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학교육연맹(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 WFME)은 1972년에 설립된 비영리 비정부기구이다. WFME는 의학교육 인증을 촉진하고, (인증과 관련한) 전문가 합의 스탠다드를 출판하며, 세계 의과대학 명부(the World Directory of Medical Schools)를 유지 관리한다. WFME는 2003년에 의과대학 교육에 대한 일련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발표했으며, 2012년, 2015년, 2020년에 업데이트 버전을 발표하였다.
외국 의대 졸업생 교육위원회(The Educational Commission for Foreign Medical Graduates, ECFMG)는 1956년에 설립되었다. ECFMG는 미국 의사 인력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외국 의대 졸업생(IMG)을 인증하는 민간 비영리 비정부 기구이다. 2010년 ECFMG는 '2023년부터 ECFMG 인증을 신청하는 의사는 적절한 인증을 받은(accredited) 의과대학을 졸업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WFME는 2010년 ECFMG의 발표에 따라 2012년에 인정 프로그램(recognition programme)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각 의과대학이 ECFMG 판정을 충족하는 기본 방안이 되었다.
문제는 WFME와 ECFMG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있다. 바로 전자의 범위가 전 세계인 반면, 후자의 범위는 국가 단위라는 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 국가,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의 한 기관이 내린 결정이 전 세계적으로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는 처음으로 글로벌한 영향력을 갖는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의과대학에 대한 규제가 활성화되었다 의미를 지닌다. 물론 WFME는 어디에서도 의학교육 인증 스탠다드 또는 인정 프로그램이 의과대학을 표준화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ECFMG 성명서의 존재)은 본질적으로 이를 암시한다.
이러한 의과대학 규제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담론은 크게 두 가지이다.
- 하나는 이타주의(altruism)이다. 이 담론에서 ECFMG 정책은 궁극적으로 전 세계 의학교육을 현대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타주의는 서구가 동양을 현대화하고 개선함으로써 동양을 '문명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 다른 하나는 국수주의(nationalism)이다. 이 담론에서 ECFMG 정책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의료 표준을 유지하고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국수주의는 서구가 신뢰할 수 없는 '야만적인' 동양을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ECFMG가 WFME와 연합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담론에 모두 부합한다. 반면 WFME의 이점은 명확하지 않다. ECFMG의 판결이 발표되기 몇 년 전부터 WFME는 이미 '인증기관을 인증'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다만 실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ECFMG의 선언은 WFME에게 인정 프로그램 참여를 의과대학에 강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로 WFME 인정 프로그램은 ECFMG 발표 이후 빠르게 발전하고 확대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WFME가 정책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ECFMG와 협력하는 권력 관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Rashid, M. A. (2023). Altruism or nationalism? Exploring global discourses of medical school regulation. Medical Education, 57(1), 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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