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Invitation to Probe Reality and Theorize Daringly About Human Experience: Exploring 'Secret Affinities' in Medical Education Inquiry

🧼 비누 한 장이 건네는 말: 발터 벤야민과 의학교육의 '비밀스러운 친화성'
Schaepkens, S. P. C., & Cianciolo, A. T. (2024). An Invitation to Probe Reality and Theorize Daringly About Human Experience: Exploring 'Secret Affinities' in Medical Education Inquiry.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 36(5), 684–688.
손을 씻을 때, 수술방에 '스크럽 인'할 때, 환자의 몸을 닦아드릴 때… 우리는 매일 비누를 만지지만, 정작 비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죠. 그런데 만약 그 비누가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할 글은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TLM)에 실린 짧은 에디토리얼이에요.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 "현실을 탐침하고 인간 경험에 대해 대담하게 이론화하라는 초대(An Invitation to Probe Reality and Theorize Daringly About Human Experience)". 저자인 Sven Schaepkens와 Anna Cianciolo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비누 한 장을 가지고, 의학교육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슬쩍 흔들어 놓습니다. 같이 따라가 볼까요?
📖 1. 그런데 '의학교육에서 철학하기'가 대체 뭐죠?
TLM은 2020년부터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의학교육에서의 철학)' 시리즈를 운영해왔어요. 이 시리즈가 시작된 이유가 인상적입니다.
"교육적 성과를 향한 추구가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가로막힐 때, 실천적으로 멈춰 서기—즉 철학하기—를 장려하기 위해서였죠."
"promoting practical pausing—i.e., doing philosophy—when the pursuit of educational outcomes is frustrated by complexity and uncertainty"
핵심은, 이미 만들어진 철학 개념을 가져다 '적용'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아무도 찾지 않던 문제(problems no one looked for)" 를 발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그냥 지나쳐온 현상들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거죠.
첫 번째 단계가 "강렬한, 아이 같은 호기심(intense, childlike curiosity)"으로 그런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단계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바로 '경험의 본질(the nature of experience)' 그 자체 를 탐구하고, 그것이 의학교육에서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possibility) 살펴보자는 초대예요.
🤔 2. 왜 하필 발터 벤야민일까?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였어요. 그의 글쓰기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합니다. 칸트 철학, 역사철학, 유대 신비주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은 물론이고… 도시의 풍경, 꿈, 장난감, 사진, 영화, 심지어 미키 마우스까지 다뤘어요. 종잡을 수 없죠. 그런데 이 방대한 작업을 하나로 묶어주는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가."
"what the conditions [are] that make experience possible"
벤야민은 여기서 "비밀스러운 친화성(secret affinities)" 이라는 개념을 꺼냅니다. 이게 이 논문 전체를 관통하는 열쇳말이에요.
"겉보기엔 동떨어진 관념들과 사소한 현실의 디테일 사이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친화성]."
"secret affinities between seemingly remote ideas and minute reality details"
벤야민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아도르노(Adorno)는 이런 식의 사유가 "수수께끼 같은 형식을 통해 충격을 준다(shock through their enigmatic form)" 고 했어요. 개념적 사고를 가로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고를 촉발하는 충격이라는 거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낯설게 만들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게 벤야민의 매력입니다.
🗣️ 3. 언어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자, 이제 본론이에요. 우리는 보통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하죠. 머릿속 생각을 정확하게 담아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그릇 같은 것. 그런데 벤야민은 여기에 제동을 겁니다.
그는 두 가지를 부정해요.
- 첫째, 언어는 단지 우리가 독일어·중국어·스와힐리어·라틴어라고 부르는 말이나 글의 관습이 아니다.
- 둘째, 언어는 우리 의식의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 그럼 언어가 뭐냐고요?
"언어는 경험의 질(質)에 관한 것이다."
"language is about the qualities of experience"
그리고 여기서부터 좀 더 과감해집니다. 벤야민은 인간만이 아니라 사물도 언어를 가진다 고 봐요. 음악의 언어, 예술의 언어, 새소리 같은 동물의 언어처럼요. 심지어 램프 같은 사물조차도 말이죠.
"램프 같은 사물도, 비록 무언(無言)일지언정, 자기 나름의 언어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objects like lamps express themselves in their language, albeit a mute one"
이걸 저자들은 '무언의 언어(mute language)' 라고 불러요. 소리 없는 언어, 침묵의 언어죠. 사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어떤 표현이라는 겁니다.
