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방법론의 철학적 뿌리
서론
역사적으로 서구의 사회 연구 전통은 물리 과학에서 확립된 방법을 사회 탐구의 모델로 삼아왔습니다. 최초의 사회 연구자 중 한 명인 오귀스트 콩트(1798–1857)는 진정한 지식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신학적 기반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관찰 가능한 사실과 관찰된 현상 간의 관계에만 의존함으로써 과학적 탐구는 경험적 사건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Hawkesworth, 2007, p. 472).
콩트는 연구 방법론에 대한 철학적 지향인 실증주의(positivism)의 창시자로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실증주의는 물리 과학의 자연 법칙에 상응하는 사회적 삶의 법칙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따라서 이는 자연 과학의 동일한 존재론적 전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즉, 세계는 객관적인 실체로 존재하며, 원칙적으로는 완전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연구자의 과제는 먼저 현실을 정확히 묘사한 후 결과를 분석하는 것입니다(Della Porta & Keating, 2008). 이런 의미에서 실증주의(및 신실증주의)는 꿈을 꾸거나 속지 않는 한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일상 생활의 상식적 존재론을 반영합니다.
인식론적 실재론(epistemological realism)은 “사회 세계를 이제는 국가의 법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18세기와 19세기의 과학 및 정치의 혁명적 진보주의의 한 순간”이었습니다(Somers & Gibson, 1996, p. 47). 실증주의적 연구는 결정성을 추구하며, 이를 정확한 의미와 실행 가능한 지표를 개발하려는 환원주의적 충동을 통해 표현합니다. 단일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믿음과 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인식론적 주장에 동의함으로써, 사회 과학자들은 과학적 탐구에는 하나의 올바른 논리만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실증주의는 초기 사회 과학의 방법론적 기반으로 기능했습니다.
Philosophical Roots of Research Methodologies
Introduction
Historically, Western traditions of social research have taken the methods established in the physical sciences as the model for social inquiry. Auguste Comte (1798–1857), one of the first social researchers, asserted that authentic knowledge came from personal experience rather than from metaphysical or theological foundations. He argued that by “relying solely on observable facts and the relations that hold among observed phenomena, scientific inquiry could discover the ‘laws’ governing empirical events” (Hawkesworth, 2007, p. 472).
Comte is widely accepted as the founder of positivism, a philosophical orientation toward research methodology. Positivism articulated a search for laws of social life that could stand as equivalents to the natural laws of the physical sciences. Consequently, it is anchored to the same ontological premise of the natural sciences: the world exists as an objective entity and is (at least in principle) knowable in its entirety; epistemologically, the task of the researcher is first to accurately describe the reality and then to analyze the results (Della Porta & Keating, 2008). In this sense, positivism (and neopositivism) mirrors the commonsense ontology of daily life in which things exist as they appear—unless one is dreaming or deceived.
Epistemological realism was “one moment of the general revolutionary progressivism of 18th- and 19th-century science and politics in which societal laws of nature—rather than laws of the state—now explained the social world” (Somers & Gibson, 1996, p. 47). Positivist research can be characterized by a quest for determinacy, expressed through a reductionist impulse to develop precise meanings and operational indicators. By embracing the ontological belief that a single reality exists, and the epistemological claim that this reality can be known objectively, social scientists argued that there was one, and only one, correct logic for scientific inquiry. As a consequence, positivism served as the methodological foundation of the early social sciences.
안토니오 그람시의 비판과 사회 연구의 철학적 문제점
안토니오 그람시(1995)는 사회 연구가 물리 과학을 모델로 사용하는 경향을 초기에 비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이러한 물리 과학에 대한 태도를 "과학의 숭배(fetish)"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람시는 “탁월한 과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탁월한 방법, ‘그 자체로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Gramsci, 1995, p. 282). 그는 모든 탐구 과정이 자신만의 특정한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물리 과학의 과학적 담론을 모든 형태의 사회 연구를 정당화하는 데 지속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과학적 지식이 이상화되면서, 그 철학적 기반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회 과학 학자들은 사회 연구를 사회 세계에 대한 뛰어난 접근을 제공하는 도구로 간주하며, 데이터 수집 기술을 더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데이터 생성 자체를 포함한 지식 생산에 대한 이론화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비록 실증주의가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에게 가장 정당한 사회 연구 형태로 보일지라도, 이는 계속해서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실증주의를 지배하는 가정은 자기 반성과 문화적 생산 능력이 없는 무생물이나 생물학적 현상의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과학은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이해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구성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세계를 다룹니다.
Flyvbjerg(2001)에 따르면, 이러한 인간의 해석 능력은 사회 과학이 자연 과학의 거울 이미지가 되려는 꿈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꿈은 단순히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증주의가 사회 과학에서 관심을 끄는 많은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문에는 왜 조직 개혁 노력이 종종 저항을 받는지, 어떤 문화적 특성이 기업 윤리의 붕괴를 가장 많이 초래하는지, 또는 조직이 구성원을 어떻게 사회화시키는지가 포함됩니다(Prasad, 2005, p. 5).
Antonio Gramsci's Critique and the Philosophical Challenges in Social Research
Antonio Gramsci (1995) was an early critic of the trend in social research to use the physical sciences as a model; he described this attitude toward the physical sciences as “science as fetish.” Gramsci wrote, “there do not exist sciences par excellence and there does not exist a method par excellence, ‘a method in itself’” (Gramsci, 1995, p. 282). Gramsci argued that every process of inquiry needed to be congruent with its own particular purpose.
Despite such critiques, researchers continued to use the scientific discourses of the physical sciences to legitimate all forms of social research. And, as scientific knowledge was idealized, its philosophical underpinnings faded from view. Scholars in the social sciences treated social research as a tool that offered peerless access to the social world; consequently, they tended to focus on improving techniques for more effective data collection, while neglecting the theorization of knowledge production, including the creation of data itself.
Although positivism still appears to many researchers as the most legitimate form of social research, it also continues to be soundly critiqued. Assumptions guiding positivism derive from the study of largely inanimate or biological phenomena that lack the capacity for self-reflection and cultural production. By contrast, social sciences are inevitably concerned with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worlds that are constituted by the human capacity for meaningful understanding and action.
According to Flyvbjerg (2001), this human capacity for interpretation incessantly thwarts the social science dream of becoming the mirror image of the natural sciences. Furthermore, such a dream is not merely impossible; it is also pointless inasmuch as positivism is ill-equipped to answer many questions of interest to social science. These include questions such as why organizational reform efforts are frequently met with resistance; which cultural features are most responsible for the collapse of corporate ethics; or how organizations socialize their members (Prasad, 2005, p. 5).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와 사회 과학의 한계
사회, 문화, 경제, 제도적 질서 전반에 걸쳐 권력이 분배되는 방식은 우리가 정당한 지식으로 여겨온 것과 지식에 이르는 정당한 경로로 여겨온 것에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Northcutt & McCoy, 2004, pp. –4). 사회 과학은 가치 중립성과 사회 생활에 대한 통찰을 물리 법칙과 동등한 수준으로 생성하려는 점진적인 노력이라는 목표에 관심을 둔 근대주의 담론의 일부로 등장했습니다.
21세기의 사회 과학자들은 과학이 단순히 객관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점을 종종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 과학자들은 “원시적” 형태의 사회에서 “진보된” 형태의 사회로의 발전을 설명할 법칙을 찾으려 했습니다(Connell, 2010).
과학적 연구의 실질적인 작업은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문화적으로 공유된 가정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과학이 근대 국가와 함께 발전했다는 점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민족주의적 가정과 경험에 얽매이게 됩니다(Della Porta & Keating, 2008).
과학은 근대화 modernization 개념처럼 식민주의의 도구였으며, 그 결과 문화의 파괴에 기여했습니다. 과학적 담론은 특정 문화뿐만 아니라 문화 내 특정 집단을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함으로써 중요한 지식과 유용한 인식론을 지웠습니다.
과거에는 다양한 형태의 편견을 조장했던 과학적 연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연구는 연구 대상이 된 사람들, 장소들, 그리고 문화들에 대한 것보다는 오히려 권력의 문화적 위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지배적인 문화의 학자들에 의해 특권을 부여받은 "앎의 방식"은 특히 그 담론 속에서 "타자(other)"로 구성된 사람들에게 갈등과 저항의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린다 투히와이 스미스(Linda Tuhiwai Smith, 2004, p. 1)는 “‘연구(research)’라는 용어는 유럽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단어 자체, ‘연구’는 원주민 세계의 어휘에서 아마도 가장 더러운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지배적인 문화에 속한 연구자들은 사회 세계를 권력의 헤게모니적 관점을 담은 분류 체계를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연구 방법을 권력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와의 인식론적 단절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인 앵글로-아메리칸 학파의 인식론은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이론이었습니다. 이는 지식 창조자가 진리, 선, 혹은 정의를 알기 위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규범적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식 창조자를 위한 이론이라는 사실은 몇 가지 교묘한 전략으로 감춰졌습니다. 예컨대, 인증된 방법만 사용하면 누구든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민주주의적 주장이 그것입니다(Addelson, 2007, p. 265).
The Relationship Between Knowledge and Power and the Limits of Social Science
The way that power is distributed across social, cultural, economic, and institutional orders strongly influences what we have learned to regard as legitimate knowledge (Northcutt & McCoy, 2004, pp. –4)—and as legitimate routes to knowledge. Social sciences emerged as part of a modernist discourse of progress that was concerned with goals of value neutrality and an ever-increasing effort to generate insights into social life that could stand as the equivalents of physical laws.
With the benefit of hindsight, social scientists in the 21st century frequently recognize that science has been more than a search for objective knowledge. Consider, for example, that social scientists searched for laws that would explain progress from “primitive” to “advanced” forms of society (Connell, 2010).
The practical work of scientific research necessarily reproduces culturally shared assumptions about how the world exists and how it works. To the extent that social sciences developed alongside the nation-state, they are bound by nationalist assumptions and experiences (Della Porta & Keating, 2008).
Science, like the concept of modernization, was a tool of colonization, and as such, it contributed to the decimation of cultures. Discourses of science erased important knowledge and useful epistemologies by systematically devaluing entire cultures as well as specific groups of people within cultures.
One does not have to look hard to find scientific research that advanced various forms of bigotry—today such studies clearly reveal more about cultural hierarchies of power than about the people, places, and cultures that were studied. The “ways of knowing” that have been privileged by academics in dominant cultures continue to be a site of contention and resistance—particularly for those who have been constructed as “other” in their discourses.
Linda Tuhiwai Smith (2004, p. 1) wrote, “The term ‘research’ is inextricably linked to European imperialism and colonialism. The word itself, ‘research,’ is probably one of the dirtiest words in the indigenous world’s vocabulary.” Researchers in dominant cultures have viewed the social world through classificatory systems that embody a hegemonic view of power. To understand research methods as value-laden relations of power is to make an epistemic break with history.
The traditional epistemology of the Anglo-American canon was a theory for knowledge makers. It was a normative theory that told how knowledge makers ought to reason to reach knowledge of the true or the good or the right. The fact that it was a theory for knowledge makers was covered up by using several clever strategies—including the democratic claim that anyone might have knowledge if only they used the certified method (Addelson, 2007, p. 265).
연구와 지식 생산의 사회적 본질
연구는 항상 특정 개인들에게 공로가 돌아가지만, 지식은 결코 개인에 의해 생산되지 않습니다. 지식은 필연적으로 문화적 공동체의 산물이며, 모든 강력한 공동체는 그들만의 문지기(gatekeeper)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초기 연구 결과가 편견적인 사회적 위계 구조를 지지한 이유가 연구자들 자신이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현대 연구자들은 특정 연구 결과를 비판하면서도 19세기 사회 연구 패러다임을 계속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는 마치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의제가 좋은 연구 방법론과 방법을 제공했지만, 그것이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입니다.
