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녹색학부모회 봉사활동을 했다. 녹색학부모회 보다 녹색어머니회 라는 이름이 익숙한데, 이런 명칭의 변화가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오늘 아침에 깃발을 들고 있는 '아버지'는 나 혼자긴 했지만.
내 역할은 왕복 4차선과 2차선이 만나는 삼거리의 한 코너에서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들어오면 깃발로 차량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일 자체는 무척 단순한 반복작업이었지만, 비교적 신호가 짧고, 코너 양쪽 두 개의 횡단보도를 오가며 하다보니 은근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깜박 잠시 정신줄을 놓다가 실수도 했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너무 귀여워서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횡단보도 빨간불이 들어왔는데 계속 깃발을 펴고 있었다. 사실 그렇더라도 어린이 보호구역이고, 횡단보도도 있고, 신호등도 있고, 반대쪽 봉사자도 계셔서, 웬만해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다만 가끔 어떤 차는 불법 유턴을 하고, 어떤 차는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할 뿐이다(기억하고 있다 49호421X...). 물론 운전자만 문제는 아니다. 깜박이는 신호에 가까스로 횡단보도에 진입하여 빨간불이 될 때까지 다 건너지 못하는 학생도 가끔 있다.
횡단보도 한쪽 끝에 서서 빨간불이 들어오면 인도 쪽으로 깃발을 접는다. 파란불이 들어오면 도로를 향해 깃발을 편다. 접고 펴고 접고 펴고. 한두번 만에 몸이 익숙해지니 머리속으로 반복작업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반복되는 것은 내 행동 뿐만은 아니었다. 행동에 맞춰 감정도 반복된다. 깃발을 펴고 내가 담당하는 도로를 건너가는 학생의 뒷 모습을 보면 우선 나의 작은 소임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음 건널목까지는 안전히 가려나'하는 걱정을 잠시 한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다음 건널목까지만 가면 다른 학부모가 다시 한번 이 학생들을 잘 맡아주겠지'라는 믿음을 갖는다. 신호가 한 사이클 돌 때마다, '깃발을 접고펴는 행동'과 '안도-걱정-믿음'이라는 감정도 마치 하나의 고리처럼 사이클을 이루어 반복된다.
그러다가 작년에 어느덧 보호자 없이 등교하려는 첫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길 건널 때 녹색학부모회에서 봐주시니까 괜찮을거야".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이러한 봉사활동을 해보니, 아이가 혼자서도 무사히 학교에 갈 것이라는 학부모의 믿음이란, 결국 각각의 건널목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봉사자라는) 여러 개의 작은 고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안전한 등교길"이라는 신뢰의 사슬 덕분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앞 봉사자에게 의지하여, 다음 봉사자에게 학생을 넘긴다. 이렇게 각각의 봉사자라는 고리는 사슬을 이루어 아이들을 보호한다.
가끔 의과대학에서 '교육' 일이라는게 되게 보잘것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녹색학부모회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단순화하면 건널목 하나에서 신호에 맞춰 깃발을 접고펴고하는 일에 불과하듯 말이다. 교육-연구-진료 속에서 교육의 상대적 위치는, 그것을 주 업무범위로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크고 작은 허탈함과 공허함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이토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거 하나 없어도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 의과대학에서 노력해봐야 전공의 과정과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그대로라면..뭐 이런 생각들을 한다. 어쩌면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녹색학부모회 봉사활동이 없어도 대부분의 학생은 무사히 등교를 할 것이고, 교육에 대한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대부분의 학생은 의사면허를 받고, 수련도 잘 받아 나갈것이다.
하지만 가끔 어떤 차는 불법유턴을 하고, 어떤 차는 신호를 지키지 않고, 어떤 학생은 무리한 시도를 한다. 학생도 건널목을 건너지만, 노인도 건너고,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건너는 사람도 있다. 모든 고리가 연결되어서 "안전한 등교길"이라는 신뢰의 사슬이 튼튼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물지만, 예외적인 상황, 예측 밖의 상황이 생기는데, 그게 언제 어떤 방식일지는 모른다.
그래서 교육도, 대체로는 대다수에게는 아무 일 없겠지만, 조금은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예외적인 상황, 예측 밖의 상황. 내가 이 일을 하는 의미는 어쩌면 거기에 있는건 아닐까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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