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53

한양의대 학생들을 위한 15가지 학습조언(2023년 3월 24일의 기록)

의과대학생들 중 일부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유급을 합니다. 어떤 학생은 학업 외적인 이유(건강, 가정, 심리 등)로 유급을 하지만, 일부 학생은 정말로 학업 그 자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이 고등학교때 공부로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학생들이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신기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학생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면, 적절한 학습 조언을 준다면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간간히, 그리고 꾸준히 학생들에게 학업 조언을 주면서 해줬던 이야기를 조금 모아보았습니다. 정리하다보니 한편으로는 괜한 아쉬움과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가진 근본적인 특성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핑계일 수도 있지만, 어떤 내용은 ‘생존(=진급)’만을 위한 ..

의예과 과목 오리엔테이션(2023년 3월 9일의 기록)

1. 의예과 신입생은 어떤 커리어를 그리고 있을까? 2021년부터 이 과목 첫 수업에 '우리들'이라는 제목의 설문을 하고 있다. 일단은 내가 궁금한 것도 있지만, 못지 않게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이 집단(의예과 1학년 신입생)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싶어서이다. 매년 일부 문항을 바꾸거나 추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올해는 "지금 가장 끌리는 진로는 다음 중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넣어보았다. ▷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는 의사(예: 대학병원 교수) : 50% ▷ 개원가에서 진료하는 의사(예: 개원의, 봉직의): 33% ▷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의사(예: 기초의학자): 8.5% ▷ 기타 진로(스타트업, 제약회사, 의학전문기자 등): 8.5% 교육으로 사람을 바꿔놓겠다는 생각은 ..

2022학년도 2학기 한결 워크숍 (2023년 2월 11일의 기록)

이번 학기 한결 워크숍도 무사히 마무리. 2020년 여름부터 매 학기 해왔으니 어느덧 여섯 번째. "여러분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어달리기의 주자로서 여러분들이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바톤은 교육과정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여러분들이 지난 학기 들고 뛰었던, 앞 주자에게 넘겨받은 바톤은 선배들의 의견이 반영된 바톤입니다. 진급한 여러분은 그 무거운 바톤을 다시 들고 뛸 일이 없겠지만, 이어서 뛸 후배들이 조금은 더 수월하고, 더 빠르고,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예2부터 본4까지, 방금 레이스를 마친 주자와 이제 이어받아 달릴 주자, 그리고 일년 뒤의 예비 주자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느끼며 즐..

U-포트폴리오 시스템을 처음 접하고 (2023년 1월 19일의 기록)

파트1 스타트업에 관한 영상이나 글을 읽으면서 Pain point 라는 표현을 접하게 되었다. 스타트업들은 시장과 사용자의 pain point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개발한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어느 시점에서부터 전국 의대로 퍼져나간 e-portfolio도 임상실습에서 더 나은 교육이 이뤄지는데 장애요인이 되는 어떤 pain point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개발 초에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정의되었던 "의과대학 임상실습 교육의 pain point"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나름의 의견은 있지만, 섣불리 여기에 대해 답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입장과 관점에 따라 무수히 많고, 무수히 다양할 것이다. 결국 궁금한건 "포트폴리오 시스..

의예과와 F학점: 죄송하다는 말은 아직 (2023년 1월 6일의 기록)

작년 말, 한 의예과 1학년 학생에게 F를 주었다. 당황한 학생은 나와 다른 교수님들께 성적을 문의하고, 어떻게 F를 면할 방법이 없는지 제법 여러 차례 연락해왔다. 의예과 1학년의 F가 흔하지 않기에, 의예과장님, 학생의 지도교수님, 학생을 안타깝게 여긴 다른 수업참여교수님 등등 여러 분으로부터의 연락도 받았다. (물론 그대로 F가 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학생은 "특시"라는 한양대에 있는 시스템을 통해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특시는 평균평점이 2.0 이상이면서, 한 과목에서만 F인 경우에 부여되는 재시 기회이다. 학생에게 특시 과제로 이번 1학년을 돌아보는 글을 써오라고 하고, 이 내용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 상담을 했다. 상담 말미에 학생은 "이렇게 시간을 많이 뺏고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

구글에 정보저장을 외주하고, ChatGPT에 정보활용을 외주하게 된 수업과 평가의 미래는..?

