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매 학기 조금씩이나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의학교육을 '과학'적으로 하는 것에 신경쓰고 있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논문을 읽고, 나에게 적용가능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내 수업에 적용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실수하고, 실패와 실수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서,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나 혼자 고칠 수 없는 것은 시스템 개선을 모색한다. 그렇게 ver.1.00에서 ver.1.01로, ver.1.02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는 매 학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올해의 수업과 평가 방법은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선이지만, 앞으로 개선될 것을 고려하면 가장 덜 개선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베타버전의 물건을 파는 것 같은 기분을 늘 가지게 된다. 이거 돈(=등록금) 받고 팔아도 되는 물건일까? 완성품이라는게 있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덜 미안해지려나.

 

그나마 교육의 좋은(?) 점은 나의 결정에 생사가 오가거나, 어떤 판단에 어마어마한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학교육은 대체로 돈이 안 된다🤣). 반면, 교육의 어려운 점은 "실험 연구"가 어렵고, 인과관계 추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아무리 내가 수업을 개선해봐야, 올 해 가르친 학생들에게 개선된 버전의 수업을 다시 하고, 그 방법이 더 나은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There's no second chance.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재현"시도"불가능성]이 나에게는 교육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이지만, 공유한 것처럼 그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오는 실패, 부정적 피드백,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1. 논문 심사를 하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성공을 보고하는 논문일지라도 무조건 '게재가(accept)'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물며 별다른 개선이 없는데, 심지어 별다른 시도조차 없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출판되는 논문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publication bias!). 하지만 변화가 미미했거나, 변화의 방향이 부정적인 경우에 저자는 - 결과야 어쨌든 - 적어도 그 실패는 '명확한 의도에 기반한 교육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고 설득해야 한다. 

 

2. 그렇다면 '실패'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Young(2019)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혁신 지향적 실패(innovation-oriented failure)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구현하기 위하여 혁신을 시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었던 상황이다. 이런 경우는 제법 흔하다. 이 때는 왜 목표를 이루지 못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써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how things should be) 알아낼 수 있다.

 

둘째, 발견 지향적 실패(discovery-oriented failure)이다. 마치 공업, 제조업에서의 파괴 실험(destructive testing)처럼, 이론/아이디어/가설이 깨지는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 유형의 실패를 통해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거나, 실패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우연적 실패(serendipitous failure)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자를 가장 흥분하게 하는 말은 "유레카!"가 아니라 "그거 참 흥미롭군요.."이다"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발견을 추적하여 결과의 패턴 뒤에 숨겨진 '왜'를 찾아낼 수 있다. 반직관적인 발견을 가능케 하고, 전형적/전통적 접근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3. 결국 다시 돌아와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의학교육'이다. 전례없는 상황이고, 다음 학기, 다다음 학기, 아마 무엇을 해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발전의 기회도 없고, 발전의 방향마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1

학술 프로젝트의 건전한 실패는 보건의료전문직교육HPE에서의 성공적인 학술활동의 중요한 요소이다. 실패는 성공의 결여로 정의될 수 있지만, '기대, 요구 또는 예상된 무언가의 비발생'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실패가 없다면 발견도, 새로운 이론도, 사상에서의 새로운 혁명도 없을 것이다. 가설과 이론의 반증falsification은 현대과학의 특징이며, 반증이란 어떤 아이디어가 실패하는 때가 언제인지에 달려있다. 변칙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발견이 누적된다는 것은, 어떤 현상에 대한 [현재의 사고방식이 실패하였음]의 마커이며, 쿤은 이것이 패러다임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2

실패는 사고의 진보에 필요하지만, 과학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중에게 연구에는 일정 빈도의 실패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일련의 결과물을 마치 논리적이고 선형적이며 실패가 없는 것으로 정교하게 큐레이션하고 홍보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 중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발견을 집단적으로 놓쳐왔으며, 중요한 배움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실패의 유형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3

첫째, 혁신 지향적 실패(Innovation-oriented failure)이다.

HPE[깊은 이론][완전한 실용]을 연결하는 분야다. Albert[서비스 지향 연구] [발견 지향 연구]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하면서, HPE연구를 [생산자(, 연구자 및 학자)를 위해 생산한 작업] [사용자(, 교육자 및 교사)를 위해 생산한 작업]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했다.

첫 번째 실패는 혁신적 사고방식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종종 혁신은 어떤 것을 '이렇게 해야 한다should be' 또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should be done'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어떤 일을 하는 방식을 혁신하여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때로는 효과가 있고, 때로는 효과가 없다.

