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 심사를 하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성공을 보고하는 논문일지라도 무조건 '게재가(accept)'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물며 별다른 개선이 없는데, 심지어 별다른 시도조차 없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출판되는 논문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publication bias!). 하지만 변화가 미미했거나, 변화의 방향이 부정적인 경우에 저자는 - 결과야 어쨌든 - 적어도 그 실패는 '명확한 의도에 기반한 교육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고 설득해야 한다.
2. 그렇다면 '실패'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Young(2019)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혁신 지향적 실패(innovation-oriented failure)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구현하기 위하여 혁신을 시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었던 상황이다. 이런 경우는 제법 흔하다. 이 때는 왜 목표를 이루지 못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써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how things should be) 알아낼 수 있다.
둘째, 발견 지향적 실패(discovery-oriented failure)이다. 마치 공업, 제조업에서의 파괴 실험(destructive testing)처럼, 이론/아이디어/가설이 깨지는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 유형의 실패를 통해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거나, 실패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우연적 실패(serendipitous failure)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자를 가장 흥분하게 하는 말은 "유레카!"가 아니라 "그거 참 흥미롭군요.."이다"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발견을 추적하여 결과의 패턴 뒤에 숨겨진 '왜'를 찾아낼 수 있다. 반직관적인 발견을 가능케 하고, 전형적/전통적 접근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3. 결국 다시 돌아와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의학교육'이다. 전례없는 상황이고, 다음 학기, 다다음 학기, 아마 무엇을 해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발전의 기회도 없고, 발전의 방향마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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