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적 실패] 이번 연구는 정답을 바로 주지 않고, 학습자가 스스로 고민·실패·재도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생산적 실패/고투(Productive failure)’가 언제나 효과적인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학생이 학습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가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학생은 “교사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 이라는 신념을 가지곤 한다. 의대생들은 정답 중심 학습에 익숙해, 정답이 바로 주어지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따라서 단순히 자율성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율성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안내가 필요하다. 단순히 자율성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생들에게 “왜 이 실패/고투를 경험하게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불확실성과 고투란, 종종 개인적 기대·학습 전략과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생산적 고투는 오히려 학습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고투를 경험하고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의사로서 성장의 일부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AI라는 테크놀로지] 예전에는 우리 대부분이 긴 나눗셈이나 미적분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계산기를 사용한다. 계산기에 의존하는 것이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GPS에 의존하면 특정 인지 기능이 약화되지만, 그것도 큰 논란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생성형 AI 기술의 차이점은 이들이 범용(generalist) 기술이라는 데 있다.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은 정말 잘하지만, 어떤 것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이 수행하기도 한다.
[AI와 Deskilling] 연구들은 교육 현장에서 LLM(대규모 언어 모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감소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는 인지적 대리(cognitive offloading) 때문이다. 즉, 사고 과정을 AI에게 떠넘기면서 인간은 그 능력을 애초에 발달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폴란드에서 진행된 무작위 대조시험(RCT)에서, 연구 시작 시점에서 의사들이 AI를 사용하기 전의 용종 발견율(ADR)은 약 28.4%였다. 그런데 단 3개월 동안 AI 보조를 사용한 뒤에는 발견율이 22.4%로 떨어졌다. 이는 무려 60% 감소이다. 기원전 3~4세기에 플라톤은 “문자가 고대 그리스인의 기억력을 약화(deskilling)시킨다”고 불평했다. 글을 쓰게 되면서 이제는 『오디세이』 전체를 암송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 끔찍한 발명(문자)이 사람들의 기억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기술이 스킬을 약화시킨다는 불평은 언제나 현재 세대가 다음 세대를 보며 하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AI와 교육] 만약 초지능 AI가 등장하면, 교육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결국 의사 직업은 필요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AI가 ‘아주 뛰어난 수준’에서 멈춘다면, 교육자가 아무 변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들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필요한 인지 능력을 아예 발달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선택은, AI가 초지능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학습자의 인지 발달을 보호하는 교육 설계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AI와 협력할 수 있는 미래 인재를 기를 수 있다. 이 역할은 기업이 아니라 교육자가 담당해야 한다. 구글 같은 기업들은 기술을 만들 뿐, 다음 세대의 뇌를 어떻게 훈련할지는 우리 교육자의 몫이다. 의료 전문가 교육자들에게는 세대를 지키는 중대한 책무가 있다.
[절차적 지식과 개념적 지식] "절차적 기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결국 개념적 지식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체크리스트(checklist) 를 강조하며 “이 대화를 할 때는 A, B, C 단계를 따라라”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숙련된 의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유연(flexible)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제가 읽은 연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련의들이 가족들과 매우 어려운 대화(예: 임종 상황 대화)를 할 때였습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따르려고 했지만, 가족들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즉, 가족들은 자신들이 ‘시나리오(script)’ 안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경험 많은 의사들은 즉시 체크리스트를 내려놓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일부 수련의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에 융통성 있게 대화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들도 괴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절차적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념적 지식을 함께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균형이 맞고, 진정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멘토링] "멘토의 역할은 고정된 프로필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입고 벗는 ‘재킷(jackets)’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멘토링 경험이 적은 사람은 학생들에게 학사 일정이나 행정 절차를 알려주는 ‘촉진자 역할’을 더 많이 합니다. 반면, 경력이 많은 멘토는 연구 방법을 알려주거나 학문적 롤모델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멘토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멘토링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학생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즉, 멘토의 실제 역할 인식(actual task perception)은 종종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역할(preferred task perception)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멘토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적 처방에는 비판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신, 멘토들이 자신의 역할을 성찰(reflection)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멘토들에게 매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개발(faculty development)의 역할이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구조화된 교수개발 세션은 멘토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나는 멘토로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단순히 교육학 이론을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실제 사례를 가져와서 어려운 대화와 딜레마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합니다.
결국 핵심은, 멘토링의 본질은 “내가 멘토로서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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