토마스 에디슨의 유명한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 10,000가지 방법을 발견했다'는 말은 혁신 지향적인 실패의 본질을 포착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실패는 체계적이고 진보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실패다. 왜 혁신이 의도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는지에 세심히 분석하여, 어떤 것이 어떻게 '되어야should be’ 하는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4

둘째, 발견 지향적 실패(Discovery-oriented failure)이다.

과학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논할 때, 종종 물리학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천동설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전형적인' 이해방식이 새로운 이론, 새로운 가정,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대체되는 것이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이론, 사상의 새로운 혁명은 현상에 대한 현재의 이해가 실패할 때 나타난다.

이러한 유형의 실패는 발견 지향적인 실패다. 이러한 종류의 실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의 가장자리periphery에서 발생한다. , 이론을 개발하거나 시험할 때, 가설을 반증하려고 시도할 때, 어떤 사고방식의 일반화 또는 새로운 맥락으로의 전이가능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때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의 '실패는 진행중인 성공이다라는 말은 발견지향적 실패의 전형을 대변한다. 이런 종류의 실패는 이론, 아이디어, 가설을 깨질 때까지 밀어붙이는 대규모grand scale의 실패이다. 통념에 도전하고, 사고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며, 기존 문제나 현상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탐구하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한계를 시험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발견 중심의 실패는 엔지니어링 및 제조에서 파괴 시험의 원리와 유사하다. 파괴 시험에서 물체, 물질 또는 최종 제품은 세밀한 감시 하에 다양한 조건(: 압력, 온도, 진동)에 놓인다. 제품이 실패할 때까지 점점 더 스트레스 조건을 높인다.

 

5

셋째, 우연적 실패(Serendipitous failure)이다.

때로는 그저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흥미진진한 구절, 새로운 발견을 예고하는 구절은 "유레카!"가 아니라 "그것 참 재미있군" ...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실패는 발견의 패턴 뒤에 숨겨진 ''를 이해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발견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추적하는 데 초점을 둔다.

 

밥 로스가 '실수라는 것은 없다. 그저 행복한 작은 사고들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찰력과 진보는 실패를 새로운 이해를 창조하거나 발견하기 위한 기회로 포용할 때 얻어질 수 있다.

 

6

과학은 어리둥절함, 회의론, 실험을 통해 성장한다(Science grows in the mulch of puzzled bewilderment, scepticism, and experiment’). 우리는 지금까지 실패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왔고, 그 결과 좋은 연구란 선형적이고 성공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편향된 관점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현대과학을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방법으로 서서히 증거를 축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포퍼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작고 안전한 가설이 지식을 쌓는 데 기여할지 몰라도,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위대한 진보의 발걸음은 크고 위험한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만약 결과가 가설이 옳았다면, 당신은 측정을 한 것이다. 만약 결과가 가설에 반하는 것으로 나왔다면, 당신은 발견을 한 것이다. 우리는 실패가 주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왜 혁신이나 개입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왜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 이론이 실패했을까?

왜 깔끔하게 설계된 연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을까?

 

7

실패한 프로젝트를 제쳐놓거나 서랍 바닥에 집어넣어버리는 것이 더 쉬울 수 있지만, 실패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실패에 관여하는engaging with 것은 비단 연구팀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익하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배우며, 다른 사람들의 일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생산적 실패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공개적으로 실패와 협력하고 공유해야 한다. 공동체로서, 우리는 집단적 지식 기반을 키우기 위해 생산적인 실패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통찰을 더 편안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한 의도적인 공개적 토론은 제한된 연구와 교육 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실패에 의도적으로 관여하고, 실패한 일을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더 나은 학술 자원의 관리 및 성공적인 혁신의 translation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실패에 의도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에 성장형 마음가짐을 가져올 수 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도록 설계된 그룹은 후속 작업을 더 잘 수행하였다.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와 잘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의 후유증은 '나중에 문제를 더 잘 풀게 되는 것'이다.

 

8

마지막으로, 실패를 성찰하려면 실패를 경험하고 공유한 과학자, 학자, 연구원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공동체로서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은 실패한 프로젝트의 경험을 인간화하고 정상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우리 모두는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리고 계속 실패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분야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Neil Gaiman은 이렇게 말했다. "가서, 흥미로운 실수를 하십시오. 영광스럽고 환상적인 실수를 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것들을 공유하십시오.”

 

 

 

 

 

출처:

Young, M. (2019). The utility of failure: a taxonomy for research and scholarship. Perspectives on medical education, 8(6), 365-37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