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소규모 독서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는, 의예과 1학년 과목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학기 선택한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 과목은 작년에 참여해서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비록 온라인이지만 올해도 대동소이하게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Zoom 회의실을 열었다. 학생들에게 미리 회의실 링크를 주었고, 11시 시작시간에 맞추어 속속 접속하기 시작했다. 

 

1. 
처음엔 오프라인 토론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될거라 생각했다. Ground rule을 정하고, 사회자와 서기를 정하고, 주제를 정해서, 10명이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토론하면 될 것 같았다. 화면을 공유하거나 화이트보드 기능을 쓰면 잘 될 것 같았다.  

 

2. 
첫 시간에는, 새로 모인 그룹이니까,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했다. 그 다음 1주차 사회자를 중심으로 Ground rule을 정하기 위한 토론을 하였다. 이어서 각자 책에서 인상깊었던 문장을 공유하고, 혹시라도 아직 읽지 않은 학생을 위해서 책의 주요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한 뒤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내 아무래도 뭔가 편안하지 않은 느낌.  

 

3. 
첫 주 수업이 끝나고 고민했다.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토론의 형식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내가 이 수업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어떻게 다른가? Zoom이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  

 

4.
나는 진심으로, 1학기를(그리고 지금까지도) 온전히 온라인으로만 대학을 다닌 학생들이 서로 친해졌으면 했다. 토론에서 다룰 책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는 것도 좋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도 해보면 좋겠지만, 그래봐야 그게 얼마나 갈까. 무엇보다 지금 이 학생들에게 오래 남을 것은,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것은 서로의 이름을, 얼굴을, 목소리를 익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5. 
고정관념처럼 뿌리박힌 '수업에서 학생은 토론을 해야한다', '교수는 모든 토론상황을 지켜보고, 평가하겠다' 생각을 내려놓았다. 대신 '서로 친해지기'라는 목표를 새롭게 정했다. '친해지세요'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친해지기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 얼굴과 이름은 익히자고 했다.  

 

6. 
화면에 다른 친구들의 얼굴이 더 크게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편안한 대화를 위해서 11명을 더 작게 나누었다. 소회의실 기능으로 무작위로 3~4명씩 나누고 모이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3개의 소회의실로 나누어지니, 내가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학생은 3~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7~8명이 그 순간에 다른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잘 할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오히려 교수가 없기 때문에 더 편하게 대화했을 것이다.  

 

7. 
이 수업의 '공식적' 목표 -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고 - 는 작년만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두 번째 주를 끝내고 확실히 느껴진 분위기는 학생들이 이제는 서로를 조금 덜 어색해한다는 것이었다. 수업 말미에 '질문 있어요?'라고 물으니 한 학생이 '서로 친해지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다음 수업때는 한 세션 쯤은 같이 놀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 다른 학생들이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짓기에,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대신 방법만 미리 스스로 정해보라고. 다음 수업에서, 과연 우리는 무얼 하고 놀게 될까? 

1. 독서토론으로 운영되는 이 과목에서 학생들은 사전에 같이 논의해볼 질문을 제출한다. 문제는 그 질문들이 다소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이번 주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들이다.

 

2. 그 결과 토론은 계속 겉돌게 되고, 논의가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허공을 떠다니고, 말은 많이 하는데 뭐 하나 뚜렷해지는 것이 없다.

 

3. 이런 상황에서 내가 종종 사용하는 방법은, 개인의 구체적 경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성인학습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죽음"과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는지, 있다면 이 자리에서 공유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4. 그리고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죽음에 대한, 다분히 개인적이라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공유해주었다. 그것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모르고있었던,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자기 정체성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말하는 학생과 듣는 학생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조차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준 학생들이 무척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내가 이런 상황을 다룰 만한 전문성이 없는 것이 두려웠고, 다만 최선을 다해 감사와 공감을 표현해주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다.

 

5. 이렇게 보면 오늘 수업은 잘 된 것 같은데, 묘하게 뭔가 분위기가 영 가라앉아 있었다. 꼭 토론 주제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호하다. 다만, 확실히 이런 소그룹 토론을 하기에 11명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제프 베조스는 "피자 두 판의 법칙"을 이야기 한 적이 있고, 굳이 사람 수로 치환해보면 회의의 적정인원은 대략 5~8명이 되는데, 이 숫자는 이런 소그룹 활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 하다.