🧼 4. 비누가 말을 건넨다
추상적으로만 들리죠? 그래서 저자들은 아주 구체적인 예를 가져옵니다. 바로 비누예요. 시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가 비누 한 장에 대해 쓴 시를 인용하는데, 첫 구절이 "비누는 할 말이 참 많다(Soap has so much to say)"예요. 시인은 비누를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합니다 — 손에서 미끄러지고, 물고기처럼 빠져나가고, 푸른 거품의 구름을 내뿜으면서요.
여기서 저자들의 분석이 정말 멋집니다. 비누는 그 자체로 미끄러운 게 아니에요. 물과 만나는 바로 그 순간에 미끄러워지죠. 받침대, 손, 대야, 물, 미끄러움이 '씻기'라는 행위 속에서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비누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사물 하나만 똑 떼어내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비누는 늘 그것이 속한 관계망(web of relations) 속에서만 자기를 표현하니까요.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우리 의학교육자에게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병원에서 비누는 사전적 정의("물에 비벼 거품으로 녹는 세제")를 훌쩍 넘어서거든요.
- 손위생(hand hygiene) 준수율, 그리고 알코올 손소독제(ABHR) 사용량 같은 대리 지표 → 의료의 질을 보여주는 신호가 됩니다.
- 손 씻기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to save lives)' 따로 떼어둔 시간이에요. "싱크대 앞에 서 있으면 20초가 참 길게 느껴지죠(twenty seconds is a long time when you're standing at a sink)" — 그래서 20초짜리 노래를 부르며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요.
- 외과 실습생에게 '스크럽 인(scrub in)' 하라는 말은 단순히 멸균 구역의 일원이 되는 것 이상이에요. 임상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clinical practice)로 들어서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brings a surge of adrenaline)" 경험이라는 거죠.
- 환자의 몸을 닦아드리는 일에서는 돌봄(compassionate care)이 드러나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그 부재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 고인을 닦아드리는 일에서는 애도와 종결(closure) 이 물질적으로 구현되고요.
같은 비누인데, 이렇게나 다른 경험들을 품고 있어요. 비누의 '무언의 언어'에 귀 기울이면, 의학교육과 임상의 풍경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5. 인간은 '번역하는 존재'다
벤야민의 언어론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그의 '번역(translation)' 개념을 봐야 해요. 이 대목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습니다.
번역은 결코 원본과 똑같을 수 없어요. 똑같다면 번역이 필요 없겠죠. 번역은 원본을 건드리면서도, 동시에 원본을 '배반'해야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를 원본과의 "불일치의 관계(relation of discrepancy)" 라고 표현해요. 그리고 여기서 핵심 통찰이 나옵니다.
"인간은 경험 한가운데에서 [번역의 자리에 서 있다]."
"humans hold a position of translation in the midst of experience"
우리는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옮기는 것 같은 언어 간 번역만 하는 게 아니에요. 비누의 '무언의 언어'를 '비누'라는 우리의 말로 옮기는 번역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언어의 언어는 번역이다."
"the language of language is translation"
무슨 뜻이냐면 — 우리가 세계를 일방적으로 언어로 '붙잡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번역 속의 세계가 거꾸로 우리의 언어와 경험과 사고를 빚어낸다 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이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규정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고 기꺼이 귀 기울이려는 태도—'비밀스러운 친화성'을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This requires an attentiveness and a willingness to listen—a readiness to hear 'secret affinities'—rather than an urge to determine."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귀를 여는 것. 어쩐지 좋은 임상가, 좋은 교육자의 태도와도 닮아 있죠?
💡 6. 그래서 우리가 배울 세 가지
저자들은 벤야민과 퐁주에게서 세 가지 교훈을 길어 올립니다.
- 인간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계에 깊이 얽혀 있고, 세계 속에 둥지를 튼(nested) 존재예요.
- 사물은 자기만의 관계망 속에서 무언의 언어를 표현한다. 비누, 대야, 물, 손… 그리고 그 관계가 우리의 경험을 빚어냅니다.
- 사물의 무언의 표현과 이론적 개념화는 서로를 보완한다. 둘은 다르지만 떼려야 뗄 수 없어요.
"[무언의 표현과 더 거리를 둔 이론적 개념은]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고 분리될 수 없다."
