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달 전, 한 학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요지는 학기가 절반 정도 지난 지금까지 몇 차례의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너무나도 저조하여 심각하게 유급이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며, '마음은 간절한데 단순히 노력을 더 하는걸로는 해결이 안 되어'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몇 차례 유급을 당한 탓에, 이 학생에게 이번 학기는 진급을 못 할 경우 제적이 되는 막다른 골목과 같았다.
메일을 받고 바로 연락을 해서 학생을 만났다. 이틀 뒤가 시험이라고 했다.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들어보니 당장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문제점을 파악해서, 몇 가지 조언을 줬다. 현실적으로 이번 시험에서 큰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다행히 그 다음 시험까지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있었다. 이후로도 학기 말까지 몇 번은 만나서, 몇 번은 문자로 격려도 하고 조언도 주었다.
그렇게 남은 절반의 학기가 지났을 때, 초반 10개의 시험 성적에서 100등 바깥을 왔다갔다 하던 이 학생은, 면담을 진행하고 조언을 받은 이후 본 9개의 시험에서 80등 근처를 오가는 성적을 얻어내었다. 어떤 시험에서는 50등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떤 학생에게는 고작 '80등'일지는 몰라도, 이 학생은 열한번째 시험에서 처음으로 80등대를 받았다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2.0을 훌쩍 넘는 성적으로 무사히 진급을 확정해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저 말에 불과한 조언을 줬을 뿐이었고, 그 말을 행동으로 바꿔낸 것은 학생이었다. 사실 그 조언조차도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요령들이었다. 그럼에도 진급이 확정되던 날 학생은 '단순히 '할 수 있다'는 무수한 말들이 아니라, 정말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했는데, '그 희망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끝까지 응원해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보면, 유급에 대한 책임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나 유급을 하게 된 당사자 학생들에게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환자를 세상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잃는' 임상의사 선생님들에 비하면, '유급' 혹은 '제적'이라는 위험과 부담은 보잘 것 없음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정 정도의 상담과 조언, 격려와 응원을 받고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이런 학생을 '잃는' 것은 사소한가?
그러고보니 3년 전에도 이런 고민을 썼었다. "A society should be judged not by how it treats its outstanding citizens but by how it treats its criminals.”라는데, 의과대학도 뛰어난 학생(Outstanding students)에게 어떻게 하느냐보다 학업위기학생(at-risk students)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지고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학업위기에 놓인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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