학생과 학자들은 19세기의 편견을 개인적 관점 또는 당시 시대의 관점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대와 학자들이 우리가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회 연구, 사회 이론, 그리고 대학 시스템의 기초를 형성했다는 점을 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19세기의 지적 제국은 지리적 제국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사회 연구의 사실과 절차가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식 생산의 정치에 주목하며, 이 장에서는 질적 사회 연구 발전을 뒷받침해온 철학적 전제들에 대한 광범위한 개요를 제공합니다. 또한, 서구 사회 과학에서 특정 분석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와 관련된 질적 연구의 기준에 대한 여러 도전을 탐구합니다. 이후, 이 장은 사회 과학과 관련된 존재론, 인식론, 행위, 주체성,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합니다.
The Social Nature of Research and Knowledge Production
Although research is always credited to specific individuals, knowledge is never produced by an individual—knowledge is necessarily the product of a cultural community. And every powerful community has its gatekeepers.
In some sense, it has been easy to imagine that the results of earlier research supported bigoted social hierarchies because the researchers themselves held such views. Consequently, contemporary researchers have challenged specific research findings, even as we have advanced 19th-century paradigms of social research—as if prevailing social and political agendas produced good research methodologies and methods that had been put to bad ends.
Students and scholars alike tend to look back at the bigotry of the 19th century as the perspectives of individuals, and perhaps of an era; we less frequently acknowledge that the era, and its scholars, shaped what we understand (and continue to use) as the foundations of social research, social theory, and indeed the university system itself. Arguably, the intellectual empires of the 19th century have outlasted the geographic ones.
Precisely because the facts and procedures of social research are social productions, they can be contested and transformed. With an eye to the politics of knowledge production, this chapter provides a broad overview of the philosophical premises that have underpinned the development of qualitative social research. The chapter explores a number of challenges to standards of qualitative research that have attempted to address particular analytical problems in Western social science. Subsequently, it provides a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ontology, epistemology, agency, subjectivity, and experience in relation to social science.
사회 과학의 변화하는 담론
사회 과학 연구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제에 직면합니다: 형식화(formalization)와 해석(interpretation)입니다. 형식화는 지식 생산을 체계화하기 위한 과정, 즉 관련 현상을 인식하고 이를 데이터로 변환하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형식화 과정은 "타당한 증거(valid evidence)"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을 생성합니다. 실제로 과학과 기타 학문 간의 주요 경계는 모든 과학적 지식 주장에 특정 형식화 과정에 의한 인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형식화 절차는 연구자가 특정 집단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주장을 제기할 수 있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과학적" 결과를 생성하는 것으로 인증된 절차는 특정한 형식화 과정(즉, 체계적 정교화)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절차는 "좋은" 연구를 위한 상식으로 자연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근본적으로 형식화는 경험적 증거를 요구합니다—즉, 지역적 맥락에서 가리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합니다. 연구자들은 지역적 맥락을 마치 문제가 없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조사합니다. 그러나 더 투명한 접근 방식은 연구 맥락의 "지역화된 맥락(localized contexts)"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이는 연구 맥락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의 투명성은 주류 사회 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간주됩니다. 오히려, 이는 맥락과 데이터를 생성하는 주관적 과정과 관련되므로 문제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The Changing Discourses of Social Science
Social science research faces two overarching tasks: formalization and interpretation. Formalization refers to the processes for systematizing knowledge production—processes that provide protocols for recognizing relevant phenomena and transforming them into data. Processes of formalization generate what can be understood as “valid evidence.” Indeed, a primary boundary between sciences and other disciplines has been formed by the demand that all scientific knowledge claims be authenticated by specific processes of formalization.
Procedures for formalization enable researchers to make credible scientific claims about groups of people. Historically, only specific processes of formalization (i.e., systematic elaboration) have been certified as generating “scientific” findings. Over time, these procedures have been naturalized—as a matter of common sense for “good” research.
For example, most fundamentally, formalization requires empirical evidence—something to which one can point in a local context. Researchers examine local contexts as if they are unproblematic and naturally occurring. It would be more transparent to speak of localized contexts—emphasizing the construction of research contexts. However, this level of transparency is generally not regarded as necessary in mainstream social sciences. Indeed, it might even be construed as problematic since it refers to subjective processes involved in creating both contexts and data.
최근 연구 방법론과 형식화 과정에 대한 도전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연구 방법론은 형식화 과정에 도전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퍼포먼스 학문(performance scholarship)과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를 통해 형식화 과정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Ellis & Bochner, 1996; Richardson, 2004 참조). 이러한 전략들은 매우 유용하지만, 형식화의 필요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사회 과학 전반의 일관성을 정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도로시 스미스(Dorothy Smith)가 개발한 초기의 제도적 민족지학(institutional ethnography) 또한 형식화 과정을 비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미스는 제도적 환경에서 지식의 사회적 조직을 조사하며, 민족지학의 심층적 기술(thick description) 내에서 지식 생산을 문화적 틀로 설명했습니다(Smith, 1990a, 1990b, 1999). 이러한 신흥 방법론은 사회 과학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표현하지만, 주류 사회 연구에서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형식화 과정에 대한 더 중요한 도전은 교육 분야의 학자들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인문학을 활용하여 경험적 증거의 개념을 확장하는 접근 방식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Hendry, 2007; Kincheloe & McLaren, 1998; Korth, 2002; Lather, 1991, 2001 참조). 이와 유사하게, 일부 사회 과학 학자들 또한 사회 생활을 더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인문학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Clarke, 2005; Clough, 1992, 2000; Denzin, 200a, 200b; Holstein & Gubrium, 2000; Saukko, 200 참조).
이 책은 이러한 학문적 노력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노력을 조금 더 확장하려고 시도합니다.
Emerging Research Methods and Challenges to Formalization
Within the past decade, emergent research methods have challenged processes of formalization. For example, scholars have challenged the processes of formalization through performance scholarship and autoethnography (cf. Ellis & Bochner, 1996; Richardson, 2004). These strategies are very useful, yet they have a fairly limited impact on social science precisely because they challenge the need for the broad coherence that continues to define social science.
In very different ways, the earlier institutional ethnographies developed by Dorothy Smith also could be said to challenge processes of formalization. By examining the social organization of knowledge in institutional settings, Smith (1990a, 1990b, 1999) developed a cultural framing of knowledge production within the thick description of ethnography. Emergent methods such as these express a paradigm shift in what constitutes a social science—but one that remains highly marginalized by mainstream social research.
Perhaps some of the more substantial challenges to processes of formalization have come from scholars in education who more commonly broaden notions of empirical evidence by turning to the humanities (cf. Hendry, 2007; Kincheloe & McLaren, 1998; Korth, 2002; Lather 1991, 2001). Similarly, some scholars working in the social sciences also have turned to the humanities to more fully and effectively analyze social life (cf. Clarke, 2005; Clough, 1992, 2000; Denzin, 200a, 200b; Holstein & Gubrium, 2000; Saukko, 200).
This book owes a debt to all such scholarship as it attempts to take such efforts a bit farther.
사회 과학 연구의 두 번째 과제: 해석
사회 과학 연구의 두 번째 과제는 **해석(interpretation)**입니다—즉, 증거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일입니다. 형식화(formalization)와 해석의 과정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데이터 해석에 사용되는 존재론적 및 인식론적 틀은 체계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 가능한 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둘은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약간 다른 목적을 지닌 채로 상호 의존합니다.
주어진 패턴이나 주제에 대해 가능한 해석의 수는 원칙적으로 상당히 많습니다. 과학적 활동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특정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Latour & Woolgar, 1986, p. 6). 그러나 특정 해석이 정보를 갖춘 청중에게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청중이 보유한 지식의 형태와 읽기에 적용되는 특정 맥락에 의해 제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에 대한 일부 설명이 다른 설명보다 더 (혹은 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과정은 항상 정치적 프로젝트입니다. 다만, 이 정치적 프로젝트는 종종 과학적 담론에 의해 감춰지곤 합니다.
역사적으로, 과학적 담론은 해석의 과정보다는 형식화의 과정을 제한하는 데 더 큰 투자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과학자들은 다양한 해석 과정을 정교하게 발전시켜왔지만, 형식화의 과정은 거의 변화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섹션에서는 질적 사회 연구에서 해석 과정에 대한 주요 도전과 변화를 살펴봅니다: 페미니스트(feminist),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그리고 해석학적(interpretive) 접근 방식. 이들의 소개와 관련된 한 가지 주의사항은, 여기서 제시된 방식이 이 도전들이 실제보다 더 구별되거나, 제한적이거나, 선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The Second Task of Social Science Research: Interpretation
The second task of social science research is interpretation—explaining the significance of evidence. Clearly, processes of formalization and interpretation are intimately linked. To a significant extent, the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frameworks used to interpret data are not separable from those that determine the systematic collection of evidence and its transformation into data to be analyzed. The two cannot operate independently—although they serve slightly different ends.
The number of possible interpretations for any given pattern or theme is fairly large—at least in principle. A significant aspect of scientific activity is rendering some interpretations more plausible than others (Latour & Woolgar, 1986, p. 6). However, the number of interpretations that will be accepted as plausible by an informed audience is constrained by the forms of knowledge the audience holds and the particular context that is brought to bear on the reading.
Yet rendering some explanations of evidence more, or less, plausible than others is always a political project—although it is a political project that is often masked by scientific discourse.
Historically, scientific discourse has been more invested in limiting processes of formalization than processes of interpretation. As a result, social scientists have elaborated on a variety of processes of interpretation, while processes of formalization remain largely unchanged.
The subsequent sections examine key challenges and transformations to processes of interpretation in qualitative social research: feminist, critical race, and interpretive approaches. The usual caveat applies: these challenges are neither as distinct, as limited, nor as linear as their presentation here may make them appear.
페미니스트 및 비판적 인종 이론이 질적 연구에 제기하는 도전
페미니스트 학문은 연구, 사회 이론, 그리고 연구 방법에서 남성 중심적 편견(androcentric bias)을 직면하며 세 가지 도전을 제기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방법론의 핵심에는 지식 생산이 여성 억압을 만들어내고 유지해온 장소라는 비판이 있습니다(DeVault, 1999; Hartsock, 1987).
페미니스트 연구 방법 비판(Behar & Gordon, 1995; Haraway, 1991; Harding, 1991; Hartsock, 1987; Naples, 2000; Reinharz, 1992 참조)은 전통적 인식론이 남성 지배를 어떻게 지지했는지를 폭로함으로써, 타당한 지식 생산의 개념을 변혁시켰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페미니스트 경험주의, 입장 이론(standpoint theories),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초국가적 관점은 모두 억압된 지식을 발굴하는 목표와 함께 여성의 삶의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설명됩니다(Hesse-Biber, 2007, p. ).
페미니스트 비판의 중심 주제는 객관성(objectivity) 개념이었습니다. Ramazanoğlu와 Holland(2002)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객관성은 연구자가 연구 과정을 통제하여 연구자 외부에 존재하며 관찰자의 관찰과 독립적인 사회적 현실에 대한 중립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알든 모르든 세계는 돌아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p. 48).
Feminist and Critical Race Challenges to Qualitative Research
Feminist scholarship began with a three-part challenge that confronted androcentric bias in research, in social theory, and in research methods. At the heart of feminist methodology is a critique of knowledge production as a site that has constructed and sustained women’s oppression (DeVault, 1999; Hartsock, 1987).
Feminist critiques of research methods (cf. Behar & Gordon, 1995; Haraway, 1991; Harding, 1991; Hartsock, 1987; Naples, 2000; Reinharz, 1992) transformed what is considered to be the production of valid knowledge by exposing the ways that traditional epistemology supported male dominance. In varying ways, “feminist empiricism, standpoint theories, postmodernism, and transnational perspectives all recognize the importance of women’s lived experiences with the goal of unearthing subjugated knowledge” (Hesse-Biber, 2007, p. ).
