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ching Medical Epistemology within an Evidence-Based Medicine Curriculum

EBM을 가르칠 때, '의학 인식론'도 함께 가르쳐야 하는 이유
우리는 학생들에게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을 참 열심히 가르쳐요. 그런데 정작 "근거(evidence)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지식이 임상 결정에 쓰일 수 있고, 그 지식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같은 질문은 거의 다루지 않죠. 바로 이 빈틈을 짚은 논문이 오늘 소개할 Tonelli와 Bluhm(2021)의 글입니다. 저자들의 주장은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EBM을 가르치는 바로 그 시간에, 의학 인식론(medical epistemology)도 함께 가르치자는 거예요.
🩺 먼저, 진료실 풍경 하나부터
논문은 가상의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Lee 선생님의 오후 첫 환자는 Jackson 씨예요. 외래에 자주 오는 분인데, 이유가 좀 슬프죠. 도무지 나아지질 않거든요. 문제 목록이 어마어마합니다. 제2형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관상동맥질환(CAD), 울혈성 심부전(CHF),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게다가 만성 통증 증후군까지. 주된 호소는 늘 피로, 권태, 호흡곤란, 통증이 뒤섞인 상태고요. Jackson 씨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Lee 선생님은 EBM을 충실히 실천하는 의사예요. 최선의 근거를 환자 치료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죠. 그런데 Jackson 씨 앞에서는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적용해 볼 만한 연구와 진료지침이 너무 많고, 게다가 서로 충돌하거든요. COPD 지침은 CAD가 없는 대상자들로 만들어졌고, CAD 지침은 그 반대예요.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치료하면 장기적으로 심혈관 합병증 위험은 줄겠지만, 당장 환자가 편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약 때문에 더 힘들어하죠.
Lee 선생님도 EBM이 지침만 따라 하는 '요리책(cookbook) 의학'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EBM은 개인의 임상적 전문성(clinical expertise)과 최선의 근거를 '통합'하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거예요. 대체 어떻게요? 그녀의 전문성은 환자를 돌본 경험에서 나온 건데, 정작 학교에서는 "개인의 임상 경험은 믿을 수 없는 안내자"라고 배웠습니다. 생리학과 병태생리학은 훤히 알지만, 그 지식이 임상 결정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지는 확신이 안 서고요. 연구 방법론과 통계를 비판적으로 뜯어보는 법은 배웠지만, 자신의 임상적 전문성을 진료에 녹여 넣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추론하고 있는지 말로 설명하지 못하면, 옆에서 지켜보는 학생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이 장면 하나에 이 논문이 던지는 문제의식이 다 들어 있어요.
📚 그런데 인식론이 대체 뭐길래
인식론(epistemology)은 지식의 본질, 가치, 사용을 다루는 철학의 한 갈래예요. 그런데 저자들은 지금 의학교육에서 인식론이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같은 시리즈에 실린 Biesta와 van Braak의 글을 빌려, 의학교육의 한 축이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라고 말해요. 탄탄한 지식 기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임상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지식을 써야 하는지, 언제 규칙을 따르고 언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구부리거나 때로는 무시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지식 자체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의 문제예요.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분류되며, 언제 유용하고 언제 부적절한지를요.
🔍 사실 EBM도 하나의 '인식론'입니다
여기서 저자들의 핵심 통찰이 나와요. EBM은 단순히 "의학은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거죠. EBM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학 인식론, 즉 의학적 지식에 관한 이론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북미의 거의 모든 의대가 EBM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고요.
문제는 EBM의 토대인 근거의 위계(hierarchy of evidence)나 '최선의' 근거(best evidence)라는 개념이 사실은 검증되지 않은 인식론적 주장 위에 서 있다는 점이에요. 어떤 종류의 지식이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입장 표명인 거죠. 그런데 이 가정들을 검토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저자들은 이런 상태를 신랄하게 '쓰레기(rubbish) EBM'이라고 부릅니다.
"잘못 해석된 임상연구를 그릇되고 무분별하게 오용하는 것."
"the misguided and mindless misuse of misinterpreted clinical research." (Tonelli & Bluhm, 2021)
그래서 저자들은 EBM의 세 가지 가정을 짚고, 각각을 의학교육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검토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지를 단계별로 제안합니다. 이게 이 논문의 알짜배기예요. 같이 따라가 볼까요?
🎓 [전임상] 근거의 위계를 한번 의심해보기
EBM은 보통 의대 초반에, 역학(epidemiology)이나 연구방법론과 함께 소개됩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왔으니 '근거'라는 말을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있죠. 그래서 의학에서 '근거'가 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치료 연구의 위계는 보통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줄을 세웁니다.
- 무작위 시험들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 of randomized trials)
- 단일 무작위 시험(single randomized trial)
- 관찰 연구들의 체계적 문헌고찰
- 단일 관찰 연구
- 생리학적 연구(physiologic studies)
- 증례 보고/비체계적 임상 관찰(case reports)
그런데 저자들은 이 줄 세우기 자체가 '진리'가 아니라고 못 박아요.
"위계의 단계 배정은 필연적인 순서라기보다 하나의 인식론적 주장이다."
"the assignment of tiers represents an epistemic assertion rather than a necessary ordering." (Tonelli & Bluhm, 2021)
그래서 전임상 시기에 인식론 교육이 들어가면, 학생들은 이 위계를 '진리의 피라미드(pyramid of truth)'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대신, 그 안의 가정들을 따져보게 됩니다. 다행히 이런 작업은 이미 과학철학자들이 많이 해놨어요.
- 무작위 배정(randomization)이 과대평가됐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Worrall은 무작위 배정이 배정 은폐(allocation concealment)나 교란 변수 균형에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지적해요. 또 모든 임상 질문(예: 흡연의 위험)이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으로 가장 잘 답해지는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요. (참고로 저자들은 이런 철학적 논점을 학생들에게 쉽게 전달하려면 'SMACK 연구'처럼 풍자적인 가짜 RCT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권해요. "엄마의 뽀뽀가 아이의 작은 상처에 효과가 없다"는 걸 무작위·맹검 시험으로 검증했다는, 위트 있는 논문이죠.)
