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읽고 씁니다.

서울의대 통합교육과정의 변화(2021년 11월 30일의 기록)

Meded. 2022. 12. 11. 06:55

1. 내가 겪었던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는 1년간 기초의학을 배우고, 1년간 장기계통 통합과목을 배우고, 2년간 임상실습을 했다.

 

2.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학문단위(Discipline-based)"로 이루어져 있었다거나, 1900년대 초부터 의사양성이 "도제식 교육"에서 "2년의 기초의학 + 2년의 임상실습"의 구조를 갖게 되었다거나 하는 말들이 개념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어떤 형태였는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3. 그러다가, 지난 포스팅을 쓰고 나서, 내가 의과대학을 다니기 전에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과정의 모습이 어땠는지가 문득 궁금해졌고, 지도교수님께서 2000년에 쓰셨던 논문을 읽게 되었다. 

 

4. 서울의대에서 1970년대 이후 장기계통 통합교육과정이 도입되어 온 이후의 변화를 정리한 논문이다. 그 당시에 문제로 지적되었던 것이 지금도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에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5. 몇 가지를 살펴보면,

▷ 표에도 나오지만, 1969년까지만 해도 진짜로 기초의학이, 2년 동안, 학문단위로 진행된다. (표2)

▷ [기초의학 1년 + 장기계통 1년]이라는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2000년 이후이다. (표7)

▷ 그리고 서울의대 현재 교육과정은 마지막 그림과 같다. 

 

6. 이제는 남의(?)학교가 된 서울의대 시간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애초에 인용한 논문이 서울의대 교육과정을 다룬 것이었으니까라고 합리화하며, 지금의 상태는 충분히 바뀐 것일까, 충분히 바뀌지 않은 것일까.

 

7. 자동차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바퀴가 두 개, 뒷바퀴가 두 개라고 해서 누구도 1900년의 자동차가 2020년의 테슬라와 같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8. 그렇지만, 동시에 앞바퀴가 두 개, 뒷바퀴가 두 개라는 구조와 크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자동차는 비행기가 못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황에 따라서는 자전거나 전동킥보드가 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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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1971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의학교육과정에 통합교육을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30년 동안 운영하였으며, 이 기간에 서울의대의 통합교육은 다른 의과대학 통합교육과정의 본보기 모델 (role model)로 활용되었다.2,4,17 그러나 선구적 도입이라는 긍정적 측면 뒤에는 숱한 시행착오와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감추어져 있다. 이를 반영하여 1998년 이후 서울의대가 시도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개편 (통합교육의 전면적 채택을 골간으로 하는 ‘신교육과정’의 도입)을 둘러싸고 학내에 형성된 토론의 장에서 통합교육은 ‘임상특과 선택제도 (elective)’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논쟁 주제가 되었다."

 

▣ 요약 및 결론

"서울의대는 1971년 통합교육을 도입한 이후 약 10년 동안의 조정기간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형태의 통합교육과정을 갖게 되었다. 안정기로 간주되는 1981년의 통합교육은 당시로서 상당히 선진적인 것이었으며 운영도 비교적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1971년 당시 제1단계로 설정되었던 교과과정 개편의 후속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통합교육은 1981년 이후 평가와 기획 및 조정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여 교육과정은 경색을 면치 못하였고, 1981년에 수립한 중요한 몇 가지 원칙도 준수하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과정 개편의 철학이 전 교수에게 공유되지 못하였던 것과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기능이 해이해진 것, 의과대학의 중심조직인 교실을 넘어선 교육조직의 활동성을 보장하는 철학적, 인적, 물적 지원의 부재를 중요한 원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교육과정의 전면적 개편시도과정에서 드러난 통합교육을 둘러싼 학내의 이견은 이와 같은 20여 년의 정체를 반영하는 것이다."

 

▣ 역사와 현황

① 1970년대 이전의 서울의대 교육과정

"1970년대 이전의 서울의대 교육과정은 학문 단위(discipline) 위주의 교육과정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20세기 전반의 독일 의학교육제도를 모델로 채택한 일본식 의학교육제도의 영향이다. 1950년대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하여 쿼터제 (Quarter System)의 채택, CPC와 Bed-Side-Teaching의 강조 등 임상실습에 중점을 둔 부분적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일제시대 교육과정(표 1)과 1969년도 교육과정(표 2)을 비교하면 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② 1971년 통합교육의 도입

"서울의대 교과과정위원회는 1968년 당시 신동훈 교무과장이 통합교육의 선구적 대학인 미국의 웨스턴 리저브 (Case Western Reserve) 대학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후 2년 남짓에 걸친 교과과정 개편 준비작업을 마치고, 1970년 12월에 교과과정 개정안을 교수회의에 제출하여 통과시킴으로써 수십 년에 걸쳐 시행해오던 전통적 교육과정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당시 개편의 원칙으로는 “① 현행 교과과정을 수정 보완하되 점진적으로 하며 일시의 과감한 개혁을 피한다, ② 임상의학에 조기 노출시키는 방침을 채택한다, ③ 강의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실습 중심으로 전환한다, ④ 관련 과목 또는 교육내용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주제교육을 실시한다, ⑤ 자율적 교육을 권장하고 선택과목제도를 도입한다”는 5가지 항목이 채택되었으며, 개편의 성격은 ‘한국적 의학교육 목표의 설정에 적용할 수 있는 과도기적 개편’으로 간주되었다.3 여기서 제④항의 주제교육이란 통합교육을 일컫는 것이다."