A central point of feminist critique has been the concept of objectivity. Ramazanoğlu and Holland (2002) wrote:
Objectivity implies that the researcher can control the research process so as to produce neutral knowledge of social reality that is external to the researcher and independent of the observer’s observations—just as the world turns whether we know it or not. (p. 48)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객관성 비판과 입장 이론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1991, p. 189)는 과학이 객관적 지식을 강조하고 이를 주장하는 것을 “신의 속임수(god trick)”라고 유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어디에도 위치하지 않은 시선(view from nowhere)"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산드라 하딩(Sandra Harding, 2007) 역시 객관성 개념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객관성은 과학적 방법이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가정을 탐지할 수 있도록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가정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믿음으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믿음입니다. 과학적 방법(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경험주의)만으로는 과학 공동체의 대다수가 가정하는 문화적 믿음이 과학 연구에 의해 도전받는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p. 52)
객관성은 활용 가능한 지식을 구축하지만, 결코 순수한(innocent) 지식은 아닙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객관성의 목표가 주관성을 고려할 때 더 잘 달성된다고 주장합니다(Code, 199 , p. 2). 모든 지식과 지식 생산의 시도가 사회적으로 위치함을 인정하며, 페미니스트 학자들(Collins, 2000; Hartsock, 1987; Smith, 1990a 참조)은 객관주의(objectivism)에 맞서 입장 이론(standpoint theory), 즉 "어딘가에 위치한 시선(view from somewhere)"을 강조했습니다.
입장 이론은 계층화된 사회에서 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활동이 그들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조직하고 제한한다는 이해에서 시작됩니다(Harding, 2007, p. 54).
입장 이론의 틀 안에서 연구자들은 소외된 삶의 중심에 있는 경험과 지식에서 출발하여 일상적인 실천을 문제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입장 이론은 지식 주장과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의 **조건적 성격(contingency)**을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입장 이론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다중 관점을 설명하는 동시에 "실제(real)" 세계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설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입장 이론은 객관성 개념을 폐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강력한 **성찰성(reflexivity)**을 요구함으로써 이를 강화하려 합니다.
Feminist Critiques of Objectivity and Standpoint Theory
Donna Haraway (1991, p. 189) famously called the scientific emphasis on (and claim to) objective knowledge the “god trick” because it is predicated on a “view from nowhere.” Sandra Harding (2007) has also leveled incisive critiques of the notion of objectivity. She wrote:
Objectivity has not been [understood] in such a way that scientific method can detect sexist and androcentric assumptions that are “the dominant beliefs of an age”—that is, [it cannot confront beliefs] that are collectively (versus only individually) held. As far as scientific method goes (and feminist empiricist defenses of it), it is entirely serendipitous when cultural beliefs that are assumed by most members of a scientific community are challenged by a piece of scientific research. (p. 52)
Objectivity constructs usable, but not innocent, knowledge. Some feminists have argued that the goals of objectivity are better fulfilled by taking subjectivity into account (Code, 199 , p. 2). Acknowledging that all knowledge and all attempts to produce knowledge are socially situated, feminist scholars (cf. Collins, 2000; Hartsock, 1987; Smith, 1990a) countered the emphasis on objectivism with standpoint theory—what might be called a “view from somewhere.”
Standpoint begins with the understanding that in stratified societies the activities of those at the top both organize, and set limits on, what they can understand about themselves and the world around them (Harding, 2007, p. 54).
Within the framework of standpoint, researchers begin with the experiences and knowledge that are central to marginalized lives, and from there, problematize everyday practices. In this sense, standpoint attempts to account for the contingency of both knowledge claims and knowing subjects.
A primary goal of standpoint is to enable scholars to account for multiple perspectives while also maintaining a commitment to faithful accounts of a “real” world. Standpoint does not do away with the concept of objectivity but attempts to strengthen it by demanding strong reflexivity.
페미니즘과 비판적 인종 이론의 도전과 한계
일부 학자들은 페미니즘의 가장 큰 강점이, **"과학 분야에서 이해되는 연구의 기본 논리나 지배적인 과학 철학에서 이해되는 설명의 논리에 최소한의 도전만으로 성차별적 결과의 생산을 다룰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합니다(Harding, 2007, p. 5). 이러한 보수적 접근 방식이 물리 과학 분야에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사회 과학에서 페미니스트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페미니스트와 비판적 인종 이론이 전통적 사회 과학에 제기한 도전에는 상당한 중복 영역이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사회 과학이 인종 불평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비판의 주요 대상으로 삼았습니다(Cannella & Lincoln, 2004; Collins, 199 ; Denzin, 1978; Glenn, 2002; Osha, 2005; Twine & Warren, 2000; Zuberi, 2001; Zuberi & Bonilla-Silva, 2008 참조).
일부 비판적 인종 이론 학자들은 "흑성을(epistemological standpoint and methodological one)" 하나의 인식론적 입장으로, 그리고 방법론적 입장으로 개념화했습니다(Dillard & Dixson, 2006, p. 244).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입장 연구(standpoint research)가 문제적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입장이 비판적 입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종적 종속은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자동으로 생성하지 않으며, 식민주의가 반(反)식민적 주체성을 만들어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Fanon, 1967; Memmi, 1991; Twine & Warren, 2000, p. 15).
입장 연구는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다른 형태의 체계화된 종속(subordination)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인종 및 인종화(racialization)에 대한 문화적 담론은 모든 연구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취약하게 만들며, 사회적 삶에 대한 헤게모니적 개념을 강화하는 지식을 재생산할 위험에 노출시킵니다.
Feminist and Critical Race Challenges: Strengths and Limitations
Some scholars have claimed that feminism’s greatest strength is its ability to address the production of sexist results "with only a minimal challenge to the fundamental logic of research as this is understood in scientific fields and to the logic of explanation as this is understood in the dominant philosophies of science" (Harding, 2007, p. 5). While this conservatism has been useful in the physical sciences, it is not necessarily widely embraced by feminist scholars in the social sciences.
While there is enormous overlap among feminist and critical race challenges to traditional social sciences, some scholars have directed their primary critiques toward social science’s ability to fully apprehend racial inequalities (cf. Cannella & Lincoln, 2004; Collins, 199; Denzin, 1978; Glenn, 2002; Osha, 2005; Twine & Warren, 2000; Zuberi, 2001; Zuberi & Bonilla-Silva, 2008).
Some critical race scholars have conceptualized "Blackness both as an epistemological standpoint and as a methodological one" (Dillard & Dixson, 2006, p. 244). However, others argue that standpoint research is problematic; not all standpoints are critical ones.
"Racial subordination does not mechanistically generate a critical stance vis-à-vis racism any more than colonialism created anticolonial subjectivities" (Fanon, 1967; Memmi, 1991; Twine & Warren, 2000, p. 15).
Standpoint research is necessary for confronting racism but not sufficient—the same must be said for confronting other forms of systematized subordination as well.
Cultural discourses on race and racialization make all researchers vulnerable in different ways to reproducing knowledge that reinforces hegemonic conceptions of social life.
비판적 인종 이론의 사회 연구 비판
비판적 인종 이론은 사회 연구의 **형식화(formalization)**와 해석(interpretation) 과정 모두에 도전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Stanfield(199 ), Zuberi(2001), 그리고 Zuberi와 Bonilla-Silva(2008)는 **"백인 연구 방법(white research methods)"**에 대해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히 인종의 통계 분석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정량적 연구 방법은 여전히 사회 연구의 "골드 스탠다드"로 간주됩니다. 이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The Bell Curve(Hernstein & Murray, 1994)와 같은 현대의 많은 사례들은 이를 반박합니다. 숫자는 서사가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 생활에 대한 가정과 이론은 데이터 수집 및 해석 방법을 안내하며, 이는 인종, 인종차별, 그리고 인종화(racialization)를 연구하는 데 특히 중요한 함의를 가집니다.
사회 연구 방법은 심각한 인종 억압의 시기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 패러다임에 백인 중심의 인종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지 지속적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인종차별의 체계적이고 누적적인 성격은 모든 실천이 고립된 지역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스템의 일부로 이해되고 연구되어야 함을 요구합니다(Essed & Goldberg, 2002). 하지만 학자들이 인종차별의 전체적인 시스템에만 초점을 맞추면,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인종차별이 갖는 구체적인 형태와 의미를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 연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불평등 연구를 위한 반사성의 역할
많은 페미니스트와 비판적 인종 연구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메커니즘과 실천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연구자와 연구 대상 모두가 사용하는 **반사적 레퍼토리(reflexive repertoires)**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Cannella & Lincoln, 2004; Hesse-Biber & Leavy, 2006; Holstein & Gubrium, 2000, 2005; Ladson-Billings, 200a, 200b; Prasad & Prasad, 2002 참조).
그러나 반사성을 단순히 도구적(instrumental) 혹은 공리적(utilitarian)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 이는 사회 연구에서 형식화나 해석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을 도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위해 유용한 지식을 창출하는 간단하거나 공식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Critical Race Critiques of Social Research
Some critical race critiques of social research have challenged both processes of formalization and processes of interpretation. For example, Stanfield (199 ), Zuberi (2001), and Zuberi and Bonilla-Silva (2008) have leveled incisive critiques of “white research methods” generally, and more specifically regarding statistical analyses of race.
In the 21st century, quantitative research methods continue to be endorsed as the gold standard of social research because of a belief that “numbers don’t lie.” However, there are many contemporary examples to the contrary—The Bell Curve (Hernstein & Murray, 1994) quickly comes to mind. Numbers are meaningless without narratives.
Assumptions and theories about social life guide how we collect and interpret data; this has particular implications for studying race, racism, and racialization.
Given that social research methods were developed during periods of devastating racial oppression, researchers must consistently ask how white racial ideologies are embedded in existing research paradigms.
The systematic and cumulative nature of racism requires that all practices need to be understood and studied as part of an overarching system, rather than isolated in localized contexts (Essed & Goldberg, 2002). Yet if scholars focus only on the overarching system of racism, we miss the particularities of time and place that give racism specific form and meaning. Social research needs to be able to do both.
Reflexivity in Studying Social Inequality
Many feminist and critical race researchers have sought to develop a better grasp of the mechanisms and practices of social inequality by deepening understandings of the reflexive repertoires used both by researchers and the people we study (cf. Cannella & Lincoln, 2004; Hesse-Biber & Leavy, 2006; Holstein & Gubrium, 2000, 2005; Ladson-Billings, 200a, 200b; Prasad & Prasad, 2002).
Yet it is also possible to use reflexivity in instrumental or utilitarian ways that do not challenge underlying assumptions about processes of formalization or interpretation in social research.
There is no simple or formulaic way to create useful knowledge in the service of social justice.
해석학적 접근이 사회 연구에 제기하는 도전
많은 연구자들은 자연 과학의 방법론과 방법이, 사물과 유기체를 연구하는 데는 적합할지라도, 사회적 삶의 복잡성을 연구하는 데는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Winch(1958)는 **인과적 설명(causal explanations)**이 사회적 삶을 포착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며, 오히려 유효한 사회 연구를 수행하는 능력을 방해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빨간 신호등에서 멈추는 현상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빨간 신호등과 자동차의 정지 사이에 단순한 인과적 관계를 설정한다면, 자동차가 왜 멈추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Winch, 1958).
사회적 개념과 과학적 설명 간의 불일치
Winch(1958, p. 95)는 **“사회적 사건을 사고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은 과학적 설명에 속한 개념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행동에 대해 인과적 설명을 공식화한다면, 컴퓨터와 로봇이 명령에 반응하는 방식은 언어를 이해한다고 간주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의미적 내용(semantic content)**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공식적 연산(formulaic computations)**에 기반합니다.
사회적 행동은 고정된 자연 법칙에 의해 지배되지 않습니다. 중력의 법칙과 같은 과학적 법칙에 상응하는 사회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Interpretive Challenges to Social Research
Many researchers have argued that the methodologies and methods of the natural sciences, which were used to study objects and organisms, are inappropriate and ineffective for studying the complexities of social life. Winch (1958) argued that causal explanations were too simplistic to capture social life and actually interfered with the ability to conduct valid social research.
For example, we can observe that cars stop at red traffic lights, but if we formulate a simple causal relationship between red traffic lights and cars stopping, we will never understand why cars stop (Winch, 1958).
Incompatibility Between Social Concepts and Scientific Explanation
Winch (1958, p. 95) asserted that "the concepts that we use for thinking about social events are logically incompatible with the concepts belonging to scientific explanation."
For instance, if we formulate a causal explanation of behavior, computers and robots responding to commands might appear to understand language. However, their responses are based on formulaic computations, not semantic content.
