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읽고 씁니다.

의학에서의 인문학 : 왜 의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는가?

Meded. 2022. 7. 15. 16:27

어느 날 밤, 심근경색이 있는 한 여자환자를 볼 일이 있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고, 들것 위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파라메딕은 "죄송하게 되었네요"라면서 환자를 인계해주었다.
내가 물었다.  "아주머니, 가슴 통증이 있으신가요?"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IV를 하려던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이 XXX아, 저리 꺼져. 놔두라고 이 XXX아"
간신히 환자의 주머니를 뒤져 신분을 파악하는 도중, 
꼬깃꼬깃한 종이 한장을 발견했다. Plavix 처방전이었다.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얼마 전에 퇴원한 이 환자는 Plavix를 복용하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혈전이 생긴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왜 플라빅스를 복용하지 않으셨어요?"
환자가 대답했다. "돈이 없다고!"
내가 다시 말했다. "그 약은 무료에요"
환자가 다시 대답했다. 
"버스 탈 돈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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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의학교육에 인문학을 꼭 넣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그게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뭔데?" 배워야 할 내용이 이렇게 많은데, 그 소중한 시간을 실용적이지도 않고, 주관적이고 잘 가늠되지도 않는 것을 배우는데 쓸 수는 없지. 게다가 뭐? 예술적? 무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가능한 것에 대해서 해야하는거야."

 

하지만 의사가 매일매일 진료를 하면서 마주하는 문제 중에서 과연 몇 퍼센트나 진정으로 "과학"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넓게 보자면, 우리의 보건의료 시스템에 "과학"은 도대체 얼만큼이나 영향을 미치는가? 보건의료 시스템은 다른 어떤 것들 보다도 인간의 아주 근원적인 특질을 반영한다. 젊음과 건강에 대한 갈망,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탐욕, 집단과 개인의 충돌,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경제적인 위계 등등.. 

 

따라서 의학에 있어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의 의의는 무엇이고, 제한된 시간에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이유는, 인문학도 과학과 같은 하나의 '도구'라는 점이다. 또한 '인문학'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과학'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인문학은 우리가 비이성적인 존재임을 인정한다. 매번 비이성적이진 않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과학적 경험주의(empiricism)만으로는 시야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감정이 가진 힘을 깨워낼 수 없다(ability to generate emotional power). 그러나 대중들은 아이와 같아서 논리만으로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인문학을 다루는 목적이 환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높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인문학을 가르칠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러한 주장을 한다. 이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의사가 되는 것은 단순히 공감을 할 줄 아는 것 그 이상이다. 사실 아무런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본 환자는 입이 거칠었고, 폭력적이었고, 비협조적이었으며, 어떤 면을 보아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환자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녀를 살려내기 위해 거기에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감정적인 것에 취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조차 공감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의사들은 친절하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인문학은 의사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고, 통찰력을 가지고, 성찰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집단적인 침묵은 더 이상 의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재능과, 의지와, 능력을 갖추어 더 넓은 영역의 공적인 토론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의학의 많은 부분들은 사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감사해하지도 않고, 기여한 사람도 불분명하고, 불확실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이 더 좋은 의사가 될 것이며, 그리고 우리가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에서도 선(善)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Acad Med. 2013 Jul;88(7):918-20. The woman in the mirror: humanities in medicine. Huyler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