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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이 사회적 구성이라고 할 때, 모든 성취가 본질적으로 구조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의 행위자성agency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수월성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으며, (수월성의 구성이) 어떻게 다양한 형태의 수월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제약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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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수월성의 구인construct에 대한 인식론의 기저에는 "인구집단population"라는 개념이 있다. 한 집단은 그 집단이 공유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반대로, 한 집단의 다양성이란,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지 않는 여러 특성이 얼마나 되는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차이individual difference는 중요하다.

 

첫째, 사회적으로 다양한 집단은 다양한 맥락의 다양한 업무를 더 잘 수행하기 때문이다. 시골 출신이나 under-represented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의료에서) 소외된 농촌 또는 under-represented 인구집단에 복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것의 예이다.

 

둘째, [앎의 방법ways of knowing][알 수 있는 것what can be known]은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수월성을 평가하는 여러 맥락에서, 평가자의 사회적 다양성을 높이면, 입학, 승진, 채용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것의 예이다.

 

셋째, [수월성을 정의할 때 사용되는 구인의 포괄성]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리더십에 대한 연구에서는 효과적인 리더는 강한 주장성assertiveness”"소프트 스킬soft skill"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보통 전자는 남성적, 후자는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자에 더 무게를 둬서 평가할 경우, 효과적인 리더가 되는데 필요한 능력의 절반들 날려버림으로써 편향성을 발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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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의료계의 능력주의는 복잡한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복잡한 문제는 고치기fixing보다는 관여와 탐색management and probing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수월성 평가의 현재 모습이 충분히 괜찮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수월성의 현재 버전에 따라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입학시키고, 졸업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의 수월성이 담론적으로 배제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현재의 능력-기반 경쟁 구도에 참여하지 못하게 배제당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지금 배제당하는 이들의 수월성이 인정된다면 전문직 내에서 빛날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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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수월성 평가를 위한 능력-기반의 프로세스에는 다음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첫째, 사회적 판단과 평가자의 주관성이 평가 과정에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수월성 기준의 개발과 기준을 사용한 평가에 참여한다.

 

둘째, 수월성 평가의 모든 프로세스에는 "평등도 검사equity check"를 내장해야 한다. 특정한 기준이 다양한 개인들의 수월성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리 명시적으로 논의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능력과 수월성이 특정 목적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의 기저에 깔린 가치와 가정을 명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과의 과장chair을 평가할 때, 임상 또는 교육적 리더십에 대한 언급은 없고, 그저 우수한 연구자인지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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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변혁적 성과transformative outcome을 얻기 위해서는, ‘능력을 보여주는 업적meritorious work이나 행동이 어떤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만약 이 기저에 특정한 스토리가 있다면, 우리는 다양한 영웅이 등장하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 빛나는 창을 가진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의학계의 지저분한 문제들과 씨름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노력해야collective striving 할 것이다.

 

 

출처:

Razack, S., Risør, T., Hodges, B., & Steinert, Y. (2020). Beyond the cultural myth of medical meritocracy. Medical education, 54(1), 46-53.

쿼터제 중심 인재선발 시스템에는 대체로 능력주의라는 명칭이 따라붙는다. 이 명칭은 수사적 설득력이 상당하다.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재능을 갖추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가치 기반의 기회 시스템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보면, 다들 알다시피 그 암시대로 되고 있지는 않다. 바라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도 당신의 들쭉날쭉한 측면이 기관의 변덕스러운 틀에 잘 맞지 않으면 헛수고에 그칠 수도 있다. 인재 쿼터제가 존재하는 한, 가치를 지녔으나 맨 밑바닥에서 꼼짝없이 막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양산되기 마련이다. 

 
현재의 기회 시스템이 애초부터 능력주의보다는 재능 귀족제talent aristocracy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면,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자처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더 신중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 의도했던 것이 바로 그런 신중성이었다.2 1958년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능력주의의 출현The Rise of the Meritocracy』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풍자소설은 테스트 중심의 표준화된 인재 선발 시스템이 영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현상을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은 ‘aristocracy’와 경멸적으로 대비시킨 ‘meritocracy’라는 단어를 만들어 조롱 섞인 비난의 수단으로 삼았다. 영이 이 책에서 써놓았듯이 “우리가 사는 현대의 사회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금슬금 태생에 따른 귀족제에서 재능에 따른 귀족제로 변신했다.”
 
하지만 영이 원통하게도 이 조롱조의 신조어를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비난하려던 대상들이 멋대로 차용했다.3 교육가, 전문기관, 정부 관료 들이 자신들이 ‘능력주의’를 육성하고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영의 신조어를 강탈한 데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영은 ‘merit-ocracy’에서 ‘arist-ocracy’를 연상시키려는 의도였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귀에 솔깃하게 다가온 부분은 ‘merit(가치, 우수성)’였다. 그에 따라 영의 신조어는 공평성과 평등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처럼 보였다. 덕분에 당국에서는 자신들이 특권 중심의 기회 시스템을 재능 중심의 기회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사회의 최하위 소외계층 중에서도 우수성을 발굴해 성공과 지위로 올라서는 사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언했다.
 
‘능력주의’의 옹호자들은 새로운 기회 시스템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숨겨진 인재를 발굴하고 선발해 육성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의 우수성도최대화될 것이라고 대중을 확신시켰다. 하지만 기회가 임의적 쿼터에 따라서 획득 가능할 뿐이라면 그런 시스템은 진정한 능력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쿼터주의quotacracy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쿼터주의에서는 어떤 경우든 우수성에서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전원의 득실을 합했을 때 실이 더 많은 게임-옮긴이)이 된다.
 
출처:
<다크호스> (토드 로즈.오기 오가스 지음, 정미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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