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밖에 아무거나

능력주의(meritocracy) 혹은 쿼터주의(quatocracy)

Meded. 2022. 1. 25. 04:44

쿼터제 중심 인재선발 시스템에는 대체로 능력주의라는 명칭이 따라붙는다. 이 명칭은 수사적 설득력이 상당하다.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재능을 갖추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가치 기반의 기회 시스템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보면, 다들 알다시피 그 암시대로 되고 있지는 않다. 바라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도 당신의 들쭉날쭉한 측면이 기관의 변덕스러운 틀에 잘 맞지 않으면 헛수고에 그칠 수도 있다. 인재 쿼터제가 존재하는 한, 가치를 지녔으나 맨 밑바닥에서 꼼짝없이 막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양산되기 마련이다. 

 
현재의 기회 시스템이 애초부터 능력주의보다는 재능 귀족제talent aristocracy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면,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자처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더 신중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 의도했던 것이 바로 그런 신중성이었다.2 1958년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능력주의의 출현The Rise of the Meritocracy』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풍자소설은 테스트 중심의 표준화된 인재 선발 시스템이 영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현상을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은 ‘aristocracy’와 경멸적으로 대비시킨 ‘meritocracy’라는 단어를 만들어 조롱 섞인 비난의 수단으로 삼았다. 영이 이 책에서 써놓았듯이 “우리가 사는 현대의 사회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금슬금 태생에 따른 귀족제에서 재능에 따른 귀족제로 변신했다.”
 
하지만 영이 원통하게도 이 조롱조의 신조어를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비난하려던 대상들이 멋대로 차용했다.3 교육가, 전문기관, 정부 관료 들이 자신들이 ‘능력주의’를 육성하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영의 신조어를 강탈한 데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영은 ‘merit-ocracy’에서 ‘arist-ocracy’를 연상시키려는 의도였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귀에 솔깃하게 다가온 부분은 ‘merit(가치, 우수성)’였다. 그에 따라 영의 신조어는 공평성과 평등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처럼 보였다. 덕분에 당국에서는 자신들이 특권 중심의 기회 시스템을 재능 중심의 기회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사회의 최하위 소외계층 중에서도 우수성을 발굴해 성공과 지위로 올라서는 사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언했다.
 
‘능력주의’의 옹호자들은 새로운 기회 시스템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숨겨진 인재를 발굴하고 선발해 육성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의 우수성도최대화될 것이라고 대중을 확신시켰다. 하지만 기회가 임의적 쿼터에 따라서 획득 가능할 뿐이라면 그런 시스템은 진정한 능력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쿼터주의quotacracy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쿼터주의에서는 어떤 경우든 우수성에서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전원의 득실을 합했을 때 실이 더 많은 게임-옮긴이)이 된다.
 
출처:
<다크호스> (토드 로즈.오기 오가스 지음, 정미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