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제36차 의학교육학술대회 ‘의학교육의 최신 동향’ 세션에서 ‘COVID-19 상황에서 의학교육의 변화’를 주제로 한 발표를 맡게 되어, 이를 준비하면서 지난 1년간(정확히는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주요 저널(Academic Medicine, Medical Education, Medical Teacher)에 발표된 주요 article을 리뷰하고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2. 일상적인 상황이라면, 개선이나 문제해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결정할 때 ‘해야 하는 것(things that matter)’과 ‘할 수 있는 것(things you can control)’의 교집합에 초점을 두면 될 것이다. 그러나 COVID-19라는 불확실성의 시간은 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결국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가(what you should focus on)’도 불확실해졌다. 

 

3. COVID-19로 인한 갑작스러운 의학교육의 변화와 발전에는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보다 “수년, 수십 년 전부터 이미 가능했지만, 널리 도입되지 않던 혁신이 갑자기 일상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더 어울린다. 지금, 의학교육에서도 변화는 새로운 노멀이자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4. 이번에 article들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크게 네 가지 질문에 따라 구분해보았다.

 1)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2) 변화의 대상은 무엇인가?

 3)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4) 학생은 무엇을 하였는가?

 

5. 고작 스무 개 남짓한 논문을 가지고 팬데믹 시대의 변화를 논하기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번에 발표를 준비하면서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마지막 서너 개의 슬라이드에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면, 학기는 짧고, 교육은 길다. 불확실성의 시간 속에 교육의 기회 역시 순식간에 지나가고, 변화하는 순간순간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에 경험은 오류가 많으며, 교육적 의사결정과 판단은 어렵다. 팬데믹 이전, 일상적 상황에서 교육 개선을 위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고치는 것(Fixing the plane while flying it)”이라면, 팬데믹 상황에서 교육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바람에 밀리는 열기구의 방향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 삶의 바람 - 즉 COVID-19과 같은 불확실성의 힘 - 이 우리의 교육을 미지의 장소로 밀어낼 때엔, 열기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던져버려야 하듯, 여태껏 교육의 무게를 잡아준 신념과 확신을 버려야 한다. 그 신념과 확신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우리는 늘 이렇게 해왔어”이며, 지금 바로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말이기 때문이다. 

 

6. 어차피 다 나와있는 논문 요약한 정도지만, 혹시나 싶어 마지막 발표한 자료를 슬라이드쉐어로 공유합니다. 
https://www2.slideshare.net/ngene301/covid19-240160766

코로나로 인해 진행된 온라인 수업은 재수를 통해 더 상위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의대생도 예외는 아니며, 아래 내용을 발표하신 교수님께서는 (내가 들은 것이 맞다면) 40명이 입학해서 30명이 남았다고 하셨다. 한양의대에서도 2019년보다 2020, 2021년에 타 대학 진학으로 자퇴한 의예과 신입생이 크게 늘어나서 고민이 있다.

 

그런데 놀랐던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뤄진 조사 결과 2019년과 비교해서 2020, 2021의 제적생(=타 대학 진학으로 유출된 의대생) 수가 별로 차이가 없다는거다. 3년간 꾸준히 약 5%남짓(약 115명)의 의과대학생이 자퇴를 하고 (아마도) 다른 의대로 진학한다.

 

이 수치에 포함된 대학이 40개 의대 중 27개이니 웬만하면 대표성은 있다고 봐야할 것 같은데, 코로나 전후로 수치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합계가 일정하다면 자퇴한 의예과 신입생이 더 늘어난 학교(한양의대처럼)가 있고, 반대로 그만큼 자퇴한 신입생이 줄어든 학교가 있다는건데, 뭐가 달랐던거지? 

 

학회에서도 명확한 설명은 듣지 못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중..

 

의학교육(혹은 의과대학교육)에서 다뤄야한다고 주장되고 논의되는 많은 개념은 서양에서 먼저 자리잡은 뒤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이번 학술대회 주제였던 사회적 책무성도 마찬가지다. 물론 중요한 개념인 것에는 동의하고, 학술대회 주제로 다뤄보는 것도 좋은데, 이런 학술적 논의 용도가 아니라 현실 적용에 대해서라면, "음...이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좀 극단적인 사례일지 몰라도, 예를 들어 사회적 책무성의 실천으로 높이 인정받아, 이번 Plenary 1에서 발표된 Southern Illinois University를 보자. 의과대학이 "serve"하는 "community"가 어디인지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사명에 따라 의과대학의 정책과 전략이 "align"되어있다. 선발을 보면, 애초에 학생을 그 주에서만 선발하는 꽤나 과격한 방침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슷한 것이 가능할까?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외국의 사례와 개념에서 배울 것은 무엇일까?

 

 

 

 

 

1. 작년부터였나, KMEC라는 학회의 공식 영어 약자가 쓰이는 듯 하다. 그 전에도 썼던가? 아무튼 그래서 올해는 KMEC2022. 아시아 태평양 학술대회인 APMEC라든가 유럽 학술대회인 AMEE등에 대응하는 이름이 생겨서 좋다. 만약 트위터였다면 #KMEC2022 와 같이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들이 올라왔을텐데. (혹시나 찾아봤지만 검색되는건 없었다)

 

2. 작년 학술대회 후에 남긴 포스팅의 시작은 이랬다

 "최근 1~2년간 나에게 학회는 자극적이기보다는 식상한 무엇이었다. 7~8년 전, 의학교육을 막 시작한 초반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3~4년 전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조금씩 혹은 빠르게 분야를 파악하다보니, 학회의 내용들이 '들어 본' '읽어 본' 주제가 반복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번 학회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그리고 예전에 왜 내가 저렇게 느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학회란 오로지 "내용(기조강연, 구연발표, 포스터 등)과의 교류" 였다면, 이번에는 의학교육학계/공동체의 "사람들과의 교류"라는 느낌이 더 컸기 때문이다.