Social behavior is not governed by fixed natural laws; there are no social equivalents of scientific laws such as gravity.
해석학적 연구와 자연 과학 모델의 한계
많은 학자들은 자연 과학 연구 모델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증거를 해석하는 경쟁적 분석 틀을 개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 드라마투르기(dramaturgy), 그리고 **민족 방법론(ethnomethodology)**이라는 분야로 이어졌습니다. 각각은 고유한 논리를 따르지만, 이들을 통칭하여 해석주의 스타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해석적 연구는 사회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 철학에 기반합니다. 이는 사회적 세계가 의미 있는 해석을 통해 생산된다고 가정합니다. 사회 구성주의는 맥락적 이해의 중요성, 연구의 주관적 본질, 그리고 **성찰성(reflexivity)**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Willis, 2007).
사회 구성주의와 해석적 분석
사회 구성주의적 존재론의 가장 보수적인 형태에서는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용어는 사회적으로 생성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해석적 분석은 의미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공유된 해석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Holstein & Miller, 199). 이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기반으로 합니다.
해석주의자는 미리 정의된 개념을 사용하는 대신, **민감 개념(sensitizing concepts)**을 활용하여 연구 대상의 사회적 관계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해석주의자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계급(class)”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탐구하려고 하며, 미리 정해진 “계급”의 정의를 가지고 연구에 접근하지 않습니다.
해석적 연구와 실증주의 모델의 도전
해석적 연구는 **실증주의(positivist)**와 후기 실증주의(postpositivist) 연구 모델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사회 연구의 가능성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실증주의적 연구 모델은 역사적으로 사회 과학 연구의 유일하게 유효한 모델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해석주의자들은 참여자들이 특정 상황에 부여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행동만을 분석해서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해석주의자에게 의미와 정체성은 **존재론적 관습(ontological conventions)**이지, 절대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특정 활동을 “일(work)”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특정 과업의 수행? 맡은 책임? 혹은 받는 보상?
해석적 분석은 이해를 추구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불확정성(indeterminacy)**을 허용합니다(Charmaz, 2006). 사회 과학에서 해석적 틀은 **분석적 귀납(logic of analytic induction)**을 기반으로 하며, 페미니스트 이론, 비판적 인종 이론과 함께, 사례 연구(case studies), 민족지학(ethnography), 인터뷰, 그리고 텍스트 분석(textual analysis)과 같은 다양한 질적 데이터 수집 방법과 결합하여 사용됩니다.
Interpretive Research and the Limitations of the Natural Science Model
Many scholars have attempted to address the limitations of the natural science model of research by developing competing analytic frameworks for interpreting evidence. These efforts have resulted in the fields of symbolic interaction, dramaturgy, and ethnomethodology. Each follows a distinct logic, yet taken together, they are broadly understood as styles of interpretivism.
Most broadly, interpretive research is committed to the philosophy of social constructionism, which posits that the social world is produced through meaningful interpretations. Social constructionism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contextual understanding, the subjective nature of research, and the importance of reflexivity (Willis, 2007).
Social Constructionism and Interpretive Analysis
At its most conservative, social constructionist ontology holds that the world exists objectively, but the terms we use to define and describe it are socially produced. Interpretive analyses begin with the belief that meaning is socially constructed through shared, rather than individual, interpretations of reality—that is, it is constructed intersubjectively (Holstein & Miller, 199).
Rather than approaching research with predefined concepts, interpretivists use sensitizing concepts to help them better understand the social relationships being studied. For example, an interpretivist would want to discover how people in a particular community understand the meaning of “class,” rather than approaching the community with a predetermined definition of “class.”
Challenging Positivism and Broadening Research Possibilities
Interpretive research seeks to broaden the possibilities of social research by directly challenging the limitations of positivist and postpositivist foundations, which have historically been recognized as the primary (and often the only) valid model of social science research.
To understand a situation, interpretivists argue that researchers must understand the meanings the situation holds for the participants, not just their behaviors. For interpretivists, meaning and identity are ontological conventions, not absolute facts.
For example, what makes a set of activities “work”? Is it the specific tasks one undertakes? The responsibilities one assumes? The remuneration one receives?
Interpretive analyses attempt to pursue understanding while necessarily allowing for degrees of indeterminacy (Charmaz, 2006). In social sciences, interpretive frameworks rely on the logic of analytic induction and have been used with feminist and critical race theories, as well as with a range of qualitative methods for data collection (including case studies, ethnography, interviews, and textual analysis).
중요한 연구들은 페미니스트, 비판적 인종 이론, 해석적 연구 프레임워크의 중요성, 가치, 필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담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든 학자들은 지배적인 연구 패러다임에 도전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왔다. 한편으로는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켜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프레임워크의 강점을 입증하는 연구를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과제는 기존의 분석적 프레임워크의 경계를 확장하는 연구에서 종종 겹친다. 사회과학은 극적이고 유용한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페미니스트, 비판적 인종 이론, 해석적 프레임워크는 사회 연구자들이 인식론과 해석 실천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형식화(formalization)의 실천은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존재론적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어 과학 자체의 담론적 구성에 더욱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정의적 특징을 구성하는 형식화 과정은, 루틴화된 사회적 특권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에 개발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21세기 미디어의 발전과 확산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다루기 위해 사회과학의 담론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형식화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철학적 문제를 실천적 문제와 연결함으로써 가능하다. 질적 연구는 문화적으로 적합하고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질적 연구 방법의 실천과 관련하여 질적 연구의 철학적 토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해석주의 학자들 간의 논쟁, 페미니스트 및 비판적 인종 방법론 비판, 사회과학 미디어 연구, 그리고 새로운 질적 연구 전략의 출현 및 발전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에 기여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Significant research demonstrates the importance, value, and necessity of feminist, critical race, and interpretive research frameworks. All scholars working to shift the discourse of social science have faced the overarching task of needing to pursue two directions simultaneously in order to challenge dominant research paradigms. On one hand, they must develop critiques of existing paradigms and on the other they must develop research that demonstrates the strength of the new frameworks. These two tasks often overlap in research that pushes the boundaries of existing analytical frameworks. The social sciences have changed in dramatic and useful ways. Feminist, critical race, and interpretive frameworks have changed the way social researchers think about epistemology and practices of interpretation. However, practices of formalization have been harder to challenge—precisely because they are fundamentally linked to issues of ontology and therefore more intrinsic to the discursive construction of science itself.
While processes of formalization constitute defining features of a science, it is critically important to consider that these processes were developed in an era that did not imagine the need to study routine social privilege and could not have anticipated the development and proliferation of 21st-century media. Consequently, it is important to broaden the discourse of social sciences to address these phenomena—both by problematizing the concept of formalization and by connecting philosophical concerns with practical ones. Qualitative research has made substantial contributions to culturally relevant and socially progressive research. Critically examining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qualitative research in relationship to the practice of qualitative methods promises to contribute to debates among interpretivist scholars, to feminist and critical race methodological critiques, to social science media research, and to the ongoing discussions regarding the emergence and evolution of new qualitative research strategies.
철학과 실천
사회 연구 패러다임에서 형식화(formalization) 과정이 어떻게 헤게모니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지를 검토하려면, 형식화 과정을 형성하는 철학적 토대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탐구를 다음 장에서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이 절에서는 존재의 본질(존재론, ontology)에 대한 가정 및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방식(인식론, epistemology)에 대한 믿음과 가정과 관련하여 사회 연구 실천의 정치성을 고려한다. 이어서 존재론과 인식론의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고, 각 개념이 주체성(subjectivity), 행위성(agency), 경험(concept of experience)에 대한 개념에 어떻게 기본적으로 기여하는지를 논의한다.
사회과학에서 많은 학자들은 점점 더 방법론(methodology)에 대한 비판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사회 연구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cf. Clough, 1992; Denzin, 200 b; Flyvbjerg, 2001; Harding, 1987, 1991, 2007; Lal, 2008; Latour, 199 ; Ramazanoğlu & Holland, 2002; Sandoval, 2000; Smith, 2004; Zuberi, 2001; Zuberi & Bonilla-Silva, 2008). 그러나 존재론에 대한 가장 심오한 도전은 실천적 우려와는 별개의 이론적 논의인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비판적 방법론과 사회 연구의 실천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 자주 겹치지 않는 문헌들로 인해 놀랍지 않다. 또한 이 간극은 연구 설계를 평가하는 연구비 지원 기관 및 출판사에 의해 강화되는데, 이들은 정교한 방법(예: 데이터 수집 및 분석)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포함한 연구 설계를 정기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고려는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Philosophy and Practice
In order to examine how processes of formalization in social research paradigms are themselves implicated in sustaining hegemonic social orders, it is necessary to explore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that shape processes of formalization. To make that exploration possible in subsequent chapters, in this section, I consider the politics of social research practices in relationship to assumptions about the nature of existence (ontology) and in relationship to beliefs and assumptions about how the world can be known (epistemology). I then elaborate on the concepts of ontology and epistemology and finally consider how each is rudimentary to conceptions of subjectivity, agency, and experience.
In the social sciences, many scholars increasingly are turning toward critiques of methodology to take up foundational issues of ontology and epistemology in social research (cf. Clough, 1992; Denzin, 200 b; Flyvbjerg, 2001; Harding, 1987, 1991, 2007; Lal, 2008; Latour, 199 ; Ramazanoğlu & Holland, 2002; Sandoval, 2000; Smith, 2004; Zuberi, 2001; Zuberi & Bonilla-Silva, 2008). Yet the most profound challenges to ontology tend to be theoretical discussions of methodology that stand apart from pragmatic concerns of implementation. Consequently, there is a significant gap between critical methodologies and the practice of social research—which should not be too surprising since the literatures seldom overlap. The gap between theory and practice is reinforced by funding agencies and publishers, who regularly accept research designs that include well-detailed characterizations of methods (i.e., data collection and analysis) but lack any consideration of ontology and epistemology.
중요한 점은 비판적 방법론과 비판적 연구 사이의 간극을 조장하는 것이 단지 연구비 지원 기관과 출판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술 기관들은 종종 철학적 고려가 거의 없는 데이터 수집 기법에 초점을 맞춘 연구 과정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연구 패러다임은 학자와 학생들에게 단순히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위한 지침 이상을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를 인식하고, 우리가 본 것이 왜 중요한지와 그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사회 연구 방법의 이론적 토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흔히 "요리책 접근법(cookbook approach)"(Hesse-Biber & Leavy, 2006)으로 불리는 방식에 의존하게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깊이 있는 비판적 관점을 배제하게 된다.
대체로, 경험적 연구는 실질적인 정책 및 지역사회 기반의 함의를 가진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방법론 및 과학 철학에 대한 학문은 흔히 "아이보리 타워(ivory-tower)"의 문제로 여겨진다. 철학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 간의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은 수 세대에 걸쳐 연구자들이 경험적 연구의 본질에 대해 상식적 가정처럼 보이는 것들에 내재된 이데올로기를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신뢰할 수 있는 연구를 생산하는 기술을 따르도록 이끌었다. 이는 인식, 책임감, 그리고 행위성을 결여하도록 조장하는 무능력한 이분법적 틀이다.
Importantly, it is not only funding agencies and publishers that nurture the gap between critical methodology and critical research. Academic institutions tend to offer research courses that are focused on techniques for data collection—often without significant philosophical consideration. Yet, research paradigms offer scholars and students more than simple orientations for data collection and analysis. They provide frameworks for recognizing what we see, as well as for understanding the relevance and importance of what we see. Without understanding the theoretical underpinnings of social research methods, we are reduced to taking what is often referred to as a “cookbook approach” (Hesse-Biber & Leavy, 2006) to research that inevitably precludes a deeply critical stance.
By and large, empirical research is understood as having practical policy and community-based implications, whereas scholarship on methodology and the philosophy of science tend to be framed as “ivory-tower” issues. This binary juxtaposition between the philosophical and the practical has led generations of researchers to follow techniques for producing credible research without seriously examining ideologies sequestered in what appear to be commonsense assumptions about the nature of empirical research. It is a disempowering binary framework that encourages a lack of awareness, accountability, and agency.