- 그리고 잘 설계된 비무작위 연구가 엉성한 RCT보다 나을 수도 있어요. Jackson 씨처럼 동반질환이 많은 환자에게는, 단일 질환자만 모아 한 RCT보다 비슷한 환자의 증례 보고가 더 좋은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요.
- 그럼 생리학과 약리학은 왜 배우나요? 위계상 가장 '낮은' 근거라면서요. 여기서 기전적 근거(mechanistic evidence)의 가치가 등장합니다. Russo와 Williamson은 인과를 입증하려면 기전적 근거가 차이생성 근거(difference-making evidence, 예: 임상시험)와 함께 필요하다고 봐요. Howick은 기전이 충분히 잘 이해되면 시험 없이도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고 하고요. 그래서 저자들은, 위계가 아니라 차라리 네트워크(network)로 보는 게 맞다고 제안합니다(Bluhm).
- 그렇다면 꼭대기의 메타분석은 객관적일까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Stegenga는 메타분석을 할 때 수많은 방법론적 선택(어떤 연구를 포함할지, 어떤 효과를 볼지, 질을 어떻게 평가할지, 어떻게 통합할지)을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선택들의 영향이 너무 커서, 같은 주제로 두 메타분석이 정반대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 학자는 해석과 비판을 담을 수 있는 서사적 문헌고찰(narrative review)의 가치를 다시 보자고 합니다.
이쯤 되면 어떤 학생은 "근거를 위계로 줄 세우는 것 자체를 그만두자"는 (꽤 설득력 있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자들은 그렇다고 위계가 아무 가치도 없는 건 아니라고 균형을 잡습니다. EBM 비판자들조차, 위계가 적어도 연구의 질이 제각각이라는 인식을 높여준 공로는 인정하니까요.
🏥 [임상 입문] 근거를 '평가'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흥미롭게도 EBM이 처음 세상에 나온 무대도 의학교육이었어요. 1992년 JAMA에 실린 EBM 작업그룹의 글은 '과거의 방식(Way of the Past)'과 '미래의 방식(Way of the Future)'을 대비시킵니다.
이야기는 이래요. 첫 대발작(grand mal seizure)을 겪은 환자가 재발 위험을 묻습니다. 과거 방식의 전공의는 선배와 교수에게 물어보고 "재발 위험이 높다"고 전하죠. 환자는 "막연한 불안 속에" 진료실을 나섭니다. 반면 미래 방식의 전공의는 도서관에 가서 문헌을 검색하고, 환자 상황에 딱 맞는 연구를 찾아내 "1년 내 43~51%, 3년 내 51~60%" 같은 구체적 수치를 알려줘요. 환자는 "자신의 예후를 명확히 이해하고" 나갑니다.
좋은 이야기죠. 그런데 저자들은 살짝 짓궂게 짚어요. 1992년에 이걸 하려면 실제로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뒤지고 논문을 복사해야 했고(그래도 30분밖에 안 걸렸다지만),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는 거예요. 이미 1996년에 Sackett 등은 영국 자문의가 독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주당 1시간 정도인데, 정말로 따라잡으려면 하루에 약 19편을 읽어야 한다고 계산했거든요.
그래서 2000년에 Guyatt 등은 현실적인 구분을 합니다. 직접 근거를 찾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기반 실천가(evidence-based practitioners)'와, 어느 정도 훈련은 받았지만 대개 가공된 요약본에 의존하는 '근거 사용자(evidence users)'로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EBM의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원래 개인이 직접 문헌과 씨름하라던 EBM이, 점점 정리된 요약본에 기대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EBM이) 본래 대체하고자 했던, 의문 없이 받아들여지고 종종 실망스러운 바로 그 권위."
"the kind of unquestioned, and frequently disappointing, authority that it aimed to replace." (Tonelli & Bluhm, 2021)
UpToDate나 Cochrane 같은 큐레이션 자료에서 명확한 답을 구하려는 학생과 임상의에게, 저자들은 한 가지를 당부해요. 명시적 기준을 따르더라도 큐레이션 과정 자체가 주관적이고 가치가 개입된(subjective and value-laden) 작업이라는 점을요. 연구비 출처나 학문적 출세 같은 편향의 원천도 들여다봐야 하고요(실제로 Cochrane 협력단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공개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죠). 물론 요약본은 단순히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필요한 도구예요. 다만 개별 연구 논문을 대할 때만큼, 큐레이션된 지침에도 똑같은 수준의 건강한 회의를 가지라는 겁니다.
👨⚕️ [졸업 후] '통합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기
졸업 후에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늘어납니다. 두렵지만, 그만큼 의대에서 쌓은 인식론적 토대를 발전시킬 기회이기도 하죠. 임상의가 흔히 인용하는 Sackett의 1996년 정의는 EBM을 "개인의 임상적 전문성을 체계적 연구에서 나온 최선의 외부 근거와 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정의 안에는 엄청난 복잡함이 숨어 있어요.
저자들은 이걸 EBM의 통합 문제(integration problem)라고 부릅니다.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진료를 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와, 임상연구 결과만으로는 결코 처방을 다 정해줄 수 없다는 인정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죠.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드러나요.
- 집단의 결과를 특정 개인에게 적용하는 게 단순하지 않다는 깨달음. 인식론에서는 이걸 참조집단 문제(reference-class problem)라고 합니다.
- 출판된 연구 결과와 상충하기도 하는, 선배 임상의의 경험적 판단에 얼마나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고민.
