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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2020년 9월 26일의 기록)

Meded. 2022. 10. 7. 07:24

1.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얘는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느냐고 할 것이다.

 

2.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의사는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아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종이에서만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아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롭게도 심지어 그 환자를 진단도 하고 오더도 낸 적이 있다. 그 환자는 누구일까?

 

3.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사도 분신술을 하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역시나 조건이 있다. 환자가 물리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너무 당연한가?

 

4.
어제 내 눈 앞에는 70명의 분신술을 한 환자가 있었다. 한 명은 배가 아파서 온 40대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가슴이 아파서 온 60대 남성이었고, 또 자꾸 보채서 온 8세 어린이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많아서 다 기억은 못하겠다. 비유가 과했나. 그렇다, 객관식 시험 이야기이다.

 

5. 
어제 나는 본과4학년 임상의학종합평가(aka 임종평) 감독을 하고 있었다. 40여명의 학생은 각자 외로운 70대1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이는 흡사 바둑에서 다면기를 연상케 했다. 한 명의 대가(여기서는 70명의 환자, 아니 70개의 문항)가 여러 하수를 상대로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싸움.

 

6.
다면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승패에 관한 부분이다. 학생들이 벌이는 대결은 대가와 도전자의 싸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도전자와 도전자 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여기서 승패는 "얼마나 잘 했느냐"보다는 얼마나 "덜 처참하게 패했는지"에 달려 있다. 어떤 학생은 거의 모든 70번의 전투에서 정답을 고르기도 하지만, 어떤 학생은 고작 10~20번만 승리를 가져간다. 

 

7.
이 광경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매우 묘해진다. 왜냐하면 지금 이 학생들은 나중에 현실에서 "절대 경험하지 않을 형태의 대결"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환자가 분신술을 할 수 없다면, 학생들은 절대 미래에 분신술을 한 환자를 진료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8.
객관식 시험이 무용지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고 AI고 하더라도 의사는 머리 속에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객관식 문제는 지식을 쌓고 확인하는데 분명 매우 유용하다. 의학교육에 객관식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한치의 의문이 없다.

 

9.
다만 내가 던지려는 의문은 이렇다.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서로 절대 대화하지 않고, 완전히 동일한 환자를, 동시에, 한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진료"하는 방법을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력을 들여서 연습하고 확인하는걸까?
도대체 왜? 

 

10.
객관식 문제을 하나 내보려 한다. 가장 옳은 답은 뭘까? 
문제) 왜 의과대학에서는 무수한 평가를, 심지어 의사가 되기 직전에 보는 평가까지 객관식 시험으로 하고 있을까?
(1) 그것이 공정한 방법이기 때문에
(2)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3) 우리 나라에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4) 현실적으로 그것이 현재의 최선이기 때문에
(5) 의사가 실제로 진료하는 방식이 그것이기 때문에
혹시 5번을 고르신 분이 있을까요?

 

11.
어제 의사국시에 대한 글도 그렇고, 지금 이 객관식 시험에 대한 것도 그렇다. 코로나와 각종 의료계 이슈가 터지는 지금이야말로 여태껏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Take-for-granted assumption)'에 의문을 던져보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다. 무조건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의심"만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런 의심이 없다면 문제도 없고, 문제가 없으니 시도도 없고, 시도가 없으니 변화도 없을 것이다. (아, 만약 변화가 있다면 외부(정부 등)의 강요에 의한 원하지 않은 변화일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포스트-코로나는 비포-코로나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