예를 들어, 앞서 논의된 지역적 맥락(localized contexts)을 떠올려 보라. 수 세기 동안 경험적 증거는 지역적 맥락에서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것에 제한되어 왔다. 헤게모니적 과학 담론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사회과학이 지역적 맥락의 경험적 증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 우리는 권력, 특권, 문화, 지식의 특정 측면을 분석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항상, 그리고 필연적으로, 어떤 지역적 맥락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사회 연구의 인식론적 기반은 연구자가 지역적 맥락을 형성하는 더 넓은 문화적 조건을 다루는 것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의 인지적 영역 내에서는 인종화(racialization), 물화(reification), 헤게모니와 같은 사회적 과정을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하면 좁은 경험주의는 "교묘한 연막" 역할을 한다. 이는 무지의 인식론(epistemology of ignorance)에 완벽히 맞춘 방법이다. 흔히 말하듯, 우리는 "보지만 결코 보지 않는다"(Steinberg, 2007, p. 11).
일반적으로 무지는 잘못되었거나 소홀한 인식적 실천의 결과로 이해되지, 자체로 실질적인 인식적 실천으로 간주되지 않는다(Alcoff, 2007, p. 9). 무지의 인식론은 모순어법처럼 들릴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앎(knowledge)과 무지(ignorance)에 대한 이론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 무지는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생산하는 적극적인 오해이다. 무지는 적극적인 사회적 생산이다. 무지의 인식론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결함 있는 정당화 체계를 사용할 때 존재한다(Alcoff, 2007; Sullivan & Tuana, 2007).
우생학(eugenics)은 무지의 인식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Zuberi, 2001; Zuberi & Bonilla-Silva, 2008). 인종 담론의 본질적으로 학문적인 구성 자체만으로는 일반적인 인종 연구나 특히 우생학의 과학적 정당성을 확립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한 연구들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중요성을 얻는데, 이는 또한 지배적 집단이 가진 상식적 인식과 공명하는 실질적 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문적 연구는 "사실성(facticity)"이라는 것을 인종주의에 적용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탐욕이나 영적 열정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그 매력을 발휘한다.
원문 영어
Recall, for example, the earlier discussion of localized contexts. For centuries, empirical evidence has been limited to that to which we can point in a localized context. For those immersed in hegemonic scientific discourse, it is difficult to imagine why this could possibly be problematic—or how it might be otherwise. To the extent that the social sciences remain exclusively bound to empirical evidence in localized contexts, we will fail in our abilities to analyze particular aspects of power, privilege, culture, and knowledge—which always and inevitably exceed any local context. The epistemic foundations of social research prevent researchers from addressing the broader cultural conditions that shape the localized contexts.
For example, within the cognitive space of social science, it is impossible to critique social processes such as racialization, reification, and hegemony. If we don’t see “the big picture, narrow empiricism provide[s] an ingenious smoke screen. It is a method perfectly tailored to an epistemology of ignorance. As the adage goes, we ‘look’ but never ‘see’ ” (Steinberg, 2007, p. 11).
Generally, ignorance is understood as a result of a bad or neglectful epistemic practice—not as a substantive epistemic practice in itself (Alcoff, 2007, p. 9). An epistemology of ignorance may sound oxymoronic: how can we have a theory of knowing and ignorance? Ignorance is not simply “not knowing” but an active misapprehension that systematically produces inaccurate information—ignorance is an active social production. An epistemology of ignorance exists when one uses socially acceptable but faulty systems of justification (Alcoff, 2007; Sullivan & Tuana, 2007).
Eugenics can be understood as an epistemology of ignorance (Zuberi, 2001; Zuberi & Bonilla-Silva, 2008). The intrinsically scholarly framing of race discourse was not, in itself, enough to establish the scientific legitimacy of race research in general or eugenics in particular. Such studies gain prominence in particular times and places because they also have practical applications that resonate with commonsense perceptions held by dominant groups in society. In this sense, academic research has applied what might be called “facticity” to racism—its appeal is not to greed nor to spiritual passion, but to reason.
마찬가지로, 프로이트(Freud)의 많은 연구도 무지의 인식론(epistemology of ignorance)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Hoagland, 2007).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초기에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보고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믿었지만, 이후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공상했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지지하며 그들의 증언을 불신하기로 선택했다. 이 이론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수십 년 동안 그들의 경험을 부정하는 데 기여했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묘사는 유럽과 북미에서 헤게모니적 세계관을 지지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과학은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만, 헤게모니적 문화는 구조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기존 사회 계층을 재생산하는 무지의 인식론에 해당된다.
모든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위치한다고 가정한다면, 사회 연구 방법론은 특정 담론과 기호 체계를 통해 표현된 역사적으로 생성된 사회적 형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회 연구의 인식론적 기반은 부분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타자"에 관한 정당화된 지식의 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사회 연구는 스스로 "대상의 영역"과 "진리의 의식"을 생산하고(그리고 이로 인해 생산되기도 하는) 하나의 권력 관계이다(Foucault, 1977, p. 194). 과학 자체도 문화적 활동이다—자신을 실행하는 일종의 퍼포먼스(performance)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며(아마도 가장 강력한) 비판은 모든 연구 방법에서 현상이 "증거"로 간주되는 것은 잠재적 분석과 관련하여 인식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있다(Gordon, 1997; Scott, 1991). 증거는 항상 유효하고 관련 있는 지식을 구성하는 결정뿐 아니라 연구자가 과학으로서 자신의 연구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과 관련된 결정의 정치적 효과이다. 따라서 비판적 경험적 연구는 이론/증거의 이분법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유효한 지식을 구성하는 요소를 형성하는 이론적 기반을 인식하는 이론/증거의 수렴에서 시작해야 한다.
Similarly, much of Freud’s work was based on an epistemology of ignorance (Hoagland, 2007). Consider that although Freud initially believed the stories of women reporting rape, he subsequently chose to discredit their testimony in favor of a theory in which women and children fantasized about being raped—a theory that helped to silence women’s voices and deny their experiences for decades. Misrepresentations of race and gender such as these found widespread scientific acceptance because they supported hegemonic worldviews in Europe and North America. Science validates itself; however, hegemonic culture provides structural validation—most particularly for epistemologies of ignorance that reproduce existing social hierarchies.
If we accept that all knowledge is socially constructed, and historically situated, we must understand social research methodologies as historically produced social formations articulated through particular discourses and systems of signification. The epistemological ground of social research developed, in part, as a legitimated form of knowledge about “the other” produced by and for those in power. Social research is itself a relation of power that produces (and is produced by) “domains of objects and rituals of truth” (Foucault, 1977, p. 194). Science itself is a cultural activity—a kind of performance that enacts itself.
The most basic (and perhaps most powerful) level of critique recognizes that in all research methods, phenomena count as “evidence” only if they are recognized in relation to a potential analysis (Gordon, 1997; Scott, 1991). Evidence is always the political effect of decisions regarding what constitutes valid and relevant knowledge as well as decisions that regard the conditions a researcher must fulfill to give her or his work value as science. Consequently, critical empirical research must begin not with a theory/evidence dichotomy but rather with a theory/evidence convergence that recognizes the theoretical foundations that shape what constitutes valid knowledge.
21세기 초, 연구 방법론의 특징 중 하나는 기술에 의해 매개되는 방식을 포함하여 사회 생활의 모든 범위를 발굴할 수 있는 역량이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세계의 비전에 완전히 부합하는 사회 연구의 비전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 학자들은 연구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뿐만 아니라 사회 연구 패러다임의 철학적 토대와 작동 가정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증거의 본질에 대한 상식적 가정의 지형을 차트화하는 것은 사회과학의 가장 신성시된 원칙들 중 일부를 동요시킨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지리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론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지도 다시 그리기(remapping)이다. 이러한 지도 다시 그리기는 역사적 가정의 독단주의를 의문으로 대체하고, 사회 연구의 확실성과 가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존재론에 대한 탐구로서, 이후 장에서 전개될 분석은 본질주의의 개념을 약화시키고, 모든 형태의 데카르트적 이원론(Cartesian dualism)—심지어 비판적 실재론과 페미니즘과 관련된 것들조차도—의 가정과 한계를 문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반실증주의(antipositivist)로 잘못 해석될 수 있지만, 이는 사회 연구에서 존재론적 약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으로 의도된 것이다. 그람시(Gramsci, 1995, p. 282)는 모든 탐구 과정이 그 자체의 특정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적 지식을 한 번에 모두 확립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정립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장소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하나의 프레임워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철학적 및 정치적 토대를 충분히 이해하여 추가적인 프레임워크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At the start of the 21st century,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research methodologies must be the capacity to excavate the full range of social life, including the ways that it is mediated by technologies. In order to continue to develop a vision for social research that is capable of being fully compatible with a vision of a socially just world, scholars need to consistently explore not only our own locations as researchers but also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and working assumptions of social research paradigms. Charting the terrain of commonsense assumptions about the nature of evidence disturbs some of the most enshrined principles of social science. It is a mapping that not only displaces old geographies but one that also contributes to new epistemic ground. It is a remapping that seeks to replace the dogmatism of historical assumptions with questions that raise doubts about the certainties and assumptions of social research.
As an inquiry into ontology, the analyses that follow in subsequent chapters will undermine notions of essentialism and call into question the assumptions and limitations of all forms of Cartesian dualism—even those related to critical realism and feminism. This position might be interpreted incorrectly as being antipositivist; it is intended as an effort to call social research to account for how ontological commitments operate in social research. Gramsci (1995, p. 282) argued that every process of inquiry needs to be congruent with its own particular purpose. There is no definitive place from which to locate the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for establishing empirical knowledge once and for all. Hence the path forward is not proposing a single framework to replace another but understanding the philosophical and political foundations of research well enough to recognize the potential and possibilities of additional frameworks.
존재론과 인식론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표준적인 사회과학적 담론 밖으로 배제되어 왔지만, 모든 사회 연구는 존재론과 인식론을 전제로 하고 이를 재생산한다. 각각은 내부 논리와 외부 검증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존재론은 "존재에 대한 이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의 유형을 지도화한다. 존재론적 질문은 현실의 형태와 본질—즉, 무엇이 알려질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해석과는 독립된 객관적인 사회 세계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가? 성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가, 아니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존재론적 질문이며, 그에 대한 답변(의식적으로든 아니든)은 사회 연구의 과정을 깊이 형성할 것이다. 존재론적 믿음은 반드시 인식론적 믿음보다 앞서는 것은 아니다—이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인식론적 약속이 우리가 세계에 대해 무엇을 믿는지 형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믿는다"를 생각해 보라. 존재론적 믿음과 인식론적 믿음은 서로 얽혀 있다.
모든 존재론적 전제는 특정 인식론적 약속, 즉 유효한 지식을 생성할 가능성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인터뷰 데이터를 중립적인(즉, 투명한) 경험의 묘사로 취급해야 하는가, 경험에 대한 상징적 해석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전략적 의미 구성 실천으로 봐야 하는가? 이는 인식론적 질문이며, 이는 사회 생활의 본질에 대한 전제—즉, 존재론적 전제—와 관련해서만 합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Ontology and Epistemology
Although discussions of ontology and epistemology have been made, by and large, to fall outside standard social scientific discourse, all social research presumes and reproduces both an ontology and an epistemology—each of which has a system of internal logic and external validation. Ontologies are “theories of being” that map the kinds of things that can exist. Ontological questions regard the form and nature of reality—what can be known.
Consider this, for example: to what extent does an objective, social world exist apart from human interpretation? Is gender socially constructed or biologically determined? These are ontological questions and the answers to them (consciously made or not) will profoundly shape the processes of social research. Ontological beliefs do not necessarily precede epistemological ones—they are not causal. Epistemological commitments can shape what we believe about the world. Consider, for example, the common expression: “I only believe what I can see.”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beliefs are entwined in each other.
Every ontological premise implies certain epistemological commitments, that is to say, certain possibilities for producing valid knowledge. Should researchers treat interview data as neutral (i.e., transparent) descriptions of experience, as symbolic interpretations of experience, or as strategic meaning-making practices? This is an epistemological question that can be sensibly answered only in relation to a set of commitments about the nature of social life—which is an ontological premise.
