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온라인 독서토론 진행 (2020년 9월 23일의 기록)

Meded. 2022. 10. 7. 07:19

이번 학기 소규모 독서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는, 의예과 1학년 과목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학기 선택한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 과목은 작년에 참여해서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비록 온라인이지만 올해도 대동소이하게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Zoom 회의실을 열었다. 학생들에게 미리 회의실 링크를 주었고, 11시 시작시간에 맞추어 속속 접속하기 시작했다. 

 

1. 
처음엔 오프라인 토론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될거라 생각했다. Ground rule을 정하고, 사회자와 서기를 정하고, 주제를 정해서, 10명이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토론하면 될 것 같았다. 화면을 공유하거나 화이트보드 기능을 쓰면 잘 될 것 같았다.  

 

2. 
첫 시간에는, 새로 모인 그룹이니까,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했다. 그 다음 1주차 사회자를 중심으로 Ground rule을 정하기 위한 토론을 하였다. 이어서 각자 책에서 인상깊었던 문장을 공유하고, 혹시라도 아직 읽지 않은 학생을 위해서 책의 주요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한 뒤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내 아무래도 뭔가 편안하지 않은 느낌.  

 

3. 
첫 주 수업이 끝나고 고민했다.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토론의 형식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내가 이 수업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어떻게 다른가? Zoom이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  

 

4.
나는 진심으로, 1학기를(그리고 지금까지도) 온전히 온라인으로만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서로 친해졌으면 했다. 토론에서 다룰 책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는 것도 좋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도 해보면 좋겠지만, 그래봐야 그게 얼마나 갈까. 무엇보다 지금 이 학생들에게 오래 남을 것은,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것은 서로의 이름을, 얼굴을, 목소리를 익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5. 
고정관념처럼 뿌리박힌 '수업에서 학생은 토론을 해야한다', '교수는 모든 토론상황을 지켜보고, 평가하겠다' 생각을 내려놓았다. 대신 '서로 친해지기'라는 목표를 새롭게 정했다. '친해지세요'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친해지기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 얼굴과 이름은 익히자고 했다.  

 

6. 
화면에 다른 친구들의 얼굴이 더 크게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편안한 대화를 위해서 11명을 더 작게 나누었다. 소회의실 기능으로 무작위로 3~4명씩 나누고 모이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3개의 소회의실로 나누어지니, 내가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학생은 3~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7~8명이 그 순간에 다른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잘 할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오히려 교수가 없기 때문에 더 편하게 대화했을 것이다.  

 

7. 
이 수업의 '공식적' 목표 -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고 - 는 작년만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두 번째 주를 끝내고 확실히 느껴진 분위기는 학생들이 이제는 서로를 조금 덜 어색해한다는 것이었다. 수업 말미에 '질문 있어요?'라고 물으니 한 학생이 '서로 친해지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다음 수업때는 한 세션 쯤은 같이 놀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 다른 학생들이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짓기에,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대신 방법만 미리 스스로 정해보라고. 다음 수업에서, 과연 우리는 무얼 하고 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