"while different, are interconnected and inseparable"
그리고 여기서 저자들은 중요한 현상학적(phenomenological) 경고 를 덧붙입니다. 많은 과학이 세계가 의미를 빚어내는 방식을 그만 '망각'해버린다는 거예요. 사물이 그것이 속한 세계로부터 경계가 지워진 채, 무관심한 세계(indifferent world) 속에 던져진다는 거죠. 그래서:
"인간은—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의학교육자들은—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거리를 두고 있지도, 일방적으로 의미를 확정할 만큼 상황을 통제하고 있지도 않을지 모른다."
"Humans—and, by extension, we medical educators—might be less detached and less in control of one-sidedly establishing meaning than we presume."
"사물의 두께와 밀도는, 세계의 복잡성을 길들이려 드는 정확하고 거리를 둔 개념적 지식보다 인간 조건에 훨씬 더 깊이 뿌리내려 있다."
"The thickness and density of things remain more deeply foundational to the human condition than wielding correct, detached, conceptual knowledge that attempts to tame the world's complexity."
깔끔한 개념과 정량 지표로 세계를 '길들였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정작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의학교육 연구자로서 뜨끔해지는 대목이에요.
🤖 7. 이게 의학교육이랑 무슨 상관일까?
자, 그래서 이 시리즈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요? 저자들이 제안하는 질문들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 문화적 현실의 사소한 디테일에 대담한 이론화를 더하면, 우리의 의학교육·의료 경험을 빚어내는 조건에 대해 무엇이 보일까?
- 어떤 말, 어떤 '무언의 언어'가 (시·문학·예술·역사를 통해서라도) 번역되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 수술 기구나 인공호흡기 같은 사물의 무언의 언어는 우리의 (학습) 경험을 어떻게 빚어낼까?
- 더 비판적으로는 — 누구의 언어가 잘못 번역되었고, 누구의 목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을까?
그중에서도 AI를 다루는 분이라면 이 질문이 특히 와닿을 거예요.
"자연의 목소리는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또 AI와 기술의 번역된 목소리는 어떤 소리로 들릴까?"
"how can the voice of nature be translated, or what does the translated voice of AI and technology sound like?"
우리가 AI를 그저 '도구'로만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혹시 AI가 '무언으로' 건네는 다른 언어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AI를 의학교육에 통합하는 일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이 질문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꽤나 실천적인 화두로 다가옵니다.
✨ 마치며: 대담하게 이론화하기
저자들은 벤야민의 작업이 '비판적(critical)' 인 동시에 '생산적(productive)' 이라고 정리해요. 기존의 전제를 흔들어 '쇼크'를 주는 동시에, 차이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는 거죠. 철학자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의 말을 빌려서 마무리합니다.
"그것은 사실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사실들을 알 수 있게—아니, 차라리 상상할 수 있게—만드는 이론적 기법을 설계하는 일이다."
"It is not about the production of facts, but designing theoretical techniques that can make a new generation of facts knowable, or rather: imaginable."
결국 이 글이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쳐온 의학교육의 사소한 것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것들이 건네는 '무언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대담하게 이론화해보자는 것.
손에 쥔 비누 한 장에서 시작해서 말이죠. 🧼
서론 Introduction
올해 Teaching and Learning in Medicine(TLM)은 의학교육에서의 철학(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second phase)을 시작한다. 이 철학 시리즈는 2020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목적은 복잡성(complexity)과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인해 교육적 성과(educational outcomes)를 추구하는 일이 좌절될 때, 실천적 멈춤(practical pausing), 즉 철학하기(doing philosophy)를 촉진하기 위해 철학자들과 의학교육자들 사이의 대화를 북돋우는 데 있었다.1 전통적으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quiry)는 기존의 현상(existing phenomena)을 명료화함으로써, 무엇을 알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지를 밝혀낸다.2 예를 들어, 철학자들은
- 교육 평가(assessment in education)의 맥락에서 ‘공정성(fairness)’을 분석하고,3
- ‘세계-중심 교육(world-centered educatio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구하거나,4
- 가르침의 사명(mission of teaching)을 위해 ‘지식과 상기(knowledge and recollection)’라는 플라톤적 의미(Platonic meaning)를 면밀히 검토한다.5
철학적 탐구의 정신 속에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국면은 기고자들에게 자신의 “강렬하고 아이 같은 호기심(intense, childlike curiosity)”을 발휘하여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문제들(problems no one looked for)”, 즉 더 깊이 이해된다면 우리 모두가 더 잘 교육하고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울 현상들을 찾아내도록 초대하였다.1(p337)
