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강의라는 삼선슬리퍼(2018년 12월 8일의 기록)

Meded. 2022. 12. 11. 07:14

1. 나는 신발을 잘 사지 않는다. 그래서 신발을 사는 것에 능숙하지 않아 살 때마다 자주 어려움을 겪는다. 보기에 맘에 들어서 샀는데 막상 신어보면 발가락, 뒷꿈치, 발볼, 발등 어디 한두 군데는 꼭 불편한 곳이 눈에 띈다. 문제는 구매 후 직접 생활속에서 신어보기 전 까지는 매장에서 잠깐 신어본 것으로는 그런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2. 그런데 불편했던 신발도 한 번 두 번 신다보면 어느새 발이 신발에 적응을 한다. 신발도 내 발에 맞춰 늘어나고나 조금씩 헐게 된다. 물론 어떻게 해도 계속 물집이 생길때면 뒷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기도 하지만.

 

3. 어쩌면 학생 입장에서 새로운 방식의 과목은 새로운 기성품 신발과 같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참신함에 기대를 갖고 마주하지만 막상 진행되면 귀찮은 것도 많다. 결국 과목(신발)과 학생(발)은 서로 불편하다. 물론, 기성품 신발이 그렇듯, 어떤 학생에게는 처음부터 잘 맞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학생에게는 끝까지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과목을 설계한 교수로서 나는 그 접촉과 마찰, 적당히 늘어나서 편안해진 부분과 여전히 뻣뻣해서 발을 아프게 하는 부분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구매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끔은 내가 직접 신어보며 A/S를 해줘야 한다.

 

4. 물론 삼선슬리퍼(e.g. 강의)처럼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익숙하고 편안한 신발도 있다. 문제는 삼선 슬리퍼만 신고 살 수는 없단 점이다. 구두도, 러닝화도, 로퍼도 필요하다. 사실 삼선슬리퍼도 비싼게 있고 싼게 있고, 문구점에서 산 것보다 오리지널 아XX스 삼선슬리퍼가 더 튼튼하고 편하다. 

 

5. 비유를 이어가자면, 신발도 수명을 다 해서 버릴 때가 있다. 또는 유행이 너무 지나서 버리기도 한다. 물론 오래 신은 신발일수록 익숙하고 내 발에 잘 맞는다. 하지만 오래된 신발은 낡아서든 혹은 낡지 않았어도, 내가 변하고, 유행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신발장 속 자신의 자리를 새 신발에게 내어주게 된다. 

 

6. 자,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또 어떤 신발을 신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