철학에서 인식론의 연구는 두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는 "아는 사람(knowers)"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어떤 것이 진리로 간주될 수 있는가?"라는 앎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편적 지식에 대한 과학적 강조는 필연적으로 인식론의 첫 번째 측면인 "아는 사람"의 본질을 경시했다. 이른바 보편적 지식의 생산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경험을 요구했다.이 보편적 지식에 대한 강조는 다양한 형태의 편견을 자연화하고 체계화함으로써 헤게모니적 사회 계층을 강화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페미니스트 인식론 비판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cf. Millman & Kanter, 1975), "아는 사람"의 본질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을 다루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누가 누구에 대해 유효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 지식이 생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의 과학적 믿음에 도전했다(cf. Harding, 1987; Hartsock, 1987). 관점 인식론(standpoint epistemology)은 페미니스트와 비판적 인종 이론에 기반한 사회과학 비판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가져온 문화적 전환은 두 번째 인식론적 질문, 즉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발견하거나 창조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일련의 위기를 사회과학에 불러왔다. 문화적 전환에 의해 영향을 받은 방법론적 비판은 존재의 본질, 진리의 정치, 지식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실용적으로 이는 증거, 주체성(subjectivity), 의미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중심으로 한 학문에서 반영된다.
과학적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이러한 도전은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에서 진전을 이루었다. 해석적 프레임워크에서 작업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사회 연구의 핵심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인문학, 특히 포스트모던 및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눈을 돌렸다. 이는 다양한 정도로 전통적 사회과학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인식론적 및 존재론적 토대를 동시에 도전하는 데 기여했다.
In philosophy, the study of epistemology focuses on two questions: one regarding the individuals who know and the other regarding the process of knowing how anything can be regarded as true. Historically, the scientific emphasis on universal knowledge necessarily de-emphasized epistemology in this first sense—the nature of “knowers.” The production of so-called universal knowledge demanded universal experiences shared by universal people.
This emphasis on universal knowledge reinforced hegemonic social hierarchies by naturalizing and systematizing various forms of bias. Feminist epistemological critiques beginning in the 1960s, with few exceptions (cf. Millman & Kanter, 1975), took up epistemological critiques regarding the nature of knowers. Feminists challenged existing scientific beliefs regarding who could produce valid knowledge about whom, and on what terms (cf. Harding, 1987; Hartsock, 1987). Standpoint epistemology became the center of feminist and critical race critiques of social science.
Subsequently, the cultural turn heralded by poststructuralism and postmodernism ushered in a set of crises in social sciences regarding the second epistemological question regarding how we can know—how we can find or create “truth.” Methodological critiques informed by the cultural turn concern the nature of existence, the politics of truth, and the production of knowledge. Pragmatically this is reflected in scholarship that centers questions regarding the nature of evidence, subjectivity, and meaning.
These challenges to scientific ontology and epistemology have made inroads in the social sciences despite fierce resistance. Many researchers working in interpretive frameworks have turned to the humanities, particularly postmodern and poststructural thought, in order to explore key philosophical issues central to social research. This has, to varying degrees, destabilized traditional social science by challenging both epistemological and ontological foundations.
다시 한 번 강조할 점은, 인식론(epistemologies)과 존재론(ontologies)은 행동의 동기나 출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들은 특정한 행동 과정을 다른 행동 과정보다 더 타당하거나 덜 타당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통합적(그리고 종종 가정된) 개념적 매개 변수이다. 사회 연구의 인식론적 토대는 우리의 주의를 특정한 "현실"로 이끌고 다른 "현실"로부터는 멀어지게 하며, 따라서 어떤 연구 프로젝트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그리고 무엇이 합법적으로 논의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존재론적 및 인식론적 토대는 데이터를 인식하고 수집하며 분석하는 전략을 구축한다. 또한, 주체성(subjectivity), 행위성(agency), 그리고 경험의 본질과 가능성을 포함하는 개념적 약속을 제공한다.
It is important to underscore once again that epistemologies and ontologies are not motives or points of origin for behavior; rather, they are integral (and often assumed) conceptual parameters that render particular courses of action more plausible, or implausible, than others. The epistemic foundation of social research directs our attention to certain “realities” and not to others and thereby determines the horizon of possibilities for any research project—what can and cannot be seen as well as what can and cannot legitimately be argued.
As noted earlier,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foundations establish strategies for recognizing, collecting, and analyzing data. They also provide conceptual commitments that include the nature and possibilities of subjectivity, agency, and experience.
주체성
주체성(subjectivity)에 관한 이론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교차점에 위치한다(Hall, 2004, p. 4). 모든 주체성 개념에는 존재론적 관여가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질적 프레임워크는 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전체적으로, 주체성 이론은 두 가지 큰 범주로 나뉜다. 그 중 가장 초기의 범주는 주체를 고유한 진리를 가진 개인으로 정의하며, 주체는 자아(self)와 동의어로 간주된다. 플라톤(Plato)에서 포퍼(Popper)까지, 모든 현상(생물이든 무생물이든)은 고정된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어떤 면에서는 유한하게 만들었다.
자아는 신성하거나 생물학적인 것으로(혹은 이 둘의 결합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사회적 산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본질로서의 진리(truth-as-essence)"라는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 및 객관성의 구축에서 비롯되었다. 자아를 사회 생활과 개념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연구를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반영하는 거울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고정된 본질의 반영을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플라톤과 데카르트(Descartes)는 모두 세계의 객체와는 별개의 이성적 주체를 상정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에게는 플라톤보다 더 극명한 방식으로 인식론적 자율성에 대한 투쟁이 있었다. 데카르트는 "결함, 불순물, 그리고 불확실성으로부터 정화된 지식 체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제외한 모든 믿음을 보류했다"(Longino, 2007, p. 104). 『형이상학적 명상(Metaphysical Meditations)』(1641)에서, 데카르트는 오늘날 현대적이고 이성적인 주체로 알려진 개념을 제안했다. 데카르트에게 주관적 정체성은 자기 재현에 대한 마음의 인식이며, 이 점에서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연결하는 반사적 이성 과정의 결과로 이해되었다. 개인의 의식은 스스로에게 투명하며, 육체적 경험과는 독립적인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Longino, 2007, p. 105).
Subjectivity
Theories of subjectivity stand at the intersection of ontology and epistemology (Hall, 2004, p. 4). An ontological investment inheres in every conception of subjectivity—and every qualitative framework articulates this investment in different ways. Overall, theories of subjectivity fall into two broad categories. The earliest of these defines a subject as a person with his or her own truth; the subject is synonymous with the self. From Plato through Popper, all phenomena (animate and inanimate) were thought to have fixed, essential natures—which made understanding both possible and, in some respects, finite.
The self might be understood as divine or biological (or some combination of these), but it was not understood as a social product. The concept of “truth-as-essence” originated in the Enlightenment construction of science and objectivity. The conceptual separation of the self from social life makes it possible to think of research as mirroring what exists in nature, as producing a reflection of other fixed essential essences that exist around us.
Both Plato and Descartes allowed for a rational subject that stands apart from the world of objects. However, the struggle for epistemic autonomy was even starker for Descartes than for Plato. Descartes “suspended belief in all but his own existence in order to recreate a body of knowledge cleansed of faults, impurities, and uncertainties” (Longino, 2007, p. 104). In Metaphysical Meditations (1641), Descartes proposed what has come to be known as the modern, rational subject. For Descartes, subjective identity is the mind’s awareness of its own representations—in this sense, it results from a rational process of reflection that bridges inner and outer worlds. Individual consciousness is transparent to itself and operates according to principles that are independent of embodied experience (Longino, 2007, p. 105).
데카르트(Descartes)는 **주체(subject)**라는 용어를 **객체(object)**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하여 완전한 의식과 행위성을 가진 개인을 나타냈다. 따라서 행위자(agent)와 행위성(agency)의 개념은 서로 결합된다. 이 주체/객체 이분법은 **데카르트적 이원론(Cartesian dualism)**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구자(주체)가 객체를 연구하고 측정하는 과학적 연구의 기반이 되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이 특히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사회 연구의 "객체"가 대체로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주체/객체 구분에서 비롯된 논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의 철저히 고립된 개인은 이상적인 "아는 자(knower)"로 간주되었다. 데카르트적 전제는 우리가 객체와 사실을 세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경험적 주장(empirical claims)은 감각적 관찰에 의해 검증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증거"는 지역적 맥락에서 지적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적 관찰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이성을 항상 감각을 정당화하는 궁극적인 도구로 간주했다.
이성이 없으면 감각적 지각에 대해 잘못되거나 속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우위를 주장하며 신체를 단순히 정신의 수단으로 축소했다. 이로 인해 **데카르트적 자아(Cartesian self)**는 본질적으로 비신체적(disembodied)일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은 주체와 객체, 사람과 외부 세계 간의 급진적인 분리를 전제로 하는 존재론적 전제를 주장한다. 따라서 이는 객체주의(objectivism)라는 인식론(세계가 어떻게 알려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지속적으로 효과적으로 도전받아 왔다. 초기 서구 과학은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수용했으며, 수백 년 동안 여러 차례 도전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류 사회과학 연구의 핵심을 정의하고 있다.
Descartes used the term subject in opposition to the term object to indicate an individual fully endowed with consciousness and agency—hence the concepts of agent and agency collapse into each other. This subject/object dichotomy, known as Cartesian dualism, became the foundation of scientific research in which researchers (subjects) study and measure objects. Within the social sciences, this has particular consequences since the “objects” of social research are generally other people.
Despite the logical problems created by subject/object distinctions, Descartes’ radically isolated individual became the ideal knower. Cartesian presuppositions enable us to experience objects and facts as being in the world. Empirical claims are those that can be verified by sensory inspection—hence the conception of “evidence” as something one can point to in a localized context. However, despite this emphasis on sensory inspection, Descartes held that reason was always the ultimate tool of knowledge that validated the senses. Without reason, one could be mistaken about, or deceived by, sensory perception. In asserting the primacy of the mind, Descartes reduced bodies to vehicles for the mind. The Cartesian self is by its very nature disembodied.
Cartesian dualism asserts an ontological premise in which there is radical separation between subject and object and between people and the external world; consequently, it advances an epistemology (a theory of how the world can be known) of objectivism, which as noted earlier, continues to be effectively challenged. Early Western science embraced Cartesian dualism, and despite hundreds of years and multiple challenges, it continues to define the heart of mainstream social science research.
가장 최근의 주체성(subjectivity) 이론은 주체를 개인(person)으로 보지 않고, 집단적 사회 관계를 표현하는 담론적 범주로 간주한다. 후기구조주의자(poststructuralists)와 포스트모더니스트(postmodernists)는 알튀세르(Althusser)의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주체를 사회적 과정의 표현, 즉 사회적 구조의 구현과 물화(reification)로 개념화한다.
예를 들어, "흑인(Black)"이나 "이성애자(heterosexual)"와 같은 용어는 문화와 권력의 산물로 이해되며, 이는 주체의 위치(subject location)를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체의 위치는 역사적이고 담론적인 동일시의 범주이다. 개인은 알튀세르가 "호명(interpolation)"이라고 명명한 과정을 통해 주체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는데, 이는 이데올로기적 강제와 개인적 동일시의 이중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인종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화는 개인을 특정 인종 범주나 주체의 위치에 속하는 것으로 "호명"하며, 이는 개인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주체성은 "차이(difference)"를 나타내는 지배적인 문화적 표시로, 상징적인(symbolic) 것과 상상적인(imaginary) 것 간의 긴장과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주체는 반복(repetition)을 통해 생성되지만, 반복의 과정이 동일한 반복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또한 반복의 과정이 매번 새로운 주체를 생성하지도 않는다(Butler, 199 ). 각 반복은 다른 반복의 표현인 동시에 변화와 변형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주체는 반복적으로, 그리고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르게 생성되기 때문에 저항, 비순응(nonconformity), 변형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반복 자체의 과정은 호명의 정상화(normalization)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Butler, 1997a).
The most recent theories of subjectivity regard subjects not as persons but as discursive categories that articulate collective social relations. Poststructuralists and postmodernists draw from Althusser to conceptualize subjects as the expression of social processes—the embodiment and reification of social structures.