여기서 핵심 모순이 드러나요. 임상적 전문성의 상당 부분은 직접 환자를 본 경험에서 나오는데, 정작 EBM은 그 경험적 근거를 연구 근거와 어떻게 저울질할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은 EBM 안에서 흔히 '일화적(anecdotal)'이라며 깎아내려지죠. 그리고 앞에서 본 위계는 이 '통합'에 대한 어떤 모델도 제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이 제안하는 실천적 도구가 '에피스테믹 분석(epistemic analysis)', 쉽게 말해 자기가 무슨 지식을 근거로 결정하는지 소리 내어 설명하기예요. 이때 저자 중 한 명(Tonelli)이 정리한 의학 지식의 다섯 범주가 유용한 틀이 됩니다.
-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
- 기전적 추론(mechanistic reasoning)
-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 개별 환자의 특성(individual patient characteristics)
- 맥락적 요인(contextual features, 예: 법적·문화적·경제적 맥락)
이런 분석은 증례 기반(case-based) 형식으로 가르치는 게 가장 좋다고 해요. 임상의들이 진단이나 치료를 두고 의견이 갈릴 때, 에피스테믹 분석을 해보면 그 불일치가 지식의 부족 때문인지, 정보 해석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같은 지식에 다른 가중치를 둬서인지를 가려낼 수 있거든요. 이렇게 하면 임상적 전문성이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black box)'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동시에, 다양한 지식 원천의 가치를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임상의는 어느 하나의 '최선의 근거'가 아니라 근거의 총체(totality of evidence)를 평가해야 하고, 저자들은 이 상태를 Solomon의 표현을 빌려 '정돈되지 않은 인식론적 다원주의(untidy epistemic pluralism)'라고 부릅니다. 인식론적 분석은 이 어수선함을 조금이나마 정돈해주는 방법인 셈이죠.
🧰 정리하며: 인식론은 평생 곁에 두는 '사용 설명서'
저자들은 의학 인식론을 학생과 수련의, 임상의를 위한 '사용 설명서(operator's manual)'에 비유하며 글을 맺습니다. 임상연구 결과, 병태생리학적 이해, 경험적 지식을 진료 현장에서 어떻게 쓸지 안내해주는 매뉴얼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 설명서를 끼워 넣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가 바로 EBM 교육과정이라고 봅니다. EBM 자체가 하나의 의학 인식론이니까요.
이 논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시지는 이거예요. EBM이 그토록 강조하는 회의와 비판적 분석을, EBM 자기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하자는 겁니다.
"EBM이 장려하는 회의주의와 비판적 분석은, EBM 자체의 근본 가정과 핵심 신조에도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 "The skepticism and critical analysis encouraged by EBM can and should be applied to the underlying assumptions and primary tenets of EBM itself." (Tonelli & Bluhm, 2021)
그리고 이건 철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요.
"학생, 수련의, 그리고 임상의는 (임상적 통찰로 응축되는) 그 근거와 추론을 세심하고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
"students, trainees, and clinicians need to carefully and constantly examine the reasons and reasoning." (Tonelli & Bluhm, 2021)
그렇다면 우리 의학교육자의 역할은 뭘까요. 저자들의 마지막 문장이 답을 줍니다.
"의학교육자인 우리의 역할은 그들에게 도구를 쥐여주는 것이다."
"Our role as medical educators is to give them the tools." (Tonelli & Bluhm, 2021)
인식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포함한 그 도구를, 학생들이 평생에 걸쳐 쓸 수 있도록 손에 들려주는 것. Lee 선생님이 Jackson 씨 앞에서 막막했던 이유도, 어쩌면 누구도 그 도구를 제대로 쥐여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오후 첫 진료 환자인 Jackson 씨는 Lee 박사의 일반내과 외래 클리닉(general medicine outpatient clinic)에 자주 방문하는 환자였다. 주된 이유는 그가 좋아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문제 목록(problem list)은 매우 길었다. 제2형 당뇨병(Type II diabetes), 고혈압(hypertension), 고지혈증(hyperlipidemia), 관상동맥질환(coronary artery disease, CAD),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 CHF), 만성폐쇄성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COPD), 그리고 만성 통증 증후군(chronic pain syndrome)이 있었다. Jackson 씨의 주호소(chief complaint)는 대개 피로(fatigue), 권태감(malaise), 호흡곤란(dyspnea), 통증(pain)이 어떤 식으로든 조합된 것이었다. Jackson 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느꼈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지 못했다. Jackson 씨의 의학적 문제들을 적절히 다루려면 언제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오늘 Lee 박사에게는 그녀를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의과대학생(medical student)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임상적 추론(clinical reasoning)도 설명해야 했다.
Lee 박사는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을 실천하는 데 헌신하고 있었다. 이 의무는 그녀가 환자 치료에 관한 결정에서 이용 가능한 최선의 근거(best available evidence), 일반적으로는 엄격한 임상연구(rigorous clinical research)의 결과를 적용해야 함을 의미했다. Jackson 씨의 경우, 이 헌신을 실천하는 것은 특히 어려웠다. Jackson 씨에게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연구논문과 임상진료지침(clinical practice guidelines)의 수는 압도적이었고, 또한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았다. COPD 지침은 CAD가 없는 연구대상자를 사용하여 개발되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치료하면 장기적으로 심혈관 합병증(cardiovascular complications)의 위험은 낮아질 수 있었지만, 단기적으로 그가 더 나아졌다고 느끼게 해 주지는 못했다. 사실 이러한 진단명에 대한 약물들은 대체로 그를 더 나쁘게 느끼게 했다.
