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학생을 가르칩니다. 53

독서토론수업 돌아보기 (2018년 3월 23일의 기록)

0. 유튜브에서 본 어느 강사는 독서토론의 원칙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1) 책을 읽은 사람만 참여한다. (2) 책의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3) "Talking stick(발언권 막대)"을 활용하며, 이것의 용도는 이 stick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발언권이 있다는 것이다. 미드 Breaking bad에서 유사하게 가족 간 대화에서 "talking pillow(발언권 쿠션)"을 쓰는걸 본 적이 있는데, 같은 개념이다. 1. 이 중에 실제로 오늘 독서토론 수업에서 활용할 스 있었던 것은 3번 원칙인 발언권 막대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학생을 수업에 안 들어오게 할 수도 없고(1번 원칙), 과목 자체가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보다는 사고과정이 더 중..

의과대학 신입생 상담을 위한 질문(2018년 3월 14일의 기록)

신입생을 포함하여 총 9명의 학생이 지도학생으로 배정되었다. 우선 개인별로 만나볼 계획을 잡고 있는데, 그 때 물어볼만한 질문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입학 전]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학업, 교우, 일탈) •학업에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대전 외에 다른 지역에 살아본 경험이 있나요? •(형제자매가 있다면) 관계는 어떠한가요? •왜, 어떻게 의대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함께 지원한 다른 대학/학교가 있나요?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어느 대학/과에 갔나요? •합격 후 방학기간에는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과거에)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것이 있나요? •가장 인상깊었던(자랑할만 한, 특이한, 최악의 등등) 학창 시절의 경험은 무엇인가요? •만약, 의대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어떤 진..

수업계획서(X), 수업설명서(O), 수업계약서(O)

*2019년 2월 15일의 기록 1. 작년부터 수업을 맡으며 잘 하고 있는 것이 조금 있고, 못 하고 있는 것은 매우 많지만, 그래도 모든 과목에서 일관되게 지키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첫 시간에 한 시간 이상을 할애해서 과목 오리엔테이션 을 하는 것이다.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말은 그 만큼 과목이 '직관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이러한 상황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 '아이폰 vs DSLR'의 비유를 사용하곤 한다. 아이폰의 사용법은 매우 직관적이고, 비교적 손쉽게 좋은 사진을 찍어낼 수 있다. 주로 [강의와 시험]으로 구성된 과목은 그래서 아이폰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 과목에서 무엇을 해야 좋은 결과물(=사진=성적)을 얻을 수 있는지 매우 직관적..

객관식은 정말 객관적인가? 주관식은 정말 주관적인가?

1. 매우 흔하게 쓰는 말 중에 '#객관식' 시험(문항)과 '#주관식' 시험(문항)이라는 말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건 붕어빵의 붕어와 같다. 객관식엔 "객관"이 없고, 주관식엔 "주관"이 없다. 더 심하게는 그 반대다. 2. 객관식 시험이 구성되는데 있어서 사실 중요한 것은 객관(客觀)이 아니라 주관(主觀)이다. 이 주관은 수업에서 가르친 여러 내용중에 어떤 내용을 평가 문항으로 포함시킬지에 대한 출제자의 주관(성)이다. 즉, "평가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출제자의 주관이 평가문항의 내용과 범위와 난이도를 결정한다. 다만, 응시자는 여러 보기 중 답안을 선택해야 하기에(Multiple-choice) 사전에 결정된 정/오답에 따라 맞고 틀림을 확실히 알 수 있을 뿐이다. 3. 반대로 주관식 시험에서 ..

전면 대면수업을 앞두고

한양의대는 지난 2년간 예1부터 본2까지 거의 모든 강의식 수업을 녹화강의로 운영해왔다. 한양대 본교의 지침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양대는 2020년에 초에는 실시간이든 녹화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것에서, 2021년 후반에 이르며 점진적으로 대면 또는 실시간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되, 녹화 수업은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꿔왔다. 다만 의과대학 과목들은 대부분 수강생이 100명 이상인 강의였기에, 큰 규모로 인하여 예외를 인정받아 계속 녹화 수업을 지속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한양대 본교는 2022년 1학기부터 규모와 무관하게 칸막이 설치 후 대면수업을 지침으로 정하였다. 앞으로 지침이 바뀔 가능성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그리고 다음주 부터 본과 2학년 학생들은 (모든 단과..

강의평가

대학에서 하는 수업의 장점은 매 학기 강의평가를 통해 학습자의 반응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면, 외부 워크숍에 초청받아 강의를 하거나, 학술대회나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때는 '내가 잘 한게 맞는지', '청중들은 이걸 어떻게 느꼈는지'를 알 길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나마 대면으로 했을 때는 청중의 표정과 반응에서라도 짐작해봤는데,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온라인)으로 할 때는 그조차도 어려워졌다. 물론 위에서 '장점'이라고 한 것은 기본적으로 반응이 좋았을 때 이야기고, 반응이 나쁘면 - 악플(?)을 받으면 - 사람인지라 기분이 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악플에도 일말의 진실은 담겨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약간의 맷집도 생겨서, 그냥 '이 학생은 이랬나보네'..

교수자로서의 나, 그리고 나의 과목 (2020년 12월 31일의 기록)

1. 내년이면 의과대학에서 교수라고 일한 것이 4년째고, 의학교육을 시작한 것은 9년째가 된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르는 것 천지인데, 옆에서 보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더 이상 뭘 ‘모른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났다. 2. 지난 3년간 맡았던 과목을 정리해봤다. 정리하면서 새삼 느꼈는데, 확실히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다. 물론 명확한 목표와 근거는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소통한다는 것은 어려운, 아니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듯 하다. 3. 학생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당연히 많은 과제에 대한 부담이다. 이 부담은 학생의 부담 외에도, 나 자신의 부담, 과목에 함께 참여해주시는 다른 교수님들에게 가해지는 부담, 심지어 과목 운영을 도와주는 ..

시스템, 재교육, 상대평가

1 "시스템을 가장 취약한 사람(the most vulnerable)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재설계한다면, 그 분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 하지만 반대방향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2 "많은 경우, 학업위기 학생은 일단 유급을 당하고, 개입은 사후적으로 시작된다. 이런 방식을 '결핍-반응(deficit-reactive) 접근'이라고 한다. 유급이라는 '결핍'을 채워주고자, 다음 번엔 통과할 수 있도록 시험을 보고, 재시험을 본다. 하지만 이러한 개입은 학생에게 낙인이 될 수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유급으로 이어진 진짜 핵심적인 원인은 놓친다는 것이다. 또한 정작 의과대학생이 한 명의 의사로 성장해나가는 데 필요한 서포트는 제공되지 못하고, 결국 재차, 삼차 유급을 겪곤 한다. ..

우리는 학업위기에 놓인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약 두달 전, 한 학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요지는 학기가 절반 정도 지난 지금까지 몇 차례의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너무나도 저조하여 심각하게 유급이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며, '마음은 간절한데 단순히 노력을 더 하는걸로는 해결이 안 되어'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몇 차례 유급을 당한 탓에, 이 학생에게 이번 학기는 진급을 못 할 경우 제적이 되는 막다른 골목과 같았다. 메일을 받고 바로 연락을 해서 학생을 만났다. 이틀 뒤가 시험이라고 했다.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들어보니 당장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문제점을 파악해서, 몇 가지 조언을 줬다. 현실적으로 이번 시험에서 큰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다행히 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