For example, terms such as “Black” or “heterosexual” are understood as subject locations that are the products of culture and power. Subject positions, in this sense, are historical and discursive categories of identification. Individuals come to occupy subject locations through a process Althusser identified as interpellation, which might be understood as a dual process of ideological coercion and personal identification. For example, no one is born with a racial identification; culture “hails” individuals as belonging to a particular racial category or subject location that becomes part of a personal identity.
Subjectivities are dominant cultural markers of “difference” that shape individual identity through the tension and interplay between the symbolic and the imaginary.
Subjects are produced through repetition, but the process of repetition does not produce identical iterations—neither does the process of repetition produce subjects anew over and over again (Butler, 199 ). Each iteration is an expression of others but also open to variation and change. Because subjects are created repeatedly, differently, and in different circumstances, the possibilities of resistance, nonconformity, and variation become possible. The process of repetition itself can undermine the normalizing force of interpellation (Butler, 1997a).
우리의 내면적인 삶은 불가피하게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더 넓게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Mansfield, 2000). 이것은 특히 주변화된 주체성(marginalized subjectivities)에게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주변화된 주체성은 항상 지배적인 주체성에 의해 생성되거나 그것에 반대하여 생성된다. 예를 들어, 특정 특성을 “장애(disability)”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능력(ability)”으로 이해되는 특성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학자들이 더 이상 능력에 대한 단순하거나 고정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주체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 된다.
주체 위치(subject positions)는 결코 개인적인 형성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항상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서 무엇과 연결되어 있다. 주체성은 "우리가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성별, 계급, 나이, 인종, 정체성 등의 표현을 받아들이고, 이를 처리하여 우리가 동시에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일상적인 건설의 지속적인 작업"이다(Pollock, 2008, p. 252). 푸코(Foucault, 1972, p. 115)는 주체가 "말하는 의식이 아니며, 표현의 저자가 아니고, 특정 조건에서 다양한 개인들이 채울 수 있는 위치"라고 주장했다.
주체성 이론은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비할 데 없고 지속적인 중요성"을 가진다(Hall, 2004, p. 5). 21세기에는 주체성, 행위성(agency), 경험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후 장에서는 주체성 문제와 관련된 세 가지 주요 질문을 제기하고 답할 것이다.
- 첫째, 분석적 귀납법(analytic induction),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 민족방법론(ethnomethodology)은 지식의 객체/주체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 둘째, 지식의 객체/주체가 구성되는 방식에 내포된 인식론적 및 존재론적 전제는 무엇인가?
- 셋째, 그 정치적 효과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각 프레임워크가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결합되고 분리되는지를 개념화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 질문들은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특히 사회 정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에 투입된 연구자들에게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Our interior lives inevitably involve both other people generally and society more broadly (Mansfield, 2000) and this has particular consequences for marginalized subjectivities, which are always produced through, or in opposition to, dominant ones. For example,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selected attributes as “a disability,” only in relation to attributes understood as “ability.” If scholars no longer accept a simple or fixed notion of ability, it becomes incumbent upon researchers to understand the social conditions through which people come to occupy the subject position of “disabled.”
Subject positions are never individual formulations; they are always linked to something beyond personal experience. Subjectivity “is a constant work of daily construction that involves both receiving representations made to us by culture—of gender, class, age, race, identity and so forth—and processing these significations so that we are at once produced and (re)producing” (Pollock, 2008, p. 252). Foucault (1972, p. 115) argued that a subject is “not the speaking consciousness, not the author of a formulation, but a position that may be filled in certain conditions by various individuals.”
Theories of subjectivity have “unparalleled and enduring importance” for understanding the possibilities for social change (Hall, 2004, p. 5). In the 21st century, problems of subjectivity, agency, and experience are at the heart of questions about human existence. Subsequent chapters pose and answer three key questions with respect to issues of subjectivity. First, how do analytic induction,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constitute their objects/subjects of knowledge? Second, what epistemological and ontological assumptions are implicit in the ways that objects/subjects of knowledge are constituted? And, third, what are the political effects? These questions are critical to understanding how each framework conceptualizes the ways that people are bound together and set apart in society. Consequently, they hold special importance to social science researchers in general and more specifically to those researchers who are invested in scholarship aimed at issues of social justice.
행위성(Agency)
모든 주체성 이론은 이에 상응하는 행위성 개념과 연결된다. "행위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식적인 태도에서는 행위성은 환경의 일부 측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만큼 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행위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론적 서사를 다뤄야 한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적(몸/정신) 이원론에서 파생된 행위성 개념은 의식과 정신과 연관된다—행위성은 행동을 이끄는 생각이나 의도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신체는 사회적 행동의 조건으로 나타나거나 행동을 받는 객체로 나타난다. 상식적인 태도와 많은 사회 연구는 행위성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다.
두 번째 물결 페미니즘은 성별과 성(sex)이 자연적 본질이라는 개념에 도전하면서 행위성에 대한 상식적 이해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신체를 자연적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즉 신체화의 과정의 결과로 본다면, 우리는 신체와 행위성의 중심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분석이 데카르트적 존재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이 긴장은 탐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반면, 후기구조주의적 존재론에 뿌리를 둔 페미니즘은 사회 분석의 중심에 행위성 문제를 놓았다. 성별이 생물학적으로 고유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사람들은 "성별을 구성"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로 인해 우리는 성별이 있는 존재로서 인식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단지 헤어스타일과 의복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언어, 태도, 상호작용 스타일까지 포함된다. 이 관점에서 성별의 성취 뒤에 있는 행위성의 근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성별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면, 성별에 맞는 태도는 얼마나 개인의 행위성에 의한 것인가?
Agency
Every theory of subjectivity is tethered to a corresponding conception of agency. What does it mean to speak of agency? To a commonsense attitude, agency might be as simple as the ability to affect some aspect of our environment. The question becomes more complex if we ask, “Where is the locus of the action that affects our environment?” In order to understand “agency,” we must first lay claim to an ontological narrative. For example, notions of agency derived from Cartesian (body/mind) dualism are associated with consciousness and the mind—agency begins with a thought or intention that directs action. In Cartesian dualism, bodies emerge either as the conditions of social action or as objects that are acted upon. Commonsense attitudes, and much of social research, reflect this orientation to agency.
Second-wave feminism, by challenging the notion of gender and sex as natural essences, complicated a commonsense understanding of agency. If we consider bodies not as natural but as socially constructed—that is, as the results of the processes of embodiment—we must reconsider both the meanings of bodies and the locus of agency. To the extent that feminist analyses are rooted in Cartesian ontologies, however, this tension is left unexplored. By contrast, feminisms rooted in poststructural ontologies have placed issues of agency at the center of social analysis. If gender is socially constructed, rather than biologically inherent, people must learn to “construct” gender and by implication, put some measure of effort into making ourselves recognizable as gendered beings. This is not only a matter of hairstyle and clothing but also includes body language, demeanor, and interactional styles. From this perspective, how do we locate the source of agency behind the accomplishment of gender? If gender is not an individual choice, to what extent is gendered demeanor a matter of individual agency?
행위성(Agency)의 핵심에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 서사와 그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거나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론적 서사가 있다. 존재론적 서사는 행위성의 중심이다. 그러나 행위성이 전적으로 개인적이라고 할 수 없는 표현에 직면했을 때, 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 제도의 제약적인 힘을 처음에 찾았다. 전통, 규범, 역할과 같은 사회 제도의 제약적 힘, 그리고 거짓 의식(false consciousness)과 법적, 교육적 시스템을 포함한 공식적인 사회 제도들이 주요한 초점으로 등장했다. 자유 의지와 사회적 통제의 힘이 자유 의지를 제한하는 것 사이의 긴장은 사회 연구에서 거시적/미시적 구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경험적 분석은 일반적으로 제약 구조에 대한 거시적 분석이나 개인 행동의 행위성을 전면에 내세운 미시적 분석 중 하나로 다룬다. 미시적과 거시적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은 데카르트적 이원론(Cartesian dualism)의 영향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행위성에 대한 질문의 핵심은 세계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 서사와 그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거나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론적 서사에 있다.
급진적 및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인간과 언어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개인으로 주체를 보는 인간주의적 주체성 개념에 의존한다.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인간주의적 주체와 달리, 후기구조주의적 학문은 주체성을 끊임없이 진행 중인 것으로 설정하며, 이는 불안정하고 모순적이다. 주체성의 구성된 특성은 행위성의 전제 조건을 형성한다(Butler, 199 ). 실제로 변화의 가능성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 관점에서 행위성은 항상 가능하고 항상 정치적이다. 행위성은 항상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자리잡고, 어느 정도는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행위성은 결코 전적으로 자유롭지도, 전적으로 제약되지도 않는다. 이후 장에서는 행위성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지속적인 긴장을 다루고, 제약을 구조적이며 행위성을 개인적이라고 이해하려는 충동을 초월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려고 시도할 것이다.
At the heart of issues of agency are ontological narratives regarding the nature of the world and epistemological narratives about how that world can be apprehended or known. Ontological narratives are central to agency. However, when faced with expressions of agency that cannot be said to be entirely individual, scholars initially turned to the constraining forces of social institutions to explain human behavior. Tradition, norms, and roles, along with other constraining forces such as false consciousness and formal social institutions (including legal and educational systems), emerged as key focal points. The tension between notions of free will, and the forces of social control that constrain free will, is directly related to the macro/micro divide in social research.
Empirical analyses typically regard either macro analyses of constraining structures or micro analyses that foreground the agency of personal action. The binary distinction between micro and macro echoes the effects of Cartesian dualism. Again, at the heart of questions of agency is an ontological narrative about the nature of the world and an epistemological narrative about how that world can be apprehended or known.
Both radical and liberal feminisms rely on a humanist conception of subjectivity that conflates subjects with autonomous, rational individuals who exist separate from and outside of language. In contrast to a humanist subject that is essential and more or less fixed, poststructural scholarship posits subjectivity as constantly in process; it is both precarious and contradictory. The constituted character of subjectivity forms the precondition of agency (Butler, 199 ). Indeed, the possibility of change exists precisely because there is not essential nature that binds us irrevocably. From this perspective, agency is always possible and always political. Agency is always situated in, and to some extent determined by, specific historical, political, and social factors—it is never entirely free, nor entirely constrained. Subsequent chapters take up this lingering tension regarding the nature of agency and attempt to demonstrate the importance of transcending the impulse to understand constraint as structural and agency as personal.
경험(Experience)
긍정주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데카르트적 틀은 경험을 가진 주체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며, 이 경험은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연구자가 연구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단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객체와 사건을 인식하는 것일까? 언어는 현실을 묘사하는 중립적인 도구일까? 현실은 “스스로 말하는 것”일까? 해석주의자(interpretivists)는 이러한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경험은 항상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Scott, 1991, p. 777). 그리고 언어는 항상 사회적 의미를 구성하는 데 관여한다. 해석주의자들은 모든 의미가 지역화된 맥락에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은 지역화된 맥락에서 위치 지어지고 설명되어야 한다. 해석주의자들에게 탈맥락화된 데이터는 모순적이다(Northcutt & McCoy, 2004).
그러나 필요한 맥락은 얼마나 될까? 맥락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디어의 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 연구자가 연구 설계의 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맥락이라는 개념은 주체성, 행위성, 제약에 대한 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좁은 의미의 맥락은 우리의 연구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연구에 무엇을 비용으로 부과할 수 있을까? 이후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분석적 귀납법(analytic induction),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 민족방법론(ethnomethodology)은 각기 맥락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한다. 맥락에 대한 질문은 물론 경험의 구성된 본질, 주체의 구성, 그리고 경험이 스스로 일종의 증거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관련이 있다. 과학 철학과 과학의 실제를 모두 다루면서, 이후 장에서는 연구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실용적인 문제와 연구의 실제 응용에 근거하여 전개할 것이다.