Lee 박사는 근거기반 실천가(evidence-based practitioner)가 된다는 것이 임상진료지침을 노예처럼 따르는 것, 즉 “요리책식 의학(cookbook medicine)”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BM은 그녀가 개별 환자(particular patients)를 위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개별적 임상 전문성(individual clinical expertise)을 이용 가능한 최선의 임상연구 결과(best available results of clinical research)와 통합하도록 허용했고, 심지어 장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의 임상 전문성은 상당 부분 환자를 돌본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녀는 일찍부터 일차적 임상 경험(primary clinical experience)은 신뢰할 수 없는 지침(unreliable guide)이라고 배웠다. 그녀는 생리학(physiology)과 병태생리학(pathophysiology)에 대해 훌륭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임상적 의사결정에서 이러한 종류의 지식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그녀는 연구방법론(research methodologies)과 통계분석(statistical analyses)을 세심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웠지만, 자신의 임상 전문성을 진료에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자신이 어떻게 추론하고 있는지, 어떤 지식에 의존하고 있으며 왜 그런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그녀의 의과대학생 역시 더 현명해지지 못할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모든 의사와 마찬가지로 Lee 박사는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방대한 의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많은 해를 보냈다. 이 지식은 그녀의 전문직 자격(professional qualifications)의 기반일 뿐 아니라, 그녀의 모든 임상적 결정(clinical decisions)을 위한 토대가 되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지식 기반(knowledge base)만으로는 임상 실천(clinical practice)에 충분하지 않다. 임상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지식, 기술, 이해가 활용되어야 하는지, 언제 규칙을 따라야 하고 언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특정 상황이 요구한다면 규칙을 굽히거나 때로는 무시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¹
Biesta와 van Braak이 이 시리즈의 앞선 글에서 “전문직 주체화(professional subjectification)”라고 부른 의학교육의 이 구성요소는,¹ 지식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 즉 지식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어떻게 범주화되는지, 언제 유용한지, 그리고 언제 신뢰할 수 없거나 부적절한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가변적이고(variable), 불완전하며(incomplete), 종종 서로 충돌하는 지식의 원천과 종류들 사이를 조율할 능력이 없다면, 임상의는 환자에게 유익을 제공할 수 없다.
인식론(epistemology)은 지식의 본성(nature), 가치(value), 사용(use)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나 현재 인식론은 의학교육에서 거의 또는 전혀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의학교육에서 철학의 가치(value of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를 다루는 이 시리즈의 일부로서, 우리는 의학 인식론(medical epistemology)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의학교육과 의료 실천의 핵심적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의학 인식론은
- 임상적 결정에 어떤 종류의 의학 지식이 관련되는지,
- 서로 다른 의학 지식의 강점과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초점을 둔다.
학생과 임상의는 임상적 결정에 대한 인식론적 분석(epistemic analysis)을 수행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즉 개별 임상적 결정에서 자신들이 어떤 특정한 종류의 지식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의 가치를 어떻게 가중하고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학생과 의사에게 이러한 기본적 이해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좋은 접근이 학부 의학교육(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과 졸업후 의학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 전반에 걸쳐 인식론을 종단적으로 도입하고 통합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현대 의학교육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한 측면, 즉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의 기본 원리 교육이 인식론을 의학교육과정에 통합할 수 있는 편리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제안한다.
근거기반의학은 이제 꽤 오랫동안 지배적인 의학 인식론(dominant medical epistemology), 즉 의학 지식에 관한 이론(theory of medical knowledge)이 되어 왔다. 사실상 모든 북미 의과대학은 EBM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과정 안에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² EBM은 의학이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EBM이라는 기획은 요구되는 근거의 종류(kind of evidence)와 임상적 의사결정 과정(process of clinical decision making)에 대해 강한 주장을 제기한다. “근거의 위계(hierarchy of evidence)”와 “최선의 근거(best evidence)”라는 개념과 같은 EBM의 토대는 인식론적 주장(epistemological assertions), 즉 의학에서 적절한 지식의 종류와 상대적 가치(relative value)에 관한 주장 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주장을 검토하는 일은 의학교육자와 의과대학생에게 중요하다. 이는 단지 임상 실천이 건전한 지식(sound knowledge)에 기반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EBM이 무엇을 잘하고 있으며 어떤 도전에 여전히 직면해 있는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EBM의 인식론적 가정(epistemic assumptions)을 검토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은, 오해된 임상연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무비판적으로 오용하는 “쓰레기 EBM(rubbish EBM)”의 실천을 불러들인다.³
EBM이 의학 인식론의 한 학파(a school of medical epistemology)를 대표하기 때문에, 의학교육의 특정 지점에서 중요한 인식론적 질문들이 발생하고 관련성을 갖게 된다. 의학 인식론을 EBM 교육과정에 통합하면, 학생들은 임상적 결정에 정당하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평가하고, 병상 옆(bedside)에서 지식을 통합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EBM의 세 가지 근본 가정(underlying assumptions)을 개괄하고, 의학교육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이를 검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언급하며, 수련의들이 각각을 검토하도록 돕기 위한 구체적 제안을 제시할 것이다.
