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멋져 보여서, 의대가 대학 중에 가장 가기 힘든 곳이니까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의대에 입학하긴 했어요.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본과 때, 그리고 의사면허를 딴 후에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1. 우선 이런 고민을 지금 예과 때 하게 된 것을 축하하며,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나중에 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작입니다!
2. 조금 안심이 될 것 같은 말로 시작하자면, 혹시 나 혼자만 이러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고민은 생각보다 많은 의예과 학생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업시간의 설문결과가 기억나나요? 당장 동기들 중에서도 대략 절반은 목표의 부재와 가치관 확립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본과 공부에 대해 걱정하는 학생은 더 많구요.
3. 가장 먼저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의사의 커리어, 즉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임상의사가 아닌 진로까지 넓혔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임상의사로 한정해도 매우 다양합니다. 심지어 같은 병원, 같은 과에서 수련을 받고도 각자 전혀 다른 진로를 택합니다. 다양한 진로가 무엇이 있는지 여유있게 탐색하는 것은 성적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고, 아직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는 의예과 학생의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최대한 누리세요.
4. 설령 특정한 면에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더라도, 많은 능력(기술)은 의식적인 연습으로 길러질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잘 못할 것 같아 고민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정말정말 자기 적성이 아닌 영역이 아니라면, 웬만한 영역은 앞으로 의대를 다니며 부족한 것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뒷 부분(노력으로 부족한 면을 채우는 것)보다 앞 부분(부족한 면이 어딘지를 깨닫는 것)일거에요.
5. 지금 하는 고민이 만약 학업에 대한 걱정이라면, "본과 가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의예과 때와 본과 때 학업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는 하나, 지금부터 좋은 습관을 유지해나가는 편이 승산을 높이는 길이에요. 생각보다 의예과와 의학과 성적의 상관관계는 높습니다.
6. 하지만 좋은 의예과생과 좋은 본과생과 좋은 의사는 서로 같지 않습니다. 의예과란 꽤나 내적인 동기부여에 극단적으로 유지하는 기간이고(성적에 대한 부담이 매우 적음), 의학과란 정 반대로 외적인 동기부여에 극단적으로 의지하는 기간입니다(성적에 대한 부담이 매우 높음).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나면 다시 커리어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 주변인과 환경, 그리고 가끔은 (사실 꽤나 자주) 운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 중에 어떤 한 시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시기가 잘 안 풀리라는 법도 없고,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7. 단기적인 조언을 하자면,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보길 바랍니다. 뒤돌아보면 지금 해둔 것이 분명히 자산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하세요. 스티브 잡스의 졸업축사에서 널리 회자되는 구절인 "connecting the dots"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찍은 점이 미래에 어떻게 연결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지금을 돌아보면 "아, 그때 그걸 해두어서 내가 지금 이럴 수 있구나"하고 알게 될거에요. 중요한 것은 연결할 "점"을 찍어두는 것입니다. 점이 없으면 연결할 것도 없을 테니까요.
8. 의대가 "멋져 보여서, 힘든 곳이니까" 가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고등학교 때 그 어려운 것을 해냈으니, 아마 지금 의예과생으로서 또 다른 어려운 것도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고등학교때 그랬듯이, 지금 나에게 "멋져 보이는, 힘들어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정하고, 그걸 향해 실천하는 것입니다. 과감하고 높은 목표를 세우고 우선 한 걸음 나아가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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