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제 알림장에 숙제 있어?"
딸: "알림장 어제 두고 가서 적어왔어. 알림장 노트에 끼워놨어"
나: "어디 볼까? 시 낭송 숙제 있네, 해야겠다"
딸: "꼭 해야돼?"
나: "그럼, 알림장은 매일 쓰니까, 거기 숙제도 매일 하는거야"
딸: "어제 학교에서 시 낭송 하나 했단말이야"
나: "그래도 여기 부모님 싸인 받으라고 되어있잖아. 집에서도 하나 더 읽어야지"
딸: "숙제 싸인은 왜 받아야돼?"
나: "일단 확인받는 의미도 있겠고, 부모가 잘 챙기라는 의미도 있겠고, 또 자녀들이 뭘 잘하거나 힘들어하는지 알 수도 있겠지? 엄마아빠는 네가 어떻게 하는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니까"
딸: "하기 싫어"
나: "왜 그런 기분이야?"
딸: "밀리니까 하기 싫어"
나: "어제 저녁때 했어야지. 알림장에 써주신 숙제는 매일 하는거야"
딸: "아무튼 밀리면 하기 싫단 말이야"
나: "이번 숙제 정말 간단한거야. 그렇게까지 밀렸다고 부담스러워할 만한 양이 아니야. 같이 해보자"
(1분만에 숙제 마친 후)
딸: "학교가기 싫은 기분이야"
나: "숙제 때문에?"
딸: "아니..."
나: "그럼...?"
딸: "어제 알림장을 놓고 갔는데 친구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어"
(!!!)
나: "아빠도 그런 적 있었어"
딸: "정말? 언제? 초등학교 때?"
나: "그럼, 아빠도 뭐 못하거나 잘못하면 남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아서 정말 부끄러웠지"
딸: "아빠도 그랬구나"
나: "근데 이거 알아? 다른 친구들은 네가 걱정하는 것 만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거야"
딸: "정말?"
나: "진짜야. 이렇게 생각해볼까? 만약 친구 OO이가 알림장을 놓고 오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딸: "음...별 생각 없거나, 그냥 오늘 어쩌다 두고왔나보구나 할거같아"
나: "그렇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
딸: "그런데 자꾸 반복하면 좀 다르지 않을까?"
나 "맞아, 만약 한 번이 아니라, 두번, 세번...이렇게 자꾸 그러면 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왜 자꾸 두고 오는지 더 궁금해할 수도 있고"
딸: "다른 친구 마음을 생각해보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도 알겠어"
나: "무슨 뜻이야?"
딸: "응 그러니까, 다른 친구가 뭔가 실수했을 때, 자꾸 내가 쳐다보면 그 친구가 더 부끄러울 수 있으니까 안 그럴래"
나: "우와,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으면 정말 대단한거야."
나: "그리고 엄마아빠는 이제 점점 더 네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느낌을 느꼈는지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게 될거야. 하지만 그런걸 더 잘 알수록 엄마아빠가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을거같아. 이야기 많이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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