전임상 교육: 지식, 근거, 그리고 위계
Pre-clinical studies: knowledge, evidence, and hierarchies
근거기반의학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의과대학생에게 매우 이른 시기에 소개되며, 흔히 역학(epidemiology)과 연구방법론(research methodology)에 대한 입문 과정의 일부로 다루어진다. 자연과학(physical sciences), 사회과학(social sciences), 인문학(humanities) 등 다양한 배경에서 온 학생들은 “근거/증거(evidence)”라는 용어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올 것이므로, 특히 의학에서 무엇이 “근거”를 구성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EBM은 의학에서의 근거에 관한 주장 위에 놓여 있지만, 그 주장은 언제나 충분히 해명되거나 방어되어 온 것은 아니다.⁴˒⁵ 구체적으로 말해, EBM은 근거가 다양한 원천에서 나온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의학적 의사결정에 관해서는 어떤 근거가 “최선(best)”이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지지한다. 근거의 상대적 가치에 관한 이 주장은 EBM 이해의 중심에 있는 근거의 위계(evidence hierarchy) 안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⁶˒⁷ EBM이 제시하는 근거의 위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과업에 따라 서로 다른 위계도 있다. 예컨대 치료 연구(treatment studies), 예후 연구(studies of prognosis), 임상 의사결정 규칙(clinical decision rules)이 실제에서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평가하는 연구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위계가 존재한다.⁸ 그러나 치료 연구에 대한 위계가 가장 널리 논의되며, 여기서 우리가 초점을 맞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종류의 연구와 관련된 근거의 위계는 서로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치료 연구의 경우, 그 구조는 아래와 같다.⁷
- • 무작위시험(randomized trials)의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
- • 단일 무작위시험(single randomized trial)
- • 환자에게 중요한 결과(patient-important outcomes)를 다루는 관찰연구(observational studies)의 체계적 문헌고찰
- • 환자에게 중요한 결과를 다루는 단일 관찰연구(single observational study)
- • 생리학적 연구(physiologic studies)
- • 사례보고(case reports) / 비체계적 임상 관찰(unsystematic clinical observations)
근거의 위계는 연구방법(study methods)을 순위화함으로써 치료 효과(efficacy of a treatment)에 관한 연구의 강도(strength)에 대해 초기 지침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위계에서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연구들은 일반적으로 더 강한 근거(stronger evidence)를 제공할 것이다. 위의 위계가 보여 주듯, 실험군과 대조군에서 치료 결과를 비교하는 연구는 개별 의사가 어떤 치료에 대해 가지는 자신의 임상 경험이나, 임상 결과가 아니라 생리학적 기전에 초점을 맞춘 연구보다 더 나은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단계(tiers)의 배정은 필연적 질서(necessary ordering)가 아니라 인식론적 주장(epistemic assertion)을 나타낸다.
EBM의 위계는 또한 부차적인 인식론적 가정(subsidiary epistemic assumptions)을 포함한다.
- 하나는 무작위 배정(random allocation)이 치료군과 대조군이 치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자 특성, 예컨대 나이(age), 성별(sex), 동반질환(comorbid conditions)의 존재 등에서 유사할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 또 다른 가정은, 어떤 개인이 치료군에 배정되었는지 대조군에 배정되었는지를 참가자 자신과 임상 결과를 평가하는 연구진 모두에게 숨기는 것, 즉 눈가림(blinding)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치료, 많은 연구에서는 위약(placebo)을 포함하여, 개인이 무엇을 받고 있는지 아는 것이 치료 반응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response to therapy)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의 위계 지지자들은 무작위화되고 눈가림된 연구(randomized and blinded studies)가 비무작위, 비눈가림 연구보다 통계적 의미에서의 편향(bias), 즉 진실에서 체계적으로 벗어난 결과를 제시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다.⁷
학습자들이 전임상 수련(pre-clinical training) 중 근거의 위계에 처음 노출될 때, 의학 인식론 프로그램은 그들이 위계를 단순히 진리의 피라미드(pyramid of truth)로 받아들이는 대신, 이러한 근본 가정들을 검토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위계 안에 포함된 가정을 검토하는 학생들은 이 작업의 상당 부분이 이미 과학철학자(philosophers of science)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EBM에 대한 주요 비판 중 하나는 EBM이 일부 연구방법론, 특히 무작위화(randomization)의 가치를 과장한다는 것이다.⁹˒¹⁰ 무작위 배정은 유용한 도구일 수 있고 중요한 인식론적 목표(epistemological goals)를 달성할 수 있지만, EBM 비판자들은 그 중요성이 과도하게 강조되어 다른 중요한 근거 원천들이 손상되었다고 우려해 왔다. 고전적인 논문에서 Worrall은, 무작위화가 배정 은폐(allocation concealment)를 보장하고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의 잠재적 교란변수(confounding variables)를 균형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를 설계할 때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있다고 주장한다.⁹ 다른 이들은 모든 임상 질문, 예컨대 흡연의 위험(risk of cigarette smoking) 같은 질문이 무작위시험으로 가장 잘 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¹⁰ 이러한 철학적 논점을 의과대학생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는 허구적이고 풍자적인 RCT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¹¹
무작위화에서 연구설계의 다른 측면으로 옮겨 가면, 잘 설계되지 않은 무작위시험이 잘 설계된 비무작위 연구보다 전반적으로 낮은 질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 그런지에 대한 질문이 열린다. 실제로 근거의 위계 중 일부 버전은 이를 허용한다. 학생들에게 사례보고(case report)가 무작위시험보다 더 유용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 논문의 첫머리에 나온 Jackson 씨와 유사한 환자에 관한 보고는, 단일 질환만 있고 동반질환이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시험보다 Lee 박사에게 더 나은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전임상 학생들은 생리학(physiology)과 약리학(pharmacology)의 원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거의 촉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궁금해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것들이 임상적 의사결정을 위한 가장 낮은 형태의 근거만을 나타낸다면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도록 학생들에게 도전하면, 그들은 이러한 원리들이 임상연구의 결과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두 종류의 지식이 임상적 의사결정에서 어떻게 함께 작동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와 치료군 및 대조군의 임상 결과를 비교하는 연구 사이의 관계는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의미(epistemic significance)를 지닌다. 