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밖에 아무거나

국시를 보게 해달라고가 아니라 필요 없다고 해야한다 (2020년 9월 25일의 기록)

Meded. 2022. 10. 7. 07:22

0. 시작에 앞서
시험감독을 한참 하면서, 문제를 푸는 학생들을 보자면 뭔가 정신이 멍해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도 없으니 마음대로 써본다. 

 

1.
의사국시를 꼭 봐야하는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할 것이다. 이 질문은 행정적으로, 법적으로 면허 발급을 위한 의사국가시험(이하 국시)이 필요한 것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해도 면허가 없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니 법적으로는 당연히 필요하다. 

 

2.
그게 아니라,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의과대학생들이 졸업시에 갖춰야 하는 능력의 확인”이라는 관점에서 의사국가시험이 반드시 필요하냐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환자 안전과 국민 보건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국시라는 절차가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또 다르게 말하면, 국시를 보고 안 보고가, 또는 국시를 통과하고 하지 않고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게 될 “인턴”이라는 역할을 더욱 잘 하는데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한 발 더 나아가자면, 만약 국시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이 “국시” 때문인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국시”만이 유일무이한 방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3.
물론 학생들은 실기와 필기로 이뤄진 의사국가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한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지식과 술기의 함양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유의미한 향상을, 또는 의사로서, 인턴으로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확인을 반드시 국시로 해야하는가? 

 

4. 
만약 한 의과대학이 적절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자(=의과대학이 받아야 하는 의학교육 평가인증의 기준을 충족하였다). 그리고 해당 의과대학의 학생이 그 교육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마쳤다고 하자. 그렇자면 그 학생이 “국시”라는 것을 통과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a)실질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면, 교육이나 인증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b)실질적으로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면허” 또는 “국시”의 의의는 적어도 “실력”에 기여하는 것에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모든 국가에 의사면허시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5.
다시 돌아가서, 의사국시는 왜 존재하는가?

각 학교에서는 자교 의과대학생에 대해서, 졸업 시에 한 명의 의사로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각 수련병원에서는 우리 병원에 지원한 의과대학 졸업생이 인턴으로 충분한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6.
다시 한 번, 의사국시는 왜 존재하는가?
역설적이지만, (행정적, 법적으로가 아니라) 평가로서 의사국시의 존재이유를 생각한다면, 본과 4학년 학생들을 ‘지지’하는 방법은 국시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그깟 의사국시 없이도, 우리 학생들은 이미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주면 된다. 같은 이유로, 만약 그렇지 못 한 학생이 있다면 의사국시를 통과할지 여부와 무관하게 졸업시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면 된다. 어쩌면 이게 본과 4학년 학생들을 ‘지지’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