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사>
1. 어떤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매달 X라는 질병을 가진 환자 100명을 본다. 그런데 이 의사의 고용계약에는 진료 성과에 대한 특이한 조건이 하나 붙어있다. 바로 "모든 100명의 환자가 다 나으면 안 된다"이다.
심지어는 구체적으로 몇 명만 낫게 해야하는지의 비율도 정해져 있다. 다 잘 나은 환자는 반드시 100명중에 40명 이내여야 하고, 30명은 적당히 나아야 하며, 30명은 좀 계속 아파야 한다. 오히려 몇 명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건 (적어도 이 의사에게는) 괜찮다.
그래서 이 의사는 의도적으로 30명쯤 아픈 환자가 유지되도록 한다. 또한 다 나은 사람이 40명이 넘지 않도록 매우 신경을 쓴다. 40명이 넘으면 가끔은 검사 수치를 조금 손대기도 한다. 당연히 나쁜쪽으로. 만약 최선의 진료를 하다가 자칫 100명이 다 낫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교수>
2. 여기서 의사를 교수로, X라는 질병은 X라는 과목으로, 환자는 학생으로, 다 나은 것을 A학점으로, 적당히 나은 것을 B학점으로, 계속 아픈 상태를 C학점, 검사 수치를 원점수(성적)로 바꾸면, 상대평가에서 학점을 부여해야 하는 교수가 처한 입장이 된다.
어제 본1 수업에서 한 시간 동안 자율적으로 오픈북 과제를 하는데(심지어 교수에게 답안을 작성하여 이게 맞게 한거냐고 물어봐도 됨), 그 시간동안 "질문하지(즉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음"에 내심 안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이 이상한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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