이 첫 번째 국면의 논문들은 ‘돌봄(care),’6 ‘인식론과 근거기반의학(epistemology and evidence-based medicine),’7 의학교육의 ‘인종적 과거(racial past),’8 그리고 의학과 보건전문직교육(health professions education)에서 ‘말로 무엇을 한다는 것(do things with words)’이 무엇을 의미하는지9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교육자들이 철학하기(doing philosophy)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면서, 이 시리즈는 의학교육에서 철학을 다루는 다른 접근들10, 즉 기존 철학 개념(existing philosophical concepts)의 적용(application)과 명료화(articulation)를 강조하는 접근들과는 상보적(complementary)이지만 구별되는(distinct) 위치에 놓였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은 이전 작업을 바탕으로 하되, 동시에 시리즈의 범위를 확장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교육자들이 자신의 “강렬하고 아이 같은 호기심”을 발휘하여 경험의 본성(nature of experience)을 탐문하고, 의학교육과 의료 실천(medical education and work)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것이 가능성(possibility)에 대해 갖는 함의를 탐색하도록 초대한다. 우리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서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cultural critic)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언어(language)11와 번역(translation)12에 관한 작업을 매우 짧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제시하되, 명시적으로 현상학적 관점(phenomenological perspective)13–15을 취한다. 우리는 철학적 탐구, 보건의료(healthcare), 의학교육 사이에서 진행 중인 대화를 더욱 자극하고, 고무하며, 어쩌면 불편하게 만들기까지 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대화가 교육자와 학습자의 경험(experiences)에 더 잘 뿌리내리고, 그 경험에 더 잘 응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인문학(humanities)16을 구성하는 다른 학문 분야들, 즉 의학 학습자와 그 교육자들이 온전함(wholeness)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이 관여하고 있는 학문 분야들로부터의 통찰이 이 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또는 “학술적 장르와 체제(academic genres and regimes)의 경계를 시험하고 밀어붙임”으로써17(p124) 그 대화를 어떻게 변형시킬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의 “비밀스러운 친연성” Walter Benjamin’s “secret affinities”
벤야민 작업의 스펙트럼은 방대하며, 그것을 성격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글쓰기는 언어와 번역에 관한 성찰,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 정치이론(political theory), 칸트 철학(Kantian philosophy), 유대 신비주의(Jewish mysticism), 마르크스주의 유물론(Marxist materialism),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동시대 지식인들과의 교류, 라디오 방송, 특히 어린이를 위한 방송, 도시 생활에 관한 관찰, 꿈, 일상적 사물(commonplace objects), 여행, 예술, 사진, 영화, 기술, 연극, 심지어 미키 마우스(Mickey Mouse)와 같은 문화 현상까지 포함한다.18,19 벤야민의 저작 전체(oeuvre)를 하나로 묶는 것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가(what the conditions [are] that make experience possible)”19(p6)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 벤야민의 “겉보기에 멀리 떨어진 관념들과 미세한 현실의 세부사항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 between seemingly remote ideas and minute reality details)”18(p4)은 ‘근대성(modernity)’과 경험을 형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14
예를 들어, 벤야민은 One-Way Street20에서 노트와 같은 단상들을 모아 근대적 경험(modern experience)을 포착하는데, 그는 ‘주유소(Filling Station),’ ‘아침 식사 방(Breakfast Room),’ ‘장갑(Gloves),’ ‘장난감(Toys),’ ‘멕시코 대사관(Mexican Embassy)’과 같은 제목 아래 “일상 경험의 대상들(objects of everyday experience)”을 묘사한다.21(p76) 벤야민의 동시대인이자 친구였던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이러한 성찰들이 “수수께끼 같은 형식(enigmatic form)을 통해 충격을 주어” 사고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개념적 사고(conceptual thinking)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던 종류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다.21(p76)
벤야민의 작업은 종종 독자들에게 겉보기의 모순(seeming contradictions), 복잡한 용어(complex terminology), 그리고 꿈과 같은 이미지(dreamlike images)를 마주하게 하지만, 그의 분석에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역사로 개념적으로 재번역(conceptual re-translation)될 수 있게 하는”18(p2) 심오하고도 예견적인 비판(profound and anticipatory criticism)이 담겨 있다. 이 서론에서 우리는 그의 철학이 지닌 힘의 일부를 활용하여, 기고자들이 의학교육자로서 자신들의 현실(reality)을 탐구하도록 영감을 주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상들에 관한 경계를 넘나드는 분석적 대화(boundary-crossing, analytical conversations) 속에서, 다른 인문학 분야들이 차지하는 통합적 위치(integral place)를 보여주고자 한다. 요컨대, 벤야민과 함께 우리는 문화적 현실(cultural reality)의 미세한 세부사항들(minute details)이,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을 상상하는 대담한 이론화(daring theorizing)와 결합될 때,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에 대한 우리의 동시대적 경험(contemporary experiences)을 형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지 묻고자 한다.
