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학생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한 본과 고학년 학생이 임상실습 중에 직접 만들었다는 앱을 보여주러 왔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니 단순한 '메모장 잘 만든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설계한 도구의 핵심은 뜻밖에도 인공지능을 똑똑하게 쓰는 법이 아니라, 일부러 덜 똑똑하게 쓰는 법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학생의 이야기를 빌려, 임상실습에 들어온 생성형 AI가 학습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본다.
1. 지금 실습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
학생의 설명은 솔직했다. 요즘 실습 학생들은 전자의무기록(EMR)에서 필요한 정보를 거의 통째로 긁어낸다. 바이탈 트렌드는 이미지로 캡처하고, 검사 결과는 표째로 내려받는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별도 가공 없이 곧장 생성형 AI에 입력해, 매일 아침 교수 앞에서 발표할 브리핑 대본을 '생성'한다. 워크플로우만 놓고 보면 효율적이다. 문제는 그 효율의 이면이다.
학생이 짚은 부작용은 세 가지였다.
첫째, 진단적 임프레션을 스스로 세우는 능력의 위축이다. 환자를 보기 전 감별진단을 머릿속에서 굴려보는 과정 — 임상추론의 핵심 근육 — 이 AI의 즉답으로 대체되면서, 그 근육을 쓸 일 자체가 사라진다.
둘째, 무비판적 전달이다. 고성능 AI는 학생이 소화할 수 없는 양의 정보를 쏟아내는데, 학생에게는 그것을 취사선택할 역량이 아직 없다. 그래서 실제 환자 상태와 어긋나는 내용까지 그대로 브리핑하게 되고, 교수는 "그런 징후가 없는데 왜 그 얘기가 나오지?" 하고 의아해한다. 정작 학생들끼리는 "아, 저건 AI를 그대로 베꼈구나"를 안다.
셋째,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개인정보 문제다. 비식별화 과정 없이 환자 데이터가 외부 AI 서비스로 흘러 들어가는 관행이 암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구가 빠르게 보급되는 동안 규범과 가드레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한 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요컨대 학생이 진단한 것은 단순한 '부정행위'가 아니다. 학습의 외주화(outsourcing of learning), 그리고 그로 인한 탈숙련(deskilling)이라는, 훨씬 구조적인 현상이다.
2. 학생의 대응: '먼저 해보고, 그다음 피드백'
흥미로운 것은 그가 문제를 진단한 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임상추론과 의무기록 작성을 돕는 앱을 직접 만들었는데, 설계 철학이 분명했다.
- 환자 배정 → 진료 전 주호소·과거력 정리 → 초기 감별진단 → 검사 결과 정리 → 문제 목록 정의 → 매일의 SOAP 노트 → 제출용 문서 완성까지, 임상추론의 흐름을 단계로 구조화한다.
- 각 단계는 학생이 스스로 채우기 전에는 AI 피드백이 잠겨 있다. 직접 작성을 마쳐야 비로소 '어시스트'가 해제되어, 내가 세운 감별진단이 어디가 타당하고 어디가 약한지를 알려준다.
-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대목 — 그는 AI의 지능을 의도적으로 학생 수준으로 낮추려 했다. 이유는 명료했다. "AI가 너무 앞서 있으면 우리는 배울 게 없어진다."
즉, 이 도구는 AI를 '더 잘 쓰게' 해주는 생산성 앱이 아니라, 학습이 일어나는 마찰(friction)을 일부러 남겨두는 교육 도구다. 일부러 답을 늦추고, 일부러 먼저 생각하게 하고, 일부러 AI를 학습자 눈높이까지 끌어내린다.
3. 왜 이것이 교육학적으로 흥미로운가
학생은 이론을 끌어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설계는 우리가 아는 여러 개념과 곧바로 포개진다.
비계(scaffolding)와 근접발달영역(ZPD). 좋은 비계의 핵심은 '학습자가 혼자서 막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을 겨냥하는 데 있다. 레벨 1의 학습자에게 레벨 7~8의 피드백을 주는 것은 비계가 아니라 그냥 답을 대신 써주는 것이다. 학생의 '레벨에 맞춘 피드백' 발상은 ZPD를 도구로 구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과 인지부하. '먼저 직접 작성해야 잠금이 풀린다'는 제약은 인출(retrieval)과 생성(generation)을 강제한다. 너무 빠르고 매끄러운 도움은 오히려 학습을 약화시킨다는, 학습과학의 반복된 교훈과 맞닿아 있다.
위임(entrustment)과 점진성. 학생은 이 구조를 '게임의 레벨업'에 비유했다. 내 역량이 올라가면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것. 이는 학습자의 성장에 따라 감독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조정한다는 위임 개념의 학생판 직관처럼 읽힌다.
AI를 무엇으로 비유하는가의 문제. 같은 도구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능력을 확장하는 '외골격'이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자기 사고를 은폐하는 '투명망토'가 된다. 이 학생이 만든 도구는, 자신이 AI를 투명망토로 쓰지 않으려고 스스로 채운 일종의 안전장치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그 선택의 주체가 교수자가 아니라 학습자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4. 두 번째 관찰: 사라지는 '동료'
대화는 도구를 넘어 더 큰 이야기로 번졌다. 예전 같으면 모르는 것을 옆자리 동료에게 묻고 함께 따져보며 해결했을 텐데, 이제는 각자 자기 AI에게 묻고 각자 답을 얻는다. 그 결과 학생들 사이의 교류와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관찰이다.
AI가 형편없던 시절(저학년 때)의 경험과 비교하면 분명 그렇다는 것이 학생들의 체감이었다. 기술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크게 넓혀준다. 그러나 의학·의료는 결국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며, 학습 역시 실천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 안에서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다. 개인의 역량이 외주화로 커지는 동안, 소속감(belonging)과 동료 학습의 기회가 의도치 않게 축소된다면 — 우리는 그 상실을 어떻게 다시 설계로 메울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임상실습 팀 안의 갈등조차 이 학생은 "수련의로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가까이서 매일 부딪치니 다툴 일도 늘지만, 그 마찰이 곧 배움의 기회라는 것이다. AI가 줄여주는 마찰과, 우리가 남겨두어야 할 마찰을 구분하는 일 — 이것이 앞으로의 교육 설계가 떠안을 질문 같다.
5. 교육자에게 남는 함의
이 한 번의 대화에서 나는 몇 가지 실천적 시사점을 얻었다.
역할의 재분배. 단계별로 떠먹여 가르치는 일은 AI가 점점 더 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학생이 '대본 없이, AI를 다 내려놓고, 맨몸으로 얼마나 잘 추론하는가'를 평가하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가르치는 일과 평가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나누는 설계가 필요하다.
'먼저 산출, 그다음 도움'의 일반 원칙. 학생이 만든 잠금 구조는 교실로도 옮겨올 수 있다. 어떤 학습 활동이든 — PBL의 종이 사례든 실제 환자든 — AI의 도움에 앞서 학습자의 초안을 강제하는 단순한 규칙 하나가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든다.
자발성과 자연 실험. 이런 도구를 모두에게 강제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오히려 필요를 느끼는 학생부터 자발적으로 쓰게 하고, 사용 집단과 비사용 집단의 성과 차이를 관찰하는 편이 — 동기·사전지식 같은 교란이 있더라도 — 향후 확산의 근거를 쌓는 더 건강한 경로일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답을 찾고 있다.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이것이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예민하게 문제를 느끼고, 가장 먼저 해법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라는 사실. 교육과정 개편을 고민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만들어 둔 직관을 흘려보내지 않고 제도와 근거로 받아 안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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