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석에 관한 교수(또는 대학)와 학생의 갈등은 마치 군비경쟁을 보는 것 같다. 한 쪽에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 다른 쪽에서는 그 무기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양쪽이 모두 소모되고, 잔머리와 꼼수와 편법과 비윤리도 등장한다.
2. 그런데 사실 이건 양측(물론, 정확하게는 양 측의 "일부"교수와 "일부"학생)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애먼 출석을 가지고 벌이는 싸움일 뿐이다. 즉, 배움이 있고 놓치기 아까운 수업을 만들어야 하는 교수의 책임과, 자신의 잘못(=결석)에 따른 결과를 기꺼이 감당해야 할 학생의 책임을 말한다.
3. 을지대에 있는 동안 나는 출석을 널널하게 하기보다는 빠듯하게 하는 편이었는데, 2의 이유로 이는 나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모든 학생에게 출석을 강요(?)한 이상, 역설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일단 출석만 하면 무언가는 배워가고 얻어갈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할 의무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출석체크 강화'이지만, 사실은 '출석은 되게 빡빡한데, 정작 수업은 별로다'고 평가받을 위험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안는 것이다.
4. 다른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로 출석에 따른 처벌(=학생의 책임)만 강화하면 따라올 결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몸만 출석한 상태로 마음은 딴 곳에, 머리는 딴 과목에, 손은 핸드폰에 있는 학생을 감수하거나(이미 "출석"해 있으니 뭐라 할 명분이 없다), 다른 하나는 "교수님들께서도 (양질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다하시지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5. 사실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출석은 "물리적으로 몸이 그 장소에 있으면 되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떤 과목에서나 기준이 명확하고, 무엇보다 상한선이 존재하는 평가이다. 그런데 양질의 교육은 학생마다 다르고, 과목마다 다르고, 학생과 과목이 같아도 해마다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그 상한선도 불분명하다. 얼마나 잘 해야 양질의 교육인건데?
출석을 강화하는 것은, 어쩌면 학생보다 교수가 훨씬 큰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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