 

0. 유튜브에서 본 어느 강사는 독서토론의 원칙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1) 책을 읽은 사람만 참여한다.
(2) 책의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3) "Talking stick(발언권 막대)"을 활용하며, 이것의 용도는 이 stick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발언권이 있다는 것이다. 미드 Breaking bad에서 유사하게 가족 간 대화에서 "talking pillow(발언권 쿠션)"을 쓰는걸 본 적이 있는데, 같은 개념이다.

 

1. 이 중에 실제로 오늘 독서토론 수업에서 활용할 스 있었던 것은 3번 원칙인 발언권 막대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학생을 수업에 안 들어오게 할 수도 없고(1번 원칙), 과목 자체가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보다는 사고과정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2번 원칙). 나는 막대 대신 M&M초콜릿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사용했는데, 말을 하다가 중간중간 허기진 학생들이 하나씩 먹을 수도 있고 제법 괜찮았다.

 

2. 가장 먼저 한 것은 책상 배치를 원형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원래 배치된 형태가 상석이 있는 세로로 긴 형태였는데, 토론을 위한 배치로는 부적절하다고 느껴졌다. 원형 배치를 통해 나도 동등한 위치를 갖는 참석자로 느끼게끔 했다. 물론 이렇게 노력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학생에게 난 여전히 평가자이자 교수겠지만;

 

3. 워밍업을 목적으로 첫 10~15분간은 자신이 가장 인상깊게 읽은 구절을 공유하게 했다. 단, 앞에서 발언한 친구와 다른 챕터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유일한 규칙으로 했다. 물론 책을 거의 안 읽은 학생도 있었지만 읽은 부분에서라도 말을 하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4-1. 사전에 학생들에게 책에 대해서 에세이(3페이지 이내)와 수업시간이 논의할 2~3가지 질문을 제출하게 했다. 

4-2. 사전에 우리 조 학생들이 제출한 질문지를 출력해서 준비해갔으며, 5분 정도간 서로의 질문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4-3. 이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1~4번 학생(총 11명 학생)이 사전에 제출한 질문(총 10개 내외)에서 4개를 선택하여 자유롭게 토론을 이어가게 했다. 이 때 네 개의 질문은 반드시 각 1~4번 학생의 질문이 골고루 포함되도록 각 학생의 질문에서 하나씩 선택했다(기계적 중립). 4-3의 과정을 세 번 반복하였다(총 90~105분 소요).

4-4. 학생 중 한 명을 사회자로 두긴 했으나, 사회자로서의 책임을 온전히 넘기진 않았다. 예컨대 4-3에서 어떤 질문을 어떤 순서로 할지는 주로 내가 판단했으며, 나는 time-keeper 역할도 함께 수행했다.

4-5. 또한 나는 학생의 발언 빈도를 체크하여 일부 학생(들)이 발언을 독점할 경우 발언하지 않은 학생에게 발언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았다.

 

5. 초반의 문제 중 하나는 학생들은 자꾸 서로에게 말하기보다는 나를 보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서로에게 말하라" 고 재차 강조해도 따라오지 않았다.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방법은 "존대말을 쓰지 않고 평소에 서로에게 말하듯이 평어로 대화하라"는 원칙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6. 총 2.5시간(150분) 동안 진행되었고 20분(3, 4-1, 4-2) - 35분(4-3)-10분휴식-60~70분(4-3두 번 반복)-10분 동료평가 로 진행되었다

 

7. 동료평가는 10% 반영했는데, 수업시간 중의 참여가 기대보다 전반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동료평가 비율을 10%로 잡은건 적절해보였다. 반면 에세이는 학생별로 제법 편차가 있어 보인다.

 

8. 전반적으로 내가 말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반대로 학생이 말하는 시간은 최대화하고자 했다. 

 

9. 돌이켜보면, 이 원칙과 요령들이 학위과정 하면서 내내, 그리고 여러 번 다 보고 듣고 배운건데, 내 일이 될 때 까지는 너무나도 추상적이어서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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