과학철학 내에서 Russo와 Williamson은 의학에서 인과성(causality)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거(difference-making evidence), 예컨대 임상시험(clinical trials)과 함께 기전적 근거(mechanistic evidence)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¹² EBM에 매우 우호적인 철학자인 Howick은 작용 기전(mechanism of action)이 매우 잘 이해되어 있기 때문에, 대조시험(controlled trial)을 수행하지 않고도 치료의 효과(efficacy of a therapy)를 확립하는 것이 때로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치료와 결과를 연결하는 기전에 관한 근거를 사용하는 것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¹³ 보다 최근에 Tonelli와 Williamson은 기전에 관한 지식(knowledge of mechanisms)이 임상적 의사결정의 여러 측면에 필수적임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는 개별 환자의 돌봄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인구 수준 연구(population-level studies)의 결과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인구 수준 보고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포함된다.¹⁴ 앞서 무작위시험과 비무작위 연구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전적 근거를 항상 위계의 맨 아래에 두는 것은 임상의가 도움이 될 때 양질의 근거(good evidence)를 활용하려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역학연구(epidemiological research)와 실험실 연구(laboratory research)에서 유래한 지식 사이의 관계는 위계(hierarchy)라기보다 네트워크(network)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¹⁵
마찬가지로, 근거 위계의 정점(pinnacle)을 차지하는 방법론들도 그 나름의 인식론적 한계(epistemic limitations)를 가지고 있다.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s)과 메타분석(meta-analyses)은 특정 질문과 관련된 모든 양질의 연구 근거를 식별하고, 선택하고, 종합하고, 평가하기 위해 잘 정의되고 명시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메타분석은 또한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를 통계적으로 결합하여 치료 효과에 대한 전반적 추정치(overall estimate)를 제공한다. 이러한 체계적 연구들은 이전의 “서술적” 문헌고찰(narrative review) 양식을 대체해 왔다. 서술적 문헌고찰에서는 전문 임상의(expert clinician)가 문헌을 훑어보고 근거에 대해 자신만의, 종종 특이한(idiosyncratic) 판단을 제시했다. 그러나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의 겉보기 객관성(apparent objectivity)은 질문되어야 한다. Stegenga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메타분석을 수행할 때 많은 방법론적 결정(methodological decisions)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¹⁶ 여기에는
- 검토에 포함할 연구를 결정하는 것,
- 치료의 어떤 효과, 즉 의도한 효과(intended effects)와 부작용(side effects) 모두 중 어떤 것을 포함할지 결정하는 것,
- 이러한 연구들의 질을 어떻게 판단할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 그것들을 어떻게 통계적으로 결합할지 결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실제로 이러한 선택들은 문헌고찰의 결과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두 개의 메타분석이 동일한 치료의 사용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권고에 도달할 수도 있다. Stegenga는 그러한 사례를 여러 개 제시한다. 일부 철학자들은 Stegenga와 같은 비판에 대해 메타분석을 옹호함으로써 응답했지만,¹⁷ 다른 이들은 이러한 양적 연구의 문제들이 근거에 대한 해석과 비판(interpretation and critique)을 제공한다는 뚜렷한 강점을 가진 서술적 문헌고찰의 가치를 재고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해 왔다.¹⁸
의학에서 근거라는 개념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검토를 거치고 나면, 일부 학생들은 근거를 위계로 순위화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매우 방어 가능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결론이 임상적 결정을 위한 근거적 지지(evidentiary support)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거나, 위계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혀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EBM과 근거의 위계에 비판적이었던 저자들조차, 그것이 연구의 질이 다양하다는 인식을 높인 것을 포함하여 긍정적인 인식론적 기여(positive epistemic contributions)를 해 왔음을 인정했다.¹⁹˒²⁰ 더 나아가, 앞서 언급했듯이 위계의 근본 가정을 검토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그 강점과 약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임상연구에서 나온 근거를 보다 사려 깊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도록 할 것이다.
임상의학 입문: 근거를 평가하기, 또는 받아들이기
Introduction to clinical medicine: appraising, or accepting, evidence
더 넓은 의학 공동체에 EBM이 처음 소개된 것은 의학교육의 맥락에서였다. EBM Working Group이 1992년 JAMA에 발표한 논문은 EBM의 “미래의 방식(Way of the Future)”을 불만족스러운 “과거의 방식(Way of the Past)”과 대비시킨다.²¹ 이 논문은 EBM 이전의 한 전공의가 이전에는 건강했던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 환자는 첫 번째 대발작(grand mal seizure)을 막 경험했고, 자신에게 발작이 재발할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전공의에게 묻는다. 전공의는 이 질문을 상급 전공의(senior resident)와 지도전문의(attending physician)에게 가져가고, 그들은 그녀에게 환자의 발작 재발 위험이 높다고 알려주라고 말한다. 이 정보를 들은 환자는 자신의 예후(prognosis)에 대해 “막연한 불안 상태(a state of vague trepidation)”로 떠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래의 방식에서는 전공의가 도서관에 가서 문헌검색(literature search)을 수행하고, 두어 다스의 검색 결과를 걸러 자신의 환자 상황과 직접 관련된 연구를 찾아낸다. 이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1년 시점 재발 위험은 43%에서 51% 사이이며, 3년 시점의 위험은 51%에서 60% 사이이다. 18개월 동안 발작이 없는 기간을 지낸 후라면, 그의 재발 위험은 20% 미만일 가능성이 높다.
전공의가 이러한 결과를 환자에게 말하자, 그는 “자신의 가능성 있는 예후에 대해 명확한 생각(a clear idea)을 가지고” 떠난다. 환자가 실제로 자신의 예후에 대한 후자의 설명을 전자의 설명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질문은 제쳐두더라도, 이 시나리오에는 마음에 드는 점이 많다. 우리는 이 전공의가 예후 연구(study of prognosis)의 질을 판단하는 방법을 이미 배웠으며, 문헌검색을 수행하고 결과를 검색해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다. 1992년에는 이것이 실제로 도서관에 가서 관련 저널을 서가에서 찾고, 그 결과를 복사해야 했음을 주목하라. 다만 이 전체 과정이 단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된다.
