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의예과 학생들의 '자체휴강'(2017년 9월 29일의 기록)

Meded. 2022. 10. 7. 07:27

2. 
오늘 조교선생님들에게 들은 의예과생들의 이야기가 머리속을 복잡하게 한다. 사연인즉슨, 일군의 학생들이 일주일정도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이번주라는 데 있다. 당연히 이번주는 학기중이며, 모든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자 했으나, 어디 그게 숨겨지나...여튼 여행을 마치기 전에 들통나고 말았다.

 

3. 
대학생이 수업을 임의로 빠지는 것, 일명 '자체휴강'은 드문 일이 아니다. 놀고 싶은 마음에 고의적으로든, 늦잠을 자서 고의는 아니었든 대학생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자체휴강'을 한다. 그렇다면, 반나절, 한나절, 하루치 수업을 빠지는 것보다 이 사건이 더 '부적절하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떠오른 이 '부적절함'의 이유는 단숨에 파악되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을 결석을 하든 그건 학생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알고 갔고(세번 결석시 F), 숨겼으나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고, 자체휴강은 빈번한 일이며, 해외여행이 무슨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일도 아니다. 

 

4. 
조너던 하이트는 <바른 마음>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무언가의 옳고 그름' 또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기준으로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a. 배려(e.g.아이에게 해를 입히는 것), 
b. 공평성(e.g.누군가 손실을 입은 데에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
c. 충성심(e.g.외부인을 대상으로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것), 
d. 권위(e.g.아버지에게 결례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 
e. 고귀함(e.g.천박한 행동이나 혐오감 드는 행동을 하는 것)

 

이것을 근거로 할 때, 아마 나의 불편한 마음은 
b. 공평성(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댓가(?)로 부당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
d. 권위(교수님에게 결례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
....의 두 가지가 주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고.

 

5.
아직은 학생들을 직접 만날 기회나 여건이나 신분이 아니라서 내가 어떻게 개입할 여지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다. 
우선, 학기중에 일주일간 수업을 결석하고 일본여행을 다녀온 것 자체로 비난하고싶지는 않다. 사실 내가 나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지나치게 성실하게 다녔다는 것이기도 하다 (성실하다고 해서 성적이 좋았던건 또 아니고...)

 

하지만, 
 - 애초에 떳떳하게 떠난 여행이 아니라면,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 개인적인 또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가고싶은데 함께 가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해보고,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 갑작스런 다수 학생의 결석으로 당황하셨을 교수님들에게 최소한의 죄송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숨겼다가 나중에 들키지 말고, 가기 전에 솔직하게,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가기 전엔 늦었으니, 적어도 다녀온 다음이라도.
- 이왕 간거 많은 것을 배우고 오면 좋겠다. 그리고 일본 여행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면 좋겠다. 
- 내년에 후배들이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개인적으로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조금 더 나은 문화를 물려줬으면 좋겠다. 

 

요약하자면,
이 경험을 중요한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