언어, 번역, 그리고 경험의 출현
Language, translation, and the emergence of experience
여기에서 우리는 “현실의 미세한 세부사항들(minute details of reality)”이 우리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에 관해 이론화하는 것이 경험을 이해하고 함양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 벤야민의 언어(language)와 번역(translation)에 관한 성찰에 초점을 둔다. 그의 작업에서 벤야민은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means for communication)으로 보는 상식적 해석(commonsense interpretation)에 도전한다.19
- 첫째, 그는 언어가 독일어, 중국어, 스와힐리어, 페르시아어, 라틴어 등으로 알려진 구두 또는 문자 관습(oral or written conventions)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19
- 둘째, 그는 언어가 단순히 인간이 자기 의식(consciousness)의 내용을 포착하고 전달하는 체계(system)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는 언어가 경험의 질(qualities of experience)14에 관한 것이며, 인간적 존재와 비인간적 존재 모두가 실제적이고 비은유적인 의미(real, non-metaphorical sense)에서 언어를 표현한다고 강조한다.19,22,23
우리가 일상적으로 음악의 언어(language of music), 예술의 언어(language of art)11, 그리고 비인간 동물의 언어, 예를 들어 새소리(birdsong)를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벤야민은 램프와 같은 사물(objects)도 비록 침묵하는 언어(mute language)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그 언어로 표현한다고 제안한다.11 벤야민이 무엇을 의미했을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감지하기 위해,14 시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24가 비누 한 조각의 표현(expression)에 관해 쓴 다음 텍스트를 생각해보자.
비누는 할 말이 매우 많다. 그것이 유창하게, 열정적으로 말하게 하라. 그것이 말하기를 끝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24(p13)
일종의 돌이지만, 자연 속에서 굴러다니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돌이다. 그것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지고, 물에 굴러다니기보다는 당신의 눈앞에서 녹아내린다.24(p14)
비누는 처음에는 완벽한 자기통제(self-control)를 보여준다. 비록 어느 정도 은은한 향을 풍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자마자, 물론 어떤 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얼마나 장엄한 기세(elan)인가! 자신을 내어주는 데 있어 얼마나 완전한 열정인가! 얼마나 큰 관대함인가! 얼마나 풍부한 말솜씨(volubility)인가, 거의 고갈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24(pp21–2)
우리는 퐁주의 접근이 “사물이 목소리를 갖도록 허용하는 것(to allow the thing to have a voice)”25(p177)임을 관찰할 수 있다. 퐁주는 비누의 목소리(voice of soap)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위 발췌문들에서 사용(use)은 비누 표현에 대한 시적 묘사(poetic descriptions)를 이끈다. “누군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자마자(as soon as one occupies oneself with it),” 우리는 그것이 스스로를 내어주는 선물(gift of itself) 속에서 그 관대함(generosity)을 본다.24(pp21–2) 비누를 사용하는 렌즈(lens of using soap)를 통해 다양한 성질(qualities)이 시인에게 나타나며, 비누의 “두께와 밀도(thickness and density)”가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25(p177) 일상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비누 같은 사물에 손을 문지를 때 많은 일이 일어나며, 퐁주는 그러한 경험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그렇다. 처음에는 받침 접시 위에 놓여 있을 때는 꽤나 무정형(amorphous)이다. 하지만 물을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쓰고, 남용하도록 우리의 손을 순응하게 만드는 힘은 비누의 손에 있다. 물이 우리에게 달라붙고,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래서 물은 이제부터 그 베일, 그 옷, 그 무도회 장식띠 속에서 영원히 우리와 춤추고 싶어 하도록 변형된다.24(p18)
이 움직이지 않는 돌은 물고기만큼이나 붙잡기 어렵다. 그것이 내게서 미끄러져 나가 개구리처럼 다시 대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라 … 또한 자기 자신을 대가로 하여 덧없음의 푸른 구름, 혼란의 푸른 구름을 내뿜으면서 …24(p. 19)
물론 우리는 모두 비누가 물고기도 아니고 개구리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퐁주의 시와 함께라면, 우리는 사용 중인 비누(soap-in-use)라는 렌즈를 통해 보았을 때 그것이 이러한 것들일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왜 그런가? 퐁주는 씻는 행위(act of washing) 속에서 표면화되는 비누와 다른 사물들 사이의 관계적 의미(relational meaning)를 움직이게 한다. 인간과 비누의 만남(encounter) 속에서 비누는 미끄러운 무언가가 되지만, 오직 물과 접촉할 때만 그렇다. 한편 물은 대야 속에 잠자고 있으며, 손을 비누에 문지르는 행위 속에서 물은 비눗물이 되어 인간의 손에 달라붙는다. 받침 접시, 손, 대야, 물, 미끄러움, 개구리, 돌, 청결함,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씻는 행위 속에서 함께 모이며, 그것들은 모두 비누의 경험(experience of soap)을 불러일으킨다.
