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의 동향을 파악합니다.

2020학년도 신입생(aka 코로나 학번)의 본과 1학년 1학기 성적

Meded. 2022. 7. 15. 16:08

1.
올해 본과 1학년 1학기 성적이 나온 뒤 한 교수님께서 주신 질문.

 

"(코로나 속에서 의예과 2년을 보내고 온) 올해 본1의 1학기 성적이 작년 본1 학생들에 비해서 엄청 올랐어요. 근데 작년에 비해서만 오른 것이 아니라, 코로나 전(2019년) 학생들하고 비교해도 더 높아요. 

 

교수님들에게 물어보면, 특별히 더 기출문제(족보)를 많이 냈거나 그러시지도 않았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혹시 녹화수업에서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바뀐 효과일까요?"

 

2.
학생을 포함해서 여기저기서 알게 된 것을 정리하여, 아래와 같은 가능한 설명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징①] "이번 본1학생들은 술을 별로 안 마셔요"

→ (해석) 한양의대 학생들의 교우관계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는다면 '동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 2년간 동아리 활동이 사실상 전무했고, 유구히 내려온 '동아리 중심'의 교우관계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물론 2020 → 2021 → 2022로 오면서 동아리가 어느 정도는 복원되었지만, 문제는 동시에 이 2020년 신입생도 예1 → 예2 → 본1로 학교에 이미 나름 적응한 뒤였고, 결국 동아리가 줄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특징②] "여러 명이 그룹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 (해석) 한양의대 학생들의 학습문화 중에는 '필기그룹'이라는 것이 있다. 일정 규모(작게는 10명 이내, 많게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자신이 담당한 수업에 대해서 양질의 필기를 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필기 품앗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번 학년에서는 (지금까지 윗 학년들이 해왔던 것과 다르게) 소수 학생들만 '필기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학생은 '필기그룹' 없이, 즉 다른 동기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대체로 혼자 공부를 해나갔다. 

 

[특징③]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는, 소위 '참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아 보여요."

→ (해석) 의대 공부의 '정석'을 꼽는다면, 단연 족보(기출문제) 중심의 공부이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지만, 동시에 주변에서 다 그렇게 해야 '중간은 간다'거나 '유급은 면한다'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각자도생' 방식으로 공부했을 때, 여러 선배에서 후배에게 전수되거나 동기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족보 중심의 공부 경향이 다소 약화되고(물론 전혀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대신 '고등학교 때 하던대로' '원칙에 충실한' '교과서 중심의 공부'를 하는 비율이 늘어난 듯 하다. 

 

[특징④] "에타(에브리타임)에 '성적 안 좋은 학생들은 유급을 줘야 한다'는 톤의 글이 올라왔어요"
→ (해석) 다분히 ③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동기)의 도움 없이' '나 혼자 공부해서' '나의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받아 진급하게 된 학생에게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고, 이 때 '공정'한 결과는 유급을 받는 것이다. ②에서처럼, '여러 동기들과 같이' 공부했을 때는, '나도 진급하고 쟤도 진급하는 것'을 바랄 수 있겠으나, '나 혼자' 공부했을 때 더이상 이러한 '동료애(?)'는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3.
이제 남아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Ⅰ. 동아리 활동이 이뤄지지 않은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의예과를 통째로 온라인으로 보낸 2020신입생은 (한양)의과대학에서 '갈라파고스'와 같은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선후배들의 문화로 돌아갈 것인가?

 

Ⅱ. '의대에서 교과서를 읽는 사람은 일등 아니면 꼴찌다'와 같은 흔한 인식과는 달리, 의과대학에서 '참공부'는 효과가 있는 것인가? 도대체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공부했길래 평균적으로 최근 4년 중 가장 높은 성적을 얻은 것인가?

 

Ⅲ. '높아진 성적'과 '잃어버린 협력'의 net effect는 어떻게 봐야 할까? 단기적, 중기적, 장기적 영향력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