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사태 4

국시를 보게 해달라고가 아니라 필요 없다고 해야한다 (2020년 9월 25일의 기록)

0. 시작에 앞서 시험감독을 한참 하면서, 문제를 푸는 학생들을 보자면 뭔가 정신이 멍해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도 없으니 마음대로 써본다. 1. 의사국시를 꼭 봐야하는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할 것이다. 이 질문은 행정적으로, 법적으로 면허 발급을 위한 의사국가시험(이하 국시)이 필요한 것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해도 면허가 없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니 법적으로는 당연히 필요하다. 2. 그게 아니라,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의과대학생들이 졸업시에 갖춰야 하는 능력의 확인”이라는 관점에서 의사국가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냐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환자 안전과 국민 보건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국시라는 절차가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느냐는 질..

의사국가시험에 관한 본과 4학년 공동성명서를 보고(2020년 9월 24일의 기록)

오늘 오후 의사 국가시험에 관한 본과 4학년 대표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후 포털 기사와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성명서에 대한 비난과 비꼼이 가득하다. 여론은 성명서의 워딩과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고, '여전히 본인들이 특권층이라고 생각한다'며 본과 4학년 학생들에 대한 비난이 난무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본4 대표단이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성명서의 가장 중요한 첫 문장을 잘 못 독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동 성명서의 첫 문장은 "의사 국가시험에 대한 응시 의사를 표명합니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누구에게" 표명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명서의 일반적 성격을 고려하면 당연히 "정부에게" 또는 "국민에게" 표명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가 이렇게 생..

타협 그 후(2020년 9월 5일의 기록)

의협과 정부, 여당은 타협을 했지만, 대전협(대한전공의협의회) 파업과 의대협(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동맹휴학과 국시거부(국시 실기시험 응시 거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대전협은 내가 뭐라 말을 보테기에는 정보와 경험도 부족하고, 그럴 입장도 아니다. 다만 동맹휴학에 대해서는 그나마 의과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보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조금 적어본다. (국시거부와 동맹휴학을 반대하려는 것도,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뭐 나 따위가 그럴 영향력도 인지도도 없고.) 1. Background: 타이밍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고약한 ‘타이밍’ 때문이다. 동맹휴학과 국시거부를 엄밀히 구분하면 동맹휴학은 개별 의과대학과 관련된 문제이고, 국시거부는 국시원과 관련된 문제..

바른 마음과 한국의 의사상: 현재의 교착상태를 해석하는 렌즈(2020년 8월 20일의 기록)

1. 나의 사고틀에 큰 영향을 준 책 중에 하나는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이란 책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데, 차라리 “The righteous mind”라는 영문 제목을 보면 조금 더 느낌이 오고, 이 책의 부제인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서 이르면 제법 명확해진다. 저자는 어떤 행동이나 사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의 원칙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한다. ▷제1원칙: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제2원칙: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3원칙: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2. 이 세 가지 원칙 중, 저자는 제2 원칙을 ‘미각’에 비유한다. ‘바른 마음’, 즉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