벤야민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사물, 즉 비누의 침묵하는 언어(mute language)가 인간에게 자신을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전에서 “물과 함께 문지르면 거품으로 녹는 세제(a detergent that, by rubbing it with water, dissolves into foam)”26(SS transl.)라고 정의된 ‘비누(soap)’라는 단어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 사전적 정의가 비누의 작용(action)을 특징짓기는 하지만, 공중화장실과 병원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에서 비누는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정립된 의미(established meaning)를 넘어 자신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 비누는 “손 위생 준수(hand hygiene compliance)와 그 대리지표(surrogate measures), 예컨대 ABHR[alcohol-based handrub, 알코올 기반 손소독제] 소비량”27(p.10)의 실행을 통해 보건의료의 질(healthcare quality)을 의미할 수 있다.
- 손 씻기(handwashing)에서 비누는 또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to save lives)’ 따로 떼어놓은 시간에 관한 특정한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28
- “싱크대 앞에 서 있을 때 20초는 긴 시간”이지만, 20초짜리 노래를 부르는 것은 서둘러 문지르는 사람들에게 속도를 맞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29
- 외과 학습자(surgical learners)에게 ‘스크럽 인(scrub in)’하라는 요청을 받는 것은 단지 멸균 영역(sterile field)의 일부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또한 “아드레날린의 급증을 가져오는”30 임상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clinical practice) 안으로 포함되는 문을 여는 순간(gate-opening moment of inclusion)을 나타낸다.
- 비누는 환자가 씻겨지는 방식에서 연민 어린 돌봄(compassionate care), 또는 그 결여31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32 사망한 사랑하는 이를 씻기는 행위 속에서 종결감(closure)을 물질화(materialize)할 수도 있다.33
요컨대, 퐁주의 시를 벤야민의 렌즈를 통해 보면 우리는 “말에서 의미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slip[ping] from words to meanings …)”24(p19), 다시 말해 의식적 사고(conscious thought)를 전달하는 언어에서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로 이동하는 것에 민감해진다. 벤야민과 퐁주 모두 이러한 구분들을 가지고 논다.9,13
젖은 비누 한 조각처럼, 의미(meaning)는 우리 곁을 미끄러져 지나간다. 우리는 정립된 정의(established definitions)를 가지고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우리가 말하면서도 의미하지 않는 것 속의 모호성(ambiguity)과 씨름해야 한다.13 이러한 의사소통의 불일치(communicative discrepancy)는 의미론적으로(semantically) 추적할 수 있는 여러 관습적 함축(conventional connotations)을 가진 인간의 단어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분석은 함축들이 즉각적인 인간 경험(immediate human experience)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비누를 다루는 과정에서, 비누가 속한 세계는 “명시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이해된다(not explicitly grasped, it is implicitly understood).”34(p257) 비누와 같이 하나로 고립된 사물(single, isolated object)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인간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세계의 일부이며, 사물들 사이에는 수많은 역동적 관계(dynamic relations)가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과 퐁주는 그러한 세계 속 경험의 표현(expression of experience)을 자신들의 철학적·시적 탐구의 전면에 놓는다. 우리는 철학 시리즈의 이 새로운 국면에 실릴 탐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의 지속적인 문제들(persistent problems)은 이러한 성격의 탐구에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보는 상식적 이해에 대해 벤야민이 왜 반발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들이 의식적 존재(conscious beings)이며, 우리의 의식, 예를 들어 우리의 지식(knowledge)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도구적으로(instrumentally) 사용한다는 생각에 고착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 이해는 빈약하다(bare).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단순히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다음 그러한 정신적 정보(mental information)를 타인에게 명확히 표현한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14 이 생각은 세계(world)34와 자신의 언어를 우리에게 표현하는 사물들을 망각한다. 그러한 망각(forgetfulness)에 맞서기 위해, 벤야민은 독자들에게 음악, 조각, 심지어 램프조차도 비록 침묵하는 언어이기는 하지만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근본적 직관(fundamental intuition)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11,14 “사고를 위한 더 구성적인 조건(more constitutive condition for thinking)”19(p45), 그리고 어쩌면 의학교육의 지속적 문제들을 재상상하기 위한 조건은 경험의 표현으로서의 언어(language as expression of experience)13이다.
