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부터였나, KMEC라는 학회의 공식 영어 약자가 쓰이는 듯 하다. 그 전에도 썼던가? 아무튼 그래서 올해는 KMEC2022. 아시아 태평양 학술대회인 APMEC라든가 유럽 학술대회인 AMEE등에 대응하는 이름이 생겨서 좋다. 만약 트위터였다면 #KMEC2022 와 같이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들이 올라왔을텐데. (혹시나 찾아봤지만 검색되는건 없었다)
2. 작년 학술대회 후에 남긴 포스팅의 시작은 이랬다
"최근 1~2년간 나에게 학회는 자극적이기보다는 식상한 무엇이었다. 7~8년 전, 의학교육을 막 시작한 초반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3~4년 전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조금씩 혹은 빠르게 분야를 파악하다보니, 학회의 내용들이 '들어 본' '읽어 본' 주제가 반복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번 학회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그리고 예전에 왜 내가 저렇게 느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학회란 오로지 "내용(기조강연, 구연발표, 포스터 등)과의 교류" 였다면, 이번에는 의학교육학계/공동체의 "사람들과의 교류"라는 느낌이 더 컸기 때문이다.
3. "사람과의 교류"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텐데, 몇 가지만 꼽자면
• 2019년 5월이 마지막 오프라인 학회였으니, 햇수로 따지먄 4년만에 경험한 오프라인 학회였기에 그랬을테고,
• 그 3년 동안 감사하게도 나에게 -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 안팎으로 많은 일에 참여할 기회들이 왔고,
• 그렇게 한양대 안과 밖에서 알게된 분들을 통해서 (즉, 한두다리 건너) 교류하게 된 분들이 생겨났고,
•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이 커가며 후배님들도 늘어났기 때문이지 싶다.
4. 기록을 보니 작년 학술대회 후에는 또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다른 학교의) 연구들이 갑자기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순간 임포스터 신드롬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내가,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이 크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중략) 실제로 다른 의과대학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자의든 타의든 COVID-19으로 많은 의과대학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고,"
5. 어쩐 일인지 올해는 이런 느낌은 없었다. 아직 한양의대 의학교육의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학교의 시도를 조금은 덜 감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감정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고 해야할까. 아마도 좋은 동료와 대학원생, 직원분들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이라도 뭔가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였을까? 작년과 달리 새로운 시도에 대한 마냥 부러운 마음도, 다소 식상해 보이는 시도를 폄하하는 마음도 없었다.
6. 각 학교에게는 각자의 Boundary가 있다. 그리고 그 "경계조건" 안에서 교육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려 시도한다. 경계조건은 규모일수도, 지역일수도, 인력일수도, 학생일수도, 역사일수도, 혹은 그 밖의 어떤 것일수도 있다. 경계조건마저 바꿔낼 수 있다면 대단하겠지만, 글쎄, 웬만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사실 애초에 경계조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보이는 경우도 눈에 띈다.
7. 지난 2년여간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의 경계조건을 조금씩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계속(또는 더) 잘 해야 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협업을 추구해서 다른 전문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 한양의대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할 것. 5에서 쓴 '감정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이유가 아닐까 한다.
8. 언제부턴가 학회에서 모르는 분들께서 나를 만나면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하신다. 애초에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블로그는 아닌데 어쨌거나 한 10년을 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이 인식해주는) 내 정체성이 된 것 같다. 블로그에 소홀해지려는 마음이 들 때가 있고 실제로 종종 소홀한 기간도 있는데, 그래서는 안되는건가 싶다. 과한 책임감일까.
9. 경계조건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갇히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단, 새장을 부수고 나가려 하거나 새장의 모양을 바꾸려 하거나 새장의 크기를 늘리려 하기보다는, 새장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방법을 익혀야 할지도 모르겠다.
10. 개인이나 조직과 마찬가지로 각 나라에도 각자의 경계조건이 있다. 굳이 경계조건 따위의 단어를 쓰지 않고 그냥 맥락이라든가 환경이라고 해도 될것 같다. 우리나라(의학교육)에도 당연히 있을텐데, 학회에 오면 그것을 넓히려는(부수려는?) 시도도 보인다.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잘 될까..?
11. 올해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학습격차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어쩌다보니 몇 번 연속해서 학회에서 이런 발표 기회를 얻고 있는데, 이 역시 참 감사한 일이다. 연말에 의학교육평가컨퍼런스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의학교육 관련 학회는 KMEC가 핵심이니 늘 부담되는 발표이고, 그만큼 연습도 신경도 많이 쓰는데, 하고나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매번이다. 무엇보다 이번엔 패러랠로 열린 다른 세션이 대단해서 청중이 아주 많진 않았지만, 그래서 일부러 세션을 찾아 들으러 와주신 분들께 더욱 감사하다.
12. 방구석에서 학회를 듣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들으니 듣다가 딴 생각을 하더라도, 뭔가 생산적인(?) 딴 생각, 혹은 나의 상황에 접목할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여기저기 적어둔 메모를 앞으로 잘 실천으로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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