Experience
The Cartesian framework that underlies positivist research presumes a subject who has experiences, which can then be objectively measured. But do people simply have experiences that researchers can then study? Do we simply recognize objects and events that appear before us? Is language a neutral tool for describing reality? Does reality “speak for itself”? Interpretivists would answer “no” to these questions. Experience is always an interpretation of events, not a mere encounter with them (Scott, 1991, p. 777), and language is always implicated in constructing social meanings. Interpretivists argue that all meaning is situated in localized contexts; all efforts to understand social interaction must be located and described in a localized context. For interpretivists, decontextualized data are oxymoronic (Northcutt & McCoy, 2004).
However, just how much context is necessary? What constitutes a context? What is the social context of media? How does a researcher draw logical boundaries around the social contexts of a research design? How does the notion of context affect conceptions of subjectivity, agency, and constraint? What can a narrow sense of context offer to our research? What can it cost our research? As we shall see in subsequent chapters, analytic induction,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each take a different position in response to questions of context. Questions about context are, of course, related to questions about the constructed nature of experience, about the constitution of subjects, and about whether or not experience can in itself serve as a kind of evidence. By engaging both the philosophy of science and the practice of science, subsequent chapters ground critiques of methodology in pragmatic concerns and practical applications of research.
사회 연구에 대한 함의
모든 사회 연구 패러다임은 다양한 정도로 헤게모니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연관되어 있다. 사회 연구의 철학적/이론적 토대를 이해하는 것은 보다 효과적인 사회 연구에 기여한다. 또한 학자들이 사회 연구에서 사용되는 분석적 구성의 물화를 비판하고, 이를 통해 무엇이 유효한 지식으로 간주되는지를 보다 넓게 변화시킬 수 있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 연구의 토대에 대한 탐구는 과학 담론이 기존의 권력 관계를 어떻게 재생산할 수 있는지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한다—비록 그것이 불평등을 드러내고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사용될지라도 말이다.
역사적으로, 질적 연구자들은 헤게모니적 과학 개념에 대한 도전의 중심에 있었다. 이러한 도전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학자들은 질적 연구자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법들을 더 효과적이고 지식 생산 과정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많은 분야에서 연구자들은 유효한 지식을 생성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이론은 사회 연구에 가져오는 것으로 다루어지며, 연구 과정에서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는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사회 연구 방법론을 배우는 방식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해석적 연구 전략 훈련에 특히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과 민족방법론(ethnomethodology)은 때때로 연구 방법론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때때로 사회 이론으로 이해되는 다소 양립적인 프레임워크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상징적 상호작용과 민족방법론을 사회 이론으로 소개하지만, 학생들은 상징적 상호작용과 민족방법론을 방법론으로 배우게 된다. 하나의 텍스트 내에서도 상징적 상호작용과 민족방법론을 한 장에서는 이론으로, 다른 장에서는 방법론으로 언급하는 경우를 종종 찾을 수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과 민족방법론은 사회 연구의 인프라의 일부로 다뤄지지만, 연구 방법론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연구 방법론은 사회 연구자가 잘 구축된 연구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분석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그러나 상징적 상호작용과 민족방법론은 사회 이론으로서, 즉 사회 이론이 제공하거나 제공하려는 중요한 예측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 생활의 일관된 설명으로 경험적 분석과 구별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회 이론은 사회 생활을 이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현상을 시스템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페미니즘, 세계 체제 이론, 마르크스주의가 빠르게 떠오른다.
Implications for Social Research
To varying degrees, all social research paradigms are implicated in sustaining hegemonic social orders. Understanding the philosophical/theoretical foundations of social research contributes to more effective social research. It also enables scholars to critique the reification of analytical constructs used in social research and thereby more broadly transform what counts as valid knowledge. In this sense, inquiries into the foundations of social research get at the root of how discourses of science can reproduce existing relations of power—even as they are used to reveal inequalities and advance remedies for social problems.
Historically, qualitative researchers have been at the center of challenges to hegemonic conceptions of science. These challenges continue today as scholars attempt to make the methods most widely used by qualitative researchers both more effective and more accountable for their own processes of knowledge production.
In much of the social sciences, researchers tend to focus on techniques for creating valid knowledge and to treat theory as something that one brings to social research, rather than as something already embedded in the research process. This has had particular consequences for how students learn social research methodologies generally—and particularly dramatic consequences for training in interpretive research strategies. For example,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each have histories as somewhat amphibious frameworks; at times they are understood as research methodologies and at times as social theories. Textbooks typically introduce students to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as social theories, yet students learn to engage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as methodologies. Even within a single text it is possible to find ethnomethodology and symbolic interaction referred to as theories in one chapter and methodologies in another. Both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are engaged as part of the infrastructure of social research, but they are not research methodologies. Broadly speaking, research methodologies provide analytic frameworks that enable social researchers to design well-constructed research. Yet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are not social theories insofar as social theories provide (or are intended to provide) a significant level of predictive power and ably stand apart from empirical analyses as coherent explanations of social life. Typically, social theories serve to make social life intelligible by organizing phenomena into systems—feminism, world systems theory, and Marxism come quickly to mind.
일부 학자들은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과 민족방법론(ethnomethodology)을 "약한 이론(soft theory)"이라고 부르기도 하고(Iser, 2006), 일부는 이를 "미시 수준의 이론(micro level theory)"이라고 부르며(Wodak & Meyer, 2009), 또 다른 학자들은 이를 "접근법(approaches)" 또는 "관점(perspectives)"으로 언급하기도 한다(Blumer, 1986; Gusfield, 200). 그리고 또 다른 학자들은 이를 방법론적 틀(methodological frameworks)로 간주한다(Prasad, 199). 나는 상징적 상호작용과 민족방법론이 연구 방법론보다는 이론적으로 더 정교하지만 사회 이론보다는 분석적으로 덜 발전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나는 이를 경험적 작업의 기초를 변화시키는 해석적 연구 프레임워크(interpretive frameworks)로 언급한다.
대조적으로, 분석적 귀납법(analytic induction)은 연구 방법론으로 인식되며 이론적 용어로 자주 논의되지 않는다. 이는 이론적으로 불모지라서가 아니라, 분석적 귀납법의 이론적 전제가 사회 연구자들에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이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표준 분석적 귀납법에서,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모두가 사회적 세계가 존재하는 그대로 설명되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임금 격차를 설명하고 차별적 관행을 조사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질적 연구자들과 그들이 연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현실주의(realism)에 의존하게 되면, 우리는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되는 뫼비우스 띠(Möbius strip)의 논리적 등가물에 들어가게 된다. 연구자들은 두 가지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연구 참여자들 사이에서 표현되는 가장 지배적인 견해를 반복하는 합의 이론(consensus theory of truth)을 채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자들이 참여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현실주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통찰을 제한하고 사회적 정체성과 구조를 물화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현실주의가 분석적 전략으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과학에서 일부 지식 생산 형태를 "모든 연구 질문에 대한 황금 기준"으로 자연화하는 담론적 구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 연구 내에 내재된 존재론적 및 인식론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제한함으로써, 이 좁은 범위의 분석 전략은 사회 연구가 인간 경험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지난 50년 동안 다양한 해석적 실천들이 등장했지만, 사회 과학이 과학적 신뢰성을 가지게 하는 것들이 바로 형식화 과정이기 때문에, 형식화 과정의 다양화를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21세기 사회 연구가 능동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Some scholars refer to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as “soft theory” (Iser, 2006), some refer to them as “micro level theory” (Wodak & Meyer, 2009), others refer to them as “approaches” or “perspectives” (Blumer, 1986; Gusfield, 200), and still others regard them as methodological frameworks (Prasad, 199). I begin with the premise that symbolic interaction and ethnomethodology are more theoretically elaborate than research methodologies and yet less analytically developed than social theory—hence, I refer to them as interpretive frameworks for research that shift the foundations of empirical work.
By contrast, analytic induction is recognized as a research methodology and rarely discussed in theoretical terms not because it is theoretically barren but because the theoretical commitments of analytic induction generally function at the level of common sense for social researchers—that is to say, they seem to require no elaboration. In standard analytic induction, often both researchers and research participants hold a belief that they are describing the social world as it exists. This has particular value for describing wage gaps and investigating discriminatory practices. However, when qualitative researchers and those they study both rely on realism, we enter the logical equivalent of a Möbius strip that offers two alternatives. Researchers must either adopt a consensus theory of truth and reiterate the most dominant view(s) expressed among research participants or researchers must presume to know more about what is going on than do the participants. As a consequence, realism limits insight into social processes and tends to reify social identities and structures. The problem is not with realism as an analytic strategy but with a discursive construction of social science that naturalizes some forms of knowledge production as “the gold standard” for all research questions. At the same time, by limiting both the discussion of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concerns embedded within social research, this narrow range of analytic strategies prevents social research from fully accounting for human experience. That is a fundamental problem.
While a range of interpretive practices have emerged in the past 50 years, it has been quite difficult to diversify processes of formalization, since these are what give social science its scientific credibility. Yet this is essential if social research is to move ably forward in the 21st century.
결론적 생각
사회 과학적 지식은 연구를 축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의 데카르트적 기초에 따르지 않는 연구를 주변화하면서 쌓여왔다. "과학"은 일부 형태의 사회 연구를 평가절하하거나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억압된 지식을 생산해왔다. 이 특정한 합리성의 틀 내에서는 논란이 과학적 연구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오류 때문이거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결정을 내리거나, 연구자들이 "해야 할" 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발생한다고 본다(Barrotta & Dascal, 2005). 이는 사회 연구의 개념을 확장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데, 모든 개념과 현상은 "과학"의 전제 내에서 이미 확립된 이유에만 호소하여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Barrotta & Dascal, 2005).
모든 연구자는 지식의 지도를 상속받으며, 이는 사회 연구자가 작업을 시작하는 연구 상상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지도를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질적 연구 프레임워크가 어떻게 권력/지식 담론 내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사회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제약하는 일부 이데올로기적 투자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가장 큰 억압의 시대에 가장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연구 프레임워크가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연구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이는 나쁜 용도로 적용된 좋은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이 자신의 재생산 과정에 대한 인식 부족의 문제이다. 그렇긴 하지만, 지식에 대한 이상화된 추구가 지식이 개방뿐만 아니라 폐쇄로 이끄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Minh-ha, 1989, p. 40). 나는 이 작업이 완성의 과정이 아니라,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세계의 비전과 완전히 호환되려면, 우리는 연구자로서의 우리의 위치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속받은 사회 연구 패러다임의 토대와 가정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으로 의도되었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자신의 경험, 지식, 논리에 비추어 시험하고, 여기서 쓰여진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될 때 논쟁하며, 더 넓게는 다른 해석을 제시하며 공적 논의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Concluding Thoughts
Social scientific knowledge has accrued over the years not only by amassing studies but also by marginalizing research that did not adhere to the Cartesian foundations of the natural sciences. “Science” has produced subjugated knowledge by devaluing or disqualifying some forms of social research. Within this particular framework of rationality, controversies are seen as extraneous to scientific research; they arise because of errors, because decisions are made with insufficient evidence, or because researchers fail to act as they “should” (Barrotta & Dascal, 2005). This leaves little room for broadening conceptions of social research since all concepts and phenomena can be explained only by appealing to the reasons already firmly lodged within the premises of “science” (Barrotta & Dascal, 2005).
All researchers inherit cartographies of knowledge, maps that throw into relief a research imaginary from within which social researchers begin to work.
This book works at deconstructing those maps in order to demonstrate how qualitative frameworks are situated within discourses of power/knowledge and to examine some of the ideological investments that both enable and constrain social research. Contemporary researchers cannot trust that research frameworks created by the most privileged, during eras of great oppression, will serve as the basis of socially just research. It is not a matter of good methods applied to bad uses but rather academia’s lack of awareness regarding its own processes of reproduction. With that said, I also acknowledge that the idealized quest for knowledge can make it difficult to admit that knowledge leads as often to closures as to openings (Minh-ha, 1989, p. 40). I understand this work to be not a process of perfecting but of honing. To be fully compatible with a vision of a socially just world, we need to consistently explore not only our own locations as researchers but also the foundations and assumptions of the social research paradigms that we have inherited. This book is intended as a step in that direction. I hope that readers will test this book against their own experience, knowledge, and logic; argue when what is written here does not seem to fit; and more generally engage in public discussion by offering more and different interpret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