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있는 논문의 (아직 많이 다듬어야 하는) 초고. 처음에 주제를 의뢰받았을 때는 별로 내 관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망설였는데, 써나가면 써나갈수록 이입하고 있다. 문제는 의뢰받은 주제에 맞추다보니 나도 못하는걸 제언이랍시고 쓰고 있자니... 이래도 되나 싶어 참 부끄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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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력개발의 개념, 필요성, 단계에서 설명한 것을 토대로 의과대학 교수의 경력관리와 개발을 위한 전략을 크게 네 영역으로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적 측면에서는 경력개발의 주체이자 당사자로서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정체성은 기존의 개인적 정체성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다(Cruess et al., 2015). 기존의 개인적 정체성에는 대체로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성별, 인종, 성격 등)과 환경과 경험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종교, 문화, 교육 등)이 있다. 추가로, 의과대학 교수에게는 본격적으로 교수 경력을 시작하기 전 학술적, 전문직업적 훈련과정(전공분야, 수련 및 학위수여기관, 지도교수 등)을 거쳐오며 형성된 학문적 정체성이 중요하다.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경력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삶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를 변화시킨다(Leslie, 2014). 이는 결과적으로 평생에 걸친 경력의 과정 속에서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정체성이 오로지 개인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체성 형성에는 관계적 측면(예: 나와 중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과 집단적 측면(예: 내가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고자 하는 집단의 영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Cruess et al., 2015). 

 

종합하면, 개개인은 경력관리와 개발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개인적), 주변 사람의 다양한 관점(관계적), 조직의 가치와 문화(집단적) 등을 폭넓게 살펴보고, 경력의 의미와 성공의 정의에 대해 성찰해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직은 개인이 이러한 성찰을 하도록 유도하고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1
조직(organization, 즉 고용인)과 피고용인(employee) 사이에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한다. 이를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고용안정 상황에 기반한 '전통적인 형태의 심리적 계약'이고 다른 하나는 고용불안정 상황에서 발생한 '(제2의) 심리적 계약'이다. 

 

2
전통적 심리적 계약(the traditional psychological contract)이란, 피고용인은 조직에 '장기적 충성과 헌신'을 제공하고, 이 댓가로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고용 안정과 기관이 필요로 하는 경력 개발'을 제공하는 호혜적 관계이다. 승진은 주로 연공서열(seniority)에 따라 이뤄지며, 20세기 후반까지 거의 유일한 경력 개발의 방식이었다.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Academic Medical Center(이하 AMC, 대충 번역하자면 대학병원)과 일부 조직/업계에서는 테뉴어(또는 종신고용)라는 이름으로 이 모델을 따르고 있다. 즉, 테뉴어는 AMC를 (민간 의료기관과) 구분짓는 특징으로 유지되어오고 있다.  

 

3
제2의 심리적 계약(the second psychological contract) 모델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장에서는 더 이상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없음'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는 20세기를 지나며 경제가 변화하고, 고용감축이 이루어져,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탄생했다. 더 이상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내부 이동, 지속적 성장, 기술과 역량의 향상 및 개인적-전문적 개발의 기회 정도였다. 결국 직원은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즉, 직장을 잃을 경우를 대비하여, 다음 고용을 위해 필요한 자기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다. 

 

4
'고용 안정성'이란 것이 없어지자 직원은 자기개발을 일종의 보험으로 보기 시작하였고, 조직은 (직원의) 고용가능성이 높게 유지될 수 있도록 성장의 기회를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고 잡아둘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조직은 직원에게 '휴대가능한(portable)',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더라도 쓸모가 있는, 경력개발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잘 만 작동한다면, 직원은 더 나은 전문성을 발휘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낼 것이고, 바라건대 조직에 더 헌신할 것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승진은 필요한 스킬셋을 갖추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연공서열의 중요성은 낮아졌다.  

 

오늘날 많은 조직에서 공식화된 직원개발(formalized development)의 유의미한 메커니즘은 이러한 흐름에서 확립되었다.  

 

5
미국의 AMC에서 테뉴어 트랙에 있는 교수의 숫자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선배 의사들이 누렸던 것과 달리, 오늘날 AMC의 의사들은 점점 더 '반복적 갱신'을 필요로 하는 고용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많은 AMC는, 20세기 초에 여러 조직이 그랬던 것처럼, 전통적 심리적 계약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위계적 조직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연공서열은 승진 및 승진 기회를 결정할 때 가장 많이 고려되는 요건이다.  

 

6
이렇게 본다면, 현재 대부분의 AMC에서 의사를 위한 견고한 (전문성)개발 프로세스(developmental process)가 없는 것은 '전통적 심리적 계약'과 '새로이 등장한 심리적 계약'의 '나쁜 측면'만 모아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AMC에 의사의 경력 개발을 위한 합리적 메커니즘(legitimate mechanism)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은, 이미 도입되었어야 할 심리적 계약을 AMC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출처: Collins, R. T., & Sanford, R. (2021). The Importance of Formalized, Lifelong Physician Career Development: Making the Case for a Paradigm Shift. Academic Medicine, 96(10), 1383-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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