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BT시험감독을 하다보면 멍때리는 시간이 많다보니 온갖 상상을 하곤 한다. CBT시험감독이라는게 사실 말이 "시험감독"이지, 딱히 역할이랄게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학생들의 모니터는 중앙에서 모니터링되고 있다. 문항 순서와 보기는 섞여 나와서 인접한 사람과 문항순서와 답도 다르다. 보안필름 때문에 조금만 모니터 정면에서 비켜나면 애당초 아예 화면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이 상황에서 감독관의 존재의미란, 감독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마구마구 컨닝페이퍼를 본다거나, 대담하게 옆 사람과 정답을 주고받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정도. 

 

그러다보니 실제로는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감독관보다는 troubleshooter의 역할이 더 중요한 상황이 더 많다.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로그인이 안된다던가, 문제가 이상하다던가, 인터넷이 끊겼다던가) 학생이 손을 들면 찾아가서 문제상황을 확인하고, 적절하게 대처해주는 것이 그 역할이랄까. 

 

2.

수업은 이미 다 녹화되어 있다.

문제는 이미 다 문제은행에 있다.

시험은 최소한의 감독관으로 족하다.

 

이 상황에서 굳이 "수십시간의 블록강의(기간) 후 일시에 모여서 치르는 시험"이 필요할까? 

 

딱 하나 부족한게 있다면 상상력이 아닐까. 혹은 블록강의에서 등수로 성적(A~F)을 내야 한다는 관습에 너무 익숙해진건 아닐까.

 

3.
그냥 내년부터는 

N개 블록강의를 묶어서,

이미 녹화된 동영상 강의를 스스로 보고,

문제은행에서 1/N씩 무작위 추출된 문항으로,

자율적으로 시험을 보고(몇 번이든),

일정 기준점수를 넘기면 Pass 주면 안될까?

시험 한 번에 못 넘기면 두 번 보는거고, 반대로 일찍 Pass한 학생은 남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겠지. 

성적? 그건 그 남는 시간을 얼마나 잘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4.

물론 실제 구현하려면 훨씬 디테일하고 많은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복원(유출)될테니 새로운 문제가 어느 정도는 계속 보충되어야 할테고,

학생이 아무때나 시험볼 수 있을 수는 없을거고, 어느정도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봐야할 것이다.

Pass기준도 설정해야 할 거고, 일찍 Pass한 학생들에게 어떤 추가적 교육을 제공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수도 학생도 행정도 (적어도 초기엔) 어마어마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방향은 이 방향이 맞지 않을까?
말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Competency-based, (& Time-variable)한 교육을 지향한다면 말이다.

1

CBME는 보건의료 담론에 1970년대 후반에 처음 소개되었으며(McGaghie et al. 1978), 이후 여러 전문직에서 CBME를 탐색해보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적절한 관심을 얻지 못했다. 의학교육에는 1990년대 후반에CBME가 다시 도입되었지만, 그 때까지도 교육/훈련의 구조나 과정을 더 중시하였고, 역량을 평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 큰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2

CBME의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사전에 정의된 성과나 역량이 교육과정과 평가를 이끌어간다(drive).
  • 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의도한 성과를 달성하게 만들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수련 과정에서 겪은 의료의 퀄리티가, 수련 이후 커리어의 의료의 퀄리티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 CPD단계에서도 수행능력의 지속적 개선을 목표로 할 수 있다. CBME는 본질적으로 로드맵의 역할을 하며, 커리어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발달을 촉진할 수 있다.
  • 성과에 초점을 둠으로써, 환자와 이해관계자에게 투명성을 제공한다.
  • 의료전문직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계약에 따라 의학교육을 재편성(realign)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3

이러한 차원에서 CBME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도전과제는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가능하다.

  1. 역량-기반의 교육 및 훈련을 서포트하도록 규제 및 이해관계자와 정렬aligning하는 것
  2. 교육과정 목표가 경험적 훈련과 align되도록 교육현장의 재설계와 임상현장의 재설계를 통합하는 것
  3. 개인/프로그램/기관을 측정할 수 있는, 환자와 인구집단의 요구를 반영한 성과를 정의하는 것
  4. 정의된 성과defined outcome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책무성을 갖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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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규제와 이해관계자의 정렬이다. 많은 규제 정책은 과거의 교육과정 및 평가 방식에 맞춰져 있고, 실제로는 CBME의 시행에 방해가 된다. 의학교육 규제기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을 개선하고, 평생에 걸친 전문직업적 발전과 성장을 위한 연속성을 협력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교수자는 학습자의 지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개별화된 학습과 전문직업적인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평가/관찰/피드백/코칭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교육/수련기관은 승진, 업적, 보상 등을 통해 교수개발과 교육에 대한 헌신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교육/수련이 이뤄지는 시스템과 환경을 재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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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교육 재설계와 임상 재설계의 통합이다. 의료서비스의 발전에 따라, 의학교육의 재설계redesign은 의료전달시스템의 재설계를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정렬alignment이 없다면, 학습자는 새롭게 등장하는 원칙이나 의료모델을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임상 학습 환경 속에서 배워야 한다. 역량 있는 trainee는 역량 있는 기관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 임상의료의 재설계 노력과 교육의 재설계 노력은 상호적이어서, 한 쪽의 성공은 다른 쪽의 성공에 달려 있다. 지금은 교육이 임상이나 연구 업무에 부차적인 상태인데, 교육을 위한 자금이 임상과 연구 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책과 펀딩의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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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성과의 정의이다. 성과는 비단 개별 훈련생 뿐만 아니라, 교육/수련 프로그램, 교육/수련 기관, academic health systems이 추구해야 할 성과도 함께 정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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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상호 책무성이다. CBME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면, 개인/기관/규제기구가 정의된 성과 달성을 위한 책무를 다할 수 있게 서로서로 붙잡아줘야(hold one another) 한다. 개별 의사는 교육에 대한 규제기구의 감독을 수용해야 하고, 학습자 개인은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과 역량 유지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수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수련 프로그램이나 기관도 긍정적 학습환경 조성, 개인의 성장 촉진, 전문직업적 역량의 개발과 유지에 필요한 규제 기구의 감독을 수용해야 한다. 규제기관은 각 프로그램이나 기관이 주어진 국지적 맥락 속에서 CBME로의 전환이라는 목표를 위해 혁신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허용해야 한다.

 

출처:

Caverzagie, K. J., Nousiainen, M. T., Ferguson, P. C., Ten Cate, O., Ross, S., Harris, K. A., ... & ICBME Collaborators. (2017). Overarching challenges to the implementation of competency-based medical education. Medical teacher, 39(6), 588-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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