마찬가지로 Upshur는 EBM, 당시에는 임상역학(clinical epidemiology)과 비판적 평가(critical appraisal)라고 불리던 것이 개발되던 시기에 McMaster University에서 받은 자신의 의학 수련에 대해 이야기한다.²² 회진(rounds) 중 특정한 임상적 행동 방침(clinical action)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그 권고에 대한 근거(evidence)와 추론(reasoning)을 제시하라는 도전을 자주 받았다. 즉 그들이 무엇을 하자고 제안하는지 명시적으로 정당화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최선의 형태에서 EBM은 임상연구가 진료에 갖는 중요성에 주의를 환기했고, 비판적 평가(critical appraisal)의 기술을 길렀으며, Cochrane Collaboration과 CONSORT Group을 포함한 더 넓은 운동의 일부로서 임상시험의 수행(conduct), 또는 적어도 보고(reporting)를 개선했다. 그러나 실제에서,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EBM은 원래의 JAMA 논문에 묘사된 것처럼 개인이 의학 문헌(medical literature)에 직접 관여하도록 장려하는 데서, 종합되고 선별된 요약(aggregated and curated summaries)에 의존하도록 권장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는 EBM이 대체하고자 했던, 질문되지 않고(unquestioned) 자주 실망스러운 권위(authority)의 한 형태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용 가능한 시간과 출판되는 임상연구의 양은 JAMA 논문의 “미래의 방식”에 묘사된 것과 같은 상황이 기껏해야 드문 일이 되도록 만든다. 이미 1996년에 EBM의 지지자들은 이 문제를 인식했다.
- Sackett 등은 영국의 의학 컨설턴트(British medical consultants)가 읽기를 따라잡기 위해 일주일에 약 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의학(general medicine) 분야에서 출판되는 논문의 양을 고려하면 실제로 따라잡기 위해 임상의가 하루에 약 19편의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계산했다.²³ 4년 후 Guyatt 등은 문헌에 직접 관여하려는 임상의의 관심 역시 제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²⁴ 그들은 EBM의 기술에 능숙해지는 것이 “집중적인 공부와 빈번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적용(intensive study, and frequent, time consuming, application)”을 요구한다고 인식했다.
- 따라서 그들은 처음부터 스스로 근거를 찾아내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기반 실천가(evidence-based practitioners)”와, EBM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훈련을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발표된 지침과 이차자료(secondary sources)로 출판된 사전 평가된 근거(pre-appraised evidence)에 의존하는 “근거 사용자(evidence users)”를 구분했다. 그 이후 EBM 개발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자원 사용을 점점 더 촉진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가공된 지식(processed knowledge)에 의존하는 것은 추가적인 인식론적 도전(epistemic challenges)을 제기한다.
UpToDate와 Cochrane Collaboration 같은 선별된 자료원(curated sources)에서 확정적 지침(definitive guidance)을 찾는 학생과 임상의는, 선별 과정(curating)이 명시적 기준에 기반할 때조차 주관적(subjective)이고 가치가 개입된(value-laden)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학생들은 흔히 출판된 연구의 객관적 수집 및 종합(objective collation and synthesis)으로 홍보되는 것 안에 들어가는 편향의 원천(sources of bias)을 검토하도록 장려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연구비 출처(funding source)와 학문적 승진(academic advancement)이 포함된다.²⁵ 예컨대 Cochrane Collaboration은 근거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fair and objective assessment of evidenc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둘러싼 경쟁적 주장(competing claims)을 중심으로 매우 공개적인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철학 출판물에서 주목받았지만,²⁶ 학생들은 일반 언론과 과학 언론에 실린 보도를 읽음으로써 논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²⁷
임상연구의 개별 보고를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의료제공자(health care provider)의 기본 기술이다. 그러나 개별 의사가 EBM을 설명한 최초의 논문에 묘사된 것과 같은 환자별 검색(patient-specific searches)을 수행하거나, 자신의 진료와 관련된 모든 연구에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근거 요약(evidence summary)은 단순히 유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필요하다. 임상의학에 처음 입문하는 학생들은 선별된 연구 지침(curated research guidance)에 대해서도, 개별 연구 보고나 지도전문의의 선언(proclamations of attending physicians)에 대해 개발하도록 장려받았던 것과 유사한 수준의 회의주의(skepticism)를 발전시켜야 한다.
졸업후 의학교육: 근거를 임상 실천에 통합하기
Graduate medical education: integrating evidence into clinical practice
졸업 후 수련의(physicians-in-training)는 점점 더 독립적인 임상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는 불안(trepidation)의 시기이지만, 동시에 의과대학 동안 형성된 의학 인식론의 토대 위에 더 쌓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Lee 박사가 Jackson 씨를 만난 사례에서 보았듯이, 임상 실천의 주요 인식론적 도전(primary epistemic challenge)은 특정한 진단적 또는 치료적 결정(diagnostic or therapeutic decision)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지식이 동원될 수 있고, 또 동원되어야 하는지와 관련된다. EBM은 임상적 의사결정의 이상화된 버전(idealized version)을 제공하지만, 실제 세계의 지침(real-world guidance)은 거의 제공하지 않으며, 이 다루기 힘든 인식론적 도전(intractable epistemic challenge)을 임상의에게 남겨 둔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EBM 정의에서 Sackett과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거기반의학은 개별 환자의 돌봄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현재의 최선의 근거(current best evidence)를 성실하고(conscientious), 명시적이며(explicit), 사려 깊게(judicious) 사용하는 것이다. 근거기반의학의 실천은 개별 임상 전문성(individual clinical expertise)을 체계적 연구(systematic research)에서 나온 이용 가능한 최선의 외부 임상 근거(best available external clinical evidence)와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임상 전문성이란 개별 임상의가 임상 경험(clinical experience)과 임상 실천(clinical practice)을 통해 획득하는 숙련도(proficiency)와 판단(judgment)을 의미한다.”²³
간단한 정의를 내리려는 이 시도는, 연구 근거(research evidence)와 의사가 알고 있는 무수한 다른 것들, 즉 임상 전문성의 토대가 되는 지식 사이를 조율하는 복잡성을 가린다. EBM에는 통합의 문제(integration problem)가 있다. 이 문제는 임상의가 진료를 개별화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ethical imperative)과, 임상연구 결과만으로는 결코 처방적(prescriptive)일 수 없다는 인정이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통합의 문제는 수련의에게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 어떤 인구집단(population)에서 특정 개인으로 외삽(extrapolating)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 때로는 출판된 연구 결과와 겉보기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급 임상의의 판단, 특히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에 명시적으로 기반한 판단에 얼마나 많은 무게와 존중을 부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인식론에서 이는 참조계급 문제(reference-class problem)로 알려져 있다. 임상 전문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그 전문성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Sackett과 동료들은 그것이 상당 부분 직접 환자진료(direct patient care)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에서 비롯된다고 명확히 한다. 그러나 EBM은 이 경험적 근거(experiential evidence)를 연구에서 나온 근거와 어떻게 균형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은 EBM 내에서 흔히 일화적(anecdotal)이라고 폄하된다.
