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xner centenary 보고서는 성과바탕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지만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나는 어떻게 휴머니즘, 책무성, 이타성 등을 정의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특질들은 사람마다 unique한 것이며, 따라서 ("표준화된 성과"의 달성을 추구하는) 성과바탕교육과는 애초에 조화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미 비슷한 이유로 약 30년 전에 Spady는 교육성과를 정의하면서 정서적 측면(affective domain)을 배제하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는 기대하는 성과는 "적당한 수준(good enough)"에 맞춰놓으면서, 어떻게 동시이 수월성(excellence)를 추구할 수 있겠냐는 문제이다. 이미 Sir John Tooke는, "적당히 좋은 것은 충분히 좋은 것이 아니다(Good enough is not good enough)"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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