드렸다. 회신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일주일 뒤에 리마인더를 드렸고, 며칠 뒤 드디어 ‘배송받을 주소를 알려달라’라는 회신을 받았다. 배송받을 주소를 보냈는데, 보름이 지나도 택배가 오지 않았다. 염치불구하고 다시 한 번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대표께 메일을 드렸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택배를 받았다. 잘 받았다고 곧바로 감사 메일을 드리니, 여름 휴가 가기 전에 보낸다는 것을 깜박 했다며, 미안하고, 잘 도착해서 기쁘다는 답을 주셨다.
셋. 캐나다의 연구소에 visiting scholar로 지내는 동안 내 supervisor를 해주신 D가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이 분과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기간이 빠듯해서 연구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로 바빠질 시기쯤 D도 한 달간 출산휴가를 가시게 되었고(참고로 이 분은 남자이시다), 그렇게 한달 남짓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못한 상태로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 포기하기엔 캐나다에서 썼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꾸역꾸역 마무리를 하고, 논문으로 정리를 하고, 구색을 갖춰서 피드백을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친절했던 D는 몇 주가 지나도 회신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굉장히 구차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메일을 보냈다. 물론 앞서 보낸 manuscript를 확인해달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메일에도 회신은 없었다. 회신 없는 메일을 마치 스팸처럼 그분에게 보내며 혼자 속으로만 앓다가, 다섯 번째 메일에서는 급기야 ‘혹시라도 내가 당신께 무엇이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회신은 없었다. 메일로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 같아 캐나다에 계신 교수님께 ‘직접 D를 뵙게 되면 내가 그분의 회신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다행히 그 이후에 연락이 재개되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했던 이런 행동들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지만, 기껏해야 조금 더 뻔뻔해지는 정도에 불과하고,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겪은 절박함과 그 절박함 때문에 했던 것들에 비하면 절박함의 ‘ㅈ’의 첫 가로획 ‘ㅡ’에조차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절박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어딘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한다. 어딘가로 향하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도망쳐나오기도 한다. 누군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쫓아가기도 한다.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묻지 않았음에도 먼저 나서서 대답을 하기도 한다. 너무나도 절박해서 무언가를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다. 조직을 만들기도 하고, 조직에 들어가기도 하고, 조직에서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절박함은 무언가를 하게끔 한다. 이처럼 절박함은 이루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보여지는 행동을 통해서 외부에 드러나고,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선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지만, 행동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절박하지 않음과 동일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옳든 그르든 절박함은 행동으로 드러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부터 절박함의 정도를 가늠하기란, 그래서 참 어렵다.

(1) 8/24 Pre-Conference Workshop: 정서지능, 문화지능

 

[문화] 문화는 단일한 정의가 어렵다. 개인은 자신만의 ‘미시 문화(microculture)’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외부의 큰 문화적 틀 속에서 살아간다. 한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동일하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과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문화지능 - 일반] 문화지능(CQ)은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능력이다. CQ는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e)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단순한 인식 차원을 넘어, 실제로 다른 문화적 관점을 수용하고 적응하는 능력이다. CQ의 핵심은 겸손(humility)이다. 자신의 가정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움이 쌍방향(bidirectional)임을 인정해야 한다.

 

[문화지능 - 케이터링] 말레이시아에서는 음식이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무슬림이므로 할랄 음식이 필요하고, 힌두교 신자에게는 소고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역시 충분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배려가 실제 회의나 행사에서 모두를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

 

[문화지능 - 다양성]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차이를 덜 부각시키고 공통점을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문화지능 - 심리적 안전] 모든 사람이 발언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은 중요하지만, 일부 문화에서는 ‘위계 존중’을 안전감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심리적 안전감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

 

[문화지능 - 다양성]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있을 때 가장 덜 배운다. 반대로 나랑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가장 많이 배운다.

(2) 8/24 Pre-Conference Workshop: 예측분석(Predictive analysis)
 
[예측분석의 단계] 예측분석은 ‘묘사적(Descriptive) → 진단적(Diagnostic) → 예측적(Predictive) → 처방적(Prescriptive)’ 단계로 발전한다. 묘사적 분석은 과거의 성과를 요약한다. 진단적 분석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규명한다. 예측적 분석은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를 예측한다. 처방적 분석은 데이터 기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안한다.
 
[학생과의 공유] 학습자에게 모든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생이 자신의 목표와 성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데이터’를 선별 제공해야 한다. 예측분석 결과를 그대로 학생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안과 부담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코치나 교수와 함께 해석하고 학습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동료 평균과의 비교를 원하지만, 이는 불필요한 경쟁심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제공해야 한다. 예측분석 공유 과정에서 학습자의 웰빙(wellness)과 감정 상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학생의 역할] 학생이 데이터 해석에 익숙하지 않으면, 교수가 문제 해결을 대신 떠안게 된다. 따라서 학생 스스로 데이터를 반성(reflect)하고 활용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학생은 자기 데이터의 ‘주체(owner)’가 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자기주도적 학습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의 자기성찰(self-reflection) 데이터는 때로 가장 강력한 예측 신호가 된다. 교수와 학생 모두 데이터 해석 역량을 길러야 하므로, 교수개발과 학습자 교육이 동시에 필요하다. 예측분석은 학습자에게 에이전시(agency)를 부여하고, 스스로 ‘곡선을 바꿀 수 있다(bend the curve)’는 믿음을 심어야 한다.
 
[데이터와 해석] 예측분석의 성패는 결국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적절한 해석’에 달려 있다. 데이터가 많아도 잘못 해석되면 오히려 위험하다. 수치 데이터와 직관이 불일치할 때, 프로그램은 수집하는 데이터의 적절성과 정렬(alignment)을 되돌아봐야 한다. 때로는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가르치지 않은 부분이 데이터에 드러났기 때문일 수 있다. 정량적 데이터만큼이나 내러티브(텍스트) 데이터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분류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기계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다.
 
[코칭] 코칭은 데이터를 단순 점수화가 아니라 자기주도적 학습 계획으로 전환하는 핵심 과정이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데이터는 진단적(diagnostic)일 뿐 아니라 발전적(developmental)이어야 한다. 단순히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데이터 공유 시 교수가 학습자를 미리 ‘낙인찍는’ 위험을 방지하려면, 성장 중심 프레임(growth framing)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촉진하는 코칭은 예측분석 결과를 고정된 낙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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