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밖에 아무거나

앎, 함, 됨(Knowing, Doing, Being) (2018년 7월 12일의 기록)

Meded. 2022. 7. 15. 17:02

#1. #앎, #함, #됨(Knowing, Doing, Being)

 

앎은 함을 위한 것이다. 적어도 의학교육의 최근 추세는 그렇다. 다만 학생에게는 앎과 함의 중간 단계로서 해봄 또는 해보임(Showing how)을 요구하긴 한다. 따라서 앎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학습자가 무엇을 '할 수', 적어도 '해볼 수' 있어야 교육이 성과를 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앎은 무엇일까. 무엇을 하기 위해 '필요한' 앎은 있겠지만 '충분한' 앎이 존재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유는 애당초 그러한 앎은 #맥락_의존적 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맥락에서 충분한 앎이 있더라도 그건 다른 맥락에서는 불충분한 앎이 되기 일쑤이다.

 

한편, 의대생/의사는 '#성인학습자'이고, 따라서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기존의 경험 위에 새로운 경험을 #구성(construct)할 때 잘 배운다. 따라서 '충분한' 앎을 채울 때 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 최소한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더 잘 배울 수 있고, 더 필요한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정 수준의 앎'을 갖췄다고 생각한다면  무언가를 '해보아야' 한다. (보다 바람직하게는 적어도 초반에는 '안전한' 환경에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해보다'보면 '하게'되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됨'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됨'이 중요한 이유는 함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됨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실한 행동을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그런 행동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반드시 갖춰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메타인지', 즉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인식이며, 다른 하나는 '#비판적_성찰', 즉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내가 내린 판단, 세상을 보는 가정(assumption)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다. 

 

이 두 가지를 충분히 하려고 노력한다면, 안전한 환경에서의 '함' 또는 '해봄'은 바람직하다 못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 피드백의 세 가지 자극

 

#하버드_피드백의_기술 이라는 책에 따르면 피드백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 가지 자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나는 #진실_자극, 다른 하나는 #관계_자극, 마지막으로 #정체성_자극.

 

진실 자극을 가장 잘 표현하는 요샛말이 바로 '팩트 폭력'이다. 옳은 말은 불편하고, 그래서 그 만큼 자극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불편함 속에 진실이 있다. 

 

마치 리뷰어의 쓰라린 리비전 속에 논문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아이디어가 숨어있는 것처럼(Reviewer is always right), 쓰라린 진실 자극 속의 엄연하고 냉혹한 진실은 아무리 싫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능적인 반응을 넘어서는 '#학습된_반응'이 중요하고, 여기서 말하는 사각지대를 파악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메타인지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