 

3. "사람과의 교류"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텐데, 몇 가지만 꼽자면
• 2019년 5월이 마지막 오프라인 학회였으니, 햇수로 따지먄 4년만에 경험한 오프라인 학회였기에 그랬을테고,
• 그 3년 동안 감사하게도 나에게 -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 안팎으로 많은 일에 참여할 기회들이 왔고,
• 그렇게 한양대 안과 밖에서 알게된 분들을 통해서 (즉, 한두다리 건너) 교류하게 된 분들이 생겨났고,
•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이 커가며 후배님들도 늘어났기 때문이지 싶다.

 

4. 기록을 보니 작년 학술대회 후에는 또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다른 학교의) 연구들이 갑자기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순간 임포스터 신드롬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내가,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이 크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중략) 실제로 다른 의과대학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자의든 타의든 COVID-19으로 많은 의과대학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고,"

 

5. 어쩐 일인지 올해는 이런 느낌은 없었다. 아직 한양의대 의학교육의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학교의 시도를 조금은 덜 감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감정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고 해야할까. 아마도 좋은 동료와 대학원생, 직원분들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이라도 뭔가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였을까? 작년과 달리 새로운 시도에 대한 마냥 부러운 마음도, 다소 식상해 보이는 시도를 폄하하는 마음도 없었다. 

 

6. 각 학교에게는 각자의 Boundary가 있다. 그리고 그 "경계조건" 안에서 교육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려 시도한다. 경계조건은 규모일수도, 지역일수도, 인력일수도, 학생일수도, 역사일수도, 혹은 그 밖의 어떤 것일수도 있다. 경계조건마저 바꿔낼 수 있다면 대단하겠지만, 글쎄, 웬만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사실 애초에 경계조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보이는 경우도 눈에 띈다.


7. 지난 2년여간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의 경계조건을 조금씩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계속(또는 더) 잘 해야 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협업을 추구해서 다른 전문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 한양의대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할 것. 5에서 쓴 '감정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이유가 아닐까 한다.

 

8. 언제부턴가 학회에서 모르는 분들께서 나를 만나면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하신다. 애초에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블로그는 아닌데 어쨌거나 한 10년을 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이 인식해주는) 내 정체성이 된 것 같다. 블로그에 소홀해지려는 마음이 들 때가 있고 실제로 종종 소홀한 기간도 있는데, 그래서는 안되는건가 싶다. 과한 책임감일까.

 

9. 경계조건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갇히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단, 새장을 부수고 나가려 하거나 새장의 모양을 바꾸려 하거나 새장의 크기를 늘리려 하기보다는, 새장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방법을 익혀야 할지도 모르겠다.

 

10. 개인이나 조직과 마찬가지로 각 나라에도 각자의 경계조건이 있다. 굳이 경계조건 따위의 단어를 쓰지 않고 그냥 맥락이라든가 환경이라고 해도 될것 같다. 우리나라(의학교육)에도 당연히 있을텐데, 학회에 오면 그것을 넓히려는(부수려는?) 시도도 보인다.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잘 될까..?

 

11. 올해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학습격차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어쩌다보니 몇 번 연속해서 학회에서 이런 발표 기회를 얻고 있는데, 이 역시 참 감사한 일이다. 연말에 의학교육평가컨퍼런스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의학교육 관련 학회는 KMEC가 핵심이니 늘 부담되는 발표이고, 그만큼 연습도 신경도 많이 쓰는데, 하고나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매번이다. 무엇보다 이번엔 패러랠로 열린 다른 세션이 대단해서 청중이 아주 많진 않았지만, 그래서 일부러 세션을 찾아 들으러 와주신 분들께 더욱 감사하다. 

 

12. 방구석에서 학회를 듣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들으니 듣다가 딴 생각을 하더라도, 뭔가 생산적인(?) 딴 생각, 혹은 나의 상황에 접목할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여기저기 적어둔 메모를 앞으로 잘 실천으로 옮겨보자!

 

 

 

1
작년 의학교육학회에서 발표의 마무리 단계에서 던진 질문이다.
"우리의 소리는 어디있을까요?"

 

2
"손흥민이 영국을 떠난 놀라운 이유"라는 제목의 한 유튜브 영상에는 "영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을텐데 왜 한국으로 귀국을 했을까? 라는 의문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피셜한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보다는 현재로서 가장 합리적인 추측과 제 영국생활 당시 경험을 비추어 리뷰해 보았습니다." 라는 설명과 함께, 영국에서 유학경험이 있는 구독자 80만의 유튜버의 영국의료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 있다. 이 유튜버의 경험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다른 유튜브 영상에서도 영국의료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3
이런 영상을 접하고나면, 결국 내 고민은, 의학교육 분야의 주요 저널에 실리는 연구의 상당부분이 영국(+미국+네덜란드+호주)에서 발표된 것인데, 이 연구결과가 얼마나 나에게 적용가능하냐는 것이다. 의료환경이 이렇게나 다른데.
저 "근거"는 우리 상황에 맞는 근거일까?

 

4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은 비단 예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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