 

"통합교육과정 조직의 전제 조건은 “① ‘학습자 중심’ 철학에 대한 교수들의 이해, ② 전공분야, 소속 교실의 이익이 학생들의 학습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교수들의 이해, ③ 기존 교실간의 시간‧학점 쟁탈 경쟁의식의 불식”이라고 파악되었다. 요즘의 표현을 빌자면, 이 전제조건이 만족되지 않는한 통합 (integration)이 아닌 연합 (union), 교삽 (交揷, inter-digitation)이 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였던 것이다. "

 

③ 제1기 (1971~1981)의 전개

"교과과정의 점진적 개편 방침에 따라 통합교육과목은 도입 첫해인 1971년에 7 과목이 개설되고, 1972년에 2 과목이 추가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확대되었다. 교육 시기도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쳤고 인간생태학 (지역사회의학의 상대격인 個人 生態醫學)은 1978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통합교육과목이 현재의 구조로 정착된 것은 1981년이다."

 

"한편 1976년 종합실습실 (MDL: Multidisciplinary Lab)이 준공되고 77년에는 개가식 도서관과 부속병원이 완공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과정 개편에 뒤따른 지급 (至急)한 당면과제로 지목되었던 ‘실험 및 실습시설’이 확보됨으로써 교육과정개편 목표의 달성이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되었다.3 이들 시설은 ‘실습중심교육의 강화’, ‘임상의학에의 조기노출’을 내세운 교육과정 개편을 현실화하는 기반일 뿐 아니라, ‘임상의학과의 연계’, ‘다양한 교육방법’을 전제로 한 통합교육의 정착에도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되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적인 기반시설의 확보됨에 따라 70년대 중반이후 통합교육을 포함한 전 교육과정에서 강의 이외의 교육방법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④ 제2기 (1981~1998)의 전개

"1982년에 발간된 통합교육 10년의 시행경험을 총괄하는 교육과정위원회의 소책자9는 10년 간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여 통합교육에 관한 각 수준의 교육목표를 갖추게끔 되었으니 과히 성년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하기에 주저되지 않는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제1기를 거치면서 통합교육과목의 조정이 매듭지어지고 안정적인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 1971~1981의 10년 간 조정을 거친 통합교육과정의 틀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한국적인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현실적이되 미래지향적으로 유도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교육내용의 한국화를 기도하였고, ‘주제는 필요에 따라 확대 내지 통합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사회적, 의학적 요구를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후 20여년간 이 규정이 적용된 예는 없었다."

 

"[시간표, 교재 작성의 유의사항 (1978년)]

‧ 반드시 소위원회의 토의를 거친 후에 작성할 것

‧ 전년도 시간표와 교재를 검토하고 발견된 문제점을 참고할 것. 학생들이 작성한 문제점도 동시에 참고

‧ 계획성 있고 교육목적이 분명하게끔 작성할 것(교수 중심이 아니고 학생 중심으로 기안함)

‧ 이유 없는 중복은 피한다 (사전에 관련과목의 교육 시행여부를 조사할 것)

‧ 강의가 반드시 최선의 교육방법이 아님을 참고할 것

‧ 연속 3시간 이상의 강의는 학습효과를 저하시킴을 참고할 것

‧ 실제 임상증례 (환자, 모의)를 보이고 토의하는 것이 학습효과를 증진시킨다는 점을 참고할 것

‧ 단일 교과목에서 한 교수가 3~4시간 이상 담당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할 것

‧ study day는 마지막날 오후로 하되 주중 (예; 수요일)에도 하루 오후 자습시간을 부여하도록 할 것

‧ 첫날 첫 시간 중 최소한 15~30분은 책임교수의 “Introduction to the Course"할 것

‧ 책임교수 및 소위원회 위원은 필요에 따라 교체될 수도 있다

‧ 교육평가표를 반드시 교재 뒤에 추가하고 그 내용을 소위원회에서 검토하여 차기 년도 기획에 반영할 것"

 

"(통합과목에) 기초의학의 비율은 76년에 32%이던 것이 82년에는 27%, 98년에는 21%로 계속 감소하였다. 이는 도입 당시의 ‘기초의학 각론’을 중심으로 한다는 원칙이 시간이 갈수록 희석된 결과이며, 소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탓으로 해석된다."

 

"교실이라는 교육행정의 담당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이를 토대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교육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통합교육 책임교수 및 운영위원회에 그에 합당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즉, 책임교수는 의학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에 헌신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인력으로 선정되어야 하고, 교육과정의 준비, 새로운 교육방법의 도입, 교육자료의 개발 등에 투여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지원을 보장받아야 하며, 이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통합교육은 ‘모두가 주인인 땅이 주인 없는 땅으로 방치되는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Commons)’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여 통합교육에 대해서 주로 아래와 같은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 취지와 달리 교과목 간 교육내용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 교육 방법은 오로지 강의에 의존하여 천편일률적이었다.

‧ 책임을 맡은 교실의 강의시간을 일방적으로 늘리는 데만 기여하였다.

‧ 교수나 교실간의 교육시간 조정이 어려워 시대변천에 따른 교육내용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였다.

‧ 평가가 일회적이고 암기위주여서 학생들은 2주 단위로 암기하고 치우는 하루살이 식의 공부를 하고 있다."

 

⑤ 1999년도의 개선 노력

"이상의 문제점과 비판에 따라, 서울의대는 1998년 말부터 통합교육의 개선을 추진하였다. 우선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생식의학 및 가족계획」을 폐지하고 「의학유전학」을 신설하였으며, 「임상총론」을 3학년초로 이동하였다. 또한 각 통합교육 책임교수에게 강의축소와 다양한 교육방법 도입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1999년도에 「신경학」은 PBL을 도입하였으며, 「면역학」은 교육시간을 47시간에서 30시간으로 대폭 축소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율학습에 할애하여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