이 단계에서 인식론 교육과정(epistemology curriculum)의 초점은 다양한 종류의 의학 지식이 갖는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야 한다.²⁸ 전임상 시기에 배운 인식론을 되돌아보면, 수련의는 근거의 위계가 통합을 위한 모델(model for integration)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떠올릴 것이다. Sackett과 동료들이 권고한 바와 같이 임상적 의사결정을 명시적으로 만들면, 수련의는 임상적 평가나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호출되는 지식의 종류를 범주화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 임상연구의 결과는 병태생리학적 근거(pathophysiologic rationale)나 임상의 개인 경험(personal experience of the clinician)에 의해 보강되거나, 반대로 도전받을 수 있다.
- 특정 환자에 관한 지식, 즉 그들의 목표(goals)와 가치(values)에 대한 이해 역시 모든 결정에서 중요할 것이다.
- 더불어 의료가 제공되는 맥락(context), 예컨대 법적(legal), 문화적(cultural), 재정적(financial) 맥락에 대한 지식도 특정 결정을 가능하게 하거나 제한한다.
저자 중 한 명은 관련된 모든 의학 지식이 다음 다섯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
- 기전적 추론(mechanistic reasoning),
-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 개별 환자 특성(individual patient characteristics),
- 맥락적 특징(contextual features)이다.²⁹
여기서 우리는 오직 의학 인식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틀은 임상적 결정의 윤리적(ethical), 정서적(emotional), 문화적(cultural) 복잡성을 인정한다. 수련의가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기 위해 어떤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지에 관한 인식론적 분석(epistemic analysis)을 수행하면서 소리 내어 추론(reason out loud)하게 하면, 특정 사례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에 부여되는 상대적 무게(relative weight)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우리는 통합의 문제를 해명하고 완화하는 것이 사례 기반 형식(case-based formats)을 통해 가장 잘 가르쳐진다고 제안한다. 사례는 실제 사례일 수도 있고, 실시간으로 분석될 수도 있으며, 표준화된 사례(standardized cases)일 수도 있다. 출판된 문헌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제공하며, 그중 일부는 인식론적 도전(epistemic challenges)을 설명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된 사례이다.³⁰ 사례 기반 추론(case-based reasoning)은 수련의가 특정 결정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지식을 논의 테이블에 가져오도록 장려한다. 임상의들이 한 사례에서 감별진단(differential diagnosis)이나 선호되는 치료 권고(preferred treatment recommendation)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인식론적 분석은 그 불일치가
- 지식의 부족(lack of knowledge)에서 비롯되는지,
- 정보 해석의 차이(difference in interpretation of information)에서 비롯되는지, 아니면
- 해당 사례와 관련된 지식에 대한 가중치 부여의 차이(different weighting)에서 비롯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임상 전문성이 “블랙박스(black box)”라는 생각을 반박하는 데 도움이 되며, 동시에 건전한 임상적 결론(sound clinical conclusions)에 도달하는 데 여러 지식 원천(multiple sources of knowledge)이 갖는 가치를 강화한다. 각 종류의 의학 지식은 환자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나름의 강점과 약점을 지닌다. 특정 사례에 접근할 때 임상의는 자신에게 이용 가능한 모든 관련 지식(relevant knowledge)을 활용하고 통합해야 한다. EBM은 임상의학에서 의존해야 할 어떤 “최선의” 근거(best evidence)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만, 임상 실천에서 의사는 임상적 결정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근거의 총체성(totality of evidence)을 평가해야 한다. 이는 “정돈되지 않은 인식론적 다원주의(untidy epistemic pluralism)”를 조율하는 것을 의미한다.³¹ 인식론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임상적 의사결정을 검토하는 공식적 접근(formal approach)은 이러한 다원주의를 수련의에게 조금 더 정돈된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
결론 Conclusion
의학 인식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학생, 수련의, 임상의에게 일종의 사용자 설명서(operator’s manual) 역할을 한다. 이는 의학 실천에서 임상연구 결과(clinical research results), 병태생리학적 이해(pathophysiologic understanding),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을 사용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의학교육자는 의학철학자(philosophers of medicine)의 도움을 받아 의학 인식론의 언어(language), 원리(principles), 이해(understanding)를 그것이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의학교육과정의 부분들에 통합할 수 있다. 특히 근거기반의학에 초점을 둔 교육과정은 의학 지식과 관련된 철학적 질문을 탐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EBM 자체가 의학 인식론의 한 학파(a school of medical epistemology)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자들은 EBM이 시작된 이래로 EBM의 인식론적 주장(epistemic assertions)과 가정(assumptions)을 검토해 왔다. 여기서 제공되는 통찰은 추상적 사변(abstract musings)이 아니라, 의학교육과 의료 실천에 매우 관련성이 높다.
EBM이 장려하는 회의주의(skepticism)와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은 EBM 자체의 근본 가정과 주요 신조에도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에 철학자들만 참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 수련의, 임상의는 임상적 통찰(clinical acumen)로 응집되는 이유들(reasons)과 추론(reasoning)을 주의 깊고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의학교육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평생에 걸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식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포함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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