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용 전문가, 교육 전문가, 그리고 임상가.
의료인문학(으로 통칭되는) 과목의 주요 교수자는 크게 이 세 유형으로 구분될 것 같다. 물론 둘 또는 셋의 교집합도 있다. 문제는 한 분야의 전문성이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의학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내용(의료커뮤니케이션, 의료윤리 등)이나 그것이 임상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
다른 예로, 임상 교수님들은 늘상 환자와 의사소통하며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경험과 직관으로 체화된 그 행위를 학문적 근거를 토대로, 학생의 수준에 맞게 세분화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본다.
2. 의과대학의 현실
일단 의과대학에는 의료인문학(으로 통칭되는) 과목을 담당할(또는 담당하고자 하는) 교수의 수가 적다. "석사 또는 박사 학위"로 대변되는 "전공자"로 제한하면 특히 더 그렇다. 임상에서는 낙수과니 기피과니 비인기과니 하지만, 그보다 더 적은 것이 의과대학 졸업 후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것이며, 그것보다도 더더더 적은 것이 의과대학 졸업 후 의료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다못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인문학 계열 교실에서 파트타임 대학원생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전공자가 있든 없든 의과대학에는 이미 평가인증 기준에도 명시된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으로 개설된 과목들이 있다. 따라서 누군가는 그 과목을 맡아야 하고, 그 수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교육학(또는 의학교육학) 전공자들에게 의료인문학(혹은 인문사회의학으로 불리는) 과목의 수업이나, 책임교수나, 더 크게는 전체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하는 책임이 맡겨진다. 기초의학도 아니고 임상의학도 아닌 과목, 그래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맡으려 하지 않는 역할이 다만 인접한 분야라는 이유로 맡겨지는 것이다.
3. 교육 전공자의 입장
학교 입장도 이해는 된다. 의료인문학 전공자(내용전문가 or 학위소지자)는 매우 적고, 임상 선생님들은 수업이나 과목을 맡기 부담스러워한다. 그나마 가까운 분야로 보이는 것이 (마침 평가인증 덕분에 학교마다 한 명씩은 있는) 교육학/의학교육학교실 전임교원이다.
이러니 교육 전문가도 힘겹긴 마찬가지다. 한/중/일이 동아시아 국가로 퉁쳐져도 서로는 서로를 구분한다. 어쩌면 의료인문학과 의학교육학도 그렇다. 멀리서(예컨대 기초의학/임상의학 전공자가)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의료인문학으로 묶이는 학문들도 서로 다르고(의사학-의철학-의료윤리 등), 의학교육학과 의료인문학도 다르다. 공통점은 어쨌거나 "문과"라는거...?
그리하여 교육 전문가는 종종 내용 전문가도 아니고 임상현장의 프랙티스도 모르지만 교육은 해야하는 입장에 놓인다. 이상적으로는 내용전문가 및 임상가와의 삼각협력이 좋겠지만, 내용전문가는 가까이 없고, 임상가는 선뜻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4. 어떻게 해야할까
교육 전문가일지라도, 한 분야의 전문성이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최소한의 내용전문성도 갖추고, 최소한의 임상현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못하겠으면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전문가가 교육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러한 노력이 마냥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무작정 거부해서도 안 되지만, 내 역량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도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조직의 문제는 조직이 감당할 책임도 있다.
학술적으로는, 두루뭉술하게 설문을 설계한 사람조차 해석하지 못할 설문은 지양했으면 한다 (주최측엔 죄송하지만, 설문을 열었다가 닫아버린 솔직한 심정이다). 그보다는 협소해도 단단한 근거가 필요하다. 만약 내용전문가나 임상가가 아니라 교육 전문가가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또는 충분하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적절한 연구를 설계해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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