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허시험의 실기시험: 한국의 변화와 미국의 변화>
#한국 #KMLE
1. 이제 약 한 달 뒤면 의사국가시험(의사국시) 실기시험이 시작된다. 어느새 벌써 1년 전 일이 되었는데, 작년 이맘때쯤 공공의대 설립으로 촉발된 의료계와 정부와의 충돌 과정에서 의사/전공의 파업, 의대생 동맹휴학, 의대 본과 4학년 ‘국시 실기시험’ 거부 등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2021년 ‘국시 (하반기) 실기시험’이 9월 1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참고로 ‘상반기’ 실기시험은 올해 1~2월 진행되었다.
2.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은 말그대로 ‘실기’시험이다. 즉, 응시자가 모의상황에서 표준화환자에게 진료하는 수행능력을 평가한다. 따라서, 실기시험 운영방식의 특성상 시험에 동원되는 자원과 비용(표준화환자, 평가자, 시험 공간 및 시간, 시험 문항, 설비 등)이 훨씬 많다. 비록 이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으나, 필기시험처럼 한날 한시에 전체 응시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기보다는, 하루에 70~80명 정도씩 나누어 두 달 간 진행하게 되는 주된 이유가 된다.
3. 그리고 며칠 전, 9월 1일부터 약 두 달간 진행될 의사국시 실기시험의 수험생 별 시험 일정이 공지되었다. 그러니까 누가 몇 월 며칠에 시험을 보게 되는지가 공지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양의대의 김한양 학생은 9월 1일, 이한양 학생은 9월 5일, 박한양 학생은 11월 2일…등과 같은 일정표가 각 학교와 학생에게 공지되었다.
4.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큰 변화이다. 과거에는 각 의과대학에 시험일자 슬롯(slot)을 분배하고, 분배받은 슬롯 내에서 각 의과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율(자유?)은 학생에게 전달되어, 결과적으로는 ‘학생(=응시생)이 시험 일자를 정하는 것’이 많은 의과대학의 운영방식이었다. 그러나 의-정 갈등 과정에서, 이러한 방식(응시생이 날짜를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올해 의사국시 실기시험(상반기, 하반기 모두)에서는 모든 응시자의 응시일을 국시원에서 지정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5. 또한, 2021년 하반기 의사국시 실기시험은 시험의 형태가 크게 변한다. 4에서 설명한 변화가 예정에 없던 변화였다면, 올해 실기시험 형태 변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2021년부터 문항은 12개에서 10개로 줄지만, 한 명의 표준화환자를 대상으로 수행해야하는 시간이 12분으로 늘어났다. 또한 기존에 “진료문항”과 “수기문항”으로 구분되었던 것을 “(진료+수기) 종합문항”으로 바꾸었기에, 응시자 입장에서의 체감 난이도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6. 요약하자면, 결과적으로 올 해 의사국시 실기시험을 볼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꽤 많은 변화를 동시다발적으로 겪게 되었는데, (1) 실기시험 날짜를 선택할 수 없게 되었고, (2) 실기시험 형태가 바뀌었으며, 앞서 언급은 안 했지만, (3) 내년 1월 진행될 필기시험은 종이시험에서 컴퓨터시험(CBT)로 바뀔 예정이다.
#미국 #USMLE
7. 한편, 올해 1월 26일, 한참 우리나라에서 의사국시 실기시험의 ‘재시험’이 막 시작되었을 때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같은 유형의 시험을 두고 중대한 결정이 이뤄졌다. 바로 ‘미국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을 영구히 중단(permanent discontinuation)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8. 부연하자면, 미국도 의사면허시험(USMLE)에서 실기시험을 본다. USMLE는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이 중 의과대학 재학기간에 통과해야 하는 시험은 Step 1과 Step 2이고, Step 2는 CK(Clinical Knowledge)와 CS(Clinical Skill)의 두 파트로 구성된다. 바로 이 중 “USMLE Step 2 CS”가 우리나라의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대응되는 시험이다. (당연히 기본적으로 대면시험이다.)
9. 꽤나 갑작스러웠지만, 마냥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COVID-19과 함께 Step 2 CS 는 이미 2020년부터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으로 COVID-19이 확산되면서, NBME는 2020년 3월에 우선 일시 중단(temporary cessation)을 발표했고, 5월에 12-18개월의 중단 연장(extension of the suspension)을 거쳐, 2021년 1월에 영구 중단(permanent discontinuation)에 이른 것이다.
10. 앞의 9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래부터 영구 중단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중단할 때에는 “개선된 버전의 Step 2 CS”를 재개하는 것이 목표였다. 목표로 하고 있던 개선영역에는 우선 ‘COVID-19로 인한 위험의 최소화’를 포함하여, ‘평가의 특성’과 ‘응시자 경험’을 개선하는 것 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원격 실기 시험의 도입(remote exam administration)도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 영구 중단의 배경에는 기존에 Step 2 CS 시험이 가지고 있던 한계점도 있었다.
(1) 응시료: 학생의 응시료는 1500달러+α(이동 및 숙식 비용)에 달할 정도였고,
(2) 높은 합격률: P/F로 나오는 시험 결과에서 95% 이상이 합격하며,
(3) 낮은 피드백: 학생에게는 구체적인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고,
(4) 환원적 평가: SP 평가자에 의존해야 했기에, (복잡한) 진료행위가 ‘체크리스트의 관찰가능한 행동’이라는 단순화된 목록으로 환원(reduce) 되었으며,
(5) 제한된 상황: “단일 환자의 초진 상황”으로 시험내용이 제한되고,
(6) 자료 접근 제한: 시험에서는 임상적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자료 접근에 한계가 있다.
#종합
12. 우리나라 의사국시 실기시험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09년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Step 2 CS가 시작된 것은 2004년이다. 물론 ‘표준화 환자를 활용한 시험’이라는 개념 자체는 훨씬 더 오래되었지만, ‘의사면허시험’이라는 공식 체계로 도입된 시점의 차이가 그 정도라는 뜻이다.
13. 의학교육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개념이나 방식이 시행되고 우리나라에 도입되는데는 적어도 10년에서 20년 정도의 격차가 있어왔다. “장기계통통합교육(1950년대)”이 그랬고, “PBL(1960년대)”이 그랬고, “OSCE(1970년대)”가 그랬고, “역량바탕교육(1990년대)”이 그랬고, “MMI(2000년대)”가 그랬다. 최근에는 전공의 교육에 “EPA(2000년대)”라는 개념이 막 들어오고 있다.
14. 그렇다면 반대 방향으로는 어떨까? 그러니까, 외국에서 어떤 개념이나 방식을 폐기한 후, 우리나라도 그 개념이나 방식을 폐기하는 데 얼마가 걸릴까? 예를 들면, “의예과”라든가, “인턴”이라든가, 그리고 지금과 같은 “의사국시 실기시험”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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