1. 어제 의예과 성적검토회의가 있었다. 저조한 출석이나 좋지 못한 수업 태도, 부정 출결에 부정행위까지 태도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이에 더하여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성취도 저하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무엇보다 최근 추이를 비교한 일부 과목에 따르면 오히려 작년, 제작년보다도 성적이 낮아졌다. 2. 의예과라는 본질적 특성이나 교육과정이 크게 변한게 없는데 성적이 이렇다는 것은 몇 가지 다른 원인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코로나를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탓일까? 억눌렸던 기간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전공의 선발에 영향이 없다는 사실을 좀 더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분위기가 강해졌을까? 비가시적인 장기간의 인내와 성실보다 가시적인 단기적인 이득과 보상이 중요시되어가는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일까? 3. 아무..

우수 학습동아리 선정(2018년 12월 13일의 기록)

이번 학기 초에 한 의예과 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친구들과 함께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학습동아리 프로그램에 신청하려고 하는데, 지도교수를 맡아줄 수 있으신지'였다. 사실 '학습동아리'라는 프로그램이 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뭐가 되었든간에 "예과생"들이 "학교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 기특해서 기꺼이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엊그제 한 학기가 거의 마무리되어갈 즈음, 이 학생들이 프로그램에서 선정하는 "우수동아리"에 포함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교수학습센터에 문의해서 알아보니, '학생들이 굉장히 열심히했다'며, 총 30개 참가팀(학습동아리) 중에서 5개 동아리를 선정해서 우수동아리로 시상한다고 했다. 사실 거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거..

어떤 의사와 어떤 교수(2022년 11월 17일의 기록)

1. 어떤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매달 X라는 질병을 가진 환자 100명을 본다. 그런데 이 의사의 고용계약에는 진료 성과에 대한 특이한 조건이 하나 붙어있다. 바로 "모든 100명의 환자가 다 나으면 안 된다"이다. 심지어는 구체적으로 몇 명만 낫게 해야하는지의 비율도 정해져 있다. 다 잘 나은 환자는 반드시 100명중에 40명 이내여야 하고, 30명은 적당히 나아야 하며, 30명은 좀 계속 아파야 한다. 오히려 몇 명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건 (적어도 이 의사에게는) 괜찮다. 그래서 이 의사는 의도적으로 30명쯤 아픈 환자가 유지되도록 한다. 또한 다 나은 사람이 40명이 넘지 않도록 매우 신경을 쓴다. 40명이 넘으면 가끔은 검사 수치를 조금 손대기도 한다. 당연히 나쁜쪽으로. 만약 최선의 진료를 ..

의예과 학생의 스트레스 (2022년 11월 11일의 기록)

이번 주 의예과 1학년 수업시간에 "사회재 적응 평정척도"라는 일종의 스트레스 척도에 대해서 언급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 표에 있는 대부분의 항목은 의예과 학생으로서는 공감도 안 되고, 도저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학생들로부터 일단 의예과 학생이 겪을 만한 항목을 수합하고, 즉석에서 그 항목으로 설문을 만들어 그에 대한 응답을 모았다. 그렇게 조사한 의예과 학생의 스트레스 요인과 각 요인의 스트레스 정도에 관한 결과를 수업 중에 공유해보았다. 학생들이 꼽은 항목에는 "1교시 등교의 피곤함"이라든가 "너무 많은 일정" 같이 꼰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것도 많았지만 어떤 것은 살짝 인상적이었다. 특히 "무의미한 하루" "삶의 방향성" "가치관 확립" "목표의 부재"와..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2022년 10월 6일의 기록)

2022년 이종욱펠로우십 보건인력교육전문가과정 영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어로 수업을 하거나 듣는건 실로 괴로운 일이다. 이럴 때는 적절한 시점에, 편하게 모국어로 진행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게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우는 사람에게도 좋다. 한쪽은 라오어 한쪽은 베트남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나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지만, 모두가 참여하고 있음이 확실한 이런 순간에야말로 실제로 배움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