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배운 것은 내가 절박함을 호소하며 나서서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기는 커녕 절박함을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머문 기간 중, 처음 절반 정도의 기간은 이 사실을 배우는데 쓴 것 같다. 한국이라는 고맥락 사회에서 해오던 습성대로 지냈다. 내가 주변에 어떠한 기운이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으면 그것을 눈치채주리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갔다. 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드물게 반대로 누군가가 먼저 내 상황을 짐작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제안해주었을 때, 그런 분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 1년의 경험이 ‘절박함’에 대한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줬다.
하나. 캐나다에서 1년을 지내고 돌아와보니, 가기 전에 받아 두었던 연구비의 연구기간 종료가 임박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푼돈에 가까운 금액일 만한 작은 교내 연구과제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리 작더라도 꼭 필요한 연구비였다. 과제기간이 종료되면 8월에 가려고 했던 국외 학회에 이 연구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올해만큼은, 8월에, 그 학회에, 꼭 가고 싶었다. 문제는 과제기간 연장이 불투명하다는 점이었다. 내 연구과제를 담당하는 산학협력단 직원은 내가 이미 작년에 한 차례 연구기간을 연장을 했기 때문에 올해 더 이상의 추가 연장은 불가하다고 했다. 재차 물어봐도 대답은 같았다. 포기할까 하다가 밑져야 본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산학협력단 홈페이지에서 그 직원이 속한 팀의 팀장님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드렸다. 이미 규정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직원에게 답을 듣고도 문의드려서 정말 죄송하지만, 작년 1년간 휴직하고 해외에 머물고 있어서 연구비 사용이 불가능했었다고, 혹시 한 번만 더 연장할 방법이 없겠냐고 여쭈었다. 감사하게도 팀장님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번 알아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일정 서류를 내면 몇 달의 추가 기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셨고, 8월 학회 등록비 및 여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둘. 며칠 전에는 첫째가 캐나다에서 다녔던 학교로부터 졸업앨범을 국제우편으로 받았다. 6학년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앨범에 한 페이지를 넣어서 만들어주고 심지어 학교가 배송료를 부담하여 앨범을 한국에 택배로 보내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학교 측에는 ‘어떠한 비용이든 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은 하겠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졸업앨범을 받는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귀국 직전에 학교의 직원에게 문의를 했고, 직원은 교장선생님에게 확인해보겠다 하였다. 며칠간 답장을 기다리다가,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아 직접 교장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다(3월 말). 이후 캐나다 학기가 끝날 6월 중순 즈음에 다시 한 번 리마인더 메일을 드리고, 일주일정도 회신을 기다리다가 회신이 오지 않기에, 졸업앨범 작업을 맡으셨던 (첫째와 같은 반 학부모라는 것 외에는 친분이 전혀 없는) 학부모 대표께도 연락을 드렸다. 회신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일주일 뒤에 리마인더를 드렸고, 며칠 뒤 드디어 ‘배송받을 주소를 알려달라’라는 회신을 받았다. 배송받을 주소를 보냈는데, 보름이 지나도 택배가 오지 않았다. 염치불구하고 다시 한 번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대표께 메일을 드렸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택배를 받았다. 잘 받았다고 곧바로 감사 메일을 드리니, 여름 휴가 가기 전에 보낸다는 것을 깜박 했다며, 미안하고, 잘 도착해서 기쁘다는 답을 주셨다.
셋. 캐나다의 연구소에 visiting scholar로 지내는 동안 내 supervisor를 해주신 D가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이 분과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기간이 빠듯해서 연구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로 바빠질 시기쯤 D도 한 달간 출산휴가를 가시게 되었고(참고로 이 분은 남자이시다), 그렇게 한달 남짓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못한 상태로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 포기하기엔 캐나다에서 썼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꾸역꾸역 마무리를 하고, 논문으로 정리를 하고, 구색을 갖춰서 피드백을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친절했던 D는 몇 주가 지나도 회신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굉장히 구차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메일을 보냈다. 물론 앞서 보낸 manuscript를 확인해달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메일에도 회신은 없었다. 회신 없는 메일을 마치 스팸처럼 그분에게 보내며 혼자 속으로만 앓다가, 다섯 번째 메일에서는 급기야 ‘혹시라도 내가 당신께 무엇이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회신은 없었다. 메일로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 같아 캐나다에 계신 교수님께 ‘직접 D를 뵙게 되면 내가 그분의 회신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다행히 그 이후에 연락이 재개되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했던 이런 행동들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지만, 기껏해야 조금 더 뻔뻔해지는 정도에 불과하고,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겪은 절박함과 그 절박함 때문에 했던 것들에 비하면 절박함의 ‘ㅈ’의 첫 가로획 ‘ㅡ’에조차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절박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어딘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한다. 어딘가로 향하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도망쳐나오기도 한다. 누군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쫓아가기도 한다.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묻지 않았음에도 먼저 나서서 대답을 하기도 한다. 너무나도 절박해서 무언가를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다. 조직을 만들기도 하고, 조직에 들어가기도 하고, 조직에서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절박함은 무언가를 하게끔 한다. 이처럼 절박함은 이루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보여지는 행동을 통해서 외부에 드러나고,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선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지만, 행동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절박하지 않음과 동일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옳든 그르든 절박함은 행동으로 드러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부터 절박함의 정도를 가늠하기란, 그래서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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