언어가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함께 묶는지 더 확고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벤야민의 번역(translating)에 관한 견해12를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의상 번역은 결코 원본(original)과 동일할 수 없다. 만약 동일하다면 그것은 완전히 중복적(redundant)일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은 어떤 원본적인 것(something original)에 닿아 있지만,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원본을 거스른다(defies the original). 따라서 번역은 원본과 친밀한 “불일치의 관계(relation of discrepancy)”를 가진다.23(p77) 사물들의 침묵하는 언어(mute languages of things)에 관한 벤야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경험의 한가운데에서 번역의 위치(position of translation)를 점유한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표현적 언어(expressive language), 예컨대 독일어에서 프랑스어로 의미를 번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침묵하는 언어, 예컨대 비누의 언어를 표현적 언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비누(soap)’와 같은 표현적 단어는 경험의 특정 측면을 포착하고 부각하지만, 결코 모든 것을 포착하지는 못한다. “만약 단어가 (…) 모방이나 정확한 복제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단순한 반복이 될 것이다. 단어는 (…) 순전한 중복일 것이다.”25(p187) 따라서 우리는 인간 경험의 근본 조건(fundamental condition for human experience)은 언어의 언어가 번역(the language of language is translation)35이라는 것이라고 제안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일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 속의 세계(world in translation)가 인간의 언어, 경험, 사고를 형성한다. 이것은 결정하려는 충동(urge to determine)이 아니라, 주의 깊음(attentiveness)과 듣고자 하는 의지(willingness to listen), 즉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을 들을 준비(readiness)를 요구한다.
1. 의미는 '젖은 비누'처럼 미끄럽고 완벽하게 잡히지 않는다
2.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다
3. 인간은 세상의 '침묵의 언어'를 사람의 말로 '번역'하는 존재다
💡 요약 및 의학교육과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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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벤야민과 퐁주로부터 다음을 배웠다.
- 첫째, 인간 존재는 세계에 관한 분리된 정신적 정보(detached mental information)를 의사소통을 통해 타인에게 단순히 방송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근원적으로(primordially) 그리고 친밀하게(intimately) 우리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고, 그 세계에 관여하거나 투자되어 있으며, 또는 그 안에 깃들어 있다(nested).
- 둘째, 사물들은 자신들의 관계망(web of relations) 속에서 자신의 침묵하는 언어를 제시하거나 표현한다. 비누, 대야, 물, 손, 심지어 물고기, 돌, 개구리, 그리고 20초짜리 노래까지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관계들은 사물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형성한다.
- 셋째, 사물에서 나오는 침묵하는 표현(mute expressions)은 더 분리되고(detached), 형식적(formal)이며, 이론적인 conceptualizations, 예컨대 ‘비누는 세제이다(soap is a detergent)’라는 개념화를 확장한다. 왜냐하면 “‘사물(thing)’은 관찰자의 분리된 관찰(detached observation)의 단순한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25(p179) 때문이다.
우리가 의학교육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즉각적인 인간 경험에 뿌리내린 사물들의 침묵하는 표현과 그러한 사물들에 관한 더 분리된 이론적 개념(theoretical conceptions)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 연결되어 있고 분리될 수 없다(while different, are interconnected and inseparable)”36(p65)는 것이다. 그러한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을 찾는 일은 우리가 현실의 의사소통적 행위(reality’s communicative acts)에 주의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출현하는 관념들을 번역하여 교수와 학습 경험(teaching and learning experience)을 형성하도록 도울 것이다.
