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학생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학회 기간이 끝나고, 한 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한참 학회의 구조니 트렌드니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학생이 문득 물었다.

 

"그럼 보통 학회의 목적은 교육인가요? 아니면 네트워킹이 더 메인인가요?"

 

내가 잠깐 뜸을 들이자, 학생은 한 발 더 들어왔다. "학회의 근본적인 목적은 뭘까요? 사실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건 요즘 인터넷으로 더 빠르고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굳이 1년에 한 번씩 다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것에 어떤 의의가 있을 것 같은데."

좋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그 질문을 받고서야 처음으로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왜 사느냐"는 질문처럼

학회를 왜 하느냐는 물음은, 내게 거의 "왜 사느냐"와 비슷한 결로 다가왔다. 나는 그냥 태어났을 뿐이다. 태어날 때 내가 왜 태어나는지를 따져 묻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누군가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을 때 비로소 멈칫하게 된다.

 

학회도 그랬다. 나는 학회의 창립자가 아니다. 학회라는 것이 애초에 왜 생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늘 해오던 것이니까, 매년 그 시기가 되면 당연히 하는 행사로 받아들여 왔을 뿐이다. 그러니 "이걸 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표면적인 답은 이렇게 된다.

 

"올해 그걸 할 시기가 됐으니까."

 

물론 그건 너무 피상적인 답이다. 학생의 질문이 좋았던 것은, 바로 그 피상적인 답 너머를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정답이 아니라, 그날 내가 더듬어 간 생각의 궤적이다.

더듬어 본 다섯 가지 의미

첫째, 연구를 빠르게 알리는 일. 논문은 쓰는 데도 오래 걸리지만, 투고하고 심사받고 고쳐서 마침내 출판되기까지는 더 오래 걸린다. 빠르면 다행이고, 어떤 경우는 몇 년씩 묵는다. 그러니 내가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 결과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는 큰 시차가 생긴다. 학술대회는 그 시차를 줄여,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결과를 빠르게 알릴 수 있는 통로다. 어떤 분야에서는 이 '속도'가 거의 전부이기도 하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처럼 답이 하나뿐인 연구는, 먼저 발표하는 쪽이 모든 의미를 가져가고 뒤늦은 쪽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그런 실험실은 발표 하나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학교육은 그 정도는 아니다. 고려대에서 한 연구라고 해서 다른 대학이 못 할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새롭고 유의미한 결과를 빠르게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이 의미는 분명히 있다.

 

둘째, 인정하고 축하하는 일. 학술대회에는 시상식이 있다. 그해 우리 분야에 큰 기여를 한 분께 가장 큰 상을 드리고, 우수한 발표를 한 사람에게, 잘한 학생에게 상을 준다. 말하자면 우리들끼리 모여 "올해 수고했다, 잘했다" 하는 잔치다. 이 분야에 의미 있게 기여한 사람을 동료들 앞에서 인정해 주는 자리.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셋째, 묻히지 않을 기회. 모든 연구가 다 논문으로 출판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연구도 있고, 작고 소박한 연구도 있다. 학회는 그런 연구라도 최대한 많은 동료들 앞에 내보일 수 있는 자리다. 만약 이런 자리가 없다면, 신진 연구자나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 혹은 인기 없는 주제를 붙들고 있는 사람의 연구는 그냥 묻히거나 주변 몇 사람만 알고 끝났을 것이다. 젊은 학자상 같은 것이 따로 생긴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 장치가 없으면 이제 막 들어온 박사과정생은 발표는 하더라도 인정받을 기회를 좀처럼 갖기 어렵다. 누군가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는 자리, 그것이 학회다.

 

넷째,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일. 여러 사람이 연구를 발표하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가장 중요한 효과 하나는, 새로운 사람이 이 분야로 유입된다는 것이다. 새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분야는 고이고, 결국 죽는다. 임상에서도 특정 과에 지원자가 끊기면 후속 세대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나라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망할 것 같으니 이민을 받듯, 학회는 그 분야로 새로운 사람이 끊임없이 흘러들어 오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다섯째, 소속감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 의학교육에 한 번 발을 들인 사람이 "이 분야가 나의 분야"라는 소속감과 애착을 갖게 하는 데도 학회가 중요하다. 소속 학교가 잘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넓은 범위의 소속감이 필요하다. 해외에 나가면 학교도 지역도 넘어서 그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솔직히, 처음 온 사람에게 학회는 무척 낯선 자리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싶고, 말 붙일 사람도 없어 그냥 뒤에 조용히 앉아 듣다 나온다. 마치 처음 교양 수업에 들어간 학부생처럼. 그런데 그것이 한 해, 두 해 쌓이면 분야가 친숙해지고 "아, 이 학회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알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소속감이 생긴다. 그 과정을 거쳐 사람은 비로소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그래서 도달한 자리

이렇게 한 십오 분쯤 머리를 짜내다 보니, 어렴풋이 한 그림이 떠올랐다. 이 분야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본다면, 학회라는 행사는 결국 그 생명체를 존속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인정하고, 참여의 기회를 주고, 새로운 사람을 들이고, 소속감을 길러 떠나지 않게 하는 것. 그렇게 분야는 죽지 않고 이어진다.

 

물론 이것은 '학술대회'라는, 말하자면 무생물 조직의 관점에서 본 의미다. 정작 그 자리에 참여하는 개개인에게 학회의 의미는 또 전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은 다 관심 없고 오직 내 발표 하나를 잘 해내는 것이 목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는 것이 목표다. 취업을 앞두고 있다면, 여러 대가와 다른 학교의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런 기회만큼 좋은 무대도 없다.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하고 포스터 앞에서 자기 연구를 설명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쉬러, 놀러 온다.

나에게 학회란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요즘 사람을 만나러 학회에 간다.

 

처음 의학교육학회에 간 것이 2013년이니 벌써 14년째다. 처음 한 십 년은 그래도 꽤 적극적으로 발표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학회의 의미가 그것이 아니게 되었다. 내 연구를 알리는 일은 논문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의 발표를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굳이 그 자리에 가서 발표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제가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잘 들지 않는다.

 

처음 갔을 때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친한 몇 명과 그저 같이 밥 먹고 같이 세션을 들으러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웬만한 의대마다 아는 분이 한 분씩은 계신다. 내게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는 분도 있고, 내가 먼저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하는 분도 있고, 정말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적어도 국내 학회는 내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자리. 그리고 이제는 내가 발표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는 편이 더 좋다.

 

물론 이 의미도 지금이 그럴 뿐, 나중에 또 바뀔 것이다.

 

가르치다 보면 배운다는 말을, 나는 그날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 앞에서, 답을 찾으려 더듬는 사이 내가 14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비로소 보였다. 좋은 질문을 던져 준 학생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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