벤야민에게서 우리는 하나의 현상학적 경고(phenomenological warning)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많은 과학(sciences)이 세계가 의미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망각(forget)’하기 때문이다.14,36 “원래는 세계에 속하고 그 안에서 자리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던 사물들은 이제 그 경계(boundaries)를 벗겨내어지고,” “무차별적인 세계(indifferent world)” 속에 던져진다.34(pp66–7) 인간, 그리고 확장해서 말하면 우리 의학교육자들은 의미를 일방적으로 확립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정하는 것보다 덜 분리되어 있고(less detached), 덜 통제하고 있을 수 있다(less in control). 사물들의 두께와 밀도(thickness and density of things)는 세계의 복잡성(complexity)을 길들이려 시도하는 정확하고 분리된 개념적 지식(correct, detached, conceptual knowledge)을 휘두르는 것보다, 인간 조건(human condition)에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인 토대를 이룬다.37
이 시리즈에 대한 우리의 목표 Our aims for this series
왜 우리가 TLM의 의학교육에서의 철학(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 시리즈의 최신 진화를 소개하기 위해, 언어와 번역에 관한 벤야민의 포괄적이지만 다소 독특한 사상으로 눈을 돌리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벤야민의 사상을 현상학적 렌즈(phenomenological lens)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현상학적 철학은 세계의 경험을 공식화하고, 너무 자주 간과되거나 지나쳐지거나 잊혀지는 세계와의 우리의 접촉을 불러일으킨다(a phenomenological philosophy formulates an experience of the world, evokes our contact with the world too often overlooked, passed by, or forgotten)”25(p176)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에서 우리는 “비밀스러운 친연성(secret affinities)”의 탐색을 의학교육을 조사하는 정당하고 엄밀한 방법(legitimate and rigorous way of investigating medical education)으로 장려함으로써, 간과되어 온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한다.
벤야민의 언어와 번역 개념을 통해, 우리는 그의 지적 작업에서 비판적(critical)이면서 동시에 생산적(productive)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14
- 첫째, 벤야민은 특정 현상에 관한 주어진 전제들(presuppositions)의 집합을 흔들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비판적이다.
- 언어에 대한 ‘충격적(shock)’ 해석, 즉 언어를 표현의 비은유적 수단(non-metaphorical means of expression)으로 제시함으로써, 벤야민은 인간 경험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그리고 간과된 측면들을 전면에 드러낸다.
- 둘째, 번역 행위(acts of translation)는 또한 생성적(generative)이다. 그것들은 차이(difference)를 위한 공간을 연다.
- 철학자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이 경험 연구(empirical research)에 영감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는 철학에 대해 썼듯이, “그것은 사실의 생산(production of facts)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사실들이 알 수 있게, 아니 차라리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이론적 기법(theoretical techniques)을 설계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38(p12, tranls. SS)
따라서 벤야민과 함께, 우리는 이 철학 시리즈의 새로운 국면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 문화적 현실(cultural reality)의 미세한 세부사항들(minute details)이 대담한 이론화(daring theorizing)와 결합될 때,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에 대한 우리의 동시대적 경험을 형성하는 조건들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17
- 보건의료전문직(healthcare professionals)을 개발하기 위해 어떤 말(words) 또는 침묵하는 언어(muted languages)가 번역을 필요로 하는가? 예를 들어 시(poetry), 문학(literature), 예술(art), 역사(history)를 통해서도 말이다.
- 예컨대 자연의 목소리(voice of nature)는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가? 또는 AI와 기술(AI and technology)의 번역된 목소리는 어떤 소리를 내는가?
- 감정(emotion)과 음악(music)의 언어가 보건의료와 보건전문직교육(health professions education) 안으로 들어올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예컨대 수술 기구(operating instruments)와 인공호흡기(respirator machines)의 침묵하는 언어는 학습 경험(learning experiences)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 또는 더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누구의 언어가 오역(mistranslated)되었는가? 또는 번역을 통해 추가적인 공간(additional space)을 필요로 하는가? 누구의 언어 또는 번역은 들리지 않았는가?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국면을 통해, 우리는 의학교육과 보건의료 실천을 진전시킬 그러한 관념적 개방성(ideational openness), 변화(change), 그리고 어쩌면 ‘충격(shock)’까지도 탐색하고자 한다.
1. 잊혀지고 소외된 '진짜 경험'에 불을 켜기
2. 당연한 것을 뒤흔들고(비판적), 새로운 상상을 돕는(생산적) 철학
3. 의학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파격적인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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